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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의 작가는 1925년생의 할아버지시다. 내가 태어나고, 2살이 되던 해에 교단생활을 마감하시고, 정년퇴직을 하셨으니 나이가 아주 많으신 노인이시다. 처음에 동경 메이지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 이력을 보고, 엄청 부자집에서 태어나셨구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자수성가 한 케이스였다.
할아버지께서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며 마지막으로 책을 한 권 내신것 같다. 책은 모두 아내와의 추억, 그동안의 삶에 대한 할아버지의 생각을 시로 쓴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아내인 할머지는 현재 치매를 앓고 계신다. 자식들은 바빠서 집에 잘 오지 않기 때문에 쓸쓸히 두 노인이 함께 한 집에서 살고 계신다. 한 장 한 장 책을 읽을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났다. 엄마와 함께 책을 읽었는데, 엄마깨서도 자꾸 "슬프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
할머니께서 치매를 앓고 계시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먼저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또는 할아버지랑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함께 죽기를 바라신다. 치매걸린 할머니의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이다. 유서에도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면 할머니를 절대로 시설로 보내지 말것을 당부했다. 시를 읽으면 읽을 수록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졌다.
노부부는 젊은 시절 잘나가는 사람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학교에 들어가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쭈욱 33년동안 교단생활을 하신 교육자시다. 할머니 역시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한 고급인력이었다. 실제로 할머니가 아나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시험에 합격한 분이셨다. 그리고 그동안 모으신 돈이 많으신지 집도 크고, 좋은 것 같다.
호텔이나, 초밥을 먹으러 가시는 것만 보아도 돈이 없으신 분들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 돈이 없으면 참 힘들고,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도 못하는데, 금전적인 여유가 있으신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책을 보면서, 늙는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람은 언젠가 늙는다. 하지만 추하게 늙을것인가, 곱게 늙을 것인가는 자신의 행동에 달린 것 같다. 나도 언젠가 늙어서 과거를 추억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이 책을 다시 한번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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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도 마흔일 때가 있었다. 물론 칠순이 넘으셔서 은행에서 할부로 하는 상환카드도 사용 하실 수 없는 어르신에겐 새발의 피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지만 나도 적잖히 나이를 먹어주셨다는 이야기를 그러니깐 요즘아이들이 머리에 피도 안마른 젊은것들에 속하지 아니하노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나이를 밥 공기세듯이 셀 순 없지만 어느덧 중년(ㅋㅋㅋ 내가 진정 중년을 맞이할 수가 있구나 싶다)을 바라보는 나이라서일까 "나이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를 만나면서 어느정도 공감은 아니라도 약간의 이해는 다가온다고 말하고 싶다. 생각해보라 앉을때 일어날때 의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입 밖으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에고고고~"하는 앓는 소리가 자동문이 열리듯이 나오는 것을, 물론 아직은 모든 추억하는 것들이 모조리 슬프다고 단정짓지는 못한다. 마냥 감사하고 마냥 행복한 미소를 드리울 때가 더 많다. 해서 분명한 것은 진행형으로서 열심히 추억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나이들어 옛날을 추억할 때는 "늙은이가 그렇지뭐" 라는 말은 듣지도 내 스스로가 위안으로도 삼지 않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보고싶다. 너무 어려운 기대라고 생각하는건 아니시겠지.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내나이가 늙은이의 반열에 오르려면 아마도 120세는 되어야하지 않을까? 히히 그래 100세로 잡아야 평균이리라. 늘 당당하시고 자그만 하시지만 전혀 작다고 느끼지 못했으며 한마디로 짱짱하셨던 친정아버지께서 어느날 아무 예고도 없이 불연듯 불각지에 너무나 여리고 안쓰럽고 왜소하고 쳐진 어깨로 만났을 때 그 연세에 비한다면 정정하시다는 말이 목에 걸려서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렇게 안았을때 그 가슴이 너무나 서럽도록 갸냘프게 폭 안길땐 푸르렀던 하늘마저도 그리도 슬프게 보였지만 그런 친정 아부지조차도 내 나이일 때가 있으셨고 마흔일 때가 있으셨고 젊은것들의 반열에 올랐을 때가 있었다고 상상도 안해봤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야 말았다. 