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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시간이 야속한 것은 비단 나 스스로가 늙어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와 내 주변의 다정했던 사람들을 속절없이 앗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태어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계속해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가까웠던 사람들을 차츰 잃어간다는 건 더없이 슬픈 일이다. 하여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반복해서 만나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을 반복해서 읽기도 한다. 이것 역시 속절없는 세월과 유한한 생명에 대한 반작용임을 나는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자연의 매몰찬 냉대에 대한 티끌처럼 가벼운 한 인간의 무위한 반항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1인분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닮은꼴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다채로운 시간들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디선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뿐 아니라 현재에도 많지 않을까.『세월』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신비체험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닮은꼴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 나와 다른 시공간 속에서,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다는, 너무도 그럴듯한 상상.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 없는 타인과 만나고, 한 몸으로는 다 살아낼 수 없는 무지갯빛 시공간을 겪어내는 것은 아닐까. 지구라는 별 어딘가에서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덜 외롭고, 덜 아프고,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p.282)
정여울의 에세이 <잘 있지 말아요>는 작가가 읽었던, 혹은 보고 느꼈던 수많은 '사랑 이야기'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이자 해석이며, 사랑에 대한 통념과 전문가의 해설을 곁들인 진지한 논평이기도 하다. 작가는 다양한 연관 매체의 지식을 자신의 글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 책에 국한하지 않는 독자의 다양한 관심을 아우른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스탕달의 <적과 흑>,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트루먼 커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이언 매큐언의 <속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 등 서른일곱 편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사랑에 대한 자신의 지적 경험과 그를 통해 정립된 개인의 사랑관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상처가 스스로 발화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사랑은 매력으로 시작되어 우정으로 승화되고, 마침내 서로에게서 최고의 스승을 발견하는 위대한 배움으로 이어진다. 이미 만들어진 완벽한 사랑의 저수지에 풍덩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무거운 돌을 나르고 빈틈을 메워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의 호수를 만들어가야 한다." (p.323 '에필로그' 중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홀로 오지 않는다. 행복과 사랑, 분노와 사랑, 기쁨과 사랑, 슬픔과 사랑, 때로는 엄숙함과 사랑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에 약방의 감초처럼 사랑이 함께하는 까닭은 혹여라도 우리가 사랑으로 가는 길을 잃었을 때, 다른 감정과 더불어 사랑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했던 신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없다면 삶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네 삶의 전부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진정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소망을 충족시켜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사랑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 그 사랑을 통해 그들 주변의 세상을 좀 더 환하게 밝혀줄 수 있다는 희망이야말로 사랑을 아름답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빛이다." (p.290)
많은 예술가들이 그토록 사랑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랑의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인간의 역사와 함께 면면히 이어져 왔던 감정. 그 숭고한 역사의 흔적을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 혹은 한 편의 영화를 통해, 혹은 감동적인 연극이나 심금을 울리는 음악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우리가 자신의 눈을 통해 빛 속에 감추어진 다양한 스펙트럼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통해 다채로운 사랑의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없다. 우리는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랑의 실체를 그저 희미하게 짐작할 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예술을 포기할 수 없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에 눈먼 청맹과니인 까닭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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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 동안 나를 매혹시킨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들이 내게 가르쳐준 소중한 메세지들을 갈무리한 것이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나는 '아무리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사랑을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존경하는 심리학자 융인데, 그조차 인정한 것이다. 융은 고백한다. "내 모든 경험상 사랑은 거의 다 올라갔다고 생각했을 때 더 높이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산과 같습니다." 융은 무한한 사랑의 모순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을 용기가 없다고 털어놓는다...... <중략>......사랑을 꿈꾸지만 사랑때문에 늘 상처받는 사람들과 함께,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들의 감동을 나누고 싶다. /p17 <잘 있지 말아요>, 사랑으로 아파했던 지난날 한 번쯤 해보았던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짧은 제목이지만 임팩트 있는 문장으로 읽기전부터 기대감이 있었던 글이었는데.... 고전과 영화속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어가면서 점점 글 속으로, 그리고 사랑이라는 모습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걸까? 하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생각으로만 맴돌던 문장을 글로 읽으면서 아! 하고 마음에 와 닿을때의 기분이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것 같아요. 사랑은 상대의 외피 속에 가려진 진실을 분석하는 모험이 아니라, 진실과 외피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 의연한 믿음 속에 존재하기에. 