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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수십만년 전에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 오랫동안 수렵 생활을 하다가 정착을 하였으며 문명을 이룬지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농경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눈에 띄지 않께 서서히 발전해 왔으나 산업 혁명 이후부터 변화의 속도는 급격하게 빨라졌고 현대 사회는 IT 기술의 등장으로 더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면에서는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 갖가지 사회 문제가 발생하기 나타나고 있네요. 사회학자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사회를 분석하고 있으며 이들의 성과는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나 아렌트와 관련된 책을 읽었었는데 지그문트 바우만 역시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지그문트 바우만의 삶과 철학을 다룬 '지그문트 바우만' 이 나와서 책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책의 두께를 보고는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하였지만 내용이 쉽고 자세해서 재미있었네요.
바우만은 폴란드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 유럽 각지에 정착을 하였고, 달리 정체성을 지켜나가면서 사회에 동화되는 것을 거부한 사람들이 많았네요. 폴란드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폴란드는 주변을 둘러싼 열강에 의해 분할 통치된 아픈 기억이 있어 비슷한 고통을 겪은 유대인들에게 호의적일것 같지만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유대인을 더 차별하였네요. 바우만 역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폴란드인으로서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배척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평생을 따라다녔는데 말년에 다시 폴란드에 돌아와 자신이 어릴때 살던 곳에 가보았을때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요.
두 번의 세계대전은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우만은 폴란드에 살고 있다가 러시아로 이주하였으며, 그 곳에서 그의 사상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공산당에서는 첩보 요원으로 활약하였으며 전쟁이 끝나고 폴란드에 돌아온 이후에는 마크르스 이론가로 명성을 얻었네요. 이후 반유대 정책으로 인해 이스라엘로 떠났다가 영국에 정착해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폴란드에서 태어았지만 폴란드인과 유대인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었고, 러시아, 이스라엘,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살았던 경험은 그의 사상을 정립하는데 영향을 미쳤을것 같아요.
영국에 정착한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저술 활동을 시작합니다. 한때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전세계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 이후에는 국제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패권을 강요했고 식민주의 정책으로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네요. 바우만은 이러한 사회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시각으로 분석하면서 다수의 책을 펴냈고, 많은 사람들이 바우만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서 명성이 쌓였네요. 바우만의 삶에 대해 자세히는 몰랐는데 책을 읽어나갈수록 바우만이 얼마나 뛰어난 사회학자인지 알게 되었네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각종 문제들은 더 다양하면서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바우만처럼 쉬운 언어로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바우만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중요한데 어렸을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바우만에 대한 모든 것을 읽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지그문트바우만 #이자벨라바그너 #북스힐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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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는 계몽주의의 후예들이다. 계몽이성과 휴머니즘은 좌파의 몸에 새겨진 두 가지 근본 타투다. 우리에게 '액체 근대' 혹은 '유동하는 근대'로 잘 알려진, 폴란드의 유대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서구 좌파 진영을 대표하는 유명한 대중지식인이다. 세계적인 지식인 바우만의 몸에도 이 두 가지 타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액체 현대』나 『리퀴드 러브』란 책으로 바우만의 담론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그의 핵심 담론이 현대성, 포스트모던 윤리, 세계화, 소비주의, 구성주의 등과 맞닿아 있다고 보지, 마르크스 이론이나 역사유물론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영국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기 전까지, 바우만의 원초적인 사상적 토대는 공산주의였다.
평전의 저자 이자벨라 바그너는 바우만의 주요 활동기를 크게 '폴란드 시기', '영국 시기', '국제 시기' 세 흐름으로 나눈다. 먼저 폴란드 시기는 명실상부 공산주의 운동가로 활약한 시기였다. 바우만은 정치 장교로 복무하며, 공산주의 정당의 첩보 요원으로도 일했다. 전쟁과 군대를 치열하게 경험한 바우만의 청년기를 떠올리면, 영화 「피아니스트」 같은 유대계 폴란드인의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같은 긴장감 넘치는 첩보물이 오버랩된다. 폴란드 공산당이 주도한 극렬한 반유대 캠페인으로 인해 바르샤바대학 교수직을 박탈당하기 전까지 바우만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활동했다. 바우만은 자신의 대학원 은사로 역사유물론을 강의한 율리안 호흐펠트와 사회학 세미나로 유명한 스타니스아프 오소프스키를 언급한 바 있다. 율리안 호흐펠트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원칙을 강조하고, 교조적인 스탈린주의와는 거리를 둔 수정주의 진영의 거두였다.
