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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저자들의 논문선이라 별점을 고민하게 만들었고, 이것 역시 속물적인 리뷰 쓰기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책을 기획한 백욱인 씨의 논문을 여러 번 읽어 보았다. 체계적인 시간상의 흐름이나 촘촘한 연구결과가 눈에 띄게 반가운 글이었다. 이 논문을 읽고 나면 잉여인간, 하이퍼 일상, 87년 에토스 체제, 포스트 87적인 주체 형식, 잉여의 에토스, 두려움 없이 실천하는 윤리라는 글들이 눈에 보인다.
논문들을 다 읽고 나서 저자들의 수 많은 인용서적-놀라운 일인지 모르나 대부분 우리 집에 이 책들이 있었다-과 저마다의 주제의식이 전혀 다른 조합인 듯도 하나 논문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주제와 연결이 안 된다고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책을 읽으며 의아한 부분은 정치의 연예화 부분은 읽고 수긍할 수 있으나 33페이지의 의미화의 기술이라는 말은 억지에 가까운 표현이 아닌가 싶어진다.
헤겔이나 칼비노등 다양한 저자의 독서 연구기록은 돋보이지만 밀도 깊은 글은 아니다. 비판적인 부분도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는지 양극단을 달리고 있 다. 그럼에도 이 책에 별점을 5로 주는 이유는 이런 글들이 근저에 없어서 반가 운 마음이 커서이다. 단언컨대 내가 이 책을 읽은 2주간 아무도 이 책을 보는 사람을 만나질 못 했으니 어쩌면 사람들의 속물적 베스트셀러 편중도 있을 것이다.
연습장을 빼곡하게 적어가며 이 책에서 인용된 글이나 단어, 저자들의 논문이 인용된 원텍스트를 찾아보았다. 아직도 우리가 레닌이나 헤겔, 신자유주의에 대한 연구나 포스트모던한 구세대의 이야기로만 여겨지는 논리성들이 적어도 논문들에선 새로 태어나듯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현세태나 정치, 잉여적 인간, 속물근성에 기초한 폭넓은 청년문화의 탐구가 돋보인다. 지식공작소의 책들을 근저에 몇 권 더 구입할 생각을 갖게 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책이 전혀 색다르거나 재미가 있다거나 하지 않았지만 요즘 젊은 교수들이나 학자들, 연구진들의 글 쓰기를 맛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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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속물이라고 하면 무언가 비정상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속물근성이라든가, 속물이 주는 의미가 지극히 냉소적이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엔 심오한 뜻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속물은 체제 내에 안주하며, 재산,지위 축적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며,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대세를 이루고 있다. 보수층과의 결합, 치안, 나라와 교회, 자식을 통해 자신을 찾으려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고 속물의 자기 것 지키기에 대한 에토스를 지켜주기 때문에 치안정치에 집중하며 위협과 폭력을 일삼으며 기득권을 유지해 가려 한다. 부류로는 명품, 외제차, 유학을 지향하며 자기 스스로는 결여된 작은 속물이 대표적이며, 정치의 문화화에 주력하고 교회,학교, 병원이 넘치는 현실을 직시한다. 반면, 잉여는 속물 대열에서 이탈한 몸의 비듬과도 같은 조재로 컴퓨터와 게임에 몰입한 폐인과도 같은 생활에, 병신 짓, 루저, 수동적 아웃사이더, 경쟁 낙오자로 냉소주의를 바탕으로 자기 비하를 담고 있다. 졸지에 찾아와서 꽤 오랜 시간 지속되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문화의 정치화를 지향하며 생산 영역에 참여하지 못하는 주체들의 경제,문화적 조건을 띤 잉여적 삶을 의미한다. 주로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디시인사이드, 오유, 일베를 통해 문화 생산물을 양산해내며 잉여짓을 통해 정보자본주의의 밑거름을 마련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글은 논문 9편을 잉여에서 추린 글로 소개하고 있으며 특정주제인 속물, 잉여를 다룬 논문선집이다. 