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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술하는데 있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일단 역사라는 분야가 관련 기록을 검토하고 때로는 해당 지역을 답사함으로써 연구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역사 연구에 활용될 기록들의 절대적 수치가 줄어들고, 때로는 기록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막상 해당 지역을 답사해 보면, 이미 변해버린 모습에서 역사의 흔적으로 고스란히 느끼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료의 절대적인 부족과 함께 기록자의 주관에 따른 내용이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는가의 문제도 관건이라고 하겠다. 그랴서 역사 연구를 하는 이들도 자료가 풍부한 현대사에 집중되어 있고, 조선시대를 비롯해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연구자의 수효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겠다.
이미 20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조선시대의 역사를 만화로 구현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고려시대의 역사를 다룬 작품을 새롭게 시작했다. 여기에 활용된 자료는 바로 조선 초기에 간행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이며, ‘천하 통일과 고려의 개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1권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500년 가까운 세월을 다섯 권에 담’아 고려사를 만화로 구현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자료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이겠지만 또한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소개가 생략되거나 간략해 보이는 감이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북쪽에서는 발해가 세워지면서 이른바 남북국시대가 정립되었고, 신라 말기에는 다시 ‘후삼국의 분립’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1권에서는 이처럼 신라 말의 혼란기를 틈타 후백제의 견훤과 후고구려(태봉)의 궁예가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궁예의 일개 참모였던 왕건이 민심을 얻으면서, 고려를 건국(918년)하는 과정이 이해하기 쉽게 만화로 그려지고 있다. 당시 각 지방마다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호족들의 협력으로 고려를 건국할 수 있었기에, 고려 초기의 상황을 ‘호족의 나라’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안정적인 왕권을 구축하기 위해 고려 태조인 왕건은 지방 호족들과의 결혼 동맹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고, 그 결과 무려 27명의 부인을 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권에서는 태조 왕건으로부터 그의 아들들로 즉위했던 혜종과 정종 그리고 광종의 치세가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광종은 귀족들과 지방 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에서 귀화한 쌍기라는 인물의 건의를 받아들여, 처음으로 과거제도를 실시(958년)하였다. 이후 과거제도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관리들을 발탁하고 임용하는 제도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광종은 왕권을 정립하기 위한 과감한 개혁을 실시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냉혹한 숙청’을 통하여 지배층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고 한다. 이어서 광종의 아들로 즉위한 경종은 어린 아들 대신 왕족이었던 개령군에게 왕위를 넘겨주면서, 성종이 즉위하여 다양한 제도 개혁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처럼 태조에서부터 성종에 이르는 성종에 이르는 6명의 왕들과 그들의 정치에 초점을 맞춰 1권의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책의 말미에는 ‘작가 후기’와 함께 ‘고려사 연표’와 ‘고려 왕실 세계도’를 제시하고 있으며, 아울러 이 작품의 기본 자료로 활용된 ‘정사로 기록된 고려의 역사,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 놓았다. 방대한 자료의 고려사를 직접 읽기에는 만만치 않은 품이 들기에,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화로 구성한 이 책을 통해 고려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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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역사 교육에서 조선시대는 왕의 시호 순서까지 외울 정도로 익숙하지만, 그로부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의 경우 몇몇 사건과 인물들 중심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를 재구할 수 있는 사료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 교육의 초점이 조선시대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반증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로 엮은 <박시백의 고려사>는 고려시대 역사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겨졌다.
지난 1권에서는 고려를 건국할 시기부터 6대 임금인 성종이 즉위하는 모습까지를 다루었다면, 2권에서는 성종의 본격적인 치세로부터 17대 인종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그려내고 있다. ‘전쟁과 외교, 작지만 강한 고려’라는 부제가 말해주고 있듯, 2권에서는 북쪽 변방에 위치했던 거란과의 3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시기에 역사에서 강조했던 서희의 담판으로 인해 압록강 인근의 ‘강동 6주’를 회복하고, 몇 차례의 정변을 거쳐 마지막 3차 침입을 막아낸 강감찬의 활약상이 소개되고 있다.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이후 8대 현종부터 15대 숙종 때까지는 외부의 위협 없이 ‘태평시대’가 이어졌음을 그려내고 있으며, 예종이 즉위한 이후 북쪽에서 흥기한 여진과의 갈등 양상이 형상화되고 있다.
