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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청소년 시절을 생각하며 읽은 책이다. 모태신앙이지만, 중고등 시절에는 공부를 이유로, 피곤을 이유로... 대학시절에는 노는게 너무 좋아서, 술 마시고 흥청망청 사는것이 신기해서 멀리했던 교회.. 명확한 꿈도 윤리의식도 점점 약해져갔던 그 시절을 말이다. 이 책은 청소년 시절 교회를 멀리하게 되는지 그 원인과 어찌 그들을 인도하며 구원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준다. 친구문제로, 가족문제로, 성적문제 등등 힘들어하는 청소년에게 교회가 하나의 안식처이자 자기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해 줄 수 있음은 당연하다. 교회나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문화, 제도, 개인, 교회 총체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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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청소년신학 #마상욱지음 #딘보그먼지음 #샘솟는기쁨 #청소년을성장하고꿈꾸게하는근원적질문 저자는 다음세대를 위한 현장사역에서 직접 발로 뛰며, 다년간 청소년지도자 양성을 위해 강의하며, 현재 숭실사이버대학교 청소년코칭상담학과 특임교수, 칼빈대학교 아동청소년사역연구소장이다. 청소년지도사부부로 청소년 현장전문가이다.예수믿는교회 담임목사이며 세자녀모두 사교육없이 공교육과 홈스쿨로 양육하였다. 아쉬운것은 코로나로 인해 청소년의 주도적 활동이 사라지고 있고 교회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세대가 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청소년신학은 무엇일까? 실천신학과 마찬가지로 신학의 원리에서 현재 청소년들의 문화와 그들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문이다. 성경과 신학으로 다음세대를 해석한다. 청소년때에 친구따라 엄마따라서 교회갔다가 함께 기도원도 가고, 수련회도 갔던 기억이 났었는데 은혜롭다가도 다시 원상태로 갔던 기억이 나도 있었다. 확실히 그때는 친구가 좋아서 친구와 어울리고 싶어서, 교회에서 조건없이 잘해주고 어른들이 사랑으로 받아주어 교회 문턱이 높지않아서 믿음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왔다갔다를 정말 편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문턱이 높지 않으니 결혼해서도 남편따라서 교회에 입성(?)한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청소년지도자는 성경해석, 문화해석, 자아해석으로 읽어내려는 이해하려는 독해력이 필요하다. 성경해석으로 문화, 자아해석에 응용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청소년기에 왜 그랬는지 어린 나를 이해하게되며 청소년교육의 방향성도 제시해주어 교회 교육을 이끌어가는 교역자, 부모들이 꼭 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청소년사역에서 제일 어려웠던 부분은 책임의 경계라고 느꼈다. 모든것이 다 내 잘못인 것 같고, 다 내어줄 수 있다는 오만한 착각인데 그 경계가 제일 어려웠다. 청소년지도자로써의 정체성, 중심을 잡아주는 것을 도와주며 미래세대에게 청소년신학은 실천신학으로 가정사역과 함께 가야하며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청소년을 교회에서 신앙을 지도할때에도 방향성을 알려주는 정말 필요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꼭필요한청소년신학 #실천적이고실제적인 #부모교역자청소년지도자들이봐야할책 #자아가바로서야청소년에게지도할수있다 #현장사역의실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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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만난 어느 성도님은 사춘기 딸을 둔 엄마입니다. 딸이 하나라 지극정성으로 키웠습니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대화도 많이 나누고, 때로는 친구처럼 친밀하게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딸이 변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사춘기가 온 모양입니다. 딸은 표정부터 달라졌습니다. 엄마에게 그렇게 애교 많고, 상냥하던 딸은 매일같이 엄마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엄마는 딸을 보는 것이 이제는 두렵다고 했습니다. 딸의 하교 시간이 다가오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가슴이 조여온다며 눈물을 지으셨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글쎄요. 너무 어렵습니다. 우리도 그 시절을 지나왔다지만, 그때와 지금은 너무나 달라 보입니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도 청소년 사역은 늘 제자리, 아니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길이 있을까요? 가능할까요? 이 질문에 딘 보그먼과 마상욱 목사가 대답합니다. ‘청소년 신학이 필요하다’고 말이지요. 저자는 청소년 신학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성경과 신학에서 다음세대와 그들의 삶을 해석하는 원리를 갖고 현재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 개인의 삶을 해석하는 학문’이다. 저자들은 이런 필요를 따라 청소년 사역자들에게 통찰력 있는 중요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환경과 요소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자아를 어떻게 점검할 것인가? 가정과 또래 집단과 같은 생태계를 살핌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합니다. 그런 후에 저자들은 청소년 사역자들이 나아가야 할 대안적인 방안을 제시하고자 애를 씁니다. 물론 이 책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답을 제시하기보단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 질문 속에서 답은 오롯이 청소년 사역자들 각자의 몫이겠지요. 하지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깨우치는 질문이 너무 중요할테구요.