당신의 진실이 무엇이든, 그 진실 때문에 당신을 판단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을까. 부디, 사랑하는 이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이, 이미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매일매일 조금씩 덧칠되는, 아직은 '여백 많은 캔버스' 이기를. /p39 타자란, 끊임없이 주체의 시선으로부터 달아나려는 존재다. 그를 포착하고 정의하고 해석하려는 주체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침으로써, 세계의 울타리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것, 그것이 타자의 매혹이다. 사랑이란, 바로 그렇게 끊임없이 달아나려는 타자를 '붙잡는 기술' 이 아니라 멀리 있는 채로 보듬는 '놓아줌의 윤리'가 아닐까./p97 사람은, 삶은, 사랑은 가벼움만으로도 무거움만으로 지탱되지 않는다.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참을수 수밖에 없는 삶의 무거움'사이에서 영원히 흔들리며, 그 가벼움 무거움을 그 무거운 가벼움을 생의 끝까지 함께해줄 사랑과 우정을 찾는다. /p182 지난 시간의 아픔으로 '사랑'같은건 다시는... 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픔은 한 번으로 족하다며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 나날들, 가끔은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지만 용기가 없어서 일까? 단순한 에세이가 아닌 책, 영화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책이라 조금 더 마음이 갔다고 할까요? 오래전 그 시절에도 이런 고민들을 했었구나. 오늘의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건가? 조금은 더 용기를 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더라구요. 물론 생각만으로 나의 행동이 크게 바뀔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들처럼 이런 사랑을 한 번은....... '지금은 잘 안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상상이 결코 통하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사랑에 관해서는 좀처럼 쉽게 지혜로워지지 않는 것 같다. /p229 나이가 들면 사랑도 삶도 알아서 저절로 풀리게 되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구요. 지혜로워진다는건 그만큼 생각하고 경험도 해봐야하는 것이고 피해선 안된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으니까요. 너로 인해 내 인생이 후퇴할 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내게는 사랑이다. 너로 인해 한없이 뒤처지더라도, 너로 인해 내 인생의 중심이 송두리째 흔들리더라도, 너와 함께이고 싶은 것. 그것이 내게는 사랑이다. /저자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사랑'으로 인해서 내 인생이 조금 더 후퇴하게 되고 조금은 위험해진다고 해도 그것마저 오롯이 받아들이고 감수 할 수 있어야하는게 사랑... 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번쯤 꼭~ 읽어보시길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어요. 2014년 한 해를 마감하는 책으로 참 좋았던 책이었습니다. 새해엔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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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반어법의 씨앗이 숨어 있다. 숨이 끊어질 듯 사랑하면서도 ‘잘 있지 말아요’라고 속삭이고, 편지를 쓰고 싶지만 차마 보내기는커녕 완성할 수조차도 없다. 절대 놓아주고 싶지 않지만 ‘그냥 지금 헤어집시다’라고 선언하고, 그녀를 결연하게 떠나보내면서도 자신의 사랑이 무거운 저울추처럼 그녀에게 평생 매달려 있을 거라는 저주를 서슴지 않는다. 사랑하기에 붙잡을 수 없고, 보낼 수 없기에 차라리 놓아버리는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14페이지 프롤로그 중에서)
그래, 궁금하다. 사랑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모른다고도 할 수 없고,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잘 알게 되는 부분들이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니까, 사랑은 매번 전문가도 되게 만들고 백치도 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잘할 것 같은데도 어렵고, 만만하게 보이다가도 레벨 최상급의 문제 같고, 두려워서 다가가지 못하다가도 한 손만 내밀었을 뿐인데 쉽게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고. 울고 웃는 인생사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차지하는 감정적인 비중이 참, 크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랑도 그렇지만 책 속에서 만나는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친구처럼 시작했던 연인은 다시 친구로 돌아가지 못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우연처럼 시작된 츠네오와 조제의 만남은 현실 속 불가능한 조건들 속에서 이런 사랑이 가능한 젊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조제와는 다른 세상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츠네오의 미래는 아픈 마음을 붙잡고서라도 온전하게 조제에게만 향할 수는 없다. 깊은 바닷속 같은 마음으로 살았던 조제의 현실을 츠네오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과 함께 돌아서는 것. 언젠가 츠네오가 기억해 낼 조제의 모습에서 어떤 감정이 피어오를지는 모르겠으나, 한때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을 열정적으로 피웠다는 기억만은 선명할 거라 믿는다. 조제와 함께했던 시간, 그때만큼은 츠네오의 진심으로 조제를 사랑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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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서로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을까. 그들은 왜 함께 살면서도 행복할 수 없을까. 남자들이 상대방의 ‘진실’을 찾으려 할 때, 여자들은 상대방의 ‘이해’를 원한다. 여자들이 ‘미래’를 계획하며 행복의 주문을 걸 때, 남자들은 ‘과거’에 집착하며 그녀들을 유도신문 한다. 여자들이 지금이야말로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라 느낄 때, 남자들은 행복을 방해하는 갖가지 장애물을 확인하며 조바심을 느낀다. 이 영화는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 사랑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불안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31페이지 『클로저』)
작업 선수라 자처한 발몽(『위험한 관계』)은 작업 대상 트루벨 부인에게 진심과 열정을 발견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발몽은 트루벨 부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의 목숨마저 끊어지는 상태였으니까. 시라노(『시라노』)는 연애편지를 대필하면서 사랑을 키워나간다. 항상 당당했던 자신의 큰 코가 사랑을 알게 되니 콤플렉스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크리스티앙의 편지를 대신 써주면서도 사랑하는 록산에게 얼굴을 내놓지 못한다. 하지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마음은 달라진다. 아쉽게도 너무 오랜 시간 후에 알게 된다는 것, 다시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에 사랑에 발목 잡히고, 뭔가가 채워져 사랑에 다가가려 하니 타이밍이 발목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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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거부하는 자에게도 기어코 사랑은 온다.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사랑은 오히려 더욱 드라마틱 할 때가 있다. 지나친 에고 때문에, 자신을 향한 극대화된 사랑 때문에 남을 사랑하는 감성의 회로가 고장 나버린 사람들. (151페이지 『달과 6펜스』)
