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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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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일러 그냥 이미지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은 이미지이기에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동시에 그 즐거움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작가의 후기 중에서)처음부터 다 읽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그저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화가와 그림을 찾아  읽어볼 생각이였다.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빠져 드는 매력이란.이런 설명을 애써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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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일러 그냥 이미지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은 이미지이기에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동시에 그 즐거움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작가의 후기 중에서)

처음부터 다 읽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그저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화가와 그림을 찾아  읽어볼 생각이였다.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빠져 드는 매력이란.
이런 설명을 애써 하는 까닭은,책을 목차대로 읽어낸 것이 아님을 밝히기 위함이 첫번째이고.그렇게 읽은 까닭에 읽는 사이 느꼈던 혼란에 대해 다시금 마음이 가다듬어 질 수 있었기때문이다.
느낌으로 그림을 좋아하고,딱딱한 이론적 접근 보다 그림에 얽힌 에피소드를 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저자의 말처럼 그림이 주는 이미지에 홀릭한 탓일 게다.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길 권하고 있었다.아마도 플로베르의 소설 '감정 교육' 류의 소설을 만났을 때 이해의 폭이 더 넓어 질 수 있다는 힌트였을 지도 모르겠다. 인상파가 활동 하던 시대의 다른 소설에서도 떠올려 지는 그림들은 있었지만,플로베르의 소설 만큼 많았을까 싶다. 다시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를 찾아 읽은 까닭이기도 하다.
이 책 덕분에 생긴 부작용(?)이 있다면 그동안 아름답게 느꼈던,혹은 나만의 감성으로 바라 보았던 그림들에 대해 날카롭고 비판적인 역사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일게다.예술은 예술로 바라 봐야 한다와 그렇지 않다 라는 견해는 어느 한쪽이 오른 견해라 말하긴 힘들다. 저자 역시 꼭 그렇게 바라 보길 강권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림에 대해 조금더 알고 싶다면,그림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진리가 얼마나 많은가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이라면 기꺼이 동참할 것을 말하고 있을 뿐...

마네,<보트놀이>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마네의 <보트놀이>를 보면서 그저 한가로움이 느껴지는 것을 감상으로 생각하면 여기서 멈춰도 된다.
그런데 이 그림의 바닷색깔이 정말 저와 같았을까? 아니면 인상파들이 과도하게 색감을 칠한 것일까 하는 의금증이 들었다면,인문학적 시선으로 <보트놀이>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면 되는 것이다. 마네의 그림에서 바닷물이 쪽물인 것은 당시 아르장퇴유에 집결해 있던 염색공장들이 모여 있었기에 공장에서 배출한 페수로 인해 강물이 쪽빛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읽고 나면,그림이 사실 아름답게만 보이기란 쉽지 않다.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그러나 어쩌겠는가? 사실인 것을.(그래서 모르는게 약이란,말도 있는 것일테지..)

"그림은 사유의 산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림은 우리에게 입만 나불거리지 말고 머리를 쓰라고 말하며 거기 걸려 있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너무도 정직한 이 충고에 살짝 기분이 나빴을 법도 한데,지금은 어느정도 수긍이 되는 걸 보면..나 역시 그림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그림이란 마음가는 대로 보면 좋다는 말에 홀릭해서 그림에 빠져 들었지만
이제는 머리를 쓰라는 말에 서도 그림이 주는 매력을 느낀다.
그림이 주는 매력이 팔색조처럼 변하는 덕분에 여전히 사랑하는 대상일 테지만 말이다.

각설하고,인상파를 이해하기 위해선 파리의 19세기 혹은 근대화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임을 배웠다. 자신은 인상파회원이 아니라고 우겼던 마네,그러나 그가 어째서 인상파의 수장격으로 대접받고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w*******i 2013.11.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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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잘난척 안하는 책, 착한 저자
"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잘난척 안하는 책, 착한 저자" 내용보기
예전 같으면 이런 주제는 잘안보지만 최근 가끔 보게된다. 이 주제는 말을 까다롭게 하는 책이 많아 불만이다. 이상한 말이 많다. 그 전공이 아니면 듣도보도 못한 단어와 주제를 어렵게 많이 쓰는데(예를들면 무슨 미학 책이라면서 숭고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오는 책, 숭고! 그 단어도 좀 우리나라 말로 풀어라. 서양에서 하는 말 그대로 옮기지말고) 이책은 안그렇다. 물론 그런 책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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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이런 주제는 잘안보지만 최근 가끔 보게된다. 이 주제는 말을 까다롭게 하는 책이 많아 불만이다. 이상한 말이 많다. 그 전공이 아니면 듣도보도 못한 단어와 주제를 어렵게 많이 쓰는데(예를들면 무슨 미학 책이라면서 숭고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오는 책, 숭고! 그 단어도 좀 우리나라 말로 풀어라. 서양에서 하는 말 그대로 옮기지말고) 이책은 안그렇다. 물론 그런 책을 앞에서 봤기 때문에 읽기 나았을수도 있지만,작가님이 예전 같으면 작가님을 알리가 없지만 작년 가을 부터 어느 종편에 토론 패널로 1주에 1번 나오셔서 얼굴이 익다. 경상도 분인데 웃음소리가 달리는 말  처럼 독특하고 경쾌해서 얼굴 보고 판단 안해야겠다.(? 흠....얼굴보다 착하신 분)

재밌게 읽었다. 쉽게 물 흐르듯 글이 자연스럽다. 근대라는 독특한 시대를 미술에서 인상파와 라파엘 전파를 비교하면서 설명한다.

