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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이 아들에게 왕권을 물려 주던 왕조시대가 구한말까지 죽 이어졌다.특히 조선시대 27대 왕조의 역사를 읽어 가노라면 적장자 원칙하에 맏아들에게 왕위을 물려 주는 것이 관례이고 통념으로 여겨졌다.그런데 국왕이 맏이를 차기왕으로 낙점을 하더라고 왕비,친인척,당파,조정의 대신들의 입김에 의해 변수가 생기면서 애초 국왕의 의지대로 이행할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그것은 국왕이 점찍은 왕세자가 국왕이 바라는 대로 따라 주지를 않는다든지 시절을 잘못 만나 국왕의 판단력이 흐려 주위의 의견과 주장에 휩쓸리는 경우도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왕과 아들이 나라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기에 자연인이 아닌 만큼 국사의 제대로 이끌어 가면서 국리민복을 챙겨야 하는 막중한 자리이다 보니 국왕이 차기왕권을 이을 자식을 세상에 널리 반포했을지라도 시대의 흐름과 변화,분위기에 의해 국왕은 마음을 달리하여 다른 세손을 임금의 자리에 앉히게 하는 사례도 있었던 것이다.특히 조선은 개국초부터 국체를 성리학에 두고 유교를 국시로 내세우면서 모든 일처리가 경직되고 고집불통으로 보일 정도로 원만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도 조선이라는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왕위 계승을 놓고 갑론을박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피비린내 나는 소용돌이를 치기도 하는 등 왕위를 놓고 지리멸렬한 느낌마저 주기도 한다.이 글에 나오는 다섯 명의 왕위 계승 예정자들은 각각 자신의 위치와 입장,성격과 체질에 따라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 원인도 있고,당시 조선은 명나라와 사대교린의 관계에 있었기에 인사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명의 허락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 상당히 고역스러웠을 것이다.게다가 명과 청이 전쟁을 치르고 청이 이기자 청은 때를 놓칠세라 조선에 조공의 압박을 해오고 몇 차례의 호란까지 일으키면서 왕위 계승에도 빨간불이 켜졌던 것이다.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이들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는 읽는 내내 흥미롭기도 하고 정치권력의 비정하기도 함을 새삼 발견할 수가 있었다.태종의 경우에는 도승지(都承旨)로 임명되는 등 정사를 거뜬하게 치를 수가 있다고 태조 이성계도 그에게 신임을 했지만 이방원이 정몽주 살해사건을 계기로 이성계는 이방원의 포학하고 비도덕적인 성향으로 그를 정치적 실권에서 배제했지만 이방원은 정권야욕에 눈이 먼 나머지 그의 친형제,이복동생 그리고 조선개국의 공신 정도전마저 정적으로 몰아 숙청하고 만다.태종은 왕위에 오르면서 그의 맏이인 양녕대군에게 모든 정사를 맡기려 하지만 그는 대신의 딸 여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아기까지 생기는 등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입게 된다.하지만 태종은 양녕대군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면서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당근과 채찍을 내리지만 결국 양녕대군은 폐위되고 충녕대군인 세종이 왕위를 물려 받게 된다.
다음에 나오는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의주까지 몽진을 가게 되고 한양.개경.평양이 일본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의주 행재소에서 선조가 국사를 맡고 광해군으로 하여금 한양 이남의 국사를 임시(분조)로 맡게 하는 등 그에 대한 선조의 신임을 두터웠지만 명은 적장자의 원칙에 의해 광해군을 임금으로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고 영의정 유영경은 광해군이 전섭하는 것이 싫은 나머지 상소를 올리면서 선조는 광해군에 대한 태도가 돌변하고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넘긴다고 유지를 남긴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면서 전쟁의 상처를 씻고 국가의 전열을 가다듬는데 치중하지만 토목공사에 집착을 하면서 사대부,민심 모두를 잃게 되고 명을 배신하고 후금과 가깝게 하고 폐모살제(廢母殺弟)까지 저지르고 만 광해군은 결국 폐위되고 만다.이것이 인조반정이다.
인조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맏이인 소현세자를 일찍이 차기 왕으로 지목하고 분조의 임무까지 맡겼다.그러는 가운데 이웃 후금은 태조 홍타이지 체제로 들어가면서 아민을 대장으로 조선을 침입하는 정묘호란이 발생하면서 인조와 소현세자는 남한산성을 물샐틈 없이 포위한 청군에 의해 인조는 수치스러운 삼배고구두례의 항복을 하고 소현세자를 비롯하여 봉림대군 등 수많은 사람들이 청으로 인질로 잡혀간다.인조는 소현세자가 인질로 잡혀가고 그의 귀에는 그가 청국에 입조할 것인가,아니면 퇴위할 것인가가 들려오면서 내심 불안감을 감추지를 못하는 한편 소현세자와의 관계는 악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소현세자는 인질로 잡혀간 지 8년 만에 귀국을 하여 아버지 인조에게 귀국인사를 하지만 쌀쌀하게 백안시한다.소현세자는 귀국하자마자 학질이라는 진단을 받고 3일 만에 세상을 뜨게 되는데 그의 죽음은 의문의 독살설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의 임금 중에서 최장수를 누린 영조(52년)는 마흔둘에 사도세자를 낳게 되는데 열 살에 왕세자로 내정하여 대리청정까지 맡기는 등 사도세자에 대한 그의 신임은 두텁기만 하다.하지만 사도세자는 착하면서 내성적인 성향을 띤 나머지 영조의 눈에는 그의 대리청정이 미덥지가 않다.제왕이 되려면 정관정요를 읽어야 하고 조강,주강,석강,야대까지 받아야 하고 부왕 영조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하면 호된 질타와 함께 그를 가르치는 사부,시강원 관료,환관까지 벌을 받아야 했기에 사도세자에겐 커다란 스트레스였을 것이다.이렇게 빡빡하고 다그치는 영조의 훈육에 사도세자는 온몸에 종기 내지 곪음이 도져 온양 온천을 다녀오라는 허락을 받아 간만에 외유를 한 셈이다.설상가상으로 사도세자는 관서지방을 외유하고 돌아온 것이 영조와의 격절된 관계가 되고 만 셈이다.게다가 사도세자와 정적이었던 노론세력(홍봉한)과 사도세자의 행실에 대한 나경언의 고변은 영조로 하여금 사도세자의 삶을 척결하는데 결정적 원인이 되고 결국 사도세자는 부왕 영조의 명령에 의해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짧으면서도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게 된다.