이른바 여진 정벌을 통해서 두만강 근처의 ‘동북 9성’을 반환받았지만, 이것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던 저간의 사정이 그려지고 있다. 여진족의 후예로 중국에서 성장한 금나라와 거란족의 후예인 요나라가 서로 대립하는 동안, 이 시기에는 ‘요와 금 사이에서’ 중립적인 정책을 펼쳤던 예종의 정치로 인해 외침에서 다소 비껴날 수 있었다. 2권의 마지막은 외척인 이자겸의 발호와 몰락, 그리고 역사가 신채호에 의해 우리 역사에서 ‘일천년 이래 일대 사건’으로 평가되었던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에서 비롯된 반란과 이를 진압하는 과정이 소개되고 있다.
이른바 ‘묘청의 난’을 진압했던 김부식에 의해서는 여전히 역사적으로도 상반된 평가가 존재하고 있지만, 그에 의해 저술된 <삼국사기>는 과거의 기록들을 수합해서 삼국의 역사를 정리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어지는 3권에서는 드라마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던 ‘무신정권’과 원나라와의 전쟁으로 고통을 겪는 상황이 소개될 것이라 짐작된다. 비록 만화 형식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고려시대의 역사적 흐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려사>와 관련 역사들을 보다 자세히 검토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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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랑하는 '반만년의 역사'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많이 하곤 한다. 왜냐면 1차적으로 '사료'가 절대 부족한 탓이다. 고대사를 직접 다룬 사료들이 '고려시대'에 쓰여졌고, 그나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제외하곤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조선부터 통일신라, 그리고 발해까지 '우리 역사'로 대외적인 인정을 받는 까닭은 '대외적인 사료', 다름 아니라 이웃나라들에 '우리 역사에 관한 기록'이 오롯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간접적이나마 우리 역사를 고증할 수 있었고, 우리가 '직접' 쓴 것이 아니기에 객관적인 사료로 인정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쓴 것이 아닌 까닭에 '역사왜곡'과 '날조' 등등 점차 저희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며 우리의 역사를 제것인 것마냥 치부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역사'를 연구할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의 역사'도 철저히 분석해야 하며, 더 나아가 '세계사의 범주'에서 우리 역사를 새로 조명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역사공부는 그래서 중요한 일이다.
그나마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사에서도 드물 정도로 꼼꼼하고 촘촘한 사료로 인정받고 있고, <승정원일기>와 더불어 지금도 계속 '연구'를 계속하고 있을 정도로 방대함을 자랑한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 '실록편찬'이 조선시대가 처음은 아니었다. 고려때 시작하여 조선이 이를 본받아 편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전란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존속되지 못하고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단다. 만약 <고려실록>이 지금껏 남아 있었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더욱 찬란하게 빛났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사'는 '조선사'보다 더욱 개방적이었고, 스스로 황제국이라 표방할 정도로 자주성을 띠었으며, 수많은 외적의 침략도 막아내고. 지금 우리나라를 일컫는 '코리아'라는 명칭도 바로 '고려'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려사의 진면목'이 오롯이 담겨 있었을 <고려실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아쉽지만, 지금 우리가 '고려사'를 투영해 볼 수 있는 사료는 조선시대에 쓰인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다. 박시백의 고려사는 바로 이 두 책을 바탕으로 삼아 저자 나름의 생각과 요즘 역사트랜드를 감안하여 시리즈를 펼쳤다. 비록 전편인 <조선왕조실록> 20권보다 현저히 적은 분량일테지만, 교과서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고려사'를 당시의 주변국가들의 시대정황과 더불어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빗대어 표현한다면, '드라마 몰아보기'로 집중력을 높여 살펴볼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 1권에서는 후삼국시대부터 시작해 고려 성종에 이르는 대장정이 펼쳐졌다. 역사적 흐름이 다소 빠른 듯 싶은 것도 '기록'이 현저히 부족한 탓이 매우 컸다. 그나마 사료 분량이 좀 많아지는 2권부터는 좀더 세세히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니, 조금만 기다려보자.
