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을 일러 그냥 이미지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은 이미지이기에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동시에 그 즐거움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작가의 후기 중에서) "그림은 사유의 산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림은 우리에게 입만 나불거리지 말고 머리를 쓰라고 말하며 거기 걸려 있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너무도 정직한 이 충고에 살짝 기분이 나빴을 법도 한데,지금은 어느정도 수긍이 되는 걸 보면..나 역시 그림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
예전 같으면 이런 주제는 잘안보지만 최근 가끔 보게된다. 이 주제는 말을 까다롭게 하는 책이 많아 불만이다. 이상한 말이 많다. 그 전공이 아니면 듣도보도 못한 단어와 주제를 어렵게 많이 쓰는데(예를들면 무슨 미학 책이라면서 숭고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오는 책, 숭고! 그 단어도 좀 우리나라 말로 풀어라. 서양에서 하는 말 그대로 옮기지말고) 이책은 안그렇다. 물론 그런 책을 앞에서 봤기 때문에 읽기 나았을수도 있지만,작가님이 예전 같으면 작가님을 알리가 없지만 작년 가을 부터 어느 종편에 토론 패널로 1주에 1번 나오셔서 얼굴이 익다. 경상도 분인데 웃음소리가 달리는 말 처럼 독특하고 경쾌해서 얼굴 보고 판단 안해야겠다.(? 흠....얼굴보다 착하신 분) 재밌게 읽었다. 쉽게 물 흐르듯 글이 자연스럽다. 근대라는 독특한 시대를 미술에서 인상파와 라파엘 전파를 비교하면서 설명한다. 인상파는 이래저래 대개 보고들었겠으나 다른 저 라...파는 배운적이 없다. 미술전공이 아니라면, 그림 사조가 별로 내 관심을 끌지않는 풍이고 그리 예술적이지 않다. 표지만 보면 무척 커다란 책인줄 알았지만 실재는 보통 책 보다 조금 작은 책이다. 카유보트 마음에 든다. 이 그림이 남성적인 시선에서 본것.
어릴때 좋아한 그림. 색감과 넓은 공간 때문
프랑스는 국가주의 영향 받았다. 영국은 시장주의,자유주의 전통을 발전시켜왔다. 라파엘전파와 인상파 그림은 근대성이라는 *142-라파엘전파-14,15세기 이탈리아 미술에서 영감제공받았음, 전성기 르네상스 이전,라파엘로 시대 이전의 *헌트, [샬롯섬의 여인]그림 1886-1905 *윤색~
*기타 이책은 글속 그림을 모두 소개하는 친절함. 카유보트와 드가 그림은 근대 미학이 만보자의 시선을 중심으로 *인상파는 또 르네상스에서 인습화한 원근접의 붕괴를 촉발한 혁신들이 근대성의 남성중심주의를 무너뜨리는
|
|
예전에 읽었던 그림에 대한 책들은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제외하고 그림 자체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였다. 공주형 저'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라던가 얼마전 대필 의혹을 치른 '그림 읽어주는 여자' 까지 그림에 관한 책은 무엇이든 막연한 호기심과 경외감의 대상인 미술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훌륭한 안내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었다.
이번에 읽은 '근대 그림속을 거닐다'는 책은 저자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선 흥미로웠고, 한 권의 책으로 서양 근대 미술 사회를 대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인상파와 라파엘전파의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정치,경제,문화적 고찰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작품들은 그 뿌리를 작품 탄생 시기의 역사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역사 의식이 없는 문학가와 예술가들의 작품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역사와 미술사조를 연결하고자 한 저자의 노력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책을 읽어가노라면 전에는 그림에서 읽지 못했던 여러 의미들을 찾아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모네의 [인상- 해돋이]라는 작품 에서 해돋이 풍경 너머로 보이는 부두에 선 크래인 같은 새로운 근대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고, 눈 앞에 들이 닥친 근대를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 라파엘전파에 속한 여러 화가들의 그림도 비로소 갇힌 의미를 벗어나 독자에게 하나의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사실 인상파와 라파엘전파는 근대를 부정한 방법에서 차이가 나는데 그런 두 사조를 '근대성'이라는 특징으로 엮어 설명해 내는 저자의 통합적 사고 방식은 자못 독특하며, 그가 여는 글에서 밝혔듯이 '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에 독자로서 동참한 것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
란.