사랑이 수반하는 또 다른 의미는 이별이다. 사랑의 완성이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을 때 웃을 수 있다. 반면 어떤 식으로든 이별-그게 죽음이라 할지라도-로 갈 길을 택한다는 것은 사랑이 가지는,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다. 한눈에 반한 순수한 사랑 이면에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확인하고 죽음을 택한 두 젊은이의 사랑(『로미오와 줄리엣』)은 죽음으로 완결되었다. 온몸으로 치러야 했던 속죄의 모습 그대로를 투영한 브리오니(『속죄』)는 치유될 수 없는 긴 이별을 불어온다. 연기에 몰입하다가, 그 주인공으로 착각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임무의 대상인 이 선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해버린 왕지아즈(「색, 계」)에게 다가온 것 역시 죽음이다. 존재 이유와 목적이 배우처럼 타인을 살아가는 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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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은 오셀로의 비극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진실은 분석이 아니라 진심 어린 믿음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사랑은 흠 없는 완벽이 아니라 흠조차 기꺼이 끌어안는 너른 마음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194페이지 『오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정여울은 이 책을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마지막 카테고리의 이름은 ‘인연’이다. 앞에서 열정적인 사랑이나 연애 그리고 이별까지 이야기하고서 마지막에 그 인연이라 붙인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한다. 그 이유가 있다. 사랑에 대한 그 많고 많은 정의와 위협들이 한번 휩쓸고 지나갔다. 이 정도만 해도 사랑에 진저리쳐질 것 같다고, 미리 밀어내고 싶은 상황이 올지도 모를 것을 예상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도 괜찮다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사랑 그것, 한번 해보라고 말하려는 듯이. 그래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오만한 남자와 편견을 가진 여자가 결국에 확인하게 되는 것도 사랑이고(『오만과 편견』), 문맹의 치욕과 전범의 누명을 무릅쓰고 지키고자 했던 것 역시 사랑이다(『책 읽어주는 남자』). 사랑을 배운 적도, 그러니 당연히 해본 적도 없는 남자를 품어주던 여자는 마지막까지 그 모습을 지킨다(『제인 에어』). 눈물 한 방울의 기적처럼 얼음조각을 빠지고 부서지게 하면서 알게 해준 사랑(「눈의 여왕」)도 존재한다.
사랑이 진정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소망을 충족시켜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사랑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 그 사랑을 통해 그들 주변의 세상을 좀 더 환하게 밝혀줄 수 있다는 희망이야말로 사랑을 아름답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빛이다. 소냐의 사랑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삶뿐 아니라 죄의 구렁텅이에 빠진 수많은 죄수들의 삶에, 라스콜리니코프로 인해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희망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290페이지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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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야기가 책에서만 머무르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아니다. 적어도 내가 봤을 때는 아니라는 말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그러니 책은 책 안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로 독자를 만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정여울이 책을 통해서 들려주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만난 많은 이야기가 삶과 사랑에 많이 침투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직 사랑만을 보게 했던 한때를 기억하게 한다. 편견으로 하나의 사랑을 떠나보낸 사람은 엘리자베스가 아닌, 나였다. 록산에게 썼던 시라노의 대필편지는 철없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많은 책과 영화가 공감과 위로의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삶에서 사랑이란 감정이 불러오는 것은, 너무도 많다. 정여울은 마치 그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거침없이 사랑이란 화두를 던진다. 굳이 콕 집어서 사랑에 관한 비결이나 예외까지 포함해서 구체적으로 풀어놓는다. 우리가 시작하는 사랑이나 연애, 이별, 계속되는 인연과 결혼까지. 사랑이 뿜어내는 그 많은 감정의 의미를 풀어헤친다. 다양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사랑은 역시 불가능한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끊임없이 시험하게 하고, 우리 삶에 침투해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다. 때로는 풍요로움과 만족감을, 때로는 결핍과 외로움을 선사하기도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 책에서 소개해준 많은 책 중에는 고전이 많다. 언젠가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로맨스소설은 고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로맨스소설 속에서 주인공들 이름만 바꾸면 우리 이야기가 된다고 하기도 했다. 우스갯소리로 멈출 이야기는 아니었다. 비록 씁쓸함이 웃음 끝에 달렸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으니까. 이 책을 통해서 오래전 기억을 꺼내게 하는 책들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다. 잊고 있었던 것들은 마음이 먼저 기억한다. 순간적으로 피어오르려 했던 그리움이나 외로움은 이들의 사랑이 덮어버린다. 한때의 우리, 불어오는 바람이 스산해질 것을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정여울이 보내는 위로처럼 들리는 이야기다. 바람이 조금, 불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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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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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이 사랑하는 이에게 애절한 편지를 쓴다..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편함이 가득 차도록 우체부는 오지 않는다. 시인의 편지는 바람에 날려 남의 집 담벼락에 붙거나 아이들이 종이비행기로 변신하여 허공을 날아다닌다. 그걸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만 애가 탄다. 그래서 또 편지를 쓴다. 잘 있지 말라고.. 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 전해줄 방법이 없소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이성복 [편지] 정여울의 문학 감성 에세이들은 꼭 챙겨보는 편이었는데 제목 『잘 있지 말아요』 의 반어법을 영문도 몰랐을 때는 이 글귀가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평소, 아무리 상대가 밉더라 하더라도 잘 지내라고 하는 것이 타인에 대한 예의이자 미덕이라 여긴다. 그런데 ‘잘 있지 말아요’라고 해도 부정적이거나 나쁜 감정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반어법’의 씨앗이 부디 잘 있어 달라는 기도의 언어로 파생되어 각인된다. 한편으로는 이 문장에서 보여지듯 사랑하는 이의 기쁨도 슬픔도 자기로 비롯되어야 한다는 이기利己의 반어법을 우린 얼마나 이해하며 살까?
