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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아파트에서 19년을 살다가 올해 시골로 이사했다. 좁은 평수였지만 베란다로 숲이 이어져 있어서 보물 같은 집이라 생각하며 살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날마다 주차전쟁을 치러야하는 아파트 생활에 넌더리를 내곤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아파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다. 거기다 게스트 하우스격인 토담방까지 딸렸으니 공간에 대한 만족도는 최상이다. 그런데도 나는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이 집의 앞 베란다에 방석을 가져다놓고 거기만이 내게 할애된 공간인 듯 앉아서 이 책을 다 읽었다. 며칠 춥던 날씨가 풀려 햇볕이 들어온 베란다는 벽과 바닥이 모두 따뜻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돌아가고 싶어지는 곳이 집이라고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칸트가 말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일을 질색으로 여길 것이다. 칸트는 마음과 몸을 모두 감싸주는 집에 꼭 필요한 것 세 가지를 말해보라고 말한다. 등장인물인 중학생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한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나도 책을 읽다말고 생각해보았다. 집에 꼭 있어야 할 세 가지는 뭘까. 가장 필요한 것을 꼽아보았더니 나는 영락없는 주부였다. 집에는 난방과 요리를 위해 불이 꼭 있어야하고, 가족의 식단을 위해 냉장고가, 그리고 내 몸의 고단함을 덜어 줄 세탁기라고 그 이미지를 머리 위 말주머니에 띄워놓은 뒤에 든 생각이다. 자폐증을 앓는 큰 아들 나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자 엄마는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닷가 마을로 이사를 온다. 뜬금없이 시골 생활을 하게 된 동생 열무는 형에게만 신경을 쓰는 엄마와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사는 이기적인 형에게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이 한적하고 우울한 바닷가 마을에 자신들과 같은 이방인이 또 한사람 보인다. 열무는 늘 같은 시간에 같은 모습으로 산책을 다니는 괴상한 모습의 사람을 칸트라고 이름 짓고 관심을 보인다. 들여다보면 상처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유명건축가였던 칸트는 자신이 너무 바빠서 돌보지 못했던 가족에 대한 자책감에 사로잡혀 외부와 단절하고 자신이 만든 집 속에서만 살아간다. 고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바닷바람과 새들을 벗 삼아 살아가던 칸트에게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나무와 열무 형제의 사랑은 속수무책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나무를 보는 일은 아픔이다. 엄마의 바람이 있다면 자신이 아들보다 더 오래 사는 거였다. 그런데 나무가 건축가였던 칸트에게 마음을 열어보이자 엄마는 희망을 본다. 비룡소에서 벌써 71권 째 펴내고 있는 블루픽션 시리즈를 여러 권 읽었다. 이 책은 “명탐정의 아들”로 제 5회블루픽션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이다. 중학생인 열무와 자폐증을 앓고 있는 나무, 그리고 전직 건축소장 칸트가 나직하게 주고받는 이야기는 철학적이면서도 감동을 준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나무를 통해 진심을 드러내 보이기를 두려워하며 마음까지 화장술로 둘러싸버리는 요즘, 진심만 갖고도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철학자 칸트보다도 더 철학적인 말을 할 줄 아는 열무의 따뜻한 마음씨는 읽는 내내 웃음과 함께 감동을 준다. 벽을 쌓고 살아가는 칸트 씨를 보며 한 번 쌓아버린 벽을 허물어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구나 열무 형제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전에 이웃과 벽을 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몇 번이나 자리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억누른 채 다 읽고 나서야 자리를 정리했다. 해가 창을 비켜 서쪽으로 기운지 한참이다. 소설을 읽어서 마음이 따뜻해진 건지, 햇볕에 몸이 따뜻해져서 마음까지 노근노근 해졌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무가 말한 것처럼 가장 좋은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집이라고 하는 말에는 깊이 공감한다. 청소년들이 읽으면 나보다 더 마음이 따뜻해질 거라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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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었던 집은 이런 집이다. 기와가 얹혀진 자그마한 한옥집, 마당엔 잔디가 심어져 있고, 집 양쪽엔 하얀 꽃을 피우며 주변에 향기를 흩뿌려주는 은목서를 두 그루쯤 심어져 있는 집. 햇볕이 많이 들어오게 창은 넓어야 하고, 하늘거리는 하얀색 레이스 커튼이 달려져 있는 집. 벽 한쪽 면엔 천장까지 닿을 책장이 있어, 책을 찾으려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하는는 곳. 책을 자주 읽기 때문에 푹신한 쇼파가 있었으면 좋겠고, 주방엔 자주 커피를 내려 마실 커피메이커가 있는 집을 상상한다. 물론 그 공간을 함께 사용할 사람이 있어야겠지. 지금 곁에 있는 사람.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공간.
