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역사 교육에서 조선시대는 왕의 시호 순서까지 외울 정도로 익숙하지만, 그로부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의 경우 몇몇 사건과 인물들 중심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를 재구할 수 있는 사료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 교육의 초점이 조선시대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반증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로 엮은 <박시백의 고려사>는 고려시대 역사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겨졌다.
지난 1권에서는 고려를 건국할 시기부터 6대 임금인 성종이 즉위하는 모습까지를 다루었다면, 2권에서는 성종의 본격적인 치세로부터 17대 인종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그려내고 있다. ‘전쟁과 외교, 작지만 강한 고려’라는 부제가 말해주고 있듯, 2권에서는 북쪽 변방에 위치했던 거란과의 3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시기에 역사에서 강조했던 서희의 담판으로 인해 압록강 인근의 ‘강동 6주’를 회복하고, 몇 차례의 정변을 거쳐 마지막 3차 침입을 막아낸 강감찬의 활약상이 소개되고 있다.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이후 8대 현종부터 15대 숙종 때까지는 외부의 위협 없이 ‘태평시대’가 이어졌음을 그려내고 있으며, 예종이 즉위한 이후 북쪽에서 흥기한 여진과의 갈등 양상이 형상화되고 있다.
이른바 여진 정벌을 통해서 두만강 근처의 ‘동북 9성’을 반환받았지만, 이것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던 저간의 사정이 그려지고 있다. 여진족의 후예로 중국에서 성장한 금나라와 거란족의 후예인 요나라가 서로 대립하는 동안, 이 시기에는 ‘요와 금 사이에서’ 중립적인 정책을 펼쳤던 예종의 정치로 인해 외침에서 다소 비껴날 수 있었다. 2권의 마지막은 외척인 이자겸의 발호와 몰락, 그리고 역사가 신채호에 의해 우리 역사에서 ‘일천년 이래 일대 사건’으로 평가되었던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에서 비롯된 반란과 이를 진압하는 과정이 소개되고 있다.
이른바 ‘묘청의 난’을 진압했던 김부식에 의해서는 여전히 역사적으로도 상반된 평가가 존재하고 있지만, 그에 의해 저술된 <삼국사기>는 과거의 기록들을 수합해서 삼국의 역사를 정리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어지는 3권에서는 드라마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던 ‘무신정권’과 원나라와의 전쟁으로 고통을 겪는 상황이 소개될 것이라 짐작된다. 비록 만화 형식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고려시대의 역사적 흐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려사>와 관련 역사들을 보다 자세히 검토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우리에게 고려는 어떤 나라인가? 고구려 때만큼 대륙을 호령하지도 못하고 숱한 외적의 침략을 받거나 '원간섭기'에는 식민지로 전락한 적도 있었으며 홍건적과 왜구 등의 노략질에 변변한 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다 500여년간 내우외환에만 시달리다 '조선'에게 나라를 내어준 별볼일 없는 나라로 연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박시백의 고려사>를 읽다보면 '뜻밖의 고려'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고려가 그저 문약하기만 한 나라로 으레 짐작했다가 전혀 그렇지 않고 대단히 강건하며 대외적으로 결코 무시 당하는 나라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주변국들이 고려를 '상국'으로 대접하며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면 '남의편'이라도 되지 못하도록 지극정성으로 고려를 대우하는 등 실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나라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중국쪽의 침략을 받았더랬다. 