인상파는 이래저래 대개 보고들었겠으나 다른 저 라...파는 배운적이 없다. 미술전공이 아니라면, 그림 사조가 별로 내 관심을 끌지않는 풍이고 그리 예술적이지 않다. 표지만 보면 무척 커다란 책인줄 알았지만 실재는 보통 책 보다 조금 작은 책이다.  카유보트 마음에 든다. 이 그림이 남성적인 시선에서 본것.  

 

어릴때 좋아한 그림. 색감과 넓은 공간 때문

 


 

프랑스는 국가주의 영향 받았다. 영국은 시장주의,자유주의 전통을 발전시켜왔다. 라파엘전파와 인상파 그림은 근대성이라는
공통 상황,조건에 각기 다르게 대응한 양국 예술가들의 태도를 보여주고있었다.
*장삼이사
*마네 올랭피아(1865)근대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
*시뮬라크르
*키치
[아케이드 프로젝트]
*화풍,사조를 설명하면 지루한데 그러나 잘모르는 프랑스 역사를 그림 시대로 풀어 재밌게 설명함
*107,108
*106,109페이지 두 비교 그림 배치는 좋은 배려다.(터너의 그림은 기차에 대한 화가의 느낌,모네는 기차 자체에 관심)
*근대를 주제로 한 역사,미술 교양책
아주 재밌어 막힘없고 지루하지않다.

*142-라파엘전파-14,15세기 이탈리아 미술에서 영감제공받았음, 전성기 르네상스 이전,라파엘로 시대 이전의
이탈리아 미술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붙인 이름,....기독교의 상상력, 중세의 신화를 주제로 다룬 이들 그림은
15세기 르네상스 초기 분위기를 근대에 맞게 되살려내는 작업이이었다.(내 취향아님, 인상파가 나음)
중세의 표현양식을 통해 문학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 모토.

*헌트, [샬롯섬의 여인]그림 1886-1905
*헌트와 라파엘전파들은 근대 기술문명에 부정적 태도, 반대로 마네와 인상파들은 기술의 효과를 자신들의
기법으로 발전시킴.
인상파는 과학에 기반을 둔 세계관을 채택, 라...파는 신화, 신비주의 세계관으로 과학 기반의 세계관을 제어
하려했음.
210~214,225,226 모네와 피사로의 풍경 그리는 방식에서 정치성의 차이를 나타냄.
238,240,243,피사로는 모네와 달리 근대성의 재현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정면대결했다.....보불전쟁 때 피사로는
모네와 같이 영국으로 도피, 영국의 풍경화들을 감상했다.
262-인상파는 현상 자체에 본질이 내재해 있다고 봤다....명멸하는 일상생활의 현상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미학의
태도
라파엘전파는 진정한 역사의 본질은 눈앞의 역사가 아리나 그 현상 너머에 있다는 것, 인상파는 구체적인
서사 위에서 형식을 실험.
라...파는 서사 자체를 신화에서 빌려오는 것.
132~133,.....인상파가 추상주의를 낳았다면 라파엘전파는 상징주의의 뿌리 노릇을 했다.

*윤색~
*카유보트의 유럽의 다리(구경꾼의 시대,근대 문화 변화의 도래 알림) 그외 카유보트 그림 좋음, 터너, 모네 좋음
파리코뮌 이후 주인공으로 등장한 중간계급의 시선으로 모든 사물을 재해석하고있다.
중간계급이란 부르주아를 동경하면서 경멸하는 이중성을 띄는 세력이다.
카유보트와 인상주의 화가의 모토는 과학에 근거한 세계관, 일본그림에서 영향받은 원근법 소멸.


*쿠르베의 화가의 화실- 어린시절 좋아했던 그림.

*기타 이책은 글속 그림을 모두 소개하는 친절함. 카유보트와 드가 그림은 근대 미학이 만보자의 시선을 중심으로
여성들은 구경거리에 지나지않았다.

*인상파는 또 르네상스에서 인습화한 원근접의 붕괴를 촉발한 혁신들이 근대성의 남성중심주의를 무너뜨리는
역할도 했다는 것이다...자연에 대한 두 유파의 태도 차이,(289)
*65,66, ...마네의 올랭피아가 당시 파리지앵들 심사를 거스른 그 무엇은 계급이었다. 올랭피아는 노동계급의
우의였다.
*급격하게 변하는 19세기 중반 프랑스 정치사와 화가들의 관계등 클로즈업 코너로 중요역사를 요약 설명함.

 

매혹의 질주,근대의 횡단-시공간이나 생활문화 등 다.. [0] | 책 리뷰 2012-01-30 16:28

k***9 2013.03.14.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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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그림속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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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그림에 대한 책들은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제외하고 그림 자체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였다. 공주형 저'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라던가 얼마전 대필 의혹을 치른 '그림 읽어주는 여자' 까지 그림에 관한 책은 무엇이든 막연한 호기심과 경외감의 대상인 미술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훌륭한 안내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었다.   이번에 읽은 '근대 그림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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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그림에 대한 책들은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제외하고

그림 자체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였다. 공주형 저'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라던가

얼마전 대필 의혹을 치른 '그림 읽어주는 여자' 까지 그림에 관한 책은 무엇이든

막연한 호기심과 경외감의 대상인 미술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훌륭한 안내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었다.