1960년대 후반, 바우만은 조국 폴란드를 떠나 잠시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학계의 보스는 이스라엘 최고 명문인 히브리대학교의 사회학과 학과장인 슈무엘 아이젠슈타트였다. 한국인에게 아이젠슈타트는 매우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의 스승이 바로 그 유명한 마르틴 부버다. 문제는 바우만이 강조하는 인본주의 사회학과 아이젠슈타트의 구조 기능주의 접근법이 서로 양립하기 어려웠다는 데 있다. 물론 두 사람은 성격도 연구 스타일도 많이 달랐다.
한편, 영국 시기(1968~2000)는 1971년 영국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던 시기다. 바우만이 지도한 박사반 학생인 키스 테스터의 회고담이 흥미로웠다. 테스터는 박사 과정을 끝낸 뒤에도 지도교수인 바우만과 가까이 지냈고, 친구이자 공동 연구자가 되었다. 저자는 "두 사람의 관계는 경력 동조가 일어나는 3단계 모형인 일치-융합-상징적 공동 연구에 꼭 들어맞았다"고 평한다. 참고로 테스터는 2004년에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회 사상』을 출간한다.
1989년 이후, 바우만은 리즈대학에서 은퇴한 뒤 폴리티 출판사에서 본격적으로 근대성과 탈근대성에 관한 일련의 대표작들을 출간한다. 가령 『입법자와 해석자』(1989),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1989), 『근대성과 양가감정』(1993)등이 있고, ‘액체’와 '유동'의 은유를 통해 현대 서구 사회의 불확실성과 현대인들의 불안과 공포로 점철된 삶을 깊이 통찰한 『액체현대』(2000)는 바우만을 세계적인 지식인이자 포스트모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거듭나게 한다.
국제 시기(2000~2017)는 세계적인 사상가로 우뚝 선 바우만의 노년기로, 2000년부터 2010년 사이에 해마다 책을 적어도 한 권을 출간하는데, "내용은 소비주의, 세계화, 근대성, 탈근대성, 두려움, 사랑, 혐오, 반유대주의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끈 사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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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주관적 의지는 매우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 구조가 개인의 의식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월등히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삶은 바로 그 사회학적 관점으로 본 인간의 존재 양식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의 삶이 여러 사람들의 토론 주제가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삶을 통해 이뤄진 여러 성과와 업적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계속해서 이야기된다는 것. 이것들이야말로 시대의 상징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장면일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런 기준에서 보아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 중 한 명임을 이번에 새로 나온 『지그문트 바우만 - 유동하는 삶을 헤쳐나간 영혼』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바우만이 태어난 때는, 독일에 붙어 배신한 유대계 폴란드인들 때문에 폴란드인들이 모든 유대인을 적대시하는 시기였다. 폴란드를 지지하는 ‘동부 유대인’ 같은 집단도 있었으나, 폴란드 사람에게는 다 같은 유대인일 뿐이었다. 바우만은 바로 이때 태어났다. 훗날 지그문트 바우만이 사회주의자로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이러한 배경과 더불어 당시 전 유럽을 휘감고 있던 지독한 전염병 때문이었다. 그 전염병은 끊임없는 차별과 학대와 억압으로 인간을 분리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반유대주의였다. 이는 인종차별 혹은 파시즘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반유대주의는 비단 유대인에 대한 차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와 그들을 구별지어 우리의 이익을 지키고 증폭시키는 반면 모든 손해와 피해는 약자들, 이를테면 당대나 지금이나 사회적 소수자들, 또는 소수민족이나 정치경제적으로 미약한 상태에 있는 집단이나 국가들에 떠넘기는 비인간적이고 악의적인 모든 생각과 시도를 의미한다.
