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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사설시조에 관한 글을 읽다가. 작품 분석의 틀로서 제시했던 ‘비심판적 관여’라는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표현의 주석에 그 출처로 이 책이 언급되어 있었고, 메모해 두었다가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초의 의도했던 ‘사설시조’의 분석틀로서의 유용성보다는 문학 작품이 인간 이해에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법적 심판에 대해 유용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법철학자인 저자가 ‘법과 문학’이란 제목의 강의에서 다루어진 내용을 기반으로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저자가 행했던 강의가 주로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행위를 법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책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과 월터 휘트먼의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왜 법관들이 법적 심판을 내리는데 문학적 상상력이 중요한가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저자는 한 인물의 행위를 심판하는데 있어 단순히 범죄 여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인물의 삶과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분석의 예로써 주로 디킨스의 소설 <어려운 시절>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소설은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 구현된 인간의 필요와 욕망의 끈질긴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법’을 다룸에 있어 ‘공상이라는 부드러운 빛을 통해 우리가 이성과 조우해야 ’하며,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관찰함으로써 합리적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특정한 사건의 존재 유무로써 심판할 것이 아니라, ‘공상’과 ‘합리적 감정’을 통해 그 사건과 인물들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량을 기르는데 있어, 저자는 문학 작품 특히 리얼리즘 소설이 중요한 분석의 틀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인을 재판관이라고 규정한 휘트먼의 시를 인용하면서, ‘재판관으로서의 시인’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문학적 상상력’을 언급하고, 이것이 ‘불평등보다는 평등에, 귀족적 이상보다는 민주적 이상에 더 긴밀히 관계’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즉 법정에서 어떤 사건을 대할 때, 법관들은 그 인물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고 특히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접근은 ‘완전한 평등으로 이끌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정치적 사유로 하여금 끈질긴 불평등을 개선하고 모두에게 최소한의 품위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는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판관으로서의 시인’에 대해서 언급한 휘트먼의 시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정확하게 상상하여 사려 깊게 측정해야 하며, 나아가 그것에 관여하고 또 그것의 의미를 물을 수 있는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능력은 인간의 실상이 무엇인지 알고 또 그것을 바꾸어 나가는 힘을 얻는 강력한 방법이기도 하다.’(원문의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서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바꾸어 보았다.) 이를 위해 저자는 ‘소설 읽기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그러므로 문학적 이해란 사회 평등으로 이끄는 마음의 습관을 고취시켜 집단 증오를 자행하던 고정관념을 해체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문학 작품을 읽고 내용과 등장인물들의 상호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타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제목은 <시적 정의>로 명명되었지만, 나는 ‘시적(poetic)’이라는 수식어보다 ‘정의(justice)’라는 주제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즉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법을 포함한 사회과학은 당대의 현실을 각종 수치와 자료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문학은 구체적인 수치나 자료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작품에서 등장 인물의 상황이나 심리를 묘사함으로써 훨씬 더 많은 이야기 거리를 던져주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미국 대법원의 중요한 ‘소수의견’들이 갖는 중요성을 제시하고, 사회와 문화의 변화에 따라 그것이 끝내는 다수의견으로 채택되어가는 상황과 그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법을 다룰 때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몫 없는 자들과 억압받는 집단들에 공감하고 동일시하려는 문학적 경험을 모색함으로써 이러한 문학적 이해를 확장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훌륭한 문학 작품은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라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서 적절하게 설명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적어도 문학 작품을 단순히 내용 그자체로서 다루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작품이 창작된 당대 사회의 특정 국면을 포착하여 반영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예로 든 작품들을 여전히 읽지 못한 상태이지만, 한국의 시와 소설들에 대해서도 이러한 시각을 통해 충분히 분석하여 논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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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 중 "감정과 공평성"을 눈여겨 본다. 감정과 공평성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책 속으로 그 답을 찾아나선다. 계산적 지성 계산적 지성은 공평하고 엄격한 수치상의 정의를 산출할 수 있는 반면 감정은 가까운 것들에 대해 극도로 편향, 편파적인 판단을 내린다고 평가된다(149쪽). 공리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을 하나로 고려하며, 누구도 하나 이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그럴듯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감정에 있어서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에 대한 애정은 먼 곳의 많은 사람들에 대한 공정한 의무는 지워버리면서도 모두를 아우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세계 전체를 생각하기 보다 특정한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배운 소설의 이들은 도덕성 형성을 정의에 대한 전복으로 받아들인다.
감정은 가까운 것들에 대해 극도의 편향, 편파적이라는 이들, 정말 그럴까? 라는 물음
그렇다면 계산적 지성의 추상적 시각은-즉 특정한 형태의 삶을 사는 것이 진정 어떠한지에 대한 생생하면서도 감정을 이입하는 상상력이 없이-,상대적으로 근시안적이고 무차별적인 것으로 드러났다(2장에서 언급). 지은이는 여기에 감정은 보다 포괄적인 시야를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점을 덧붙인다. 감정을 가르치는 것에 실패한 아버지 때문에 자신이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됐다는 이들이 불평하듯, 실제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빨리 인식하는 능력의 부재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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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이 책을 김경민 "시적정의 와 인권"(2017, 경북대출판부)와 함께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은이는 찰스 디킨스(어려운 시절), 리처드 라이트(미국의 아들), 포스터(모리스), 월트 휘트먼(나 자신의 노래)등의 문학 작품을 분석,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 추론의 상관관계에 대해 논한다. 합리적 감정이란 무엇인지, 감정은 옛부터 비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되었기에 공적 추론 과정에서 배제됐다. 지은이는 이 감정을 끌어들여서 논하고 있다. 또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 로마의 스토아 학파, 스피노자, 칸트, 스미스, 벤담, 시지윅 등 역사 속 다양한 철학자, 공리주의자, 경제학자의 사상을 넘나들며 공적 판단에서의 감정의 역할을 깊이 있게 논한다. 문학 작품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고 있고 본질적으로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다. 사회적 평등 문제이기도 한 이런 논의를 저자는 성, 동성애, 인종 문제를 다룬 소설과 판결 사례를 들어 풀어나간다. 김경민의 "시적정의와 인권"은 한국사회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1960년대 소설에 주목,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한 소설들이 시대의 모순에 어떻게 대응하며 대안적 세계를 제시하고 있는지, 1960년대의 인권침해적 상황에 대한 소설적 대응 양상과 문학적 인권담론에 주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