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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단 종을 흔들며 비뚤어진 웃음을 웃었지
나의 치욕은 나의 것일 뿐 파랗게 빛을 내는 질문지에 네 이름을 써 - 시인의 말 中
[ 시소 ]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어 겨울은 무장한 채로 슬프거나 힘들었으니까 숨은 듯이 창을 닫고 찬물에 발을 담그는 기분으로 책상에 앉아 있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여름이 오면 한적한 거리를 천천히 걸어도 될 거야 값싼 티셔츠를 세 개 살 거야 글씨가 없고 사람 얼굴이 없는 것 내가 배운 원칙 검은색, 혹은 더 검은색으로
아무도 없는 놀이터 시소 위에 좋이컵에 담긴 커피와 다시 읽은 책을 놓아두고 천천히 기우는 양팔 저울을 생각하며 발을 구를 거야
그때는 소서쯤일 거야 받쳐놓은 것들이 모조리 깨져버린 오후에 창을 열고 잔에 순을 채워야지 손을 잡아달라는 게 아니잖아 서로의 목소리가 들릴 만한 거리에 흔적없이 남아 있자 가끔은
고쳐쓴 일기를 바꿔 읽으며 악의 없는 핀잔을 하자
기운다는 것은 쏟아질 준비가 되었다는 것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난간 아래를 천천히 내려다본다 처음부터 다시 읽은 책은 각오가 되었다는 듯 흉내낼 수 없는 억양으로 펄럭이며 위치를 가늠하다 돌아눕는다
당신이 원하는 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했어요
네가 일어서버린 순간 내가 낙하하는 순간
[ 친절한 얼굴 ] 가는 유리관이 떨어지듯 빗줄기가 사정없이 부서지는 밤낮 유예되고 미루어져 불행한 행복처럼 즐거운 불행인지 불행한 즐거움인지 알 수 없는 때 너는 완전히 섞이지는 않은 자세로 돌아누워 있고 몸을 돌리면 다른 얼굴이 나올까봐 나는 네 어깨를 당기지 않는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일 알 수 있었던 일
너의 등은 친절한 얼굴을 가졌는데 그게 싫지, 하필 그런 표정이라니 증오의 술잔을 들다가도 미안함으로 미끄러지게 하는 힘이 있지 결국 내려놓게 하는 철저함이 있지
하지만 깨진 유릿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어가다보면 두통처럼 번지는 실금들이 보여 쳇바퀴 돌듯 되돌아올 어리석음이 마련한 잔칫상에 앉아서 일생의 술잔을 주고받는 나 가장 나쁜 잔을 주는 아니라 가장 좋은 잔을 보여주고 가져가버리는 지독한 장난 같은 거지, 같은거야
문득 겁이 났어 돌아누운 얼굴이 네가 아닐까봐 그래서 자꾸 끌어안았어 작고 볼품없이 쪼그라든 등을 감싸며 말했어 돌아보지 마, 보지 마 사실은 내 얼굴이 어떤지 겁이 나 내 얼굴이 왜 그런지 말할 길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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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시집 참신해요 시집에 5점 준 건 처음이에요 시가 재미있기 어려운데 너무 재미있음 마음에 드는 시가 많아서 인덱스 개많이 붙임 너무 취향이라 이원석 시인의 또다른 시집 안 쓰셨나 검색했는데 이 책밖에 안 나와서 울음 제발 시 더 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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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원석 시인의 첫 시집이다. 시인은 '시를 쓰고 주짓수를 가르친다'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시를 쓴다는 것과 주짓수를 한다는 것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가 어려운 것만큼이나 이 시집을 이루고 있는 시들의 다양한 소재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건 어렵다. 보편적으로, 일반적으로 봤을 때 서로 연결되거나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소재들을 활용하여 시인은 시를 짓는데, 그것이 마치 시를 쓰며 주짓수를 가르치는 시인과 닮아 있다.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 매우 친절한 시인은 시집의 첫 장에 있는 '시인의 말'과 각각의 시들에 있는 다양한 제사(題詞)와 주석들을 통해서 독자들이 가야할 길을 안내한다. 그리하여 이 시집은 낯설기는 하지만 어렵지는 않고, 설령 어렵게 느껴질 지언정 마지막까지 읽게 된다. 하지만 달리 표현하자면 이 시집을 읽는 행위는 시인과 독자 간의 두뇌 게임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시인이 감질나게 던져주는 힌트(혹은 미끼라고 불러도 무방할까?)들을 따라 빽빽한 숲속을 걷듯 시들을 읽다 보면, 이것이 과연 바른 독서 행위일까 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시인이 인도하는 대로 간다면 시인이 원하는 방향으로밖에 가지 못하는데, 어쩌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시인이 바라는 바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궁극에 우리는 이 시집을 이해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따라서 독자는 선택을 해야 한다. 쉬운 길을 갈 것이냐(라고 쓰지만 이 쪽 또한 쉽지는 않다) 아니면 자신이 스스로 길을 개척할 것이냐.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은 독자의 자유이고, 결국엔 그 빽빽한 숲에서 나오기는 하겠지만(물론 어렵거나 또 다른 이유로 중간에 책을 덮는 선택지도 있긴 하다), 나의 경우엔 어찌됐건 흥미로운 시읽기였다고 자평하고 싶다.
엔딩과 랜딩은 한끝 차이 첫 줄을 고칠 때 이미 엔딩은 바뀌었다네
이 시집의 5부에 있는 「고쳐 쓰는 SPY의 밤」이라는 시의 마지막 부분인데, 어쩌면 이 부분이 이 시집 전체를 이해할 클루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당신이 엔딩을 할지 랜딩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시작이 달라진다면 그 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마치 이 시집 전체가 하나의 생물 같아서 하나의 고정된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작에 따라 유기적으로 그 과정이 바뀌고 마지막 결론 역시 그에 따라 매우 '능동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변화무쌍함, 가변성이 이 시집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이자, 첫 시집이기에 가능한 시인의 패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이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번도 대문자 역사가 되어보지 못했던 모든 작은 것들에 대한 연민과 관심. 그들을 기록하는 행위에 대한 의미 부여. 그래서 나는 이 시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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