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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만리, 고철 정철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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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만리(激浪萬里)   격랑만리 거친 파도를 헤치고 만리를…. 학도병을 끌려나가 고향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40년이란 세월이 한 세대를 지나 또 10년,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갈 때, 배 속에 있던 큰딸은 40이 넘은 장년이 됐는데…. 그리던 고향 땅에 돌아와 3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의 한과 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은 한두 사람이 아니, 일제강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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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만리(激浪萬里)

 

격랑만리 거친 파도를 헤치고 만리를…. 학도병을 끌려나가 고향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40년이란 세월이 한 세대를 지나 또 10년,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갈 때, 배 속에 있던 큰딸은 40이 넘은 장년이 됐는데…. 그리던 고향 땅에 돌아와 3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의 한과 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은 한두 사람이 아니,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모든 이들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은 고철 정철수 선생이다. 고철은 가명인데, 아예 그의 호가 된 듯하다. 

 

탈출 학도병 1호, 그 앞에 기다리는 것은 거친 파도일 뿐 

 

세계 2차 대전이 종전으로 치닫던 1944년 1월 정철수 선생은 학도병으로 중국의 전선으로 끌려가는데 곧 탈출한다. 학도병 1호 탈출이란다. 김준엽, 장준하 선생도 탈출했는데, 김준엽보다 며칠이 빨랐다고 한다. 아무튼, 탈출지역에 따라 이들 학도병은 운명은 엇갈리는데, 국민당 점령지역으로 들어가면 광복군이요. 중국공산당의 팔로군 지역으로 들어가면 조선의용군이라…. 태항산에서 유격전을 펼치며….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선생은 전쟁 외에도 크게 공헌한 것이 바로 희곡이다. <강제징병><조선은 살았다> 등을 연극으로 공연했다. 

 

선생은 일제가 패망하면 고국으로 돌아갈 꿈을 안고 조선의용군으로 싸웠고 해방을 맞이하여 고향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소련군이 지키는 3.8선에서 가로막혔다. 조선의용군의 입국을 막았다. 조선의용군의 일부는 국공내전이 벌어지면서 공산당 군대에 편입되고, 선생 역시 연변으로 파견되어 병사모집을 해야 했다.

 

군문을 떠나 작가로, 교육자로 거듭난다. 민족교육은 중요하다. 뼈에 사무치는 깨달음

 

한국전쟁이 발발, 군문을 벗어나 조선 동포 속으로, 연변 신문에서 편집위원으로 신문을 발간하는 한편 창작활동도 꾸준히 했다. 이후, 연길현 교육과장으로 일했고, 주덕해 등 조선족 간부들과 연변대학 설립했고, 직접 길림 조선족 중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그는 몇 차례 인생을 거침없이 다른 곳으로 옮겨다 놓은 거친 파도를 만났다. 이번에 만난 파도는 반우파투쟁이라는 거친 파도였다. 가족들과 함께 오지인 화룡현으로 끌려가 4년여 동안 노동 개조라는 이름의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다. 노동 개조에서 풀려나 연길에 있는 국영 인쇄공장에 배치되어 보일러에 석탄을 채워 넣는 일을 했다. 고단한 노동자의 삶은 쓰나미급의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무사히 건너갈 수 있었다. 아이너리다. 새옹지마다.

 

거친 파도가 사그라지자 선생은 아들 래정으로부터 방송을 통해 고향 땅의 어머니가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알았다. 

 

일시고향 방문, 그리고 영구귀국, 그 후 3년 후 고향 땅에서 숨을 거두다. 

 

격랑만리, 나라를 잃었을 때 그 나라 사람들에게 닥쳐올 가혹한 운명, 이는 정철수 선생, 수많은 정철수가 있었다. 민족분단의 비극과 이데올로기 투쟁, 말 그대로 격랑의 세월을 살아왔다. 