알랭 바우디는 사랑을 둘의 경험이라 말한다. 둘의 경험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서로에게 주인공이 되는 경험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 ‘잘 있지 말아요’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이 뜨거운 반어법의 씨앗에 대해 정여울 특유의 감성필치로 들려준다. 숨이 끊어질 듯 사랑하면서도 나 없이는 ‘잘 있지 말아요’ 라고 속삭이고, 절절하게 사랑을 담은 편지를 쓰고 싶지만 차마 보내기는커녕 완성조차 하지 못하는 말하지 못하는 사랑이야기들을 구석구석 도처에서 건져 올린다.
로맨스 영화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원데이》였다.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는 재미로 사는 덱스터에게 유일한 친구 엠마, 덱스터와 엠마는 사랑과 우정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지만, 마치 커다란 원이 작은 조각을 잃어버려 찾아다니는 것처럼 덱스터의 망가진 삶 저편에 항상 엠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덱스터가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이혼을 하는 동안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채워가는 엠마를 보면서 자신의 가슴 한 편에 자리한 엠마의 존재를 깨달아가는 덱스터. 오랫동안 평행선을 그리던 두 사람이 서로의 선을 구부려 만나게 되지만 둘의 행복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엠마가 자전거를 타고 덱스터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샛길로 가다 트럭에 치여 쓰러졌을 때의 충격은 엠마의 오랜 사랑에 비해 짧은 행복이 가여워서 더 크게 다가왔다. 만약 엠마의 죽음에서 영화가 끝이 났다면, 이 아름다운 연인의 사랑이야기는 비극으로만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엠마가 죽은 후 새 삶을 살아가고 있는 덱스터가 딸의 손을 잡고 힘차게 언덕을 오르는 것으로 끝난다. 마치 구름 뒤에 숨어있는 해의 모습이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처럼 엠마의 죽음으로 더욱 단단해진 사랑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덱스터는 엠마의 죽음으로 인해 철저하게 부서져버린 자신의 삶을, 벽돌로 하나하나 집을 쌓아 올리듯 천천히 다시 쌓아 올리기 시작한다. 엠마가 살아 있을 때처럼, 엠마가 늘 곁에 있는 것처럼 그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이다. 그것이 두 사람이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유일한 사랑이니까. 다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조금만 더 일찍, 조금만 더 열심히 사랑할 것을' 하는 후회일 것이다.-p139
영화로 보면서도 눈시울 적셨던 감동은 정여울의 감성터치로 되살아나 눈물을 훔치며 읽곤 하였다. 세상에 단 한 장뿐인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남겨져 있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시작으로 하여 상처 사이로 보이는 아픔을 보여주는 드라큐라의 애면글면한 사랑과 흉한 외모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에릭 앞에 나타난 매력적인 여가수 크리스틴의 사랑, 못생겨서 사랑을 포기하고 살았던 시라노와 시라노를 대신해서 사랑하는 크리스티앙의 사랑법, 온 생을 다바쳐 강렬한 사랑을 하면서 천국 같은 사랑과 지옥 같은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히스클리프의 사랑,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자처하였던 장발장, 언니의 사랑을 질투해서 연인을 누명씌워 전쟁에 보내게 한 브리오니의 평생에 걸친 속죄의 고행은 '글쓰기' 안에서 그들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랑의 모습은 정말 너무도 다양하고 수많은 의미를 지닌 얼굴을 하고 있다.
사랑은 도처에 있다. 그러나, 내 삶에 개입되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유일하게 '나'의 경험과 나만이 주인공일 수 있는 사랑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 둘 만의 경험이 사랑이라 한다면, 나와 상대외에는 절대 눈에 들어오지도 , 들어 올 수도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 틈새에서 정여울이 외친다. '잘 있지 말아요'라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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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인 ‘잘있지 말아요’라는 이 어색한 문장은 우리가 좀체 사용하지 않는 부정어이기에 곧 발화자(發話者)의 지극한 소망이 반어적으로 표현된 것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뻔히 속마음이 읽히지만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부정이다. 들키고 싶지 않으면서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의 마음이란 이처럼 드러냄과 숨김의 경계를 정의할 수 없는 은밀한 정신세계임을 보여준다.
