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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타인의 사랑에 대해서 말 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아름답고 위대한 열정이며, 바로 여기부터는 한낱 감상이며 천박한 욕망이라고 말이다. 진실하고 심오하며 열정에 찬 사랑의 가능성을 조롱, 멸시하며 불륜, 천한 감상이라 치부하는 태도로는 이 소설을 읽는 데 요구되는 ‘우리’라는 창조, 사랑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점점 인간 서로의 신뢰가 부서져 나가고, 사랑이란 언어는 단지 편의성의 문제로 전락하는 이즈음의 세계에서 예순 일곱 살 프란체스카 존슨이 쓰다듬는 추억의 손길처럼, 이 작품은 어떤 순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며 오랜 열정을 되살려보려 애쓰게 하기도 했다.
모든 세월과 인생 동안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던 광활한 초원을 날 던 두 마리 새, 오하이오의 작은 농촌 마을의 마흔 다섯 살 나폴리 출신의 여인 프란체스카 존슨, 《내셔널 지오그래픽》誌의 사진작가, 쉰 두 살의 마지막 카우보이 로버트 킨케이드는 달리는 될 수 없었던 듯, 마치 피할 수 없었던 일처럼 만나게 된다. 1965년 8월 16일 월요일 이른 아침 킨케이드는 아이오와 주 매디슨 카운티에 있는 지붕 덮인 일곱 개 다리의 사진 촬영을 위해 다리들을 답사해 나간다. 여섯 개의 다리는 찾았으나 일곱 번 째 ‘로즈먼 다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자갈길을 맴돌다 ‘리처드 존슨, RR2’라고 쓰여 있는 길 끝 우편함을 발견하고 길을 따라 올라가 마침내 현관문 앞에 앉아있는 여자를 바라본다. 자세히 그녀를 바라보고, 다시 아름다워질 질 수 있는 아름다운 여자임을, 다루기 힘든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 최초의 우발적이고 우연한 마주침은 프란체스카의 단 몇 초의 인상과 자기감정의 변화에 대한 자각으로 다시 묘사되는데, “원하신다면 제가 직접 가르쳐 드려도 좋은데요.”라고 말하는 자신에게 놀라며, 바로 그 지점이 그녀를 영원히 변하게 하는 일이 시작될 것임을 느낀다.
우리는 얼굴을 채 바라보기도 전에, 먼발치에서 다가오는 사람의 전체 이미지를 분석하기도 전에 타인에 대한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결정한다. 더구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이끌림의 감정은 숨어있던 또 다른 자아의 소리에 압도되고 껍질을 스스로 벗어나 배워서 알게 된 모든 것에 배치되는 마법 같은 욕망을 자극한다. 살랑거리며 소리를 내는 또 하나의 숨어있던 마음이 깨어난다, “나는 개암나무 숲에 갔었네. 내 머릿속에 불이 났기에...” ![]()
프란체스카는 그렇게 낯선 남자의 낡아빠진 시보레 픽업트럭 해리에 올라타고 로즈먼 다리를 안내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 함께 음식을 만들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행크 스노우의 노래와 푸른빛의 저녁을 바라본다. 함께하고 싶은 갈망과 이를 부인하는 어려운 내면의 싸움 속에서 다음날의 촬영 작업을 위해 킨케이드는 떠나고 프란체스카는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여자는 차를 타고 밤길을 달려 킨케이드가 다시 찾게 될 로즈먼 다리에 쪽지를 붙이고 돌아온다. 아마 소문이 온 마을을 떠도는데 순식간이면 될 곳에서 위험을 무릅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그녀는 이미 어떤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리라.
“‘흰 나방들이 날개짓할 때’ 다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으시면, 오늘 밤 일이 끝난 후 들르세요. 언제라도 좋아요.”