거란(훗날 요)의 세 차례의 침략이 그랬고, 고려의 동북면에선 여진족(훗날 금)의 침략이 날로 거세졌고, 끝내 부족을 통일한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족(훗날 원)이 고려의 국경을 넘보더니 개경까지 집어삼키고 지독한 '원간섭기'를 겪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고려말엔 혼란한 정세를 틈타 '홍건적와 왜구'라는 도적떼들이 전쟁을 방불케하는 엄청난 규모로 고려를 괴롭혔지만, 고려는 이 모든 '외세의 침략'에도 멸망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내며 때로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유리한 상황으로 반전시키는 저력을 뽐내며 500여 년간을 이어온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의 왕조가 200여 년을 넘기기 힘든데도 '고려 500년 역사'를 달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고려'를 다시금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두 번째 책으로 이 책, <박시백의 고려사 2>은 '거란과의 전쟁'에서부터 '묘청의 난'까지 다루었다. 역사책 한 권 분량치고는 꽤나 빠른 진행인데, 이 책을 '전 5권'으로 마무리하겠다고 저자가 밝혔으니 한 권당 '100년의 역사'가 담겨 있는 셈이다. 비록 세세하게 개별적 사건을 깊이 다루지는 못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박시백만의 안목'이 담겨 있기에 믿음직한 구석이 있다. 바로 '날카로운 비평과 균형잡힌 관점'말이다. 이 책에서 주목해서 봄직한 대목은 세 가지다. 하나는 '거란의 침략'에 대처하는 고려의 자세이고, 둘은 '여진의 성장'과 이에 대한 고려의 대응, 그리고 마지막은 '이자겸'과 '묘청'이 일으킨 두 차례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이다.
익히 알다시피 고려는 태조 때부터 '북진정책'을 펼쳐 영토확장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하지만 고려의 북방에 '거대한 세력'이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고려는 '북진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 세력 가운데 첫 번째는 바로 '거란'이었다. 고려가 아직 후삼국 통일을 달성하지 못했던 때에 북쪽에서는 발해가 든든히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며 버티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거란이 빠르게 성장을 하면서 송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자 발해를 대대적으로 공격했더랬는데, 발해가 터무니없게도 멸망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거란이 세력을 확장하며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더니 송나라와도 본격적인 땅따먹기(?)를 시동하였다. 이제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로서는 거대해진 거란과 맞붙어 상대하기에 곤란한 지경에 이른 셈이다.
이런 형국에 거란은 대대적인 송나라와의 전쟁을 치루기 이전에 '고려'에 본때를 보여주려 '1차 침입'을 했더랬다. 송나라 깊숙이(?) 공격을 했다가 송과 고려가 연합을 해서 거란을 협공이라도 하게된다면 곤란한 처지에 빠질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이에 고려에서는 '서희'를 앞세워 강화회담을 열었는데, 그 결과 거란군의 퇴각과 함께 '강동 6주땅'을 고려에 넘겨주게 되었다. 고려의 염원이었던 '북진정책'이 서희의 말 한마디로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이는 '고려의 역량'이 강력하지 않았더라면 성사될 수 없는 성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거란의 첫 침입에서 '고려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으며 고려를 정복하기 위해선 거란도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거란은 '강동 6주'를 고려에 내어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2차 침입'을 해서 개경까지 함락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쳐들어갔지만, 고려의 반격은 곳곳에서 완강했고, 끈질기게 이어졌다.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도 못하고 고려의 영토 깊숙이 쳐들어간 거란은 뒤늦게 '안전한 퇴각'을 약속받고 개경을 내어주고 되돌아섰지만, 돌아가는 길은 황천길이었고, 퇴각 중에도 전투는 끊임없이 이어져 거란으로 살아 돌아간 병사는 고작 '수천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60만 대군을 이끌고 온 것에 비하면 참패를 면치 못한 셈이다. 