세상의 그 어떤 말이 ‘사랑’이란 단어만큼 설렘, 환희를 안겨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세상 모두를 가진 것만큼, 세상 그 무엇도 필요치 않을 만큼 영혼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오늘, 사람들은 사랑이 잊히고 마침내 사라져가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정신세계에 깃든 상징의 세계, 감성의 공간이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 쫓겨나고 내몰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인간의 감성은 바짝 말라붙어 사랑조차도 이성으로 재단하려 들기 시작했다. 그 풍요롭던 상징의 세계가 사라지고 수량적 합리주의 세계가 정신세계의 전체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결국 합리주의에 내몰린 사랑은 고독하게 구석에 쪼그리고, 그 광활한 영역을 상실한 채 자기애(自己愛)라는 편협의 공간에서 홀로이 골몰하는 인간들을 양산한다. 자기 자신만을 물고, 쓰다듬고, 빨고, 훌쩍이는 이 정신병적 에고의 세계, 그래서 타인에 대해서는 냉담하고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혹은 무관심하고 배타적이기까지 한 파편화된 개인들로 넘쳐난다.
이제 타자를 향한, 타자로부터 시작되는 사랑을 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의 현상이 되어버리고 있음이다. 더구나, 이 유아적인 자기애의 세계는 끝없이 자신만을 봐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를 보아주기만을 주장하는 세계이고 보니 그 무심함에 절망하고, 진절머리를 낼 뿐이다. 그리곤 사랑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 코미디에 어찌 조소를 날릴 수 없겠는가! 이러한 오늘의 정신세계에서 ‘정여울’의 감성적 지성이 꺼내든 ‘사랑’의 에세이는 유효하고 시의적절하다 아니할 수 없다.
“사랑, 연애, 이별, 인연”이란 4개의 장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예술비평, 사랑의 현상학이라 할 이 책은 문학 및 영화 작품에 흐르는 그 무수한 사랑의 현상들을 통해 삶의 진정한 맛, 단지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닌 살아있음의 축복을 더듬어, 사랑의 의미와 진실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이것에 정신을 동원하는 것은 정말 새삼스런 즐거움에 휩싸이게 한다. 첫사랑의 가공할 떨림과 미련과 아쉬움의 감정에서 이내 나를 잃어버리고, 나란 존재를 내려놓음으로서 비로소 삶 전체를 감싸 안는 새로운 생명력으로서의 생애를 시작하는 지고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삶의 비극적 모순을 유화시키는 감성적 통찰로 빼곡하다.
이반 투르게네프의「첫사랑」,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트루먼 커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스티븐 크보스키의『월 플라워』,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토마스 만의「베니스에서의 죽음」, 표도르 토스토엡스키의 『죄와 벌』등 근현대 걸작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사랑이라는 삶의 완성을 위한 행로는 작가의 탁월한 정서적 감수성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성을 한층 성숙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37편의 이 사랑의 현상학에서 아마 가장 깊게 지금의 나와 공명한 것은 우연히도 2013년 노벨문학상 수장작가인 앨리스 먼로의 「곰이 산을 넘어오다」를 빌어 사랑이란 ‘놓음’의 시간이요, 새로운 만남의 시간임을 일러주는 에세이라 하겠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가장 낯선 타인으로 바라봐야 하는 순간을 비로소 이해함으로써 진정 사랑에 이르는 남편 ‘그랜트’의 아내 ‘피오나’를 향한 내려놓기의 숭고함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기를 버리고, 오직 대상의 자유와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마음, 그 온전함의 윤리 이상 어떠한 것도 왜소해지고 만다. 이것은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히로인인 ‘홀리’의 가면마저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소유의 갈망에서 놓아주는 ‘폴’이나,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와 같이 예술가 ‘아셴바하’ 의 미소년 ‘타치오’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 모아지는 것, 성숙하고 결실있는 사랑이란 자신의 상실, 죽어도 여한이 없음을 깨닫는 그것일 것이다. 사랑이란 바로 이 내려놓기의 윤리! 라는 것을.
타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강력하게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는 연애라는 세상의 이해를 향한 첫걸음에서 시작하여 타자와 성숙한 소통을 하고 마침내 자신의 모든 것을 대상에게 내어줄 수 있음으로서 정말의 유대가 형성되며 비로소 삶의 모순을 넘어 살아있음의 축복이 되리라는 것을. 그래서 세계가 이러한 사랑으로 넘실댄다면 그 어떤 이데올로기가 필요할 것이며, 전망이 필요하겠는가? 연애만 하려드는 유아적 미성숙이나 격정적이고 낭만적 달콤함이란 사랑에 머무는, 혹은 제도의 틀 내에서만 성공할 수 있는 합리주의적 사랑을 말하는 정체된 이 세계에 진정한 사랑을 복원하기위한 노력은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해서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칠 수 없는 영구한 본성이어야 할 것이다. 내 사랑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이 책은 그 현주소를 깨우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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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완벽한 최고의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은 최고의 사랑이 아닌 나름의 최선의 사랑을 하는데도 쉽지가 않다.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사랑에 빠지면 나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는 일방통행 같은 사랑은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문화평론가인 정여울님의 '잘 있지 말아요'는 제목부터 남다르다.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담은 책이기에 사랑하다 헤어진 남녀가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말이 아닌 내가 실패한 사랑으로 인해 아파하고 있으니 상대방도 나만큼 아파하며 지내란 뜻으로 비쳐지는 부정적인 단어가 가진 묘한 매력에 자꾸만 끌리게 된다.
