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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성격이 모호한 듯합니다. 제목을 보면 여행에세이인 듯하지만, 막상 읽다보면 여행기를 적은 책을 읽은 느낌을 적은 북칼럼집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행자의 서재’라는 제목이나 ‘길에서도 쉬지 않는 책읽기’라는 부제가 적절한가 싶습니다. ‘책을 따라 떠나는 여행기’ 정도가 안성맞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저도 요즘 여행기 읽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 책 또한 그런 이유로 읽게 된 것입니다. 오래전 메모해두었던 북미 여행기록을 바탕으로 유기(遊記)를 써보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여행기에 탐닉한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지금-이곳을 넘어서고자 하는 열망이 저를 여행기로 이끈 듯합니다. 짐 챙기는 사람이 그러하듯, 책장을 넘기며 저는 중력의 법칙에 묶여 있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상상하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24권의 여행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들을 네 개의 영역으로 분류했습니다. 그 영역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영역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1장 국경을 빠져나오자 여행이 시작됐다, 2장 걷는 길 위에 고독과 행복이 동시에 있다, 3장 사람들 속에서 내 청춘의 길을 찾다, 4장 장막을 걷어라, 창문을 열어라, 등입니다. 제목이 문학적이라고 해야 할지 현학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4권의 책 가운데 제가 읽어본 책은 3권에 불과해서 저자의 생각과 저의 느낌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은 아쉽습니다만, 좋은 책을 소개받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윤여일의 <여행의 사고 셋>입니다. 기왕의 여행기에서 볼 수 있는 틀에 박힌 형식을 버리고, 여행의 본질이 무엇인지, 타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윤리 감각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지 끊임없이 사유할 거리들을 독자들에게 던지는 방식으로 적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자의 서재>의 저자는 윤여일이 <여행의 사고 셋>에서 적고 있는 번역에 관한 생각을 인용하면서, 번역을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한 여행론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행을 하면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겪고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 무엇인가를 언어로 옮기는 일은 상당히 지난하고 위험하다. 자칫 여행기가 감상의 범람으로 넘치고 마는 일이 벌어진다. 진짜 여행기는 ‘금욕’의 수사학이어야 한다. 함부로 말하지 않되, 그곳의 활력을 전하는 글은 쓰기 어렵다 더욱이 해석하는 대목에서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번역만큼 어려운 것이 여행기 쓰기란 말이다.(37쪽)” 이권우와 윤여일의 여행기에 대한 정의를 읽고 나서는 유기를 써보겠다는 생각을 크게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마다의 느낌이 다르고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도 다르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것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http://blog.yes24.com/document/7199988>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으면서 느낀 점입니다. 물론 읽으면서 동의하기 어려운 경우도 만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오소희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에 대한 글에서 저자는 어리다 못해 돌이나 지났을까 싶은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하는 외국인을 보면서 그들의 여행태도를 높이 평가했다는 누군가의 글을 인용하면서 어렸을 때 두루 보고 듣게 해주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아이가 살아가는 데 큰 자양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쓰려고 하는 유기에 등장하게 될 우리 아이들은 저와 함께 여행을 할 무렵에 초등학교 저학년, 그리고 네 살 정도 되었는데, 두 아이 모두 북미대륙을 종단하고, 횡단한 여행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소희는 세 살 박이와 단 둘이서 터키를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초등학교의 고학년은 되어야 보고 들은 것에 대한 기억을 분명하게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 더, “희한한 여행기다. 처음 가본 곳의 풍경이나 유물에 대한 넋두리는 절제되어 있다. 대신, 그곳에 가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와, 책을 읽어 머리 안 이야기와, 가서 들은 이야기로 범벅되었다.(180쪽)” 제가 최근에 읽은 김별의 <스페인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 http://blog.yes24.com/document/7750609>이 딱 이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페인 여행에 대한 정보가 아쉬웠던 까닭에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윤여일의 <여행의 사고> 시리즈의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기왕의 여행서들은 단순 가이드북이거나 관광 명소를 좇으며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간략히 소개하고 지은이의 감상을 곁들이는 식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나아가서 인문학 여행기라고 해보아도 작가의 인문학적 지식을 곁들이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저자의 특화된 책읽기와 여기에서 얻은 느낌을 정리하고 있는 점은 분명 무언가 제가 남기는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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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읽은 일상여행자의 낯선 하루처럼 이것도 좀 특이한 여행책이다. 이 저자는 어디를 여행한 사람들의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으로 여행을 한다. 그러는 중에 자신의 경험이 더 짙어지기도 하고 생각이 더 넓어지기도 하는 그런 여행 이런 종류의 책은 책을 읽고 나면 읽고 싶은 책목록이 확 는다는 부작용이 있다. 책을 많이 읽은 저자가 제목을 나누고 그 꼭지에 맞는 책들을 헤쳐 엮어둔 책... 차례를 보면 내용이 대충 잡힌다.