누구나 자신의 집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이렇게 자신만의 꿈꾸는 집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살고 싶은 집, 짓고 싶은 집을 마음 속에 품고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았어도, 어느 순간에 보면 자신의 집을 마음속에 짓고 또 짓고 쌓아갈 것이다. 상상속의 집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꾸미고자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누구나 자신의 집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여기 칸트라 불리우는 두 인물이 있다. 자신이라는 집에 갇혀 사는 '나의 형 칸트'가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지은 집 속에 갇혀 버린 '건축가 칸트'가 있다. 이 둘은 사람과의 소통에 힘겨워하고 자신의 안에 갇혀 사는 인물이다. 열다섯 살의 소년 열무(김치 담그는 그 열무김치라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는 열일곱 살의 형 소나무, 엄마와 함께 서울에서 섬으로 이사 왔다. 바다가 보이는 집이라 해서 그럴듯 해보이지만 휴가때 펜션으로 내놓았던 곳이다. 가까이 가보면 페인트는 벗겨지고 색이 바래 허름해 보이는 곳이다. 서울의 아빠가 있는 집을 떠나 온 곳, 이곳은 예전에 열무 가족이 휴가 때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엄마는 이런 집에 살고 싶다 했다. 하지만 함께 공간을 엮어갈 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걸 계산에 넣었을것 같지는 않다.
매일 같은 시각에 검정색 길다란 코트를 입고 새떼를 끌고 다니며 산책하는 남자가 있다. 어느 누구와도 눈인사를 하지 않고, 혼자서 그렇게 산책을 하는 남자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산책하는 것으로 유명한 철학자 칸트와 비슷하다며 그를 가리켜 칸트라 부른다. 또 한 명의 칸트가 있다.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나야하고 식판에 줄맞춰 반찬을 놓아야지만 밥을 먹는 자신의 규칙안에서 생활하는 칸트 나무가 그다. 나, 열무는 건축가 칸트를 남들처럼 소장님이라고 부르며 그의 상자같은 집, 관 같은 집엘 다닌다. 그의 뒤에는 그의 형 나무가 뒤따른다. 두 칸트는 서로 만났을때 인사법도 독특하다. 눈을 잘 마주치지 않고 자신만의 인사법으로 서로를 맞는다.
다른 이들과 소통에 문제 있었던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무심한듯 소통을 하고 있었다. 관처럼 생긴 곳에서 살아가는 그가 한때 유명한 건축가 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두 명의 칸트와 열무는 칸트의 집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칸트의 집에서 그들은 각자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다. 형 나무는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자기가 수집한 바닷가의 물품들을 서랍장에 보관하고, 소장님은 책상앞의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무심한 듯 책을 읽는다. 이 둘을 관찰하는 열무는 소장님이 열무와 나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의 행동에서 그게 보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귀찮아했던 칸트도 어느새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행동이 하나 있다. 정해진 시간에 칸트의 집에 가서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나타나지 않았을때 허망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나타난 나이 든 칸트, 그가 산책나갔다가 시간에 맞춰오려고 뛰어왔던 숨소리를 보았던 날이다. 말로는 오지 말라고 했으면서 은근히 그들이 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했던 칸트의 행동에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자신만의 틀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소통하는 이야기이다. 나이를 떠나, 그 모든 것을 떠나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혼자만의 시간을 두 아이들의 행동을 보며 그들과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열었던 건축가 칸트와 가장 완벽한 집은 이미 마음속에 지어져 있단다. (10페이지) 라고 이야기하며 집과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어 어느새 마음속에 자신만의 집을 그릴수 있게 된 열무와 나무의 이야기이다. 자신에 대한 미래를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어느새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꿈과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