정치권력은 비정하고 무상하기만 하다.지금이야 국민의 투표에 의해 정치지도자가 선택되고 결정되지만 왕권중심시대였던 조선에서는 성리학에 기반을 두고 왕위를 적장자에게 넘기게 되지만,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적장자임에도 불구하고 부왕의 눈과 귀,비위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차자에게 왕위를 물려 주기도 하고 피를 흘리는 혈육전쟁을 통해서라도 왕위를 차지하려고 했던 왕들도 있다.그들은 자신의 시각과 경험에 의해 자신과 똑같이 국사를 치뤄주기를 바라고 그러한 그릇이 되기만을 원해서인지 비운에 간 세자들은 가련하고 안타깝기만 하다.게다가 왕권중심의 사회였을지라도 왕위문제만큼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었을 만큼 주변세력들의 입김과 알력이 컸다.그리고 임진왜란,정묘호란,병자호란 등의 전란과 조.명의 사대교린에 의한 조공과 인사권 문제까지 명과 청의 승인을 얻어내야 했고,왕위문제까지 당파의 이해간계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던 불투명하고 불안전한 시대였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그 와중에 왕위문제로 힘들었을 세자들의 말못할 고민과 갈등,번민은 행복보다 불행했던 시간이 더 많았으리라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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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왕과 아들>이라고 되어 있어요. 영화 <왕과 나>라는 제목도 있었지만, 여기서 왕과 아들이라고 할 때의 <아들>은, 다름 아닌 <그 왕의 아들>을 가리키는 거겠죠? 책의 내용은, 조선의 왕(歷代로 보면 모두 27분이죠)이었던 중 다섯 인물과, 그들의 아들들이었던 비극의 주인공(이 다섯 명의 아들 중에는 왕이 된 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습니다)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총 다섯 편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역사는 아무래도 일반 문외한인 독자에게는 일단 재미가 있어야 읽는 부담이 덜합니다. 이 책은 해당 시대의 전문가들이 쓰신 덕인지, 술술 읽히는 게 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휴가 기간 동안 이 책을 읽었는데,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정자 아래에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게 완전 신선 놀음 같았습니다. 물론 책에서 전달 받은 정보는 그것대로 대단히 알찬 것이었구요. 첫째 주인공은 태조 이성계와 그의 아들 이방원-나중에 3대 임금 태종이 되는 이죠-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평소에 한국사에 대해 큰 지식을 갖고 있지 못했던 저라서요, 이 첫째 장을 읽고서 몰랐던 내용을 많이 배웠습니다. 예전 KBS에서 공전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용의 눈물> 같은 드라마 덕에, 이숙번이나 조사의 같은, 교과서에 정면으로 부각되지는 않았던 인물들에 대해서도 꽤 안다고 자부했었는데, 이 글을 읽어 보니 그렇지도 못했던 제 자신을 통렬히 발견하게 되었어요. 일단, 우리는 선죽교에서 포은이, 방원의 사주를 받은 자객 조영규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데, 부친 이성계와 포은이 생전에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는 건 잘 모르는 수가 있습니다(저만 그랬던 걸까요?). 포은의 죽음 그 비극성은, 이처럼 인간적으로 절친한 사이였던 두 사람, 혹은 두 집안이, 정치적 노선의 차이를 두고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입장에 서서,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죽이기까지에 이르렀다는 점에 있습니다. 여기서 이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아버지와 자신이 익히 교류하던 분을, 철퇴로 비열한 테러를 통해 암살한 이방원, 아마 우직하니 무력이라는 수단에 모든 것을 의존할 것 같고, 따라서 교양과 학식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철부지라는 인상을 막연히 받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버지가 그리 미워했고, 공이 가장 컸음에도 세자 자리를 보장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닙니다,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이 책에 실린 정보에 의하면, 방원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국가에서 실시하는 과거 시험에, 최종 성적 전체 7위로 급제한 사람입니다. 무과(당시로서 천대받던, 그리고 잘 실시되지도 않던 武科)가 아닙니다. 생원 진사시를 거쳐 최종적으로 어전(御前)에서 실시하는 문과(文科)에서, 최상위권의 성적으로 당당히 그 경력을 시작한 인재였습니다. 그의 나이 19세의 일이었다는 점 다시 상기해 주십시오(요즘 열아홉이면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도 못 사는 아이입니다). 출중한 무예를 지닌 무장이었으나 별반 학식이 없고 내세울 문관 경력이 부재했던 부친 이성계는, 아들의 이 장한 소식에 당시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한쪽 눈과 바꾸자고 해도 아깝지 않은, 하늘이 내려 준 보배와도 같은 귀한 아들이 바로 방원이었던 게죠.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렇게나 친하고 살가웠던 부자 관계가, 어떤 곡절로 이처럼이나 비극적인 결말로 치달았던 걸까요? 사실 귀하기 짝이 없던 아들과 나중에 철천지 원수가 되는 건 이 부자뿐이 아니었습니다. 뒤 편에 실린 이야기도, 선조-광해군 정도가 예외일까, 나머지가 다 비슷합니다. 원수는 고사하고, 의가 깊어도 그렇게 깊을 수가 없었던 부자 사이가, 그처럼이나 끔찍한 말로를 밟았던 것입니다.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금쪽같은 아들이, 평소에 이성계 자신이 양정(兩鄭, 두 명의 정씨라는 뜻입니다)으로 아끼던 중 한 명인 포은(나머지 한 사람은 삼봉 정도전입니다)을 잔인한 방법으로 척살하자, 노장은 마침내 아들에게서 정을 거두게 됩니다. 정치적으로도 그런 극단적인 노선을 밟는데 반대했던 인정의 사나이였고, 하물며 십 수 년 동안 교분해 오던 정을 한 순간에 살인으로 돌변시킬 수 있는 그 무정함에 치를 떨었겠죠. 저는 그런데 이 과감함이 어떤 성품의 잔인성 같은 요인이라기보다, 귀공자로 자란 데다 남부러울 것 없는 총명함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데서 유래한 환경적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나중에 양녕대군 파트에서 이 부분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이 책에는 실려 있었습니다. 뭐 저만 여태 모르고 있던 정보인지 모르겠지만요, 이성계는 당초에 현직 공양왕과 개인적인 맹약(이 책과 사서에는 "동맹"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요즘 식의 용법은 아니겠죠)을 맺기로 되어 있었답니다. 위화도 회군 이후에 고려 내 제일인자로 부상한 이성계에 위협을 간단 없이 느끼던 공양왕은, 친히 이성계의 사저로 방문하여(대단한 파격입니다. 격식으로는요), 서로 당대는 물론 후대에 이르기까지 가문 차원의 생사를 보장하는 맹세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 "동맹"이 실현되었다면, 이성계는 이후 왕위를 선양 받는 일은 꿈도 못 꾸는 것입니다. 선양 자체가 유교의 도리에 어긋나는 역적질에 가까운데, 왕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맺는 약속을 파기하고 왕위에 오른다면, 천하의 민심이 그를 용납하지 않겠죠. 이를 간파한 방원은, 맹약이 성사되기 직전에 대비를 겁박하여 공양왕 폐위 교서를 내리게 했답니다. 이성계의 왕위 등극, 조선의 개창은 이처럼 간발의 차이로, 예측 못할 곡절을 거쳐 이뤄졌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하루 차이로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었던 겁니다. 또 하나, 아들과 측근은 역성 혁명을 꿈꾸는데, 정작 당사자인 아버지는 태연히 군신 간의 의(義)를 도모한답시고 생뚱맞은 술자리 동맹을 예약하고 있었으니, 이성계 본인은 참으로 우직하고 사심 없는 인간적 면모를 갖춘 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위화도 회군 역시 적극적인 쿠데타였다기보다, 가망 없는 자살 공격(신생 명 제국의 기세가 대단했으니까요. 우리는 오합지졸 홍건적의 피난 공격에도 밀려서 왕이 몽진할 만큼 허약하지 않았습니까. 홍건적 본당인 주원장이 자칫 마음이라도 독하게 먹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을 피하기 위한 자구책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1차 왕자의 난을 통해 양정 중 하나인 삼봉까지 제거하자, 이성계는 아들에게 간접 양위를 하긴 합니다만(방과 정종을 거칩니다), 마음에서 아들을 완전히 지우다시피 하고, 함흥차사(이 책에 의하면,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건이나 조사의를 통한 군사 쿠데타를 기도, 아들을 위협하기도 합니다만, 끝내 현실의 권력 관계를 인정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합니다. 명에서 온 사신이, "상왕(이성계)를 배알해야겠다. 상왕은 지금 어디 계신가?"를 계속 물어보는 통에 방원이 진땀을 흘렸다는 대목도 재미있습니다. 왕은 물론 멀쩡히 살아 있지만,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시역이라도 이뤄진 줄로 명(明)측이 오해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 다음은 야사에서 재미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하는(왕세자로서 자질이 출중했으나, 동생 도[祹. 복 도라는 글자입니다] 충녕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뜻을 받잡아 스스로 광인 행세를 하여 폐세자를 자초했다는 것) 양녕대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명한 야사는 거짓이며, 태종은 이 장남을 그 부족한 자질에도 불구하고 못내 사랑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무런 비행을 저질러도 감싸 주려고 했으나, 양인을 첩을 빼앗는 등 그 작폐가 너무도 심해, 부득이하게 자리에서 쫓아내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KBS에서 사극 <왕과 비>에서 양녕대군의 모습이 잠시 등장했는데요, 이 극에서 그는 수양대군을 강력히 써포트하면서 단종을 사정 없이 처형할 것을 주장하죠. 너무도 잔인하고 사악한 모습으로 그려졌는데요(배역은 중견 탤런트 신구 선생이 맡았습니다),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는 달리, 양녕은 인성 면에서 그리 좋은 이가 못 되었나 봅니다. 