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에 계획한 동양철학 개념 정리의 마지막 편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꼭 필요한 사상일 것 같기도 합니다.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을 쓰신 박문현교수님이 들어가는 글에서 인용하고 있는 『묵자』「겸애중」편의 글 가운데 마지막 구절을 인용합니다. “세상의 재앙과 찬탈과 억울함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은 겸애(兼愛)를 찬미한다.(3쪽)” 그리고 보면 춘추전국시대에 백가쟁명이라고 했다던가요? 정말 대단하신 분들의 대단하신 사상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을 보면 영재들이 비슷한 시기에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 영향을 미쳐 상승작용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묵자는 기원전 450년부터 390년 사이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묵자는 공자와 맹자 사이에 활약한 사상가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묵자는 공자의 사상을 공부했지만 점차 유가의 학설에 동의할 수 없게 된 다음 스스로의 학설을 세워 체계화하여 묵가를 창시하게 되었는데, 그의 문도들은 대부분 수공업에 종사하는 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묵자의 사상은 사회정치사상, 철학사상, 도덕관념 뿐만 아니라 과학이론과 기술방법 등을 포괄하고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는 것입니다. 묵자를 사상가이자, 논리학자이면서도 군사전문가였다고 정의하는 것을 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때 묵가는 유가와 함께 중국을 이끄는 2대 학파로 활동하였지만, 200여년 간의 번영기를 거쳐서 중국의 사상사에서 자취를 감추는 미스터리한 행적을 보였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는 최근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야기되는 빈부격차와 민족갈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묵자의 겸애사상을 중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서 묵가가 유가의 이념을 비판했다고 했는데, 그 가운데 나라를 망칠만한 4가지 정책으로는 첫째, 하늘과 귀신의 존재와 작용을 믿지 않는 것. 둘째, 장례를 후하게 하고, 상기(喪期)를 오래 하는 것. 셋째,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음악을 즐기는 것. 넷째, 운명이 있다고 믿는 것 등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가의 문제점이라고 하는 이런 것들이 정도의 문제이지 사람이 살아가면서 전혀 불필요한 일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묵자는 하늘을 공경하고 따르는 곳에 최고의 도덕이 있다고 하였고,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 하늘의 뜻(天志)에 따라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겸애는 천지에 바탕을 두면서도 인간의 사회적 요청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국가와 백성의 뜻에도 맞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묵자의 겸애는 보편적이고 평등한 사랑으로 이(利)를 포함한다고 하였습니다. 겸애의 실천이 어렵다는 주장에 대하여 사회지도층부터 솔선한다면 겸애를 실천하는 일이 어려울 것이 없다고 설득하였다고 합니다. 묵자는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일은 의롭지 못하고 이익이 없는 일이라고 하였으나,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였는데, 구는 국민개병제를 채택하여 노소의 남자와 20세 안팎의 여자들을 병역에 복무하게 하였는데, 여자들도 병역을 부담하게 한 것은 평등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제시한 상현론(尙賢論)은 현인에 의한 정치를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담고 있는데, 이는 현대의 조직관리 지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묵자의 경제사상 가운데 생산, 교역, 분배, 소비의 네 가지 분야가 고루 다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소비에 있어서 절약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당시 끊이지 않은 전쟁으로 어려운 경제상황 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지도층의 사치와 낭비가 극에 이르러 사회의 조화가 무너질 지경임을 고려하여 나온 것이지, 인간의 욕구를 근본적으로 눌러야 한다는의미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궁극적으로 생산을 증가시켜 부유하게 하는 것과 인구를 늘리는 것, 혼란스러움을 다스려 안정되게 하는 것, 세 가지는 국가와 천하를 이롭게 하는 삼리(三利)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오늘날에 있어서도 국가경영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들이라 하겠습니다. |
|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다보니, 큰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하지만 철학에 대한 책을 읽다 보니, 철학은 삶의 중심을 갖게 해주는 정신적 학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사실 본래 철학이 추구했던 것도 그러한 것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함께 잘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삶의 중심에 둘 수 있는 바른 정신을 정의해 주고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 철학은 우리의 삶을 그리고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귀한 가르침이 담긴 정신적 학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하나의 학문이 되어 삶에 필요한 정신이 아닌 시험에 필요한 공부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철학은 어느 순간 어렵고 하기 싫은 것이 되어 시험이 아니면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학문이 되었고, 삶에서 먼 학문이 되었다. 사실 나 역시도 그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고 말이다.