남자가 제일로 스트레스 받을 때는 퇴직이고 여자들이 제일로 스트레스 받을 때는 배우자와의 헤어짐이라는 통계를 들은 적이 있다 아직은 아내가 아픈 몸이지만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얻으시길 바래본다. 홀로 된 후에는 정말 추억하는 모든 것이 슬플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 인생을 논하기보다 후대들의 인생을 위하여 그 자리에 묵묵히 버텨주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될 수 있기를~ "당신(어르신)이 계셔서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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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게 마련이다. 20대에는 빨리 30세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솔직히 천천히 나이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더욱 깊어지고 삶의 지혜가 생긴다는 것을 느끼지만, 더이상 파릇파릇한 나이가 아니라는 사실에는 마음이 먹먹해지며 처량해진다. 한때 X세대라고 최첨단을 걷던 우리 세대가 더 생생한 사람들에 점점 밀려나는 것을 보니 소외감이 느껴진다. 우리도 이런데 더 많은 세월을 사신 분들은 오죽할까.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사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가끔 나이를 인식하게 되면 괜히 슬퍼지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이 앞으로 살 날 중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훗날 떠올렸을 때에 '그래도 그 때는 젊었을 때인데...'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예전보다 나이 들었다는 것에 슬퍼진다.
이 책의 저자는 1925년생. 이 책의 제목 <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처럼 이 책의 내용도 슬펐다. 어차피 죽을 걸 뭐 이렇게 아웅다웅 살아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는 것이 허무해진다. 무더위에 지쳐버린 마음을 바닥까지 내려앉게 한다. 글을 읽으면 슬프고 우울해진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 책 속의 이야기는 삶의 진솔한 소리다. 우리가 나이들고 언젠가 목격하게 될 이야기다. 외면하고 싶지만 꼭 한 번은 생각해봐야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에서 들려주는 삶의 현실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슬픔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살아가는 것은 죽음을 향해가는 발자취다. 나도 나이들면, 추억하는 것이 모두 슬플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며 나이드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얇은 책이지만 마음에 느껴지는 무게감은 무거워지는 그런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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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 책 제목에 이끌리어 선택했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 우울하고 슬픈 마음의 여운이 쉬이 가시지 않아 가슴이 아렸다. 그러면서도 읽고 또 읽기를 서너번. 나도 나이를 먹고 있나보다...... 저자 나이 아흔에 책을 펴냈지만 은퇴후의 노년의 일상일기를 시처럼 메모처럼 그렇게 쓰신 이야기 모음집이다.
꽃은 젊은 청춘들 눈에 아름답고 예쁘기만 할 것이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가면 마냥 꽃이 좋아 사게 될 것이고 노년의 나이가 되어서는 서글퍼지기 시작할 것이리라. 온갖 정성으로 꽃들을 키워내기 위해 아프고 느려진 몸을 애써 움직이며 가꾸어 줄 것이다. 저자 나이 아흔이 되어 꽃을 보니 꽃이 지는 것이 유난히도 두드러지고 꽃이 지듯,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끝이 있다는 것이 확연히 보이는 것이다. 고로, 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 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 책 제목이 저절로 읊조려진다.
책을 읽다가 잠시 덮어두었을때 남편이 와서 제목을 보더니 책을 펼쳐든다. 반평생을 산 남편은 몇장의 페이지를 넘기며 나에게 묻는다. "이 책 당신이 선택한 거야?" 나는 의아했다 질문의 의미를 잠시 되새겨 보았다. "네, 왜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남편은 반은 미소 반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니, 너무나 반가운듯이 말을 한다. " 이 책, 너무나 공감간다~ 어쩌면 이렇게 노인의 심정을 요즘 내가 느끼는 기분, 감정들 그대로를 적어 놓았다니~ 아주 딱이야~" 이러면서 깊은 공감을 하는 것이다. 그제서야 남편의 미소는 웃음의 미소가 아니고 헛헛함의 미소, 나이들어 가는 쓸쓸함의 표현이라는게 보였다. 지금부터도 이러한데 더 나이들면 얼마나 절실하게 슬퍼지고 외로와질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러할진데 남자이고 지극히 이성적이며 감성적인 남편인데 오죽할까 싶어진다 홀로가 아니라서 다행이고 둘이지만 홀로여서 외로운 인생이지만 세상의 순리를 따르며 겸허히 받아들이며 순응하면서 오래되어서 좋은것으로 그렇게 그렇게 환하고 밝은 미래를 꿈꿔보련다.