|
|
|
문화비평가는 인상파와 라파엘전파의 그림을 어떻게 볼까? |
|
근대시대의 그림들과 그시대의 그림이 태어나게 된 배경까지 어떤면에서는 약간 어려우면서도,근대미술사에 대한 저자의 박식한 해설이 잘 조화를 이룬 책이었다. 처음 이책을 접할때,제목의 근대 그림속을 거닐다 란 것에서 그림에 대한 책으로 많은 그림들에 대한 설명이것거니 하며,막연하게 그림감상만 생각했었다. 그런데,이책은 그림감상뿐만,아니라,그 그림이 생겨나게 된 역사적 배경부터 , 그그림의 사조등에 대해서,아주 자세하고,학문적으로 다루어서,그림에 대한 책보다도, 근대 그림사조나 역사에 대한 글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내가 읽은 몇안되는 미술책들은 그림에 대한 집중조명이 주제였는데, 이책은 그림뿐만 아니라,그림의 사조나 역사적배경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고 보아야할 책이었다. 이책의 저자는 그림을 전공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 독특했다. 약간의 아이러니가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저자가 내가 읽은 다른 미술책의 저자들보다 더욱 그런 역사적 배경이나,사조등 이론적인 면에서 더 자세하고,약간 상급정도의 이해를 요하는 수준으로 쓰였다는 점이었다.
이책의 그림들에 대한 사조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는 어려워서,이해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어떤 것은 이미지니,상징이니,여러사조들의 설명들이 꽤나 어려워서,미술책인지 미학이론책인지,분간이 안될정도 였다. 하지만,부분부분 어려운 부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여태 내가 읽은 미술책들이 초보수준이었다면,이책은 중상급의 난이도가 높은 부분까지 다루어서, 읽고난후의 성취감이랄까 그런 부분에서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근대의 두조류인 인상파와 라파엘파에 대한 글이 주제이다. 사실 인상파는 많이 들어서 알지만,라파엘전파는 처음들어서 나는 생소했다. 여기서 라파엘전파는 라파엘전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의로 인상주의와 많이 다른 주의를 지향한다. 마네,모네,르느아르,시슬리,드가등의 인상파는 그림을 빛과 색채의 순간 효과에 초점을 맞춰서,가시의 세계를 정확하게 객관에 따라 있는그대로 묘사하는방식이라면, 라파엘 전파는 라파엘로 시대이전의 이탈리아 미술로 돌아가는 취지에서 출발하여 도덕성의 진지성과 성실성을 표현하고자 했는데,밀레이,러스킨,번존스등이 유명하다. 이들은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는데,인상주의는 근대의 시대에 과학발전을 그림에 그대로 반영하였다면,라파엘전파는 과학보다는 자연에 초점을 맞추었고, 여자그림도 인상주의는 섹슈얼하며,과학과 접목해서 묘사를 했다면, 라파엘전파는 여성을 좀더 성스럽고,정숙하게 여성을 남성의 부품으로 보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보았다고 할수 있겠다. 사실,여기에 적은 저자의 글들에서는 많은 부분들이 인상주의와 라파엘로전파등을 자세하게 적었는데,그의 글들이 좀 어려워서 이해를 못해서 그런지,여기다 딱 정확하게 구별해서 적지를 못하겠다. 그리고,내가 이해한 것도 명확한 이해가 아니라 어렴풋이 이해를 했다. 하지만,저자의 글들이 이해가 어려웠지만,기초적인 서술이 아니라,보다 차원이 높은 전문적인 수준의 글들이라 바르게 인상주의와 라파엘전파를 배우는데는 아주 좋은 책이었다. 어쩌면,두번정도 읽으면,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인상주의와 라파엘전파와그시대인 근대의 여러사회적 배경과 그림의 사조와 화가, 그림들을 공부할수 있게 해준 유익하고,재미난 책이었다. 그리고,페이지마다에 실린 명화들의 아름다움은 읽는내내 많은 감동을 준다. |
|
[서평]이택광의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이택광이 쓴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 전파의 숲 속으로>는 참 재미난 책이다. 그 안에는 그림만이 있지 않다. 역사가 있고 문학이 있으며 근대를 바라보는 비평이 있다. 우리는 흔히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에 관한 책을 접한다. 그래서 그림보기는 그림읽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바로 그 그림읽기의 한 방편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그 그림읽기라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어서 많은 수고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소개된 책은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리고 재미나게 읽힌다. 저자 이택광의 놀라운 필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대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다.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근대의 계급성을 끄집어내는 그의 시선에서 우리는 예술작품이 왜 당대의 전범(典範)이 되는지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인상파-근대를 넘어 새로운 지평으로 ![]() ▲콤포지션 8/칸딘스키 작 이 그림에서 우리는 음악의 선율을 느낀다. 이른바 공감각의 발견이다.