외로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가는 말했다. 우리 모두는 외로운 존재다. 지나간 과거를 끌어안고 외로움을 썩히느냐와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중한 사람을 알아보는 일, 마음을 열어 누군가와 함께 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었다. 참 따뜻한 책이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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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내가 알고 있는 칸트는 시간을 굉장히 아주 잘 지키는 철학자다. 오죽하면 그가 산책을 나오는걸 보고 사람들이 시간을 맞췄을까?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칸트가 사는집 이야기가 아닌 갑작스럽게 바닷가 마을에 이사를 오게 되어 당혹스러운 열무와 다른 아이들과 많이 다른, 무엇이건 규칙에 맞춰 칸트처럼 시간에 맞춰 행동해야하는 형 나무와 칸트처럼 시간에 맞춰 산책을 하고 알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소장님과 서로의 마음속에 집을 지으며 소통과 공감과 어우러짐을 보여주는 아야기다. 두살이나 많지만 늘 자신과 같은 반 짝궁을 하고 보살펴야햐는 형때문에 불만이 많은 열다섯살 열무는 가만 책을 읽다보면 형을 사랑하는 그 속내가 빤히 보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자신이 하고 싶은것은 꼭 하고야 마는 어린 아이의 정신연령을 가진 형 나무 또한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자폐나 아스퍼거 혹은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이 또한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그런데다 늘 코트를 입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다니지만 새를 몰고 다니는 소장님도 어찌보면 이 아이들과 하나도 다를바가 없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을 귀찮아하는듯 하지만 거부하지 않고 무시하는듯 하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참 개성이 강한 캐릭터다. 게다가 이 소설속에는 사투리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석금동이라는 아이가 등장한다. 형을 보살피느라 형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열무에게 선뜻 손을 내밀고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석금동은 열무에겐 무척 짜증나는 형의 상태를 잘 깨닫지 못한다. 시골 아이들의 순박함인걸까? 축구 이야기와 바닷가에서 고기를 줍는 이야기와 꼬막을 잡는 이야기등 그곳의 삶의 형태를 아주 코믹하게 들려주는 석금동은 열무에게 있어서는 또래 친구와의 소통을 위해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존재다. 어찌 보면 너무 어른스러워지려는 열무에게 지금은 자신의 나이에 맞게 행동하고 말하는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존재랄까? 다 스러져가는 집들이 널려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산속에 보일듯 말듯한 관같은 집에 살며 새를 몰고 다니고 늘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오는 사람이라면 형을 돌보는 일 이외에 할일이 없는 열무에게 있어서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다 형이 사라진 어느날 형이 그 관같은 집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고 그 집으로 찾아가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누군가 죽어 나갔다는 그집, 정말이지 꼭 관처럼 네모나게 생긴 그 집으로의 힘겨운 첫걸음은 앞으로 이 두형제와 그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와 서로가 말없이도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기까지의 세 사람의 이야기는 어느새 감동의 물결이 되어 눈가를 촉촉히 젖게 한다. 