뒤이어 벌어진 '3차 침입'에서는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필두로 거란군은 고려의 영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거의 전멸하고마는 수모를 당한 뒤에야 고려를 더는 침략하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고려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주변 강대국들이 결코 함부로 깔보지 못하게 만들고, 실로 깔보기라도 하면 호되게 당하고 만다는 처절한 기억을 뇌리에 박아놓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에게 각각 수나라와 당나라가 호되게 당했던 것처럼, 고려도 첫 번째 외세의 침략을 고구려 못지 않게 본때를 보여주게 된 것이다. 이런 성과는 훗날 여진과 몽골을 상대로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먼저, 여진은 아에 고려를 침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여진족이 완전히 통일하지 못한 채 부족별로 각자도생을 하던 시절에는 고려의 동북쪽 경계를 지속적으로 약탈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더랬다. 그때마다 고려는 달래기도 하고 토벌하기도 하는 등 양면정책을 펼쳤는데, 윤관이 '별무반'을 조직해 고려의 동북면을 정복해 '동북9성'을 쌓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애써 고려 백성들의 피와 땀을 바쳐서 '북진정책'을 완수해내었건만 계속되는 여진족의 침략에 고려가 '영토포기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물론 꽁으로 내어준 건 아니다. 여진족에서 '영원토록 어버이로 섬기며 조공을 바치겠다'는 맹세를 받고, 더는 침략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이행한다는 약조를 받고 '동북9성'을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진은 그후 침략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에 여진은 '완안부족'을 중심으로 여러 부족을 통합한 뒤에 요나라(거란)를 대대적으로 공략하며 영토를 넓혀나갔다. 여진의 거센 공격에 거란은 고려에게 구원요청을 했지만 고려는 거절하였다. 조선 광해군이 이런 고려의 '실리적 정책'을 본따 명청교체기에 톡톡히 써먹게 된 것이다. 고려는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지략적으로 실리적 이득을 챙기는 나라였다. 아쉽게도 여진이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금'이라 칭하면서 부모로 섬기겠다던 고려에게 '형제의 예'를 요구하고, 더하여 '군신의 예'를 요구하였고, 고려는 이에 '사대의 예'로 화답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런 금나라의 무례한(?) 요구에 '큰 나라를 섬기는 이치'를 설법한 이자겸과 김부식이 내심 괘씸하기도 하다. 허나 거란의 잇따른 침략으로 백성들의 삶이 팍팍해진 뒤였고, 동북9성을 쌓을 당시 여진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상당기간 '소모전'을 경험하기도 했던 고려로서는 빠르게 성장하며 대륙을 호령하게 된 신흥강국 '금나라'와 대립을 한다는 것은 실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판단은 금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고려가 굳이 '군신의 예'를 다하고 '사대의 예'까지 올리며 체면(?)을 챙겨준다는데 굳이 상대하기 껄끄러운 고려와 전쟁을 벌이는 것이 현명치 못하다는 결단을 내린 셈이다. 이렇게 고려와 여진(금)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고려는 힘을 보여줄 땐 확실히 보여주고 실리를 챙길 때에도 확실히 챙기는 확실한 나라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외세의 침략이 없는 '태평성대'를 이루면 좋으련만 나라밖이 조용해지니 나라안이 시끄럽게 되었다. 바로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이 그것이다. '이자겸의 난'은 왕실의 외척이 권세를 갖게 되면서 나라를 어지럽힌 사건이었고, '묘청의 난'은 도참사상과 풍수지리를 앞세운 '서경파'와 안정적이고 과학적(?)인 정책을 밀고 나간 '개경파' 사이의 갈등으로 왕권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두 사건은 17대 임금인 '인종' 때 벌어진 사건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등극하였는데도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왕권을 안정시킨 훌륭한 임금이라 할 수 있다. 기존에는 어린 임금이라 외척이 득세하여 정치를 말아먹고, 혹세무민하는 땡중이 요설로 현혹하여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무능한 임금'으로 생각하였는데, 다시금 살펴보니 국란의 위기에도 기죽지 않고 끝내 '왕권'을 지켜낸 '뛰어난 임금'으로 재평가받아 마땅하였다.