사회과학적 개념이라기 보단 문학적 수사에 가까운 개념인 주제를 다루면서 지식인, 민중은 속물로 대체되고, 민중신학은 속물신학으로, 민중사회학은 속물사회학의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젊은 잉여 세대가 처한 처지, 그들의 생각, 행동이 지닌 의미와 사회구조적 연관성 여부를 논하며, 늙은 속물, 늙은 잉여까지 확장하여 살펴보고 있으며, ‘이미 속물이지만 벌써 속물은 되지 말자’는 취지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김홍중, 삶의 동물 속물화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귀여움 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을 통해 ‘인간은 못돼도 괴물은 되지말자’며 자만심과 허위의식, 세속, 편협, 타락, 허영, 나르시시즘, 사랑학대, 애정집착을 보이는 속물에 대한 평범한 것이 악이 되는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실존없는 속물 근성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속물의 세계에 동화되기 전의 자존심, 냉소, 멸시, 자신이 속물임을 아는 한에서 고급속물이며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속물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진정성이 결여된 존재감이 자기 고유의 척도인 속물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을 내비치고 있다. 김상민, 잉여미학
에서는 88만원 세대가 겪는 워킹푸어, 비정규직, 파트타임노동자, 일바, 계약직, 인턴, 이주노동자, 사회부적응자등의 잉여인간을 다루고 있다. 구조조정, 위기관리, 노동유연화, 선진화,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동계급의 삶을 다룬 프레카리아트(불안정 무산계급)에 관해 심도있는 논의를 하고 있으며, 잉여 파워, 잉여짓과 뉴미디어로 무장된 웹2.0의 파워를 갖고 있다. 주로 버려진, 버림받은 잉여 시간의 불안정한 주체들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한윤형, 루저는 세상속의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에서는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 속의 루저를 통해 세숫대야에 고여있는 물과 같은 존재이자, 새로운 것은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한 꿈, 희망, 열정이 무기치함을 알고 있다. 엄친아 역시 고액연봉노동자일뿐이며, 그이상도 아니다라고 규정짓는다. 김수환, 웹툰에 나타난 세대의 감성구조 에서는 디시인사이드의 웹툰(웹+카툰), 병맛 만화(병신스러운 어떤 멋), 조롱의 미학에 대해 논하고 있는 데 이말년 웹툰을 통해 특유의 구조를 파헤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기발한 전개를 바탕으로 뜬금없는 결말을 유도하는 기승전병 구성, 유희적 공통코드, 비합리, 우연성, 비주류, 자기비하, 수동적 자의식을 토로하고 있다. 잉여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체계에 의해 부정되며 부차적 취급이; 아닌 식별조차 되지 않는 존재이자 주변도 아닌 부분도 될 수 없는 존재로서의 냉소, 패배적 잉여를 다루고 있다. 서동진,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해부학 혹은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 데 개인의 자유를 통해 개인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할 것인가를 규정하면서 대안으로 사회적 기업을 모색하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논제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속물과 잉여의 극복 대안으로 인간성 회복이 유일한 희망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공유와 나눔, 공동체 복원, 평등기반확대, 사회적 기업 등을 탈출구로 보고 있다. 꽤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논문이지만 주류는 역시 금융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현실을 주시하고 극복할 수 있는 대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으며, 인간성 회복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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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는 편이다. 책 읽는 공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통 오가는 시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그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곤 하는데, 이 책은 들고 다니며 읽고 좀 민망한 면이 없지 않았다. 제목 자체가 마치 나의 이름표인양 강렬하다. '속물과 잉여'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보여지는 것에 연연하는 체면치레에 민감한 속물적인 존재이자 생산 활동을 하는 시간 외의 나머지를 잉여적인 '컴질'에 쏟아붓는 여느 서대와 다름없는 잉여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런 내가 '속물과 잉여'를 들고 읽고 있다니. 마치 '철수사용설명서'를 들고 있는 철수와 같이 느껴진다.