사료가 부족하면 '야사'의 도움을 받곤 한다. <삼국사기>가 놓친 내용을 <삼국유사>가 보충해서 우리 역사가 좀 더 풍요로워진 것처럼 말이다. 후삼국시대의 주요인물도 그렇다. 후고구려의 궁예와 후백제의 견훤(원래는 '진훤'이라 불려야 옳다고 했으나, 최근엔 '견훤'으로 통일한 듯 싶다), 그리고 고려로 삼국을 통일한 왕건, 이 세 명에 대한 '야사'가 '정사'보다 훨씬 더 널리 알려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궁예가 애꾸눈이 된 사연, 견훤의 아버지가 지렁이(토룡)였다는 전설, 그리고 왕건의 조상이 용왕이었다는 내용 따위가 그렇다. 이는 명실공히 '영웅의 탄생'에 걸맞게 그러진 것이니 '정사'에서도 비슷한 뉘앙스가 풍긴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역사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하다. 통일신라가 왜 혼란스러워졌으며, 후삼국으로 어떻게 분열되었다가 고려로 재통일이 되었는가..하는 것들 말이다. 신라사회는 '골품제'로 인해 변화를 꾀하기 힘들어졌고, 성골에서 진골로 왕위가 넘어가면서 '왕위 정통성'은 점점 낮아졌고, 백성들의 불만은 점점 높아졌기 때문에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진골간 왕위다툼'은 점점 빈번해졌으며, 중앙의 지배력에서 벗어난 지역부터 스스로 성주나 장군이라 칭하던 '호족세력'들이 점차 세력을 불려나갔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호족들 가운데 후고구려의 궁예와 후백제의 견훤, 그리고 궁예의 부하였다가 궁예가 몰락한 뒤에 '고려'를 세운 왕건이 '후삼국시대'를 이끌었던 것이다.
후삼국시대라면 당연히 세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통일신라는 이미 힘과 정통성 모두 잃어버린지 오래되어 후고구려(고려)와 후백제의 '먹잇감'으로 전락해버렸다. 하지만 '후삼국시대'를 살았던 백성들은 스스로를 '신라사람'으로 생각했으니 두 나라 모두 '신라'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허나 이런 신라를 함부로 대한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궁예'와 '견훤'이었다. 궁예는 속설에 '신라왕자' 출신이었다고 하니 왕위쟁탈전에 탈락하고 추방(?) 당한 원한으로 신라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고, 견훤은 연이은 승리에 취해 자기 잘난 맛(?)에 서라벌을 점령한 뒤 '신라왕'까지 바꾸고 백성들을 죽이고 여인들을 겁탈하는 만행을 저질르며 업신여겼던 것이다. 이에 신라는 어차피 망할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평소에 신라에 유화적이며 존경하는 태도를 보여준 왕건에게 나라를 홀랑 바쳐버리고 만다. 이런 왕건의 기세와 백성들의 바람으로 인해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만다.
