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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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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학교>에 이어 올레마운의 정체성 찾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가 <두 개의 이름>이다. 그저 책을 읽고 싶어서, 남들 가는 학교를 꼭 가보고 싶었던 올레마운은 막상 자신이 알게 된 학교의 정체를 알게 되자 이번엔 자신이 그토록 떠나려고 했던 자신의 집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된다. 규율과 강요가 전부였던 학교를 떠나지 못하게 될까봐 노심초사 했던 마거릿이 집으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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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학교>에 이어 올레마운의 정체성 찾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가 <두 개의 이름>이다. 그저 책을 읽고 싶어서, 남들 가는 학교를 꼭 가보고 싶었던 올레마운은 막상 자신이 알게 된 학교의 정체를 알게 되자 이번엔 자신이 그토록 떠나려고 했던 자신의 집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된다. 규율과 강요가 전부였던 학교를 떠나지 못하게 될까봐 노심초사 했던 마거릿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족을 만나던 날, 마거릿은 자신을 보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아빠 덕분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두 개의 이름>은 이렇게 학교로부터 탈출하듯 돌아온 가족의 품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학교만 벗어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던 마거릿이었지만 막상 돌아온 이곳에서 마거릿은 올레마운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외지인 같은 마거릿일 뿐이었다. 마음은 올레마운이고 싶은데 가족들과 말도 통하지 않고, 그렇게 먹고 싶었던 이누이트 전통 음식은 먹을 수가 없고, 옷이며 신발 등 모든 것이 불편한 마거릿처럼 가족들이나 이웃들 또한 마거릿에게 거리감을 느낄 뿐이다.

 

"신발만 빼면 나는 여느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한테 나는 흑인 아저씨만큼이나 낯선 외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학교에 다니다 온 아이들을 이상하게 변해 버린 존재로 여겼다."...73p

 

 

단 두 해 만에 자신의 언어를 잊어버린다는 게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아주 어린 나이라며 2년 만에 가능할 수도 있지만 올레마운이 학교로 떠날 때는 9살이 아니었던가! 역시 세뇌교육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또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자신이 변해버린 지도 모른 채로 집과 고향을 그리워하다 돌아왔는데 그토록 그리워하던 모든 것들이 자신이 생각하던 것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혼란을 이 어린아이가 도대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하지만 변함없는 엄마의 애정과 늘 따뜻이 포용해 주는 아빠의 보살핌 덕에,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당당함을 잊지 않고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마거릿이기에 마거릿은 조금씩 올레마운을 되찾아 간다. 올레마운이 진짜 강한 이유는 자신을 인정하고 본래의 자신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점일 것이다. 또한 흑인 아저씨를 바라보며 자신을 생각하고 그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모습까지......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가겠지만 우리는 결국 돌아올 것이다. 외지 사람들의 지식이 우리 몸에 깊이 배어들겠지만 우리 부족의 지혜도 함께 지니고 있으리라."...110p

 

주위 환경이 변하면 우리 개개인은 그 사회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내 것만 옳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것은 만용일 테니까. 하지만 그 사회에 무조건 따른다면 과연 무엇이 남겠는가. 변화에 따르지만 내 자신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진보적인 변화가 아닐까. 그래서 올레마운의 용기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일 것이다.



y****s 2013.10.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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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주니어]두 개의 이름 _ iBbY 어너리스트 수상작
"[푸른숲주니어]두 개의 이름 _ iBbY 어너리스트 수상작" 내용보기
두 개의 이름, 푸른숲주니어, ibby 어너리스트 수상작, 크리스티 조던 펜턴/마거릿 포키악 펜턴, 창작동화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던 <나쁜학교>를 만나고 나서 가슴찡한 감동을 받았는데요. 이누이트의 정신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올레마운의 이야기를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나쁜학교>에 이어 <두 개의 이름>에서는 주인공 올레마운의 어떤 이야기로 감동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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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이름, 푸른숲주니어, ibby 어너리스트 수상작, 크리스티 조던 펜턴/마거릿 포키악 펜턴, 창작동화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던 <나쁜학교>를 만나고 나서 가슴찡한 감동을 받았는데요.

이누이트의 정신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올레마운의 이야기를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나쁜학교>에 이어 <두 개의 이름>에서는 주인공 올레마운의 어떤 이야기로

감동을 안겨줄지... 기대감에 책장을 넘겼어요.