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형이 생각이란걸 하게 되고 자신의 생각을 바깥으로 내어 놓는가 하면 사람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대사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가 하면 열무와 소장님과의 대화는 무척이나 진지하다. 개똥철학을 펼치는 소장님에 대해 못마땅한듯 여기지만 어느새 열무 또한 개똥철학을 주워삼기고 있으며 늘 아이들의 이야기를 무시로 듣는듯 하지만 하나도 흘려듣지 않는 그들의 관계는 세상 그 어떤 관계보다 끈끈하고 진지하고 따뜻하다. 하루중 소장님의 집으로 가는 시간을 가장 기다리는 이 두아이들처럼 차갑던 한겨울 코트주머니속에 스리슬쩍 비집고 들어온 아이들의 따뜻한 손을 놓치고 싶지 않은건 소장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픈 과거를 가지고 스스로를 벌주며 살고 있는 소장님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부여해준 두 아이들과 모든것을 나누고 교감하고 싶어 안달이 나게 만든 소장님의 이야기는 명작 동화 [거인의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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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면 덮고 책을 쓰다듬으며 여운을 간직하곤 한다. 연이어 다른 책을 찾기도 하지만 간혹 바로 리뷰를 준비하곤 하는데 이 책은 그 여운을 잊지 않기 위해 바로 느낌을 담는다. 최상희님은 비인기종목인 컬링을 소재로 아이들의 우정을 그린 ‘그냥 컬링’, 왕따 문제를 아이들의 눈으로 보고 아이들이 풀어나가는 과정을 그린 ‘명탐정의 아들’로 만났다. (리뷰: 그냥 즐기는 거야 ‘그냥 컬링’, 순수한 아이들이 그립다 ‘명탐정의 아들’) 이번에 만난 ‘칸트의 집’은 칸트라는 이름을 가진 아니 별명을 가진 한 남자와 두 아이의 만남과 우정 그리고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나 마음 속에 집을 짓는다. 그리고 그 집을 어떻게 꾸밀지 그 집 속에서 어떻게 살지 생각을 한다. 때론 즐겁게 때론 힘들게 생활하지만 그 집 속에 갇히기도 하고 스스로 그 집 속에 숨기도 하고 때론 집 밖을 나와 다른 집을 경험하기도 한다. 자세한 배경은 나오지 않지만 큰아이의 문제로 남편과 별거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시골 바닷가로 이사온 한 엄마가 있다. 얌전하지만 똑똑한 큰아이, 반대로 번잡하고 정신 없는 작은아이. 어떤 자식이든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아이가 없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영재인줄 알았던 큰아이가 자폐의 증세를 가지고 있었고 엄마는 아픈 큰아이를 위해 작은아이를 큰아이의 보호자로 삼아 작은아이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형의 짝으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기억력이 좋은 형. 형의 보호자 노릇도 어른들과 친구들이 형을 바라보는 눈길도 싫은 동생. 칸트는 우리에게 꿈과 환상을 가르쳐 주었다. 이것은 내가 만난 두 명의 칸트에 관한 이야기다. 항상 눈앞에 있어도 마음과 정신은 어디인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곳에 가 있는 형 나무. 그런 형을 바라보는 동생 열무. 그 바닷가 마을에 규칙적으로 산책하는 남자가 있는데 어느 날 엄마가 보더니 ‘칸트 같네' 라고 말하고 그때부터 그 남자를 칸트라고 부른다. 역시나 칸트같은 나무. 우연히 나무가 칸트의 집으로 가게 되고 그때부터 두 아이는 칸트의 집을 드나든다. 그가 싫어하든 개의치 않고. 창문 하나 없이 마치 관처럼 생긴 서랍이 가득한 집. 자신은 쓸모없는 것들을 만들며 사람을 담는 거대한 서랍인 집을 짓는 사람이며 목수님보다 소장님이라 부르라 한다. 형은 그림을 그리고 나는 집 구경도 하고 소장님과 대화를 한다. 형도 나처럼 칸트의 집에 다시 올 구실을 만들고 있었고 칸트는 알면서 모른 척한다. 이기적인 형이 싫고 이렇게 사는 것도 남들이 형을 알게 되는 게 두렵다는 나의 말에 칸트는 두려움을 인정하는 순간 두려움에게 진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며 이기는 게 별 대단한 일도 아니라고 말한다. 건축가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사람이라며 막연한 상상으로 시작해서 손으로 확실히 만질 수 있는 형체를 완성해 내는 거라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줄 알고 나면, 자신에게 필요한 집도 뭔지 알 수 있게 될 거라고 말한다. 엄마 친구 잡지사 기자 윤미 아줌마의 방문으로 알게 된 소장님의 과거를 알게 된다. 건축계 유명인? 그걸로 나는 일을 만는다. 수요일의 강연회에 초대하여 학생들 앞에서 건축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별 반응을 얻지 못하여 칸트는 어쩔 줄 몰라한다. 그러다 일이 더 커지고 바닷가에 조류 박물관을 건립하려는데 칸트의 조언을 구하고 설계를 부탁한다며 마을 사람들이 찾아온다. 집구경 하는 사람들, 경로당을 지어달라는 할머니들.