이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개인사를 휘몰아친 폴란드 역사의 비극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강대국 사이에 끼어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고 확립해나가지 못하는 폴란드의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가 좌우이념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현대에 이르러 경제와 정치 문제에까지 적용시켜 끝없는 소모적 다툼으로 세월을 낭비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폴란드 안의 반유대주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전쟁 이후 민족 차별이 없는 폴란드, 정의로운 사회가 자리 잡은 폴란드를 꿈꾸며 소련이 지원하는 새 정권에 계속 몸담았다. 민족 차별과 파시즘을 온몸으로 겪어낸 지그문트 바우만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차별이 없고 정의로운 폴란드의 새 시대를 여는 해법이라고 여겨졌다. 물론 우리에게 경계심을 주는 소련이나 북한식 공산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책에서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말 그대로 이상향에 가까운 사회주의로서의 체제를 믿었고 꿈꾸었던 것이 젊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상이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스스로를 폴란드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유대인으로 규정되어 끊임없이 그 영향을 받으며 살았다. 심지어 사회주의 체제에서 뛰어난 역량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군인이자 당원으로 살아갔지만 결국 본인이 유대인이라는 사실과 반유대주의에 의해 경력에 발목이 잡히고 만다. 물론 이 군에서의 경력 단절은 21세기의 독자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좌파 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폴란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했지만, 스탈린은 그런 생각을 가진 폴란드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죽였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다른 목소리를 내면 공산주의자라도 거침없이 죽였다. 진정한 공산주의는 불가능했다. 오로지 우상숭배를 바라는 독재자의 강압만 있을 뿐이었다. 이상향을 꿈꾸었던 지그문트 바우만도 조금씩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승승장구하던 군대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지그문트 바우만은 학문을 통해 다시 한번 그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소비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자본주의 시대에 그의 삶과 지성을 통과한 빛나는 통찰은 시간이 갈수록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의 삶이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유대인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획일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모든 유대인이 다 야훼 신앙을 가진 것도 아니며, 세속주의적 유대 사상을 통해 타협적이고 융통성 있는 유대인으로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폴란드인 정체성과 유대인 정체성 사이의 긴장”. 이 말이 지그문트 바우만의 삶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남들이 규정하는 자신의 정체성 사이의 부조화와 갈등을 의미한다. 이것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바우만 자신을 둘러싼 사회구조, 사회적 환경이었다. 이 책은 이러한 사회구조적 압력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뒤흔들 수 있는지, 혹은 특정한 삶의 양식 안에 개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가둘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매우 큰 울림을 줄 것이 확실하다.
#지그문트바우만, #이자벨라바그너, #김정아, #북스힐,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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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유동하는 삶을 헤쳐나간 영혼 사실 이 책을 마주하기 전까지 그는 나에게 생소한 인물이었다. 이렇게 평전이 나올 정도로 세계적인 인물이며 사상가인 그를 사실상 관심이 없다면 모를 수도 있겠지만, 상당히 두꺼운 이 책을 읽다 보면 과거의 나를 조금은 반성하고 민망한 쑥스러움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유동하는 세상에서, 관찰자가 아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애썼던 인물. 사회 역동을 묘사하고 현대 사회를 해석한 인물. 폴란드에서 태어나 셰계 대전을 겪고 폴란드로 망명을 떠났고, 또 다시 소련과 영국을 거치며 그 어느 곳에서도 머물지 못했던 이방인. 세상은 그를 ‘현대 사회를 번역한 세계적인 사상가’라고 부르고 있다. 계몽의 자식으로 공산주의에 입문. 마르크스 주의를 거쳐 포스트모던 좌파로 생을 마쳤다. 생전에 악마는 우리와 그들 사이에 선을 긋는 선택의 충동 속에 웅크리고 있다는 말을 남긴 그는 폭풍같았던 역사 속에서 특정한 정체성의 경계에 갇히기를 거부한 코스모폴리탄 지식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사상가의 이야기는 어렵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선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사상이라는 개념 대신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본다는 생각으로 읽는 것이 접근하기에 조금 수월해 보인다. 그렇게 흥미를 갖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세상이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따라가 보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공산주의를 표방했지만 그것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지금의 시선으로 사상을 보기보다 그가 바라던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사상은 시대가 만드는 것이고 그것을 믿는 순간부터 이면의 것들은 변절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의 용어를 뒤로하고 전쟁 직후의 삶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이해한다면 그 이상의 감정이 느껴진다.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유대인이라는 위험 속에서도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있었던 사람. 흔들리는 바람과 배신 속에서도 굳건히 자신의 믿음과 사상을 유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가치가 느껴졌다. 그의 평전을 읽으며 사상가로서의 삶과 인생을 함께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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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분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전기를 리뷰해 보겠습니다. 책 제목은 지그문트 바우만입니다.
책은 전기(한 사람의 일생 동안의 행적을 적은 기록)+에세이 형식이기 때문에 지그문트 바우만이 겪은 역사적 사건들이 개인의 경험과 기록에 의거해 순서대로 펼쳐집니다. 일단 세계사 특히 유럽사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책으로만 보며 추론하건대 정말 어렵더군요. 그래서 여러 사상들에 대해 검색하고 공부하면서 읽었습니다. 맨 밑에 정리해 놨어요. 지그문트 바우만이 겪은 건 제2차 세계대전이지만 원래 반유대주의가 강했던 건 오히려 독일보다도 러시아였답니다. 그런데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러시아에서 많은 난민이 동유럽으로 이주하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반유대주의가 만연해있던 유럽에 더욱 많은 혐오 세력이 생겼다고 하네요.
히틀러와 나치는 무려 유대인 약 600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찾아보니 본격적인 홀로코스트 이전부터 서서히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며 유대인을 죽여갔네요. 정말... 정말 끔찍하고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이 정말 힘들게 살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앞부분을 보면 참 가슴 아픕니다. 책을 읽다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폴란드도 불쌍하지만 그 안에 살던 유대인들은 더 불쌍해서 못 볼 지경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디에서나 천대받았고 증오의 화살을 돌릴 좋은 대상이었어요.