자신의 마음을 알리고 싶은 여자의 마음이 온통 드러난 이 쪽지의 내용보다 앞서 두 사람은 킨케이드의 오후 촬영 작업을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곤 늦은 밤 돌아와 낯선 남자에게 자신의 침실방 샤워실을 내어준다. 그리곤 남자의 목욕이 끝 난 후 여자는 몸을 씻어내고 바람의 노래 향수를 뿌리며 이 밤을 위해 낮에 나가 새롭게 마련한 분홍색 원피스와 이보다 엷은 핑크 색조의 립스틱을 바른다. 두 사람은 좁은 부엌에서 서로 맞잡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서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마침 라디오에서는 느리게 편곡된 〈Les Feuilles mortes(枯葉)〉이 흐르고, 서로의 내음과 휘감기는 다리와 맞닿은 배를 느끼며 성큼 다가서는 서로의 존재에 밀착된다. 그녀는 여자가 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고향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둘 다 스스로를 잃고 ‘우리‘라고 새로 만들어낸 다른 존재 안에 서로 얽혀들어 하나로만 존재하는 그 무엇인가가 된다.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어찌할 수 없이 가장 깊고, 가장 심오하게.“
아이 둘과 남편 리처드는 일리노이의 농산물 축제를 위해 일주일의 여행을 떠났다. 그녀는 킨케이드를 따라 나서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킨케이드는 프란체스카와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하지만, 여자는 책임감이라는 현실로부터 자신을 찢어내 버릴 수 없음을 안다. 길과 책임감과 죄의식.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여러 차례 오는 것이 아님을” 안다. 두 사람은 목요일 밤 다시 오지 않을 서로의 발견에 감동하며 다시 사랑을 나누고, 흐르는 눈물로 햇빛에 일그러진 서로의 이미지를 뒤로 한 채 이별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예순 일곱 살이 된 프란체스카가 남편 리처드의 죽음 이후 8년이 지난 22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의 추억으로 펼쳐지는 격정적 일기이다. 나흘의 사랑, 그 감정이 얼마나 강한 것이었는지, 그녀는 생생하게, 또렷하게 기억을 떠올린다. 남편의 사후 매년 8월의 그날이 되면 킨케이드가 보내 왔던 사랑에 빠진 여인의 얼굴을 한 자신의 사진과 로즈먼 다리를 찍은 사진 두 장, 그리고 킨케이드의 편지와 글, 그가 발표한 《내셔널 지오그래픽》誌의 사진들을 꺼내 어루만지며 추억 속 이미지들을 현실로 소환한다. 그녀가 유일하게 느끼며 살고 싶어하는 현실, 짓눌리고 짓눌려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을 존재를 버티게 해 주었던 생존의 문제였던 사랑의 기억. “고대의 탑 주변을... 나는 천년 동안 돌고 있네.”
두 사람은 1965년 8월의 그 이별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서로의 간절한 갈망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떠도는 두 점의 먼지처럼 서로에게 빛을 던지고 나흘간의 사랑으로 하나의 존재가 되었지만 두 사람은 “함께 보낼 수 없는 시간의 통곡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이 우주에 단 하나 뿐인 사랑의 실체라는 가능성을 남기고 이울어져 갔다. 1982년 프란체스카는 킨케이드의 변호인을 통해 그의 죽음과 유언에 따른 유품을 전달 받으며, 그의 유해가 로즈먼 다리에 뿌려졌음을 알게 된다. 프란체스카는 1989년 1월 예순아홉 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두 자식에게 자신의 재를 로즈먼 다리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그대로 실행되었다. ![]() 실화 소설이다. 나는 오래되어 잊혀진 노래 〈고엽(枯葉)〉을 찾아 몇 차례 귀를 기울이며 일체화로 얽혀드는 그 관능과 열정의 감각에 공감해보려 했지만 역시 그것은 그들만의 배경이었던 모양이다. “구전(口傳)되는 어느 부족의 역사처럼 밀려드는 추억 속에서 해마다 빈틈없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프란체스카라는 여인의 절실하게 현재화된 사랑의 이야기와, 함께 할 수 없었음에도 그녀라는 존재의 발견 사실에 감사하며 깊고, 완벽하게 언제나 사랑하고 있음을 토로하는 킨케이드의 편지 글에 빠져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이 작품을 수차례 반복하여 읽었다.