한편,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싶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찍이 '묘청'과 '김부식'을 평가하면서 묘청을 '독립운동가'에 비유하고, 김부식을 '매국노'에 빗대며 '서경천도운동'이 실패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주장했더랬다. 근데 묘청의 서경천도를 '윤석열의 용산이전'과 비교해보니 좀더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두 사건은 모두 '풍수지리'를 앞세워 나라의 흥망성쇠가 마치 '서경천도(용산이전)'에 있다는 것을 설파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천도(이전)'를 하면 흥하고 안 하면 망한다는 논리를 믿어야 한다는 것부터 억지였다. 인종 때에는 '이자겸의 난' 때문에 개경의 궁궐이 거의 불타 없어진 핑곗거리라도 있었지만,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이전을 강행하는 것은 말도 안 될 일이었다.
이렇듯 '서경천도'는 애초에 무리한 억지주장이었다. 그러나 인종이 스스로 '서경천도'를 없던 일로 하고 명석한 판단을 내렸는데도, 묘청은 '서경파'를 앞세워 군사를 일으키고 임금을 볼모로 잡아 서경천도를 강행하려 하였다. 이는 명백한 '반란'이었고, '역모'였다. 이런 사건을 두고 '독립당'과 '사대당'의 대결이라 비유한 신채호 선생은 시대적 아픔이 반영된 역사해석으로 보는 것이 맞는 듯 싶다. 실제로 김부식은 고려의 안녕과 실리적 이득을 위해 '사대의 예'를 끝까지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때론 실력행사를 할 때는 할 수도 있을 법한데도 '국가의 존심'보다 '개인의 영욕(실리)'에 더 치중하는 모양새를 계속 관철했던 것이 욕을 먹기에 딱 좋았기 때문이다. 암튼, 묘청의 난을 다시금 재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고려에게 있어 북방은 중요한 요지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지역을 차지한 거란과 여진, 그리고 송나라와의 관계가 복잡하게 펼쳐진다. 거란의 연이은 세 번의 침략을 거치면서도 강동 6주를 담판으로 얻어 낸 서희나 귀주대첩이란 승리를 일군 강감찬 등이 있어 일단의 평화를 지킬 수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왕실과 사돈 관계였던 이자겸이 일으킨 난이나 서경 천도를 주장했던 묘청의 반란으로 혼란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
한 컷 한 컷의 그림을 통해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책 너무 좋네요. 전쟁 묘사도 실감나서 좋았지만 옛날 이야기 속에서 실체 없이 글자로만 존재하던 인물들이 눈 앞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상당하네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인물은 강감찬이었는데요. 대국적 영웅의 이면에 존재하는 작고 못생긴 늦깎이 직장인의 애환이 직관적으로 이해되었네요. 그리고 현종은 탄생부터 그 서사가 너무 기구해서 안쓰러웠네요. 현실을 넘는 허구는 진짜 없는 것 같아요. 다음권에서 무신정변과 무신 정권이 어떻게 그려질 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
박시백화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재미있게 읽고 이제 고려사도 모으고 있다. 이번 2권은 고려가 개국되고나서 본격적으로 나라로 안정되고나서 태평성대도 펼쳐지지만 또 거란, 여진등 오랑캐의 침입등도 많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서희가 담판으로 강동6주를 되찾은 이야기나, 김자겸의 등장, 묘청의 난 등등 교과서에서 봤던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나에게 전해져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
고려사 1을 본 후 검색을 해보니 2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구매를 하였다. 구매를 하고 읽어보니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특히 인물평이 괜찮았다. 그동안 심했던 김부식에 대한 평가가 제자리로 돌아온거 같아서 좋았다. 고려 현종에 대한 이야기도 꽤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여진전쟁 때 척춘경에 대한 활약은 물론이요. 