위치상으로 왼쪽에 독일, 오른쪽이 소련이라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에게 거의 동시에 침공 받아 점령되었고 정말 많은 분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이 민족 말살 정책을 폈듯이 소련 또한 폴란드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고 독일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하네요. 폴란드 전 인구의 20%가 사망했고 특히 유대인은 10명 중 9명이 학살당했다고 합니다. 또한 유대인과 폴란드인 사이에서도 대립이 일어나 폴란드 주민들이 독일군과 손잡고 유대인을 학살한 사건도 많았다고 하네요.
중세 이전부터 반유대주의는 존재했고 평범한 폴란드인들조차 반유대적이었답니다. 거기다 근대로 오면서 폴란드 민족주의가 흥하며 반유대주의 또한 강해져 홀로코스트, 포그롬 등이 발생하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학살당하던 유대인들을 구해준 폴란드인들도 있습니다만 나치 독일의 학살이 너무나도 계획적으로 끔찍하게 신속히 이루어져서 생존자는 적습니다.
기독교의 영향 때문인지 유대인은 어디에서든 공공의 적이었고 같은 유대인이어도 어느 세력에 속해있는지에 따라서 차별이 이루어졌다고 하네요. 책에서도 이스라엘로 넘어갔지만 여러 문제들로 인해 지그문트 바우만은 영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폴란드에 살던 유대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으로 도피해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때 당시 회상이 나오는데 정말 무섭습니다.
우리나라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6.25전쟁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고통을 당하셨나요.. 저희 외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십니다. 그때 얘기를 해주셨는데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어린 바우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러나.... 소련과 독일의 전쟁이 발발하게 되죠.
아마 도망치지 않은 유대인들은 모두 죽었을 겁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은 제2차 세계 대전중에 벌어진 독일과 소련의 전쟁 중 일부입니다. 찾아보니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병력을 동원한 단일 군사 작전이라네요. 전사자만 약 100만 명에 달하고 소련군 290만 명과 독일군 400만 명을 합해 총 700만에 가까운 군인들이 싸운 군사 작전입니다. 나치의 손에 잡힐 뻔했지만 바우만의 가족은 운 좋게 흐름을 읽고 소련으로 도망치는데 여기서도 바우만은 정말 운 좋은 사람이라 생각됩니다.
스탈린주의가 만연한 소련에서 훼손되지 않고 오랫동안 잊혀진 러시아의 문학과 철학과 역사가 담긴 원본들을 닥치는 대로 탐욕스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고 지식을 쌓으며 바우만은 엄청나게 성장했을 것입니다.
바우만은 성장해 제2차 세계 대전 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오른쪽 어깨에 총을 맞기도 했지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전쟁을 수습하는 과정도 생생히 나오는데 여기서도 유대계 폴란드인이 자신의 재산을 되찾으려다 숱하게 목숨을 잃었다고 나오네요...
힘들게 써놓은 원고라든지 바우만의 아내가 썼던 일기들이요... 전쟁 중에 썼던 일기들이고 정말 소중한 기록인데 폴란드 정부가 압수했다네요. 폴란드 정부에게 여러 차례 바우만의 원고나 전쟁 중의 일기를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폴란드는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정말 울분이 터집니다. 바우만은 정말 평생을 이념과 사상의 대립 속에서 살았습니다. 극우들에게 감시당하고 생명을 위협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유대인을 차별하고 미워하는지 민족주의가 도대체 뭔지... 유럽은 딱 붙어있는 땅이지만 언어도 다양하고 인종도 다양하고 지금 2022년에도 인종 차별이 만연하죠. 코로나로 인해 아시안에 대한 차별은 더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훨씬 오래전부터 이러한 차별이 있어왔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유동하는 삶을 헤쳐나간 영혼이 이 책의 부제인데 유동의 뜻이 액체 상태의 물질이나 전류 따위가 흘러 움직임입니다. 액체 근대, 유동하는 근대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창시하고 표현한 개념으로 그의 책 제목과도 같습니다. 여러 비판들도 있고 수작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이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들, 사회학에 관심 있으신 분들 그리고 전쟁, 사상, 역사에 대해 관심 있거나 자신의 지식수준을 높이고 싶으신 분들이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좋은 책이었습니다. 바우만이 부디 하늘에선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책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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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는 삶을 헤쳐나간 영혼이자 현대 사회를 번역한 세계적인 사상가
북스힐에서 출판한 이자벨라 바그너의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평전과 자서전 형식을 취하는 도서이다. 기본적으로 평전이지만, 책 중간에 바우만의 남긴 인터뷰와 그의 출판물을 왕왕 싣고 있어 그의 행적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도서이다.
