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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쓴만큼, 치열하게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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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작가는 서문에 ‘전압이 높은 책, 나를 소생시키는 책’을 좋아한다고 썼다. 내게 정희진 작가의 책 대부분이 그런 고압선이자, 심폐소생술기이다. 전압이 높은 만큼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다. 읽고 나면 전과 다르게 살아야 하기에 더 힘들다. 다섯 권으로 예정된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의 세 번째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도 그런 책이다. ‘페미니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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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진 작가는 서문에 전압이 높은 책, 나를 소생시키는 책을 좋아한다고 썼다. 내게 정희진 작가의 책 대부분이 그런 고압선이자, 심폐소생술기이다. 전압이 높은 만큼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다. 읽고 나면 전과 다르게 살아야 하기에 더 힘들다. 다섯 권으로 예정된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의 세 번째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도 그런 책이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읽고  치열하게쓴 서평집이다.

책은 아픔으로 말 걸기’, ‘우리에겐 불편한 언어가 필요하다’, ‘몸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이라는 3개의 장으로 나누어지고 있고, 이 세 화두는 책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첫 장 아픔으로 말 걸기는 몸과 자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철저하게 개별적인 나의 몸과 내 몸이 겪고 있는 아픔을 바라보는 것,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몸의 이미지와 다른 내 몸을 긍정하고 몸과 자아에 가해지는 고통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들이 소개된다. 자신의 몸을 모르면, 아픔을 설명할 수 없다. ‘아프다고만 하면 어디가, 어떻게아픈지 묻는 질문이 돌아오고 그 말들은 아픈 이에게도, 묻는 이에게도 상처가 된다(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누군가의 폭력으로 아픈 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이 때 용서는 과연 미덕인가.

 

다만 나는 고통에 대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 고통에 대한 고통이란, 침묵과 망각 외에는 고통에 대처할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 ‘용서는 이 문제가 해결된 다음의 이슈여야 한다. p.50. 용서는 분노보다 우월한가?

 

내게 용서는 저절로 잊히는 것이지, 용서를 위해 고민하거나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내겐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스트레스고 참을 수 없는 부정의다. 내가 생각하는 용서는 관련된 사건을 잊는 것이다. 사건을 무시한다(ignore). 살기 위해 나 자신에게 몰두하고, 그 일을 잊는다. p.53. 용서는 분노보다 우월한가?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에서 작가의 지인들이 새벽 세 시의 겪는 아픔들이 와 닿았다. 나 역시 세벽 세시에 깨어 있었던 적이 있어 그럴 것이다. 아픔 때문에 깨어있든, 아픔을 외면하기 위해 깨어있든 새벽 세 시에 아파 본 사람들은 그 아픔의 무게를 알 것이다.

 

두 번째 장에서는 본능, 진화, 관습, 자본주의 등의 이름으로 여성을 불편하게 했던 것들이 이야기 된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육아나 가사 활동에 특화되도록 진화해 왔다고 해서, 성별 분업이 당위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원래 사실과 가치는 구분되지 않는다. 사실(事實)은 언제나 사실(史實)의 산물이다. p.134. 다윈은 우리 편

 

소개된 책 들 중 호주에서 살고 있는 작가 애너벨 크랩의 아내 가뭄을 읽게 된 이유는 내게도 아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 역시 너무나 자주, 간절히 했기 때문이다. 외부 노동도 그렇겠지만, 가사노동은 육체적으로 강도 높은 노동은 물론 감정적으로도 강도 높은 노동을 요한다. 잘 해내지 못 하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는 덤도 있다. 외부노동과 가사노동을 병행하며 심지어 아프기도 한 내게 아내의 존재는 지금도 절실하다.

 

 마지막 장 몸의 평화의 깨지는 순간은 작가가 글로, 혹은 세상으로 경험한 평화가 깨지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코로나 시국이 이어져서 그런지 이 거리두기, 비대면의 일상 속에서 여성들이 마주하게 되는 또 다른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와 닿았다. 외출을 삼가고, 집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가정폭력이 더 심각해졌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가지 않아도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집에 머무르고, 노인들을 위한 기관들이 문을 닫으면서 많은 여성들이 돌봄의 역할은 전적으로 맡게 되면서 여성이 집안에서 감당해야 하는 신체적, 정서적 노동은 훨씬 더 늘었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는 그 어떤 책보다 서평을 쓰기가 어려웠다. 일단 소개된 책들 중 읽은 책이 거의 없어 그 책들을 먼저 찾아 읽느라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그럼에도 몇 권도 채 읽지 못 했다), 글 쓰는 이들 가운데서도 알려진 정희진 작가의 서평을 다시 평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지만 전압 높은 글을 필사적으로 읽으며 조금은 성장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서평은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작성하지 못 해 소개된 책들을 좀 더 읽고 다시 작성할 예정입니다. 

 

 yes24서평단의 자격으로 작성하였으며 작가와 출판사를 응원하며 책은 별도로 구매하였습니다. 