아동책이지만 글밥이 좀 많아서 엄마인 제가 먼저 책을 읽고,

천천히 아이와 함께 다시 읽어보기로 하였답니다..ㅎㅎ

 

 


 

 

서구 사람들의 캐나다 원주민 말살 정책으로 원주민 기숙 학교 생활을 하게 된 이누이트 올레마운은

끝없이 허드렛일과 형편없는 음식으로 바싹 여위고, 안색도 파리하게 변한 단발머리가 되었어요.

2년만에 돌아왔지만, 변해 있는 올레마운을 보고 "우리 딸이 아니에요!"라고 말을 하는 엄마~

그만큼 올레마운의  2년이란 시간은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시간이란 걸 말해주겠죠.

엄마도 딸을 못 알아볼 정도라니 말이죠..

다행이 아빠는 올레마운을 알아보고 꽉 끌어안아주었어요.

이누이트 말을 까먹어 엄마, 동생들과의 대화도 힘들었지만, 원래의 올레마운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써요.

하지만, 기숙학교에 익숙해져서일까요? 마거릿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요.

예저의 올레마운과 서구문물에 물든 마거릿에서 혼란스러운 올레마운은

자기의 본모습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데요.

다시 이누이트의 올레마운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늘 새로운 것이 좋은 것 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환경에 무조건 속할려고 하고, 적응할려고 노력하지만,

그건 시간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자연스럽게 속하는게 최고란 생각~

억지로가 아닌 내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것을요.

이누이트의 올레마운과 서구 문물에 물든 마거릿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올레마운은

아빠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새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어요.

올레마운의 아빠처럼... 우리 아이들이 힘들고 지치고 외로울때 부모라는

이름아래 항상 울타리가 되어주고, 바람막이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숨쉴공간을 마련해줘야겠어요.

캐나다 북극해 이누이트들의 가슴 아픈 역사를 바탕으로 실화라는 사실이 놀라운데요.

부록으로 올레마운의 사진첩과 시대적 배경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어서

책을 읽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답니다.

 

 

c*****o 2013.10.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두 개의 이름] 끔찍한 학교로 돌아가야만 하는 아픈 현실.. ㅠ.ㅠ~~
"[두 개의 이름] 끔찍한 학교로 돌아가야만 하는 아픈 현실.. ㅠ.ㅠ~~" 내용보기
푸른숲주니어에서 출간된 '두 개의 이름'은 '나쁜 학교' 다음으로 이어지는 도서라고 할 수 있어요. '나쁜 학교'에서는 글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간 올레마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올레마운은 아빠에게 조르고 졸라 겨우 학교에 가게 되지만  그곳은 학교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착취하는 곳으로 올레마운이 생각했던 학교의 이미지와는 다
"[두 개의 이름] 끔찍한 학교로 돌아가야만 하는 아픈 현실.. ㅠ.ㅠ~~" 내용보기



 

푸른숲주니어에서 출간된 '두 개의 이름'은 '나쁜 학교' 다음으로 이어지는 도서라고 할 수 있어요.

'나쁜 학교'에서는 글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간 올레마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올레마운은 아빠에게 조르고 졸라 겨우 학교에 가게 되지만 

그곳은 학교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착취하는 곳으로 올레마운이 생각했던 학교의 이미지와는 다른 곳이었어요.

학교라는 이름을 가장하여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곳이었지요.

올레마운이 들어간 기숙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담당하는 수녀님이 나오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수녀님 이미지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수녀님의 이미지는 곱고 선한 인상에 남을 위해 봉사하는 그런 이미지인데 이곳에서는 계모 수준으로 등장한답니다.

올레마운은 자신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학교에 가게 되면서 학교에 가게 된 걸 후회하게 된답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사용하게 되고 오로지 영어만 사용하면서

자신이 쓰던 언어를 잊어버리고 생활습관까지도 바뀌게 되지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간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요.

 

 

 

 

'두 개의 이름'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올레마운의 이야기입니다.

학교라는 곳에서 벗어나 마침내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 올레마운은

2년 만에 만나는 첫 만남에서 엄마는 올레마운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어요.

얼굴은 까맣게 변했고 삐친 단발머리에 야위었었거든요.

올레마운은 학교에 들어가서야 아빠가 왜 그렇게 학교에 보내는 걸 반대했는지 알게 되었답니다.

기숙학교에 있는 내내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올 그날을 기다리며 다시는 학교에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어요.