 

이번에 읽은 '근대 그림속을 거닐다'는 책은 저자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선 흥미로웠고, 한 권의 책으로 서양 근대 미술 사회를 대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인상파와 라파엘전파의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정치,경제,문화적 고찰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작품들은 그 뿌리를 작품 탄생 시기의 역사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역사 의식이 없는 문학가와 예술가들의 작품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역사와 미술사조를 연결하고자 한 저자의 노력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책을 읽어가노라면 전에는 그림에서 읽지 못했던

여러 의미들을 찾아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모네의 [인상- 해돋이]라는 작품

에서 해돋이 풍경 너머로 보이는 부두에 선 크래인 같은 새로운 근대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고, 눈 앞에 들이 닥친 근대를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 라파엘전파에 속한 여러 화가들의 그림도 비로소 갇힌 의미를 벗어나

독자에게 하나의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사실 인상파와 라파엘전파는 근대를 부정한 방법에서 차이가 나는데

그런 두 사조를 '근대성'이라는 특징으로 엮어 설명해 내는 저자의 통합적 사고 방식은

자못 독특하며, 그가 여는 글에서 밝혔듯이 '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에 독자로서 동참한 것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

 

 

 

란.

 

 

m****e 2007.03.28.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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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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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는 세 가지 목소리가 있다고 말한다. 작가의 목소리, 독자의 목소리, 인류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예술가는 우리에게 모든 예술의 필수 요소인 인류의 목소리를 일깨우고 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내기에 적합한 주제를 던져 준다. 여기 '근대 그림 속에 거닐다'는 그런 인류의 목소리에 대한 그림으로부터의 해석으로 점철되어 있다. 한 개인과 그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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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는 세 가지 목소리가 있다고 말한다. 작가의 목소리, 독자의 목소리, 인류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예술가는 우리에게 모든 예술의 필수 요소인 인류의 목소리를 일깨우고 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내기에 적합한 주제를 던져 준다.

여기 '근대 그림 속에 거닐다'는 그런 인류의 목소리에 대한 그림으로부터의 해석으로 점철되어 있다. 한 개인과 그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단 사이의 미묘한 갈등과 반목 그리고 같이 어울릴 수 밖에 없었는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묘사한다.

그리고 또한, 예술은 우리의 본성에 있다. 즉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우리의 피와 뼈 속에 있고, 오늘날 종종 이야기하듯 우리의 뇌와 유전자 속에 있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이런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하는데, 심지어 예술은 성인의 뇌 조직에도 반영된다.

인간 행동의 열쇠가 '유전자'에 있다면 그것은 개인, 남녀, 인종, 연령의 차이를 인정하게 되고 심지어 유전적 결정론을 끌어들여 사회, 정치적 불평등을 합리화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교육과 환경을 열쇠로 보는 입장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면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의 풍부한 다양성 위에 획일적인 유토피아의 장막을 씌워 버릴 수 있다.

어떤 입장이든 그 속에는 서로 양립할 수 밖에 없는 미묘한 연결고리들이 움직이고 있다. 19세기 유럽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과연 동양적 시선에는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대학원 2학년 때 유럽 배낭여행 중에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몽마르트 언덕'에서 열심히 친구와 같이 사진 찍던 모습이 떠 올랐다. 그리고 독일에서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장벽에서의 사진, 그림보다 더 아름답게 펼쳐진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멋진 시골 풍경들. 로마의 고전적인 유적지 등등..

유럽은 나에게는 동경이었고 그 당시에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더 마음 깊이 느끼고 있다. 시대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이제는 동양이 전 세계적인 흐름에서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 중국과 한국을 기점으로 한 동남아 시장의 급성장은 문화, 예술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예술이 시대를 지배할 수는 없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 속에 예술은 여러가지의 형태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겨지는 것일꺼다.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문화의 뒤엉킴 속에 예술은 한자리를 차지하고 우리들의 마음속에 새겨진다. 그런 반복된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예술은 그때 그때 시대의 변화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자신도 변화를 거듭해서 생명을 이어왔다.

과거 유럽에서 산업혁명과 같이 무난히도 아름답게 피었던 예술적인 모습들이 이제는 우리들의 손에서 피게 되리라 본다. 많은 이들이 예상한 그 이상보다 더 빨리 세계적인 중심이 변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우리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일등 시민과 일등 경제력이 어울릴 수 있는 유전자적 사고를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이 중요한 시기이다. 그 어느때보다도 말이다.

 

 

 

http://blog.naver.com/c8748/120035949984

 

 

 