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가 책을 놓을 때는 상당히 무거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구요? 그 동안 너무나 준비없이, 가볍게 청소년 사역을 생각했다는 자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러고보니 청소년들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너무 일천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청소년 사역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목회자들과 교사들이 한 번쯤 읽어보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비단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들은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이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이루기를 원하는 제자들이라면 모두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동일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을 진리를 어떻게 전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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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대학생을 만나는 청년사역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입학하자마자 청년이 되는 것이 아니다. 꽤 오랜 시간 청소년에서 청년이 되는 전환기를 겪는다. 그런 점에서 딘보그먼, 마상욱 교수님의 「이야기 청소년신학」이 먼 이야기 같지 않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섬기면서 깨닫게 되고 더듬더듬 찾아가던 것들을 책 곳곳에서 만났다. 저자의 고민, 연구, 경험 등을 열정적으로 담아놓은 이 책은 많은 청소년, 청년을 만나는 사역자와 지도자들에게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이 책은 청소년지도자(청소년사역자, 교회교사, 상담자)에게 필요한 관점, 자질 등을 총체적이고 균형있게 다룬다. 사역의 대상으로서 청소년을 대하고 주입식으로 지식을 전수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런 태도는 청소년에게 그리고 지도사에게도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청소년지도자는 먼저 자신을 사역의 대상으로 생각하여 성경해석, 문화해석, 자아해석에 충실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청소년을 대할 것인가?’의 방법론적 접근 이전에 ‘어떤 청소년지도자로 그들을 만날 것인가?’의 질문이 필요하다.
필자의 경험과 저자의 주장이 만났던 지점 중 하나는 이것이다. ‘.’(방점)이나 ‘!’(물음표)가 아닌 ‘?’(물음표)로 성경과 문화와 자기 자신, 그리고 청소년/청년을 대하는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 “21세기는 이야기의 시대”(p91)다. 이야기는 관계 안에 나누어지며 관계 위에 쌓인다. 당위와 명제로는 관계를 열 수 없다. 물어야 하고 들어야 한다. 당연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지도자는 성경에 대하여, 시대의 문화에 대하여, 나 자신에 대하여, 청소년들에 대하여 ‘물음표’로 다가가야 한다. 그렇기에 ‘질문을 잘하는 것’이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 일테다.
저자는 “정말 중요하고 근본적인 이야기는 복음이며, 우리 개인의 이야기와 공동체의 이야기는 복음의 이야기와 연결되어야”(104p)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의 지도자의 역할은 복음이야기와 공동체, 청소년의 이야기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신학적 영역), ‘공동체’(사회학적 영역), ‘청소년’(상담학적 영역)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이야기 청소년 신학’이며, 지금이 그것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일깨운다. 인류가 맞이할 4차산업혁명의 파도를 가늠하여 미래사회 변화에 따른 청소년 사역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고, 어떤 미래의 인재를 기를 것인가 등의 질문이 다루어지려면 청소년신학의 정립과 연구는 절실해 보인다.
‘크고 위대한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 우리는 어디에 위치해있는가?’ 지도자 자신이든, 청소년이든, 우리의 교회이든 동일한 이 질문 앞에 함께 고민하고 말씀으로 삶으로 씨름해 가야한다. 우리가 속한 큰 이야기가 무엇이며, 그 속에 청소년/청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 있으며, 앞으로 우리가 함께 써갈 이야기는 어떤 것인지를 안내하며 또 함께 그려갈 이들로 길러가는 데에 청소년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책이 그들에게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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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한 번도 교회에 다녀보거나 종교를 가진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혹은 그래서 일수도 있지만 종교, 특히 기독교에 관심이 많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보기에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왜 그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독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청소년 신학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는데 청소년을 성장하고 꿈꾸게 하는 근원적 질문이라는 표지문이 마음에 들어 선택하게 되었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에 청소년들이 성경을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를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방법에도 관심이 있었다.