 

9*****6 2021.05.02. 신고 공감 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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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압이 높은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전압이 높은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내용보기
하루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낄 때마다 느낀다. 멍하니 보낸 시간이 많구나. 뇌 회로가 정해놓은 일상을 보냈구나. 자동화 모드로 살았구나. 반복하는 루틴을 따랐구나. 이런 생각은 혼자 있을 때 반짝 하고 떠올린다. 진짜 내 생각 같은  생각. 일상을 돌아볼 때, 혹은 일상을 더듬어보면서 글을 쓸 때만 하는. 딱 그 순간에만 내 정신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알면서 자주 늪에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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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낄 때마다 느낀다. 멍하니 보낸 시간이 많구나. 뇌 회로가 정해놓은 일상을 보냈구나. 자동화 모드로 살았구나. 반복하는 루틴을 따랐구나. 이런 생각은 혼자 있을 때 반짝 하고 떠올린다. 진짜 내 생각 같은  생각. 일상을 돌아볼 때, 혹은 일상을 더듬어보면서 글을 쓸 때만 하는. 딱 그 순간에만 내 정신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알면서 자주 늪에 빠진다.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의식이 의미를 두고 있는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 허무함이 몰려온다. 마음 먹은 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꾸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 같은 도돌이표 일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자고 결의에 차서 하는 일이 있다. 글쓰기. 글을 쓸 때만 내 정신인 것 같기 때문이다. 자주 쓰면서 나와 일상을 돌아본다. 그게 생각처럼 안 될 때도 있다. 분주함이 나를 감싸고 있을 때다. 한 순간이라도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기 어렵다. 아주 잠깐만 시간 투자를 해도 되는 일인데. 글쓰기에 대한 의욕마저 사라질 때도 있다. 알고보면 매사에 의욕이 없을 때다. 요즘이 그렇다. 읽기, 쓰기 모두에 선뜻 의욕이 안 생긴다.

 

자동 모드만 가동하며 산다는 이야기다. 자극이 필요할 때다. 어떤 책을 가지고 다녀볼까 고심하다 고른 책이 정희진의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다. 언제나 그랬듯, 머리에 스파크가 일어나고 읽고 나면 읽고 쓰기의 방향을 잡게 된다. 나는 작가의 이 말을 좋아한다. '나는 전압이 높은 책, 나를 소생시키는 책을 좋아하지만'(11쪽). 별 감응없이 의무감에 책을 읽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일상에 무기력함이 찾아들 때 어떤 책을 골라 읽을지 혜안을 갖게 한다. 전압이 높아서 몸과 마음에 불꽃이 튀는 책이어야 한다는 것.

 

독자가 책을 선택할 수 없는 온라인 서점 시대에는 상업성을 고려해 유명 필자의 이름을 걸고 '기획'된 책, 쉬운 책, '위로'가 되는 책에 대한 대중의 강력한 요구가 있다. 이는 기후 위기만큼이나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모든 것이 양극화되는 시대에 생각하는 능력, 지성의 양극화는 절망적이다.(12쪽)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작가가 읽은 책을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실상 작가 자신의 생각으로 도배된 책이다. 그래서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를 좋아한다. 전압이 높은 책, 읽는 이를 소생시키는 책을 좋아하는 작가의 글 역시 전압이 높다. 작가의 관심 분야를 접해보지 못했던 독자 머릿속 뇌회로가 새로운 분야로 연결될 기회를 준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작가의 글은 지루하지가 않다. 그래서 내 글을 쓰기 전에 작가의 책을 먼저 펼쳐본다. 스파크가 일어나는 글을 읽고 나면 글을 쓸 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계몽적'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나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지식인의 사명'은 동시에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179쪽)

 

멍하게 살면 정해진 루틴을 반복한다.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그렇게 주입된 생각에만 영향을 받는다. 깜짝 놀랄 만한 자극이 필요할 때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이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라고 일깨워주는 자극 말이다. 물론 단 한번의 자극이 사람을 바꿔놓지 않는다. 사람이 바뀌려면 환경이 바뀌거나 만나는 사람이 바뀌어야 된다고들 한다. 근데 그게 안 되면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다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쓰기'다. 정희진 작가처럼 뚜렷한 생각을 갖고 사는 게 아니라 그렇다. 시작, 시도, 행동, 실천은 늘 과제다.

YES마니아 : 골드 l*****j 2021.05.29. 신고 공감 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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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을 쓰려고 읽는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내 글을 쓰려고 읽는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내용보기
그럴 때가 있다. 읽고 싶은 분야가 있어서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읽고 있을 때. 관심 분야가 없을 때, 읽기 편한 책들 혹은 베스트셀러들, 아니면 누군가 읽었다는 책을 검색하기도 한다. 주관 없이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 리뷰를 쓸 때도 읽을 때와 다르지 않다. 책이 주연이고, 나는 조연이거나 엑스트라다. 내 생각이 글을 이끄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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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다. 읽고 싶은 분야가 있어서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읽고 있을 때. 관심 분야가 없을 때, 읽기 편한 책들 혹은 베스트셀러들, 아니면 누군가 읽었다는 책을 검색하기도 한다. 주관 없이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 리뷰를 쓸 때도 읽을 때와 다르지 않다. 책이 주연이고, 나는 조연이거나 엑스트라다. 내 생각이 글을 이끄는 게 아니라 책 내용에 내 생각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그러면 재미도 없고 내 것 같지 않은 글이 된다. 자기 생각을 풍성하게 담아야 글에 힘이 실린다.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저자는 독후감에 대해 말한다. 작가가 "쓰고 싶은 독후감은 다른 시각으로 읽음으로써 '없는' 내용을 만들어내는 방법" 이라고 썼다. 정희진의 독후감은 책을 읽고 쓴 글이지만 작가의 생각이 주를 이룬다. 독후감이면서 책에 '없는' 내용들을 더 많이 만난다. 작가 자신의 생각, 관점, 철학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책을 읽지 않아도 내용을 몰라도 글이 흥미진진하고 힘이 있다. <정희진처럼 읽기>를 읽고 같은 형식으로 쓴 책을 이어서 읽었던 이유다. 모두 책에 대해 쓴 책들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글은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이다.(246쪽)