이 책은 교직에서 은퇴한 저자가 나이들어 가면서 하루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표현들이 적절하게 묘사되고 있다. 저자 본인은 늙은이의 한탄이였기에 망설이고 망설이다 긍정의 눈, 현실의 눈, 희망의 밝은 빛으로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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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
본인은 이립이다. 공자가 삼십 세에 자립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로, 삼십 세를 달리 이르는 말로서 구순이라는 단어와 숫자는 정말 멀고도 먼 숫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으며 생각의 속도 그리고 그걸 인지하는 시간의 속도는 조금 더 가속이 붙는 것 같다. 마치 사람들이 장난스레 이야기하는 나이 숫자와 시간이 지나는 숫자는 같다는 뜻이다. 인생은 뭐라고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생이라는 것 그리고 나이가 듬에 느끼는 감정들이 조금 더 솔찍해지고 무언가 아련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 특히 주위 어른들을 보면 감사하다, 고맙다라는 말 그리고 느끼는 감정을 솔찍하게 이야기 하는 것을 느낀다. 각 나이마다 느끼는 감정이 있을 것이고 아이가 태어나 노인이 될때까지의 마음가짐이 나이에 맞는 한문으로 잘 표현 되어 있다. 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 라는 책은 전체적인 평은 조금 어둡다고 생각 되었다. 하지만 그 어두움에는 본인의 삶을 다시 되돌아 볼수 있는 불빛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나이 그리고 과거의 행동과 미래에 행동에 대해서 다시금 되돌아 볼수 있는 어쩌면 잊고 있었던 나의 본연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던 나 자신과의 대화하는 듯한 느낌의 책이었다고 생각했다. 아흔을 바라보는 저자는 시처럼 써내려간 문장 문장 그리고 단어와 단어가 참 서글프다. 나이듬에 추억하는 과거의 친구들 교단의 추억 그리고 따뜻했던 부모님의 사랑 그런 것은 이제 아무데도 없다. 가까이 했던 부인의 치매 그리고 떠나가버린 친구들의 회상,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음에 더욱 슬프다. 아마도 그런 아무것도 아니었을 기억이 정년퇴직을 하고 친구들과 가족들을 떠나 보내면서 그 아무것도 아닌 추억은 정말 소중한 기억 그리고 아쉬웠던 기억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족 생각과 친구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잘하고 또 잘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인생을 무한하다는 무지한 생각으로 하루 하루 의미없이 보내는 나날에 그나마 이책을 읽음으로서 고무되어 조금더 진지하게 그리고 알차게 생활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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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 인생의 고비를 어떻게 넘겼는지,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모습이 얼굴에 나타난다고도 한다. 나이 드신 분들의 얼굴을 보면 곱게 나이 드신 분들도 계시고, 무섭고 험악한 모습의 혹은 삶에 찌든 듯한 모습도 가끔은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곱게 늙어가고 싶어하고, 평온한 노후를 맞고 싶어 한다. 이런 늙어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또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고 늙어가는 것이다.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다만 그분들이 나의 미래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이 책<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의 저자인 조옥현님은 올해 아흔 살을 맞으셨다. 그럼에도 치매에 걸린 아내를 걱정하고 있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아버지이시다. 그래서인지 교직에서 퇴직 후 그때그때의 생활과 생각을 적은 이 책의 에세이처럼 적힌 시 속에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고 마음까지 읽을 수 있었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치매 걸린 아내 걱정에 오히려 나이 들어 늙어가는 것을 미안해하고 죄인이라고 하면서도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저자는 마음이 약하고 따뜻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친구도, 전화를 걸어 줄 이도, 찾아갈 곳도 없는 일상이지만 아직 내 발로 걸을 수 있고, 내 손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 하고 그것이 어느 날부터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되어버렸다는 저자의 말에 소소한 것에 행복해하고 희망을 걸 수 있다는 것은 늙어가는 분들의 유일한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한 켠이 뭉클하기도 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저자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나이가 들어 안타까운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0세가 넘었기 때문에 할부가 안 된다는 말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고 상황이 우스웠지만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모두 100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70세가 넘었다고 할부가 안 된다고 하고, 보건소에서도 무시를 하고 새를 팔던 젊은이도 무시를 하는 바람에 나이가 들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갔던 부분이다. 