역시나 종교인이 아니어서 그런지 끝까지 읽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나의 근원적 물음을 해결해주기에 조금 적절하지 않은 책을 선택한 것도 같다. 그렇지만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으로서의 기독교, 그 세계를 조금 경험해본 듯한 막연한 즐거움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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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 당연히 말할 대상이 필요하다. 대상은 하나님 앞에 선 허수아비가 아니다. 혼잣말이 아닌 이상 하나님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것도 잘 말하기 위해서!) 대상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또한 말(언어)은 시대, 즉 대상이 살고 있는 시간과 장소가 만들어낸 메신저다. 다시 말해 같은 단어라도 어떤 시대나 배경에 따라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신학이란 하나님 말씀을 오늘이라는 시대 속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는 과정이다. 하나님 말씀은 하늘에 있는 신령한(?) 언어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태초의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래서 지금, 여기가 중요하다. 드라마 <미생>에서 한석률이 대사가 떠오른다. 현장이지 말입니다! 그렇다. 현장 속에 계시는 하나님이지 말입니다!
근대의 특징은 다양한 제도(Institutions) 탄생이다. 병원, 학교, 군대가 대표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이러한 제도의 어벤저스다. 교회는 병원(치유), 학교(교육), 군대(훈련)의 요소를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교회는 충족할 수 있는 적절한 것을 제공했으며 그래서 부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 후기로 넘어오면서 교회는 시대 요구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제도가 발전하기 위해 선택한 효율성이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교회에 필요한 사람만 선택되고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인간 소외와 차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교회의 문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제도적인 교회는 어쩔 수 없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근대 후기의 대표적인 특징은 다양성이다. “우리는 하나!”라는 이름으로 강제 통일이 먹히던 시대가 물러가고 있다는 말이다. 선택과 집중으로 주목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목받지 못한 사람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를 넘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종교적인 언어를 넘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다양한 삶의 정황을 들여다보지 않고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폭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제는 단결을 외칠 때가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들의 공존과 공생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좀 더 말랑말랑해져야 하는데 여전히 딱딱하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잊혀지지만 이야기는 남는다.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각자 나름의 독특한 이야기도 있다. 강자의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신학은 하나님과 다양한 이야기와의 만남이다. 따라서 청소년신학은 청소년들의 다양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 결핍 또는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 즉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야기)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 정의, 평화다. 청소년의 다양한 이야기는 복음이라는 공동의 이야기와 버무려져 청소년신학이 되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우리는 좀 더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들이 가진 다양한 감수성에 제대로 반응할 수 있는 능숙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떻게 능숙할 수 있을까? 먼저 복음 이야기에 능숙해야 한다. 복음은 오늘, 여기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기쁜 소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의 본래 의미 찾기에만 혈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청소년들의 삶의 모든 방식,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이 능숙함의 완성이다. 물론 단순히 책 한두 권 읽고 청소년을 이해할 수는 없다. 청소년들의 행동 양식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 관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의 현장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누군가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상대의 민낯을 보는 일이기 때문에 신뢰 관계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친밀한 관계만큼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은 위험한 도전이다. 뭐든지 함께 있으면서 물들지 않고 경계하거나 갑질하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90년생이 온다』에서 말하듯이 이들은 기성세대를 꼰대로 바라본다. 00년생이라고 다를까. 사실 누구나 꼰대가 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나도 언젠가 꼰대가 될 수밖에 없음을, 꼰대가 되었을 때 스스로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됨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며 훈수 두는 꼰대, 말은 번지르르 하지만 행동과 거리가 먼 진정성 없는 꼰대. 적어도 이 두 꼰대는 피하자. 이런 의미에서 청소년신학은 꼰대의 자기 성찰 고백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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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신학은 성경과 신학에서 다음세대와 그들의 삶을 해석하는 원리를 갖고 현재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 개인의 삶을 해석하는 학문입니다"(37).