어쩌면 통일을 이루는 비결은 '강력한 힘'을 과시하며 일거에 제압하는 방식보다는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인다. 이는 다른 나라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가까운 중국만 해도 통일의 위업을 보여준 제왕들이 대부분 '무력'을 바탕으로 적들을 제압하여서 패자의 자리에 오른 경우가 많은데 반해, 우리 역사에서는 '첨예한 갈등'을 잠시 내려놓고 '평화'를 사랑하고 '백성'의 안위를 먼저 보여준 인물이 '통일의 위업'을 보여준 예가 더 많아 보인다. 뭐,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괴물(?) 같은 위인이 등장하지 못하고 상대를 확실히 제압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포용력(?)을 발휘하는 인물이 대권을 차지하는 경우가 흔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암튼, 왕건은 우리 민족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만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임에 틀림없다. 이제 왕건에게 통일보다 더 어려운 숙제가 남았으니, 바로 '호족세력'을 잠잠하게 만드는 일이다. 왕건도 호족출신이거니와 나머지 호족세력을 모조리 제압해버리는 힘이 모자란데도 '임금의 자리'에 올랐으니 걱정할 만도 하다. 그래서 왕건은 '혼인정책'을 내세웠다. 비등비등한 세력을 갖고 있는 '호족들의 딸'을 한집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무려 29명의 부인이다. 자식들이 많은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런 탓인지 왕건의 자식들은 '근친혼'을 많이 했다. 즉, '엄마'만 다르면 혼인을 장려(?)했던 것이다. 이는 '외척세력'을 두지 않아 '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조선 태종의 사례만 보아도 '외척'을 견제해야 '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의 자리는 무척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 고려는 성종 때까지 별다른 '외척세력'을 두지 않아 비교적 평온하게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평온(?)하게 2대 헤종, 3대 정종, 4대 광종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모두 왕건의 아들들이다. 허나 광종대에 이르러서는 계속되는 호족들의 반란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왕권강화'를 도모한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비롯해서 '과거제'를 시행해 호족세력을 견제함과 동시에 반란의 조짐(!)이 보이면 가차없이 제거해버리는 '숙청의 시대'가 펼쳐지게 되었다. 하지만 뒤를 이은 5대 경종, 6대 성종에 이르러서는 포악한 정치(?)는 삼가고 '유교적인 정치'를 구축하고, 전시과를 손보는 등 경제적인 면에서도 진일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나라의 기틀을 완성해나갈 즈음에 고려의 북방과 바다 건너 대륙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더니, 급기야 '고려'의 안보에 일대 위기가 몰아치려 한다. 바로 '거란의 침입'이다. 2권을 기대하시라.
역사는 과거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지나간 옛일을 공부해서 어따 써먹을 수 있겠냐는 원론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분들에게 대답해줄 적절한 비유가 있으니,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다. 흔히, 역사는 미래를 들여다보는 과거라는 '거울'에 빗대어 표현하며, 그 중요성을 설파하곤 한다. 실제로 '과거사실'을 들춰보며 '미래예측'을 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과거사실'을 제 입맛대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현재의 권력자'다. 어떤 이는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다"라고 말하지 않느냔 말이다. 물론 모든 역사가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꽤나 설득력이 강한 메시지다.
그렇다면 승자만이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걸까? 거꾸로 말하면, 역사공부에 진지해지면 '승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역사공부에 진지해져야 할 것이다. 역사공부에 진지해지면 '독재자의 횡포'도 막아낼 수 있다. 독재자들은 늘 그렇듯이 아둔한 사람이 많은 곳에서 활개를 치고, 욕심에 눈이 어두워진 이들이 많은 곳에서 공포정치를 펼치곤 한다. 그러다 똑똑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민중들에게 무참히 박살이 나곤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인재가 '역사'에 밝은 명석하고 교양 넘치는 시민들이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과거를 퉁쳐버리고, 국민들의 이익과 쪽팔림은 헐값에 팔아버리고 '과거를 망각하게 만들어 현재를 지배하려는 무리'를 솎아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역사공부를 멈춰선 안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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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고려는 어떤 나라인가? 