하지만 올레마운은 2년 동안의 기숙학교 생활로 자신이 쓰던 언어도 잊어버리고

자신이 뱅크스 섬에서 먹던 음식들조차도 입맛에 맞지 않아 먹을 수가 없었어요.

뿐만 아니라 밥을 먹기 전에는 가족의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면서 기도를 해야 한다고 얘기했지요.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면서요.

기숙학교에 있는 수녀님들은 공부는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종교에 관한 부분은 가르쳤나 봅니다.

아이들에게 종교에 관한 부분은 지도하면서 그들이 하는 행동이 과연 종교인으로써 잘하고 있는 행동인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답니다.

 

 

 

 

 

뱅크스 섬에서 친하게 지냈던 아그네스도 이번에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아그네스의 엄마는 영어만 쓰는 올레마운과 아그네스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어요.

행동이나 언어가 외지 사람 같다면서 둘이 함께 만나는 것도 싫어했어요.

사실 올레마운 역시도 영어를 쓰면서 가족과 소통이 되지 않아 많이 불편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말을 해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거든요.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묻는 말에 '쏘리(sorry)'라는 답변만 여러 번 반복하여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었어요.

올레마운은 카믹을 신고 달리다가 넘어졌는데 뱅크스 섬에서 살 때는 그 신발이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기숙학교에서 운동화를 신어 보니 처음엔 발이 꽉 조이고 바닥이 딱딱해서 이상했지만

이젠 카믹 대신 운동화가 자신의 발을 보호해 준다는 걸 알고 기숙학교에서 신던 운동화를 신어보기도 한답니다.

환경과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부분이었어요.

올레마운도 자신이 이렇게 변할 줄을 몰랐을 거예요.

 

 

 

 

 

"너한테 정말로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할 것 같구나. 네가 크게 용기를 내야 할 거야."

 

"정부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라고 한단다."

 

"뱅크스 섬에서 지낼 때는 정부에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걸 피할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

앞으로 외지 사람들이 점점 더 몰려올 거야.

저들의 말과 글을 배우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할 거다.

가게 점원만 해도 네 엄마한테 사지도 않은 물건값을 물리곤 하잖니?

네 엄마는 글을 읽지 못해서 바가지 쓴 것도 모르고." < 본문 p. 103  일부 발췌 >

 

 

 

 

문명이 발달할수록 배워야 하는 건 맞지만 원하지 않는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이누이트들의 아픈 현실들...

차라리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뱅크스 섬에서 살았을걸 그랬나 봅니다.

물건을 팔거나 배를 타고 이동하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조금 불편하긴 해도 그곳의 생활이 어쩌면 더 행복했을지도 몰라요.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억지로 학교에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요.

뱅크스보다는 도시인 툭토약툭에서 사는 것이 생활하기에 편리해 어쩔 수 없이 그곳을 선택해야 하는 부모들.

그렇기에 아이들을 기숙학교로 보내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지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 그 마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기숙학교가 어떤 곳이라는 걸 보여주는 부분은

학교로 떠나는 배가 들어왔을 때 아그네스가 도망쳤다가 배가 떠났을 때야 돌아오는 부분에서 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동화로 엮어주었기에 더 가슴 아픈 동화였답니다.