요즘 청소년들을 보면 '과잉'과 '극단'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넘치는 것 같은데 내면은 공허하고, 모든 것이 넉넉해 보이는데 그럴수록 내면은 더 강한 갈증에 시달리며 만족을 찾아 헤맵니다. 다양한 선택지는 오히려 열정을 갉아먹고, 배우는 것도 많고 원하는 것도 많은데 또 현실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갇혀 본인의 처지를 뛰어넘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문제가 심각해 보입니다.
게다가 영적으로 위기를 맞이하고 있어, 많은 교회가 청소년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탄식합니다. 이미 교회 안에서 다음세대는 '미전도종족'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보고도 들었습니다. 세상 가치관과 문화적인 영향력 아래 교회의 전도가 맥을 못추고 있는 이때, 우리에게 <이야기 청소년 신학>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이야기합니다.
<이야기 청소년 신학>은 "실천신학가 마찬가지로 신학의 원리에서 현재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문화와 그들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문"입니다(36). 다시 말해 "실천신학처럼 신학에서 찾은 성경적 원리를 통해 청소년을 해석"하는데, 청소년을 해석한다는 것은 "현재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 개인의 삶"의 영역을 포함합니다.
<이야기 청소년 신학>은 청소년지도자는 3가지를 해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성경, 문화, 자아입니다. 여기서 문화를 해석한다는 것은 청소년이 살아가는 세계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교회교육이라고 하면 보통 '복음'이라고 하는 성경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것으로만 인식하기 쉬운데, <이야기 청소년 신학>은 복음을 '제대로' 전한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보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지도자나 교사는 청소년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을 넣어 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에 적절한 방식이 아닙니다. 21세기는 이야기의 시대입니다. 어떤 논리도 이야기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야기는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입니다. 청소년의 이야기와 공동체의 이야기를, 공동체의 이야기와 복음의 이야기를 연결해 청소년의 이야기와 하나님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이 청소년지도자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입니다"(97).
<이야기 청소년 신학>에서 강조하는 것 한 가지는 현실과 단절된 신학은 피상적인 사역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보통 아이들과 소통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사역자들이 커뮤니케이션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데 주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예인을 흉내 내는 청소년 지도자도 있다고 이 책은 꼽집습니다. <이야기 청소년 신학>은 전인적인 사역을 강조하는데, 전인적인 사역이라 함은 한 사람이 속해 있는 사회와 문화, 제도를 한꺼번에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 청소년신학>의 메시지는, 성경만 해석할 게 아니라, 문화와 자아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성경 해석은 문화와 자아의 해석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미세한 차이이지만,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청소년 사역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갈림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영어로 'passion'이라는 단어도 있지만 'enthusiasm'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enthusiasm'은 신(theos) 안에(en)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열정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열정은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열정에서 옵니다"(219).
쾌락이 넘쳐나는 시대 많은 청소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중 하나는 열정적인 일이라고 이 책은 일깨웁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인생을 모두 걸어도 아깝지 않을 열정적인 일을 찾고 싶어하는데, '거짓 열정에서 자유케 하라'는 이 책의 메시지가 뜨겁게 와닿았습니다. 게임, 쇼핑, 알콜, 성취는 거짓 열정이라는 것입니다(217-220). 진정한 열정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다음세대를 잃어가는 지금 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향후 10년이 한국교회의 골든타임이라고 말합니다. 다음세대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 앞에 순종하며 이제 개척 2년째를 맞고 있는 우리 교회에도 아직 청소년부가 없습니다. 세대별로 보면, 청소년부만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야기 청소년신학>이 다음세대를 복음 안에서 세워가는 강력한 돌파구가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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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잠깐 교회를 다녀본 사람으로서 청소년신학이라는 책이 가진 의미를 끌어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따. 청소년신학이라는 용어를 특별히 들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간단히 말해서 현 시대의 청소년들을 성경을 통해서 이해하고 적절히 지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찌보면 좀 막연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현 시대는 변화가 크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정말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진리라하는 성경을 통해서 아이들을 본다는 것이 어찌 간단히 해결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고 종교를 무조건적인 진리를 강조하는 것을 비판한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이러한 접근이 의미가 있다는 점에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오래 기간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을 성경의 시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아무래도 자신의 삶과 함께한 관점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이 든다. 세상은 변화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를 해석하는 방법 역시 완벽한 방법, 한가지의 방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가진 진정한 진리를 통해서 이 세상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면 의미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종교가 본래의 목적에 맞게 이 세상을 구원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이 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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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야기 청소년신학
딘 보그먼 / 마 상 욱 지음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을 향해 ‘넌 늙어봤니? 난 젊어봤단다.’라는 말을 통해, 나이 드신 분들은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있지만, 젊은이들은 나이 드신 분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하곤 한다. 정말 그럴까? 물론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 역시 젊은 시절을 지냈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노라 말할 수 있을까? 살아왔던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여긴다.