하지만 철학은 학문이 아닌 삶의 진리가 담긴 바른 정신이었다. 사람들이 각자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각자 생각하는 삶의 진리를 스스로 찾아 가슴에 새기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철학이 대단한 것은 자기 자신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찾는 삶의 진리를 정의 내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 시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 진리를 적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철학에서 말하는 삶의 진리를 그대로 자신의 삶에 적용시켜 삶의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자신 있게 알리는 사람 역시 없고 말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미 현대의 최고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을 텐데 말이다.
특히 묵자의 철학이 설명된 이 책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어떻게 그 옛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삶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그토록 노력할 수 있었을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삶의 진리를 찾았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행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 옛날에도 그를 작은 예수라 부르는 이가 있지 않았을까. 정말 쉽고 간단한 것들도 머리로는 알지만 지키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묵자라는 사람도 이 책을 읽으면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는 알수록 대단하게 느껴졌고, 현대에 그와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질 정도였다. 우리 시대에 성인이 없는 것인지, 찾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도 그런 이를 알아보는 이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묵자가 살았던 그 시대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통치자들이 사람을 쓸 때 능력보다는 측근을 발탁해 일을 맡기고, 자신의 능력은 생각하지 않고 일을 맡으려 하며, 능력보다는 부귀해진 자들과 가까이 하며 득을 보려하려 했다고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시대와 관계없이 그 옛날부터 그런 이들이 꾸준히 있어 왔던 것을 생각한다면, 사람도 동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살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저 인간이기에 동물적 본능을 자제하기 위해 노력할 뿐 말이다. 요즘 빈부격차가 심해졌다고는 하나 그 옛날 왕이 있던 시절의 신분제 사회를 생각하면 지금은 그나마 그때보다는 낫다고 여겨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 사회에서 삶의 격차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싶기도 했다. 그 옛날에도 지금도 절대적인 부는 극소수에 편중되어 계속 대물림 되고 있으니 말이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가 현대판 신분사회라는 것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바른 철학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이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정신만 바로 서 있다면 어떤 사회라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행복해 하는 세상이 될 테니 말이다. 누구보다 바른 정신을 갖고 자신에게 엄격해야 할 사람은 가진 사람이지만, 대부분의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고 하지 그것을 나누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바른 철학을 지키고 알려야 할 이는 갖지 못한 자들의 몫이었다.
- 연필과 지우개 - |
|
“하늘의 뜻에 따라 더불어 사랑하고 서로 이익을 나누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받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서로 미워하고 해치는 사람은 벌을 받게 된다.” - 『묵자』 「天志上」 中
제자백가 가운데 유교와 함께 주류학파였던 ‘묵가’의 시조 ‘묵자’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묵자(와 계승자들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알려진)의 저서 『묵자』에 대한 소개와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 · 제시한 책이다. 제자백가 사상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살림지식총서 시리즈 중에서 『맹자 : 이익에 반대한 경세가』, 『순자 : 하나, 둘, 셋의 비밀』, 『한비자 : 바른 법치의 시작』, 『노자 : 도와 덕이 실현된 삶』, 『장자 : 진리를 찾아가는 길』에 이어 여섯 번째로 선택하여 독서했다.
