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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으로 읽게 된 책이다.
<웅어의 맛>은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유명하고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 '마디'로 당선되며 등단한 소설가 구효서의 5가지 감각에 대한 고찰을 담은 소설집이다. 오감을 소재로 하여, 감각 하나하나를 키워드로 소설을 엮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오감에는 소리, 색깔, 향기, 맛, 감촉이다.
저자의 독특한 관점 전환으로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의 후기를 보니 시점에 따라 감각이 서술자가 되어 진술하는 부분이 있어 그런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알고 염두에 두고 읽으니 훨씬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빠르게 읽기보다는 하나하나씩 깊이감 있게 읽어야 좋은 소설임을 알았다. 수록된 소설 중에서는 '육두구 향'이 가장 생각나는데, 평소 오감 중에 가치를 순서로 나열한다면 꼴등이 향이기 때문이었다. 소설을 통해 향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느낄 수 있었고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소설이었다.
오감에 대해 일상처럼 깊이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소리, 색깔, 향기, 맛, 감촉에 대해 조금이나마 느껴보려 노력했고, 조금 더 깊이감 있게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한 발자국 뒤에서 객관적으로 살펴본다는 게 색다른 경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구효서 저자만이 가지고 있는 필치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이전의 작품, 그리고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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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들다... 구효서의 소설집 <웅어의 맛>은 그렇다. 은결(달빛에 비쳐 은백색으로 보이는 물결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 은파 또는 은물결)을 보며 풍경소리에 귀 기울이고, 쓸쓸한 육두구향이 코끝에 스며들 즈음 무미(無味)의 웅어의 맛을 보게 된다면 그리운 이의 감촉이 떠올라 감각의 혼란을 느낀다. 그리고 한 방울 한 방울... 부지불식간에, 그러나 쉼 없이, 소리 없이 가만가만 스며든다. 그렇게 <웅어의 맛>은 내게로 왔다.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재고의 여지가 없는 인문계열서와는 달리 나름의 해석과 상상의 영역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물론 집필할 당시 저자는 의도를 갖고 글을 쓸 테고, 분명 독자가 이러이러하게 자신의 글을 느끼고 이해해 주길 바라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저자의 이런 의도와 상충되는 감상을 가지게 되거나 때로는 신기할 정도로 같은 감상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이견을 확인하는 쏠쏠한 재미는 문학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또한 저자 스스로 본인의 작품에 대한 소희(所希)를 밝히지 않는 한 독자는 자신의 감상이 저자가 원하는 감상인지 아니면 상충하는 감상인지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지는데, 그 궁금증이야말로 내게 문학을 읽게 하는 최고의 맛이다.
구효서 작가의 <웅어의 맛>은 이런 최고의 맛을 가진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저자는 '말·생각·감각에 갇히지 않기 위해 '오감'에게 펜을 쥐어 주기로 했다.'라고 했는데, 이러한 독특한 시점에 기대를 하게 했다.
독자는 의인화된 오감으로 3인칭과 1인칭 전지적 시점을 오가며 등장인물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들 작품은 '오감의 글'이라는 작가의 표현대로 오감처럼 별개인 듯 보여도 하나인 소설이다. 발표 시점이 비록 다르다 해도 그 속엔 연결되어 흐르는 기조(基調)는 분명 있으니 연작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인간의 오감은 당연히 '보다'로 시작한다. 그래서 첫 번째 작품 <은결-길 편지>는 오감의 처음인 '보다'의 '색(色)'이다. 이 글을 처음에 배치한 건 본 소설집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왜냐하면 그 여운이 너무 짙어 앞으로 가려는 눈과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 여인을 찾기 위해 190여 일 동안 포구를 떠도는 '요'와 갈 곳을 잃은 그의 편지(길 '잃은' 편지. 그래서 길 편지다.), 그리고 그에게 도다리쑥국을 끓여주는 숙소 주인 '미가'의 이야기는 내 마음에도 가보지 못한 바다 한켠의 평상을 남긴다.
