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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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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 나올 때마다 구매하게 되는 정희진 선생님의 책이다 :) 이번에는 영화 평론에 관한 내용인가 싶어 섣불리 짐작해 구매를 망설이다 미리보기로 조금 읽어보고 구매를 했다. 영화에 관한 내용이기보다는 제목 그대로 영화가 나를 통과한 뒤 그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 같다. 믿고 읽는 선생님의 글이라 기대가 된다. 책의 디자인도 꾸준해서 모아서 꽂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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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 나올 때마다 구매하게 되는 정희진 선생님의 책이다 :) 이번에는 영화 평론에 관한 내용인가 싶어 섣불리 짐작해 구매를 망설이다 미리보기로 조금 읽어보고 구매를 했다. 영화에 관한 내용이기보다는 제목 그대로 영화가 나를 통과한 뒤 그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 같다. 믿고 읽는 선생님의 글이라 기대가 된다. 책의 디자인도 꾸준해서 모아서 꽂는 재미도 있다.
YES마니아 : 골드 b****m 2023.06.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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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작가님의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를 읽고 리뷰를 남깁니다. 이전에 쓰신 <혼자서 본 영화>를 읽고 이번에도 영화에 관련된 책을 출간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구매했습니다. 일단 작가님과 영화 취향이 비슷하여 본 영화 위주로 글이 쓰여있어서 좋았고 저와는 다른 견해를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영화 안에서만이 아닌 더 나아가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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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작가님의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를 읽고 리뷰를 남깁니다. 이전에 쓰신 <혼자서 본 영화>를 읽고 이번에도 영화에 관련된 책을 출간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구매했습니다. 일단 작가님과 영화 취향이 비슷하여 본 영화 위주로 글이 쓰여있어서 좋았고 저와는 다른 견해를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영화 안에서만이 아닌 더 나아가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을 늘 응원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세요.

t*****1 2023.03.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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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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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선생님은 어떤 영화를 어떻게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 궁금해서 읽어본 책입니다. 게중에는 제가 보지 않은 영화도 있지만, 제가 봤던 영화와 인상깊게 생각한 장면 혹은 봤으나 별 감흥없이 넘어간 장면들도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더 깊게 사유하고 통찰하는 힘을 갖고싶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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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선생님은 어떤 영화를 어떻게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 궁금해서 읽어본 책입니다. 게중에는 제가 보지 않은 영화도 있지만, 제가 봤던 영화와 인상깊게 생각한 장면 혹은 봤으나 별 감흥없이 넘어간 장면들도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더 깊게 사유하고 통찰하는 힘을 갖고싶다고 생각했습니다.
j******3 2024.05.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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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 나와 세상으로 확장하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영화 글쓰기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 나와 세상으로 확장하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영화 글쓰기" 내용보기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는 또렷이 떠오르는 한 장면, 온몸을 들썩이며 울게 만든 대사,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배우의 얼굴 등을 통해 영화라는 작품 자체가 아닌 자신을 향해 있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영화 비평서로 인상적이다. 이 책은 영화를 보는 나를 보고, 영화를 해석하는 나를 쓰고, 나의 관점을 구성하는 당대의 현실에 질문을 던지는 독창적 글쓰기를 보여준다.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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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는 또렷이 떠오르는 한 장면, 온몸을 들썩이며 울게 만든 대사,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배우의 얼굴 등을 통해 영화라는 작품 자체가 아닌 자신을 향해 있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영화 비평서로 인상적이다. 이 책은 영화를 보는 나를 보고, 영화를 해석하는 나를 쓰고, 나의 관점을 구성하는 당대의 현실에 질문을 던지는 독창적 글쓰기를 보여준다. 정희진은 영화의 꽂힌 부분을 통해 나 자신을 알 수 있고, 그 부분에 나의 세계관이 압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내가 쓴 글이 나를 만드는 과정을 넘어 내가 내 글로 재귀함으로써 새로운 내가 탄생하기를 희망한다는 정희진의 글은 영화라는 예술이 현실을 어떻게 재현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변화할 수 있는 힘이 되는가를 이야기한다.

 

이처럼 정희진에게 우주 재난 SF 영화 〈그래비티〉는 우울증 환자의 치유기이고,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룬 〈작전명 발키리〉는 정치철학의 고전 <리바이어던>에 대한 최고의 해제다. 〈비밀은 없다〉에서 딸의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엄마의 대사(“정신을 차리자”)는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약자의 자기 주문으로 치환된다. 저자만의 고유한 경험과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피고인〉의 조디 포스터와 〈화양연화〉의 양조위는 온전히 겹쳐지고, 〈설국열차〉와 〈부산행〉의 결말은 데칼코마니로 읽힌다.