공자와 맹자 사이, 전국시대 초기에 활동했던 묵자가 처음엔 유학을 공부했으나, 예(禮)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 반감을 가지고 묵가를 창시하여, 당시의 사회 혼란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려 했는지, 묵자 고유의 특징은 무엇인지 개략적으로 – 그러나 이전보다는 구체적으로 – 학습했다. 윤리교육 전공자인 나는, 존비친소(尊卑親疏)에 근거한 사랑인 공자의 인(仁)과 무차별 사랑을 뜻하는 묵자의 겸애(兼愛) 간의 차이점, 묵자의 겸애는 부모 자식 간의 천륜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던 맹자의 주장, 실질적 이익을 중시하는 공리주의적 성향(예를 들어 유교의 ‘예악(禮樂)’ 강조에 대한 비판)과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적 성향을 동시에 지닌 묵가에 대한 기본적인 선행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귀족적이고 다분히 보수적 성격을 띠는 유가와 달리, 철저히 민중 지향적이고 친(親)서민적인 묵가학파가 한 때 부흥하다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라지게 된 이유, 백성의 이익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증진할 것인지에 관한 『묵자』의 내용, 하늘과 귀신의 존재를 (유교보다 더) 강조하면서도 제사를 지내는 행위가 왜 유용한지, 왜 운명론을 부정하는 것과 모순되지는 않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유가, 도가, 법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묵가 사상도 당시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고, 사랑의 정신과 과학기술 발전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진정한 ‘위민(爲民)’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묵자’ 재평가의 정당성을, 묵자 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묵자 전문가인 저자를 통해 얻었다. 이번에 독서한 『묵자 : 사랑과 평화의 철학』를 포함해서 여러 제자백가들의 특징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살펴보면서, 제자백가들 사이에서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 공통점과 차이점, 쇠퇴 이유와 오늘 날까지 주는 교훈 등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졌다. 저마다 생각은 달랐지만, 지독히도 혼란스러운 시기에 (현대 사회에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학문적 르네상스를 이루었던 당대의 사상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
|
'묵자'는 '공자', '맹자'처럼 친숙하지 않다. 그와 관련해서는 전혀 듣지도 알지도 못했다. 이런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살림지식총서를 통해 그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그 어떤 사상가보다 사랑을 강조하고 직접 실천해온 묵자. 그의 행보는 놀라웠지만, "겸애가 좋은 이론이기는 하나 도무지 실천할 수는 없는 것'이라 비판했다는 당시의 지식인들처럼 나도 그의 이론이 실천가능한 것이라 보이지 않는다. 남을 배려하고, 나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묵자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강조를 한다. 물론 마음먹으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 마음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현대사회처럼 특히나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는 때엔 더 힘들지 않겠는가! 나 자신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말이다. 묵자는 전쟁과 찬탈, 도둑질로 서로 뺏고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권력이나 부, 지식을 가진 계층이 그렇지 못한 계층을 억누르고 기만하며 귀족 계층이 비천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것까지 모두 세상을 크게 해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개인이나 사회, 국가의 각 계층이 각기 자기 자신이나 그들이 소속된 집단 및 계층만 아끼고 사랑하고 이롭게 하려할뿐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 다른 계층은 차별해 멸시하거나 해치려는 이기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겸애'의 사상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 P. 24 겸애의 대상은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은 '모든 사람'이다. 