 

이 평전은 고철 정철수 선생의 인생역정에 관심을 보인 여러 사람이 있었기에 사후 한참 세월이 지나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아마도 조상의 덕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포은 정몽주의 23대 종손이기도 해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사람들보다 관심을 끌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이야기가 소개돼도 좋을 만큼의 삶을 살았다. 아주 훌륭하게, 

그는 한편으로는 행복했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로서 교육자로서 항일혁명 투사로서 그의 앞에 닥친 세찬 파도를 타고 넘고 또 넘어, 꿈에 그리던 고향 땅 흙을 밟고, 40년 만에 어머니를 만났으니…. 그렇지 못한 수많은 사람보다는…. 그들의 삶도 정철수 선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평전은 당대의 삶을 살았던 이들의 풍찬노숙을 하며 해방투쟁을 했던 증거집이다. 중국과 소련 그리고 해방정국에서 북쪽 사회의 이념투쟁, 하나 돼 일제를 몰아냈건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데올로기 장벽과 총알받이가 돼 또 다른 전쟁터로 내몰렸던 이들의 운명을…. 이 책을 통해서 또 그 시대의 증언을….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바라며….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격랑만리#고철정철수평전#조성수#큰길#조선의용군출신독립운동가#극작가#민족교육자#박애주의자#책콩카페#책콩서평단

YES마니아 : 플래티넘 m****h 2022.08.3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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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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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8월은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달이기도 하다. <격랑만리> 이 책도 이런 취지를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소개하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이 분들의 희생과 헌신, 오직 나라 만을 위해 투쟁하거나 항쟁했던 직접적인 행동력을 바탕으로 이뤄냈음을 표현하고 있다. 워낙 유명한 독립운동가들도 존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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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8월은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달이기도 하다. <격랑만리> 이 책도 이런 취지를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소개하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이 분들의 희생과 헌신, 오직 나라 만을 위해 투쟁하거나 항쟁했던 직접적인 행동력을 바탕으로 이뤄냈음을 표현하고 있다. 워낙 유명한 독립운동가들도 존재하나, 여전히 역사적 사료의 부족이나 발굴과 연구의 시간이 필요로 한 분들도 많다는 점에서 지나친 일반화나 정치적인 해석보다는 새롭게 부각되거나 재조명 받아야 되는 인물들은 누구인지, 이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적 가치나 교훈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격랑만리> 자신의 신분이나 상황과는 별개로 나라를 잃었다는 생각으로 인해 쉽지 않은 결정을 했던 인물에 대한 소개, 어떤 이들은 일제에 부역하거나 친일파로 전환하며 개인의 안위와 보신 만을 위해 살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철저한 외면과 탄압, 가난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는 점에서 우리는 해당 책에서 소개하는 인물에 대해 배우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고 나라가 완전히 넘어간 시점이라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적극적인 투쟁을 통해 민족의 정신과 혼을 지키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그 숭고한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적극적인 행동력을 바탕으로 한 무장투쟁이나 문화적인 항쟁, 또는 교육 분야를 통한 인재양성 등 저마다의 상황과 현실에 맞는 부분을 바탕으로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분들이 다수 존재한다. 특히 우리의 경우에는 친일파 문제가 계속해서 부각되고 있으며 이를 정치적인 해석을 통해 유리한 방향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이 많다는 점에서 해당 시기에 대한 관심과 조명, 새로운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더 깊이있게 배우며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할 것이다. <격랑만리> 책에서도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인물들의 노고와 어려움 등을 소개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거나 항쟁했다는 점에서 그 절대적인 가치가 잘 표현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우리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당시 시대를 지배했던 권력자나 위정자들의 경우 변절하거나 친일파가 되어 같은 민족을 철저히 억압하고 수탈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모든 계급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의 과정이나 자신의 조상이 누구인지, 이와는 별개로 죄책감을 느끼면서 더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도 많았다는 점을 동시에 기억하며 이 책을 통해 해당 인물이 미친 영향력이나 왜 우리가 이런 분들에 대해 더 자세히 배우며 역사적 교훈을 찾아야 하는지, 그 의미에 대해 판단해 보자. <격랑만리> 일반적인 역사서가 아닌, 어쩌면 인물사를 바탕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조명하고 있는 책이라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여전히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 <고철 정철수 평전> 책을 통해 배우며 활용해 보자.

 

 

 

 

 

 

 


 

m**********m 2022.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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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만리 고철 정철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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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 선생의 23대 종손으로 태어난 고철 정철수 선생의 일생이 한 눈에 다 보였다. 눈물과 감동 그리고 씁쓸함. 우리나라 역사 중 가장 힘들고 슬픈 시기에 태어난 정철수 선생의 삶이 한없이 가여웠다.   1920년 대 태어난 그는 집안의 종손으로 엘리트답게 훌륭하게 성장하였다. 하지만 그 훌륭함도 나라 잃은 자손에게는 더 이상의 장점이 되지 못했다. 처음엔 학생과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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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 선생의 23대 종손으로 태어난 고철 정철수 선생의 일생이 한 눈에 다 보였다.

