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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길을 위한 부엔 까미노 - 조금 일찍 나선 길
"새로운 인생길을 위한 부엔 까미노 - 조금 일찍 나선 길" 내용보기
21년 전 ‘Yes도 No도 소신있게’라는 카피의 광고가 대히트를 친 적이 있다. 남들 모두 Yes를 외치거나 No를 주장하더라도 소신있게 반대하자는 내용이다. 선행 학습과 엄마의 철저한 관리가 대학입시의 성패를 가름하는 교육 현실에서 중학 1학년이 학교 울타리를 박차고 나오기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자퇴를 절실히 원해도 부모가 이를 흔쾌히 수용하기가 매우
"새로운 인생길을 위한 부엔 까미노 - 조금 일찍 나선 길" 내용보기

  21년 전 ‘Yes도 No도 소신있게’라는 카피의 광고가 대히트를 친 적이 있다. 남들 모두 Yes를 외치거나 No를 주장하더라도 소신있게 반대하자는 내용이다. 선행 학습과 엄마의 철저한 관리가 대학입시의 성패를 가름하는 교육 현실에서 중학 1학년이 학교 울타리를 박차고 나오기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자퇴를 절실히 원해도 부모가 이를 흔쾌히 수용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 태윤은 중학 1학년 때 미련 없이 학교를 나왔다. 자유롭게 놀고 배우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평소 산티아고 순례 서적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작가 이력에 큰 호기심을 느꼈다. 14 살에 자퇴를 하고 2 년 만에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다음, 16 살에 걷는 산티아고라니. 평범함을 거부한 어린 작가가 까미노에서 체험하고 느낀 감상이 어떤 것일지 매우 궁금했다. 작가가 담담하게 내려 갔을 여행기를 읽으며 그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책을 덮은 후 작가의 용기 있는 선택이 옳았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인생길에 비록 험한 난관이 있을지라도 쉽게 굴복하는 대신 엄마의 뒷모습을 기억하며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 갈 거라 굳게 믿는다.

 

  태윤 작가의 ‘조금 일찍 나선 길’은 엄마와 함께 나선 산티아고 순례기이다. 여느 순례 기행을 다룬 책처럼 순례 일정을 따라 도보 여행에서 보고, 느끼고, 순례객들과 부대끼며 나눈 대화들을 열여섯 감성으로 차분히 풀어냈다. 별도로 정리되진 않았지만 본문 중간 중간에 프랑스길에 나설 때 유용한 정보나 팁들이 꽤 적혀 있다. 순례를 계획 중인 독자들에게 꽤 도움이 될 듯 하다. 내년 봄 프랑스길을 걸으려는 나 역시 참고할 사항들을 노트에 기록해두었다.

 

  작가는 살면서 산티아고에 나서기 전까지 별을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입시 부담의 중압에 시달릴 청소년들이 하늘의 별을 보며 꿈과 희망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진학이란 당면한 목표가 박혀 있을 땅으로만 시선이 쏠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까미노를 걷고 나서야 밤하늘에 찬란한 별들을 제대로 바라보았다고 고백한다. 이름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니 순례객들의 특징적인 걸 잡아서 별명을 짓는 재치있고 발랄한 소녀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렇듯 무거운 마음과 가벼운 짐으로 시작되었다.

 

  작가와 엄마가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어 순례에 나섰다. 작가는 자유롭게 배우고 싶었으나 자퇴생의 성공이 결국 입시 성공에 달려 있다는 결론에 이르자 조바심이 났다. 뚜렷하게 하고 싶은 목표가 명확치 않은 상태에서 입시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엄마에게 이를 털어 놓으며 펑펑 울었고 두어 달 뒤에 그녀들이 산티아고에 나선 배경이기도 했다. 학교 울타리 밖에 있던 작가에게 산티아고란 단순한 도피처였지만 그 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마무리했으니 성취한 일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7년 전 도보로 국토 종주를 했던 선배 말로는 일주일 정도 걸어야 몸이 걷는데 적응한단다. 작가 역시 순례길 초반부에 몸이 무거워 힘들어 했다. 처지는 페이스를 지켜준 이들은 엄마와 순례길에서 만난 동행자들이다. 작가는 그들에게 맞춰서 조금 덜 쉬며 걸었고 그들은 그녀에 맞춰 좀 더 쉬어갔다. 야고보를 기리는 이 길은 함께 가서 좋은 길이다.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영차 넘어주고 고개 넘어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갈 길이다.’(김남주 詩).