하지만, 늙음이 우리 모두의 미래 모습이거늘 왜 잊고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우리 모두 조금 더 공경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옥현 저자님의 걱정과 생각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고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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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 이 책은 90세가 된 어느 할아버님이 쓰신 책이다. 이 할아버지는 33년 동안 교직에 계시다가 은퇴하신 전직 교사님이시다. 지금은 불광동 근처 단독 주택에서 79세된 할머님과 함께 살고 계시는 분이시다. 할머님은 치매증세로 고생하고 계신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은 할아버지가 평소 메모해 둔 내용들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의 내용들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꾸미거나 덫 칠하지 않고 맨 낯 그대로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이 책은 어린이들이 쓴 동시처럼 단순하고 담백하다. 어른이 쓰신 노시(老詩)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듯싶다. 매일 살아가는 일상을 일기 쓰듯이 느껴지는 감상을 그대로 글로 옮겨 적어 놓았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 절로 공감이 되어 눈이 가는 그대로 마음도 하나가 된다. 한 마디로 늙는 게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쓸쓸하고 덧없음을 조곤조곤 말씀하고 계신다. 누구나 이 범주와 이 방향을 크기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 책을 쓴 어느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며, 곧 내 이야기인 것이다. 장래 다가올 내이야기를 미리 읽고 있다는 착각을 하면서 한 편으로 씁쓸하고, 한 편으로 걱정을 해 본다. 이 할아버지와 엇비슷한 연세의 어느 여류 시인이 최근에 발표한 열일곱 번 째 시집 ‘심장이 아프다’에서 읽은 한 편의 시가 오버랩 되기에 여기에 짧게 인용해 본다 [숨 쉬는 공부가 의료 처방의 첫 과제이다. 깊게 들이켜고 최대한 뿜으라 한다. 주야간 수시로 연습하란다. 모태 안의 태아일 때부터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일 기본 아닌가. 숨 쉬는 일 그 가련하고 죄 없음. 각자 단독으로 행하며 동서고금의 동일방식인 점. 옛 사람과 후세 사람들이 공평하게 위에 준하는 점. 멈추지 말 일이나 영원한 휴식 예약 됨. 중략] 이 시인의 시가 곧 이 할아버지의 책을 잘 압축했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의 의미가 그저 열심히 호흡하고 있는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 정도로 이해가 된다. 참 안타깝고 짠한 생각이 든다. 어른에게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치매로 고생하시는 50년지기 반려이신 할머니의 병세가 걱정되고, 먼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고 하루하루를 사신다. 그래서, ‘시설에 맡기지 말고, 치료는 포기하지 말라’는 유언장을 아마 자녀들이 보라고 써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소망은 남편 되신 할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이겠지만, 자녀들이 그 유언을 이행해 줄지가 솔직히 걱정된다. 내 미래의 이야기를 이토록 진지하게 말해 주시는 할아버지 내외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즐겁게 사시기를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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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
이 책을 집필한 조옥현 작가는 나이 들어 퇴임 이후 그때그때 생활과 생각을 적어 모아놓은 것을 책으로 역어 세상에 내놓았다. 늙은 사람의 한탄 일지도 모를….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너무 슬프고 허무한 일인 것 같다. 꽃이 지듯,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끝이 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것…. 꽃잎은 한 것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다가 그 화려함을 뒤로하고 허무하게 시들어 사라져 버린다. 사람의 인생도 그러한 것 같다.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하지 않은 것. 나에게 오지 않을 것 같은 나이가 든 늙은 사람의 인생…. 책 표지에 수놓아 있는 분홍색의 잔잔한 꽃잎들이 나의 마음에 하나 하나씩 들어온다. 예쁘고 아름답고 생기있지만, 한편으론 가슴이 미어지게 슬픈 감정을 이끌어내는 듯하다. 난 아직 나의 미래 노인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아직 나름 젊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듯하다. 이따금 스치는 얼굴의 자잘한 주름살…. 충격!!, 이런 식으로 나이 먹음을 한 번씩 확인하곤 한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미리 대비해야 할 인생, 참…. 노인의 삶은 쓸쓸한 것 같다. 젊은 시절 세상과 처절하게 사투를 벌이고, 자식을 키우느라 정신없는 삶을 살고 정신이 들 때 줌은 나이가 든 자신의 모습에 좌절감이 느껴지진 않을까?? 꼭 허무함만 있지는 않겠지?? 자식들이 커가고 무엇인가를 노력해 하나씩 이뤄온 삶은 무엇보다 멋진 삶으로 남을 거라고 난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p.43 아파서 병원에 가도 으레 노인은 그런 정도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취급한다. 나는 정말 아픈데. 할아버지가 되어 인간사회에서 조금씩 소외되고 떨어져 나가고 있다.