1장 국경을 빠져나오자 여행이 시작됐다p7 가고 나면 비로소 길이 열리듯, 읽고 나면 가야 할 바가 뚜렷해지리라 믿습니다. ;저자가 머릿말에 한 이야기...
국경을 빠져나오자 여행이 시작됐다 p27 여행은 유목과 같지만 다르다. 떠나 방황한다는 점에서 유목이지만, 다시 돌아와 현실 문법대로 산다는 점에서 유목과 다르다. 그런데 왜 여행할까. p32 여행은 떠남과 돌아옴의 진자운동 p33 여행에도 분명히 기술이 있다. 더 싸게 더 많이 더 즐겁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런 것과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 자체가 여행의 진정한 기술이다. p37 여행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한 페이지만 읽은 책과 같다. -아우구스티누스 p42 자기 체험을 소재로 삼아 거기서 생각의 자원을 건져내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학문과 여행은 공동의 토대를 지닌다. 체험에 육박하지 못하고 감정으로 고양되지 못하는 학문과 여행은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대신 날것의 체험과 감정이라면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없다. 그리하여 자칫 지식과 개념에 걸러질 수 있는 개체의 체험과 감정을 소중히 다루되, 사변적 언어로 그 체험과 감정을 정제하지 않고 개체가 지닌 개성을 훼손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표현을 일궈내야 한다. 바로 이 여행이 내게 안기는 사고의 실험이자 여행이 공부로서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역시 독자성의 세계는 상반된 가치가 공존하는 데서 비롯하는 긴장 관계에 깃들어 있는 모양이다. 날것과 익은 것의 공존, 개인적인 것과 소통 가능한 것의 공존을 익히려면 여행하고 그 기록을 글로 남기는 훈련을 해야겠다.
p47 결국 이 모두가 자신감을 갖고 싶다는 심리의 표현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모두가 불안감을 안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바로 그 불안 안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주었으면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는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감이 없음을 부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p60 먼저 시작한 것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나 이를 기반으로 우쭐대거나 압도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p69 노련한 여행자에게는 정해진 계획이 없으며, 그 목적도 '도착'이 아니다. -노자
걷는 길 위에 고독과 행복이 동시에 있다. p78 뿌리내리고 사는 이의 굳건함과 건강함
쿠르트 파이페의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
p88 본디 혁명이란 이런 것이어야 했다. 일상에서 비롯해야 하고,스스로 동의해야 하고, 변화의 가치를 몸소 체험해야 하고, 다시 동참하고 싶어 해야 하고, 자발로 다른 이들에게 권해야 하는 법이다. 몸으로 하는 것이로되 정신을 황홀경에 이르게 해야 하며, 당장 성과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효용이 없어도 하는 것이어야 하며, 누구를 앞질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어야 하며,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껴야 하는 법이다.
p102 미국에 있는 어떤 것도 그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상품이나 사업도 끊임없이 스스로 개조하지 않으며 더 크고, 새롭고, 그리고 거의 항상 더 추한 것에 의해 잠식당하고, 버림받고, 밀려나고 만다. 그래서 오래된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좋은 것이다. 60년이 지나서도 조용히 숨 쉬면서,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 찬란하고, 창설정신에 충실하면서 세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다행히도 의식하지 않는 채 버티어 오지 않았는가, 그건 정말 기적이다.
어느덧 우리도 미국식을 따르고 있다. 새로운 것이면 값지다고 치켜세운다. 허물고 파헤치고 다시 까는 일이 발전이라 여겨왔다. 버티고 지키고 늘 그러한 것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P115 아들아, 세상에는 유희가 생략된 유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단다. 따스함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단다. 네게는 세 살부터 시작된 이런 여행이, 한평생을 다해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사치가 되는 사람들이 많이많이 있단다. 나는 네가 그런 사람들을 부단히 많이 보아서, 끝없는 속도전에서 비롯되는 초조와 이기심으로 차갑게 마음이 식어버렸을 때마다 스스로 발광하는 태양처럼, 스스로 네 망음을 뜨뜻하게 덥힐 수 있기를 바란다. 가진 것을 느끼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누고, 함께함으로써 더 많이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웅숭깊은 사람으로 자라주렴. 네가 살아있는 한 온 세상이 너의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담그고 느끼거라. 그 안에 네가 안아줄, 너를 안아줄 모든 것이 다 한데 어우러져 있단다.
