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환대"라는 단어를 혐오한다,아니 혐오 했었다. 3년 전쯤 한 모임에서 알게 된 분이 있다. 다방면에 박식했고, 곧 책을 출간한 계획이라고 했다. 코칭과 강의를 주로 하는 그녀 주변에 아는 이들도 많고, 하고 있는 일도 많아 보였다. 늘 활기차고 즐거워 보였다. 부족한 자신이지만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기쁘다고 말 한 그녀를 사석에서 만나고 싶어, 모임 전에 따로 약속을 청했다.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지만, 당일 약속에는 연락이 없이 1시간이나 늦게 왔다. 앞의 약속이 늦게 끝났다는 게 이유였다. 조금 섭섭했지만, 시간을 붙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저 흘려버렸다. 5 개월의 모임 일정이 모두 끝나고, 그녀를 볼 수는 없지만, SNS의 글을 통해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글을 잘 쓴다. 아는 것이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 잘 쓰는 것이 맞지만 내가 볼 때 좋은 글은 아니다. 왜냐하면 한 문장이 길고, 글 자체도 너무 길다. 늘 1500자가 넘는 글을 올리는데, 읽다 보면 숨이 차고, 읽기가 싫어진다. 쓰는 단어도 쉽지 않고,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녀는 글에 유난히 '환대'라는 말을 자주 쓴다. 거의 모든 글에 그 단어가 두 번 이상은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 속에서 매일 누군가를 환대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받은 환대를 기쁘게 쓰고 있다. 마치 그녀의 삶이 환대 자체인 듯. 그런데 묘하게 그 단어가 불편했다. 왜 불편할까? 계속 생각했다. 내 약속이 1시간 뒤로 밀려서? 그게 기분 나빠서? 소심해 보이지만 처음에는 단지 내가 그녀에게 환대 받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그 찝찝한 물음의 답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찾았다. [데리다와의 데이트 (강남순, 행성B)]를 읽다가, 그 불편한 '환대'를 만났다. 그런데 데리다가 말하는 환대는 그녀가 말하는 환대와는 전혀 다른 단어였다.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한다는 뜻의 환대. 그녀가 글에 쓰고 있는 환대는 따스하고, 다정한 포옹이다. 데리다는 그 환대의 본질을 따져 묻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만, 아는 사람만, 필요한 사람만 환영해 주는 것은 환대가 아니다. 처음 만난 사람도, 싫은 사람도, 종교도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사상이 '다른 사람'도 두 팔 벌려 안아 줄 수 있는 것이 환대이다. 데리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환대'라는 단어를 혐오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녀가 말하는 '환대'는 달갑지 않다. 그녀가 보여주는'환대'는 반쪽짜리 환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도 그 책을 읽고 있는다고 했는데 곧 어떤 글이 올라올지 조금은 예상이 된다. 나는 속으로 맘껏 비웃어 줄 테다. 삐뚤어질 테다. 아......그런데 이건 데리다가 말한 '환대'가 아닌데..... 그녀를 다시 만날 일을 없겠지만, 혹시 우연히라도 만나게 된다면, (싫지만) 반갑게 안아줘야겠다. 진정한 환대는 그런 것이니까. |
|
http://blog.yes24.com/document/16951859 제가 리뷰를 블로그 포스트로 작성했기에 다시 링크로 연결합니다. 데리다와의 데이트는 사유하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하고 있으며 나는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성찰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쓰는 좋은 단어들, 문장들을 해체하고 관찰하고 재인식하는 과정이 일상에서 늘 이루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
이 책은 '데리다와의 데이트'라는 제목이 참 그럴듯한 책이다. '데리다'라는 이름에는 뭔가 난해한 현대 철학자라는 선입관이 있었고, 책표지의 사진을 보고 나면 그 선입관이 더 강화된다고나 할까. 뭔가 무뚝뚝하고 날카로운, 조금은 고집불통인 느낌을 받게 된다. 어떤 사람과 소개팅을 한다고 할 때,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듣는다. 그리고 가능하면 사진을 구해본다. 그리고 만나본다. 하지만 그에 대한 관심이 더 있다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혹시 어떤 오해를 받고 있지는 않는지, 어떻게 지금까지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사전 정보를 들어본다. 이 책은 그런 느낌이다. 데리다를 만나기 전에, 즉 그가 쓴 책을 직접 읽기 전에 그에 대한 여러 사실들을 미리 알아보는 그런 느낌, 그가 말한 해체나 환대, 상속, 애도, 사랑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그의 어떤 삶의 배경에서 이와 같은 철학적 사색의 결과물이 나오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어볼 수 있다. 강남순 교수를 '질문빈곤사회' 북콘서트에서 만나본 적이 있다. 그 때 들은 느낌은 생각보다 소개팅 하기 전에 책을 읽어본 결과, 데리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던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무엇인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상속이 아니고 사랑을 가지고 해체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환대하는 그런 것이다. 어서 데리다와의 소개팅에 가서 그를 환대해야 겠다는 생각이 마구 들게 하는 책이다.
|
|
음...예전에는 데리다를 전혀 몰랐다. 이책을 통해 데리다를 알게 되었다. 데리다는 내가 알았던 언어의 의미를 깡그리 파괴했다. 상속이란 단어만해도 내가알던 상속은 의무가 아닌 권리만을 생각했다. 그러나 데리다를 만나고 단어들의 혁명을 느꼈다. 데리다를 첨 만났을때 무척 낯설었다. 내가 갖은 개념을 송두리채 뒤 흔드니까. 한 페이지 넘기는것도 어려웠다. 내가 생각했었던 상식과 데리다의 생각이 너무나 달라서 어색했고 낮설었다. 이글을 쓰는 지금도 데리다와 친해졌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는다. 데리다와 데이트를 하기위해서 갖취야할 소양은 천천히 다가갈것 이라고 말해야겠다. 그리고 나의 색의채도를 낯출것 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책은 너무 상세해서 또? 라고 말할만큼 세심하게 설명한다. 난해한 데리다와 친해지길 바라는 저자 강남순님의 세밀함이 보였다. 앞으로 두.세번은 더 읽어야 친해질것 같다. 이책 내용은 좋지만 친해지기 만만치 않음을 알고 도전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