그러다 알게 된 칸트의 과거로 나는 괴로워하면서도 그의 유명세를 즐기려 한다. 자신의 집에 갇혀있던 나무가 서서히 밖으로 나오려 하고, 엄마는 칸트를 집으로 초대 한다. 조류 박물관 건립과 다른 이유로 칸트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 받는 나. 칸트가 이 책에서 언급한 '일포스티노'처럼 외지인과 시골사람의 따스한 이야기도 느낄 수 있고 상상을 모르던 나무가 서서히 상상하면서 그림을 그리게 되고 나는 그런 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왈칵.. 세 남자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따스하고 잔잔하게 보여준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따스하고 웃음이 가득한 사람이고 싶고, 그런 집을 만들고 싶다. 작가의 말. 내게 소설을 쓴다는 건 건축이나 탐험과 거의 비슷한 일이다. 바로 세상에 말을 건네는 일이다. 대화에 몹시 서툰 내가 힘겹게 타인에게 건네는 이야기. 기억하자. 웬일인지. 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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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이야기는 아스퍼거 증후군(자폐증의 일종)과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17살 소년 '소나무'의 가족이 주변 사람의 시선 때문에 한적한 바닷가 마을로 이사를 오면서 시작한다. 뭐든지 한 가지에 빠지면 집착이 강한 소년 나무는 바닷가가 있는 마을로 이사를 오면서 쉽게 볼 수 있는 새에 집착을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 나무는 새를 쫓다 관처럼 생긴 미스터리한 건축가 칸트의 집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형의 뒤를 쫓아가던 열무도 기묘한 칸트의 집을 발견하게 된다. 나무는 미스터리한 칸트의 집에 호기심을 보이며 자주 방문을 하게 되었고 그 후로 나무의 심경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건축가이자 집주인 칸트의 영향으로 진정한 집이 무엇이며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를 생각해보고, 자신이 집을 직접 그려보고 지어보면서 닫혀 있던 나무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게 된다.
평소 자신이 지은 집 안에서만 갇혀 지내던 건축가 칸트는 별거 중인 아버지를 대신해서 두 아이를 위해 학교에서 강연도 하고, 나무와 열무 형제의 엄마에게 식사 초대를 받아 '이웃 간의 따뜻한 밥 한 끼'를 같이 하면서 아이들을 향해, 그리고 세상을 향해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조금 연다. 어느 날 우연히 나무와 열무는 관처럼 생긴 미스터리한 '칸트의 집'이 대한민국 건축대상, 서울건축대상, 그린 건축상 등 다수의 상을 받은 엄청난(?) 집이라는 사실을 엄마 친구를 통해 알게 된다. 소년 열무는 칸트와의 대화를 통해 햇살로 가득 차고 무지갯빛이 영롱하게 빛나던 칸트의 집이 지금은 왜 이렇게 관처럼 생긴 집이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집 안에서만 지내게 되었는지 듣게 되는데….
이 책은 두 명의 칸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람들과 소통을 힘들어하고 하나에 몰입하면 그것에 집착하는 아스퍼거 증후군과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소년 나무와 늘 같은 시간 바닷가에 나와 새들을 몰고 다니며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자신이 지은 집 속에 갇혀 사는 수상한 건축가 칸트. 이 둘의 이야기를 나무의 동생인 15살 소년 열무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건축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처음 <칸트의 집>을 읽으려고 했을 때, 유명한 독일 철학자 칸트의 이름까지 빌린 것으로 보아 심오하고 사상이 담긴 건축이야기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다 보니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왜 필요한지 알게 해주는 가슴이 따뜻해지고 여운이 깊게 남는 이야기였다. 마지막에 건축가 칸트가 자신이 갇혀있던 공간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보면 소통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애가 있는 형을 귀찮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눈을 떼기가 불안한 형을 챙기는 열무의 마음은 우리네 가족들이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통이란 것도 알게 되었지만 건축하는 나는 마음으로 집을 짓는 법을 다시 배웠고, 집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편견을 주지 않기 위해 책 속에서 한 번도 나무의 병명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읽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은 온다. 느낌 아니까. 소설책을 다 읽고 꽤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마음이 훈훈한 것을 보면 꽤 괜찮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책이었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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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 세상과의 소통을 담은 이야기>
10월의 끝무렵 모든 것이 붉은 가을 빛으로 물드는 즈음, 올해 읽은 최고의 책 가운데 한 권으로 꼽고 싶은 책을 만났다. 예상하지 못하고 만나게 된 책 가운에 이런 반짝이는 책을 만나면 얼마나 행복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모른다.