눈물과 감동 그리고 씁쓸함.

우리나라 역사 중 가장 힘들고 슬픈 시기에 태어난 정철수 선생의 삶이 한없이 가여웠다.

 

1920년 대 태어난 그는 집안의 종손으로 엘리트답게 훌륭하게 성장하였다.

하지만 그 훌륭함도 나라 잃은 자손에게는 더 이상의 장점이 되지 못했다.

처음엔 학생과 선생님들을 각종 노역에 시달리게 해 학교공부 또한 못하게 하며 독립운동을 못하도록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가하였다.

 

1944년 일본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우리나라의 남자들을 징집대상으로 규정하고 전쟁에 차출하는 계획을 실행하였다.

그 거대한 물결 속에 우리의 정철수 선생 역시 휩쓸려 갈 수 밖에 없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청년들을 차출 해가더니 전쟁에서 교육과정이 더디고 배우는 것이 모자라 이번에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학교의 학생들을 차출 해가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 당시 보통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모두 다 집안이 괜찮은 집안의 자손들이었고 또한 배움이 깊어 누가 봐도 뻔한 일본의 농락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군인의 수가 부족해 그 수를 채우기 위해선 우리나라 청년들을 더 필요로 했고 일본은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부모와 형제 그리고 그의 친척들까지 괴롭히고 유치장에 가두고 그 수모가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엔 가족을 위해 할 수 없이 자진해서 군대에 입대할 수밖에 없었다.

왜 입대를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일제의 만행을 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참으로 가혹했다.

 

입대 후는 어떤가 

25명의 부대원 중 5명 정도가 한국인인데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모진 괴롭힘과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어떤 분은 회로록에서 그 어떤 괴롭힘 보다 배고픔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차출된 우리의 군인들은 모두 엘리트들이었지만 군대에 배정된 일본인들은 그렇지 못해 더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철수 선생은 그 곳을 탈출 해 조선의용군이 되었다.

그 탈출과정 또한 말 못한 고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쩌면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곳을 탈출해 무사히 살았기 때문이다.

 

선생의 일생은 말할 수 없이 힘들고 고난의 연속이다.

우리나라 조상님들의 고초가 이 안에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살아남았고 해방이 되었지만 쉽사리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 땅에서 사시다가 40여년 만에 고국에 돌아오시게 된다.

그 고국 땅에서 어머니와 수절을 지킨 첫 아내와 딸을 만나고 동생들과 일가친척들을 만남으로써 잠시나마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고국에서의 삶 역시 녹록치 않았다.

한국은 행방 후 민주주의 국가 즉 자유주의 국가였다.

금전적으로 넉넉지 않은 선생님의 삶이었다.

 

