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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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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처음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어렵고 난관에 봉착한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도대체 이해불가의 장막을 치고 마음의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한 지혜가 나를 반겨주니. 이뭣고! 본래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맹구우목盲龜遇木 '눈 먼 거북이가 나무판자를 만난다'는 뜻이다. 부처님은 '인간이 죽은 후 다시 태어날 때 인간의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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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처음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어렵고 난관에 봉착한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도대체 이해불가의 장막을 치고 마음의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한 지혜가 나를 반겨주니. 이뭣고! 본래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맹구우목盲龜遇木 '눈 먼 거북이가 나무판자를 만난다'는 뜻이다. 부처님은 '인간이 죽은 후 다시 태어날 때 인간의 몸을 받을 확률' 을 수명이 무량겁인 눈먼 거북이가 바다 밑을 헤어침다가 숨을 쉬기 위해서 100년년에 한 번씩 물 위로 올라오는 데 우연히 그곳을 떠다니는 구멍뚫린 나무판자에 목이 낄 확률보다 더 적다고 하셨다.

 

조갑상토爪甲上土 '손톱 위의 흙' 이란 뜻이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손톱 위에 흙을 올려놓고서 그 흙과 대지의 흙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많은지, 비구들에게 물었다.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겠지만 비구들은 대지의 흙이 훨씬 많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부처님 왈 " 사람으로 살다가 인간계나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자는 손톱 위의 흙과 같이 적고,아귀나 축생,지옥 등으로 태어나는자는 대지의 흙과 같이 많다."    -잡아함경雜牙含經-    

 

이토록 어렵게 인간 몸을 받았는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자기의 생명을 죽음에 맡기고 허둥대며 이 소중한 하루를 보내야 하겠는가? 

 

인간은 오식五識[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과 5근이 접촉한는 다섯가지 경계 즉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으로 이루어져 분별심의 무명無明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의 본질 色,受,想,行,識,오온五蘊으로 구성된 '나'에게 집착해서 '나'라는 존재를 실체로 받아들이기때문에 실체가 무아無我임을 깨닫기 위해 식識에 의해 '있음'이 되어 착각을 일으키며 결국 괴로움이 되니, 그 한 생각의 뿌리를 매 순간 이뭣고로 제거하는 과정이 참 수행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무소유無所有는 물질적으로 비우는 걳이 아니라, 모든 집착集着과 애착愛着을 다 비워 빈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할 때 다생겁래로 쌓인 업장이 소멸되고 본체가 드러나 성불成佛로 이어지는 것이다. 모든 존재存在는 연기緣起하며,연기하는 것은 무상無常한 것이고,무상한 것은 그 성품性品이 공空하다는 것이다.

 

반야심경에서의 조견照見은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을 통한 인식의 전환의 의미한다. 한시도 쉬지 않고 분별심을 앞세워 외부를 향하여 치달리는 마음을 내면으로 돌려 바르게 통찰하는 것이 조견이다.'내가 있다.'라는 사실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궁극적인 물음에 집중하는 것이 조견이며,산란심을 잠재우고 집중을 유도하는 유일한 핵무기가 이뭣고이다.

 

인욕바라밀忍辱波羅密 : 아무리 곤욕을 당하여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참고 견디는 수행修行. 멸아만시하심즉성불滅我慢是下心卽成佛 " 아상我相을 버리고 내가 최고最高라는 아만심에 벗어나 머리가 땅에 닿게 낮추어 하심下心이 되어야 부처를 이룬다."

중생은 불성佛性의 평등함을 망각忘却하기 일쑤이다. 교만驕慢하여 남을 경시하면서도 스스로는 지고至高하다는 마음을 일으키며 자기만의 색안경을 끼고 온갖 시시비비를 만들어낸다.

남에게 모욕과 곤욕을 당하면서도 참고 인내忍耐한다는 것은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수행이다. 수행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화를 내거나 분노를 일으켜서는 안된다. 그 순간 성불成佛 자체가 무너져 내린다.