묵자의 겸애가 가진 이상은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음이 없고, 인간 모두를 두루 보편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 P. 26 묵자가 강조하는 사랑은 맹자가 강조한 '인의'와 닮아있었다. 둘다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 실제로 정치가들이 먼저 이렇게 실천해준다면 더할나위 없을터였다. 정말 국민을 위한, 사람을 위한 정치를 펼치고, 나라를 위한다면.. 그렇다면 사람들도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을 베풀 것이고 결국엔 지금처럼 경제가 아무리 힘든때가 있더라도 불행보다 행복한 감정을 더 많이 느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참.. 씁쓸하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란.. 이렇게나 거리감이 크다. 유자들은 예악을 번거롭게 꾸며 사람들을 음탕하고 어지럽게 하고, 오랜 상기 동안 거짓 슬퍼함으로써 부모를 속인다. 운명을 믿어 가난에 빠져 있으면서도 고상한 척하고, 잘난 체하고, 근본을 어기고 할 일은 버리고서 태만하게 편안히 지내며, 먹고 마시기를 탐하면서 일을 하는 것은 게으르다. 그래서 굶주림과 헐벗음에 빠지고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위험에 놓여 있으면서도 이를 벗어날 수가 없다. - P. 18 유가는 예악을 중시해 당연히 복장이나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묵자는 하는 일을 중시해 형식주의를 배척한다. 따라서 군자가 되고 안 됨에 있어 복장이나 언어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뚜렷한 근거도 없는 유가의 형식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 P. 19 이상에서 묵자는 유가의 공리적인 면이 부족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유가가 도덕적인 예와 악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면, 경험적인 지식은 경시하는 태도, 즉 이지적 태도의 결핍을 지적하고 비판한다. 또 유가는 이상을 설정해놓기는 했지만 그 이상에 접근하는 방법에는 비교적 소홀하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묵자는 이지적이고 진보적인 실용주의 원칙에 입각해 유가를 비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P. 21 순자가 묵자의 사상을 '실용이 으뜸'이라 불렀고, 후스는 '실리주의'라 말했고, 중국의 현대철학자 '펑유란'은 '공리주의 : 실제 감각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사물을 도덕 가치로 인정하며, 아울러 그것을 생활목적으로 하는 학설'라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묵자의 사상은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한 예로, 당시 통치자들과 귀족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장례절차를 비판하며 검약을 주장했고, 끊임없는 전쟁으로 경제사정이 어려움에도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통치자들을 비판하며 절약을 강조했다. 모두 쓸데없는 비용을 모두 다른 이들을 위해 사용케 하려는 의미가 있었지만, 이 주장 역시 쉬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묵자는 꿋꿋하게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려 노력했고, 그 자신도 발벗고 나서 죽을 때까지 다른 이를 위한 삶을 살았다. 그의 '사람에 대한 사랑'은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오랜 빛을 받지 못했다가 최근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의 사상 '겸애'가 사람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 박문현 “중국의 사상가인 량치차오(梁啓超)는 묵자를 가리켜 ‘큰 마르크스요, 작은 예수’라고 했으며 마오쩌둥(毛澤東)은 ‘묵자는 노동자였지만 공자보다 더 훌륭한 성인이었으며, 인문학과 과학기술에 모두 능통한 백과전서식의 평민 성인’이라고 했다.” - <본문 4쪽> ‘묵자(기원전 450~390, 저자 추정)’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묵가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본명은 ‘묵적(墨翟)’이며 '노나라 등(勝)'-저자 추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애'라는 사회윤리로 기층 민중에 대한 분배를 주장하고, 근로와 과학기술의 중시 및 인구증대로 경제성장을 꿈꾸었다.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였으나 굳이 순서를 말하자면 분배가 우선이기에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필자는 말한다. 