<풍경 소리>는 사람마다 다른 소리로 표현하는 풍경소리를 통해 '왜'가 아닌 '그렇군'의 받아들임을, <육두구 향>에서는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는' 연결을, 표제작인 <웅어의 맛>에서는 맛이 없음(無味)이 그 맛이라는 부조리함을, 오감의 끝이자 나에게는 조금 애매했던 <카푸네>까지 마지막 <밤춤>을 향해 가는 여정은 은근하고도 외롭다.
저자인 구효서는 소설집 <웅어의 맛>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나는 그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여섯 편의 단편을 들여다보면, '나'는 누군가의 인생에 간여하지 않으며, 나를 무어라 부르든 아무 의미 없지만 '나'는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본질임을 밝힌다. 누구나 알고,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것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일 수도, 그리고 '신'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단편들에 등장하는 장소가 삶과 죽음의 중간에 있는 어느 곳(단테의 '연옥'쯤)이라고 한다면 돌아가야 할 자는 돌아가고, 받아들이는 자는 받아들이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수긍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는 종종 '남기고 돌아가라' 한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이든'이 무엇이든, 그 무엇이든의 끝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의 끝이고 더 이상의 지속이나 시작이 없는 것을 말하지요.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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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의 맛 구효서 소설집 | 문학사상 소설을 읽는 내내 감각이 그려졌다. 특히 미각에 대한 감각은 총체적인 오감이라고 생각된다. 보고, 냄새를 맡고, 음미하는 모든 감각을 사용하게 되니까 말이다. 소설가 구효서님의 오감에 대한 소설집... 시도 자체가 색다르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집 소제목에서 느껴지는 감각의 이미지... 하지만 막상 그 감각에 의지하여 읽다보면 절대 하나의 감각만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대표적으로 [은결-길편지]에서는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의 시각적 감각이 요라는 남자에게 생의 마지막 기회를 줬다고 한다면 여기에 나오는 도다리 쑥국이나 무 등 등의 것 역시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오히려 난 [웅어의 맛]보다 [은결-길편지]에서 진한 쑥내음과 도다리의 맛을 느꼈으니까 말이다. 소설가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거기에 살을 붙이는 과정은 나에게는 참 낯선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렇게 실험적인 시도는 소설 읽기에 또 다른 재미를 부여한다. 한 작가는 의도적으로 특정 받침을 제거하는 글쓰기를 시도하기도 하고 말이다. 문득 소설을 읽다가 생각난 것은 구효서 작가의 결이 왠지 김승옥 작가와 닮아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노래하는 것,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 섬세한 묘사 등 등이 두 작가를 묶게 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중 계속해서 화면이 연상되는 것 또한 말이다. 자꾸 그 도다리 쑥국도 생각나고, 웅어도 생각나고, 윤슬 혹은 은결도 생각난다. 왠지 단편극장에 어울리는 하나의 시나리오로 탄생시켜도 꽤 훌륭할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말하지 못하는 무엇을 한가지씩 모두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 때문에 살고 사람 때문에 죽는다. 사람만이 사람을 날카롭게 한다. 이 소설 속 주인공 모두는 저 마다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결코 마지막 선을 안넘는다는 것... 그 정도일까... 아마 모두들 바다의 교훈을 잘 깨닫고 있는 듯하다. 절대 건너오지 말고, 묻어두고 돌아가라는 것... 책을 덮어도 자꾸만 피맛이 올라온다. 요가 계속해서 칼로 잇몸에 상처내기를 멈추지 않는 것... 그것 때문일까...아니면 삶에 대한 어떤 해답도 사는 동안에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그것도 이제서야...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가? 인간을 살게하는 것은 상당히 단순한 것이라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죽더라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고 표현했으며, 다른 한 누군가는 손 밑의 거스름같은 뭔가 사소한 걸림으로 표현했다. 모든 것이 오감하고 맞닿아있다. 인간은 오감이 있으므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의 재미이다. 어느 잇몸 약 광고처럼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고 하면서... 그런 감각에 바로 사는 맛, 사는 멋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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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이름 웅어는 맛이 좋아 조선시대부터 임금님이 드시던 귀한 물고기로 수라상에 올랐다고 합니다. 회로 먹으면 살이 연하면서도 씹는 맛이 독특하고 지방질이 풍부하여 고소하나, 익혀 먹으면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 웅어는 신비한 생선임에 틀림없습니다. 소리, 맛, 색깔, 향기, 감촉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묵직하고 깊은 필체, 서정성과 탄탄한 주제 의식을 겸비한 구효서의 소설집이 문학사상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사유하는 힘을 지닌 소설을 써온 구효서저자는 이번엔 반야심경의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을 소재로 한 독특한 오감소설을 내놓았습니다.
