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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무라 미나에 작가의 <어머니의 유산>,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김지윤 작가의 <모녀의 세계>는 모두 딸과 엄마의 비틀린 관계를 그리고 있다. 단지 혈육이라는 이유로 삶을 저당잡힌 딸들의 이야기는 한편 무거우면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게 한다. 특히 온 집안에 똥칠을 하고 다니는 칼라마다니 작가의 <똥 엄마 애니메이션> 을 보고 나면 전통적으로 그려지는 어머니의 이미지란 무엇인지 다시금 질문을 하게 한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애니 존>은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첫 장편소설이다. 10살에서 17살까지 성장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똑똑하고 맹랑한 애니의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16섯에 큰 트렁크를 끌로 도미니카에서 앤티가로 집을 나온 엄마도 참 당차다고 생각했다. 사랑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수많은 여자를 둔 남자와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으니 남들보다 잘 키우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읽는 내내 느껴졌다. 앞의 전작들은 엄마의 캐릭터가 워낙 독특하고 센 캐릭터여서 사실 이입이 힘들었다면 이 책의 주인공 애니와 엄마는 너무도 보편성을 띄고 있어서 읽는 내내 엄마와 나의 십대가 계속 떠올랐다는 것이다. 나 또한 사춘기를 세게 겪었고 친구에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으며 사사건건 엄마와 부딪쳤던 수많은 에피소드들. 이 작품은 아마도 그 세세한 디테일이 완벽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인도제도의 낯선 나라 앤티가섬 출신의 작가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행운이랄까! 열살 무렵 애니는 모르는 사람들만 죽는다고 생각했다. 고열에 시달리다 죽은 날다라는 엄마 친구의 딸의 죽음을 시작으로 지진아인 소니아의 엄마가 임신중 사망하고 길 건너 이웃인 미스 샬럿이 갑자기 스러져 숨을 거둔다. 연이은 죽음을 경험한 애니는 장례식에 다니기 시작한다. 나 또한 죽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어서인지 애니의 이런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단지 애니는 장례식에 다녔다면 나는 공상에 빠졌을 뿐... 애니가 태어난 이래 그녀의 것이었던 물건이 엄마의 트렁크에 들어있다. 배냇저고리부터 천 귀저기, 털실, 양말한컬레, 상의, 모자, 두 돌 때 입었던 원피스, 첫 신발까지.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볼 때마다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 엄마 이야기, 아빠 이야기, 이야기가 풍부하고 사랑이 넘치는 낙원에서 살고 있던 애니가 사춘기가 되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신체가 변하면서 자기 자신도 누군지 모르겠는데 내가 알던 엄마도 더이상 예전의 엄마가 아니다. 애정과 입맟춤을 듬뿍 안겨줬던 엄마는 예의 범절에 피아노를 배워야 한다며 여기저기 데리고 다닌다. 침대 정리를 못한다며 화를 내는 엄마가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애니도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대답을 한다. 딱 사춘기다. 정말 엄마가 좋으면서도 미워지는 시기가 이때인 것 같다. 엄마와 나라는 세계에 빈틈이 생기고 그곳에는 친구 그웬과 레드걸이 차지한다.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애니는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알아서 침대보도 잘 정리했으면 싶고, 구슬치기 같은 건 안했으면 하고, 깨끗한 친구와 지내길 바라는게 아주 큰 요구나 간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점점 거짓말이 늘어나고 비밀이 생기는 사이, 엄마로부터의 독립을 죽음으로 표현되는 장면이 조금 섬뜩하기도 했는데 엄마와 딸의 이름을 같이 설정한 이유가 아마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결국 엄마로부터 탄생했지만 어디까지나 애니는 애니인 거니까. 서인도 제도의 역사도 조금이지만 알게 된 점도 좋았다. 선조를 잘못둔 죄로 역사 수업 시간에 지목된 영국소녀 루스를 통해 관점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석달 반 동안 애니는 병명도 모른 채 학교도 갈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그녀가 태어난 세상이 통째로 견딜 수 없는 짐이 되어 버렸고 그 결심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는 엄마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나에 대해 안다는 이유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으로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p.121 아빠가 만들어준 트렁크를 끌로 애니는 영국으로 떠나면서 이 소설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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