k****4 2013.10.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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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이트의 슬픈 역사와 삶,두 개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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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만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 가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누이트 뿐만이 아니라 아만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그외 오지에서 자신들만의 방식과 역사 문화 전통을 지켜가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점점 현대 문명이라는 침범아래 점점 그 터전을 잃어가기도 하지만 현대 문명에 물들어 가 더이상 그들만의 고유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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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만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 가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누이트 뿐만이 아니라 아만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그외 오지에서 자신들만의 방식과 역사 문화 전통을 지켜가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점점 현대 문명이라는 침범아래 점점 그 터전을 잃어가기도 하지만 현대 문명에 물들어 가 더이상 그들만의 고유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다. 그렇다고 그들이 현대 문명에 발을 들여 놓고 잘 적응해 가는 것이 아니라 원주민의 가진 고유한 삶의 방식과 현대 문명 사이에서 방황하듯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장면을 많이 보기도 했지만 이누이트족의 이중적인 삶을 다룬 다큐를 본 기억이 있는데 그 내용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누이트들은 자신들의 삶을 지켜 나가고 싶지만 환경이 또한 예전과 같지 않다. 점점 환경은 파괴되고 그들이 살아갈 터전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대 문명인들이 그들의 삶으로 침범하여 두 문화가 충돌하기도 하는 현장의 아픔을 보고는 먹먹하던 순간이 '올레마운 포키악' 의 삶의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래 땅의 주인이며 그곳에 역사를 두고 있는 이들을 내쫓고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원주민 기숙학교를 짓기도 하고 상점을 짓기도 하고 원주민의 삶을 흔들어 놓은 외지인들, 그곳에 올레마운은 2년여 동안 부모와 동생들과 떨어져 이누이트 언어가 아니고 생황방식이 아닌 영어와 수녀들에 노동을 강요당하고 완전히 원주민이 아닌 문명인처럼 바꾸어 나가기도 했지만 이년이란 세월동안 몸과 마음은 이누이트족이 아니라 외지인이 다 되어버렸고 적응을 해 버렸다. 그들의 언어를 쓰지 못하게 강요당하였기에 이누이트들의 말을 다 잊었고 음식 또한 그들의 부드러운 음식에 길들여졌는가 하면 옷과 신발 또한 거칠고 추위를 막아주는 옷과 신발이 아닌 스타킹과 캔버스화에 어느새 길들여져서 그녀가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 왔지만 엄마도 그녀의 동생들도 낯설어 하는가 하면 같은 동네 사람들도 낯설어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 마음을 아빠만은 알아 주면서 그녀를 다독인다. 그들이 선택한 삶이 아니기도 하지만 아빠는 그들의 삶이 침범 당하는 가운데에 적응해 살면서도 자신들의 고유의 삶과 문화를 잊지 않게 올레마운에게 가르친다. 그들은 뼈 속 깊숙히 '이누이트' 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아무리 겉치레로 외지인의 언어와 음식 옷을 걸친다고 이누이트가 외지인으로 변하지는 않다는 것를 딸에게 가르친다.

 

올레마운에게 2년이란 기숙학교에서의 삶은 그녀에게 친구도 빼앗아 갔지만 이누이트족에게도 섞이지 못하고 겉돌게 만드는 그야말로 이중적인 아픔을 가져다 준다. 그렇다고 깊숙히 자리하고 들어오는 외지인의 삶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 또한 능사가 아니란 것,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를 해야 상점에서도 피해를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니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살아 남기 위해서 선택이란 어쩔 수 없다. 이누이트는 천막을 치고 이동하는 삶을 하지만 올레마운의 아빠는 변화에 적응하듯 천막과 통나무로 통나무 집을 짓고 정착의 삶을 선택한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버지를 도와 옆에서 힘을 보태며 다시금 이누이트 삶을 다시금 불러 일으키고 언어를 다시 배우고 다시 이누이트로 돌아 온 올레마운,이제는 2여년전의 기숙학교에서 돌아 왔을 때의 나약한 올레마운이 아니다.아빠가 선물해 준 올레마운의 개인 개썰매도 자신 있게 끌고 아빠의 일을 돕기도 하는 그야말로 당당하고 강인한 이누이트로 우뚝 성장을 한 가운데 다시금 정부의 뜻에 따라 동생들과 함께 원주민 기숙학교에 가야만 했다. 하지만 이젠 강인해졌기에 동생들도 책임질 수 있는 여성이 된 것이다.

 

이누이트는 그야말로 거친 자연에서 살아가는 야생의 삶에서 현대 문명에 갇혀 부드러운 것에 하루아침에 익숙해지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나이가 어려도 그들은 뼈 속 깊이 이누이트다. 그들의 삶을 바꾸고 그들의 땅을 빼앗기 위한 기숙학교 생활은 부모도 힘들게 하지만 본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큐에서도 보았지만 적응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 이었다. 야생에서의 그들의 삶이 도시의 각박한 삶에 깃들여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고집하며 21세기및 그 이후의 삶을 고집한다는 것은 글쎄 언제까지 이어나갈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그들의 삶을 너무 침범하는 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을 한다. 이 이야기는 거짓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그들의 슬픈 역사를 조명한 이야기 이기에 더욱 맘이 아프다. 뒷이야기와 [올레마운의 사진첩] 에는 이야기의 맞는 사진들이 있다. 올레마운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외지의 문화가 그들의 삶 깊숙히 침투하여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여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이야기들이 있어 참고로 본다면 더 이해가 빠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의 일제 강점기를 생각했다. 우리의 말과 글 모든 것을 버려야 했던 시간,그 잔재는 아직도 우리 삶에 뿌리를 깊숙히 내리고 있다. 이누이트의 삶과 역사 또한 아픔을 겪고 있는데 현대인의 욕심만 내새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역사를 존중하고 지킬 것은 지켜 나가야 한다고 본다.

