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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사망 후 그를 기념하기 위해 레닌그라드로 불리던 곳은 1991년 옛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되찾았다. 여전히 러시아 곳곳에 레닌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는 하지만, 러시아를 제외한 대다수의 국가에서 그의 동상은 오래 전 철거됐다. 비교적 최근에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와의 관계 청산을 부르짖는 이들에 의해 레닌 동상이 철저히 파괴되기도 했다. 자신의 동상이 곳곳에 세워지고,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 이토록 푸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레닌은 아마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조국 러시아는 성공적으로 공산주의 혁명을 완수해 가고 있다는 강한 믿음 속에서 아마도 그는 숨을 거뒀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역사는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스탈린의 폭압을 견디어낸 이들은 이전보다 더욱 강렬하게 공산주의의 모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현실의 공산주의와 마르크스가 이상적으로 그려낸 사회가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으며 분노했다. 극에 달한 냉전도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 과학을 발달시키고, 위대한 소련의 모습을 부각시켰지만, 개개인의 삶까지 고결함을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한 차례 실패한 구닥다리 체제에 다시 한 번 희망을 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인간의 목숨까지도 돈으로 환산하는 야비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회의감을 선사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주창한 사회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우리는 그가 꿈꾸었던 공산주의 역시 미래의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일환으로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제 삶을 살다 간 레닌이라는 인물에 대해 떠올려 보게 됐다. ‘국가와 혁명’은 1917년 쓰여진 책이다. 그는 모든 것이 달라질 미래에 프롤레타리아와 국가권력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마르크스의 철학에 입각하여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숙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고찰을 시작했다. 당시는 여느 시대보다도 이론가가 많았다. 변화의 조짐이 쉬이 포착되는 만큼 각자가 나서서 이상적인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빴다. 그렇지만 레닌이 볼 때 상당수가 시대의 흐름에 편승한 기회주의적 움직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그의 기준에 부합할 정도로 철저히 마르크스의 노선을 따르지 못했다. 어쩌면 마르크스보다도 더욱 마르크스의 이론을 신봉했던 레닌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무정부주의자들과 플레하노프, 카를 카우츠키를 비롯한 많은 기회주의자들이 배척당한다. 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향했던 바이기도 하다.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건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극소수의 부르주아에게 쏠려 있던 권력을 절대다수에 해당하는 프롤레타리아가 소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만인이 평등한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하지만 이는 아직까지는 이론으로 남아 있다. 레닌은 마르크스의 방식을 좇아 급진적으로 러시아를 바꿔 보려 하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이제 와 보기에 당시 러시아는 결코 평화롭지 못했다. 기회주의를 배격해야 하는 만큼 만인의 깨어 있음과 치열한 고민이 필요했지만, 그것이 폭력 폭압 등의 형태로 나타나서는 곤란했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움직임은 당시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성공이었기에 ‘혁명’으로 평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코뮌의 의식을 고스란히 좇았다고 보기 힘들고, 모두에게 권력이 고루 돌아갔다고는 더더욱 볼 수 없는 혁명을 아직도 혁명으로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어쩌면 오늘날 또한 하나의 과도기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패망 아닌 성숙을 거듭하고 있다. 레닌, 아니 마르크스조차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많은 이론들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치유하는 이상적인 방법으로 각광 받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공격을 받고는 있으나 여전히 건재한 복지국가들과,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퍼져나가고 있는 사회적경제(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을 가능케 한 이론들은 분명 수정주의였다. 강하면 부러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며, 수정주의는 유연성을 발휘해 오늘날 정통 마르크스의 이론보다도 더욱 넓은 영역에서 각광 받고 있다. 하지만 형태는 다를지라도 문제의식은 동일하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분명 문제 있다. 과거 제국주의에 비해 상당히 세련된 모습을 지녔으나 본질은 같다. 그렇기에 어떠한 국가를 꿈꾸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