이 이미지 덕택으로 우리는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을 수 있다. 우리가 ‘졸라맨’을 통해 자연스럽게 실제 사람의 행동을 떠올리는 것도 이미지 때문이다. 이미지는 이처럼 하나의 반응을 일괄처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어떻게 제각각인 마음들이 하나의 대상을 보고 동일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이미지가 마음 안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주입된 것이라는 반증이다. 즉 이미지는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집단에 의한 것이다. 곧 사회의 산물인 것이다. 저자는 이 전제 위에서 그림읽기의 사례들을 들려준다. ![]() ▲올랭피아/마네 작 올랭피아의 모델은 매음녀다. 마네는 기존의 아카데미즘 회화의 전통을 거부하고 세속의 것을세속의 상징으로 그려 넣었다. 즉 이상화된 비너스의 이미지를 여인의 이미지 그대로 그렸다. 바로 근대의 태동이다.
“마네는 여인의 육체를 여신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고, 매음녀의 육체를 그대로 드러나도록 그렸다. 이것이 바로 근대의 등장이다.”(책 33쪽) 마네는 근대 시민사회와 함께 등장한 프롤레타리아의 출현을 알아챈 것이다. 마르크스가 주목한 산업임금노동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의 등장은 모든 예술의 혁명적 변화를 초래한 동인이기도 하였다. 모네의 <인상-해돋이>에 중요한 것은 일출이라는 자연 경관의 포착이 아니라, 그 뒤로 보이는 부둣가의 크레인이 상징하는 근대 문명의 도래라는 사실이다. 그는 인간의 노동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풍경을 화폭에 담았던 것이다.
![]() ▲인상-해돋이/모네 배가 떠있는 바다 뒤로 삐죽삐죽 푸르게 서있는 것은 부둣가의 크레인이다. 모네는 이 그림에서 근대와 함께 다가온 인간의 노동과 파괴된 자연의 인상을 담았다.
흔히 인상파는 ‘빛의 양감에 의한 대상의 변화와 그 순간의 포착’이라는 회화 기법상의 새로운 시도를 한 19세기 후반의 일군의 미술가들을 총칭한다. 그러나 저자는 르네상스 이래의 원근법의 소멸과 사진술과 일본회화에 영향을 받은 인상파의 회화적 특징에 주목하지 않는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인상파 화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파리 코뮌 이후의 세상에서 왼쪽에 피사로와 모네가 서 있다면 오른쪽에는 드가와 르누아르 같은 화가가 서 있다는 식의 접근이다. 쿠르베의 리얼리즘에서 시작된 근대 미술의 힘찬 속도는 기차라는 근대 문명의 이기들과 만나면서 그 행보를 더욱 빨리한다. 근대를 알리는 기적소리와 함께 기차를 타고 도착한 근대의 관객과 그림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책의 표지화이기도 한 카유보트의 <유럽의 다리>는 인상파의 전혀 다른 내면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의 다리/카유보트 작 이 그림의 신사는 생라자르 역의 기차를 보고 있고 기차는 곧 근대의 상징이다. 이제 인상파의 그림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한 근대의 관객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북프랑스로 가는 관문역인 생라자르 역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신사는 지금 기차를 보고 있고, 여인과 함께 걸어오고 있는 남자는 화가 자신이다. 그렇다면 화가를 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반대편에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는 견공이 실마리다. 유럽의 경우, 대도시에서 개 혼자 길거리로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말하자면 저 견공의 뒤에 주인이 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곧 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들,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탐닉하는 소비자들인 것이다.