 

재미있는 글은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이 담긴 글이다. 흔히 만나는 책리뷰를 읽을 때도 책에 담긴 이야기보다 글쓴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그 때문에 소개한 책에 호감이 간다. 이 책은 60여 권의 책을 이야기 하는데도 내가 아는 책이 거의 없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다른 견해를 기대하고 독후감책을 보는 데 이 책은 아니다. 작가 생각을 읽는 것만으로 흥미롭다. 작가의 생각 때문에 몇 권 구입해놓기도 했다. 책을 읽고 지축을 흔드는 충격을 나도 똑같이 느낄 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독후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책 자체라기보다는 독자의 처지와 조건이다. 어떤 이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책이 어떤 이에겐 지축을 흔드는 충격을 준다. (<정희진처럼 읽기>, 305쪽)

 

이 책과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두 권을 같이 읽고 있다. 차례대로 읽을 필요가 없으니 눈이 가는 대로 읽는다. 독후감이지만 사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제목만 봐도 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이렇게 활용한다. 내 글을 쓰기 직전에 이 책을 읽는 것이다. 글쓰기 직전에 읽은 글 때문에 내 글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경험을 가끔 한다. 글쓰는 스타일이 미세하게 바뀐다. 글에 줏대가 없어 그렇다. 이 책을 읽는 이유가 줏대 있는 글을 쓰고 싶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정희진처럼 말이다.

 

나는 "글은 곧 글쓴이다.(I am what i wrote 혹은 'All that me")라고 생각한다. 아니, 글만큼 그 사람 자체인 것도 없다.(10쪽) 

YES마니아 : 골드 l*****j 2021.03.14. 신고 공감 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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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 나를 알기 위해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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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나를 알기 위해서 읽는다. 글쓰기에 너무 게으른데다 그나마 코로나 19로 인해 자투리 시간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을 읽다 보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미처 모르고 지나친 과거 어느 순간의 내 감정과 생각의 단편들을 만나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건 끝없이 새로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저자의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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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나를 알기 위해서 읽는다. 글쓰기에 너무 게으른데다 그나마 코로나 19로 인해 자투리 시간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을 읽다 보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미처 모르고 지나친 과거 어느 순간의 내 감정과 생각의 단편들을 만나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건 끝없이 새로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저자의 독후감을 모은 이 책은 페미니즘의 사유로 통하는, 내가 알거나 몰랐던 책들과 우리 사회와 내 주변 사람들, 나의 위치와 감정을 깨닫게 하거나 배움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글들로 알차다. 리뷰를 쓰기가 어려워 포기하려다 이 책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내 기억을 보완하기 위해 특히 마음에 와 닿은 글들을 남긴다.

 

 

 * 단도직입적으로 여성주의만큼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학문은 드물다. 아니, 글쓰기와 여성학의 인식론, 방법론은 거의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학은 언어의 역사이고, 여성주의는 언어의 역사가 형성된 과정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자명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개입된 권력 관계를 질문한다면, 기존 여성주의를 포함해 세상의 모든 언어는 상대화와 붕괴(의미의 다변화)의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주의와 글쓰기 공부는 별개의 실천이 될 수 없다. 여성주의는 하나의 분과 학문(국문학, 영문학 ...)이 아니라 평화학이나 탈식민주의나 생태학처럼 일종의 인식론이다. (15-16쪽)

 

 

 * 나는 누구인가. 모든 사람이 이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물음은 내 경험과 사회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을 때, 타인이 멋대로 나를 규정할 때 솟아난다. (26쪽)

 

 

 * 용서를 하든 복수를 하든 진짜 피해는, 피해자가 가해자와 그 사건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31쪽)

 

 

* 가장 문제가 되는 외면화는 자기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자기 문제를 남의 문제라고 굳게 믿는 '네 탓으로 인한 나의 고통'이라는 고착 심리다. 이들은 완벽주의자로서 자기를 스스로 정한 기준과 동일시한다. ... 타인에게 자기 기준(이라지만 일관성은 없다)에 맞춰 살라고 요구하고 상대가 부응하지 못하면 분노하고 경멸한다. (55쪽)

 

 

* 삶은 할 일로 채워지는 것이지 안정과 성취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다. 나는 조금 태평해지기로 했다. (62쪽)

 

 

* 자본주의와 의료 기술의 발달은 가난한 사람에겐 모순이다. 일하는 시간은 짧아졌고 평균 수명은 길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에 맞는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64쪽)

 

 

* 시인(김수영)은 도둑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양계를 집어치우지 못하는 이유가 도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철조망을 넘어온 도둑(양계를 시작한 시인)은 그만두고 싶지만, 그리고 본인이 넘어온 길을 알지만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라고 물으며, 모르는 척 떼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제목 그대로, 양계 변명이다. (70쪽)

 

 

* 고전은 무식의 면죄부다. 아무 때나 인용하고 표기 그대로 오해해도 된다는 허가증이므로, 고전으로 간주되는 책들은 태생부터 반동적이며 동시에 해방구다. (85쪽)

 

 

* ... 알튀세르, 푸코, 라클라우나 스피박, 무페, 버틀러 같은 일군의 페미니스트는 보완이든 비판이든 상호 비판이든 마르크스의 길을 연결한 공신들이다.