'사랑, 연애, 이별, 인연' 4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사랑에 빠진 남녀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표준에 준한 정상적인 모습의 사랑도 있지만 남들의 눈에는 불륜 혹은 힘든 사랑으로 비쳐지는 사랑도 존재한다. 한순간의 호기심과 애틋함이 사랑으로 발전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히면서 점차 사랑도 퇴색되어 가는 모습을 다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래서 더 안쓰럽고 슬프게 느껴진 이야기다. 장애인이란 이유로 할머니가 꽁꽁 숨겨두고 키우는 손녀 조제에게 끌린 츠네오... 분명 그녀와의 생활에 익숙하고 마음에 변함이 없어도 세상 밖으로 조제를 데리고 나갈 용기를 못하는 남자다. 충분히 츠네오의 마음과 행동이 이해가 가지만 그럼에도 남겨진 조제의 모습이 자꾸만 슬프게 연상이 되어 이 영화 찾아서 볼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고전 영화가 있다. 트루먼 커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다. 상큼하고 매력적인 웃음이 천사를 연상케 하는 오드리 헵번의 연기가 지금의 몇몇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를 정도다. 오드리 헵번의 직업은 돈 많은 남자들에게 기대어 사는 고급콜걸이다. 진실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녀의 이야기.. 그럼에도 그녀가 가짜 진실속에 숨어 있는 가면까지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는 오드리 헵번의 매혹적인 목소리의 노래와 함께 늘 나를 즐겁게 해준다.
신파극처럼 비극적 사랑을 다룬 이야기는 동서양을 통틀어 참으로 많다. 대표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춘희'와 우리나라에서는 '홍도야 울지 마라'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 안정된 삶보다는 사랑을 선택한 '안나 카레니나'를 추가하고 싶다. 분명 안나는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여성이다. 그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스런 아들까지 둔 유부녀... 허나 자의반타의반 다른 사람의 연애사에 낀 기차여행길에서 잘 생기고 매력적인 한 남자에게 빠져드는 안나... 잠시 흔들리는 마음을 원래의 상태로 돌려 놓아야하지만 그녀는 밋밋하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하지만 그녀는 임신을 하고 만다. 사회규범과 전혀 다른 두 남자 사이에서 자신의 진정한 행복과 사랑을 추구하고 싶었던 여인 안나는 더 이상 남은 것이 없게 된다. 그녀의 안타까운 자살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해도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다.
자신이 가진 비밀을 들키고 싶지 않은 여자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이야기 하는 '책 읽어주는 남자', 고등학교 때 읽고서 개인적으로 좋아하게 된 작가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그리고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까지... 책 안에 담겨진 37편의 영화 이야기는 뛰어난 작품들이라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온 세상이 핑크빛이고 사랑이 식어버린 사람에게는 쓰리고 아픈 추억만이 가득하게 된다. 다른 무엇도 아닌 오직 '사랑'을 주제로 풀어낸 이야기는 정서를 흔드는 감수성을 촉발하는 작품도 있지만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영화 속에 담겨진 숨은 이야기와 심리를 알게 되는 묘미가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으로 생긴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해야 한다고.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사랑으로 생긴 상처는 또 다른 사랑으로 덧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상처 입은 사람은 새로운 사랑에 빠지기가 어렵다. 아직 옛사랑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더더욱. -p233-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 온 말이지만 사랑으로의 치유는 쉽지 않다. 옛사랑을 놓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이나 지금 한창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 모두 자신만의 사랑의 모습에 늘 진솔하고 성실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접할 수 있어 즐거웠다. 소개된 영화도 보고 싶고 원작소설도 찾아서 읽어 볼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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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사람.
지나간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사랑'이라고 하는 말이 과거의 어떤 사실이나, 상태일 수 있는지 망설임이 남아 사람이라고 적었다. 열병같은 사랑. 열병은 하룻밤 사이에 열이 올랐다가도 다음 날이면 씻은듯 나을 수 있는 충동적인 병이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수 많은 부작용과 함께 합병증을 가져오는 위험한 병이기도 하다. 이런 속성이 사랑을 열병에 비유하게 만든 것이겠지 싶기도 하다. 몸에 열이 오르면 때때로 뇌는 '착각'을 일으킨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 믿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랑'때문이 아니라, '열'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그리고 그 경계와 구분은 대단히 모호하면서 어렵다.
최근들어 유난히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젊을 때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라." "해 볼 수 있는 건 뭐든 해봐라."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다할 필요가 없다." "한 사람과 오래 만날 것 없다." 이 말들에는 일부는 동의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달리 생각하고 있다. 되도록 많은, 여러 가지, 여러 사람. 이런 저런 사람을 만나다보면 자신을 점점 잘 알게 되고, 그 경험을 통해 최고의 사람을 혹은 최선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 전적인 반대를 표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과연 '많거나', '여럿인'게 최선의 방법일까? 어떤 형태든 이루어지다 만 사랑은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그 흔적이 때로는 상처가 되고, 흉터가 될 수 있으니 조심스레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과거는 지나가버린 것이긴 하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지나간 그것이 환영처럼 현실에 영향을 끼칠 때가 있다. 그 환영은 혼자 힘으로는 물리칠 수도 지워버릴 수도 없다. 신중해서는 사랑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무모하게 뛰어들 필요는 없다. 사랑은 순간의 교감에서 시작해 오랜 시간의 공감을 거쳐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이런 말들이 그다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고,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이 최고의 사랑일 테니까.