그의 최후까지 다 묘사해서 역시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2003년 1권 출간을 시작으로 2013년 20권 완간까지 무려 10년에 걸친 대장정으로 독자들을 열광하게 했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범접할 수 없는 사실 고증과 작가주의적 노련미가 느껴지는 단단한 구성, 명쾌한 자기만의 역사적 시각을 통해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렸다는 평을 받으며 우리나라 역사 만화의 전범(典範)으로 자리 잡았다. 지식과 재미를 적절히 조화해 온 가족이 함께 읽는 교양만화로서 출간 이후 오늘날까지 무려 350만 부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신뢰성과 재미를 모두 잡은 역사 만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350만 독자가 애타게 기다려온 박시백의 새 작품은 이제 고려시대로 무대를 옮겼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완간한 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박시백과 그의 만화는 한층 진화했다. 정사(正史) 사료에 엄정히 기반한 내용의 신뢰성과 남녀노소 누구나 역사 속으로 순식간에 빠져들게 하는 만화적 흡인력은 여전히 독보적이며, 사료에는 채 다 적히지 못한 역사의 행간을 읽어주는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은 독자들의 지적 여정을 줄곧 풍성하게 이끌어준다. 낯설기만 했던 고려시대가 물 흐르듯 읽히며 한눈에 이해되게끔 하는 탄탄한 이야기 구성은 더욱 영글었고, 한결 또렷하고 세밀해진 작화는 1,100년 전 고려의 인물들이 눈앞에 살아 숨 쉬는 듯한 생생함을 자랑한다. 『박시백의 고려사』 출간 소식에 박시백과 그의 만화를 사랑하는 열혈 애독자들의 응답과 성원이뜨겁게 쏟아지고 있다. 팟캐스트 방송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채널에 박시백 화백이 직접 출연해 출간 소식을 알린 ‘박시백, 고려사를 그리다’ 에피소드는 공개 이후 2만 5,000여 회에 이르는 재생 수를 기록했고, 『박시백의 고려사』 1권은 지난 2월 출간 즉시 주요 서점 역사 베스트셀러 순위 맨 윗자리를 석권하며 시리즈의 화려한 개막을 알렸다. 열렬하고도 즉각적인 응답에 감화한 박시백 화백이 권마다 애독자들을 위한 초판 1쇄 한정 특전 그림을 책에 그려넣기도 했다. 새 출발을 알린 시리즈의 첫걸음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독자와 저자 사이의 애정 어린 소통은 실로 모두가 기다려온 우리나라 대표 역사 만화가의 귀환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
이 리뷰는 휴머니스트에서 출판된 박시백님의 박시백의 고려사 2권 리뷰입니다.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1권을 재밌게 읽어서 2권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기록의 나라인 조선만큼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서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만화로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은거 같아요
아무래도 조선에 비해서 고려의 왕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는데 이 기회에 좀 더 자세히 알게 됐습니다! |
박시백 화백님의 조선왕조실록 전20권이 완간되고 후속작은 35년간의 일제강점기를 다룬 35년 7권이 출간되었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박시백화백님은 고려사를 다룬 고려사 5권을 출시를 시작하신 고려사가 조선사만큼 세밀하게 다루지는 않지만 핵심을 잡아 구성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가신다고 하신다. 고려사 프로젝트가 끝이나면은 조선사에서 못다룬 인물이나 야사쪽 관련 설화등을 소개하주는 책도 좋겠다. |
언제 2권이 나오나만 목빠지게 기다렸다. 고려사는 조선만큼의 엄청난 기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조선만큼의 방대한 이야기를 담지 못하는게 너무나도 안타깝다. 이런면에선 조선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했건지 알수있다. 여하간 1권에서는 왕건의 삼국통일이 주 내용을 이루었다면 2권은 7대부터 17대까지 10명의 왕을 다루다보니 보다 스피드한 전개가 이루어진다. 물론 기록이 적기 때문이란걸 부인할수 없다. 전체 5권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보다 디테일하게 다루어서 내용이 좀더 풍성하면 좋겠는데 하는 아쉬움은 금할수없다. 어쨋든 다음 권을 벌써부터 기다리는데 빠른 3권의 출간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