나는 그랬다. 카미노인의 넋을 끌어다 바다에 빠뜨리거나 미가를 포구에 주저앉혀 홀로 나이 먹어 가게 한 것이 나인것처럼 보이나, 실은 그들 스스로 결심하고 선택한 삶이었다. 다만 나와 대면케 된 이루호 그리되었으니 ... (중략) 누가 나를 보고 이라고 하거나 존재의 빛이라 한들, 그것이 내 이름은 아니어서 이나 빛 따위로는 나를 설명할 수 없으니... 나는 다만 봄 꽃잎에 떨어지는 붉은 기운과 하늘 및 바다를 가르는 푸른 서슬, 그리고 해수면에 부서지는 눈부심 따위를 가능케 할 뿐이다. 은결은 내가 아니라 내가 있다는 사실을 매개하는 물 위의 반짝임이다. ---p.33 색 色
창밖은 그토록 밝은 빛으로 가득했다. 빛을 보는 순간 그것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것 혹은 염원하던 곳이었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빈틈 하나 없이 가득한 무엇, 더할 수 없는 출일 혹은 환성이라 부를 수 있는 곳, 빛이 두 겹이라는 느낌 또한 생애 처음이었다. ---p.194 味: 맛 미
신선한 주제와 서술 기법을 선보이며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감각에 무조건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독자를 의심하고 경계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각 단편은 감각인 ‘나’가 이야기를 이끌지만 화자를 바꾸어 등장인물에 입장에서 서술하기도 했습니다. 화자의 서술과 주인공의 독백이 서로 교차하는 새로운 서사 기법의 소설을 읽으므로 잠들어 있는 감각세포를 깨워줄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1983년 그녀가 떠난 해를 K는 정확히 기억했습니다. 삼십 육세의 짧은 나이에 그녀의 묘비는 2021년이었고 비석에 음각으로 새겨진 글자들의 모서리는 손을 벨 만큼 날카로웠습니다. 나는 이렇게 죽는다. 남들이 뭐라든, 이렇게 죽는 나는 행복 하다고 까진 할 수 없지만 슬프지도 무섭지도 않다. 후회 없는 내 사랑을 완성코자 할 뿐 이렇게 남겨진 그녀의 편지는 유서가 되었습니다. ‘내 사랑을 완성코자’라는 그녀는 죽음으로 사랑을 마무리 했고 오직 자신만의 사랑이 죽는 걸로 완성을 이룬 것입니다. K는 진정한 웅어의 맛을 몰랐습니다. 느끼지는 못했지만 복부의 포만감으로만 많은 양의 웅어를 먹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맛있는 것들을 맛있게 하는 존재일 뿐, 단것을 달게 하고 신 것을 시게 하는 것, 쓴맛도 짠맛도 없이 모든 맛나는 것들을 만나게 하는 맛이되 정작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맛보일 수 없는 맛 그것이 K에게는 매우 유감으로 남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말. 생각. 감각에 갇히지 않기 위해 ‘오감’에게 펜을 쥐어 주기로 했다. 글의 첫문장을 좋아하고 한동안 책을 읽으면서 수집을 해서 기록으로 남겨 놓기도 했습니다. 은결이라고 했다. 은결-길편지의 첫문장입니다. 맛 미, 집 가, 거의 지워진 간판에 글자는 맛집이라고 하기에는 좀 싱겁고 허망해지는 이름이었지만 미가의 맛을 알기 때문에 하나도 싱겁거나 허망하지 않았습니다. 편지지는 스프링 노트를 뜯은 것이었고 뜯긴 부분을 손끝으로 정성들여 매끄럽게 마무리한 것 바람에 눕는 풀처럼 모든 글자들이 오른쪽으로 일정하게 기울였고 행갈이 없이 이어진 누군가에게 부친 요의 편지였고 그것을 미가가 읽었습니다. 포구에 도착했던 첫날 요는 숙소를 예약한 사람이었습니다. 포구는 미가가 남자와 마지막으로 다녀간 곳, 골수 기증을 받아 두 번의 삶을 살고 있는 미가 남자가 가장 두려운 것은 미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 아픔, 고통 또한 모른 다는 것입니다. 남도의 포구, 도다리쑥국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는 너만의 바다를 간직하고픈 마음 길편지는 빛의 色이었습니다. 여운이 남고 가슴이 아련해지는 느낌의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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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라고 하면 소설가로 익숙한 이름이다. 그 중 ‘꿈꾸는 인큐베이터’가 기억이 난다. 아마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어서 그럴 것이다. 이번에 발간한 소설 작품집 ‘웅어의 맛’은 오감을 소재로 하여 감각 하나 하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었다. 책을 보면 제일 먼저 책표지를 본다. 책 디자인이 파스텔 색감의 산이 중첩된 모양에 물고기가 헤엄쳐다니는 모습인데, 산뜻한 느낌이다. 마음에 드는 표지 디자인이다.