이자벨라 바그너는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폴란드 포즈난 음악대학교에서 음악교육학을 전공하고, 이후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첼로 연주 거장들의 사회적 생산을 연구하여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폴란드 콜레지움 시비타스대학교 사회학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CNRS의 DynamE 부연구원이자 파리 융합이주연구소, 바우만 연구소의 연구원이다. [ 지그문트 바우만 책날개 중 ] Photo by Iwona Castiello d'Antonio on Unsplash 지그문트 바우만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현대철학 사상가이며 근대를 새롭게 해석한 인물로 다른 책에서 종종 만나곤 했다.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은 현대 사회의 처절한 경험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야 했다.
폴란드 포즈난에서 태어난 바우만의 어린 시절은 고난 속에서 행복이 있었다.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부모는 바우만에게 문학과 책을 사랑하며 몇 시간 동안 책에 빠져드는 경험을 선사했다.
닥치는 대로 고전과 문학을 섭렵한 바우만은 폭력에 노출된 자신의 신분에 차츰 깨닫게 된다. 부모조차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체득한 바우만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에도 노출되었다.
폴란드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의 광풍은 나치를 피해 폴란드를 탈출하여 소련으로 도피하게 했다. 소련의 사상에 심취한 바우만은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했고, 스탈린 체제하에서 사회가 사상을 이용해 어떻게 변질할 수 있는지 경험했다.
청년 바우만은 징집에 동원되어 모스크바 경찰이 되었다. 모스크바인에 의한 내란을 두려워한 스탈린은 치안을 외국인에게 맡겼다. 전쟁에 참여하고자 했던 바우만은 군에 자원입대했고, 사관학교에 입교 후 부사관이 되었다. 신설된 폴란드군 보병부대의 보안대에서 장교로 근무했다.
유대인으로 자신에게 찾아온 입학과 승진은 기적과도 같았다.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서 인정받은 바우만은 유대인이라는 신분을 감추어야 했다. 소령으로 진급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관이었지만, 바우만을 따라다니는 것은 폴란드군 장교이기에 앞서 유대인이었다. 반유대주의는 그의 진급을 가로막았다.
바우만은 군에서 대학으로 옮겨갔다. 바르샤바대학교에서 바우만은 석사 논문 지도교수 호흐펠트를 만난다. 사회주의자였던 바우만은 공산당의 모순을 발견하고 자신이 속한 세상이 모두 옳지 않다는 현실을 보기 시작했다. 호흐펠트의 정직한 지식 추구가 의심을 더 부채질했다.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로 활동한 바우만은 1968년 새로운 시련을 경험했다. 폴란드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의 절정기에 교수직을 잃고 국적을 박탈당한 채 조국을 떠나,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주목할 점은 폴란드어를 모국어로 하는 바우만에게 언어는 늘 새로운 도전이었다. 러시아어, 영어를 끊임없이 연마해 어느 정도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사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Tel-Aviv Photo by Shai Pal on Unsplash 이스라엘에서는 사생활은 안정적이었지만, 대외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중동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고립되었고, 자녀가 커가며 군대 문제가 걱정이었다. 바우만은 이스라엘을 떠나 더 큰 문명사회에 속하기를 바랐다.
바우만은 미국으로 가고자 했지만, 그의 전력은 학자의 길이 아닌 반공전문가로 활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영국에 가기로 했다.
마침내 리즈대학교에서 정착하며 끊임없는 이주 생활은 한 바우만은 정착하게 된다.
우연찮은 일로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학과장이 되었지만, 바우만의 정체성은 이주민이자 경계인이었다. 교수 사회는 외국인 억양으로 말하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지식으로 무장한 바우만을 의심의 눈초리로 마뜩잖은 시선을 보냈지만, 해가 지날수록 존경과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
바우만이 분석한 현대 사회의 특성은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한다. 단단한 근대사회는 개인주의의 확대로 액체 근대 즉, 유동하는 근대로 변모하였다.
그는 자산이 경험한 전쟁 이전의 반유대주의와 전쟁 동안 벌어진 홀로코스트를 히틀러의 광기나 비합리성에서 발현한 것이 아니라, 근대 합리주의의 결과로 바라보았다.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의 강력한 힘을 몸소 체득한 덕분에 끊임없이 유동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대신할만한 액체 근대는 이렇게 탄생했다. 많은 학자는 바우만이 분석한 사회상을 동조했고, 바우만은 세계적인 석학의 반열에 올랐다. 바우만은 자신의 정체성과 소속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 곧 ‘주된 지위’ 사이에서 끝없이 투쟁한 영역에서 가장 크게 성공했다. 바우만의 삶은 지위의 충돌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다.