저자는 이런 양녕을 두고 "아버지 태종의 가장 야성적인 면을 빼닮았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태종은 이 책에서 나온 바대로도 그리 와일드한 인물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대하구요, 그저 양녕 개인의 품성 미달, 인격적 결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조와 광해군을 다룬 부분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이 두 부자는 그리 갈등 관계에 있던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정보는, 임란이 터지자 선조는 광해군에게 서둘려 분조의 책무를 맡기고 나중에는 요둉에 귀순할 것까지 고려했다는 겁니다. 분조란, 대폭으로 권한을 위임받은 2차 정부를 말합니다. 사실상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고 현대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귀순"이란 무엇입니까. 충격적이지만, 명 제국의 요동 책임자에게 그 신상을 의탁하여, 스스로 명의 직접 보호를 받는 신민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조선의 제후는 비록 책봉을 명의 천자에게 받지만, 그 통치의 실질은 완전한 자율권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 "귀순"은, 100% 중국의 신하로 스스로를 투탁하는 것이죠.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고, 마치 팔백 년 전 당나라의 현종이 안록산의 난을 피하면서 아들 중종에게 황위를 물려주고(완전히 준 것도 아니고 위기를 면하자 나중에 도로 챙깁니다) 자신은 촉으로 도망한 고사를 떠올리게 됩니다. 광해군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제 그가 폭군이 아니라 개혁 정책과 실리 외교를 표방한 영민한 사람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책을 읽으니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장 중립외교만 해도, 대체 욱일승천하는 후금의 기세를 무슨 수로 무시할 수 있었겠습니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주체적이었다기보다는 힘에 밀린 선택이었고,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한 것도 자신이 스스로 내린 결단이라기보다 일부 과격파 북인의 전횡에 떠밀린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폭군이나 개혁 군주 그 어느 쪽도 아니라, 그 반대로 주변 정세에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다 결국 자신이 희생양으로 떨어진 불우한 군주로밖에 안 보이는군요. 이 대목 서술은 한명기 명지대 교수가 맡았는데, 본래 이분이 이 시대 전문이시라 필치가 박력이 넘칩니다. 이뿐 아니라 만주에서 중원을 호시탐탐 노리던 홍타이시(후에 청태종이 되고 누르하치의 가장 믿음직한 아들인 자)가 어떻게 해서 조선에 재차 침입하게 되었으며, 도르곤(나중에 순치제의 섭정이 되는 실력자) 같은 사람이 인조와 주고 받은 이야기를 읽어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이분이 임란에 대해 강의한 VOD가 KBS 홈페이지에서 아직도 제공되니 관심 있는 분은 찾아 보십시오. 강의를 구수하게, 아주머니들도 잘 이해하게 이끌어 나가는 재주가 있으십니다. 인조와 소현세자의 사연이 빠질 수가 없죠, 이 사건이야말로 부자 관계라도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없다는 비극적인 진리를 잘 깨닫게 하는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간 정치적 음모에 의한 독살설이 파다했고, 이를 "인조=수구사대세력, 소현=개혁세력"으로 도식화하여 다소 무리하게 규정하는 시도가 있었죠. 이 책의 입장은, 독살설 자체는 사실로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야만 여진에게 그런 굴욕을 당했는데, 정작 자신도 피해자인 소현 세자가 그리도 적극적으로 '북학(아직 실학 용어로 자리잡지 않은 때입니다만)"을 주장하고 나서니, 아버지나 잔류 세력의 입장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한 변절자"정도로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시세에 영합하여 원수에게 친밀감을 보이는 아들, 세자를, 눈물을 머금고 처단할 수밖에 없었겠죠.("너는 이미 과거의 네가 아니구나!") 대미는 영조와 사도세자 간의 슬픈 사연이 장식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영조가 대단히 정치적으로, 또 계획적으로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에는 사도세자 자신의 비행도 큰 몫을 했습니다만, 자신이 선행적으로 아들에 대한 과감한 처단을 함으로써, 최대 계파였던 노론(중에서도 이후 벽파)에게 지레 본때를 보이려고 했던 의도라는 쪽입니다. 사도세자는 물론 성품이나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를 많이 실망시키기는 했습니다만,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왕위를 넘볼 입장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다만, 자신이 천출이라는 컴플렉스와 명분 손상 요소를 지니고 있었고(이때문에 소론을 중심으로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죠), 이것과 장기 집권에 대한 염증이 결합하면 분명 일각에서 세자를 중심으로 한 양위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왕권 자체에 대한 약화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자기 개인의 집권욕만은 아니었던 걸로 보입니다. 이 책은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균형 감각 있게 사건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관점과 화제로 조선사 전체에서 유사한 사건을 꿰어 역사를 조망하는 일은 이처럼 재미있습니다. 더군다나 정통으로 역사를 전공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의 솜씨라서, 더욱 재미읽게 읽힙니다. 요즘 재벌가문에서 경영권을 놓고 벌어지는 분쟁과 비교하여 고찰하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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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프스 콤플렉스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비운의 부자 관계를 일컫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그 내용은 어떤 나라에서 신탁의 뜻에 따라 자식을 버리고 그 자식이 우여곡절 끝에 적국에서 성장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 자식은 성장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게 되고 그 나라를 취하는 인물로 성장한다. 그러면서 혈육의 관계를 모른 채 이웃국인 부모의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부모의 나라를 점령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 나라의 모든 보물들을 취하는 과정 속에서 어머니를 전리품으로 취하게 되는 비극을 만든다. 나중에는 그 사실을 안 오이디프스가 스스로 자책하여 목숨을 끊는 일까지 생기게 되지만, 이 일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부자간의 사이가 좋지 않을 때 흔히 사용되는 말이 된다. 이 책에서는 조선조를 통해서 이렇게 부자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다섯 경우를 제시해 우리에게 역사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들은 태조와 이방원, 태종과 양녕대군, 선조와 광해군, 인조와 소현세자, 영조와 사도세자 등이다. 모두가 참으로 어려운 관계를 만들었다. 그 관계들이 그들의 삶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역사상에서 가슴 아픈 일들이 이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전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부자의 경쟁, 권력의 이면을 보는 일은 정치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일이다. 이들을 통해서 오이디스프 콤플렉스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이야기는 전체가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지도 깔끔하고, 목차, 소제목들도 내용들을 잘 포괄하는 것들로 색지를 사용해서 눈에 확 드러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시각 상 쉽게 구분이 되도록 만들어 주면서 책에 다가가게 만들고 있다. 부분으로 나눠 읽어도 좋을 듯한 구성으로 되어 있어 읽기에 부담도 되지 않는다. 가볍게 읽을 수 있고, 자세하게 그들의 상황을 재조명해 볼 수 있어서 행복한 읽기가 된다. 그들의 관계를 위주로 왜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었는가 하는 점을 해명해 보이고 있는 책이다. 그들 중에 왕이 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런 면에서 비슷한 환경에서 다양하게 드러나는 부자 관계를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감사하게 읽었다. 태조와 이방원은 조선 건국까지는 밀월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정몽주 살해사건으로 둘 사이에 금이 간 것으로 생각된다. 정몽주가 태조에게 어떤 인물이었는지 이방원이 간과하고, 그를 죽이는 것이 더 태조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곡해한 것이다. 정몽주는 태조와 정치적 생명을 나눈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태조가 개국을 하면서도 정몽주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인다. 그런데 결과가 살해로 나타난 것이다. 태조의 이방원에 대한 분노가 그 때부터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그 후 세자 책봉 시 이방원은 조선 건국의 최대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에게 밀리고, 공신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왕자의 난이 일어나게 되고, 태조는 상왕으로 함흥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태종이 아버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지만 함흥차사라는 말까지 남길 정도로 둘의 관계는 소원해 진다. 참으로 일국의 군주로서 안타까운 상황이 만들어졌다. 태종은 세자가 잘못 세워졌기 때문에 자신의 대에 2차례의 왕자의 난이 일어나는 큰 혼란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적장자를 세자로 세워 나라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고자 했다. 그래서 양녕을 세자로 책봉하여 국본으로 삼았다. 그런데 양녕은 많은 실기를 한 인물로 우리가 알고 있다. 능력은 있었으나 학문하기를 싫어하고 무예를 익히기를 좋아하였다. 또 자신을 지키는 절제력이 부족한 인물이었다. 이런 것들이 당시 사대부들이 보기엔 위험한 인물로 부각되었다. 