다음에 차례를 보는데 色 빛 색 / 은결-길편지 聲 소리 성 / 풍경소리 香 향기 향 / 육두구 향 味 맛 미 / 웅어의 맛 觸 닿을 촉 / Cafune 카푸네 法 법 법 / 밤 춤 이렇게 인간의 5감각과 의식의 6개의 중 단편소설로 구성이 되어있다. 그 다음 작가의 말이나 프롤로그를 보는데, 소설집 ‘웅어의 맛’은 작가의 말이 책의 맨 뒤에 나와 있었다. 대학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풍경소리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와 6개의 이야기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가 나와있었다.
“들을 수 없고 들어도 모를 이런 소리에게 화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 소설이 아니라면 가능할까. 그레서 소설을 쓴 것인데 쓰는 김에 소리뿐만 아니라 그러한 색깔(色), 그러한 향기(香), 그러한 맛(味), 그러한 감촉(觸)에게도 각각 동일한 역할을 맡겨 보기로 했다. 그것들, 오감이 작동하며 불러일으키는 의식(法)에게도” p.330
글을 읽을 때 중간에 생경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부분이 바로 감각이 서술자가 되어 진술한 부분인 것이다.
“내가 은결이냐면,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세상에 반짝이는 모든 것들을 반짝이게 하는 것일 뿐이다. 모든 보이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것. 나는 다만 그런 빛일 따름이다. 모든 빛나는 것들을 빛나게 하되 정작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띄지 않는 것.” p.32
소설을 읽을 때 시점이 바뀌거나 서술자가 바뀌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야기의 전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뭔 소리를 하는지 몰라서 소설 읽기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다. 작가의 말을 읽으니 작품들이 더 잘 이해가 되었다. 사실 중심사건 하나 있고, 그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한 소설은 쉬워서 읽기 편한데, ‘웅어의 맛’은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쉽게 읽혀지지 않는 깊이감 있는 소설이다. 가벼운 소설을 탄산음료라면 ‘웅어의 맛’은 바디감이 있는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꽤 이 책을 오래 들고 다녔던 것같다. 6편의 이야기 중 ‘풍경소리’가 제일 마음에 드는데 소리에 집중하여 소리를 언어로 표현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소리를 표현한다는 것이 인간의 의식에 따른 부분으로 진짜 제대로된 소리를 글로 적는 것 자체가 가능할까? 매번 청소년 소설만 읽다가 오랜만에 깊이감 있는 소설을 읽어서 좋았다.