사람들은 바우만의 지위 즉 폴란드인이냐 유대인이냐, 공산주의자냐 사회주의자냐, 철학자냐 사회학자냐는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아예 의식하지 못했다.
바우만은 손에 넣기가 거의 불가능한, 하나뿐인 특별한 주된 지위를 얻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지위를.
<지그문트 바우만>은 한 사람의 다채로웠던 행적을 시기별, 장소별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바우만의 일생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이 책을 한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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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서와 그 내용들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었다. 2017년 이었나보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그의 마지막 저작 레트로토피아가 국내 번역되어 읽었었다. 당시 유럽은 중동에서의 난민에 대해, 북미에서는 남미 등지에서의 난민에 대해 장벽을 세우자는 여론이 암묵적으로 우세하게 퍼져나갔던 시기였고, 샤를리 앱도 사건 등의 테러리즘과 경제적 요인들을 이유로 이들 국가 정치권과 언론 일부가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부추기며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양상을 보였던 때로 기억한다. 이런 홉스로의 회귀의 상황을 분석하고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상황에서 심화된 불평등에 대한 시론이었고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경끼를 일으키는(?) 기본소득에 대한 주장도 기억에 남아있다.
이 책은 바우만의 전기이다. 사회학자이자 사상가인 바우만의 일대기를 다루며 역시 사회학자인 이자벨라 바그너가 바우만의 생애를 실증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바우만 본인의 인터뷰, 그의 가족들과 그들의 저술, 바우만의 동료 학자들과 제자들의 인터뷰 및 서한들, 공산당 및 공안 첩보문서들, 동시대 같은 소속 또는 같은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인터뷰 및 자료들을 아우르면서 그의 인생을 구성해내고 풀어낸다. 폴란드 포즈난에서 유대인으로서 차별을 받으며 보낸 성장기, 2차대전에서 폴란드와 이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정치 상황과 이에 변화하는 국내 정치 상황들. 이 상황을 활용해 희생양을 만들고 이득을 얻는 자들. 바우만은 아버지의 자살시도를 기억하고 유대인 차별을 받는 장면도 목격한다. 그래도 바우만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수많은 포그롬과 쇼아, 전쟁의 희생자가 된 유대인들과는 달리 살아남아 러시아로 도망치고 대학에 입학후 장교로 지원하여 폴란드를 수복한다. 전후 공산 폴란드체제에서 보안대로 소속되고 이후 바르샤바 대학에서 철학 등을 공부하며 사회학자로서의 길을 걷는다. 스승 호흐펠트의 영향으로 열린 막시즘적인 사회학 연구와 활동을 진행하며 당시 폴란드 공산정권에 수정주의자로 또는 유대인으로 주요인물로서 낙인찍히지만 바우만은 본인 스스로 사회주의자로서 폴란드 인으로서 이상적 세계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여기며 기투한다. 하지만 68년 고무우카의 연설로 폴란드는 반유대주의를 선언했고 국가주도 포그롬을 실시하며 바우만은 가족과 폴란드를 떠난다. 이후 이스라엘로 가지만 시오니즘으로 건국하고 중동전쟁에 승리한 직후인 이스라엘에서 맞이한건 또다른 민족주의였고 이곳의 사회학은 국가 체제를 위한 것이었다. 결국 다시 영국 리즈 대학으로 적을 옮기고 이후 학과장으로서 교수 생활과 은퇴후 저술 활동에 매진하여 주저로 일컫는 액체 근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등의 작품을 쓰는 과정, 아내이자 평생의 토론자이자 편집자였던 아내 야니나의 죽음과 본인의 죽음까지 일생을 다룬다.