 

정희진은 강유가람 감독의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의 제목은 우리는 매일매일 무엇을 하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가? 나는 무엇을 하는가?라는 시제와 같이 보여 흥미롭다고 말한다. 정희진은 1990년대 말 IMF 사태 직후 '영 페미니스트'라고 불린 여성들의 현재 삶을 추적하는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타인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 자기방어를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여성들에게 여성주의 공부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남자들의 지식은 전수되는데, 왜 여성은 처음부터 똑같은 질문을 반복할까. 나를 비롯해 여성도, 여성주의자도 젠더에 알기 어렵다. 여성주의는 과정의 사유다. 왜냐하면 여성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인 사유이기 때문에 매 순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대체 누가 여성이며,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현실이 계급 문제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듯, 젠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여성은 구조적 피해자"는 상식이지 논쟁거리(?)가 아니다. 젠더는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남녀 간 권력관계로 '보이는' 젠더는, 여성들 간의 차이와 남성들 간의 차이를 매개로 하여 작동한다.

이러한 여성주의의 모순과 복잡함은 사상의 한계가 아니라 자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적 사고방식은 가성비가 높은 공부이며 빼어난 인식론일 수밖에 없다. 여성주의는 다른 사유처럼 공부해야만 획득할 수 있는 어려운 인식이다. '여성(female)'이 '여성(women)'이 되는 과정 그리고 '우먼'이 '페미니스그'가 되는 과정 모두 엄청난 정치적 노정이다. 그 길에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현실과 지식을 만나게 된다. 문제는 사상과 현실의 거리가 너무 멀고 동시에 너무 가까운 듯 보여서, 누구도 이정표를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여성에게 유일한 무기는 언어밖에 없다. 우리가 총칼로 싸우겠는가, '미러링'이라는 이름의 욕설로 싸우겠는가.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는 한 해방은 없다. 여기서 공부의 첫 단계 이론을 적용하지 말로 '지금 여기 자신'의 위치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이다. 나는 최근 한국의 여성주의를 설명하는 '페미니즘 리부트'(부트된 적이 없다), '백래시'(그냥 젠더 무지다), '교차성'(교직성, 횡단의 정치, 융합이 더 적절하다)이 적절한 용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희진은 이경미 감독의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 주인공 연홍이 운전대를 잡고 "생각하자" "정신 똑바로 차리자"를 반복하는 장면을 보고 울게 되었다고 말한다. 정희진은 이 영화의 제목처럼 사람들은 '비밀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모르는 사실'과 '없는 사실'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비가시화된 현실이 있을 뿐 세상은 비밀로 가득하다. 정희진은 지와 무지의 경계는 권력이 정하며, 권력이 있는 모든 곳에는 비밀을 둘러싼 정치가 있다고 말한다. 비밀, 고통, 권력이 삼격형을 이루며, 비밀로 인해 이익을 보는 자, 억압을 당하는 자, 손해를 보는 자, 고문을 당하는 자 등 비밀은 권력관계의 정점이라는 정희진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정희진은 영화 <비밀은 없다>는 연혼이 비밀을 알아내고 사회를 습격하지만, 복수극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 영화의 주제는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은 늘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연홍 같은 캐릭터가 불안해 보이는 이유는, 매 순간 정신이 자기 자신을 위해 작동하도록 뇌의 방향을 수시로 회전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 구호를 외쳐야 한다, 믿었던 것과 알게 된 것 사이에서 피억압자가 살아내기 위해서는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외로움과 서러움을 경험해야 한다.

 

"이 영화에서 "정신을 차리자", "생각을 하자"는 할 일이 많을 때 나오는 말이 아니다. 내가 본 것과 남(편)이 마랗는 것이 불일치할 때 나온다. 삶에서 가장 두려운 상황은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때다. 그럴 때 세계는 혼돈의 연속이다. 질서는 '저들의 것'이다. 저들의 질서가 나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나만의 삶의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불안이 정상이다. 불안은 몸의 외부와 자신의 몸이 불일치할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이성의 반응이다. "안정돼 보인다." 나는 이 말, 이런 사람을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안정을 욕망하는 현실이 싫다. 안정만큼 계급적인 단어도 없을 것이다. 넉넉하고 아쉬움이 없고,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며 사랑받고 아프지 않은 상태. 어떤 부정의에도 분노하지 않는 우아한 세계, 불일치와의 투쟁이 필요 없는 삶. 이런 인생이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실상 가능하지 않은 상태다. 동시에 피억압자를 '비정상'으로 내모는 말이다."