사실 제목은 그리 끌리지 않았다. 책 제목에 칸트가 나오다니...철학자의 이름을 거론할만큼 딱딱하고 건조한 내용이 아닌가 하면서도 제목에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화사한 표지 그림과 색채에 뭔가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다.
책장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책 속의 칸트가 누구인지 금방 감지하게 된다. 얼마전 많은 사람들의 호응 속에 따뜻한 감성을 불러일으킨 착한 의학드라마가 생각났다. 세상에 비해 너무도 순수하고 따뜻한 어린아이같은 시선을 가진 아스퍼거 증후군의 의사가 주인공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폐증을 지닌 인물이 주인공이었고 우리는 기존 편견에서 조금 벗어나 그들을 조금 이해하고 바라보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는 두 명의 칸트가 존재한다. 세상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특정 병명을 이야기하기보다 이렇게 표현하는 작가의 시선이 정말 마음에 든다)17살의 형 '나무', 그리고 나무가 만나게 되는 노령의 숨은 건축가 칸트이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나무의 동생 '열무'
이들이 엮어 내는 이야기는 특이하다. 시간관념에 투철한 산책광이었던 칸트처럼 건축가 칸트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고 산책을 즐기는 묘한 인물이다. 어린 칸트인 나무 역시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만 세상과 소통하고 그 규칙이 어긋나면 견디지 못해한다. 이 둘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산책자 칸트에 관심을 보이고 관처럼 보이는 그의 집을 두 형제가 방문했을때, 건축가 칸트는 달갑지 않았을게다. 그러나 자신의 세계에 갇힌 어린 나무를 보고 그는 집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하나씩 가르쳐준다. 집을 지을때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는 법을 하나씩 배우는 것은 나 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주위에 대한 관심과 소통의 시작이라는 것을 건축가 칸트는 알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묘미는 이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아닌가 싶다. 일상적인 대화라기보다는 철학적, 아니 철학적이라기보다 상대의 마음이 어떨까를 섬세하게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읽는 독자 역시 상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세상과 다시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만든다.
세상과 등지고 자신에게 벌을 주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축가 칸트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런 칸트에게 치유의 손길을 내주는 형제와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칸트들, 그리고 세상의 순리처럼 이어지는 일들에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게 된다. 이들의 대화에 빙그레 미소짓고 음유시인같은 대화에 눈물이 흐르게도 만드는 이야기였다. 칸트의 집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결국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닫힌 세계에서 또 한번 벗어나 세로운 세상을 만나게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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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라는 집에 갇힌 아이를 알고 있다. 『칸트의 집』의 나무처럼. 갇힌 그 아이 때문에 자신의 집을 짓지 못한 아이를 알고 있다. 나무의 동생 열무처럼. 『칸트의 집』은 『그냥, 컬링』과 『명탐정의 아들』로 만난 최상희의 소설이다. 이번에도 역시 어린 청춘들이 주인공이다. 몸만 어른인 나는 두 권의 전작 속 아이들, (누군가의 시선에선)별 볼 일 없는 청춘들을 만나며 심심한 위로를 받곤 했다. 이 소설에 관심을 둔 건 지금의 내가 심심한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고, 집이 들어간 책 제목에 반응하는 나의 동공 때문이고, 책 소개에서 만난 나무와 열무가 내가 아는 아이들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열무’에게 ‘나무’의 진심을 잘 전달할 방법을 책 속에서 찾고 싶었다. 지구는 태양을 돌지만 ‘열무’의 지구는 ‘나무’를 돌았다. ‘열무’에게 그것은 상처였다. 책 속에서 찾고 싶었다. ‘열무’에게 해줄 말을. ‘열무’는 자신이 ‘나무’만큼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무’는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어린 ‘열무’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아마도 ‘나무’는 ‘열무’에게 진심으로 미안했을 것이다. 비록 표현엔 서툴지만. 