사실, 잉여와 속물에 관한 글들은 많다. 그동안 나왔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보면 속물적인 인간에 대한 잉여적인 삶에 대한 글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 논문선에서도 많은 작품들이 언급되곤 하는데, 처음 몇 편이야 파격이고 세태반영이겠지만 반복되다보면 물리고 지루하고 그래서 결국은 '뭐 어쩌라고' 하기에 이르게 되는 면이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속물과 잉여라는 주제를 떡하니 들고 나온 책을 읽게 된 까닭은, 이 책이 논문을 모아놓은 선집이라는 이유에서 였다. 소설에서 보여지는 그렇고 그런 비슷한 삶의 구질함이 좀 지겨운 찰나 좀 더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시선으로 이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논문선을 읽어보고 싶다는 속물적인 마음과 잉여 시간도 있었을 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속물이나 잉여라는 단어의 광범위함과 트렌디한 뜻의 사용을 잘 못 짚어낸 부분도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가 속물이니 잉여니 하는 건 그렇게 딱딱한 범주로 설명되는 뜻이 아니기도 한데.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증여의 논리' 부분은 그저 디시인사이드 소개글에 지나지 않은, 그것도 아주 단편적인 내용들만을 뜬금포로 나열하는 정도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렇게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잉여스러운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내포하는 말인 것 같아 하고싶지 않지만, 현 시대를 반영하는 코드로 학술적인 분석을 했다기 보단 이런 문화나 현상이 있었다는 소개 나열에 머무른 것 같아 아쉬웠다.
학부 때 레포트 작성하려고 몇 편 뒤적여 본 것이 다 인 논문을 아예 선집으로 모아서 볼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겐 새로웠다. 그 점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는데, 주제가 주제니 만큼 논문 사례들도 흥미로운 것도 많아서 부담갖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글들에 비해서는 다소 딱딱하고 생각했던 것에 비해서는 가볍게 읽었다. 읽으면서 이 책의 리뷰군을 디시나 다른 거대 포털 쪽에 두면 어떨까, 더 재미있는 리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좀 더 실험적인 책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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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선1
논문집이라는 이 책의 소개를 보면서 적잖이 망설인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전의 경험에서 대개 논문이라는 문서들이 읽기가 만만치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관심은 있지만, 이쪽과 관련된 도서나 문서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던 점도 이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주저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호기심가는 제목과 그 내용이라는 점에서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고,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기대반 호기심 반이었지만, 역시나 제게는 쉽지 않은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책에 나온 내용들이 익숙하지 않았고, 참고도서들의 목록을 살펴봐도 거의 모르거나, 제목을 알아도 읽어보지 못한 도서가 너무 많아서 였는데요. 읽는데 시간이 걸리고,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아서 고생한 부분도 있었지만, 여기저기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아가며 읽다보니, 나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만한 내용들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포기하기 보다는 꾸준한 도전이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다는 개인적인 만족감도 약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논문의 경우,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자의 의도나 논문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은 넘어가고 다음 번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는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너무 한 번에 이해하려고 드는 제 자신의 모습이 약간은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를 통해 자신의 시선을 한 번쯤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논문선 1권이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제게는 익숙하지 않은 분야와 그와 관련있는 논문이라 읽기 쉽지 않았지만, 이번 경험을 토대로 해서, 다음에 이런 분야의 책을 본다면 좀 더 쉽게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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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도 민주화의 큰 흐름 이후 1990년대 인터넷의 확산 그리고 1998년도 IMF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또다른 변혁을 맞이하지 않았나 한다. 1986년도에 대학에 입학하고, 민주화란 큰 물결속에서 학문이나 스펙보다는 사회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졌고, 1994년도에 수월하게 직장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으며, IMF를 겪으면서는 내 위의 선배들이 아무 힘없이 직장에서 떠나는 모습을 접했고, 그리고는 후배들이 직장에 몸담기 위해 힘겹게 도전하는 모습을 지켜 봐왔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인터넷 공간을 통한 급격한 변화속에서 절반은 공감하고, 일부는 따라가기 조차 힘겨운 세상이 도래하였음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사회에서 잉여인간이라는 낱말이 여러 공간에서 회자되고 있음을 안다.