그들이 바라는 나라는 예의, 의가 온전히 서는 성리학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연결되어 첩 사건들로 인해 국본으로서의 자격 논란으로 이어지고, 태종도 사랑하지만 결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그러면서도 태종이 끝까지 보호하고자 했으나 양녕은 오히려 아버지를 향해 극단적인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양영의 독단이 결국은 일을 그르치게 한 것으로 여겨진다. 대신 충녕이 그 자리를 차지해 조선조 문화의 꽃을 피우는 시대를 연다. 그 후 세종이 양녕의 말년까지 많은 상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지켜주는 것을 통해서도 태종의 양녕을 향한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전쟁과 함께 입지가 크진 광해군은 늘 선조의 눈치를 살피는 성장을 해야 했다. 선조의 정실 소생이 없는 상황에서 후계자는 지속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선조는 정권 안정을 위해서, 신료들을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 이 카드를 이용했다. 그래서 후계자 지목이 당대의 정쟁의 핵심이 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런 상황 중에 전쟁이 일어나니 정권의 대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세자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선조는 광해를 지명하여 신료들의 답을 이끌어 낸다. 그로부터 더욱 피 말리는 광해의 인정받기 위한 노력은 지속된다. 그것이 전쟁과 관련하여 책임 논쟁으로 비화하는 가운데 선조의 정권 물려주기 이야기는 계속되고, 그것을 선뜻 수용하지 못하는 광해의 미묘한 입장은 더욱 그들 사이의 답답함을 만들어 간다. 그러다 명에 의해 세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불편한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 그것이 선조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상황을 만들어 가고, 결국 광해가 정권을 물려받았을 때도 선조의 그 그림자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것이 당쟁과 맞물려 광해의 광기를 불러 일으켜 위기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전쟁으로 인해 태자가 되고 전쟁으로 인해 위기에 내몰리게 되는 광해의 가여운 인생 여정을 우리는 이 부분을 통해 읽어볼 수가 있다. 약소국에서 아픈 부자 관계의 단면을 읽도록 한다. 인조반정과 함께 인생이 크게 바뀐 인물로 당시 13살이었던 소현을 들 수 있다. 늘 노심초사 하면서 자라던 입장에서 일약 왕세자로 거론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인조의 삼전도 굴욕 후 소현은 봉림과 함께 청나라 수도인 심양에 볼모로 가게 된다. 소현은 이곳에서 청나라의 힘을 느끼게 되고, 그 힘이 선진화된 기술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왕이 되면 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키우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오랑캐라고 인식하는 청을 바라보는 인조와 대신에게는 큰 위험으로 간주되게 된다. 이것은 소현이 조선에 돌아왔을 때 분란의 씨앗으로 되고, 결국 그가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결국 그는 병약함이라는 사유로 죽게 되는데, 이설로 독살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온다. 똑똑했고 능력이 있었던 왕세자가 통치에 대한 내용으로 아버지와 뜻이 달랐다는 것이 비극으로 몰고 간 요인이 된 것이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비극에 해당한다. 부자간의 악연이 이보다 심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다음 보위에 오를 수도 있는 아들을 사사해야 하는 비극, 그것도 뒤주 안에 갇혀 목숨을 마치게 해야 했던 일은 두 사람 모두 쓰라린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노론 세력의 지지 속에 즉위하면서 정치적 부담을 가진 입장에서 공정한 정치를 펴보고자 노력한 왕의 한계를 보이는 한 예가 될 듯하다. 영조는 즉위하면서 탕평을 해보고자 무척이나 노력한다. 그러나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입장에서 모든 일에 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린다. 그것이 배경이 되는 세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결국 그들의 뜻에 반하는 일들을 쉽게 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와중에도 영조의 변호로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면서 정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그 정무 수행이 용조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왕세자의 비밀 관서행이 이루어지고, 이에 대한 탄핵이 올라오면서 사도세자의 세자로서 온당치 못한 허물을 질책하는 많은 말들이 흘러나온다. 영조는 믿지 못하는 세자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크게 노하게 된다. 그것이 결국은 세자를 뒤주에 널어 사사하는 일로 나타난다. 위와 같이 이 책은 5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이야기들이 근거가 되는 문헌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의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내용들이 잘 요약되어 있고, 이야기가 조리 있게 잘 풀려나가고 있다. 읽기가 편하다. 내용들이 이제까지 우리가 읽었던 것과 부합되고 그것에서 진일보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다. 역사에 대해 그 진실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왕조 부자간의 비극을 통해 권력의 무상감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권력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혈육까지 도구로 사용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마음이 아프다. 오이디프스 콤플렉스가 우리나라에서도 권력이란 이름으로 많이도 나타났음을 우리는 직시한다. 참으로 이 책은 역사 속에 나타난 사실들을 통해 인간 욕심의 그 바탕을 탐구해 보고 있는 책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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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왕과 아들(신병주&한명기&강문식: 책과 함께, 2013) 나눌 수 없는 권력을 둘러싼 조선 왕위 계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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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간 관계를 가리키는 말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은 전생에서 서로 원수였다'라는 속언이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의미로 서양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정신분석학 용어가 있는데 이 둘은 동서양 모두 부모자식 그가운데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를 불안정하고 위험하며 반목과 갈등이 자리하는 관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늘 반목과 갈등 그리고 증오의 관계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외세와 국내 정치사로 인하여 틀어져버린 인조와 소현세자의 관계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답니다.
"청군에 인조에게 나오라고 강요할때 소현세자는 자신이 대신 나가 인질이 되겠다고 자청했다. 급기야 아버지와 아들은 '오랑캐 추장'에게 무릎을 꿇는 치욕을 함께 맛보았다. 이윽고 소현이 볼모가 되어 심양으로 끌려가던 날, 아버지 인조는 새파랗게 어린 청 장수에게 '아들을 온돌에서 재워달라'라며 머이를 조아린다." 글을 마치며 中 254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애증의 관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자관계는 기본적으로 사랑의 관계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갈등과 반목을 경험하면서 때로는 증오도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태종실록 양녕대군 관련 기사들을 읽어보면),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시킨 이는 태종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녕대군을 끝까지 보호하고자 애쓴 이도 다름 아닌 태종이었다. 태종은 양녕대군의 실행을 질책하면서도, 계속해서 그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었으며 심지어 반성의 방법까지도 알려주었다." 태종과 양녕대군 中 63
도서출판 책과 함께에서 금번에 발간된 <왕과 아들>은 조선시대 왕위 계승사를 왕과 아들 즉 아버지와 아들의 특별한 관계를 사료를 통해 이야기 하는 책입니다. 천년의 반이라는 약 500년의 역사 기간 동안 조선의 왕과 아들의 관계 가운데서도 다섯 부자의 이야기(태조와 태종, 태종과 양녕대군, 선조와 광해군, 인조와 소현세자, 영조와 사도세자)를 세 작가(신병주, 한명기, 강문식)가 집필하여 '조선 정치사'라는 커다란 틀에서 왕위 계승사를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왕과 아들>은 기본적으로 아버지와 아들 즉 '왕과 아들'의 특수한 관계를 이야기 하는 책이지만 왕실의 내부 갈등을 말하기 보다는 계승사에 촛점을 두어 '조선의 왕'이라는 권력이 이동하는 과정에 얽힌 '부자'와 관료들과 정세 그리고 주변국들로부터의 영향을 함께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인조는 소현세자를 버렸을까? 그와 관련하여 <인조실록>에 '인조가 총애하느 조소용등이 강빈과 세자를 무함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엽적인 것이고 본질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소현세자가 청에 머무는 '새로운 세상을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소현은 명청 교체의 현장인 심양과 북경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을 보았다." 인조와 소현세자 中 198
이로써 독자들은 '왕과 아들'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더해 조선시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테마로 한 역사극을 보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게 되는데 기존의 미디어를 통해 보는 왜곡된 '사극'이 아닌 역사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게 됩니다.