[이 글은 컬처블룸으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웅어의 맛 #구효서 #문학사상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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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에 대한 오랜 탐색, 그 완결작
문학사상에서 출판한 구효서 작가님의 <웅어의 맛>은 인간의 오감을 소재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소설이다.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구효서 작가님의 깊이 있는 생각을 감각을 통해 설명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너무나 일상적이라 소중함을 잘 못 느끼는 감각은 때로는 지나버린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요는 칼날이 가운데 아랫니 사이로 파고들도록 세우고 윗니로 칼등을 지그시 눌렀다. 어쩌다 그랬다. 날이 두껍고 둔한 식사용 나이프를 미가가 준비한다는 걸 나는 알았다. 그러나 요는 이따금 그녀의 눈길을 피해 날카로운 과도를 움켜쥐었다. 시런 칼날이 이 사이를 비집고 잇몸에 닿을 때까지 윗니로 천천히 밀어 내렸다. 한 모금 피 섞인 침을 삼키고서야 요는 천천히 음식을 씹었다. (12쪽)
상상만으로 잇몸의 피가 흘러내리는 느낌이다. 은결은 해수면에 반짝이는 것이다. 햇빛에 빛나는 물비늘을 윤슬이라 하고 달이 뜨면 은결이라던데, 포구에서 내려다보이는 은결 인근의 숙소에 요가 찾아온다. 자신의 사랑하는 이를 찾아 모든 포구를 돌아다니며 확인하다 마지막 하나 남은 포구를 남겨두고 이곳에 머무르는 요를 숙소 주인 미가와 동네 사람은 불안하게 살펴본다. 행여 이곳에서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닌지….
미가는 혈액형이 바뀌었다.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대만 사람의 골수를 이식받은 후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방법으로 요가 행하는 의식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포구 사람들은 요를 걱정하며 끝까지 가지 말고 바다를 위해 남겨 두라고 말한다. 그는 길 잃은 편지인 길 편지를 우편함에 넣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다.
작가님은 오감을 제재로 색을 나타내는 ‘은결-결편지’, 소리를 나타내는 ‘풍경 소리’, 향기를 나타내는 ‘육두구 향’, 맛을 나타내는 ‘웅어의 맛’, 촉감을 나타내는 ‘Cafune 카푸테’, 법을 나타내는 ‘밤춤’ 여섯 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다.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불렀던 ‘성불사의 밤’에 등장하는 풍경 소리가 두 번째 단편의 이야기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主僧)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미와는 자신의 노트에 풍경 소리를 적는다. 풍경 소리가 그윽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애당초 주승은 풍경을 풍탁이라고 하고 금탁 또는 첨마라고 한단다. 소리가 나는 대로 옮기는 것이 이렇게나 다르다. 한국의 강아지가 멍멍 짖고 미국의 강아지가 바우 와우 짖는 것과 같다.
목탁 소리를 적어 보라고 내민 종이에 적혀진 목탁 소리는 모두 제각각이다. 학교 종은 땡땡땡이라고 울리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언어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절간에 매달려 흔들리는 풍경 소리는 다채롭지만, 누군가 언어로 정의하는 순간 그렇게 인식하게 된다.
각각의 작품이 감각적이고 쉽게 접하지 못했던 느낌을 전한다. 불교적이고 토속적 색채가 강하게 다가오고 죽음에 찾는 사람이 관계를 통해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은결-길편지),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자신의 좋아하던 맛을 잃어버린 주인공(웅어의 맛), 자매의 일생을 뒤덮어버린 칼춤의 기억(밤춤) 등이 인상적이다.
소설이 색다른 시공간을 대신 경험하는 매체라면 <웅어의 맛>은 독자에게 색다른 경험을 전달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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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에 이상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에서 접했던 구효서님이 소설들. 그 이후로는 사회생활하면서 소설과 담을 쌓고 있다가 최근 다시 시간적 여유가 생겨 이런 저런 다양한 책을 읽다가 이번에 접하게 된 구효서님이 소설집. 그래서 더 반갑게 읽게된 책입니다.
이 책은 인간의 오감이가고 하는 소리와 색깔 향기, 맛, 감촉에 더해 의식까지를 다루고 있는 다섯편의 소설로 된 소설집인데 오감을 가지고 이렇게 한편의 소설집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감각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느낌을 다시 생각해 보는 책이었답니다. 가장 제게 매혹적으로 다가온 이야기는 밤춤이라는 마지막 소설이었는데요. 이제 팔십 언저리에 다가온 두 자매가 고향을 다시 찾아가면서 회상에 젖는 이야기인데 기구하고 가난했던 어머니의 이야기와 자신들의 이야기가 묘하게 다가왔습니다. 벚꽃의 아름다움보다는 벚꽃의 희딘 흰 처연함이 묻어나온다고나 할까요. 주인공의 고향에 돌아와 그날밤 그리도 추었던 춤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그녀의 어머니가 추었던 춤이기도 할 것이며 그녀를 평생 따라다녔던 한이나 슬픔을 날려버리는 춤은 아니었을까요?