 

  잠시 목표를 잃고 방황하던 작가를 지켜보던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유추하기로 엄마 김 항심 작가는 쿨한 성격같다. 무던한 그녀라도 딸의 울음에 마음이 무너졌던 듯 하다. 순례길에서 만난 크리스틴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나중에 죽고 이 세상에 없을 때 내 딸이 내 뒷모습을 기억해줬으면 해서요. 우리 딸이 삶을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든 순간을 만날 때 이 길을 걷던 내 모습을 기억하면서 삶의 원동력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어요.” 산티아고길을 함께 걸으며 엄마와 딸은 서로서로 더 이해하고 마음과 마음이 더욱 단단히 연결되었다.

 

  근자감이 충만한 작가는 다부진 체격에 다이어트을 고민하는 또래 아이들만큼 감수성도 충만하다. 그러나 학교 밖 2 년의 세월을 거치며 한층 더 단단하게 성장한 것 같다. 급작스레 결정된 탓에 사전 준비가 미흡하여 유적과 명소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고 자평한다. 그래서 걷는 도중에 감흥이 덜했지만 “내가 지나친 것들은 나한테 그 정도의 감흥만 있었던 거고 내게 인상 깊게 기억되는 것은 그것의 유명세와 상관없이 나한테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라며 자기 주관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작가의 이러한 견해는 단지 개인적 주관을 넘어서는 일반성과 사회성을 담아내고 있다. 오르막 길에 애써 고생하는 인체 기관에 비해 그저 힘든 오름길이라며 한탄만 하는 ‘눈’을 두고 보통은 비우호적인 해석을 한다. 그러나 작가는 ‘눈’의 역할은 보는 것이니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는데도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고 인정을 안 해주는 것은 너무하다며 ‘눈’을 옹호한다.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순례길 와중에 혐오주의자들의 낙서가 꽤 심각한데 여성주의와 동성애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낙서를 없애거나 절묘하게 바꿔놓은 사람들의 흔적에서 작가도 힘을 보탰다. ‘No Feminism’을 ‘Now Feminism’으로 재치있게 돌려 놓는다. “지금까지 너무 당연했던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꾸는 데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일상 생활에서 시민들의 자각과 동참이란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화된 힘이야말로 시대와 역사가 진보하는 원동력임을 자각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증명서를 받으려면 최소 100k 이상 걸어야 한다. 그래서 Sarria에서 순례를 시작하는 이들이 많다. 이를 비난하는 문장이 있다. “Jesus didn’t start in Sarria.” 동키를 보내고 숙박지를 예약하는 것이 무슨 순례냐며 힐난하는 이들에 대해 작가는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한다. “종교적 의미의 순례가 아닌 도보여행하듯 걸었지만 현대 사회의 이기에 순례 환경이 영향을 받는 만큼 순례길은 존재하고 이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를 증명한다. 중요한 것은 길 자체가 아니라 걷는 우리에게 있다. 까미노는 오롯이 걷는 사람의 것이다.” 그녀는 길을 온전히 누리고, 즐기고, 무언가를 배웠다.

 

  작가가 순례에 나선 때가 2019년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으니 19살, 대입을 목전에 둘 나이다. 혼자 입시를 준비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거라 여기지만 책에서 드러난 작가의 자질과 소양에 비추어 보면 잘 이겨내고 있을 것이다. 까미노 말미에 어느 현지인이 순례객에게 해준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까미노는 끝났지만 앞으로 당신 인생에 다른 까미노들이 있을 거에요. 이제 그 길들의 시작이니까. 새로운 길을 위해 부엔 까미노.” 

 

  작가는 책의 서문에서 게오르그 루카치의 ‘길이 시작되자 여행이 끝났다’는 말을 인용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순례 여행이 끝나자 그녀가 이내 새로운 길을 걷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길을 내 앞에 놓여 있다. 여기가 너의 장소, 너의 시간이다. 여기서 네 할 일을 하라’던 故 김남주 시인의 말처럼 작가 앞에 놓인 ‘표지석도 화살표도 없는 냉정한 여행지로 향하는 까미노’를 힘차게 걷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녀 앞에 엄마의 뒷모습이 놓여 있을 테니 말이다.