c***8 2007.09.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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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그림으로 19세기말 파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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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가는 인상파와 라파엘전파의 그림을 어떻게 볼까?근대 이전의 그림은 신화적 상징과 서사와 재현을 보여준다고 하면 프랑스의 인상파는 이야기를 빼고빛과 그림자의 형식을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하면서 근대적 시각이 보여주는 모습을 나타내려 한다고 한다. 모더니즘이란 기호가 투명하게 대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미학사상이다. 그림으로 이런 깨달음을 직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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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가는 인상파와 라파엘전파의 그림을 어떻게 볼까?
근대 이전의 그림은 신화적 상징과 서사와 재현을 보여준다고 하면 프랑스의 인상파는 이야기를 빼고
빛과 그림자의 형식을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하면서 근대적 시각이 보여주는 모습을 나타내려 한다고 한다. 모더니즘이란 기호가 투명하게 대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미학사상이다. 그림으로 이런 깨달음을 직접적으로 창작에 원용한 경우가 인상주의 이다. 쉴 새 없이 명멸하는 마음속의 이미지들을 화폭에 붙잡아두는 것이다. 모더니즘은 이미지와 대상의 불일치라는 전제에서 출발했지만 모더니즘을 떠받치고 있는 기호들은 자기들 끼리 투명한 약속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미지의 작용을 세속화 하는것이면서도 동시에 다시 신비화 하는것이다. 정물화는 자본주의에 적절한 장르이면서 `소유의 욕망`을 표현하고 욕망은 언제나 시선의 문제를 내포한다. 이런 시선을 `특수한 보기의 방식`이라고 함.
르네상스의 여자의 그림들은 일종의 `제품 카탈로그`란 표현은 특이하고 그러면 티치아노의 비너스의 그림이 `예술`로 받아들일수 있는 원리는 세속의 것을 신화속 이야기인 양 표현해 주는것이다 라고 하는데 공감이 간다.
현대 예술에서 길가에 비닐봉지와 미술관에 걸린 비닐봉지를 구분해 주는것은 `실재에 대한 정념`의 유무라고 하는것은 현대 미술을 보는 하나의 열쇠가 되는거 같다.
인상파에 객관에 따른 묘사란 변화무쌍한 빛과 재질의 충돌을 그려낸다는 뚯이다.
근대의 도착을 알리는 대표적인 상징물은 기차이며 영국인에게 기차는 곧 근대 영국의 성취를 의미하고 영국은 프랑스 처럼 전통을 싹쓸이 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기에 전통을 통해 새것을 평가하는 역류현상이 보인다. 영국인은 기계를 과거보다 성능이 좋아진 편리한 도구 정도로 봤다면 프랑스인은 마법 세계에서 날아온 괴물정도로 생각했다 (즉 신비한 구경거리로 생각함) 이런차이는 영국화가 터너와 프랑스 화가 모네를 서로 갈라 놓는다.
근대의 회화 형식을 외부에서 강제하는것은 도시의 만보자들 이다. 중간계급은 부르주아를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경멸하는 이중성을 띠는 위치의 세력이다.
인상파는 추상주의를 낳고 라파엘전파는 상징주의 뿌리 노릇을 한다고 함
러스킨은 자연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이 관찰에 근거한 시각화만이 진리를 드러낸다고 하며 다른말로 사물을 슬쩍 보지 말고 보고 또 보고 하다보면 그 속에 사물의 결 같은게 보인다는 뜻이다.즉 세상의 기원 뿐만 아니라 종말까지 담아야 된다고 하는것이고 이런 것을 할수 있는 예술기법이 상징이다.
알레고리는 의인화된 추상성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구조이며 상징은 알레고리에서 이야기를 잘라낸것이다. 상징주의의 정수는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가 하나로 통합되는 조응관계이다
러스킨의 예술론은 근대 예술 행위에 대항하기 위해 근대 이전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것이 목적이며 예술과 기법에 초점을 맞춘 인상파와 달리 예술과 도덕의 문제를 예술론의 중심에 놓았다. 그의 주장은 자연성의 구현이 순수예술 본연의 임무이지 본성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철지난 독일 낭만주의의 반복일 뿐이다. 라파엘전파는 영국에서 기독교의 상상력과 중세의 신화를 주로 다루면서 르네상스 초기의 분위기를 근대에 맞게 되살려내는 작업을 한것을 말한다. 헌트와 라파엘전파는 대체로 기술문명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마네를 필두로한 인상파들은 기술의 효과를 적극 자신들의 기법으로 발전시켰다
러스킨에서 그림이 창문이었다면 마네에게 그것은 비대칭의 거울이었다.
라파엘전파는 모토는 중세의 표현양식을 통해 문학 이미지를 재현하는것이다.
그림은 글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많은것을 전달해 주면 그 시대를 다시 리플레이 해주는거 같다. 이택광씨 같은 시각의 그림보기도 상당히 재미는 있는거 같다.

YES마니아 : 골드 p******n 2011.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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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미술사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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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대의 그림들과 그시대의 그림이 태어나게 된 배경까지 어떤면에서는 약간 어려우면서도,근대미술사에 대한 저자의 박식한 해설이 잘 조화를 이룬 책이었다. 처음 이책을 접할때,제목의 근대 그림속을 거닐다 란 것에서 그림에 대한 책으로 많은 그림들에 대한 설명이것거니 하며,막연하게 그림감상만 생각했었다. 그런데,이책은 그림감상뿐만,아니라,그 그림이 생겨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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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대의 그림들과 그시대의 그림이 태어나게 된 배경까지 어떤면에서는

약간 어려우면서도,근대미술사에 대한 저자의 박식한 해설이 잘 조화를 이룬

책이었다.

처음 이책을 접할때,제목의 근대 그림속을 거닐다 란 것에서 그림에 대한

책으로 많은 그림들에 대한 설명이것거니 하며,막연하게 그림감상만 생각했었다.

그런데,이책은 그림감상뿐만,아니라,그 그림이 생겨나게 된 역사적 배경부터 ,

그그림의 사조등에 대해서,아주 자세하고,학문적으로 다루어서,그림에 대한 책보다도,

근대 그림사조나 역사에 대한 글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내가 읽은 몇안되는 미술책들은 그림에 대한 집중조명이 주제였는데,

이책은 그림뿐만 아니라,그림의 사조나 역사적배경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고

보아야할 책이었다.

이책의 저자는 그림을 전공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 독특했다.

약간의 아이러니가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저자가 내가 읽은 다른 미술책의 저자들보다

더욱 그런 역사적 배경이나,사조등 이론적인 면에서 더 자세하고,약간 상급정도의 이해를

요하는 수준으로 쓰였다는 점이었다.