"이들이 반란에 가담한 것은 태조의 지시를 어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이들은 그와 같은 사정을 반란 당시에 태종에게 전하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결국 반란의 중심에 태조가 있었으며, 태종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태종이 반란군의 일원이던 이들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종과 태종 中 52
소재 자체가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조선의 왕과 아들의 관계이기에 편향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세 작가 모두 각종 역사 프로그램의 자문을 맡고 있는 실력자들이며 역사적 사실들에 덧대어진 이야기들과 왜곡된 부분들을 바로 잡는데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 역사' 접근과 이해에 도움이 되는 교양정보를 습득하시기에 용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사가 어렵고 무겁게 느껴지는 분들에게는 즐거움을 그리고 '사극'의 가벼움과 왜곡에 대한 일침을 가하는 <왕과 아들>. 애증의 관계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없었던 권력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정치사를 '역사'를 좋아 하는 독자 분들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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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아들>은 강문식, 한명기, 신병주 세사람의 저자가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구성해 낸 조선시대 왕위 계승사이다. 다섯 부자 관계를 통하여 왕이라는 권력이 어떻게 유지, 계승되었는지, 왕세자와 왕후, 관료들과 정세, 그리고 주변국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를 역사적으로 구성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엮어내기 위해서 왕과 왕세자의 일생을 하나의 연표로 구성하여 제시하였으며, 왕의 가계도를 통해 적장자 관계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주어 누가 보아도 알기 쉽게 책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판과 설명을 배치하여서 더욱 좋았다.
각종 역사 프로그램의 자문을 맡고 있는 저자들이 잘못 인식된 역사적 오류를 바로 잡아 설명해주고 각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평가들을 소개하여, 조선시대의 역사를 왕실 내부의 갈등 구조가 아닌 조선 정치사라는 커다란 틀에서 분석한 책이다.<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편의 태조와 태종은 부자관계. 태조는 본래 유학을 존중하여 비록 군중(軍中)에 있을때도 창을 내려놓고 휴식하는 동안에 항상 유경등의 학자등을 불러서 함께 유학경서와 역사서를 읽고 토론하였다. 태조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이 잘되기를 바래고 있었다. 이성계는 과거에 급제한 아들 이방원을 자랑스러워하였다. 하기야 지금의 아버지들도 아들이 잘되기를 바래지 않는사람이 있을까마는 말이다.
여러명의 아들중에 유독 방원을 제일 사랑하였다고 한다. 이방원의 급제소식을 듣고 이성계는 대궐의 뜰을 향해 절을 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할만큼 아들의 출세에 기뻐했다고 한다. 이 후 이방원이 제학(提學) 에 임명되자 이성계는 몹시 기뻐하면 사람을 시켜 이방원이 받은 임명장을 여러차례 읽도록 하였을 만큼 아버지의 부정을 마음껏 발휘했네요. 이방원은 이성계의 소망을 이루어준 아들이었기에 이성계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아들 덕분에 무장 이성계가 정치인 이성계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서로에게 등을 돌린 아버지와 아들인 태종과 양녕대군 이야기는 이렇다. 양녕대군은 적장(정실부인에게서 난 아들이면서 동시에 맏아들이라는뜻)의 위치에 있었다.
태종에게는 적장자의 왕위계승은 성리학의 원칙을 준수하는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왕자의 난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태종은 이복동생들을 죽이고 동복형제인 넷째형 방간과 권력투쟁을 할수밖에 없었던것이 아버지 태조의 잘못된 세자책봉때문이었다고 한다. 양녕대군은 공부하기를 싫어하고 밥먹는 예절 또한 엉망이었다. 말과 행동 또한 절도가 없었다. 양녕대군은 세자로 책봉되고 2년이 지나도록 학업의 부진은 여전하였다. 그때 나이 13세였다. 학업과 행실의 지적이 신하들에 의해 잦아졌다. 태종은 기회가 있을때마다 양녕대군을 비롯한 자식들을 불러 음식을 하사하면서 형제애를 강조했다.
태종이 아들들에게 형제애를 강조한것은 자신이 형제간에 골육상쟁의 비극을 겪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하였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이복 동생을 죽인 태종이기에 아들형제간의 우애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형제간의 우애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우애있게 지내려면 서로간의 예의를 지켜야 할 것 같다. 조그마한일에도 서로 참고 조금씩 양보하면 우애는 조금씩 쌓여 갈 것 같다. 학창시절에는 역사에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에 와서 이 책을 대하고 보니 너무나 재미가 있어서 한줄한줄 되새기면서 읽게 되네요. 왕이 누구이고 누구의 아들이었고 그 아들은 누구인가? 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가다가 보니 새삼 우리의 선조의 구도를 알게 되어서 흥미가 진진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보시면 좋을만한 유익한 책이네요..
선조와 광해군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선조는 부인4명 자녀12명 으로 둘째부인에게서 탄생한 광해군을 왕세자로 지명한다. 역시 배다른 형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는다. 옛부터 왕위 계승문제로 형제들이 다투는 것은 허다한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일은 변하지가 않는듯 싶다. 지금도 재벌들의 재산 다툼을 보면 알수있다. 좀 더 영특한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 물려주고간 재산으로 서로 다투고 아웅다웅하는것은 재벌 뿐만이 아니라 소시민들도 마찬가지 인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하나가 있다. 조선왕실의 최대비극인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비극에 해당한다고 할수있다. 부자간의 악연이 이보다 심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다음 보위에 오를 수도 있는 아들을 사사해야 하는 비극, 그것도 뒤주 안에 갇혀 목숨을 마치게 해야 했던 일은 두 사람 모두 쓰라린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노론 세력의 지지 속에 즉위하면서 정치적 부담을 가진 입장에서 공정한 정치를 펴보고자 노력한 왕의 한계를 보이는 한 예가 될 듯하다. 영조는 즉위하면서 탕평을 해보고자 무척이나 노력한다. 그러나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입장에서 모든 일에 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수없다는 태조와 태종의 이야기, 서로에게 등을 돌린 아버지와 아들인 태종과 양녕대군이야기,아비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하여 힘쓰는 선조와 광해군이야기,상처 입은 아버지와 새 세상을 본 아들의 이야기인 인조와 소현세자, 조선 왕실 최대 비극이라 말할수있는 영조와 마흔둘에 다시얻은 귀한아들 사도세자이야기, 이 책은 5가지이야기를 조리있게 내용들이 잘 요약되어 있고 읽기가 편안하고 내용들이 이제까지 우리가 읽었던 것과 부합되고 그것에서 진일보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에 대해 그 진실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왕조 부자간의 비극을 통해 권력의 무상함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시대의 부자세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것을 알수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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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향한 인간의 본성 텔레비전 드라마 중 단연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역사와 관련된 것이 한몫 차지하고 있다. 어느 방송을 보든지 늘 보게 되는 역사드라마는 그 핵심내용으로 권력을 둘러싼 온갖 정치적 활동이 빠진 적이 없다. 특히, 궁궐 내 왕권을 둘러싼 권력싸움은 왕과 왕비 그리고 다음 권력을 이어갈 세자, 그 권력에 자신들의 운명을 건 중신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이 권력의 향배를 놓고 서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새롭게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세력들 간의 싸움은 때론 목숨을 내 놓고 벌이는 전쟁과도 같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매번 비슷비슷해 보이는 역사드라마에 흥미를 가지는 것일까?