 



y******2 2013.10.08.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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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어린이책센터 최고의 어린이 청소년 우수도서-두개의 이름
"캐나다 어린이책센터 최고의 어린이 청소년 우수도서-두개의 이름" 내용보기
나쁜학교 를 읽고 두번째 만난 책이 바로 '두개의 이름'이에요. 원주민들의 정신과 문화를 없애고 그들의 땅을 빼앗고자 하는 서구 열강들의   방식때문에 이누이트족인 올레마운은 2년동안이나 모국어를 쓰지못하고 영어만 쓰다가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음식이나 언어를 거의 잊어버린 뒤라 또 하나의 아픔이 기다리고 있는것을 알지 못한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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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학교 를 읽고 두번째 만난 책이 바로 '두개의 이름'이에요.

원주민들의 정신과 문화를 없애고 그들의 땅을 빼앗고자 하는 서구 열강들의  

방식때문에 이누이트족인 올레마운은 2년동안이나 모국어를 쓰지못하고 영어만

쓰다가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음식이나 언어를 거의 잊어버린 뒤라 또 하나의 아픔이 기다리고 있는것을 알지 못한채로 말이죠.

 

 칼을 갈 때 쓰는 숫돌이라는 뜻의 올레마운 말고도 외지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마가릿이 또다른

이 아이의 이름이지요. 마치 일제치하에 우리가 강제로 이름을 개명했듯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깊은 공감을 하면서 이책을 읽게 되었던듯 싶어요.

 

 

 

 

 너무나도 공포스럽고 힘든 삶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지만 엄마조차

딸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 올레마운은 또다시 학교로 끌려갈가 싶어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되지요.

 

지난 이 년간 어둠 한 조각 없는 여름낮과 햇살 한 자락 없는 겨울밤을 보내며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을 얼마나 꿈꾸었던가?

내가 매일같이 꿈꿔 오던 만남은 결코 이런 꼴이 아니었다.

 

 

집에만 오면 다 벗어날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그들에게 남겨진건 더 처참한 현실 뿐이네요.

이누이트의 말을 다 잊어버린 올레마운은 가족속에서도 소통이 안되 힘들기만 합니다.

더구나 유일한 학교 단짝이였던  친구마저도 영어를 쓰지말라는 그의 엄마때문에 만나기도 힘들지요.

 

음식도 안맞고 의사소통도 안되니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힘든 올레마운은

답답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추운 북극에 어울리지 않는 교복과 운동화를 신느라 힘들었는데 정작 집에와서는

또 적응하느라 힘든 올레마운입니다.

정체성을 찾지못해 힘들어 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우리네 역사까지 투영되어 보이더라구요.

 

 올레마운은 마을에 나타난 흑인아저씨의 모습을 통해  자신에게서 느낀 '외로움'을 발견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가지며 두빌악(악마)라고 단정짓는 어른들 틈에서 올레마운은

차츰 그를 동정하게 되기도 하지요.

 

책을 무척이나 즐겨읽었던 올레마운에겐 흑인아저씨는 '걸리버여행기'에 나온 거인으로도

생각된답니다.  말이 안통하는 답답함, 외로움을 이겨내고 그나마 자신을 이해하고 바라봐주는

아빠 덕분에 차츰 적응을 하게되는 과정이 고스란이 담겨있어요.

 

 

쏘리,쏘리....

마을아이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 무조건 쏘리,쏘리만 외쳐대던 올레마운은

아빠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느낀 불안감을 그대로 겪어내야 했네요. 바로 학교로 돌아가는것!!

 

올레마운, 넌 할 수 있어!

 

아빠는 정부의 요구때문에 어쩔수 없이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는 결정을 하게 되요.

올레마운은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또 다시 떠나야만 했지요.

그런 올레마운을 보며 아빠는 할수 있다는 용기를 줘요.

 

 

거위가 부러웠다.

누구도 거위한테 이쪽 말고 저쪽으로 가라고 지시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겨울을 난 뒤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텃새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올레마운은 힘들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빠를 위해, 또 동생들을 지켜주기 위해

그렇게 맘을 숨기고 또다시 기숙학교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네요.