책 제목이 생소한 ‘이야기 청소년신학’이다. 신학에 청소년신학이라는 분야가 있을까? 물론, 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뉠 수 있음은 익히 알고 있지만, 청소년신학이라니, 그것도 이야기 청소년신학. 이 책의 저자는 청소년들을 위한 신학이 별도로 필요하다고 하였다. 저자는, 청소년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다. 때문에 사회의 변화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저자는 P. 36에서 청소년신학을 이렇게 저의하고 있다. “청소년신학은 실천신학과 마찬가지로 신학의 원리에서 현재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문화와 그들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문이다. 실천신학처럼 신학에서 찾은 성경적 원리를 통해 청소년을 해석해야 한다. 즉 청소년신학은 성경과 신학에서 다음세대와 그들의 삶을 해석하는 원리를 갖고 현재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 개인의 삶을 해석하는 학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청소년사역은 ‘그들에게 죽음을 기억하게 하라(Memento mori)’에서 시작한다(P. 37)고 하였다. 이 책의 구성은, ‘청소년신학이 필요하다, 청소년지도자가 해석해야 할 3가지, 문화를 해석하는 틀, 자아를 해석하는 틀 생태계 알아야 청소년이 보인다, 인격과 성애 대한 접근, 디지털 세대와 소비중심사회, 예수 중심의 청소년사역’과 같은 8개의 Part로 구성되어 있고, 각 Prat 마다 3 ~ 4개의 소분류로 나뉘어져 있어 총 25가지의 소분류로 구성되어 있다. 역시 마지막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와 청소년이라는 부분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청소년사역의 방향을 세 가지로 구분하여, 첫째, 공간의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교회 밖의 다양한 지역사회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개척해야 하며, 교회학교는 청소년들의 성장을 위해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하였다. 둘째, 청소년지도자의 역할이 변해야 하는데, 교사의 위치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동반자적인 위치로 돌아와야 한다고 합니다. 셋째, 청소년의 지도방식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주입식 교육에서 청소년 스스로 찾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각 Part의 끝 부분마다 Episode를 수록하므로 실용적 설명의 부분을 추가한 느낌을 갖도록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변화를 외친 내용에서, 매우 형식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사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를 외친 것은 이미 오래전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외치며 그에 걸 맞는 교육과 삶을 외치고 있지만 딱히 4차 산업혁명에 맞지 않는 옷과 같은 방법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는 지금까지의 변화와는 전혀 다른 변화이기에 지금까지의 생각과는 상상할 수 없는 기하급수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 미리 대처할 수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3차 산업 혁명적 사고를 가지고 변화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오히려 안 한 것만 못하다 여겨진다. 지난 날, 경제적 부요함과, 삶의 질이 높아지면 종교의 인구가 줄어든다, 교인들의 수가 줄어든다는 연구가 있었다. 실제로 주 5일제 근무가 시작되면서 신앙생활의 패턴도 변화 된지 오래다. 주일 오전과 저녁에 모두 참석하여 드리던 예배가, 이제 몇 부씩이나 되는 예배 시간들 중 한 번만 참석하는 것으로 예배에 참석하였다는 식으로 바뀐 것이 이미 오래전이다. 물론, 대형교회들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이런 문화의 변화보다 상상할 수 없는 변화일 것이다. 인공지능과 함께 동거하는 시대, 사람들의 손발의 움직임으로 조작되던 많은 기계들이 다양한 형태를 통해 조작되는 기계들로 바뀌는 시대. 사람들의 생각까지도 인지하여 활용하려는 시대. 과학의 발전으로 마치 사람들이 창조주요 전능자이신 하나님과 같이 전지전능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사실 이러한 부분이 조금은 부족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야기 청소년신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생각했다는 것에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