p*****7 2022.08.03.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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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일찍 나선 길, 날 것 그대로 산티아고 순례길
"조금 일찍 나선 길, 날 것 그대로 산티아고 순례길 " 내용보기
나는 분명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트래블 어게인 리뷰를 쓰며) 그런데 또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그것도 단숨에. 그것도 지난 번 읽은 여행 에세이 ‘트래블 어게인’를 출판한 책구름 출판사에서 ‘걷기 시리즈’로 기획한 에세이다. 이 정도면 나는 책구름 출판사 덕후인 것인가? (이미 책구름 출판사 책을 3권이나 읽고 있다.) 갑자기 정체성의 혼란이
"조금 일찍 나선 길, 날 것 그대로 산티아고 순례길 " 내용보기
나는 분명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트래블 어게인 리뷰를 쓰며) 그런데 또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그것도 단숨에. 그것도 지난 번 읽은 여행 에세이 ‘트래블 어게인’를 출판한 책구름 출판사에서 ‘걷기 시리즈’로 기획한 에세이다. 이 정도면 나는 책구름 출판사 덕후인 것인가? (이미 책구름 출판사 책을 3권이나 읽고 있다.) 갑자기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 이건 어디까지나 책구름 출판사 편집자님이 편집 에피소드를 열정적으로 올려서 그렇다. 마케팅의 일환이 아니라 정말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애환과 고단함과 감동과 열정을 담은 소소한 일상의 글을 인스타를 통해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번에 또 어떤 책이 나오길래? 하며 출판 소식과 함께 책을 사고 마는 것이다. 이 정도면 편집자님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글을 의심하게 되지만,(마성의 마케팅인가? 하는 의심….) 책을 읽다 보면 그 안에 들어간 편집자님의 애정과 애정에 부흥한 작가님의 글이 매력적으로 펼쳐진다.

이번 여행 에세이는 너무 유명해서 흔한 느낌이 드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글이다.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피드포르’에서 800킬로미터를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걷는 여정을 담았다. 워낙 잘 알려진 산티아고 순례길이지만 흔하지 않은 점은 이 여행 에세이를 쓴 작가의 이력이다. 열네살 자발적 ‘학교 밖 청소년’이 된 작가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경험에 대한 글을 썼다.

내가 이 여행 에세이를 궁금해 했던 것은 현재 같은 나이의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로를 미리 고민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딸과 달리 아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공부와는 철저히 담을 쌓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잠깐 뿐, 자기 관심거리(축구와 그와 관련된 게임 등)에 집중하며 히히덕거린다. 그런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해봐야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아들의 귀에 잔소리만 될 뿐이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한다는 말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이미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많은 정보에 노출된 아이들이다. 어른의 조언은 잔소리가 된다. 그런데 같은 나이의 태윤 작가는 일찍부터 학교 밖 청소년이 되기를 택하고,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같은 나이에 다른 선택을 한 청소년의 마음을 들여다 보면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어 보이는 아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구입해 읽었다.

나는 분명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트래블 어게인 리뷰를 쓰며) 그런데 또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그것도 단숨에. 그것도 지난 번 읽은 여행 에세이 ‘트래블 어게인’를 출판한 책구름 출판사에서 ‘걷기 시리즈’로 기획한 에세이다. 이 정도면 나는 책구름 출판사 덕후인 것인가? (이미 책구름 출판사 책을 3권이나 읽고 있다.) 갑자기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 이건 어디까지나 책구름 출판사 편집자님이 편집 에피소드를 열정적으로 올려서 그렇다. 마케팅의 일환이 아니라 정말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애환과 고단함과 감동과 열정을 담은 소소한 일상의 글을 인스타를 통해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번에 또 어떤 책이 나오길래? 하며 출판 소식과 함께 책을 사고 마는 것이다. 이 정도면 편집자님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글을 의심하게 되지만,(마성의 마케팅인가? 하는 의심….) 책을 읽다 보면 그 안에 들어간 편집자님의 애정과 애정에 부흥한 작가님의 글이 매력적으로 펼쳐진다.

이번 여행 에세이는 너무 유명해서 흔한 느낌이 드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글이다.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피드포르’에서 800킬로미터를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걷는 여정을 담았다. 워낙 잘 알려진 산티아고 순례길이지만 흔하지 않은 점은 이 여행 에세이를 쓴 작가의 이력이다. 열네살 자발적 ‘학교 밖 청소년’이 된 작가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경험에 대한 글을 썼다.