인간이 가지는 기본 속성 중 권력욕이 있어 직접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없는 조건의 사람들이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 것도 있겠지만 그런 관력투쟁 과정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본성이 어떤 작용을 하는가에 대한 흥미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권력투쟁에서 본질은 바로 그 권력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권력투쟁은 벗이나 동료는 물론 부자사이도, 부부도 서로 얽히게 되면 서로를 배척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이런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사드라마는 그래서 매번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역사에서 이런 왕권을 놓고 벌렸던 권력투쟁은 수도 없이 많다. 가까운 역사 조선에서는 역성혁명을 통해 고려를 뒤엎고 세워진 나라이기에 왕의 권력에 대한 정통성을 부여받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권력의 정통성에는 백성들로부터 신임을 받기 위한 노력도 있지만 잡은 권력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함께한다. 왕권의 계승은 왕이 죽으면서 자연스럽게 계승되지만 그 계승자가 누구인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면서 권력을 향한 세력들의 이합집산이 일어나곤 한다. 이 왕위계승 중심에 왕과 왕세자가 있다. 왕조 국가에서 왕권이 어떤 의미인지 그 중요성에 비추어 차기 왕권을 이어갈 왕세자에게 주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리라. 그러기에 왕세자 교육에 열성을 다했다.
‘왕과 아들’은 조선시대 왕위 계승사를 중심에 두고 왕이라는 권력이 어떻게 유지 및 계승되었는지 살피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왕권의 계승이야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왕위 계승과정에서 벌어진 불상사로 특히 주목되는 다섯 사례를 들어 구체적 과정을 살핀다. 이 과정에는 기존 역사학자들의 연구까지 비교검토하고 또한 왕과 왕세자의 일생을 하나의 연표로 구성 제시하며, 왕의 가계도를 통해 적장자 관계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하였고, 관련된 도판과 설명을 함께 실었다. 여기서 살피는 다섯 사례로는 태조와 태종, 태종과 양녕대군, 선조와 광해군, 인조와 소현세자, 영조와 사도세자가 그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이들의 관계가 주목되는 이유는 바로 비극적 결말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왕세자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잃은 경우까지 있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당시 조선이 처한 정치적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은 되지만 구체적 과정에 대해 이 책은 그려가고 있다. 중국과 조선은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다. 그중에서도 조선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조선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조선 내부의 이해요구와 결부되어 조선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왕권을 가진 왕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왕세자와 정치적 경쟁자로 변질되기도 하고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일환이기도 했다. 500여 년의 조선 역사에서 내외부적 격변기에 벌어진 이런 비극은 조선사를 이해하는데 하나의 테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권력의 계승과정을 통해 살펴본 조선사는 권력을 향한 인간들의 본성을 살피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이는 혼탁한 우리나라의 현대정치를 살필 때에도 유념해서 보아야 할 사항이 아닌가 한다. 역사를 보는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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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왕과 아들들이 있다.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아버지 태조와 형제들간의 피비린내나는 권력싸움을 통해 그리도 원하던 왕권을 얻은 아들 태종. 형제들과의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통해 왕의 자리에 앉은 만큼 형제들간의 우애 및 장자우선원칙을 고수한 아버지 태종과 그러한 아비의 마음을 결국을 실망시켜버린 아들 양녕대군. 임진왜란을 거치며 무능한 왕이라는 허울을 벗기위해 끊임없이 아들을 괴롭힌 선조와 그런 아비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여야했던 아들 광해군. 인조반정으로 왕이 되었지만 병자호란을 겪으며 마음의 상처가 깊은 아버지 인조와 비록 볼모의 신분이었지만 아버지와 달리 더 넓은 세상을 직접 보고 겪으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으나 결국은 이로인해 아비로부터 버림받은 아들 소현세자. 어미의 천한 신분 출신과 함께 선왕 암살의혹으로 평생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던 아비 영조와 치열한 당파정국 속에서 아비의 기대에 차지 못함으로 인해 병이 들고 결국은 아비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했던 아들 사도세자. 정말 이들의 이야기는 조선 숙종시대 '장희빈'의 이야기만큼 사극의 단골소재들이다. 그러한 만큼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한번씩 들어봤을 것이고 그로 인해 이 책을 읽기도 전에 흥미도가 감소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왕과 왕세자라는 권력의 관계가 부자의 관계에 우선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통해 4명의 각각 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의 관계을 제시한 것이 흥미로웠다.
그 첫번째는 태종과 양녕대군의 관계로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아비인 태종이 왕세자로써의 품위와 격을 갖추지 못한 양녕대군을 못내 못마땅해하여 결국은 그가 사랑하던 충녕으로 왕세자를 바꾸었다고 알고 있었고, 양녕과 효령 역시 아비의 뜻을 알고 스스로 왕위를 양보하였다고 많이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여러가지 역사적 기록들을 통해 자신의 왕위 계승과정을 되새기며 장자우선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무수히도 양녕을 감싸고 보호해온 태종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양녕또한 결코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지 않았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번째는 무능력하고 변덕스러운 왕으로 알려져있는 선조가 상당수준의 전략가였다는 점이다. 자신의 지위가 불안해질때마다 양위카드를 통해 끊임없이 조정중신들의 층성맹세를 얻어내고 광해군의 업적중 하나인 중립외교에는 선조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여러가지 사료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세번째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몬 원인중의 하나로 당쟁, 또는 서로의 정치적 견해들을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여기에서는 영조의 장수로 인한 권력의 유지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수명이 왕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는 조선시대에서 조선왕조 최고의 장수왕 영조에게 사도세자는 아들이기도 하지만 초대의 정적이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역사는 어느 시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그래서 시대와 사고의 변화에 따라 '역사 다시보기'라는 이름하에 끊임없이 역사를 재평가한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시점도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점은 우리들의 사고의 전환 및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키워줄 것이다. '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왕과 아들, 아비와 아들이라는 관점에서 또다른 눈높이를 가지고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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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참 멀다. 어릴 때는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친구들이 아버지와 서먹했다. 그 사실을 알고 적잖이 안도 했다. 나는 나와 나의 아버지만 특별한 줄 알았다. 나이를 먹고 결혼을 했음에도 여전히 아버지와는 서먹하다. 멀기도 하고. 차마 다 말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뭐, 보는 사람에 따라서 혹은 개인의 경험의 차이에 따라서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다. 내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 내 아버지와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이 책 「왕과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나와 내 아버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왕과 왕세자의 이야기라는 점이 다를 뿐이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받은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나와 내 아버지 이야기이기도 하고.’ 조선시대 왕의 이야기는 많은 책과 TV, 영화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 많다. 거의 1년 내내 사극이 방영되는 나라에서 살다 보니 그 시대 궁의 모습과 궁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 그렇게 사극을 많이 방영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데 왜 한복에 대한 관심은 아예 없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70-80년 대 패션이 다시 유행을 하는 것처럼 조선 시대의 패션과 문화, 생활양식이 부활해서 유행을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익숙하다. 그렇다 보니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섯 아버지와 다섯 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 본 내용이다. 사극을 통해 알고 있었던 내용과 다소 다른 면이 많아 당황을 좀 하기도 했고, 제대로 된 사극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철저한 고증이 반드시 필요할 텐데 다른 것에만 너무 신경을 쓴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책에 실린 순서 그대로 소개한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 : 태조와 태종 “세자 책봉에서 밀려나고 개국공신의 반열에도 오르지 못한 이방원은 태조 재위 7년 동안 정치적 실권에서 배제된 채 야인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였다. 