이 둘의 만남처럼 아마 광대한 이 우주에서 세포 속속들이 자석같은 힘이 작용하는 존재가 그 어디엔가 있을 터이다. 남녀의 끌어당기는 힘, 아마 나는 이 힘의 무한한 아름다움에서 빠져나오기 싫었던 모양이다. W.B. 예이츠의 시집을 다시 주문하고, 호그백 다리, 시더 다리, 로즈먼 다리 등 두 사람의 짧은 여정에 등장했던 매디슨 카운티의 지붕 덮인 다리들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문화에 의해 적절하다고 일컬어지는, 문명인의 엄격한 규칙에 배치되는 욕망이라고 누군가 손가락질할 수 있으리라. 나는 그러한 폄하의 언어들이 얼마나 오만하고 편협한 것인지를 아는 나이가 되었다. 조금은 더 열려있고 따뜻한 마음으로 이 신비한 사랑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면 아마 그 고귀하고 우아하며 위대한 감정들과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 마음이 쓸쓸해질 때면 가끔 이 책을 꺼내 읽게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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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뮤지컬로도 제작된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를 읽었습니다. 1992년도에 발표된 소설이니 거의 30년이 되어가는 러브스토리네요. 작년에 영화로 먼저 접했었는데요, 사랑이야기라는 것 말고는 어떤 내용인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없이 단지 유명하길래 한번 감상해본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첫느낌은 '뭐야, 불륜이야기네?' 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되었든지간에 어차피 불륜아니냐는 생각이었어요. 오히려 불륜을 아름답게 묘사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니 약간의 찝찝함과 의아함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의 장면들이, 어떤 순간들이 왜인지 모르게 계속 머릿속에 남아 떠나지 않더라구요.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던 부엌의 이미지, 차에서 내려 비를 맞으며 서있던 로버트의 모습 같은 장면들이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불륜이야기인데, 감성적인 부분에서 저에게 전달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한 번 더 줘보기로 했습니다. 원작을 읽으면 뭔가 다른 걸 발견할 수도 있을까 싶어서 책을 읽어보기로 했어요.
책은, 기대했던 이상이었습니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감정들과 생각들을 더 자세히 더 또렷하게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제일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 부분인데요. 로버트가 프란체스카를 그리워하며 혼자 지내는 동안 새로 사귄 재즈 음악가와 나누었던 대화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해 털어놓으면서 눈물을 흘리던 로버트를 묘사한 장면에서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정말 사랑했구나, 한순간의 육체적인 끌림이 아니라 정말 사랑했구나, 일생에 남아있는 모든 시간동안 계속 사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다시 한번 더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못했는데 말이에요.
"여자의 성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고, 어디서 일어난 일인지도 밝히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 로버트 킨케이드란 사람이 그 여자에 대해 말할 때는 완전히 시였다오. 그녀는 틀림없이 특별한, 믿을 수 없는 여인이었을 거요. 그는 이야기를 하면서 울었소. 눈물을 왕창 쏟았지. 노인을 울게 하는, 색소폰을 연주하게 하는, 그런 울음이었소." - p.204
프란체스카 역시 평생을 로버트를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지만 평생 그 사랑을 간직하고 추억을 되새기고 잡지를 통해 계속 그 사람을 지켜보면서 살았어요. 마음 속에 그런 열정을 품고서도 이전과 똑같이 지루한 일상을 계속 살아나가는 프란체스카의 기분은 과연 어땠을까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당장이라도 그 사람을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을 몇번이고 다잡았을까요? 아주 긴 시간을 그리 살고 남편이 먼저 죽은 뒤에야, 로버트를 다시 만나기 위해 이리저리 연락을 돌려보았고 결국 그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단지 며칠동안의 만남과 사랑이 그렇게 사람의 평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오지 않을, 단 한 번만 오는 확실한 감정'을 느끼면 그렇게 되는 건가봐요.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단 며칠로 끝났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절절했겠지요.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고 하던가요? 장애물이 있는 사랑이기에 더욱 가슴아프고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와 함께 떠났다면 사랑이 일상에 침범당했을테고 그랬다면 그런 열렬한 사랑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열렬하진 않아도 여생을 둘이서 행복하고 즐겁게 보냈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남겨두고 온 본래 남편과 아이들 생각에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수도 있지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상대방의 선택에 대한 존중으로 성숙한 선택을 했지만, 그런 선택이 오히려 평생동안 서로에 대한 열정적인 마음을 간직하도록 한 것 같아요.
게다가 조금만 더 성숙하게 행동하자면, 정말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자 했다면, 처음부터 상대방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거나 밤늦은 시간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로버트야 아내도 자식도 없는 처지지만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자식이 있는 입장이잖아요. 함께 떠나지도 않을 거면서, 가정을 깰 생각도 계속해서 몰래 만날 생각도 없으면서 집으로 초대해 사랑을 그렇게 크게 키워버리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고 상대방에게도 해선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평생 농장일을 하며 나름대로 배우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해주었던 남편을 생각해보면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또한 부모가 모두 죽은 뒤에 어머니가 사실은 마음 속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자식의 마음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소설과 영화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 제가 그 입장에 처한다면 충격은 물론 배신감마저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좀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음에도 가정을 깨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조금은 들지도 모르겠지만, 평생 헌신했던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낄 것 같습니다. 죽은 뒤 혼자 덩그러니 자리잡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곁을 거부하고 다른 남자와 함께 다리 근처에 뿌려진 어머니, 둘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아프겠지요.