내가 이 여행 에세이를 궁금해 했던 것은 현재 같은 나이의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로를 미리 고민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딸과 달리 아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공부와는 철저히 담을 쌓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잠깐 뿐, 자기 관심거리(축구와 그와 관련된 게임 등)에 집중하며 히히덕거린다. 그런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해봐야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아들의 귀에 잔소리만 될 뿐이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미래에 투자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한다는 말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이미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많은 정보에 노출된 아이들이다. 어른의 조언은 잔소리가 된다. 그런데 같은 나이의 태윤 작가는 일찍부터 학교 밖 청소년이 되기를 택하고,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같은 나이에 다른 선택을 한 청소년의 마음을 들여다 보면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어 보이는 아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구입해 읽었다.

“내가 여기 왜 왔냐면, 내가 나중에 죽고 이 세상에 없을 때 내 딸이 내 뒷모습을 기억해줬으면 해서에요. 우리 딸이 삶을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든 순간을 만날 때 이 길을 걷던 내 모습을 기억하면서, 삶의 원동력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 기억으로 다시 씩씩하게 살아갔으면. 이런 메시지를 담은 책을 꼭 쓰고 싶어요.”
57p


엄마 김항심씨의 고백처럼 딸은 엄마의 뒷모습을 수 없이 기억하게 된다. 함께 걷은 순례길이지만 걸음이 빠른 엄마는 언제나 딸보다 앞서있다. 평소 걷기는 커녕 운동에 관심도 없던 딸은 생전 처음 오래 걸어본 터라 늘 뒤쳐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딸의 느린 걸음을 재촉하기 보다 먼저 가 있을테니 편하게 오라며 앞서 걸어간다. 그런 점이 대단하고 좋아 보였다. 보통 가족과 함께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무조건 함께 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자신과 맞지 않는 부분이 생겨도 속으로 삯이면서 힘든 여정을 함께 하려고 애쓰게 된다. 그것이 나중에 사소한 다툼이 되고 가족이라는 굴레를 갑갑해 하는 것이다. 두 모녀는 그런 점에서 서로를 구속하지 않았다. 물론 걸음이 느린 딸이 가끔 엄마 혼자 간다며 투정을 부리긴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걸어가며 서로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다르기에 무조건 자신만의 속도에 가두지 않는다.

열여섯의 태윤은 먼저 간 엄마 뒤를 자신만의 속도로 따르며 걷는다. 그 날의 목적지인 알베르게에 가면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길을 견디고, 다음 날 무거운 몸으로 걷다가도 새로운 목적을 만들어가며 고된 길을 걸어간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여러 나라와 같은 나라 사람들과 때로는 함께, 때로는 홀로 걸어가며 도움도 받고, 도움을 준다. 그런 여정이 담긴 글을 읽어가며 나도 모르게 열여섯 태윤을 응원하게 된다.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인 알베르게야. 조금만 더 가면 순례길이 끝날거야. 하면서 함께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엄마 김항심씨의 고백에서 느꼈겠지만 엄마도 딸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책을 썼다. 딸의 날 것 같은 여행 에세이를 읽고 나니 엄마의 여행 에세이가 궁금해진다. 함께 여행하며 어른의 시선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느꼈을까? 모녀의 에세이를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는 생각이….(이런, 그러면 엄마의 여행 에세이 ‘너에게 보여주고픈 길, 마흔여섯의 산티아고 / 김항심 지음’을 구입해야 한다는…)

책 속 문장

엄마와 함께 훌쩍 떠났던 순례길이지만, 엄마와 딸로서 길을 걷기보다는 김항심과 태윤으로서 하루하루를 보냈던 듯하다. 동등한 입지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 건조하게 갈라진 땅을 세 시간 동안 내리 걷는 일, 코를 고는 낯선 이들 사이에서 잠에 드는 일까지. 순례길에서의 일상은 우리 모녀에게는 무척이나 새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발견한 엄마, 김항심은 늘 들뜬 발걸음으로 걷고는 했다. 더위와 피로 속에서도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사람이었고, 생전 처음 보는 남에게도 훌륭한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발견한 나는 넉살을 잘 부리고, 잘 먹고, 깔끔도 잘 떠는 면모가 있었다고 하더라.
4p, 프롤로그 중에서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걸어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어색했다.
양말을 신으며 발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물집이 사라진 뽀송뽀송한 발이 되었다. 몇 주 안에 만나는 나의 건강한 발이었다.
218p

“이 까미노는 끝났지만 앞으로 당신 인생에 다른 까미노들이 있을 거에요. 이제 그 길들의 시작이니까. 새로운 길을 위해 부엔 까미노!” 219p

부엔 까미노는 ‘좋은 여정 되세요’라는 뜻으로 순례자가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21p




y*****0 2022.07.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