실제로 <태조실록>을 보면, 태조 재위 기간 중에는 이방원의 활동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p.32) 태조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훗날 태종)을 홀대한다. 자신을 도와 조선을 건국한 1등 공신이 다름 아닌 아들 이방원임에도 태조는 아들을 내친다. 책에서는 몇 가지 이유를 소개하는 데 그중에서도 고려 시절부터 이성계와 절친하던 정몽주를 자신의 허락도 없이 죽인 것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크다고 한다. 한 번 싫어지기 시작한 이성계의 눈은 아들 이방원에게 만큼은 지독하게 차갑고 냉정하다. 사실, 망해가는 나라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자칫 하다가는 역모죄로 바로 숙청을 당할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태조 이성계에게 이방원은 아들이라기보다 장차 자신의 보위를 위협할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여겨졌던 것 같다.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 자신이 최초의 왕좌에 올라 보다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고 될 수 있는 한 길게 나라를 다스리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아들 이방원은 라이벌 이었다. 이미 많은 군사와 백성들에게 신망을 받고 있는 야심차고 젊은 이방원은 눈엣가시 였다. 목숨을 걸고 성공한 건국의 경험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천륜이 가진 신성한 도덕적 가치 따위를 내동댕이치게 했다. 손에 쥔 권력을 결코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은 권력자들의 본성이다. 하지만 이방원은 이성계의 분명한 아들이다. 쉽게 내칠 수도 제거해 버릴 수도 없어서 야인으로 살도록 방치한다. 서로에게 등을 돌린 아버지와 아들 : 태종과 양녕대군 아버지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도 받았고 견제를 받았던 이방원은 결국 왕위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왕자의 난’이라고 하는 비극적인 과정을 겪기도 했다. 아버지인 태조가 이방원의 야심을 경계했는데, 결국 방지하지 못한 꼴이 되었다. 태조의 집중적인 견제와 내침에도 결국 이방원이 왕위에 올라 태종이 되었으니 말이다. 옛말이 정말 틀린 것이 없다. 자식이기는 부모가 없다. “양녕대군이 일부러 미친 척하여 충녕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했다는 주장은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p.106) 세종대왕의 형이던 양녕대군이 장자였음에도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동생인 충녕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된 이유에 대한 설이 많다. 그중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양녕대군이 정치와 정사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예술적인 면에 관심이 많아서라는 것이다. 예전에 본 사극에서도 양녕대군을 꼭 그렇게 묘사했었다. 그러나 유교사상이 근간이던 조선에서, 그것도 왕실에서 엄연히 살아있는 장자를 제쳐두고 다른 아들이 왕위를 잇는 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양녕대군이 일부러 미친 척해서 충녕대군이 왕세자가 되고 왕위에 올랐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실록의 기록을 기반으로 하여 다른 방식으로 해석 하는데 더 설득력이 있고 신빙성이 있었다. “태종은 양녕대군의 실행을 질책하면서도, 계속해서 그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었으며 심지어 반성의 방법까지도 알려주었다. 하지만 양녕대군은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결국은 세자에서 폐위되는 비운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p.63) 실제로 태종은 자신이 형제들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장자인 양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 양녕대군을 어릴 때부터 왕세자로 책봉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해 교육을 시키고 미래의 왕으로 준비시켰다. 그런데 그런 태종의 욕심과 기대에 양녕이 계속 미치지 못한 것이다. 태종 자신부터 자신의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피비린내를 진동하며 왕위를 잡았기에 자신의 아들부터는 최소한 장자가 차기 왕이 되는 정통성을 확립하고 싶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정통성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양녕은 미치지 못했다. 태종 자신은 야심이 넘쳐 아버지에게 견제를 받아 사이가 멀어졌는데, 자신의 아들은 야심이 없고 실력도 부족해 사이가 멀어졌다. 양녕대군을 대신해 왕위에 오른 충녕대군이 훗날 세종대왕이 되고 지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지도자가 되었으니 결국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비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하여 : 선조와 광해군 “인사권 등 권한의 일부를 이양받았지만 ‘바짝 엎드리고 있던’ 광해군의 입장에서, 선조의 거듭된 전섭 명령은 몹시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선조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가 자칫하면 ‘불충’으로 몰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p.129) 선조는 불행한 왕 중 하나였다. 200년 동안 평온하던 조선에 일본이 침략한 것이다. 200년 동안 평화롭던 조선과는 달리 일본은 100년 동안 끊임없는 전쟁을 치렀다.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을 판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선조만을 탓할 수 없다. 건국 후 타국의 침략을 예방하지도 예견하지도 못한 관료와 시스템이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였다.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일본의 침략에 선조는 도망간다. 그리고 아들인 광해군에게 전섭을 명령한다. 전섭은 쉽게 말하면 조정을 둘로 떼어 차기 왕이 될 왕세자가 민심을 수습하고 현재 왕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치사한 짓인데, 조선은 왕위를 보전하는 것이 가장 큰 중대사였기 때문에 최악보다 차악을 택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선조는 임진왜란 시기에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양위카드’를 빼들었다. 모두 합하면 열다섯 번이나 되었다. 남발하면 진정성이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광해군과 신료들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아낼 수 있었다.” (p.138) 선조는 우유부단한 왕이었던 것 같다. 전섭 명령을 비롯한 양위에 대한 언급을 수시로 한다. 열다섯 번이나 되었다고 한다. 왕이라는 사람이 수시로 그런 배수의 진을 친다면 왕세자와 신하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특히 차기 왕권을 이어 받을 광해군에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불리한 상황이 되면 신속히 양위할 것처럼 말하다가 상황이 조금 유리해지면 양위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광해군은 말 한마디 하는 것. 행동 하나 하는 것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그런 우유부단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탈피하고 싶어서였을까.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 뒤 강대국들 사이에서 분명한 원칙을 고수한 채 기가 막힌 등거리 외교를 펼친다. 임진왜란으로 전 조선이 황폐화되고 전후 처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가 펼친 외교는 후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비록 그 시대에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고 ‘군’으로 격하되는 수치를 당하기는 했지만. 상처 입은 아버지와 새 세상을 본 아들 : 인조와 소현세자 “인조는 조정을 이끌고 강화도로 들어가고 소현세자에게 분조를 이끌고 남하하여 인심을 수습토록 하자고 촉구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 선조가 파천할 때 광해군에게 분조를 이끌게 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p.166)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와 소현세자는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찧는 수치를 당한다. 아마 조선 왕조를 통틀어 가장 수치스러운 역사일 것이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위기를 겪은 후 타국의 침략에 대한 방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이 책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주목하기 때문에 나도 그것에 초점을 맞춘다. 선조가 광해군에서 분섭을 명령한 것처럼 인조는 소현세자에게 분조를 명령한다. 임진왜란 보다 더 가혹했던 병자호란으로 왕세자가 타국에 인질로 끌려간다. 아버지 인조는 막을 힘이 없는 자신과 조선을 탓하지도 못했다. 그저 아들을 끌고 가는 적장에게 일국의 왕이 조아리며 부탁을 하기까지 한다. 조선 시대 왕들이 아내를 많이 두고 최대한 후손을 많이 낳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많은 자식들이 있었다. 소현세자도 인조에게는 많은 자식들 중 하나였겠지만 왕세자였고 굴욕을 함께 겪었으며 아비의 무력함으로 적국에 인질로 끌려가는 수모와 고통을 감내한 아들이기에 느끼는 감정이 남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인조도 전쟁의 상황이 수습 되고 조선 시대 가장 큰 문제였던 당쟁으로 인해 아들인 소현세자에 대한 좋지 않은 음모를 계속해서 듣다 보니 미안함이 증오로 변했다. 광해군에게 선조가 그랬던 것처럼. 조선 왕실 최대 비극 : 영조와 사도세자 “영조는 사도세가 경연에서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를 늘 점검했다. 서연에 참여한 신하들을 따로 만나 그들에게 세자의 학습 상태를 물어보곤 하였다. 매번 세자의 차대 뒤에 입대한 여러 신하들을 불러들여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사도세자는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감시를 당하는 상태까지 몰린 것이다.” (p.219) 가장 불쌍한 왕세자는 누가 뭐라 해도 사도세자다.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8일을 갇힌 채 죽어 간 왕세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짐작할 수조차 없는 절망이다. 정조,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가장 뛰어난 왕 중 한명인 영조는 가차 없고 잔인한 아버지였다. 백성들을 위해 구휼책을 내어넣고 당쟁을 지혜롭게 견제하며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한 왕이었지만 아들에게만큼은 너무 철저하고 너무 냉정하고 너무 잔인했다. 힘없는 왕이 되면 어떤 수모를 겪는지 알고 있는 아버지는 강한 아들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위로는커녕 제대로 된 사랑한번 건네지 않았다. 내 나이대 아들을 둔 아버지들이 거의 그렇다. 