은결-길편지라는 소설에서는 죽기위해 떠나온 자들이 죽지 못하고 머무르는 곳에 누군가 찾아오고 그가 그곳에서 마지막을 보내지않고 다시 떠나가기를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이야기였는데 그들 모두 제각각 사연을 가지고 그곳에 어쩔수없이 머물고 있지만 그들 역시 한때는 마지막을 위해 그곳에 왔지만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죠. 그들과 새로 찾아온 객실과의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각 소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음식 이야기도 빠지지않고 있습니다. 남도의 봄에서 생각나게 하는 도다리쑥국, 그리고 강원도 낯선 카페도 아닌 식당도 아닌 외딴집에서의 돌나물두부카나페, 성불사의 공양주 보살이 해 주었던 가을두릅나물무침. 이야기들은 각기 다르지만 웅어의 맛이라는 소설에서 결국은 각 소설의 모든 주인공들은 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소리나 색깔, 향기, 맛등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작가의 표현처럼 들을수도 없고 들어도 모를 그런 것들을 이렇게 소설로 읽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임에 분명합니다. 작가의 글속에서 맛을 느끼고 소리를 듣고 향을 맡는 것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는 우리의 언어는 우리가 서로 다르듯 언어 역시 다르겠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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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맛 본다는 의미는 미각만의 황홀함을 느끼는 일은 아니다.
'감각을 통해 얻은 맛은 어느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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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의 맛>은 구효서 작가님의 오감에 대해 탐색한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이다. <웅어의 맛>은 오감 관련 5개의 단편 중 ‘미각’에 대한 단편 소설 제목에서 따온 제목이다. ‘오감’에 대한 탐색이라니, 과연 어떤 내용일지 사뭇 궁금했었다. 책 뒤표지에는 내용에 대한 힌트로 “말, 생각, 감각에 갇히지 않기 위해 ‘오감’에게 펜을 쥐어 주기로 했다"라는 문장이 있다. 단언컨대 이 문장 한 줄이 <웅어의 맛>을 더할 나위 없이 충분히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이지만 소설인 것 같지 않은 장면 및 화자의 의식의 흐름에 대한 묘사가 마치 어떠한 절제 혹은 언어의 조탁이라든지, 다듬는 행위 없이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그저 펜이 흘러가는 대로 작성된 것 마냥 읽히는 것을 철저히 의도한 듯하였다. 물론, 각 단편마다 일련의 서사가 있기는 하나 서사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오감에 대한 날것의 표현들이 항연을 이루고 있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다. 가령 가장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첫 번째 단편인 색(빛깔)에 대한 ‘은결-길편지’에서도 바다의 물결에 대한 색의 표현 더불어 도다리쑥국에 대한 맛(미각)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 소설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단편인 소리에 대한 ‘풍경 소리’도 다양한 소리 표현을 절제하지 않고 쏟아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웅어의 맛>의 첫 단편을 읽어내려가며 받은 기분은 내가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낀 기분과 흡사했다. ‘이건 뭐지? 신박한데? 의도가 뭐지?’하는 혼란스러움 반, 어렵지만 이런 다양한 표현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 반. 유명한 독립영화를 봤는데 내용이 심오하고 어려워 내가 이해한 그것이 맞나 싶은 어지러움. 딱 내가 <웅어의 맛>을 읽고 든 생각이다. 다작을 하신 등단 작가의 소설집이다. 내가 가타부타 좋고 싫고 논할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렵다. 애써 의미를 찾으려다 내려놓고 편히 읽었다. 오감에 대한 표현을 마음껏 음미하며 나 또한 의식의 흐름대로 읽었다. 나는 평론가도 아니고, 전문 서평가도 아니니 작품성을 논하지는 않겠다. 다만 언젠가는 나도 꼭 좋은 글을 써서 등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을 한 권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표현의 다양성을 배워두어야겠다 싶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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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섯 가지 감각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말?생각?감각에 갇히지 않기 위해 ‘오감’에게 펜을 쥐어 주기로 했다.