 

이책의  그림들에 대한 사조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는 어려워서,이해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어떤 것은 이미지니,상징이니,여러사조들의 설명들이 꽤나 어려워서,미술책인지

미학이론책인지,분간이 안될정도 였다.

하지만,부분부분 어려운 부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여태 내가 읽은 미술책들이

초보수준이었다면,이책은 중상급의 난이도가 높은 부분까지 다루어서,

읽고난후의 성취감이랄까 그런 부분에서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근대의 두조류인 인상파와 라파엘파에 대한 글이 주제이다.

사실 인상파는 많이 들어서 알지만,라파엘전파는 처음들어서 나는 생소했다.

여기서 라파엘전파는 라파엘전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주의로

인상주의와 많이 다른 주의를 지향한다.

마네,모네,르느아르,시슬리,드가등의 인상파는 그림을 빛과 색채의 순간 효과에

초점을 맞춰서,가시의 세계를 정확하게 객관에 따라 있는그대로 묘사하는방식이라면,

라파엘 전파는 라파엘로 시대이전의 이탈리아 미술로 돌아가는 취지에서 출발하여

도덕성의 진지성과 성실성을 표현하고자 했는데,밀레이,러스킨,번존스등이 유명하다.

이들은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는데,인상주의는 근대의 시대에

과학발전을 그림에 그대로 반영하였다면,라파엘전파는 과학보다는 자연에 초점을 맞추었고,

여자그림도 인상주의는 섹슈얼하며,과학과 접목해서 묘사를 했다면,

라파엘전파는 여성을 좀더 성스럽고,정숙하게 여성을 남성의 부품으로 보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보았다고 할수 있겠다.

사실,여기에 적은 저자의 글들에서는 많은 부분들이 인상주의와 라파엘로전파등을

자세하게 적었는데,그의 글들이 좀 어려워서 이해를 못해서 그런지,여기다

딱 정확하게 구별해서 적지를 못하겠다.

그리고,내가 이해한 것도 명확한 이해가 아니라 어렴풋이 이해를 했다.

하지만,저자의 글들이 이해가 어려웠지만,기초적인 서술이 아니라,보다 차원이

높은 전문적인 수준의 글들이라 바르게 인상주의와 라파엘전파를 배우는데는

아주 좋은 책이었다.

어쩌면,두번정도 읽으면,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인상주의와 라파엘전파와그시대인 근대의 여러사회적 배경과 그림의 사조와 화가,

그림들을 공부할수 있게 해준 유익하고,재미난 책이었다.

그리고,페이지마다에 실린 명화들의 아름다움은 읽는내내  많은 감동을 준다.

s******2 2007.03.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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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바라보는 두 시선-인상파와 라파엘전파
"근대를 바라보는 두 시선-인상파와 라파엘전파" 내용보기
[서평]이택광의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이택광이 쓴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 전파의 숲 속으로>는 참 재미난 책이다. 그 안에는 그림만이 있지 않다. 역사가 있고 문학이 있으며 근대를 바라보는 비평이 있다. 우리는 흔히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에 관한 책을 접한다. 그래서 그림보기는 그림읽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바로 그 그림읽기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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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택광의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이택광이 쓴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 전파의 숲 속으로>는 참 재미난 책이다. 그 안에는 그림만이 있지 않다. 역사가 있고 문학이 있으며 근대를 바라보는 비평이 있다. 우리는 흔히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에 관한 책을 접한다. 그래서 그림보기는 그림읽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바로 그 그림읽기의 한 방편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그 그림읽기라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어서 많은 수고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소개된 책은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리고 재미나게 읽힌다. 저자 이택광의 놀라운 필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대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다.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근대의 계급성을 끄집어내는 그의 시선에서 우리는 예술작품이 왜 당대의 전범(典範)이 되는지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인상파-근대를 넘어 새로운 지평으로

 

 ▲콤포지션 8/칸딘스키 작 이 그림에서 우리는 음악의 선율을 느낀다.

이른바 공감각의 발견이다.


저자 이택광은 칸딘스키의 그림 <콤포지션 8>에서 음악의 선율을 듣는다. 김광균의 ‘외인촌’이란 시에서 만난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와 같은, 소위 공감각에 대한 발견이다. 시인은 보통 미학에서 말하는 ‘정서’라는 것을 전달하기 위하여 일종의 도구를 사용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미지이다. 시각이미지 등 수많은 이미지 중에서 미학자나 철학자가 다루는 이미지는 주로 마음속의 이미지이고, 어떻게 보면 이 마음속의 이미지를 놓고 치고받고 싸워온 것이 현대미학이자 언어철학이라 저자는 말한다.

 

이 이미지 덕택으로 우리는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을 수 있다. 우리가 ‘졸라맨’을 통해 자연스럽게 실제 사람의 행동을 떠올리는 것도 이미지 때문이다. 이미지는 이처럼 하나의 반응을 일괄처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어떻게 제각각인 마음들이 하나의 대상을 보고 동일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이미지가 마음 안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주입된 것이라는 반증이다. 즉 이미지는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집단에 의한 것이다. 곧 사회의 산물인 것이다. 저자는 이 전제 위에서 그림읽기의 사례들을 들려준다.

 

 ▲올랭피아/마네 작 올랭피아의 모델은 매음녀다.

마네는 기존의 아카데미즘 회화의 전통을 거부하고 세속의 것을세속의 상징으로 그려 넣었다.

즉 이상화된 비너스의 이미지를 여인의 이미지 그대로 그렸다.  바로 근대의 태동이다.