선생님의 생생한 일대기가 가슴속에 많은 울림을 남겼다.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w****m 2022.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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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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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부분 시대를 통해 인간을 조명하곤 한다. 그러나 인간을 통해 시대를 조명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한 인간을 통해 현대사의 한국과 중국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음이 바로 그러한 조명이라 할 수 있다. 포은은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를 말한다. 역사가 말해주는 포은의 삶이 충신으로 그려지듯 현대사의 명암에도 그의 후손들이 미친 영향력이 적지 않은 바 그 후손들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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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부분 시대를 통해 인간을 조명하곤 한다.
그러나 인간을 통해 시대를 조명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한 인간을 통해 현대사의 한국과 중국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음이 바로 그러한 조명이라 할 수 있다.
포은은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를 말한다.
역사가 말해주는 포은의 삶이 충신으로 그려지듯 현대사의 명암에도 그의 후손들이 미친 영향력이 적지 않은 바 그 후손들의 존재 조차 인식치 못했던 나, 우리의 후안무치함을 부끄러워 한다.
충신답게 그의 후손 역시 충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모습으로 읽혀진다.
국가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포은의 후손 정철수 선생의 일대기는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격동의 세월을 드러내는 격랑만리를 통해 한국과 중국에 걸친 현대사의 명암을 드러내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 는 포은 정몽주의 후손인 고철 정철수 선생의 생애를 밀도높게 조명하는 책이다.
정철수 선생은 일본과의 항일투쟁과 중국과의 반우파 운동 및 문화대혁명의 격변을 거치며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 왔으며 그러한 가운데서도 사람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박애주의자 였는가 하면 동족상잔의 비극에 넘어 민족교육에 헌신해 생을 마감하기 까지의 과정을 올곧게 보여준 인물이다.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을 이유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것 뿐만이 아니라 4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는 효행의 모습을 보이는것도 오늘을 사는 나, 우리로서는 쉽게 행할 수 없는 심성을 지닌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6부로 나누어 정철수 선생의 학도지원병으로의 입영과 카나리아(야부래 고모로) 부대를 탈출하고 조선의용군으로 태항산 전투에 참여하며 호가장 전투가 일어난 동북행으로 향하게 된 사유에 대한 이야기, 중국 반우파 투쟁과 함께 문화대혁명 시대의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를 보내고 연변 제1중학교로의 복직과 연변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기에 이르기 까지의 격랑적인 삶의 모습을 무수히 많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 사진들과 함께 제공하고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의 수 많은 인물들의 삶이 녹아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자칫 외면하거나 무지함으로 지나칠 수 있는 역사이지만 그 역사를 현재에 있게 한 수 많은 존재들 하나 하나의 삶을 이렇게 후세가 이해하고 깨우쳐 반복적 역사를 만들지 않도록 경고의 메시지를 던저주는 고철 정철수의 삶의 이야기가 마음에 강한 울림을 만든다.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자로의 삶을 살아 온 고철 정철수의 삶의 모습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감당해 내기 어려울 수도 있는 행보임을 이해할 수 있다.
시대를 탓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시대를 탓하기에 앞서 개인적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행동이, 삶이, 인생이 바뀐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렇게 모진 격랑의 삶을 살아 온 충신들의 후손과는 다르게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해 힘에 굴복한 또다른 존재들의 삶이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일제강점기 친일분자들에 대한 처리 역시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는 마당에 충신 및 독립운동가 그들의 삶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감사에 대한 표현을 심도 있게 생각해야 할 때라고 판단해 본다.
아직도 '우리' 라는 존재에 목숨을 걸고 싸워 온 수 많은 존재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 듣고 답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아 본다.


** 네이버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n********1 2022.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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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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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 조선의용군이 된 포은 종손   큰길에서 출판한 조성우 작가님의 <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는 정철수 선생의 평전이다. 선생은 포은 정몽주 선생의 23대 종손으로 태어나 일제강점기 경성제2고보와 보성전문을 다닌 ‘인텔리’이자 조선의용군 출신 ‘독립운동가’이며, 민족교육자이자, 극작가, 박애주의자인 고철 정철수 선생의 파란만장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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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 조선의용군이 된 포은 종손

 

큰길에서 출판한 조성우 작가님의 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는 정철수 선생의 평전이다. 선생은 포은 정몽주 선생의 23대 종손으로 태어나 일제강점기 경성제2고보와 보성전문을 다닌 인텔리이자 조선의용군 출신 독립운동가이며, 민족교육자이자, 극작가, 박애주의자인 고철 정철수 선생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조망한다.

 

고철 정철수(1923~1989)는 경기도 용인 포은 정몽주의 23대 종순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함을 보여 동네에서 기대했으며, 당시 수재들이 입학한다는 경성제2고보(경복중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전문(고려대학교)를 다니다 일제에 의해 학도병으로 징집당한다.

 

그는 학도병으로 참전한 와중에, 돌베개로 유명한 장준하 선생과 김준엽 선생이 탈영 후 한국광복군으로 찾아간 것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일본군에서 친구들과 탈영을 감행한다.

 

당시 일본군의 대규모 작전을 이해하고, 인근의 팔로군에 참전해 조선의용군이 된다. 한국에서는 조선의용군으로 참전한 독립운동가에 대해 경원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당시 학도병이 탈영한 지역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중국군과 함께 참전한 독립군에게 몸을 가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는 태항산 부대에서 여러 차례 전투에 참전한 것으로 짐작되며, 자서전에 전쟁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평소 참전한 이야기와 다리에 총탄 자국기 있어 여러 차례 전투에 참전한 것으로 짐작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당시 탈영한 후 손문 휘하의 왕정위 부대에 마주했다는 점이다. 왕정위는 손문 사후 장개석 총통과 권력 다툼을 벌이며 장개석에게 반대해 무한에 국민당 정부를 자체적으로 수립한 인물이다.

 

선생과 같은 조선의용군은 일본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어 일본군과의 통역, 선전업무 등 다양한 업무를 보조할 수 있었다.

