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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은 끝이 없다. 좀 더 괜찮은 내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때론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칠 경우 욕심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노예가 되는 순간 행복은 사라진다. 나의 빈 부분이 도드라져 보이고, 내적 외적 결핍에 신음한다. 여느 나라보다 유행에 민감하고, 신제품에 열광하는 우리의 모습은 사회 전반에 퍼진 결핍의 반영이다. 사진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여도 디지털카메라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물건이었다. 물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필름카메라가 있긴 했지만, 적잖이 현상 값을 들여야 하며 사진으로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긴 시간을 감내해야만 하다 보니 보편화되진 못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200만 화소대의 제품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던 시절은 지났다. 새로이 출시되는 제품들은 그로부터 10배나 뻥튀기된 화소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제품들을 나열한 채 일일이 사양을 비교한다. 이 제품은 무엇이 단점이고, 저 제품은 무엇이 단점이라는 전문가를 뺨치는 평을 발견하는 일이 쉬워졌다. 이제 막 사진에 눈을 뜨기 시작한 이들도 백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제품을 구입한다. 열정이 식어갈 무렵에는 자신이 가진 제품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또 다른 제품으로 눈을 돌린다. 사진은 사람이 찍는 것이지 기기가 찍는 게 아님에도 그리 군다. 사진, 잘 찍고 싶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렇다. 글이 많아 시중에서 흔히 찾아 읽을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책인 줄로만 알았다. 조리개가 어떻고 셔터스피드가 어떠하며, 빛은 어떻게 이용해야 한다는 설명으로 가득한 책 말이다. 읽을 땐 그런가보다 고개를 끄덕이지만 막상 카메라를 손에 쥐면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름 기기에 밝은 편임에도 그랬다. 비슷비슷한 제품을 가지고 모두가 사진을 찍는다. 괜찮은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유명 출사지로 언급되고는 한다. 그렇게 탄생하는 사진들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서 혹은 책에서 본 장소에 가서 유사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으니 당연한 결과다. 후보정까지도 비슷하게 흉내를 낸다. 내가 찍은 사진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은 드물다. 그게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모두가 찍을 수 있는 사진을, 그것도 무척이나 잘 찍어놓고는 사진을 못 찍었다고 평하는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자신만의 시야요, 사진에 관한 독창적인 철학이다. 인생을 살면서 각기 다른 경험을 할 텐데 왜 사진은 비슷할 수밖에 없단 말인가! 내 삶을, 내 주변 소중한 이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사진이라면 다를 것이다. 지나치게 정제되지 않아 당장에는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사진은 생명력을 부여 받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관한 짠한 향수를 품은 사진이다. 이를 평할 때 핀이 어긋났으며 화이트밸런스가 뒤틀렸다는 식의 평은 무의미할 것이다. 최근에는 굳이 카메라가 아니어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 웬만한 스마트폰의 카메라는 카메라 못지않은 성능을 자랑한다. 특유의 작은 센서로 인해 극도로 어두운 환경에서는 자글자글 노이즈가 생성되겠지만, 이미 많은 이들은 머지않은 훗날 폰에 달린 카메라로 인해 별도의 카메라가 필요치 않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카메라가 필요 없는 시대, 모두가 사진을 찍는 시대. 부조화가 만들어낸 조화를 향해 우린 차츰 걸어 나가고 있다. 상대적으로 거대한 카메라에 비해 휴대폰은 부담이 덜하다.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사진의 주인공 입장에서도 그렇다. 딱히 긴장할 필요가 없는 휴대폰 카메라가 우리에게 자연스러움을 선사할 것이다. 조금 덜 인위적인 추억이 차곡차곡 우리의 폰에 쌓여갈 것이다. 그런 사진을 소중하다 여기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다. 그리고 내 자신과 내 이웃을 외면한 채 사진을 잘 찍길 바란다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보다 원시적으로 삶을 그리고 사진을 즐기는 입장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사진을 잘 찍는 법에 눈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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