사람들 속에서 내 청춘의 길을 찾다 p154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삶은 관대함을 베풀지"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강해야 하고, 고난은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p157 경험의 직접성 원칙. 그들의 "진술문에는 지금 말하는 '순간'과 말하는 사람의 '경험'과 직접 연관된 주장만을 담을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피다한 사람들은 오래된 과거나 아주 먼 미래, 또는 허구적 내용과 같이 경험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p160 "구성원들이 행복할수록 발전한 문화이고 불행할수록 미개한 문화"
p161 지금, 이곳을 잊기 위해서 사람들은 산에 오른다. 산이 주는 놀라운 선물이다.
p161 쉬운 산이란 없다, 고 터져나온 불평이 쉬운 삶이란 없다, 란 중얼거림으로 변한다. 쉬운 산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어려웠다. 처음부터 평탄한 삶만을 기대한다면 더 힘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산은 원래 이렇게 높고 낮고 울퉁불퉁하고 험한 것이다. 삶도 처음부터 행운과 불운과 뜻밖의 우연과 그러할 수밖에 없는 필연의 요철로 만들어진 것이다. 불평할 것 없다. 산을 원망하랴, 삶을 탓하랴?
... 다만 삶이 그러하듯 산도, 산이 그러하듯 삶도, 그 걸음걸음이 이유이자 목적인 '끊임없는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 휙휙 쌩쌩 스쳐간다. 머무르는 것이라고는 없기에 때로 허전하고 쓸쓸하지만, 머무르지 않기에 미련없이 버리고 돌아설 수도 있다. 삶은 지나간 과거에 있지도 않고 다가올 미래에 있지도 않다.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여기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체험하는 바로 그것뿐!
p187 여행한다는 것은 완전히 말 그대로 '사는 것'이다. 현재를 위해 과거와 미래를 잊는 것이다. 그것은 '가슴을 열어 숨을 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즐기는 것이다. - 알렉상드르 뒤마
장막을 걷어라, 창문을 열어라. p212 이과수폭포에서 늙은 교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돈 많이 벌었겠네요"라고 했더니, "아니, 돈 벌러 왔나요? 삶을 즐기러 왓지. 궁색하게 살지 않으면서도 이곳에서 산 반평생 동안 사람 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게 원 없이 즐기며 살았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손호철은 이 대화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땅에 사는 누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유쾌하게 즐기며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경제적 성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하거늘, 우리는 전도된 가치에 얽매여 살고 있지 않은가. 손호철은 이런 사람을 일컬어"라틴적 삶"이라고 말한다. 이를 달리 정의하면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고, 조금 더 가난하더라도 자기 시간을 더 많이 가지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삶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p221 자신의 지위와 경제상황과 관련없이 정의와 양심의 관점에서 진보가치를 지지하는 집단은 반드시 필요하다.
p250 부탄의 국왕은 화폐가치의 복잡한 행렬로 이루어진 국민총생산을 대신하여 한 국가의 척도를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냈다. 그는 여기에 국민총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떤 의미로든 국민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경제발전은 진정할 발전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부탄의 전통과 환경을 위협하는 세력은 신중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며 도입할 가치가 없었다. 국왕은 상품과 현금을 생산해내는 것보다, 상승하는 그래프를 만들기 위해 무분별한 성장을 추구한 것보다, 국민의 행복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성공보다 삶의 질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함부로 짓밟고 올라서서 성공을 도모하는 삶보다는 다른 인간을 향한 연민과 협력을 근본적인 미덕으로 삼는 삶이 필요하며, 이것이 국민총행복이 추구하는 가치였다.
p256 정말, 지금 이곳 아닌 곳에 행복한 나라는 있을까? 지겹게 들어온대로 유토피아라는 말이 현실에 없는 곳이라는 뜻이라면,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지 말고, 지금 이곳에 행복한 나라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
p258 내가 행복할 수 잇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겼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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