 

Photo by vnwayne fan on Unsplash

또한 팔로군 연합의 조선의용군으로 근무하던 시점에 중미 연합군 공군이 화북지방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추락한 미군을 구한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도쿄공습을 감행한 두리틀 부대가 추락 지점에서 중국 남경 일대의 중국군을 마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같은 부대원인지 궁금함이 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중국 현대화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부딪친다. 지식인으로 문화대혁명을 살아내는 것은 운이 좋은 일이었다. 문화대혁명 동안 고초를 겪고 이후 연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중 둘째 딸의 지인이 듣던 한국 라디오 방송에서 용인의 어머니가 40년 동안 선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귀국한다.

 

한국에서 지인을 만나고 다시 포은 선생의 종손으로 역할을 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그의 인생사가 20세기 대한민국의 불행한 역사의 단면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특히 중국 내 국공내전과 국공합작, 일본군과의 전투는 평소 궁금했던 점인데, 선생의 평전에는 당시 사진을 많이 남기고 있어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특히 학도병으로 같이 탈영한 전우들을 40년 만에 재회한 모습을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되고, 특히 힘이 없는 나라는 자의와 상관없이 대리전에 나서게 된다는 역사의 엄정한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격랑만리고철정철수평전, #조성우, #큰길, #정철수, #조선의용군, #정몽주, #독립운동, #책과콩나무

r*******n 2022.08.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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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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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만리라는 표현이 정말 딱 적적한 정철수님의 평전이었어요. 일제시대에 태어나 학도병으로 끌려갔으나 탈출하여 조선의용군으로 항일운동에 헌신하셨고 해방후에는 불행하게도 자신의 고향인 경기도 용인에 돌아오지 못한 상태로 중국에서 생활을 했지만 문화대혁명 동안 엄청난 고초를 겪으셔야 했고 다행히 문화대혁명 이후 복권이 되어 연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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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만리라는 표현이 정말 딱 적적한 정철수님의 평전이었어요. 일제시대에 태어나 학도병으로 끌려갔으나 탈출하여 조선의용군으로 항일운동에 헌신하셨고 해방후에는 불행하게도 자신의 고향인 경기도 용인에 돌아오지 못한 상태로 중국에서 생활을 했지만 문화대혁명 동안 엄청난 고초를 겪으셔야 했고 다행히 문화대혁명 이후 복권이 되어 연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한국으로 영구귀국을 하게 되신 정철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하다고 할수 있을 것 같네요.

 

 

다행히 아들이 중국에서 듣게된 KBS 라디오 방송을 통해 용인에 계신 노모가 자신을 애찾게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국을 방문한였고 그로부터 몇년후 한국에 영주 귀국하여 포은 정몽주 선생의 23대 종손으로 역할을 다하시다가 생을 마감하신 한 분의 역사는 그야말로 우리 근,현대사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포은 정몽주의 경우 누구나 역사공부를 통해 알듯이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었고 이성계의 새로운 나라 건설에 반대하다가 이방원의 손에 죽임을 다했던 고려말의 대학자였죠. 그의 종손답게 정철수님은 부끄러움없는 삶을 사셨던 것이고 격변의 시대에 자신의 운명이 수차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굳건히 하셨기에 다행히 말년에 한국에 영구귀국하여 노모를 만나고 정몽주 선생의 종손으로써의 책임을 다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독립운동가였고 극작가였고 민족교육자였으며 일제시대에는 항일운동을 그리고 해방이후 중국에 거주하면서는 조선족의 교육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고 이런 분들이 아직도 우리가 잘 모르지만 많으셨을 것 같고 그들의 후손만이라도 우리가 제대로 찾아서 그분들의 조국을 위해 애쓰신 업적에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면 광복절이 지난지 얼마안되었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는 고철 정철수님처럼 수많은 선조들의 항일 무장운동을 통해 일제에 저항한 정신에 기대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가 학도병으로 끌려간지 40년이 훨씬 넘은 시점에 꿈에도 그리던 한국에 도착했을때의 그의 만개무량한 심정은 상상할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함께 조선의용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옛 전우를 만나고 80이 넘도록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노모를 만나는 순간은 마치 드라마와 같다고 할수 있죠.

말 그대로 한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한민족의 근,현대사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과거를 잊지말고 국력을 키우는데 절대 게을리하지 말아야함을 상기해봅니다.

p********1 2022.08.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