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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와의 인연은 제 친구가 경주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친구가 있는 곳으로 곧잘 놀러가 함께 경주를 돌아다닌 추억 덕분에, 경주는 저에게 있어 정답고 그리운 곳입니다. 그런 경주에 관한 책을 찾아볼 때, 제가 아직 잘 모르는 경주의 이모저모를 담은 책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경주에 직접 살면서 겪었던 경험을 담은 책 [이 고도 古都 를 사랑한다] 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책이다 싶어 펼쳐 본 내부에는, 책갈피로 쓸 수 있는 예쁜 엽서가 꽂혀 있었습니다. 어둑하고 푸르스름한 새벽의 분황사 석탑 그림이 담겨 있는 엽서였습니다. 마치 저를 반기듯이, 책갈피까지 다 준비되어 있으니 이 책을 읽으라는 듯이 말이죠. 결국, 끌어당김에 이끌려 저는 [이 고도를 사랑한다]를 읽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책 속에는 엽서의 분황사 석탑 그림이 수록되어 있는 건 물론이고, 참 다양한 경주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게다가 사진이 아니라, 전부 다 캔버스에 오일로 그린 그림들이었습니다. 여름철 초록으로 가득찬 풍경부터, 붉은 하늘, 캄캄한 밤까지 오일로 그려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현실적이었습니다. 경주의 모습을 이렇게 아름답게 포착할 수 있는 화가의 능력 또한 이 책을 읽는 쏠쏠한 재미가 되어 주었습니다. 사실, 경주에 직접 살고 있는 분들과 달리, 저는 그저 일순간에 지나지 않는 관광객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친구를 보러 놀러갔을 때도 기숙사 공간에 몰래 들어가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떠들다 깨어보니 아침이었으니까요. 무수한 역사를 지닌 경주의 입장에서 보면, 잠깐 들렀다 떠나는 이방인에 불과한 것이죠. 경주를 둘러볼 때도, 친구가 이끄는 대로 그저 이리저리 따라간 것이 전부입니다. 불국사, 안압지, 첨성대와 그 주변 노랗게 피어 있는 유채꽃까지. 모두 내로라하는 유명 관광지에다가, 아름답기까지 한, 신라의 정서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유적지이지만, 제 선택이라기보다는 주어진 것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역시 실제 경주에 살고 있는 작가님의 시선에서 본 경주는 사뭇 그 느낌이 달랐습니다. 제가 모르는 여러 곳들을 속속들이 책에 담아 두셨고, 저는 그럴 때마다 '아, 경주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하는 깨달음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경주에 간 것이 아니라, 경주에 있는 친구에게로 간 것이구나.' 느낄 수 있었죠. 그도 그럴 게, '경주'하면 제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친구의 활짝 웃는 얼굴이니까요. 얼굴무늬 수막새라 불리고 스마일 스티커가 떠오르는 경주의 유명 돌과 얼굴빵이 생각나서 제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런 저와는 달리, 경주에 사시면서 느낀 작가님의 시선은 역시 색달랐습니다. 그 색다른 시선의 예로, 흥미로운 단어가 인상깊었습니다. '가라오케'라는 일본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저희가 알고 있는 노래방을 뜻하는 가라오케는 사실, '가라'가 비어 있는, '오케'가 오케스트라의 준말이라고 합니다. (103페이지) 가라오케 자체가 그냥 통째로 일본어겠거니 했던 저에게 어원 소개는 정말 신선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경주 자체가 커다란 가라오케라고 표현한 대목에서 속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106페이지) 많은 역사가 담겨 있는 경주의 발밑에는 분명 아직까지 발굴되지 못한 유적과 보물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경주의 땅속이야말로 비어 있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라고 표현한 문장은 경주에서 오랜 시간 있지 않으면 경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쉽게 나올 수 없는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네이티브 스피커의 이야기는 저처럼 책으로 이론으로만 아는 사람과는 뭔가가 다릅니다. 아라키의 집이라는 카레 식당 이야기가 나왔을 땐, 저도 그곳에 가서 일본식 카레를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경주에 놀러갔을 땐 이런 집을 몰랐거든요. 알았다면, 친구를 데리고 꼭 가보자고 했을 겁니다 경주 남산동(지명)의 동남산(산 이름)에 위치한 이곳은 일본에서 온 아라키 씨가 한국인 부인과 운영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남산동은 작가님이 경주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동네라고 하셔서 더욱 어떤 곳일지 궁금해졌습니다. (205페이지) 언젠가 저도 제가 살고 싶은 동네에서 작가님처럼 경험을 살린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하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책에서 작가님이 이런 말을 하셨거든요. "목표가 없다면 몰입이 없다면 시간은 얼마나 무의미할 것인가. 공부도, 일도, 사랑도 다 시간의 무의미 즉,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몰입하는 것이 아닐까." (63페이지)
그런 의미에서 경주를 담은 이 책을 제가 몰입하여 읽은 것도 저의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목표로서 대성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경주를 직접 가지 않아도 여행한 것만 같습니다. 만일, 제가 이 경주라는 고도古都를 다시 가게 된다면, 이번엔 더욱 몰입하여 경주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