라파엘전파-근대를 거꾸로 거슬러 유토피아를 찾아서 라파엘전파의 이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존 러스킨은 자연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통해 자연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림은 “자연을 보여주는 창문”이라고 정의했다. 한마디로 말해 “자연으로 돌아가자”이다. 근대에 사는 인간은 모두 병들었음으로 결국 자신의 고향인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 라파엘전파다. 아카데미즘의 인습을 거부하고 라파엘 이전 시기의 예술기법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이들은 이런 이름을 자신들에게 붙였다. 별 것도 아닌 듯이 보이지만, 19세기의 당시에 미술아카데미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전범으로 삼는 화가들이 라파엘과 미켈란젤로였다. 이렇게 대단한 라파엘을 버리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자니, 사제 간의 예의를 최고로 치던 빅토리아 영국에서는 그야말로 가르쳐준 선생에게 엿 먹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물려준 회화의 전통을 우습게 여겼다는 점에서 라파엘전파는 프랑스 인상파와 닮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후 다소 상이한 길을 선택함으로써, 서로 다른 예술 기법을 낳았다. 인상파가 오늘날 거론되는 추상주의를 낳았다면, 라파엘전파는 상징주의의 뿌리 노릇을 했다. 라파엘 이전의 이탈리아 미술이야말로 솔직하고 단순한 자연묘사가 돋보이는 가장 자연에 친숙한 예술형식이라 주장한 라파엘전파는 로세티, 헌트, 밀레이에 의해 결성되었고 후에 제임스 콜린스, 토마스 울너, 윌리엄 다이스 등이 합류하였다. 이들의 작품은 소설가 디킨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이른바 고전주의 계열의 이상미를 무시했고, 사실주의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다루는 것이 불경스럽다는 이유였다. 러스킨은 이런 비판에 대항에서 이들을 옹호했고 그들의 후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기성세대화 되어갔고 라파엘전파의 지조를 지킨 이는 헌트 한 사람뿐이었다. 이어 후기 라파엘전파 운동의 기수는 번 존스로 대표되는데, 초기작에 비해 확실히 진부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고용된 양치기/헌트 이 그림은 언뜻 사랑하는 연인을 그린 것 같지만 여인의 어깨를 감싼 양치기의 손에는 나방이 들려있고 그 나방은 해골문양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에드가란 인물의 대사를 묘사하고 있는데, 해골무늬 나방은 죽음을 상징한다. 죽음과 사랑은 중세의 주제의식이다. 중세의 표현양식을 통해 문학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 라파엘전파의 모토였다.
인상파가 근대의 산업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근대의 뒷골목으로 들어가 노동자 창녀 등과 만나던 때에, 라파엘전파는 근대의 산업화가 멀리 쫓아버린 자연을 찾기 위해 상상력의 터전으로 옮겨갔다 할 수 있다. “혼탁한 현실이야말로 투명한 예술에 대한 요청”이라 주장한 러스킨의 입장이 곧 라파엘전파의 생각이었다. 문명이 타락할수록 예술이 더욱 꽃을 피운다는 생각이 곧 라파엘전파의 윤리였다. 즉 그들의 예술론은 근대 예술의 속성을 해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근대 예술에 대항하기 위해 근대 이전의 세계를 상상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인상파가 근대를 넘어선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갔다면, 라파엘전파는 근대가 몰고 온 온갖 병폐의 징후들을 제거하고 치료하기 위해 상상력의 세상에서나 가능한 중세 이전의 유토피아로 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화의 상징처럼 놓인 철길 위를 기차가 멈추지 않고 달리듯, 문명의 질주는 멈출 줄 몰랐고 자연으로 돌아가기란 참으로 요원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럼으로 라파엘전파는 점차 근대의 정거장에 내려 쓸쓸한 현실과 조우하고 만다. 다만 그들이 근대에 대해 품었던 윤리의식과 이상사회로의 염원은 지금도 아름다운 무엇임에는 틀림이 없다.