책의 초반부터 중반부에 이르는 상당 부분이 유대인으로서 폴란드인이 되지 못하고 경계지어지는 (심지어 장교로 전쟁에서 무공훈장을 받아도 이후에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 장면들을 많이 다룬다. 이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정세적 역사적 요인들의 결합이었던 것으로 저자가 사회학적 시각으로 보여준다. 이후 열린 막시즘의 연구와 모퉁이 클럽, 모순추구회 같은 젊은 학생들의 지하 정치토론클럽을 지지하는 반체제적 활동과 학문연구 및 저술 활동으로 이어지는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바우만 이론의 변화 과정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바우만의 삶을 통해 그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 이르는 과정과 이유를 알게 해주는 책이었고 액체 근대 시리즈와 불평등 시리즈 외의 그 이전 저작들의 내용이 궁금하게 되었다. (국내 번역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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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폴란드에서 반유대주의를 경험했고, 나치를 피해 폴란드를 탈출했고, 소련에서 난민으로 살았다. 굶주림에 시달렸고, 군인으로 전쟁을 겪었고, 폴란드에서 친소련 정권을 완성할 때는 공산주의 정당의 선전원으로 일했다. 스탈린주의의 몰락을 목격했고, 전후 폴란드에서 권위주의와 불완전한 민주주의가 서로 힘을 겨루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바우만은 평생 두 번 난민이 되었다. 한번은 1939~1944년, 다른 한 번은 1968년이었다. 유랑하는 삶은 바우만의 선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삶이 바우만을 덮쳤다. (-14-)
패거리를 이룬 소년들은 지그문트의 존재를 발판 삼아 '유대인 박해 의식'을 수행했다. 소년들에게는 그런 행동이 '애국하는 폴란드인'이 될 기회였다. 민족주의에서 비롯한 이 정체성,'애국하는 폴란드인'에서 중요한 요소가 반유대주의였으므로, 소년들은 자신들이 '폴란드인의 정체성을 수호' 하는 데 헌신한다고 증명하고자 유대인인 지그문트를 사냥했다. (-45-)
루블린은 폴란드의 새로운 정치 질서를 상징하는 임시 중앙 정부가 들어선 임시수도가 되었다. 임시 정부는 전쟁이 끝나면 자유선거를 시행해, 새 국제 정치 질서에 걸맞은 방향으로 폴란드를 탈바꿈시키겠다고 약속했다. (-161-)
그 뒤로 몇 달 동안,바우만은 낮에는 국내보안대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학교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주경야독은 오래가지 못했다. 1952년 12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의사들의 음모'가 터지자 소련과 동맹국들이 반유대주의에 휩싸였다. 주로 유대인인 의사 집단을 겨냥한 날조한 혐의가 동유럽 전역에서 유대인 숙청을 부추겼다. 폴란드와 국내보안대도 그 물결을 비켜가지 못해,바우만도 목표물이 되었다. (-271-)
가장 흥미로운 보고서는 소규모 토론에 참관한 정보원들이 작성한 것이다. 열띤 토론이 오가는 이런 자리에서는 참석작들이 자제력을 잃고 진짜 속내를 말하기 마련이다. 폴란드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토론 주제 하나가 물가 인상이었다. 국가가 통제하는 시장에서 물가 인상은 마우 정치적인 결정이다 정권이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387-)
앞서 말했듯, 폴란드를 떠나는 사람이 가져갈 수 있는 돈은 1인당 5달러 뿐이었다. 당국은 은행계좌의 잔액을 입증할 서류를 원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1968년에 바르샤바의 상점에서 괜찮은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안았는데도, 돈이 있는 유대인은 되는대로 물건을 사들였다. 그런데 출국 서류에 기재된 물건은 모두 사용한 증거가 있어야 했다. 새 물건은 반출 금지였다! 출국에 팔료한 방대한 행정 서류 비용을 치르고자 해외에서 들여온 자금을 쓰는 것도 불법이었다. (-446-)
나는 야니나의 책을 읽은 뒤에야 내가 홀로코스트를 얼마나 몰랐는지 정확히 말하면 얼마나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는지를 되돌아보았다. '내가 속하지 않았던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뚜렷해졌다. 그때껏 나는 순진하게도, 기존에 알던 지식으로 홀로코스트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겠거니 지레짐작했다. (-552-)
지그문트 바우만은 1925년에 태어나 2017년 사망한다. 폴란드에서 태어났으며, 폴란드 사회에서 반유대주의의 실체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 와중에 유럽 전역에는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겪었던 지그문트 바우만은 히틀러가 자행한 유대인 제노사이드 , 홀로코스트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고찰하였다. 100년전 유대인이 잔혹하게 가스와 실험의 희생양이 되어서 ,죽을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죽는 것이 유대인의 정서상 , 폴란드 사회에 만연해 있었던 , 유대인혐오주의,반유대주의 정서가 나타났으며,그들이 죽은 것이 폴란드의 미래를 위해서, 국가 차원으로 볼 때, 애국하는 길이었다. 중국과 조선이 일본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일본인을 죽이는 길이, 두 나라의 시선으로 볼 때,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유대인혐오주의는 맥락이 일치하고 있었다.
