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서울내기인 저자가 부산에 반해서 부산에 대해 쓴 부산애정고백록이다. 애정을 갖고 쓴 문장은 편하게 읽힌다. 책에 나온 수많은 사진과 그림들, 자료를 본 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에 만족한다. 부산의 옛 모습과 오늘의 모습을 잘 버무려놓은 것은 저자가 부산박물관 학예사로 근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부산이 넓다고 한다. 땅이 넓은 것이 아니라 부산의 품이 넓다는 말이다. 조선시대엔 초량동에 왜관을 만들어 일본 사신을 머물게 했을 뿐 아니라 일본인의 거류지로도 내어주었다.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이 모여들어 북적거렸고, 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들어오는 외국인을 마중하느라 부산항은 늘 복잡했다. 베트남 전쟁 때 군인들이 생사를 장담 못한 채 떠난 곳도 부산항이다. 이렇게 사람과 물류의 흐름을 막지 않는 곳이 부산이기 때문에 저자는 부산을 품이 넓은 도시라고 했다.
저자는 부산을 향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놓았다. 부산의 정체성을 뭐라고 할 수 있을지, 하필 영도다리에서 사람들이 왜 몸을 던지는지, 부산의 명물 밀면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이런 질문을 통해 부산의 역사와 오늘을 알려주는 이 책은 학술적 딱딱함 대신 부드러움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조용필의 가수 생활을 들여다보며 부산의 정체성을 밝히고, 아직까지도 타 지역에 비해 점집이 많이 남은 영도다리를 탐구하면서 부산 사람들의 불안과 기대를 들여다보고 있다.
부산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은 우암동 일대다. 유엔묘지가 있고, 제2부두가 있으며 골목 끝에 동항성당이 있는 우암동에는 부산의 명물인 밀면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피난민 수용소가 있던 우암동에 거처를 잡았던 이북 사람중에 고향동네 이름을 붙여 식당을 연 이가 있었다. 고향에서도 함흥냉면집을 크게 했던 주인이 남쪽으로 피난 내려와 다시 냉면집을 낸 것이다. 하지만 경상도 사람들은 질긴 냉면을 싫어했다고 한다. 성질이 급한 경상도 사람들은 음식이 빨리 목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답답해했는데 냉면은 오래 씹어야하는 음식이니 장사가 안 된 것이다. 이때 주인이 궁리 끝에 밀가루와 전분을 섞은 국수를 만들어 냉면 육수를 부어 손님상에 낸 것이 밀면이라고 한다. 밀로 만든 냉면이라는 거였다. 밀면의 부드러운 식감은 경상도 사람들과 잘 맞았고 멀리서도 찾아올 만큼 유명세를 탔다. 그 원조집이 지금도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놀랍다. 현재 주인은 3대로 그 집안 며느리들이다. 밀면이 탄생한 비화를 소개하면서 북한의 냉면과 남쪽의 국수 이야기까지 듣다보면 밀면은 한국전쟁이 만든 서러운 맛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암동 내호 식당에 가서 밀면 한 그릇 배 부르게 먹은 뒤 그 동네 사람처럼 천천히 골목을 산책하고 싶다.
부산하면 야경을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한 야경이 실은 산꼭대기를 향해 이어지던 집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낯설음이란. 저자 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바다가 있는 부산을 좋아한다. 부산에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늘 부산이 그리운 건 그곳 어디가에 놓고온 청춘의 시간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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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자주 듣던 이야기가 있었다. 영도 사람은 영도 밖을 나가면, 망한다고. 고갈산 할매가 시샘해서 망하게 한다고. 늘 사연이 궁금했는데, 글항아리에서 나온 유승훈 저자의 『부산은 넓다』를 읽고 궁금증이 많이 풀렸다. 근현대 영도 사람을 겁줬던 고갈산 할매가 실은 후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설화라고. 그밖에도, 부산 사람도 모르는 민속학적, 역사적 이야기로 풍성하다. 알면, 더 많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