무엇이 우리를. "정말로, 진실로 숙녀와 꽃 파는 소녀의 차이는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대접을 받느냐에 달렸죠." 신화 속 인물 피그말리온은 인간보다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조각상을 사랑했고, 그 조각상은 생명을 얻어 피그말리온의 사람이 된다. 하지만, 피그말리온이 깎고 다듬고, 염원을 불어넣은 것으로 완성된 조각상 갈라테이아는 행복했을까? 깎고 다듬고 염원을 불어넣는 일의 인간적 표현은 '구속과 간섭'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의 창조자일 수는 없다. 그저 실행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랑'을 이유로 그 사람의 어떤 것을 일방적으로 깎고 다듬는 것은 권한을 한참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자리는 그 사람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대접 받느냐에 따라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조금 덜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면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조금 더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근본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계기는 될 수 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 나의 억지에도 정중하고 부드럽게 응대하는 사람에게 더 심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조금씩의 변화는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지속된다면 다른 무엇을 완성하기도 하는 것이다.
촛점이 흐릿한 사진처럼, 내가 느끼는 첫 사랑의 감정에 대한 기억은 모호하다. 그것은 동경이었을 수도 있고, 동정이었을 수도 있고, 동질감이나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무엇이 첫사랑이었는지, 어떤 것을 첫사랑이라고 해야 맞는지 조차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시절에는 막연히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사람을 대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모호한 이름을 지키기 위해, 내가 '사랑'을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증명하기 위해, 좀 더 '멋져 보이기'위해 희생을 훈장처럼 새기고 다녔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지나간 후에는 상처를 보이고 다니며, 이렇게 말하는 거다. "다시 사랑하지 않겠다."
처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처음에 서툴지 않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혼자 하는 것에서도 그러한데, 둘이 함께 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서툰 것이 자연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라 해서 상처가 줄거나 금새 아물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신화의 시발점이 바로 그러한 '서툶'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많은 사랑을 거친다고 서툰 것이 낫는다고 믿지는 않는다. '횟수'가 '효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사랑도 재테크가 되나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이유 가운데 부정하기 힘들기에 서글픈 것이 있다. 암에 대비해 보험을 들듯 미래, 노후를 위해 자식을 낳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사랑.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까? 보험이나 재테크의 상품처럼 사랑을 고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은 뭔가 안타깝다. "제인은 아무리 외롭고 힘들어도 '나 자신'이 될 수 있어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다." 스스로가 상품이 되어 또 다른 상품을 고르는 일은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를 속이는 일이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사랑하는 나, 비슷하지만 주체가 엄연히 다른, 서로 다른 사랑이다. 사랑은 재테크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적극적인 재테크여야만 하는 게 아닐까.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그 무엇에 마음을 쏟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전을 읽는 다는 것. 올해 들어 하고 싶어진 것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저런 핑계로 말이다. 이 책은 정여울이 읽어주는 고전속 사랑 이야기와 현대인을 위한 해석을 담고 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정여울의 글은 선입견을 심어주지 않아 좋다. 고전의 이름은 높아가지만 고전은 말 그대로 옛날 것이라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고전 속 사랑이 고전이라는 이름처럼 낡고 바래있을 거라 믿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만 같다. 확실히 시대는 변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달라졌다. 먹는 것, 입는 것, 생각까지도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을 필요로 한다.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를 통해 감동과 공감을 나누고 함께 함으로써 더 커다란 어떤 것을 꿈꾸게 되는 순간의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 수록 마음도 가까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짐으로써 오히려 멀어진 거리가 있다. 마음이 멀어지는 시대를 사는 것만 같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내' 생각만 하기에 더 많은 사랑의 기회를 다툼으로 바꿔버리는 실수를 반복한다. 고전 속 사랑은 현대인에게 말을 건다.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며 말이다. 사랑을 배우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고전을 읽는다고 하면 뭔가 우습기만 하다. 그럼에도 그 사랑을 지켜보며 감정의 흐름과 갈등을 지켜보는 일은 적잖은 깨달음을 준다.
간단히 말하면, 사랑은 고전을 읽어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그래서 달리 말하면, 이 책은 고전 읽기를 부추기는 그런 책이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했다. 아, 고전의 재미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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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사랑과 낭만이 없다면 사람에게 영원이 풀 수 없는 숙제가 있다면 뭘까? 수 천 년을 이어온 인류의 역사에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울고 울게 했던 것을 꼽으라고 하면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사랑”으로 모아지지 않을까 싶다. 철학을 필두로 한 사상사의 흐름에서도 삶의 질을 변화시켜온 눈부신 발전을 이룬 과학에서도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연구들이 있어왔고 인류가 지속되는 한 언제나 함께 할 것이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라면 충분히 조언을 할 수 있지만 막상 자신의 문제로 대두될 때에는 결코 답을 얻지 못하는 그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어쩌면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문학이든 영화든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전재로 시작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작품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은 어쩌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보고자 읽고 보고 듣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랑”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자신의 일상 속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하여, 바로 그 “사랑”에 주목하여 이를 다양하게 해석을 시도하여 사람들의 일상에 직접적으로 연결시켜나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다.