 

정희진은 김태균 감독의 영화 <암수살인>의 미덕은 윤리성에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형사 영화는 범인과의 심리 게임이나 액션(폭력), 스릴러를 강조하고, 주제는 남성들 간의 승부이고, 피해자(주로 여성과 어린이)는 그들의 대경이 가능하도록 기능하는 도구지만 <암수살인>은 반대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희진은 이 영화는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다루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영화에서는 "암수살인이 한 해 최소 2백 건"이라는 대사가 나오지만, 이 숫자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법무부 장관도 알 것이다. 경찰이 인지한 사건만 이 정도라는 것이다. 실제는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다. 실종 사건에서 남겨진 이들의 고통은 사라진 이의 죽음 여부가 아니다. 실종자의 생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지속적으로 유예되는 고통. 기다리는 이들의 고통. 이들은 고통이 끝나길 원한다. 여기서 딜레마는 생사 여부를 범인만 알고 있으며, 그것이 그의 권력이라는 사실이다. 때로는 수사 기관이 파악하지 못한 범죄를 범인이 자백하는 조건으로 형량 거래를 하기도 한다. <암수살인>에서는 형사가 자기 돈을 써가며 범인과 적극적으로 협상한다.

요컨대 <암수살인>은 고통, 가시성, 윤리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상업 영화로서 나름 성공했다는 점은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세 번 봤다. 볼수록 다른 대사가 들린다. 암수살인의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라는 점, 피해자의 신분이나 언론의 관심에 따라 사회적 자원(수사)이 다르게 분배되는 현실을 이만큼 성실히 추적한 영화도 드물 것이다. 한국판 페미사이드(여성 살해)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안전이라는 사회적 공공재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권력, 경제력에 의해 자와되는 사회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다."

 

정희진은 20세기 미국의 위대한 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미완성 에세이 '리멤버 디스 하우스'를 토대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를 연출한 라울 펙 감독은 1960년대 미국 흑인민권운동을 이끈 마틴 루서 킹, 맬컴 엑스, 메드가 에버스에 대한 볼드윈의 회상을 바탕 삼아 미국 인종주의의 역사를 탐사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정희진은 이 영화가 흑인이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 흑인운동과 제임스 볼드윈과 한국 여성주의자의 공통점을 확장하며 인종 모순과 젠더 모순의 공통점은 지배자의 무지라고 말하는 정희진의 글이 영화를 통해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지점을 보여주어 흥미롭다.

 

"이제 극영화는 픽션이고, 다큐멘터리는 논픽션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모든 영화에 제작자의 입장이 담겨 있다. 영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담론의 일부이자 효과다. 말할 것도 없이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보는 시선, 곧 입장성, 위치성, 당파성이다. 이것은 보편, 중립, 객관을 넘어서는 다른 세계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자기 위치를 역사 속에서 자각한 당사자의 당파성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 영화는 보면서 관객이 느끼는 쾌감('미학적 성취')는 이러한 깨달음 때문이다.

당파성은 상황적 지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백인을 포함해 앎의 의지를 지닌 모든 이들에게 매우 설득력이 있다. 볼드윈은 진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나 보편성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보여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흑인(사회적 약자)에 대한 통념은 거의 대부분 실제가 아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당사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당사자도 있다. 그래서 투명한, 인지 가능한 '당사자'와 사회적 실천으로서 '당사자성'은 다른 개념이다. 지배 세력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히 당사자성이다."

 

"하지만 흑인운동가 제임스 볼드윈과 한국 여성주의자의 공통점은 분명히 있다. 영화 속 볼드윈의 말대로 "당신(백인)은 나(흑인, 여성을 비롯한 피억압자)를 보지 않아도 됐지만, 난 당신을 봐야 했다. 당신이 나를 아는 것보다 내가 더 당신을 잘 안다." 인종 모순과 젠더 모순의 공통점은 지배자의 무지다. 지배자들은 세계와 인간에 대해 무지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몰라도 되는 것이다. 몰라도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알게 되면 자기 분열과 긴 성찰의 시간으로 인생이 뒤죽박죽될지 모른다. 하지만 억압받는 이들은 자신과 상대방, 세계를 알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어떻게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이것은 내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가장 큰 고통이기도 하다."

