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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으면 '영원히 잠에 들었다'라는 표현을 쓴다. 옛날 사람들은 잠과 죽음을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았다. 죽음의 신은 타나토스인데, 그의 형제는 잠의 신인 히프토스이다. 그리스인들은 잠과 죽음의 본성이 같다고 보았다. 죽었다가 저승을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꿈이야기를 하면서 긴잠에서 깨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잠과 다른 죽음을 인식하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이 생겼다고 생각했을까? 이 책은 인간들이 신화를 통해 죽음을 인식한 과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많은 설화나 신화에서 옛날 신은 인간에게 영원한 삶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인간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사자인 토끼나 뱀, 카멜레온, 까치가 인간에게 죽음이 있다라고 잘못 전하는 바람에 죽음이 생겼다고 한다. 신은 항상 잘못이 없으므로 신에게 죽음을 만들었다고 탓할 수 없고, 그 전달하는 일을 한 사람의 잘못으로 돌린다. 그래서 신은 면책이 되었고, 인간의 죽음은 그 사자에 의한 것으로 신을 탓할 수 없게 되었다. 때로는 인간들이 죽지 않아서 너무 사람들이 많아지니 인간들이 오히려 죽음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성서에도 아담과 이브는 원래 영생하는데 뱀이 속여서 에덴동산에 쫓겨나고 노동, 출산, 죽음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저작자인 앤 드류안의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10억년 전, 생물에게 하나의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 거래란 개체의 불사성을 잃는 대신 성의 기쁨을 얻은 것이다. 죽음과 성, 우리는 죽음 없이 성을 얻을 수 없다. 자연은 생물에게 무척이나 가혹한 거래를 한 셈이다." 생물이 성적 기능을 얻으면서 죽음이 생겼다는 사실을 과학적 근거로 밝힌 것이다. 죽지 않는 무성생식을 하던 생물이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로 진화하면서 결국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생산이 가능해지자 동시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변했다는 것이다. 생명의 탄생이 죽음의 생성과 연결된다는 의미이니 얼마나 충격적인 진실인가. 섹스라는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생물의 본질이다. 여성의 출산도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죽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허용되는 것이다. 서쪽 하늘에 천리마를 타고 강을 세개나 건너야 도착할 수 있는 하늘의 꽃밭이 있다. 이것이 바로 서천꽃밭이다. 이 꽃밭은 꽃감관이라는 관리가 가꾸고 있는데, 그 꽃이 하나의 인간이다. 그래서 꽃감관이 꽃을 잘 가꾸면 건강하고 오래 사는데, 물을 주지 않고 병들면 사람도 죽는다고 한다. 제주도에는 꽃이 인간 생명이라고 여기는 삼승할망본풀이라는 신화가있다. 이 신화는 인간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늘나라 서천꽃밭에서 어떻게 꽃이 관리되느냐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식물의 생장이 인간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다라는 인간과 자연의 운명공동체라는 관념이 깃들어 있는 신화로 재미있다. 영웅과 신의 차이는 죽느냐 죽지 않느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과 인간 사이에 낳은 아이는 영웅이지만 죽는 인간이다. 테티스는 바다의 여신이지만, 인간 펠레우스와 결혼하여 아킬레우스를 낳는다. 아킬레우스를 영원히 살도록 하기 위해 스틱스강에 몸을 담그지만 잡기 위해 발뒤꿈치만 물이 닿지 못했다. 니벨룽겐의 노래에서도 주인공인 지그프리트도 반인반신인데 용의 피로 목욕을 시켜 불사체로 만들려고 했지만 나뭇잎 하나가 그의 몸에 떨어져 나중에 그것때문에 죽게 된다. 길가메시도 반인반신인데 영원한 삶의 방법을 찾기 위해 우트나피시팀을 찾아가지만 뱀 때문에 영생의 약을 잃게 된다. 결국 영웅은 신이 아니라서 죽음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서 서불을 동쪽으로 보냈지만 사기만 당했다. 바리공주는 무당의 시조이다. 바리공주는 저승까지 사람을 인도해 주는 존재이다. 바리공주 신화는 부모를 살리기 위해 저승에 가서 약수를 구해오 고, 그 공로로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이 된다. 바리공주는 이미 저승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저승길을 훤히 알고 있다. 바리공주는 버려진 공주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버려진 아이는 '바리데기'라고 불린다. 바리공주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무속 신화이다. 무녀인 샤면은 죽음의 문제 해결을 위하여 저승 여행을 감행한다. 굿을 할 때 돼지나 닭 등을 죽여서 제물로 받치는데 이처럼 희생된 제물과 함께 샤먼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는다. 제주도에서는 강림차사가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해 준다고 믿는다. 저승사자는 검은 갓을 쓰고 검은 옷을 입고 나온다. 그런데 그러한 복장은 전설의 고향에서 유래한 것이다. 원래 불교에서는 저승사자의 모습은 검은 옷을 입고, 검은 깃발을 들고 검은 말을 타고 온다고 '불설예수시왕생칠경'에 나온다. 저승사자는 망자의 집에 가서 망자가 생전에 무슨 공덕을 쌓았는지 살핀후 공덕을 쌓았다면 시왕의 엄한 형벌을 피하게 하여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한다. 저승사자는 보통 3명이 오는데, 강림차사, 일직차사, 월직차사 등이고 그래서 저승 삼 차사라고 부른다. 상례때 저승 삼 사자에게 대접하기 위해서 밖에다가 차사상을 차린다. 과거의 사람들은 어떤 현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신화를 만들었다. 죽음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고 두려운 것이니 신화나 전설을 통하여 이해하려고 하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환생이라는 개념도 만들고, 착한 일을 하면 천국에 간다는 개념도 만들었다. 죽음을 물리적 죽음이 아닌 추상적으로 이해하다보니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양한 이야기가 생기게 되었다. 어떤 이야기를 믿든 모든 사람들은 죽고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이해하기 힘들때 신을 찾게 된다. 죽음의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우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들이 생겼났다는 점을 보니 인간은 참 작은 존재라는 생각만 더 강하게 들었다. 2026. 10. 5. 걷는 변호사 조용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