자신은 자식 많은 집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자란 것이 한이 되어 자신의 자식만큼은 제대로 공부시키고자 하는 마음. 자식만큼은 자신처럼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려서부터 무섭게 공부시키고 체벌하고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내 나이대 아들들은 그런 아버지들에게 상처를 받았다. 아버지들의 일방적인 사랑의 방식은 제대로 소화되지 않았다. 사춘기가 되며 아버지와 멀어지기 시작하고 그 틈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영조의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세자는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여 한 번 놀라고 두 번 놀라 마음의 병이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혜경궁도 ‘은혜와 사랑을 주시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p.222) 사도세자는 여린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더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 같다. 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더 강한 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사도세자는 그저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아들이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아들이고 싶었다. 줄곧 다른 지향점만 바라보던 아버지와 아들에게 비극이 찾아 왔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그렇게 무덥던 여름 3사관학교 훈련소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뜯었다. 태어나서 처음 받은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었다. 아직도 그 편지를 가지고 있다. 약해져 가는 아버지의 기대를 조금이라도 채우는 아들이고 싶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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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리뷰어 클럽의 [역사/지리] 분야에서 다섯 번째로 받은 책이다. 지금까지 리뷰어 클럽이나 서평단에서 받은 책 중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책이었다. 학창 시절에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과목이 국사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 등장하는 태조, 태종, 양녕대군, 선조, 광해군, 인조, 소현세자, 영조, 사도세자 등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 이웃을 대하듯 어떤 향수마저 느껴졌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책장도 쉽게 넘길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느낀 마음을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반가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학창시절에는 역사에 대한 내용은 무조건 좋아했었다. 소설이건 만화건 그 배경이면 거의 습관적으로 책을 펼치곤 했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는 태조와 태종, 태종과 양녕대군, 선조와 광해군, 인조와 소현세자,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는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자주 소개된 분야가 아니던가? 나로서는 나름 알만큼 아는 사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상식을 확인하겠다는 편안한 마음도 있었다. 둘째, 상식을 뛰어넘는 전개가 즐거웠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다시 보는 것은 반가운 면은 있지만 식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저자들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면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것이 저자들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실록이나 사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신뢰도 갔다. 곳곳에서‘아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즐거움도 느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대목들이다. 태조와 태종이 갈등이 깊어진 것은 태종의 정몽주 척살 때문이다. 그만큼 태조는 정몽주에 대해 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라는 관점이 새로웠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는 한 번도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정몽주의 피살에 대해 태조는 화를 내는 척했지만 은근히 반기는 것이 아닐까, 라는 것이 나의 상식이었다. 양녕대군이 세종에게 왕위를 양보한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양녕대군에게도 권력 지향적인 면이 있었다는 관점에도 수긍이 갔다. 문종 사후에 단종에게 모질게 대하던 양녕대군의 모습은 춘원의『단종애사』등에서 보던 캐릭터와 달랐기에 혼동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선조와 광해군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선조의 모습은 나의 상식으로는 의외였다. 지금까지의 선입감은 선조는 무능한 존재였고, 광해군은 유능했으나 당쟁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광해군의 뛰어난 외교술도 선조에게 배운 바라는 것은 새로운 지식이었다. 인조와 소현세자가 초기에는 애틋한 부자지정을 나눴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인조의 권력욕은 뜻밖이었다. 개인적으로 소현세자의 이른 죽음에 대해서는 아쉽게 생각하던 터라 관심 있게 읽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에서는 사도세자를 너무 희생자인 양 묘사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광기가 있었던, 다른 사정이 있었던 관계없이 사도세자가 난폭하게 측근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은 사실이다. 수십 명을 직접 때리거나 찔러서 죽인 것이 사도세자였다. 그래서 친모마저도 자식을 죽여 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책에서는 그 점에 대해 전혀 언급을 안 한 것이 의외였다. 셋째, 저자들의 일치 된 호흡을 느꼈다. 이 책은 신병주, 한명기, 강문식의 세 명의 저자들이 각각 1~2개 파트씩 나눠서 집필을 했다. 그러나 5편의 이야기가 마치 한 사람에 의해 쓰인 듯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자들 간의 상호 교감이 있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사실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역사적인 소재들을 실록과 사료를 근거로 해서 정리한 저작이다. 때로는 깊이 있게 파헤치기도 하고, 더러는 미처 살피지 못하고 지나친 사실들을 밝혀내서 그 인과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심심파적으로 읽기에도 좋고,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전문적으로 읽기에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이 보다 많은 독자를 만난다면, 우리 사회의 인문정신이 보다 성숙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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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작년의 일이다. 2015년 9월 영화 「사도」가 개봉을 했다. 그리고 위의 메모는 영화「사도」의 대사 중 일부분이다. 영화 「사도」의 대사중에 "왕가에서는 자식을 원수처럼 여기고 기른다고 했다." 라는 대사가 있다. 또한 속언 중에는 "아버지와 아들은 전생에서 서로 원수 사이였다." 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부자관계를 이야기 할때, '오이디푸스 코플렉스'를 운운하기도 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고대 그리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 에서 가져온 용어로, '적대감'이 콤플렉스의 핵심내용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조선시대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도서 「왕과 아들 」은 조선시대 살았던, 다섯 아버지와, 다섯 아들을 그린다. 그런데 이 아버지와 아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바로 이 나라 조선을, 호령한 군주요, 왕이 될 예정이던 세자였다. 제 1장은 조선 건국 패밀리인 태조와 태종, 제 2장은 태종과 양녕대군, 제 3장은 선조와 광해군, 제 4장은 인조와 소현세자, 그리고 5장은 조선왕실 최대 비극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름만 들어도 느낄 수 있듯, 이름만으로도 찬란했던 조선에서 일어난 "골육상잔"의 비극을 담고 있는 책이다.
또한,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으나, 도서 「왕과 아들 」은 수많은 가설들을 제시한다. "~였다면 어땠을까?",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흔히 역사책을 보다보면 알게모르게 역사가의 의견에 따라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건 한편으로 굉장히 위험하다. 그런데 도서 「왕과 아들 」은 그런 우려를 조금은 덜 수 있는 서적이기도 했다. 생각의 폭을 넓히기 좋은 역사서로 볼만 했다.
저자는 강문식, 한명기, 신병주 세명이기에 각각의 군주와 왕세자를 한사람의 주관적인 생각만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 세 명의 저자 모두, 군주로서의 아버지와, 그저 아들의 아버지로서의 내면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세자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 까지, 즉 양쪽의 내면을 그려내면서, 한사람만이 불합리하거나 비도덕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단 한사람, 양녕대군을 제외하고 말이다. 양녕대군의 경우 "왜 그랬을까?" 라는 의문을 들게도 했다. 무의 기질을 타고난 양녕에게, 아버지인 태종은 잘못을 질책하더라도, 군주로서와 아버지로서의 질책이었다. 반면 사도의 경우는 아버지 영조는 언제나 군주였었다. 그렇기에 사도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한 부분에 있어서는 이해가 가지만, 사도와 비교해 볼 때, 양녕대군의 경우, 태종의 배려를 보면, 행동이 이해가지는 않는 부분도 있다. 나의 짐작건데, 천재성을 타고 태어난 동생 충녕대군에게 어떤 질투심 혹은 열등감을 느껴 그런건 아닐까? 하는 짧은 견해도 가져본다.그래서 인지 양녕대군의 내면적 심리를 표현한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사실 앞서 읽었던 사도는, 자칫 사도세자는 너무 불쌍하게 죽었고, 영조는 사도에게는 너무도 잔인하고 비정한 아버지로서 인식되기 쉬우나, 도서 「왕과 아들 」속 영조는 아버지로서 사도를 걱정했던 순간들도 잘 담아놓았다. 결론적으로 「왕과 아들 」은 편향적 시각과 사고로 쓰여지지 않아 기분좋게 읽고 많은 영감을 얻은 책이었다.
※2016 포스트에 다섯 군주와 다섯 왕세자에 관한 내용이 요약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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