 이들의 요지는 해석과 변혁은 분리되지 않으며, 다르게 해석하는 행위가 곧 변혁이라는 것이다. 신앙을 포함해 모든 철학은 변화를 위한 것이다. 해석이 곧 실천임은 당연한 이야기고 문제는 누구의 해석이냐, 그것을 누가 대표로 말할 수 있는가다. 또한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소통 과정에서 변형된다. 투명한 언어는 없다. 사실 인간은 언어로 말하지도 않는다. 소통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율은 3~7퍼센트, 나머지는 몸이 말한다. (87쪽)

 

 

 * 인생이 지옥이고 죽음이 천국이라면, 연옥쯤에 해당하는 것이 은둔 아닐까. (89쪽)

 

 

*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의미다. 돈과 권력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다. 최고의 의미는 내가 타인의 앎의 노력 대상이 된다는 것(사랑받음), 그리고 상대를 알려는 노력이다(사랑). (102쪽)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이를 사랑한다. 인생의 절정은 성별, 계급, 나이, 심지어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 상호 성장을 위해 자잘한 것(권력, 돈, 명예) 혹은 자기 알던 유일한 세계를 포기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이 그런 경우다. 좋은 인간관계에도 <세한도> 같은 걸작처럼 다른 형태의 권세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105쪽)

 

 

* 독서는 타인의 삶을 사는 행위다. 자기만의 사고와 태도, 시각은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다. (121쪽)

 

 

* 다짐해도 다짐해도 금세 잊혀지는 내 좌우명. "지구에 머무는 동안 타인과 자연에 민폐 끼치지 말고 조용히 사라지자." (136쪽)

 

 

* 인간의 보편적 상황이란 무엇일까. 나는 단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랑. 사랑 자체가 대단해서가 아니고 상대방이 대단해서는 더욱 아니다. 사랑의 상태만이 의식주처럼 사람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사랑의 범위는 대단히 좁다. 행복한 중산층 기혼 이성애자가 얼마나 되겠는가(여기서 또 남녀로 나뉜다). 그들의 행위만 규범으로 간주된다. 그러니 계급, 성별(동성애), 인종, 나이 같은 궤도 밖의 조건으로 인해 힘든 사랑이 얼마나 많겠는가. (142쪽)

 

 

* 요즘은 새롭고 다양한 동화도 많고 권정생 같은 작가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동화나 우화는 순수한 이야기로 포장되어 '아동에게 그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학습시키는 도구'였다.

 특히 여자 어린이가 주로 읽는 동화는 가부장제의 원형을 주입한다. 어느 사회에나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이유다. 신데렐라, 재투성이 아가씨, 콩쥐팥쥐... 내용이 익숙해서 그렇지 조금만 주의 깊게 읽으면 잔혹하고 여성 비하적이다. 왕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리를 자르고 목소리와 목숨까지 바치는 인어 공주를 생각해보라.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가'들은 동화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흑설 공주>도 있고, 백설 공주가 왕자와 결혼했는데 가정 폭력범이어서 이혼하고 독립적으로 살았다든가, '일곱 난쟁이'들이 "왜 장애인은 언제나 비장애인 결혼의 조력자인가?"를 주장하는 시위로 끝나는 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50쪽)

 

 

*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권력자다. 자기 충족적 삶은 최고로 힘을 지닌 상태다. 인간은 권력 지향적이기 때문에 권력감이 없으면 외로운데, 자기 몰두형 인간은 권력에 무심하다. 사실, 이 행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154쪽)

 

 

* 자기 모순은 언어를 빼앗긴 이들의 운명이다. 이것이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핵심이다. 강자의 삶과 언어는 일치하지만 약자의 삶과 언어는 불일치한다. '세계문화유산 군함도'는 누구의 관점인가? 피억압자의 노동을 지배자의 시각에서 정의하는 것, 이것이 가부장제요, 제국주의요, 인종주의다. (165쪽)

 

 

*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상황 중 하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평화적 해결이라는 이름으로 '대화'를 강요받을 때다. (166쪽)

 

 

* 고통의 가치는 오로지 해석에 달려 있다. (174쪽)

 

 

* 글쓰기는 삶과 분리될 수 없다. 내게 '여성'은 고통이자 자원이다. 항상 양가감정에 시달린다. 자기 혐오와 연민, 피해의식, 분노가 나를 삼킬 때는 나도 저자처럼 죽고 싶다. (202쪽)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글쓰기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의 자기 재현이다. 이 책(<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헤릴린 루소)은 내가 아는 자기 이야기 중 최고다. ... 이 책은 장애 여성 관련서가 '아니다'. 몸, 관계, 사회라는 삶의 모든 영역을 다룬다. 인문학 '입문서'의 모델이자 타자 없는 사회라는 인류 최상의 선을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빼어난 정치학은 배려, 호기심, 평등(같아지라는 요구)처럼 아름다운 듯 보이는 태도가, 실제로는 얼마나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배제의 정치인가를 분석했다는 점이다. (178-179쪽)

 

 

*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혐오는 말할 것도 없이 여성 혐오다. 고통을 자기 일부로 수용하기보다는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때 처음 등장하는 존재는 동물, 자연, 본인의 배설물이다. 남성(인간)에게 여성(인간 아님)은 이 세 가지를 인식하는 시작이자 교집합이다. 이렇듯 모든 혐오의 출발은 자신이다. 자기 내부의 관념에서 나온다. 파시즘이 그 정점이다. 파시스트는 피아, 자아 경계가 없다. 나=세상이다. (182쪽)

 

 

*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은 동료, 커뮤니티, <사랑받지 않을 용기> 같은 책이 필수다.(207쪽)

 

 

* 시인이자 여성주의 사상가 에이드리엔 리치는 영화 <가스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 사회가 켠 가스등 때문에 자신의 경험과 직관을 부정당해왔다. '미친 여자'는 오로지 남성의 경험에 의해 판정되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미스터리였다니!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보살필 의무가 있다. 여성의 인식과 자신감을 믿자. 서로에게 가스등을 켜지 말자." (231쪽)