‘속물과 잉여’ 이 책에서 저자는 지금 당신은 어떤 유형의 속물인지, 아니면 잉여인간인지 판단해보라고 한다. 책의 제목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논문 8편을 통해 그 해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속물’은 체제 내에 포섭되어 축적하고 소비하는 주체다. 재산과 지위를 축적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다. 그러나 정작 자기 주체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없다. 생족력이 매우 질기고 거짓말도 잘한다. 위선자와 졸부 중에 많았으나 이젠 인구의 다수를 차지할 만큼 대세가 되었다. 비록 악덕 소유자이지만 악의 화신이 도리 만큼 용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선한 윤리의 힘든 경로를 추구할 진정성도 있지 않다.
반대로 ‘잉여’는 속물 대열에 가담하여 속물 지위를 얻고자 노력했으나 실퍄한 자들 가운데 속물 되기를 유예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체제 안에서 살지만 이상한 방식으로 체제에 포섭된 몸의 비듬 같은 존재다. 주로 인터넷에서 패러디를 즐기지만 심하게 인정 경쟁에 빠져들면 현실로 걸어나와 엽기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기도 한다. 최근 이들이 하는 ‘잉여짓’이 정보자본주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리는 속물이기 원할까 아니면 스스로 잉여이기를 희망할까? 모두가 속물로 살아가는 길에 들어서고 있다. 다만 어쩌면 도태는 아니더라도 속물의 진행과정에서 일부 잉여짓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우리 이미 속물이지만, 벌써 속물은 되지 말자’라고 외친다. 하지만 잉여는 우리 사회의 어였한 한 문화, 구성원으로 인정하여야만 한다. 그들로 인해 우리 사회의 또다른 경제현상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들은 점점 더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상에서 그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가치, 문화, 생산 등은 점점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듯 한다. 물론 비정상적인 일부 인간들로 인해 부정적이고 병폐적인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잉여에 관한 문제는 그들 자신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시각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들 또한 우리가 만들고 쳐 놓은 울타리속에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아픔을 겪은 세대이다. 그들의 지금은 과거 우리가 만들어 놓은 사회문화에서 어쩔 수 없이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인터넷 커뮤니티 형태뿐만 아니라 개인 블로그나 익명의 다수 혹은 개별적인 사용자들의 댓글이라는 형식으로 자칭 잉여들이 등장하면서 유행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잉여들은 자신의 전문적인 혹은 잡다한 지식이나 기술을 이용하여 타인들이 모기에 무의미한 시간낭비로 어떤 특정한 사인에 개인하고 이것을 ‘잉여짓’이라고 부른다. - 본문 중에서 - 』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신자유주의적 무한 생존 경쟁의 룰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탈출구가 없는 세대”, 그들이 잉여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들 젊은 세대들의 답답한 현실은, 그들에게 탈출구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잉여로 시스템 바깥에 방치되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탈주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탈구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잉여들은 “열정과 삽질 사이에서“ 헤매면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 나서야만 한다. - 본문 중에서 - 』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88만원’세대가 언급되면서라고 한다. IMF 이전에 우리 사회는 기업들은 빚을 졌지만 개인들은 저축을 사회였지만 이후에는 기업들은 돈을 쌓아두지만 개인들은 빚을 내어 돈을 굴리는 사회로 변모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변화는 가정의 근간을 흔들었고, 개인은 어쩌면 점점 구석으로 몰릴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 과정에서 흔히 말하는 루저가 탄생한 것은 아니었을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스펙을 쌓고 자기계발서를 통해 노력하면 초반 어느정도까지는 어려움을 겪겠지만 결과적으로 무난한 사회일원으로 편입될 수 있었지만 이젠 그 자체가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나름대로 노력하더라도 소외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되어지고,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함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그동안 학문적인 범주에서 발표된 내용을 일반인들에게 내보이기 위해 편집된 것이라 그런지 문맥 자체는 상당히 어렵게 나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적인 용어도 많이 등장하지만 최근 새롭게 생성된 용어도 많아 현실감각이 무뎌진 우리같은 사람들은 몇번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는 동안 지금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접했던 사회, 문화 등의 흐름이 조금은 친근하게, 그리고 펀안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