필자는 부산대, 영남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묵자의 경세사상연구>로 동국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음. 동경대 방문교수와 연변과기대 객원교수를 지냄. 동의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동의대 명예교수,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회장. 저서로 『墨子硏究』『東洋環境思想の現代的意義』(공저)와 역서로 『묵자』『氣사상의 비교연구』『법세이야기』(공역) 등이 있다 ‘유가(儒家)’의 ‘비생산적인 성격’, ‘형식주의’, 창작하지 않고 옛것만 계승하는 ‘술이부작(述而不作)’, ‘수동적 태도’를 비판한 ‘묵자’는 ‘겸상애 교상리(兼相愛 交相利)’로 표현되는 ‘보편적 평등적 사랑’인 ‘겸애(兼愛)’와 ‘이익’ 즉, ‘공리(公利)’를 주장한다. 또한 나라를 지키기 위한 자위의 전쟁은 반대하지 않는 상대적인 전쟁폐지론인 ‘비공(非攻)’을 주장한다. 침략전쟁은 의롭지 않으며, 아무 이익이 없음을 그 이유로 삼는다. 그리고 여자들도 병역에 복무하는 ‘전 국민 개병제(皆兵制)’를 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묵자는 그의 주장이 ‘쉽게 실천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종교적 제재를 설정하고 겸애를 독려했다.’ ‘하늘’을 ‘상선벌악(賞善罰惡)’의 의지를 가진 ‘인격신’으로 보고, 그 하늘의 의지인 ‘천지(天志)’를 묵학 최고의 가치규범으로 삼았으며, ‘통치계급’을 위협하기 위해서 ‘귀신은 인간을 감시한다.’는 ‘명귀(明鬼)’와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라는 ‘비명(非命)’을 제시한다. 그리고 귀족정치 타파하기 위하여 ‘군주가 정치함에 있어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갖추고 군주의 정책을 실행’하는 ‘현인(賢人)’에 의해 정치를 구현하는 ‘상현론(上賢論)’과 ‘윗사람과 뜻을 같이한다.’는 ‘상동(上同)’을 제시한다. 계급의 구분 없이 능력 있는 사람을 관료로 등용하는 ‘이상적인 인사제도의 확립’과 ‘일사불란한 정치조직’, 그리고 ‘상하 소통의 정치’를 통해 ‘국가부흥’을 꾀한다. 과학기술에도 많은 업적을 남긴 ‘묵학(墨學)’은 중국 고대에서 유학과 함께 ‘양대 학파’로 불린 주류학파였으나 20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유행하다 사라진다. 이후 서양사상과 과학 기술의 유입으로 청대에 이르러서야 재조명되고, 현대에 들어와 개혁개방으로 인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여 오늘에 이른다. 필자의 말처럼, “맹자에 의해 ‘애비도 모르는 금수와 같은 존재’로 비판”당한 뒤, “유학이 중심인 조선조 5백 년 동안 연구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던” ‘묵자’의 뛰어난 ‘과학기술’과 ‘분배를 우선시 하는 진보적인 주장’이 오늘날 주목받고 있다. ‘공맹’의 그늘에 가려있던 ‘묵자’의 진면목을 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
인문을 읽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면서 정작 내 자신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살림지식총서의 동양고전 시리즈들을 만났는데,
어릴적 친구들이 장난스레 입에 올렸던 독특한 이름만 기억날 뿐.... 묵자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뒤늦게나마 인물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빼어든 책이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이란 책이다.
묵자 그는 누구인가? 묵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 년 전인 중국 고대에 공자와 함께 ‘2대 사상가’로 평가 받았던 인물이라고
한다. 묵자는 성이 묵이고 이름은 적이라는 인물이다. 기원전 480~ 420년경의 사람이라도 소개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양철학의 대표적인 인물중 시대순으로 나열한다면,
공자, 묵자, 맹자, 장자의 순으로 소개할 수 있다.
유명한 철학자 중에서 묵자는 사상가이면서 논리학자였으며 군사 전문가라고 한다. 묵자는 뛰어난 과학기술자로 군사무기를 발명하기도 했었던 인물이라니... 내용을 접할수록 특별한 매력에 빠져듦을 알 수 있다. 중국 과학사의 권위자인 영국의 조셉 니담이 「묵자」를 읽고 감동받아 중국 과학사를 연구하게 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고
전한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길을 오고갈 때마다 출마하시는 분들이 명함을 불쑥 내미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식당에서 지인과 밥을 먹는데도 느닷없이 내미는 명함을 보며 마음 한켠에 불편함이 밀려온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던데....