 

 

* 마르크스 이론의 결정적 실패 원인 하나는 성별과 인종 개념의 부재다.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무엇으로? 남성은 미소지니(여성 혐오)로 단결했지만, 노동자는 인종과 성별, 국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234쪽)

 

a*******5 2020.09.15.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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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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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과는 별 상관없지만, 책 제목이 기왕에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인 만큼, 나는 왜 쓰는지에 대해 너무 진지하지 않은 정도로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 예전에 읽었던 조지오웰의 책 <나는 왜 쓰는가>에서는 글을 쓰는 이유 네 가지를 말한다. 어떤 형식이든 모든 글쓰기의 목적은 이 네 가지 범주에 다 들어간다고 보면 된단다.  그 네 가지는 돋보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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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과는 별 상관없지만, 책 제목이 기왕에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인 만큼, 나는 왜 쓰는지에 대해 너무 진지하지 않은 정도로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 예전에 읽었던 조지오웰의 책 <나는 왜 쓰는가>에서는 글을 쓰는 이유 네 가지를 말한다. 어떤 형식이든 모든 글쓰기의 목적은 이 네 가지 범주에 다 들어간다고 보면 된단다.

 

그 네 가지는 돋보이고 싶은 욕구, 미학적 열정, 무언가 남기려는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이다. 정치적 목적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돋보이고 싶은 욕구와 미학적 열정은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고, 무언가 남기려는 충동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조지오웰이나 또는 그의 글을 <표현의 기술>에서 소개했던 유시민은 그들 자신도 인정했듯 정치적인 목적의 글을 쓴다. 내가 보기에는 이 책의 저자인 정희진 작가의 글도 정치적이다. 그가 책에서 그리고 책의 제목에까지 붙인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는' 의도나 행위 모든 것이 조지오웰이 언급한 정치적 목적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나처럼 독서 후 감상 정도를 쓰는 사람은 아무리 마음이 있더라도 '정치적 목적'의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글이 노출되는 정도나 글쓰기 기술과 능력이 한참은 모자라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의 글쓰기는 말 그대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쓰기 능력이 있어야 하고 정치적 신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수반되어야 가능한 영역이다.

 

나의 경우에는 조지오웰이 말한 글쓰기 목적 네 가지가 모두 조금씩은 해당된다. 돋보이고 싶은 욕구로 글을 쓰지는 않지만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교해지고, 논리가 풍성해지면서 내가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거기에 부가적으로 미적 욕구와 돋보이고 싶은 욕망, 정치적 목적도 일부 포개지는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가장 즐겁고 저릿한 순간이 어느 때인가? 나는 책을 읽을 때 적확한 표현과 문장, 군더더기 없이 맵시 있게 잘 빠진 글을 보면 최고 수준으로 고양된다. 그리고, 그런 문장은 세상의 무엇보다 미적 완성도를 가진다고 느낀다. 나는 그 수준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아주 가끔은 내가 과거에 쓴 글이 나 자신을 고양시키기도 한다.

 

글을 읽고 쓰면서 생각과 태도를 가다듬는다. 글과 행동은 물론 다르다. 글을 쓰게 되면 글처럼 행동하게 될까? 글에라도 정치적 올바름을 표현하며 일종의 행동하지 못하는 죄책감을 덜어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작가 은유의 말이 생각난다. 글을 쓰게 되면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내가 쓴 글이 나를 행동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다고 말이다.

 

c****s 2020.05.31. 신고 공감 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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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여성주의 글쓰기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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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독후감을 읽는 것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편견을 깨준 책이 저자의 서평, 독후감들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할 새가 없다. 아니, 오히려 긴장시키는 책이다. 만나는 구절마다 기존의 통념을 부수고 우리 사회현실의 빈틈을 헤집어 드러내기 때문이다. 독후감/서평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라는 신선함과 읽는 즐거움, 무엇보다 배울 게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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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독후감을 읽는 것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편견을 깨준 책이 저자의 서평, 독후감들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할 새가 없다. 아니, 오히려 긴장시키는 책이다. 만나는 구절마다 기존의 통념을 부수고 우리 사회현실의 빈틈을 헤집어 드러내기 때문이다. 독후감/서평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라는 신선함과 읽는 즐거움, 무엇보다 배울 게 많아 좋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도 찾아 읽고 싶고, 이 책도 두고두고 다시 읽으며 나와 우리 사회,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재작년 영화로 보고 나서 궁금증이 들어 책으로 찾아 읽고 다시 영화를 본 소설이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집사 스티븐슨은 집사의 자격 중 하나로 품위를 꼽으면서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왜 그리 초라하던지 그가 말하는 품위가 차라리 허세에 가깝다고 느꼈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와 관련하여 품위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말로 나를 일깨워준다.

 

품위는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약자에게는 폭력이라는 자원이 없다. 이런 세상에서 나의 무기는 나에겐 있되’, ‘에겐 없는 것, 바로 글쓰기다. ‘적들은절대 가질 수 없는 사고방식, 사회적 약자만 접근 가능한 대안적 사고, 새로운 글쓰기 방식, 저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내게만 보이는 세계를 드러내는 것. …… 그것이 품위 있게싸우는 방법, 글쓰기다.” (14p)

 

 글쓰기라고 하면 흔히 어떻게 하면 잘 쓸까 고민하는 데 그치기 쉽다. 저자는 글쓰기의 ‘3대 요소정치학(입장), 윤리학(방법), 미학(문장)이고, 그중에서 핵심은 윤리라고 한다.