웅어의 맛. 제목이 참 신기하다. 웅어? 푸르게 아름다운 배경의 물 위로 떠다니는 물고기 그림이 있는 걸 보니 분명 물고기이긴 할텐데....
웅어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기에 검색을 해보니, 아래와 같은 설명이 나와있었다. 웅어 : 웅어는 예전 임금님이 드시던 귀한 물고기로 조선 말기에는 행주에 사옹원(司饔院) 소속의 ‘위어소(葦漁所)’를 두어 이것을 잡아 왕가에 진상하던 것이 상례였다. 웅어는 낮은 물에 잘 자라는 갈대 속에서 많이 자라서 갈대 ‘위(葦)’자를 써서 위어(葦魚, 갈대고기)라고도 한다. 강경에서는 ‘우여’, 의주에서는 ‘웅에’, 해주에서는 ‘차나리’, 충청도 등지에서는 ‘우어’라고 불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웅어 [Korean anchovy]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출처 입력 심지어 맛이 좋아 왕가에 진상까지 했던 물고기라고 하니, 정말 대단하긴 했나보다. 봄 웅어, 가을 전어라고 말했다고 하니, 먹어보진 못했지만, 꽤 맛있긴 한가보다.
웅어의 맛'은 책 제목이기도 하지만, 6개의 작은 소제목 중 하나이다. '웅어.' 그런데, 대체 왜 하필 하고 많은 물고기 중에서 웅어를 택했을까? 좀 더 알아보니 웅어는 1급수의 물에서만 사는 물고기라고 하니, 아마도....청정...순수한 감각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우리가 지닌 순수한 감각들.
色 · 은결-길편지 聲 · 풍경 소리 香 · 육두구 향 味 · 웅어의 맛 觸 · Cafune 法 · 밤춤 . 사실 구효서 소설을 재밌게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 소설집은 읽기가 조금 힘들었다. 무슨 말을 하고픈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나 할까?
" 말, 생각, 감각에 갇히지 않기 위해 '오감'에게 펜을 쥐어 주기로 했다."
라니.. 무슨 말일까...했는데, 책 뒷편에 나온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끄덕끄덕 이해가 갔다.
목탁소리는 탕탕탕탕, 탁탁탁탁, 똑똑똑똑, 딱딱딱딱, 텅텅텅텅, 떰떰떰떰...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 목탁 소리는 분명 있고 모두 같은 자리에서 듣긴 했지만, 각자 다르게 적는 상황. 과연 소리라는 것을 글로 적을 수 있을까? 몇 개 안되는 활자로 소리의 그 감각을 어떻게 표현해낼까.
우리가 아는 개가 짖는 소리는 '멍멍' 그러나 미국의 개가 짖는 소리는 '바우와우'이다. 같은 개인데, 왜 소리가 다르게 표기될까... 같은 소리 이지만, 과연 그 소리를 자모 몇 개 안되는 옹색한 글자로 표현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적을 수 있다 해서 탕탕탕탕이라 듣고 탕탕탕탕이라 적으니 그 때부터 모든 목탁 소리는 탕탕탕탕이 되고, 실제로도 그렇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국에는 모든 목탁이 탕탕탕탕으로 들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말은 말 뿐이라는 것. 말과 글자를 따라하면, 진정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 본인의 잘못된 확신으로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감각으로 명명되는 '나'가 주로 이야기를 이끌지만,
화자를 바꾸어 등장인물에 입장에서 서술되기도 한다. 화자의 서술과 주인공의 독백이 서로 교차하는 새로운 서사 기법.. ‘나’를 통해 이야기를 관망함과 동시에 세밀한 부분까지 들어가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지만, 실은 한 번에 이해가는 쉬운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소리나 색깔, 향기, 맛등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감각이라는 것을 한번에 쉽게 느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느끼지만, 알지만, 그것을 명확히 표현한다는 것을 어려운 감각. 그것을 소설로 읽는 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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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