2017년에 세사을 따났던, 백년 가까이 살아왔던 지그문트 바우만은 폴란드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두번의 난민으로서 겪었던 지난날의 기억과 경험들이 , 유대인 혐오와 유럽 전역에서 발생한 제노사이드가 발생한 원인과 인과관계와 연결되었으며,그가 생각하였던 수정 자본주의의 보편적인 특징, 사회학과 철학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정치철학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가 살았던 그 시기에는, 민족, 언어, 봉교, 전통의 실체에 대해서, 유대인이 만든 시온주의와 그것이 만들어진 전 과정을 그의 삶 전체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유대인 박해의식이 애국하는 폴란드인을 만들었다. 폴란드 사회 정역에서, 유대인은 그닥 필요하지 않았고, 매장되어 마땅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그들을 쫒아냉 명분이 부족하였으며, 양대전을 빌미삼아,유대인을 빈털털이인 상태로 국외로 추방 하여 내밀어 버리게 된다. 바르샤바 대학교 교수였던 지그문트 바우만이 시온주의의 성지였던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교에서 지도교수이자, 교육자로 명성을 날릴 수 있었던 건 그가 겪었던 전쟁과 68 혁명이 그의 사상의 원 뿌리로 만들어졌기 에 가능했다. 그에게 처해진 감시와 첩보작전, 억압의 실체, 친미 ,친서구 사회학자로서, 그가 보여준 학자로서의 자질들, 그것이 그의 삶 속에서, 아내 야니나와 함께 하였고, 조국 폴란드에서 나와 첫째 딸 안나와 두 쌍둥이와 함께 이방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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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를 보낸 저자의 경험담, 책의 내용이나 언급되는 주제 자체가 무거운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알아야 하는 역사적 사건과 사실에 대해 진솔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더 많은 자전적 에세이북으로 볼 수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 개인의 생애를 조명하거나 유명한 분들이 보고, 느낀 감정이나 경험담 등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에 있어서 어떤 가치가 중요하며, 무엇을 위해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 의미에 대해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공하기도 한다. 책에서 언급되는 시대상이나 저자가 말하는 생각과 표현들로 볼 때, 우리의 일제강점기가 연상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일지 모른다.
전쟁의 화마가 전 유럽을 닥쳤던 시대를 몸소 체험했고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저자는 삶에 대한 용기와 긍정,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지식인으로 볼 수 있고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책에서 말하는 삶의 연속성이나 유동성 등을 어떤 형태로 우리는 배우며 마주해 나가야 하는지도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누리는 평화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생각해 보게 된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나, 이런 개인들이 모여 집단의 목소리나 더 나은 형태의 방향성으로 나아가게 되는 순간, 많은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항상 극단적인 상황에 몰릴 경우 인간은 누구나 내면의 본성이 작동되기 마련이며 이를 통해 전혀 다른 선택을 행하는 사람도 많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그래도 배움의 가치를 어떤 형태로 사용할 것이며 각종 사회문제나 현상에 대해서도 때로는 용기있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 유럽사회가 갖는 특수성과 그들의 단면적인 모습이나 지금과 같은 단합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도 당시의 시대상을 통해 역사적인 과정에서의 이해나 접근 등을 통해 더 쉽게 이해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높은 수준의 철학과 지성을 요구하는 느낌도 주지만 누구나 이런 가치나 관념에 대해 생각하며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책이 갖는 다양성과 개방적인 자세가 돋보인다고 볼 수 있다.
각 시대마다 관통하는 시대정신이 존재하듯이 우리는 현재를 살지만 다가올 미래를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왜 지난 과거의 사례나 사건을 통해 그 의미를 부여하거나 찾고자 하는지도 책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게 된다. <지그문트 바우만> 비교적 쉽게 읽히지만 그 내용이 상당하다는 점과 깊이있는 분석과 통찰력을 통해 현상에 대해 마주하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느낄 수 있으나, 그래도 우리는 관심을 갖고 해당 책을 통해 접하며 삶과 사회, 그리고 개인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어떤 형태의 교훈적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는지 읽으며 배움의 시간을 가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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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떤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도서 소개를 보다 홀린 듯 <리퀴드 러브>란 책을 구했다. 그 독서 모임에 가지는 않았지만, 선정 도서에는 나도 모르게 이끌렸다. 이미 절판된 책이라, 중고 서점을 뒤져서 산 <리퀴드 러브>의 저자는 지그문트 바우만. 저명한 유대인 사회학자인 그를, 나는 먼저 작가로 만났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폴란드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반유대주의와 세계 2차 대전, 홀로코스트, 소련의 스탈린 공산주의 등을 거치며 격동의 시대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의 발자취를 쫓기 위해 이자벨라 바그너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비공개 원고를 수집하고, 그의 주변인물을 인터뷰했다. 그에 대해 상반되는 기록들을 모두 검토하고 당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여 사실관계를 추론하는 등 검증 절차를 거쳐 지그문트 바우만의 생애라는 퍼즐을 맞추어나갔다.
그의 삶은 쉽지 않았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다 그렇게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의 뇌리에 깊게 박힌 상처들은 쉽게 치유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격동하는 세상에서 살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때로는 그 신념에 배신 당하기도 하고, 기만 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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