![]() ▲생 라자르 역/모네 노르망디 등 북프랑스로 가는 관문역인 생 라자르역은 근대의 관객들로 언제나 넘쳐나는 곳이었다. 모네는 '전원으로 가는 기차' 등 근대의 상징인 기차를 즐겨 그린 대표적인 화가다. |
|
근대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는가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 전시회를 다녀왔다. 샤갈전을 놓쳤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데다, 이 책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을 읽으면서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그의 그림이 더욱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전시회에 관한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하고, 오랜만에 그림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을 이야기해 본다. '정물화는 소유의 욕망을 표현하며, 그래서 자본주의에 가장 적절한 장르' 19세기 이후 등장한 서양 미술의 여러가지 성향들 중 인상파와 라파엘전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이 책은, 단지 두 가지 그림 스타일이 가지는 차이점을 단순 비교한 책은 아니다. 그런 외형적인 차이점이 아니라 둘 사이에 차이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 19세기 산업화와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사회의 변화들, 바로 근대라는 것에 대처하는 하는 그들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혁신적인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산업화는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대량생산은 거대 자본주의의 시작을 의미했으며 '노동', '노동자'라는 의미가 부각되기 시작하는 서양의 근대는 어쩌면 혼란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요즘의 인터넷 시대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사회환경의 변화는 꽤나 역동적이고 혼란스러웠을 법하다. 그리고 예술가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더욱 큰 영향을 믿쳤을 것이다. 그때 등장한 인상파와 라파엘전파는 근대를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여러 시선 중 하나였다. 쿠르베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은 기존 '아카데미'의 전통 화법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그림들을 그려나간다. 그들은 그 안에 문학성이나 서사성을 담아 내던 전통 미술을 벗어 버리고 그림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그리는 그림, 빛과 색채의 변화의 따른 '찰라'의 느낌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혹은 작가의 유토피아적 세계관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라파엘전파 화가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기존의 형식을 비판하고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 부분은 서로 닮아있다. '평온한 자연풍경이나 중세 신화의 세계를 주로 담아낸 라파엘전파와 달리 인상파는 처음부터 역동성 넘치는 도시의 현실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 마주칠 수 없는 평행선을 걸어갔는데, 그것은 현실을 마주하는 자세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말해 라파엘전파는 근대 예술에 대항하기 위해 근대 이전의 세계를 이상향으로 보고 자연의 모습, 문학작품들을 윤리적이고 미적인 아름다운으로 표현하는 것을 최선으로 여겼다. 그들에게 그림은 문자 이미지의 재현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얼마나 정확히 자신들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지가 중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상파는 현실을 목적론에 근거한 진화주의의 시선으로 보았다.(그렇지 않은 화가들도 있지만) 그들의 그림에 소재는 문학작품이나, 윤리적인 메시지가 담긴 것들이 아니었다. 도시 외곽의 풍경, 노동자들. 공장 등 당시 주변에서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것들이 그들 그림의 단골 소재였고 그들은 그것들을 통해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담아냈다. 현실을 마주 하는 자세의 차이, 바로 그것이 라파엘전파와 인상파를 나누는 경계선이 된 것이다. 근대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그들을 서로 다른 길을 가게한 것처럼 지금 사회도 그때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웹1.0의 시대를 넘어 웹2.0의 시대로 다시 웹3.0의 시대가 눈앞에 와 있는 시대에, 빠르게 변화는 사회를 과연 어떠한 가치관가 시선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지고민이 된다.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지도 못한 채 더욱 큰 변화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 어느 작가의 말처럼 거대한 이데올로기, 가치관이 지배하던 시대는 가고 수백, 수천가지의 다양성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근대 시대 그림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던 화가들처럼 자신만의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세울 수 있기를. |
|
||||||||
|
19세기 미술사에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론 사진의 발견과 사진기의 보편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19세기 중후반 인상파의 등장 또한 미술 뿐만 아니라 음악에까지 예술분야 전반에 하나의 사조를 형성하게 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책은 이러한 인상파의 탄생배경, 그들의 사상과 작품에 대해 매우 심도깊게 다루고 있는데 작품 자체의 해설보다는 비슷하면서도 결코 같지 않았던 인상파 화가들의 성향과 예술적 지향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책의 지은이가 미술을 전공한 학자가 아니라는 점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 또한, 인상파 화가의 작품세계를 넘어 미술사적인 내용전개가 광범위하게 펼쳐지다보니 비전공자인 나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신분과 개성이 달랐던 인상파 대표화가들의 출발점과 지향점,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라파엘전파 등 19세기 미술사조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점은 이 책만이 가진 힘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