열무가 보기엔 규칙을 잘 지키는 형 나무도,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산책하는 건축가도 모두 칸트였다. 자신이라는 집에 갇힌 나무가 건축가 칸트를, 자신이 집은 집에 갇힌 건축가 칸트가 나무를 알아본 것은 그들이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과 단절했다는 점에서 열무 역시 다르지 않았다. 열무는 나무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나무의 세상 속에 살았다. 열무는 건축가 칸트에게 물었다. 어떤 집이 좋은 집이냐고. 그는 가장 완벽한 집은 이미 마음속에 지어져 있다(10쪽)고 했다. 나이가 들면 내가 지은 집에서 살고 싶었다. 그 집은 멋진 외관과 편리한 시설들을 갖춘 집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당이 넓은 집에 살고 싶었다.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그래서 아이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 구효서의 『저녁이 아름다운 집』을 읽으며 저녁이 아름다운 집이야말로 좋은 집이 아닐까 싶었다. 저녁이 아름다운 집은 혼자 힘으론 절대 만들어지지 않기에. “T자는 말이다. 누구나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하거든.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 수직과 수평을 지녀야 하는 거지.”(101쪽)
나무가 건축가 칸트를, 혹은 건축가 칸트가 나무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열무가 나무와 형제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마음의)집은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칸트의 집』을 읽으며 삶이란 사람이 사람을 만나 人처럼 지탱하면 살아가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피할 수 없으니까. 공기도 마찬가지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단다.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세상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어떤 일이든 두려움은 함께 온단다. 기쁜 순간에조차. 네 엄마만 해도 너를 가졌을 때 몹시 기뻤겠지만 한편 두려움을 느꼈을 거야. 넌 느끼지 못했니? 네 엄마와 연결된 탯줄에 전달되는 두려움 말이다.”(126쪽) ‘나무’와 ‘열무’ 때문에 읽었는데 ‘나무’와 ‘열무’, 건축가 칸트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했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담을 쌓고 살아가는 나를, 집을 짓기는커녕 자신에게 갇힌 나를 발견했다. 삶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이 세상은 서로 지탱하며 살아가는 거라는 진실을 다시금 만난 책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2013년의 시월이 가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들에 빠져 나태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상념에 빠질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집을 지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고 싶다면. ‘열무’가 ‘나무’의 진심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려면 ‘열무’는 좀 더 자라야 할 것이다. 어린 ‘열무’가 이 책을 읽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듯하니 좀 자라면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나무’의 집에 갇히지 않고 ‘나무’의 집 옆에서 자신의 집을 짓고 살아가는 ‘열무’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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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집!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미스터리한 건축가 아저씨 칸트.
그를 만나면서 그들은 진정한 집이 무엇인지. 어떤집에서 살고싶은지를 이야기 하며 서로 교감하고 나무의 닫힌 문이 조금을 열리게 된다. 어느날 학교에서 강연을 하게 된 칸트는 집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세가지를 말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집을 그려보라고도 하고,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하기도 했다. 의식주의 하나로써의 건축물인 집도 있지만, 내 자아와 꿈의 공간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네가 어떤사람인 줄 알고 나면, 네게 필요한 집도 뭔지 알 수 있게 될 거다" 예전보다 많은것이 풍족한 지금,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풍족함 보다는 부족함이 많은 것 같다. 백수의 하루라는 꽁트였는데 하루종일 SNS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올리며 허세를 부리는 그는 결국 백수였다는.. 어쩌면 미스테리 건축가 칸트 소장님도...