고구려 때만큼 대륙을 호령하지도 못하고 숱한 외적의 침략을 받거나 '원간섭기'에는 식민지로 전락한 적도 있었으며 홍건적과 왜구 등의 노략질에 변변한 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다 500여년간 내우외환에만 시달리다 '조선'에게 나라를 내어준 별볼일 없는 나라로 연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박시백의 고려사>를 읽다보면 '뜻밖의 고려'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고려가 그저 문약하기만 한 나라로 으레 짐작했다가 전혀 그렇지 않고 대단히 강건하며 대외적으로 결코 무시 당하는 나라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주변국들이 고려를 '상국'으로 대접하며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면 '남의편'이라도 되지 못하도록 지극정성으로 고려를 대우하는 등 실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나라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중국쪽의 침략을 받았더랬다. 거란(훗날 요)의 세 차례의 침략이 그랬고, 고려의 동북면에선 여진족(훗날 금)의 침략이 날로 거세졌고, 끝내 부족을 통일한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족(훗날 원)이 고려의 국경을 넘보더니 개경까지 집어삼키고 지독한 '원간섭기'를 겪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고려말엔 혼란한 정세를 틈타 '홍건적와 왜구'라는 도적떼들이 전쟁을 방불케하는 엄청난 규모로 고려를 괴롭혔지만, 고려는 이 모든 '외세의 침략'에도 멸망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내며 때로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유리한 상황으로 반전시키는 저력을 뽐내며 500여 년간을 이어온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의 왕조가 200여 년을 넘기기 힘든데도 '고려 500년 역사'를 달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고려'를 다시금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두 번째 책으로 이 책, <박시백의 고려사 2>은 '거란과의 전쟁'에서부터 '묘청의 난'까지 다루었다. 역사책 한 권 분량치고는 꽤나 빠른 진행인데, 이 책을 '전 5권'으로 마무리하겠다고 저자가 밝혔으니 한 권당 '100년의 역사'가 담겨 있는 셈이다. 비록 세세하게 개별적 사건을 깊이 다루지는 못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박시백만의 안목'이 담겨 있기에 믿음직한 구석이 있다. 바로 '날카로운 비평과 균형잡힌 관점'말이다. 이 책에서 주목해서 봄직한 대목은 세 가지다. 하나는 '거란의 침략'에 대처하는 고려의 자세이고, 둘은 '여진의 성장'과 이에 대한 고려의 대응, 그리고 마지막은 '이자겸'과 '묘청'이 일으킨 두 차례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이다.
익히 알다시피 고려는 태조 때부터 '북진정책'을 펼쳐 영토확장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하지만 고려의 북방에 '거대한 세력'이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고려는 '북진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 세력 가운데 첫 번째는 바로 '거란'이었다. 고려가 아직 후삼국 통일을 달성하지 못했던 때에 북쪽에서는 발해가 든든히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며 버티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거란이 빠르게 성장을 하면서 송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자 발해를 대대적으로 공격했더랬는데, 발해가 터무니없게도 멸망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거란이 세력을 확장하며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더니 송나라와도 본격적인 땅따먹기(?)를 시동하였다. 이제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로서는 거대해진 거란과 맞붙어 상대하기에 곤란한 지경에 이른 셈이다.
이런 형국에 거란은 대대적인 송나라와의 전쟁을 치루기 이전에 '고려'에 본때를 보여주려 '1차 침입'을 했더랬다. 송나라 깊숙이(?) 공격을 했다가 송과 고려가 연합을 해서 거란을 협공이라도 하게된다면 곤란한 처지에 빠질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이에 고려에서는 '서희'를 앞세워 강화회담을 열었는데, 그 결과 거란군의 퇴각과 함께 '강동 6주땅'을 고려에 넘겨주게 되었다. 고려의 염원이었던 '북진정책'이 서희의 말 한마디로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이는 '고려의 역량'이 강력하지 않았더라면 성사될 수 없는 성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거란의 첫 침입에서 '고려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으며 고려를 정복하기 위해선 거란도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거란은 '강동 6주'를 고려에 내어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2차 침입'을 해서 개경까지 함락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쳐들어갔지만, 고려의 반격은 곳곳에서 완강했고, 끈질기게 이어졌다.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도 못하고 고려의 영토 깊숙이 쳐들어간 거란은 뒤늦게 '안전한 퇴각'을 약속받고 개경을 내어주고 되돌아섰지만, 돌아가는 길은 황천길이었고, 퇴각 중에도 전투는 끊임없이 이어져 거란으로 살아 돌아간 병사는 고작 '수천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60만 대군을 이끌고 온 것에 비하면 참패를 면치 못한 셈이다. 