‘잘 있지 말아요’의 저자 정여울도 그 중 한사람으로 보인다. “사랑, 혁명, 우정. 이루어지지 않아도, 끊없이 실패해도, 소유할 수 없어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가치들이다. 바보 같아 보여도, 철 지난 이상처럼 보여도, 난 그것들이 미치게 좋다. 사랑, 혁명, 우정을 향한 변함없는 짝사랑이 나를 여전히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그 따스한 낱말 3총사가 여러분의 삶도 환하게 비춰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라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 책 ‘잘 있지 말아요’를 통해 그러한 저자의 관심사가 어떻게 독자들과 공유되는지 확인해 보자. 우선 저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던 문학작품이나 공연, 영화 이야기를 한다. 정여울이 주목하는 작품으로는 ‘적과 흑’, ‘설국’, ‘리시스트라타’, ‘월 플라워’, ‘춘희’, ‘색, 계’, ‘안데르센동화’등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의 공통된 주제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 연애, 이별, 인연이라는 단어는 결국 “사랑”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뤄지는 일들이다. 정여울은 이러한 이야기를 작품들 속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삶의 양태를 하나 둘 확인하며 그들이 품고 있는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남녀 사이에 에로틱한 우정은 가능할까? 라는 물음 속에서 살피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이야기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며 반응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정여울의 이야기처럼 ‘에로틱한 우정’은 존재할 수도 있다고 보인다. 조선시대 ‘매창과 허균’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매창이 여인이 아니었다면 허균과의 사이에 오랜 우정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싶다. 공유할 수 있는 사상적 공감대가 서로 이성이라는 에로틱한 감정이 깔려 있었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정여울이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작품들 속에 한정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동안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을 작품들 속 주인공들의 모습과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여 잘 꾸며내고 있어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지금 사랑 때문에 시린 가슴이든 사랑에 대한 꿈을 펼치고 있는 사람이든 정여울의 이야기는 사랑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의 이야기로 자신의 처지를 잘 살필 수 있는 안내자로 충분하다고 보인다.
깊어가는 가을, 단풍이 들고 그 단풍이 지는 동안 우리들은 어떻게 주어진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사람들의 삶에서 사랑과 낭만이 없다면 시간을 더해 간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가워지는 날씨는 어쩌면 그동안 소원했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좁혀 줄 중요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사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잘 있지 말아요’와 함께해도 좋을 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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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사랑이 더한 감동 매개체들.
이렇듯 견딜 수 없는 아픔의 기원이 사랑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사랑은 인간의 잠재력을 무한대로 끌어올리는 신비로운 힘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라캉은 말했다. 사랑은 나에게 없는 것을 주는 것이라고. 이 멋진 문장은 내 안에서 겹겹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까지 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은 우리 안의 숨은 힘을 일깨운다. - p.14
사랑은 우리를 무한히 향상 시킬 수 있고, 무한히 추락시킬 수도 있다. 사랑은 그렇게 신비스런 매혹과 피할 수 없는 위험을 동시에 발산한다. - p. 15
제목이 주는 여운때문인지 책이 있는 곳에 시선이 머물곤 한다. 반어법인지 알면서도 어쩐지 제목이 서럽게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이 책의 제목이 이성복 시인의 시 「편지」에서 따왔다는 것을 알았다. 시의 전문을 읽으니 이 책의 제목을 정말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잘 있지 말아요>는 정여울 평론가가 읽은 작품 속 연애담을 사랑, 연애, 이별, 인연이라는 4가지 묶음아래 담겨져 있는 에세이다.
남녀의 사랑을 로맨스 소설이 아닌 일반 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사랑이 영원불멸한 소재였다는 것을 조금 더 어렸을 때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세계문학전집은 물론이고 많은 소설들을 접해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사랑을 하는 이들도, 사랑을 꿈꾸는 이들도, 사랑에 데인 이들도 저버릴 수 없는 공통분모인 사랑을 저마다의 시각으로 그려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 또한 어그러진 사랑이, 빗겨간 사랑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갈증이 나듯 그 사랑을 그리는 것은 나에게 없는 그 무엇을 찾게하고, 고갈된 그것을 파내어 찾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정여울 평론가가 읽고 쓴 많은 작품들은 내가 읽은 것 반, 내가 읽지 않았던 소설이 반 정도 된다. 이미 만났던 소설들은 이미 익숙한 텍스트이기에 그녀의 느낌표를 조금 더 중시해서 읽었다면, 앞으로 읽어보고 싶은 소설에 대해서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줄거리에 더 무게를 두며 귀를 기울였다.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에 아파하고, 사랑을 하며 행복하다니.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처럼 이 책은 누군가와 만나 연애를 해보고 싶다. 그 누구도 쉽게 정의 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해서.
오늘같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손끝이 차가워지는 날 뜨거운 입김이 묻어나올 것 같은 이 에세이가 무척이나 위로가 된다. 때로는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사랑에 있어서 감정의 고조를 누구나 가슴깊이 느낄 수 없었기에 이해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훗날 다시 읽어보며 되새겨보려 한다. 사랑으로 인해 울고, 웃었던 기억을 작품을 통해 다시 되새겨보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읽어보고 싶은 책이 많아 더 좋았던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