 

핵심은 윤리다. 소재에 대한 태도와 글쓰기 방식이 정치적 입장과 미학을 결정한다.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 사상의 핵심은 재현의 윤리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듣는가. 누구의 목소리가 큰가.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사람들이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인가. 사회는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이러한 권력 관계의 동학은 교육 현장, 출판 시장, 미디어 같은 구체적인 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글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15p)

 

 그러면서 저자는 윤리적인 글의 핵심은 다루고자 하는 존재(소재)를 타자화하지 않는 것이며, 글을 쓰는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고, 재구성하는 것이며, “재현 주체와 재현 대상의 권력 관계를 규명하고, 다른 관계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여성주의 글쓰기가 왜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글을 쓰면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내가 변화해야 할 지점을 인식할 수 있고, 재구성할 부분이 생긴다는 것엔 실감한다. 글과 그 글을 쓴 사람은 한 몸을 이루는 정신과 육체 같아서 글을 쓰는 행위는 결국 자신의 삶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쁜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려면, 나부터 나쁜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은 나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검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16)

 

 “주장할 것이 없는 사람, 주장이 없어도 되는 사람은 글을 쓸 필요가 없다. 안주 상태에서는 참된 문학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글이란 뜻을 드러내면 그뿐이다.” (90p)

 

 “글과 글쓴이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는 다정하지 않다. 가까울수록 적대적이다. 외면, 길항, 동일시 ……. 당사자가 자기 현실을 쓰려면 공감받기 어려운, 헤쳐도 헤쳐도 계속 달려드는 칡넝쿨을 쳐내야 한다. 타인의 경험은 보이지만 내 경험은 나조차 믿어지지 않는다.”(116p)

 

“‘이야기는 곧 읽기와 쓰기. 반응하지 않는, 감정 이입 없는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149p)

 

  주변에서 보면 자기 생각과 영혼이 없는 글을 보편적이라거나 객관적이라며 발표한다. 사실 부끄럽게도 그동안 써온 내 글도 그런 축에 속하려 애썼다. 게다가 사적인 이야기는 드러내기 꺼림칙해서 두루뭉술하게 포장하기 일쑤였으니 이래저래 발전이 없다. “무지와 편견의 보호 속에서살아온 시간이 만만하지 않아 글쓰기에서도 나를 소외시키곤 한다. 저자의 글쓰기의 윤리에 대한 관점은 이런 나에게 또 다른 차원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걸 절감하게 한다. 책 속에 좋은 내용과 통찰이 많은데 아쉽게도 글쓰기에 관한 부분만 일부 소개한다.

 

a*******5 2021.05.13.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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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지만 좋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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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지만 좋은 거지지 않으려는 마음처럼 읽다보면 마음이 가열해진다.읽으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한다.자칫 정신이 풀리면문장의 뜻이 의미로 바로 안 온다.집중해서 읽는다.왜 이렇게 더워지지 왜 이렇게 가슴이 뛰지분명 설렘은 아닌데즐거움도 아닌데기쁨도 아닌데좋은 거다.다 좋다고는 못해도 좋은 거다.깊이 깊이 가열히옷깃에 스미는 땀이어라[고통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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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지만 좋은 거
지지 않으려는 마음처럼 읽다보면 마음이 가열해진다.

읽으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한다.
자칫 정신이 풀리면
문장의 뜻이 의미로 바로 안 온다.
집중해서 읽는다.

왜 이렇게 더워지지 왜 이렇게 가슴이 뛰지
분명 설렘은 아닌데
즐거움도 아닌데
기쁨도 아닌데
좋은 거다.

다 좋다고는 못해도 좋은 거다.

깊이 깊이 가열히
옷깃에 스미는 땀이어라


[고통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가능성뿐이다. 생사의 갈등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에개 제시되어야 할 것은 미지라는 기대가 있는 사회다.]

[마음이 없다? 문자 그대로 말하면 물리적으로는 심장이 없는 죽은 사람이요, 기능상으로 뇌(생각)가 없는 사람이다.]

[초파리가 말했다.
"너희가 볼 때 우리가 똑같이 생긴 것 같지? 우리가 볼 땐 너희도 그래." ]

['좋은' 세상에서는 '나쁜' 사람이 잘 드러나지만 나쁜 세상에서는 '악'을 구별하기 어렵다.]

[희망은 바라는 것이므로 어차피 현재에는 없다.
.....
나는 희망을 버리는 것이 치유라고 생각한다.]

[안녕과 평화, 그런 것은 원래 없다.]

[공부의 필요와 의미는 스스로 정하는 권리다.
....
장애인이나 여성이 자기 언어를 지니는 것은 지식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전복적인 행위다. 사회적 약자에게 공부는 ...자신의 삶과 불일치하는 기존의 인식체계에 도전하는 무기가 된다.]