뒤이어 벌어진 '3차 침입'에서는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필두로 거란군은 고려의 영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거의 전멸하고마는 수모를 당한 뒤에야 고려를 더는 침략하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고려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주변 강대국들이 결코 함부로 깔보지 못하게 만들고, 실로 깔보기라도 하면 호되게 당하고 만다는 처절한 기억을 뇌리에 박아놓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에게 각각 수나라와 당나라가 호되게 당했던 것처럼, 고려도 첫 번째 외세의 침략을 고구려 못지 않게 본때를 보여주게 된 것이다. 이런 성과는 훗날 여진과 몽골을 상대로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먼저, 여진은 아에 고려를 침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여진족이 완전히 통일하지 못한 채 부족별로 각자도생을 하던 시절에는 고려의 동북쪽 경계를 지속적으로 약탈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더랬다. 그때마다 고려는 달래기도 하고 토벌하기도 하는 등 양면정책을 펼쳤는데, 윤관이 '별무반'을 조직해 고려의 동북면을 정복해 '동북9성'을 쌓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애써 고려 백성들의 피와 땀을 바쳐서 '북진정책'을 완수해내었건만 계속되는 여진족의 침략에 고려가 '영토포기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물론 꽁으로 내어준 건 아니다. 여진족에서 '영원토록 어버이로 섬기며 조공을 바치겠다'는 맹세를 받고, 더는 침략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이행한다는 약조를 받고 '동북9성'을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진은 그후 침략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에 여진은 '완안부족'을 중심으로 여러 부족을 통합한 뒤에 요나라(거란)를 대대적으로 공략하며 영토를 넓혀나갔다. 여진의 거센 공격에 거란은 고려에게 구원요청을 했지만 고려는 거절하였다. 조선 광해군이 이런 고려의 '실리적 정책'을 본따 명청교체기에 톡톡히 써먹게 된 것이다. 고려는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지략적으로 실리적 이득을 챙기는 나라였다. 아쉽게도 여진이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금'이라 칭하면서 부모로 섬기겠다던 고려에게 '형제의 예'를 요구하고, 더하여 '군신의 예'를 요구하였고, 고려는 이에 '사대의 예'로 화답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런 금나라의 무례한(?) 요구에 '큰 나라를 섬기는 이치'를 설법한 이자겸과 김부식이 내심 괘씸하기도 하다. 허나 거란의 잇따른 침략으로 백성들의 삶이 팍팍해진 뒤였고, 동북9성을 쌓을 당시 여진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상당기간 '소모전'을 경험하기도 했던 고려로서는 빠르게 성장하며 대륙을 호령하게 된 신흥강국 '금나라'와 대립을 한다는 것은 실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판단은 금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고려가 굳이 '군신의 예'를 다하고 '사대의 예'까지 올리며 체면(?)을 챙겨준다는데 굳이 상대하기 껄끄러운 고려와 전쟁을 벌이는 것이 현명치 못하다는 결단을 내린 셈이다. 이렇게 고려와 여진(금)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고려는 힘을 보여줄 땐 확실히 보여주고 실리를 챙길 때에도 확실히 챙기는 확실한 나라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외세의 침략이 없는 '태평성대'를 이루면 좋으련만 나라밖이 조용해지니 나라안이 시끄럽게 되었다. 바로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이 그것이다. '이자겸의 난'은 왕실의 외척이 권세를 갖게 되면서 나라를 어지럽힌 사건이었고, '묘청의 난'은 도참사상과 풍수지리를 앞세운 '서경파'와 안정적이고 과학적(?)인 정책을 밀고 나간 '개경파' 사이의 갈등으로 왕권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두 사건은 17대 임금인 '인종' 때 벌어진 사건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등극하였는데도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왕권을 안정시킨 훌륭한 임금이라 할 수 있다. 기존에는 어린 임금이라 외척이 득세하여 정치를 말아먹고, 혹세무민하는 땡중이 요설로 현혹하여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무능한 임금'으로 생각하였는데, 다시금 살펴보니 국란의 위기에도 기죽지 않고 끝내 '왕권'을 지켜낸 '뛰어난 임금'으로 재평가받아 마땅하였다.
한편,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싶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찍이 '묘청'과 '김부식'을 평가하면서 묘청을 '독립운동가'에 비유하고, 김부식을 '매국노'에 빗대며 '서경천도운동'이 실패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주장했더랬다. 근데 묘청의 서경천도를 '윤석열의 용산이전'과 비교해보니 좀더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두 사건은 모두 '풍수지리'를 앞세워 나라의 흥망성쇠가 마치 '서경천도(용산이전)'에 있다는 것을 설파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천도(이전)'를 하면 흥하고 안 하면 망한다는 논리를 믿어야 한다는 것부터 억지였다. 인종 때에는 '이자겸의 난' 때문에 개경의 궁궐이 거의 불타 없어진 핑곗거리라도 있었지만,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이전을 강행하는 것은 말도 안 될 일이었다.