 

슬...프...다 

 

 

굳은 이누이트 정신으로 다시한번 노동일을 견뎌나가는 올레마운입니다.

 

이누이트 족들이 변해가는 세상을 어떻게 맞아들였는지 슬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에요.

책을 읽는 아이들은 이 글을 읽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지도 모른답니다.

 어린 올레마운이 겪은 이 이야기는  자신의 것을 지키고 강인해지기까지의

힘든 역사가 담겨있어요.

 

 

 

 

 올레마운은 외지 사람들의 지식이 몸에 배어들겠지만 자신의 부족이 옛부터 가지고 내려온

지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어합니다. 더욱 강한 이누이트가 된 것이죠.

우리가 배워야 할점들이 어린 아이들의 시선에서 감성적으로 그려져 있네요.

 


 

u*********3 2013.10.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두 개의 이름]나는 누구일까
"[두 개의 이름]나는 누구일까" 내용보기
푸른숲 어린이 문학의 32번째 이야기 <두 개의 이름>. 이 책을 읽기전에 31번째 이야기 <나쁜학교>를 읽으면 더 좋지 않을까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나쁜학교'의 그 다음 이야기라 할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 책을 읽지않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받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 전에 이 소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다면 이 책에서 만나는 소녀의 마음을 좀더 이해할수 있테니까요.
"[두 개의 이름]나는 누구일까" 내용보기

푸른숲 어린이 문학의 32번째 이야기 <두 개의 이름>. 이 책을 읽기전에 31번째 이야기 <나쁜학교>를 읽으면 더 좋지 않을까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나쁜학교'의 그 다음 이야기라 할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 책을 읽지않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받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 전에 이 소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다면 이 책에서 만나는 소녀의 마음을 좀더 이해할수 있테니까요.

 

 

아수라백작도 아닌데 이 소녀의 얼굴은 두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발머리의 소녀와 긴 머리의 소녀. 도대체 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짧은 머리칼과 홀쭉한 볼, 야윈 몸매 그리고 아무 표정없는 두 눈동자.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올레마운이 낯설기만 합니다. 학교에 가기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오동통한 볼에 긴 머리칼을 가졌던 자신의 딸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렇게 오고 싶었던 올레마운도 이제 자신이 살던 곳이 낯설기만 합니다.

 

"우리 딸이 아니에요! 올레마운이 아니라구요!" - 본문 10쪽

 

자신을 '올레마운'이라고 부르는것도 낯섭니다. 얼마나 불리우고 싶었던 이름인데 이제는 그 이름이 낯설게만 들립니다. 어렸을때부터 먹었던 음식조차 입에 맞지 않습니다. 고래지방의 구린내, 말린 생선의 비린내, 오래되어 퀴퀴한 고기 냄새 때문에 속이 메슥거립니다. 이제는 이누이트말보다 영어가 먼저 나옵니다. 이렇게 변한 자신의 모습을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라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힘든 올레마운입니다. 학교에서는 늘 집이 그리웠는데 집이 편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숙학교에서의 2년동안은 행복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그 시절이 그리울때가 있습니다. '마거릿'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것이 싫어 돌아왔지만 이젠 '올레마운'이라는 자신의 이름조차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자신이 '올레마운'인지 '마거릿'인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영어로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와 이웃 사람들. 이전의 '올레마운'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것일까요.

 

외지 사람들의 지식이 우리 몸에 깊이 배어들겠지만 우리 부족의 지혜도 함께 지니고 있으리라. 나는 동생들이 그 지혜를 잘 지닐 수 있게, 집이 우리한테 어떤 의미인지 잊지 않게 해 줄 작정이었다. 집이란 안전한 곳일 뿐만 아니라 가족이 있는 곳, 그래서 서로서로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나는 다시 올레마운 포키악이 되었다. - 본문 110쪽~111쪽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자신이 정확히 누구인지 혼란스러운 한 소녀가 있습니다. 그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묵묵히 지켜봐주는 아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그 따스함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외로움을 알기에 더이상 외롭지 않도록 아빠는 이누이트 '올레마운'이 될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문명이라는 거대한 바람이 불어오는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나가는 사람들. 그 안에서 아직 어린 '올레마운'은 진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이고 누구인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누이트의 강인함이 배어 있어서일까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갑니다.

n******e 2013.10.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