맨 처음 만나는 마네의 ‘올랭피아’는 근대성의 상징이다. 마네의 붓질은 당대의 전통과 인습을 거부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원했든 그렇지 않는 미술사의 혁명적 전환이라는 인상파의 거두가 되었던 것이다. 마네는 당대의 주류였던 아카데미 회화들의 이상화된 여성상을 비웃으며, 비너스의 이미지를 졸지에 매음녀로 바꾸어 버렸다. 즉 세속의 것을 신화 속 상징으로 표현하던 기존의 예술 인습을 뒤엎고, 세속의 것을 세속의 상징으로 그렸다. 여기에서 근대는 태동하였던 것이다

 

“마네는 여인의 육체를 여신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고, 매음녀의 육체를 그대로 드러나도록 그렸다. 이것이 바로 근대의 등장이다.”(책 33쪽)

 

마네는 근대 시민사회와 함께 등장한 프롤레타리아의 출현을 알아챈 것이다. 마르크스가 주목한 산업임금노동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의 등장은 모든 예술의 혁명적 변화를 초래한 동인이기도 하였다. 모네의 <인상-해돋이>에 중요한 것은 일출이라는 자연 경관의 포착이 아니라, 그 뒤로 보이는 부둣가의 크레인이 상징하는 근대 문명의 도래라는 사실이다. 그는 인간의 노동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풍경을 화폭에 담았던 것이다.

 

인상-해돋이/모네  배가 떠있는 바다 뒤로 삐죽삐죽 푸르게 서있는 것은 부둣가의 크레인이다.

모네는 이 그림에서 근대와 함께 다가온 인간의 노동과 파괴된 자연의 인상을 담았다.


 

흔히 인상파는 ‘빛의 양감에 의한 대상의 변화와 그 순간의 포착’이라는 회화 기법상의 새로운 시도를 한 19세기 후반의 일군의 미술가들을 총칭한다. 그러나 저자는 르네상스 이래의 원근법의 소멸과 사진술과 일본회화에 영향을 받은 인상파의 회화적 특징에 주목하지 않는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인상파 화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파리 코뮌 이후의 세상에서 왼쪽에 피사로와 모네가 서 있다면 오른쪽에는 드가와 르누아르 같은 화가가 서 있다는 식의 접근이다.

 

쿠르베의 리얼리즘에서 시작된 근대 미술의 힘찬 속도는 기차라는 근대 문명의 이기들과 만나면서 그 행보를 더욱 빨리한다. 근대를 알리는 기적소리와 함께 기차를 타고 도착한 근대의 관객과 그림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책의 표지화이기도 한 카유보트의 <유럽의 다리>는 인상파의 전혀 다른 내면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의 다리/카유보트 작 이 그림의 신사는 생라자르 역의 기차를 보고 있고

기차는 곧 근대의 상징이다.

이제 인상파의 그림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한 근대의 관객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북프랑스로 가는 관문역인 생라자르 역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신사는 지금 기차를 보고 있고, 여인과 함께 걸어오고 있는 남자는 화가 자신이다. 그렇다면 화가를 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반대편에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는 견공이 실마리다. 유럽의 경우, 대도시에서 개 혼자 길거리로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말하자면 저 견공의 뒤에 주인이 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곧 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들,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탐닉하는 소비자들인 것이다.

 

라파엘전파-근대를 거꾸로 거슬러 유토피아를 찾아서

 

라파엘전파의 이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존 러스킨은 자연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통해 자연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림은 “자연을 보여주는 창문”이라고 정의했다. 한마디로 말해 “자연으로 돌아가자”이다. 근대에 사는 인간은 모두 병들었음으로 결국 자신의 고향인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 라파엘전파다.

 

아카데미즘의 인습을 거부하고 라파엘 이전 시기의 예술기법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이들은 이런 이름을 자신들에게 붙였다. 별 것도 아닌 듯이 보이지만, 19세기의 당시에 미술아카데미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전범으로 삼는 화가들이 라파엘과 미켈란젤로였다. 이렇게 대단한 라파엘을 버리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자니, 사제 간의 예의를 최고로 치던 빅토리아 영국에서는 그야말로 가르쳐준 선생에게 엿 먹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물려준 회화의 전통을 우습게 여겼다는 점에서 라파엘전파는 프랑스 인상파와 닮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후 다소 상이한 길을 선택함으로써, 서로 다른 예술 기법을 낳았다. 인상파가 오늘날 거론되는 추상주의를 낳았다면, 라파엘전파는 상징주의의 뿌리 노릇을 했다. 라파엘 이전의 이탈리아 미술이야말로 솔직하고 단순한 자연묘사가 돋보이는 가장 자연에 친숙한 예술형식이라 주장한 라파엘전파는 로세티, 헌트, 밀레이에 의해 결성되었고 후에 제임스 콜린스, 토마스 울너, 윌리엄 다이스 등이 합류하였다.

 

이들의 작품은 소설가 디킨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이른바 고전주의 계열의 이상미를 무시했고, 사실주의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다루는 것이 불경스럽다는 이유였다. 러스킨은 이런 비판에 대항에서 이들을 옹호했고 그들의 후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기성세대화 되어갔고 라파엘전파의 지조를 지킨 이는 헌트 한 사람뿐이었다. 이어 후기 라파엘전파 운동의 기수는 번 존스로 대표되는데, 초기작에 비해 확실히 진부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용된 양치기/헌트 이 그림은 언뜻 사랑하는 연인을 그린 것 같지만 여인의 어깨를 감싼

양치기의 손에는 나방이 들려있고 그 나방은 해골문양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에드가란 인물의 대사를 묘사하고 있는데,

해골무늬 나방은 죽음을 상징한다. 죽음과 사랑은 중세의 주제의식이다.