전체를 보는것 양변을 아울러보는 통찰의 지혜인 중도中道의 길을 위해 색안경을 벗어야한다. 중도실상中道實相을 보는 눈은 거울처럼 맑아야 하고 태양보다 더 밝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자리 본래의 성품은 맑고 밝음을 떠난 적이 없다.

사자교인獅子咬人   한로축괴漢盧逐壞

" 흙덩이를 던지면 개는 그 흙덩이를 쫒아(밖으로) 가지만, 사자는 던진 사람[根本]에 달려든다." 중생이 생사를 윤회하는 것은 의식意識이 인연을 좋아 마음을 조작하기에, 자기 집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밖으로 떠돌기 때문이다.

 

생활선生活禪

" 꼭 부처님 앞에서 참선해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직장에서 사무를 보거나 어느 곳에서든 일을 하는 복잡한 가운데서 득력得力하는 것이 고요한 고셍서 좌선坐禪하는 것보다 10만 배나 더 힘이 있는 것이다.  -한암스님-

 

" 이 세상에 종말이 있습니까? 영혼과 육체는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만약 둘이라면 육체가 죽은 뒤 영혼은 어디로 갑니까?"

부처왈 "여기 지나가는 한  나그네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어디선가 독화살이 날아와 그의 가슴에 박혀 버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화살을 뽑으려 하자, 그 화살을 맞은 사람이 뽑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화살이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누가 쏘았으며,무슨 이유로 쏘았으며,화살의 독은 무슨 성분이며,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 등등, 이 모든 문제를 알기 전에는 결코 이 화살을 뽑지 않겠다.' 고 하였다. 그러면 그 나그네의 목숨은 어떻게 되겠느냐?"

"그는 독이 온몸에 퍼져서 죽게 될 것입니다."

" 그렇다, 그는 자신은 의문을 풀기도 전에 죽고 말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나'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가 끝이 있든 없든, 종말終末이 오든 오지 않든 간에 가장 급선무는 생사生死 윤회輪廻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법을 수행해야 한다는 게 부처님의 말씀이다.

불자로서 금생에 이룰 수 있는 최상의 수행의 목표는 '내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선문답禪聞答이 이뭣고이다.

 

인간의 몸은 무시무종無始無終 상주불변常住不變한 마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형상形象이다. 마치 풀잎에 맺힌 이슬 같이 실재하는 것 같지만 잠시 머무르는 허상虛像과 같은 것이다. 사회적인 지위와 권력,명예 등도 또한 허상虛像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내가 누구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뒤로하고 전도顚倒된 착각 속에서 분별심을 일으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반복한다.

밖에서서 찾지마라 사람들은 자신을 등지고 뜬구름 같은 몸과 마음을 나로 삼아 전도顚到된 무명無明에 싸인 채 살아간다. 전도몽상顚倒夢商으로 인한 몸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뼈에까지 사무치고 세포 하나 하나엒지 각인刻印되어 고질병이 된 오온五蘊의 덩어리가 사람이다.

 

나는 누구인가?

 

What is insanity and what is sanity?

"어떤 것이 미친 것이고, 어떤 것이 미치지 않은 겁니까?"

숭산스님 왈 "미쳤다는 것은 어떤 것에 매우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집착執着하면 조금 미친 것이고, 많이 집착하면 많이 미친 것이다. 만약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는 미치지 않은 자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미쳤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나'에 집착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실상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나'라는 것은 생각으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생각의 산물인 '나'를 없애고 진정한 본성을 찾기 위해 참선을 하는 것이구나.

 

하루 3000배씩 100만배拜 기도 수행들어가 이뭣고! 사대오온四大五蘊이 공空하며 무아無我라는 가르침이 참 진리라는 깨달은 청운 스님의 나를 찾아가는 길 이뭣고!

 

 

 

 

 

 

YES마니아 : 골드 c*********o 2023.02.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