그리고 이런 생각에 잠시 머물렀었다. 우리나라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를 원하는 분들이 좀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휴전의 상황인 우리나라에는 군사적으로도 넓은 해안을 가진 분들이 정치 일선에 서야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묵자는 다방면적으로 뛰어난 인물임을 알 수 있었고 더욱 특별하게 뇌리에 새겨진 바가 바로 군사전문가로서도
특출나고, 인재 등용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이론을 주장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조선 오백년 역사에 빛나는 우리나라가 묵자라는 사람의 이론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조선조 5백년 동안 지배적이었던 유학의 영향이 묵자를 반영하지 않았던 이유임을 발견했다. 서기 21세기를 살아가면서도 느끼는 불편함이 사회적 편견과 좋은 조건을 요구하는 등용에 관한 부분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과연 그러한지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사회가 아무리 변했다고는 하지만, 사회 곳곳에 깊숙하게 뿌리박은 견해는 쉽게 바꿀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생소한 인물인데 극찬이 따라다니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중국의 사상가인 량치차오는 묵자를 가리켜 "큰 마르크스요, 작은 예수"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마오쩌뚱은 "묵자는 노동자였지만 공자보다 더 훌륭한 성인이었으며, 인문학과 과학기술에 능통한 백과전서식의 평민
성인"이라고 했다니 실로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수 없다.
묵자는 겸애의 정신이 국가와 인민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고 역설했으나 그 실천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종교적 재재를 설정하고 겸애를 독려했다. -p. 42
그렇다고 묵자를 종교적으로 추앙을 받을만한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은 아니다. 묵자는 귀신을 믿었다. 귀신의 존재를 믿었고, 당시 사람들에게는 윈시종교적인 관념이 인문화 되어 민중들의 마음속엔 남아있다는 것이다. 묵자의 하늘과 귀신에 대한 생각을 당시 민중들이 가진 종교 심리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본문 42쪽
참조>가 소개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수 없는 부분은 역시 종교적인 심리가 반영되는 것 같다. 정의 사회를 바라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니 매우 흥미롭다. 묵자에 의하면 하늘은 의롭기를 바라고 의롭지 못한 것을 싫어한다고 표현했다.
묵자의 전체 사상의 기준인 하늘의 본질과 특성을 소개한다.
귀신은 인간을 감시한다.
-P. 54
묵자가 이같이 귀신을 내새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통치계급을 위협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동양에서 특히 제사를 중시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연장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음악을 낭비라고 여긴 부분이나, 장례의 간소화 등등 현대 우리의 사회모습과 비교가 되는 부분들이
인상적이다. 최소한의 소비를 주장하고 경제 안정을 도모한 부분이라든지... 인재 등용면에서도 능력 위주의 사람을 뽑아야 함을 강조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묵자가 말하는 현인이란 군주가 정치를 함에 있어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갖추고 군주의
정책을 행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p. 63
묵자가 우리와 생존하는 시기는 다르지만, 국가의 이상적인 모습을 추구하고 국민의 안정을 꾀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들이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
|
묵자라는 학자의 이름을 들어 본 이가 많을까? 난 도덕 시간에 딱 한 줄로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중 묵자는 겸애사상을 주장했다고만 배웠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에서는 증발해버린 사상가였다. 이번에 살림지식총서 <<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을 보니 '어, 이런 혁명적 사상가가 묻히다니... 뭔가 있었네'하는 생각이 든다. 기득권 세력에게는 이 묵자의 사상이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예수가 그랬듯이. 그 둘은 서로 닮은 지점이 있다. 묵자는 맹자에 의해 '애비도 모르는 금수같은 존재'로 비난받은 바 있다. 