[글과 글쓴이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가까울수록 적대적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몸들이다.
몸의 다름이 정치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지은이의 독후감도 독후감이지만
이 문장들이 옷깃에 스민다.


d****4 2020.04.2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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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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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 나올 때마다 구매하게 되는 정희진 선생님의 책이다 :) 이번에는 영화 평론에 관한 내용인가 싶어 섣불리 짐작해 구매를 망설이다 미리보기로 조금 읽어보고 구매를 했다. 영화에 관한 내용이기보다는 제목 그대로 영화가 나를 통과한 뒤 그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 같다. 믿고 읽는 선생님의 글이라 기대가 된다. 책의 디자인도 꾸준해서 모아서 꽂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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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 나올 때마다 구매하게 되는 정희진 선생님의 책이다 :) 이번에는 영화 평론에 관한 내용인가 싶어 섣불리 짐작해 구매를 망설이다 미리보기로 조금 읽어보고 구매를 했다. 영화에 관한 내용이기보다는 제목 그대로 영화가 나를 통과한 뒤 그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 같다. 믿고 읽는 선생님의 글이라 기대가 된다. 책의 디자인도 꾸준해서 모아서 꽂는 재미도 있다.
YES마니아 : 골드 b****m 2023.06.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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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고정된 프레임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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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4장은 좋은 문장들을 옮기면서 필요한 경우 < >로 강조하고 사견을 살짝 곁들여 보겠다. 밑줄긋기 많으면 싫어하는 작가도 있고 실례일 것 같은데 도무지 줄일 수가 없다 요. (^-^)    지식은 <사회적 산물>이기에 모든 앎은 인간-자연-사회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 상호 작용이 학문의 발전사이다... 지식은 지역, 문화, 사람 사이의 번역이며, 혼종, 혼합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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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4장은 좋은 문장들을 옮기면서 필요한 경우 < > 강조하고 사견을 살짝 곁들여 보겠다. 밑줄긋기 많으면 싫어하는 작가도 있고 실례일 것 같은데 도무지 줄일 수가 없다 요. (^-^)

 

 지식은 사회적 산물이기에 모든 앎은 인간-자연-사회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 상호 작용이 학문의 발전사이다... 지식은 지역, 문화, 사람 사이의 번역이며, 혼종, 혼합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견이나 틀린 말도 언제나 의미가 있다. <재해석하기 나름>. (189-190)

==> 어느 부분에서 오해가 생기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지는 발언을 듣는 게 아무래도 유리할 듯.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은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한 자기만의 방과 자기만의 언어다.’ (190)

==> 강산이 변할 시간동안 싸이월드에서 실컷 놀았다. 그때 방 이름이 The Enormous Room이었다. 가상공간에서만큼은 거대한 방을 갖고 싶어 e.e. 커밍스의 시 제목을 땄었다. 팬데믹 시기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 읽기 바람이 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큰조카가 독립서점에서 기념엽서를 사와 주기도 했었다. 글쓰기(프리랜서 작업) 공간과 일정 수입이 지금 주목을 끄는 이유는 독립된 분리 공간과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함의하는 바가 클 거다. 여담] 결혼할 당시 한 약속 두 가지를 남편이 지켰는데도.. 우울병을 이기지 못했다.

 

 <당파성과 가치관이 필수적인 이유는, 모든 앎은 현실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어떤 집단을 위한 융합인지가 핵심이다... 융합은 개별 학문을 넘어서는 가치관의 문제다. 융합의 전제는 지식이 누구에게 봉사하는지에 관한 문제의식이다. 융합은 그 과정도 결과도 지극히 정치적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191)

==> 정치적 언어 전성시대 함 가즈아 ~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고 인지, 지식, 돌봄, 감정 노동 같은 보이지 않는 마음invisible heart’이라고 주장해 왔다. (193)

==> 아담 스미스를 시작으로 한 자본주의를 재해석하는 움직임으로, 얀 물리에 부탕 같은 여성주의 경제학자가 주창한 대안적인 글로벌 경제를 귀띔한다.

 

 모든 지식은 다른 지식과의 비교나 대비>(반대말, 동의어)를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절대로 홀로 성립하는 개념은 없다. 모든 개념은 연결의 법칙이 다를 뿐 연결된다... 개념들의 접목이 융합이 되려면, 무관한 개념처럼 보이는 것들 사이의 관련성을 설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융합은 충돌하고 같이 도약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서로의 차이를 알려면 새로 공부해야 한다. (198-199; 202)

 

 어떤 언어도 한 가지 요소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얘기다. 말은 계속 만들어진다는 의미에서 사용 중 오염은 필연적이고, ‘외래어비난 자체가 외설적(벗어난 개념^^)이다. (207)

==> 저자는 한글 전용론의 한계를 말하며 한국어는 한문과 영어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한글도 우리말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그는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의 언어와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겪었던 사정상 여러 언어 흔적이 있는 중역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대학생의 한문과 상식 용어에 대한 이해력이 교육개편과 인터넷 문화의 영향인지 점점 떨어진다.

 

 이것(언어)권력의 임의적 결정>, 즉 사회적 산물이지 하늘의 이치가 아니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스스로 창조주가 되려는 것이다. 조물주 콤플렉스가 한글만 사용해야 한다는 사고라면, 메시아 콤플렉스는 그것을 지키겠다는 다짐이다... 피해의식은 새로움에 대한 수용성, 호기심, 이를 받아들이는 용기라는 융합적 사고방식을 방해한다. (208)

==> 콤플렉스 부분에서 ㅋㅋㅋ 비약과 프로파간다는 내 전문인데. 저자는 정체불명은 모든 언어(문화)의 속성이라고 파격적으로 언명한다.

 

 <관점에 따라 데이터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관점은 당파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본래는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기. (211)

 

 이제까지 공간 개념은 시간적 진보를 증명하는 도구--‘그 시대 위대한 건축물’--였다. 오랜 세월 동안 공간은 시간 개념에 비해 인식론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문학사에서 거의 모든 비유는 젠더, , 자연, 공간과 관련되는데, 이는 남성의 사유가 투사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공간적 주체. 어느 공간에 있는가에 따라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된다... 코로나 시대 최대 아이러니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반드시 실천해야 하지만 사회의 대안으로서 공간이 없다는 현실이다... 코로나 스트레스는 곧 공간 스트레스다. (212-214; 215)

==> 내 경우 학업 과정에서 시간 개념에 대한 논의도 흥미로웠지만, 특히 공간에 대한 사고 전환이 신선했었다. 데카르트의 몸/정신 이분구도 뒤집기에 버금가게 공간적spatial 접근이 고정 관념을 흔들었다. 이동이 자유롭고 워라밸을 장착한 요즘 세대들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말이다. 코로나19 초기만 해도 건축학자 유현준의 책들을 탐독했었는데 지금은 멀어졌으..