외딴섬에서 미스테리 건축가 칸트 소장님과의 낯설고 이상스런 만남을 통해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의 교감을 들여다보며 미소짓게 만드는 가슴 따듯한 소설을 읽고 나니 깊어만 가는 쌀쌀한 가을 밤 내 마음을 녹여주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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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중학교때 학교로 오셔서 작가와의 만남을 가진적이 있다 지금 아이의 추천으로 칸트의집을 읽고 그 작가님이라면 이런책을 쓰셨을것 꺼야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책의 내용이야 줄거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유치원교사시절 자폐아친구를 살편던 나에겐 자신만의 세상이라는 주제가 아주 많이 와닿는다. 칸트도 나무도 자폐아친구도 고2가된 아들도 자신만의세상을 원하는것뿐 , 세상을 나를 싫어하는건 아니라 믿는다 나도 나만의 세상이 있으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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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집] 블루픽션상 수상작가의 꿈과 환상, 그리고 건축 이야기
-가장 완벽한 집은 이미 마음속에 지어져 있단다. -집 안에 가구만 들여놓을 셈이냐? 꿈과 환상을 담아야지. -집이 즐겁다면 좋은 거 아니냐? (책에서)
꿈과 환상을 담은 집은 어떤 집일까. 가우디의 집일까, 디즈니랜드의 집일까. 그도 아니면...... 집 안에 꿈과 환상이 가득하다니, 정말 멋진 집인데…….
17세 소년 나무는 야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자폐증을 앓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누구에게도 내보인 적이 없고 대화를 길게 해 본적도 없다. 마음에 들 때만 간단하게 묻거나 질문한다. 재미있는 건 묘한 상황에 존댓말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수집광이다. 15세 소년 열무는 형과 같은 학년을 다니며 형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자신의 세계 속에서만 살아가는 형 때문에 소통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사춘기의 고민, 꿈, 희망에 대해서…….
열무 가족은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바닷가 외딴 마을로 이사 온다. 엄마와 아빠의 추억이 서린 바닷가 펜션을 빌린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늘 바닷가를 산책하는 백발의 건축가를 만나게 된다.
시간을 정해 산책하는 칸트. 석금동을 통해 칸트와 인사를 나누게 되고...... 엄마가 만든 카스테라로 첫 인사를 간 날, 무뚝뚝한 칸트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열무는 괴짜 건축가를 산책광인 철학자의 이름을 따서 칸트라 부르기로 한다. 미스터리한 산책가이자 건축가 칸트의 집은 노아의 방주를 닮았다기 보다는 거무스레한 관에 가까운 특이한 집이다. 바람도 없고 빛도 없는 음침한 칸트의 집은 세콤장치까지 되어있는데......
창문도 없는 칸트의 집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세 사람은 창문도 없는 관처럼 생긴 집에서 칸트의 개똥철학을 듣기도 하고 꿈과 환상에 대한 대화를 나눠간다. 그리고 수십 채의 집을 짓게 된다. 마음속의 집을…….
집을 지으려면 우선 도면을 그려야 하는데 도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수직과 수평이란다. 아름다운 선을 그을 수 있다면 집의 반은 완성된 거지. (책에서)
-네 형은 중요한 걸 터득한 것 같구나. -네 형은 서랍에 제대로 된 걸 채워 놨더구나. -최소한 네 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 놨는데, 사람들은 제 집을 진짜 똥으로 가득 채워 놓고도 모른단다. 그리고 더 많은 똥을 채우기 위해 똥 같은 짓을 하지. (책에서)
칸트를 만나기 전에 나는 꿈을 꾸지 않았고 형은 환상을 품은 적이 없었는데, 칸트를 만나게 되면서 꿈과 환상을 품는 법을 배워 간다. 물론 생각하는 법도.
건축가 칸트의 개똥철학 속에서 희망과 꿈을 키워가는 나무와 열무의 이야기에는 철학자 칸트가 있다.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는 순수이성을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본능적으로 구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는데...... 선한 것을 실천해 나가는 것을 실천이성이라고 했는데......
이 책에는 비판철학을 통해 서양근대철학을 종합한 칸트의 생각이 숨어 있다.
자신의 집에 갇혀 사는 나의 형 칸트, 자신이 지은 집에 갇혀 사는 백발의 칸트. 소장님 칸트와 나의 형 칸트, 열무의 만남에는 다분히 철학적이면서도 꿈과 환상의 희망적인 대화가 있다. 하지만 그 속에도 반전이 있다. 슬프고도 따뜻한 반전이. 따뜻하고 소중한 것을 채워 놓는 집, 꿈과 환상이 담긴 집, 그런 행복한 집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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