그것으로 그의 출신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묵자는 기원전 479년에 태어나 기원전 381년에 죽었다고도 하고 기원전 480년에 태어나 기원전 420년에 죽었다고도 한다. 공자의 사상을 공부했으나 점차 유가의 학설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자기의 학설을 세우며 학파를 결성하고 공개적으로 유가를 비판했다. 그의 문도들은 주로 수공업자가 많았다고 하는데, 진한시대에 이르러 그의 학파는 자취를 감추고 2천 년 동안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가 청대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 묵자의 유가에 대한 비판은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부분이 많다. 특히 유가의 예가 너무 번잡하여 과소비를 한다는 부분에는 지금도 여전한 남의 눈치 때문에 벌어지는 '과소비'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묵자의 사상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차별 없는 사랑을 주장한 것과 침략 전쟁을 반대한 것이다. 혼란의 원인을 차별적인 사랑으로 보고 겸애(兼愛) 즉, 보편적이고 평등한 사랑을 주장했다. 이런 묵자의 사상을 보면 그 당시나 지금이나 너무 혁명적이어서 반대한 세력이 많았을 것이다. 또한 "생각은 좋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하면서 치켜세우고만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치켜세우고 이용하고 버리는 이론들이 너무 많다. 묵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세상이 좋은 것이라 하면서 실천이 안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
|
묵자 - 사랑과 평화의 철학 묵자의 사상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렇다고 다른 동양철학, 특히 중국철학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다. 서양철학에 대해서는 공부를 하면서 동양철학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 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서구화된 생활이어서 그럴까? 입고 먹고 즐기는 모든 것이 동양에서 기인하지 않고 서양의 문물을 따르니 그런 것도 있을 터이지만, 내가 스스로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다. 서양의 철학은 증명이란 생각이 든다. 'A는 B이다.'를 증명하는 것이 서양철학이라면 동양철학은 'A가 왜 A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현대는 물질로 계량화 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과학이라고 일컫는 학문은 모든 것을 숫자로 계량화한다. 계량화는 곧 숫자이다. 수학이라는 학문의 태생도 그렇고. 책에서는 묵자를 이렇게 보았다. "묵자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복지사회로 가기 위한 '겸애론', 현실적인 전쟁을 막기 위한 '비공론'을 내놓고 그 이론을 실천한 평화사상가였다."고 묵자의 사상을 풀이했다. 묵자가 태어난 전국시대는 전쟁이 만연한 시기였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시대에 평화를 원했음은 당연했을 것이다. 묵자는 전쟁을 나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침략전쟁을 말하는 것이지 수비를 하는 방어는 인정을 했다. 만약 침략에 대한 방어까지 나쁜 것이라고 한다면 어땠을까? 생각으로만 본다면 이런 성인이 또 있을까 싶지만, 주위 사람이 죽어가는 현실에서는 그리 녹녹치 않은 사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묵자의 사상은 당시 시대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철학에서 천(天)의 의미는 복잡하다고 한다. "중국의 근대사상가인 량치차오는 옛 사람들이 말하는 천을 네 가지로 나누었다. 그것은 형체(形體)의 천, 주재(主宰)의 천, 운명의 천 그리고 의리(義理)의 천"인데 묵자의 천은 주재의 천이라고 한다. 주재의 천은 의지를 가진 이격신으로 서양의 하느님과 비슷하다고 한다. 묵학의 중심사상은 겸애이다. 겸애는 하늘의 의지를 두고 있어 천지가 묵학의 최고 규범이 된다고 했다. 묵자의 시대는 봉건제도가 붕괴되는 시기였다. 귀족정치가 없어지지 않자 묵자는 상현론을 내세웠다. 상현론(尙賢論)은 능력위주의 선발이다. 이는 어느 국가나 시대나 마찬가지 것 같다. 귀족정치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신분이 아닌 능력위주의 사회가 되어야 하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묵자 사후 묵학은 쇠퇴하고 만다. 우린 흔히 '난세에 영웅이 출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영웅은 난세를 평정하고 집권자가 된다. 또 다른 지배자가 나타나는 것이지 이 난세의 영웅은 모든 사람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재자를 의미하진 않기 때문이다. 묵자란 사상가를 알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런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