p.66 우리 둘만 남고 모두 떠났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다. p.90 하루 종일, 이 큰 집에 두 사람만이 있다. 대화의 대상도, 싸우고 울고 웃을수있는 대상도 아픈 아내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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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의 시간은 흘러간다. 거울에 비친 내 모양새가 초라하고 불쌍하다. 생기 없는 얼굴, 그 초라함을 덮어보고자 머리에 염색을 한다. 하지만 모양새가 아니라 몸이 망가지고 있다.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가는 길, 어지러워 가드레일을 잡고 한참을 서 있었다. 무엇을 원망하고 무엇을 탓하겠는가 무상한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젠 어디를 가나 할아버지이다. 할아버지이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나 어린 사람들이 상대를 해주지 않는다. 병원에 가도 으레 노인은 그런 정도 아픈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된다. 늙은 할아버지, 인간사회에서 조금씩 소외되고 떨어져 나가고 있다. 고함이라도 쳐서 저항하고 싶다. [ 조옥현 지음, < 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 > 중에서 ] 열심히 앞 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나이도 잊고 살았다. 젊은 시절 결혼하면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가장으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청년으로 결혼은 늦게 하고 싶었다. 많이 놀러가고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새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내를 만났다. 그것도 아주 우연히 친구의 친구로 만났다. 한눈에 당차보이고 귀여웠던 그녀와 결혼하고 예쁜 공주와 지금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 딸아이가 태어나고 유치원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 가족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물론 대출도 했지만 이젠 모두 갚았다. 대출금 갚는 날 조촐한 파티도 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여 학부모의 이름과 간략한 직업 등을 조사하는 것이 있었다. 딸아이의 이름을 쓰고 학부모 이름과 나이를 적는 칸이 있었다. 한 동안 잊고 있던 나이였다. 바쁘게 살아 온 시간 속에서 나이를 잊고 살아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매년 학년 초에 가정조사서를 작성을 통해서 딸아이는 커가고 우리 부부는 점점 나이 들어감을 알게 된다. 어느 순간 나이 먹는 것이 싫어진다. 나이 마흔을 넘어선 이후에는 밤새는 일이 너무 힘들다.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체감하며 위기감도 점점 커진다. 그래서 체력을 키우기 위해 정기적으로 운동을 한다. 주위의 동료들을 보면 수영을 체계적으로 배우더니 이젠 사회인 수영대회에 출전한다. 야구, 축구등 동호회에 가입하여 매주 정기적 시합을 통해 자신의 체력을 테스트한다. 나는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운동보다는 조용한 운동을 좋아 한다. 그래서 아내와 같이 산책하고 집에서 운동기구를 이용해서 매일30분 이상 운동한다. 40대 이전에 운동은 그리 적극적으로 운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싫어도 운동을 한다. 점점 떨어지는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이다. 나이 들어 체력도 떨어지면서 내 자신이 약해지는 모습이 싫어진다. 그래서 나는 나이 들어 슬퍼지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운동을 한다. 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 교편을 생활을 하다 정년퇴임하고 노년을 보내고 있는 조옥현님은 나이 들면서 노인이라는 사실에 슬퍼한다. 그는 1925년 태어나 동경 메이지 대학 정경학부롤 졸업 인천고등하교 및 서울의 어려학교에서 교펀을 잡았다. 1991년 교단생활 33년을 마감, 정년퇴임하였다. 그 후 그는 시를 쓰면서 노년에 대한 단상을 책으로 냈다. 그는 정년 퇴임 교사모임도 매년 모인다. 하지만 매년 한두 명 나오지 않더니 이제는 몇 명 없다. 서글퍼진다. 지난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슬픔으로 다가온다. 