이렇듯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주인공 둘을 비난하거나 비판할 거리는 많지만, 심하게 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게 이상합니다. 오히려 주인공들을 생각하면 또 그쪽 나름대로 짠한 마음이 들어요. 마지막 카우보이와 시골 농부의 아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만나 어떻게 사랑했으며 그 뒤로 또 어떻게 살아갔는지 그 이야기에 푹 젖어 들다보면 무작정 힐난하기는 너무한 것 같습니다.
로버트 킨케이드라는 캐릭터는 또 얼마나 매력 넘치게요. 전처가 결국 떠나갔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듯 실제로 그런 사람과 결혼해서 살기에는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인상깊습니다. 소문이 쉽게 퍼지는 작은 마을에서 상대방이 입방아에 오르내릴까 먼저 신경 써주었던 것과 함께 떠나자고 더 강하게 요구할 수도 있고 원래의 가정에 들이닥쳐 깽판을 놓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묵묵히 떠났던 것에서 그런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또 그의 영혼이 세상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방식, 프란체스카로 하여금 자신이 여인임을 느끼게 해주는 사랑의 언어와 행동 등도 참 멋졌습니다.
대부분의 로맨스처럼 10대나 20대의 풋풋한 사랑이 아니어도, 이미 결혼을 했거나 한 적이 있는 중년의 성숙한 사랑도 아름답고 순수하며 열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었습니다. 원래 주인공 입장에 감정 이입되기 마련이기도 하고, 옳거나 바른 행동인가의 관점으로 보자면 논쟁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요. 묘사되는 풍경이나 이미지들이 참 예뻐서 앞으로도 문득문득 소설이나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오래도록 읽혀지고 재생산되는 이야기에는 역시 사람들을 매혹하는 어떤 것이 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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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종이책으로 읽었던 책인데 ebook으로 나온것 보고 구매하게 되었어요. 누구에게든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사랑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그 기회를 자신의 선택으로 이어나갈지 다른 소중한 것을 선택할지를 결정해야하는 순간이 올 수 있겠죠. 그 때 나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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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시공사에서 출간된 로버트 제임스 윌러 작가님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리뷰입니다. 이 책.. 아주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정준하가 추천했던 책인데요. 그때 당시에 그 회차가 되게 재밌어서 책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n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 책을 사서 읽어보네요 ㅎㅎ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불륜이어도 아름다우면 괜찮다?ㅋㅋㅋ가 생각이 납니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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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_150쪽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드라마에 딱 이 부분이 나왔다. 바로 검색했더니 그 유명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였어. 주문하고 책을 받아보니 생각보다 얇았다. 사진작가인 로버트 킨케이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의뢰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찍으러 아이오와의 시골 마을로 향한다. 다리를 물어보기 위해 우연히 들어선 집에는 프란체스카가 있었다. 첫눈에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느끼게 된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는 나흘간의 짧지만 영원히 간직하게 될 시간을 보낸다.
로버트는 이 세상이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되어서 마법을 믿지 않게 되었다고 믿었지. 나는 내가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너무 이성적이 아니었는지, 돌이켜보곤 한단다. _191쪽 이 얇은 책이 왜 아직도 많이 읽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킨케이드의 사진처럼 세밀하고 아름다운 풍경 묘사, 섬세한 감정선과 문학적으로 느껴지는 그들의 대화에 푹 빠졌다. 무엇보다도 통속적인 소재인데 너무나 감동적이다. 이혼 후 혼자가 된 킨케이드와는 달리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였던 프란체스카, 어떻게 그들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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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뮤지컬을 보고 흠뻑 빠진 나는 원작을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200페이지 정도 안팎이라 분량은 매우 짧은데 그런데도 읽기가 힘들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너무 구려서였다. 문학적 완성도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유희적 측면도 정말 모르겠다. 로버트 킨케이드라는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는 이 남자 작가의 환상을 너무나 투영한 듯한 느낌이 들어 코웃음이 나기도 났다. ㅋㅋㅋㅋㅋ 문명의 이기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삼으며 사는 아웃사이더 남자처럼 그려놨는데 내 머릿 속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꼬장꼬장한 모습이 떠오르면서 너무나 꼰대같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