중세의 표현양식을 통해 문학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 라파엘전파의 모토였다.


라파엘전파는 시각이미지를 문자이미지와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 러스킨의 영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시각이미지와 문자이미지가 일치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이들은 이 둘을 일치시키는 것이 예술행위의 임무라고 봤다. 이런 ‘거룩한 임무’를 위해 이들은 중세의 신화나 르네상스의 문학작품에 나오는 장면을 그림으로 옮기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다. 특히 이들이 좋아한 문학작품은 셰익스피어였다.

 

인상파가 근대의 산업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근대의 뒷골목으로 들어가 노동자 창녀 등과 만나던 때에, 라파엘전파는 근대의 산업화가 멀리 쫓아버린 자연을 찾기 위해 상상력의 터전으로 옮겨갔다 할 수 있다. “혼탁한 현실이야말로 투명한 예술에 대한 요청”이라 주장한 러스킨의 입장이 곧 라파엘전파의 생각이었다. 문명이 타락할수록 예술이 더욱 꽃을 피운다는 생각이 곧 라파엘전파의 윤리였다. 즉 그들의 예술론은 근대 예술의 속성을 해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근대 예술에 대항하기 위해 근대 이전의 세계를 상상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인상파가 근대를 넘어선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갔다면, 라파엘전파는 근대가 몰고 온 온갖 병폐의 징후들을 제거하고 치료하기 위해 상상력의 세상에서나 가능한 중세 이전의 유토피아로 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화의 상징처럼 놓인 철길 위를 기차가 멈추지 않고 달리듯, 문명의 질주는 멈출 줄 몰랐고 자연으로 돌아가기란 참으로 요원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럼으로 라파엘전파는 점차 근대의 정거장에 내려 쓸쓸한 현실과 조우하고 만다. 다만 그들이 근대에 대해 품었던 윤리의식과 이상사회로의 염원은 지금도 아름다운 무엇임에는 틀림이 없다.

 

 

 ▲생 라자르 역/모네 노르망디 등 북프랑스로 가는 관문역인 생 라자르역은

근대의 관객들로 언제나 넘쳐나는 곳이었다.

모네는 '전원으로 가는 기차' 등 근대의 상징인 기차를 즐겨 그린 대표적인 화가다.


e******1 2008.05.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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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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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는가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 전시회를 다녀왔다. 샤갈전을 놓쳤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데다, 이 책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을 읽으면서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그의 그림이 더욱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전시회에 관한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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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는가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 전시회를 다녀왔다. 샤갈전을 놓쳤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데다, 이 책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을 읽으면서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그의 그림이 더욱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전시회에 관한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하고, 오랜만에 그림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을 이야기해 본다.
 
'정물화는 소유의 욕망을 표현하며, 그래서 자본주의에 가장 적절한 장르'
 
19세기 이후 등장한 서양 미술의 여러가지 성향들 중 인상파와 라파엘전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이 책은, 단지 두 가지 그림 스타일이 가지는 차이점을 단순 비교한 책은 아니다. 그런 외형적인 차이점이 아니라 둘 사이에 차이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 19세기 산업화와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사회의 변화들, 바로 근대라는 것에 대처하는 하는 그들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혁신적인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산업화는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대량생산은 거대 자본주의의 시작을 의미했으며 '노동', '노동자'라는 의미가 부각되기 시작하는 서양의 근대는 어쩌면 혼란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요즘의 인터넷 시대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사회환경의 변화는 꽤나 역동적이고 혼란스러웠을 법하다. 그리고 예술가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더욱 큰 영향을 믿쳤을 것이다.
 
그때 등장한 인상파와 라파엘전파는 근대를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여러 시선 중 하나였다. 쿠르베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은 기존 '아카데미'의 전통 화법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그림들을 그려나간다. 그들은 그 안에 문학성이나 서사성을 담아 내던 전통 미술을 벗어 버리고 그림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그리는 그림, 빛과 색채의 변화의 따른 '찰라'의 느낌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혹은 작가의 유토피아적 세계관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라파엘전파 화가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기존의 형식을 비판하고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 부분은 서로 닮아있다.
 
'평온한 자연풍경이나 중세 신화의 세계를 주로 담아낸 라파엘전파와 달리 인상파는 처음부터 역동성 넘치는 도시의 현실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 마주칠 수 없는 평행선을 걸어갔는데, 그것은 현실을 마주하는 자세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말해 라파엘전파는 근대 예술에 대항하기 위해 근대 이전의 세계를 이상향으로 보고 자연의 모습, 문학작품들을 윤리적이고 미적인 아름다운으로 표현하는 것을 최선으로 여겼다. 그들에게 그림은 문자 이미지의 재현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얼마나 정확히 자신들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지가 중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상파는 현실을 목적론에 근거한 진화주의의 시선으로 보았다.(그렇지 않은 화가들도 있지만) 그들의 그림에 소재는 문학작품이나, 윤리적인 메시지가 담긴 것들이 아니었다. 도시 외곽의 풍경, 노동자들. 공장 등 당시 주변에서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것들이 그들 그림의 단골 소재였고 그들은 그것들을 통해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담아냈다. 현실을 마주 하는 자세의 차이, 바로 그것이 라파엘전파와 인상파를 나누는 경계선이 된 것이다.
 