꽃 같던 아내도 세월 앞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사실이 슬프다. 같이 함께하는 아내도 이젠 할머니가 되어 같이 늙어간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 생기 없고 초라하다.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가는데 어지럽다. 가드레일을 잡고 한 참을 서 있는 자신을 본다. 세월이 흘러 나이 먹고 힘 빠진 자신이 안쓰럽다. 운명으로 받아들이지만 소외감은 온 몸으로 거부하고 싶다. 그래서 뒤돌아본 지난 추억이 슬프게 다가온다. 57년을 같이 살아준 아내가 고맙다. 며칠 전 집 앞에서 넘어지면서 다리에 큰 멍이 들었다. 수시로 넘어지고, 다치고, 병원신세를 지기도 한다. 아내의 79번째 생일이 지났다. 지금 아내는 머릿속까지 세월에 밀러 옛날이 자신을 버리고 딴 사람처럼 고집스런 환상과 망각에 잠겨 살고 있다. 아내는 5년 전부터 가벼운 치매 증세로 매일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꽃 같던 아내도 할머니가 되었다는 사실과 이제는 옆에서 지켜주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아내와 함께했던 추억을 생각하면서 남편인 그는 슬퍼한다. 시집 [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은 모두 슬프다]는 정말 가슴 저리고 슬픈 이야기이다. ‘꽃이 지듯,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끝이 있다.’고 쓴 조옥현님의 시는 너무 애잔하게 내 맘을 아프게 했다. 좀 더 노후를 즐겁게 보내실 방법은 없으실까?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남의 일이 아닌 20년 후의 내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밀려온다. 노후를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자식에 의지하지 않고 부부가 남은 노후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지금 부터라도 노후준비를 해야겠다. ‘나이 들면, 추억하는 것이 모두 기쁘다’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119힐링실천 : 행복한 노후를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고민해 보자! (나이 들면 늙는다. 노년의 삶이 행복해지려면 젊어서 미리 대비해야한다. 나이 들어 추억이 슬픔이 되지 않기 위해서 미래를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가령, 연금보험을 들던가, 실비보험을 들거나 무언가 노후를 위해 저축을 해야만 한다. 각자에 맞는 방법을 찾아 실행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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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릴때만 해도 한살씩 나이드는 것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는데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 나이드는 것이 나이에 맞는 책임과 지위를 요구하기에 더욱 더 어깨가 버겁고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세상이 좋아져서 평균수명은 더 늘어났다. 가끔은 생각한다. 이것을 그저 축복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나 하고 말이다.
아마도 전반적인 사회구조 때문에 나이듦이 더 슬퍼지고 초라해지는 것 같다. 요즘의 나이는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젊어진 것 같은데도 정년퇴임하는 나이는 같다. 분명히 아직 일을 할 힘이 남아있음에도 현장에서 물러나와 노인의 삶을 강요받는다. 그렇다고 외국처럼 노년의 삶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것도 매우 드물다.
그렇다면 나이드는 것은 죄일까? 누구나 나이가 드는 것일텐데 사회의 전체적인 흐름은 오로지 젊은 사람의 기호에 맞게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뭐든 돌도 돈다. 영원할 것 같은 청춘도 지나고 황혼이 오는 것이다. 지리한 여름이 가고 서늘한 가을이 오듯이 그것은 명백한 이치다. 그러니 젊은이든 늙은이든 함께 늙어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같이 어깨를 맞대고 살아갈 그런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이드는 것은 분명 슬프고 아련하고 그렇다. 하지만 추억에만 그치지 않게 나이들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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