이렇듯 '서경천도'는 애초에 무리한 억지주장이었다. 그러나 인종이 스스로 '서경천도'를 없던 일로 하고 명석한 판단을 내렸는데도, 묘청은 '서경파'를 앞세워 군사를 일으키고 임금을 볼모로 잡아 서경천도를 강행하려 하였다. 이는 명백한 '반란'이었고, '역모'였다. 이런 사건을 두고 '독립당'과 '사대당'의 대결이라 비유한 신채호 선생은 시대적 아픔이 반영된 역사해석으로 보는 것이 맞는 듯 싶다. 실제로 김부식은 고려의 안녕과 실리적 이득을 위해 '사대의 예'를 끝까지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때론 실력행사를 할 때는 할 수도 있을 법한데도 '국가의 존심'보다 '개인의 영욕(실리)'에 더 치중하는 모양새를 계속 관철했던 것이 욕을 먹기에 딱 좋았기 때문이다. 암튼, 묘청의 난을 다시금 재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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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학년이 된 아들을 위해 주문했어요...아이 책을 고르고 골라서 책을 구입하는데 우연히 검색하다가 발견한 책 입니다...책을 많이 구매하는 편이라 검색을 많이 하는데 재밌는 책을 발견 할때 제일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아이의 성향에 맞는 책을 고르려니 힘이드네요ㅎㅎㅎ 큰아이 작은아이 둘다 재미있게 잘 보고있습니다. 다른 책도 주문해서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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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실록으로 역사만화의 새 지평을 연 작가 박시백!! 35년에 이은 새로운 역작 고려사를 새롭게 내놨는데요. 고려사는 조선의 역사에 비해 알려진게 많이 없다 보니 5권으로 종결하는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고려사를 만화로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게 그려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1권은 고려의 개국 및 고려초의 정치사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놓았습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고려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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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게 있어 북방은 중요한 요지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지역을 차지한 거란과 여진, 그리고 송나라와의 관계가 복잡하게 펼쳐진다. 거란의 연이은 세 번의 침략을 거치면서도 강동 6주를 담판으로 얻어 낸 서희나 귀주대첩이란 승리를 일군 강감찬 등이 있어 일단의 평화를 지킬 수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왕실과 사돈 관계였던 이자겸이 일으킨 난이나 서경 천도를 주장했던 묘청의 반란으로 혼란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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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삼국 (고려,후백제,통일신라)에서 부터 고려 태조,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까지의 이야기 - 고려의 장군들 홍유, 배현경, 신숭겸 ( 왕건을 대신해 팔공전투에서 죽음), 복지겸 특히 유금필이 대단한 것 같다. - 드라마 "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 장혁이 왕자 소로 나와 고려광종이 되는 것을 재미있게 봤고 과거제도 나 노비안검법등의 도입으로 성군인줄 알았는데 왕권에 집착이 강하고 공포정치를 했다니... - 견훤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한 궁예의 최후는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를 떠오르게 한다 -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는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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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자까님의 <조선왕조실록>을 너무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고려사>가 런칭됐다는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구매했다. 요새는 종이책 잘 안 사는데(도정제 언제 폐지됨??^^??) 이 책은 소장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 종이책으로 Pick! 방대한 양의 <조선왕조실록>에 비해 <고려사>는 꽤나 빈약하거니와 참고할 사료들도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내용의 볼륨이 두텁지는 않다. 이런저런 뒷이야기나 깨알 에피소드가 적어졌다고 해야하나? 큰 틀에서만 그 시대를 볼 수 있는 점이 많이 아쉽다. <고려왕조실록>이 소실되지 않았다면 아마 엄청난 콘텐츠였을 텐데ㅠㅠㅠ 거란 이 쓉새1끼들ㅠㅠㅠㅠ 얌전하게 2권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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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찾았을 때 어린이 코너에 있었습니다. 사서님들이 만화책이라서 어린이용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보기에도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퀄리티가 너무나 좋은 고려사 역사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더더기 없고 일목요연하며 재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