 

 한마디로 생각을 하자는 것이다. 객관적은 없다. 어떤 객관도 결국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산다. 그때마다 생각해야 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객관성은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유롭지 못한 오염된 개념이다. 객관성은 사회와 맺는 관계에서만 논할 수 있는 문제다...

 ‘객관성은 없다의 의미는 진짜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객관이 특정 맥락에서만 작동하는 유동적 특성을 지닌다는 의미다... 강자의 주관성은 객관성처럼 여겨져서 투쟁해서 쟁취할 필요가 없는 반면 약자의 삶은 그렇지 않아 고달프다. 약자에게 객관성은 쟁취해서 확보해야만 가능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생, 사회 운동이다. (217; 219; 221)

==> 국가권력에 의한 언어의 오염을 가장 현장감 있고 무게 있게 포착한 르포 작가가 조지 오웰일 것이다. 이런 객관성의 철옹성을 깨려면 읽고 역사의 반복과 흐름을 공부해야한다. 마지막 인용에서처럼, 좀더 나은 사회를 위해 운동에 몸담고 목소리 내는 민주시민들의 실천, 멋지다!

 

 시대와 장소, 말하는 사람의 위치, 정치적 상황 등 수많은 요소에 따라 객관성의 내용은 다르게 구성된다. 그래서 융합적 사고에서는 객관성보다 상황적 지식을 주장한다... 우리가 아는 모든 지식은 자신의 입장을 경유한 부분적인 것이다. 진실을 전제하면 부분성, 상황성, 맥락성은 드러날 수 있다. (222-223)

 

 대개 언어는 위계의 만남이다. 이분법은 AB가 아니라 기준으로 삼은 A와 그 외 것들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비교하려면 연구 주제를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 앎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정하는 것이 비교의 기본이다... 기존의 앎을 의심하지 않는 비교는 무의미를 넘어 유해하다... 오히려 인문사회과학 연구는 변수, 새로운 배경, 상황, 맥락을 드러내기 위한 공부다. (225; 230; 227-228)

==> 정희진 작가가 말하는 생각의 지도와 자기 이해, 그리고 사회 기여의 연동성이 역동적이라 좋다. 대학원 시절, 동기와 나는 비교의 평가에 시달렸다. 둘이 반반 섞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훈수를 들어야 했다. 융합이나 협업 개념이 희미하던 시절이니까 그러려니. 나만 하는 투덜거림인 줄 알았는데 정 작가도 한다. ‘당신이 뭔데!’ 오래 전 지도교수님과 합의를 봤다. 복잡할 거 없이 70% 내키는 사람은 좋은 사람 하자고.

 

 안목은 그 사회의 수준과 개인적 노력, 환경의 총체다... <자기 프레임을 모르는 사람이 오피니언 리더, 고위 관료, 통치자가 되면 역사는 수포로 돌아가고 민생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다. (233-234)

==> 뼈 때리는 문장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우중의 덫에 걸려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사회의 안목을 겸비해야 한다.  현실 정치와 선거는 프레임 전쟁이다 . 내년 총선에서 의제를 잘 선점해서 화끈하게 이기자.

 각종 자원 배분과 해결책 결정자를 비롯해 인력풀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 한국은 진통을 앓고 있다. 저자는 2021스폰서 검사와 비리70년 해묵은/해먹은 검찰의 일제 잔재를 끊어낼 수 있었는데, 김건희 씨의 논문이 불거져 검찰개혁이 산으로 갔다고 비판한다. 아래 인용처럼 윤 씨 문제는 삭제되고 여론전 속에 문제의 본질이 엉뚱하게 물타기 당하고 말았다. 지난 리뷰와 마찬가지로 에바의 거리에서의 삶과 거니의 삶은 비교가 안되자나 요.

 

 판결이 법대로 내려지는 게 아니라 어떤 판검사를 만나느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직 있어요, /    내가 궁금한 점은 윤 씨 부부의 탄생이 검찰제도의 산물인가 여부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는 우중 농단. 에휴/    가치관, 당파성이 문제를 인식하는 범위와 초점을 정한다... 검사 한 명이 의제를 장악해 전 국민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현재진행형 휴우/ (235-237)

이달의 사락 s********d 2023.03.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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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작가님의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를 읽고 리뷰를 남깁니다. 이전에 쓰신 <혼자서 본 영화>를 읽고 이번에도 영화에 관련된 책을 출간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구매했습니다. 일단 작가님과 영화 취향이 비슷하여 본 영화 위주로 글이 쓰여있어서 좋았고 저와는 다른 견해를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영화 안에서만이 아닌 더 나아가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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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작가님의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를 읽고 리뷰를 남깁니다. 이전에 쓰신 <혼자서 본 영화>를 읽고 이번에도 영화에 관련된 책을 출간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구매했습니다. 일단 작가님과 영화 취향이 비슷하여 본 영화 위주로 글이 쓰여있어서 좋았고 저와는 다른 견해를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영화 안에서만이 아닌 더 나아가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을 늘 응원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세요.

t*****1 2023.03.0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