 

정희진은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를 통해 오랜 지병이 해석되고 다스려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정희진은 우주는 무중력 상태이므로 지구와 달리 우울증 환자가 살 수 있는 공간이며, 우주가 배경인 <그래비티>에서 우울증 환자는 지구에서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무중력이지만 첨단 장비와 그와 우주를 연결해주니 발버퉁 치지 않아도 생존 가능하며, 지구에서 이 연결은 사람과 사랑이지만 구하기 쉽지 않은 끈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를 우주, 가장 먼 이동을 통해 '우울과 중력'이라는 주제를 통찰한 이야기로 풀어낸 정희진의 글은 우울증이라는 고통을 가진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지구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 때문이다. 이 힘은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만유인력이라고 부른다. 그래비티, 중력은 말 그대로 무거운 힘이다. 물체의 무게는 이 힘을 가리킨다. 만유인력과 지구 자전에 의한 원심력이 더해져 우리가 지표면에 의지해 살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호소. "지구가 나를 붙잡지 않아요." 지구의 의지, 중력의 법칙에서 버려진 이들이 우울증 환자다. 우울증의 고통에 비하면 '우울'이라는 표현은 우아하다. 우울증 환자의 삶은 스펙터클하고 격렬하다. 격렬한 고통이다."

 

정희진은 홍석재 감독의 영화 <소셜포비아>는 근대 초기 신분 사회로부터 해방된 자유주의적 개인이 이후 백 년이 지나자마자, 신자유주의적 각자도생의 개인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자기 통치자로부터 개인의 힘은 막강해졌지만, 사회적 자아는 모두 자본에 종속되었다. 정희진은 각자도생 시대는 개인의 자유는 통치 원리인 '힘센(비윤리적인) 개인'의 등장이며, 결국 개인과 공동체 모두를 파괴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정희진은 <소셜포비아>의 착목 지점인 글쓰기에 대해 말한다. 1인 매체의 시대, 매체만으로는 완전히 평등하고, 나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고, 어떠한 노력도 필요 없는 시대, 누구나 판관, 감별사, 평론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이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올 때 혹은 두 세계를 병행할 때 <소셜포비아>의 여자 주인공 민하영 같은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이야기하는 정희진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정희진은 SNS 속에서 모두 개성 있는 다름을 주장하는 개인들이되 실은 똑같으며, 개별적으로 자본에 포섭되어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고 비판한다. 자신을 아는 오프라인의 글쓰기로 표현해야 할 때라는 정희진의 말을 현대인들은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글쓰기의 정의는 이견이 없다. 글은 '자기' '생각'을 '표현(재현)'하는 '노동'이다. 자신을 아는 일은 일생에서 가장 어려운 법이고, 생각하기는 가장 어려운 작업이다. 글쓰기는 중노동이다. 글쓰기는 두렵고, 어렵고,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수입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SNS에서 글쓰기는 자본의 입장에서 너무도 손쉽고 이익이 막대한 돈줄이자 중우 정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쇄물(책)을 소환하 때다. 지금으로서는 잠시 SNS를 중단하고 오프라인에서 글쓰기가 유일한 저항처럼 보인다. 너 자신을 알라. 생각을 하라. 죽도록 연습하고 표현하라. 그런 점에서 영화의 백미는 글쓰기 수업 파트다. 소셜 네트워크의 본질을 꿰뚫는 감독의 통찰력과 영화를 만드는 뛰어난 '작전 구사력'이 보인다."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는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자신의 몸을 지나서 세상을 보는 눈으로 확대되는 정희진의 글쓰기를 만날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영화에 대한 인상적인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 그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사고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s*****0 2022.12.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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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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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본 영화들을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썼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목차에 나온 영화들을 모두 본 것은 아니고 절반 정도는 보았기에 내가 느낀 감상과 무엇이 다를지 알고싶었다. 그러다 들어가는 글에서 아래의 글귀를 읽었다.   영화의 '보이는 밑그림들'은 관객들의 개인적 사건이 된다. 개별적인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버전일 수밖에 없다.(야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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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본 영화들을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썼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목차에 나온 영화들을 모두 본 것은 아니고 절반 정도는 보았기에 내가 느낀 감상과 무엇이 다를지 알고싶었다. 그러다 들어가는 글에서 아래의 글귀를 읽었다. 

 영화의 '보이는 밑그림들'은 관객들의 개인적 사건이 된다. 개별적인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버전일 수밖에 없다.(야오이장르처럼 이미 퀴어 예술가들은 이러한 작업을 해왔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그래서 맥락적이다. 어느 장면도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녀가 느낀 것은 내가 느낀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며, 영화를 통한 슬픔, 기쁨, 고통 등은 오로지 나를 거쳐야만 나올 수 있다. 어떤 영화들은 보고나면 평을 남기지도 못할 만큼 기운이 빠진다. 그때마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기록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유익했다.

작가님이 쓴 책은 두 권 정도 읽었는데, 이 책이 가장 읽기 쉽고 유머러스했다. 예전보다 글에서 고통이 덜 느껴지는 것은 작가의 의도였을지 궁금하다.(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담담하게 쓰신 거 같은 궁예)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비슷한 감상을 가진 영화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그래비티'였다. 

 

b******o 2022.09.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