근대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그들을 서로 다른 길을 가게한 것처럼 지금 사회도 그때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웹1.0의 시대를 넘어 웹2.0의 시대로 다시 웹3.0의 시대가 눈앞에 와 있는 시대에, 빠르게 변화는 사회를 과연 어떠한 가치관가 시선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지고민이 된다.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지도 못한 채 더욱 큰 변화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 어느 작가의 말처럼 거대한 이데올로기, 가치관이 지배하던 시대는 가고 수백, 수천가지의 다양성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근대 시대 그림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던 화가들처럼 자신만의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세울 수 있기를.
s******9 2007.03.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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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아우르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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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거장들의 미술작품을 접했을때 관념적으로 '아~멋지구나. 색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라고 표현하는 즐거움에 대해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웬디수녀의 유럽미술 산책이라는 책을 접했었다.최근에 미술작품을 보는 법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이책 저책을 읽어 봤었는데, 막연히 웬디수녀님처럼 느끼는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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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거장들의 미술작품을 접했을때 관념적으로 '아~멋지구나. 색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라고 표현하는 즐거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웬디수녀의 유럽미술 산책이라는 책을 접했었다.
최근에 미술작품을 보는 법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이책 저책을 읽어 봤었는데,
막연히 웬디수녀님처럼 느끼는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무언가는 부족한감이 있었다.
그런데 [근대 그림속을 거닐다]를 읽음으로써 약간의 갈증이 해소되는것을 느끼게 되었다.
 
평소 윌리엄 터너와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좋아했었다.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는 그들의 화풍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느끼고만 있었던 것이다.
모네의 [인상-해돋이]를 보고선도 바다에 뿌려지는 태양의 빛과 부서짐, 뱃사공만 보았을뿐이지 그 뒤로 삐죽하게 서 있는 크레인의 실루엣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미처 알아채지 못했었다.
 
이택광의 [근대 그림속을 거닐다]는 이렇듯 우리가 그림을 보고 놓쳐버리는 그림속에 녹아 있는 정치와 경제의 비판적 시각과  동시대를 살아간
전혀 다른 화풍의 19세기 후기 인상파와 그보다는 조금 앞선 라파엘전파의 그림 읽기의 길잡이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유럽은 산업화가 과속화되면서 경제의 발전과 풍요로운 발전과 함께 빈부의 격차, 신분의 파괴, 훼손되는 자연과 격동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시기를 살다가 많은 화가들의 작품을 단지 관념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많이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그 시대상과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그림읽기를 저자 이택광은 아주 쉽게, 많은 자료와 읽기 편한 가벼운 문체로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유럽 근대에 태동한 인상파와 라파엘전파의 공통점은 바로 기존 아카데미의 작풍에 불만을 느낀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들은 기존의 작품들을 답습하는것에 실증을 느꼈고, 그래서 관습을 깼으며 새로운 화풍을 탄생시킨다.
 
인상파가 변화한 현실을 긍정하거나 현실에서 눈을 돌려 도피하려 했다면, 라파엘전파는 철저히 부정하고 라파엘 이전의 자연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배우는 예술을 표방하였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서 파리코뮌이후 세상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한 중간계급의 현실 도피적 성향을 읽을 수 있으며, 현실도피적이였으나 형식적으로는 새로운 화풍을 이루어냈고, 근대를 철저히 부정하고 자신의 상정한 과거의 이상을  쫓으려 화폭에 자연을 그대로 세말하게 묘사한 라파엘전파는 기괴하기까지한 화풍을 탄생시킨 아이러니는 재미있다.
 
화폭속에 들어나는 시대의 진리를 이책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을듯 하다. 시대를 아우르지 못한 그림도 없을것이며, 시대를 외면한 그림도 없을것이다.
 
이런것이 '그림읽기'라고 불려도 되지 않을까?
 
벽에 걸려있는 그림은 수많은 말을 걸어온다.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것은 의외로 쉬울지도 모르겠다고 이책을 읽고 생각했다.
YES마니아 : 골드 m******r 2007.03.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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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 달랐던 인상파화가들을 찾아 떠나보자!
"같은 듯 달랐던 인상파화가들을 찾아 떠나보자!" 내용보기
19세기 미술사에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론 사진의 발견과 사진기의 보편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19세기 중후반 인상파의 등장 또한 미술 뿐만 아니라 음악에까지 예술분야 전반에 하나의 사조를 형성하게 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책은 이러한 인상파의 탄생배경, 그들의 사상과 작품에 대해 매우 심도깊게 다루고 있는데 작품 자체의 해설보
"같은 듯 달랐던 인상파화가들을 찾아 떠나보자!" 내용보기
19세기 미술사에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론 사진의 발견과 사진기의 보편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19세기 중후반 인상파의 등장 또한 미술 뿐만 아니라 음악에까지 예술분야 전반에 하나의 사조를 형성하게 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책은 이러한 인상파의 탄생배경, 그들의 사상과 작품에 대해 매우 심도깊게 다루고 있는데 작품 자체의 해설보다는 비슷하면서도 결코 같지 않았던 인상파 화가들의 성향과 예술적 지향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책의 지은이가 미술을 전공한 학자가 아니라는 점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 또한, 인상파 화가의 작품세계를 넘어 미술사적인 내용전개가 광범위하게 펼쳐지다보니 비전공자인 나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신분과 개성이 달랐던 인상파 대표화가들의 출발점과 지향점,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라파엘전파 등 19세기 미술사조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점은 이 책만이 가진 힘이기도 하다.

 

m*******e 2011.06.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