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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을 바라보는 시선 한옥에는 한국인의 세계관과 자연관, 국민성과 가치관이 녹아 있다. 그렇기에 한옥은 ‘가장 한국다운 건축물’이다. 하지만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한옥은 쇠락해갔다. 그러다 보니 한옥보다 아파트가 우리에게 더 친숙한 주거양식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는 개화기 이후 우리 고유의 전통을 막연히 버려야 할, 고리타분한 폐습(弊習)으로 여기는 풍조가 유행했던 것도 한몫 했다. 게다가 한옥의 경우에는 불편하다는 인식이 크다. 때문에 한옥에 관심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이러한 한옥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개량 한옥’ 혹은 ‘현대 한옥’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개량 한옥’ 혹은 ‘현대 한옥’은 “보온이 잘 되는 우수한 창호를 쓰고 바닥에는 전기 보일러가 들어오며 최신식 싱크대와 수세식 변소를 갖추고 있다. 동선이 길거나 복잡해지면 불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면도 동선 효율 중심으로 짠다. 건물이 작은 채 여럿으로 쪼개지면 공사비도 많이 들고 공간 쓰는 데에도 불리하며 무엇보다도 열 손실이 많아지고 사후 관리가 불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채 하나에 다 집어넣는다.1)” 그러나 이러한 대안은 한옥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경우는 껍데기만 한옥의 형태를 모방한, 일종의 양두구육(羊頭狗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할 것이면, 굳이 ‘한옥’이라는 외양을 취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한옥이란? 아파트에 익숙한 우리에게 한옥의 단점으로 비춰지는 불편함은 사실 한옥의 장점과 동전의 앞 뒷면처럼 붙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옥’일까? 첫째, 한옥은 ‘과학적인 집’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은 자본의 주도하에 기계에 의존하여 자연을 제압하려는 자본중심적인 과학이 아니다. 인간의 경험에서 지혜를 찾아 자연과의 공존을 꾀하는 인간중심적인 과학을 말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기에 한옥을 인간중심적인 과학에 따라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하는 것일까? “한옥은 기술이나 기계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햇빛과 바람이라는 자연 환경, 즉 기후 요소를 적절히 활용한다는 점에서 매우 과학적이다.2)”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한옥은 높은 천장을 잘라서 상당 부분을 지붕 속으로 편입시켜 흙을 채우거나 공기층으로 활용해서 단열 효과를 높였다. 이는 ‘위풍’을 막아주는 데 단연 최고다. 열원이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발 주위에는 항상 더운 공기가 머물고 머리 쪽은 시원하니 건강에도 좋다. 공기를 직접 데우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건조해지지 않아서 기관지에도 해롭지 않다. 아파트의 난방 방식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양의 라디에이터 방식을 주로 사용하다가 1990년대부터 온돌 방식으로 바뀐 이유이기도 하다. 이상의 난방 과학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자체만으로도 우수한 것이다. 이상은 주로 건물의 구조에 관한 것으로 기술적 우수함이라 할 수 있다. 요즘 같은 기계 방식이 아닌 전통 기술인데도 이렇게 우수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끝이 아니다. 한옥이 우수한 진짜 이유는 이런 기술적 우수함이 앞에서 설명한 햇빛을 활용하는 지혜와 하나로 합해져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데에 있다. 지붕의 돌출 길이, 창의 크기와 위치, 방의 깊이와 천장 높이, 지붕의 높이 등과 하나로 작동한다는 뜻이다3)” 둘째, 한옥은 ‘신기한 집’이다. “한옥은 건물 골격이 늘 다양하게 변화하며 ‘항변(恒變)’의 상태를 유지한다. (예컨대 한옥의 창문을) 다 닫았을 때에는 입을 꽉 다물고 눈마저 질끈 감은 모습이다. 창문에 유리를 안 써서 투명한 부분이 하나도 없어서 더욱 그렇다. 반면 (창문을) 다 열었을 때에는 짓다가 만 것처럼 뼈대만 앙상하게 남는다. 제대로 된 집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4)” 저자는 애당초 놀이공간으로서의 집을 염두에 두었기에 한옥이 이렇게 가변적인 구조를 취한 것이라고 주장5)한다. 즉, 창문을 열고 닫으면서 집 안을 오가는 일상생활 자체가 놀이이니 이것을 담는 그릇인 집은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증(尹拯) 고택의 사랑채
출처 : 임석재,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 p.105 이러한 “한옥의 놀이 기능은 동선의 다양성에서 기인한다. 동선은 갈래를 쳤다 합친다. 동일한 목적지에 대해서 질러 가기와 돌아가기가 동시에 가능하다. 지름길과 갈림길이 섞여 있다는 뜻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고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올 수도 있다. 창문을 다 열면 뼈대만 남아 이 세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집이 되지만 적당히 열고 닫으면 숨고 감추는 데 가장 뛰어난 구조이기도 하다.6)” 어떻게 해서 이런 구조가 될 수 있을까? “첫째, 창과 문의 구별이 없다. 대부분의 창을 바닥에 가깝게 냈기 때문에 여차하면 사람이 드나들 수 있어서 문이나 다름이 없다. 서양에는 없는 ‘창문’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만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방의 두 면 이상을 마당이 에워싼다. 건물 구성이 홑겹이며 각 채의 앞뒤로 마당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런 방의 여러 면에 창문을 냈다. 마당을 접하는 면에는 반드시 창문을 냈으며 방과 방 사이에도 창문을 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세 가지 구성이 합해지면서 동선은 자유롭다 못해 사람이 다닐 만한 곳에는 모두 길이 났다. 급하면 방에서 직접 대청으로 나갈 수 있고 옆방에 볼일이 있으면 다른 방을 거쳐 나갈 수도 있다. 방에서 마당으로 나가는 구멍도 여러 곳이다. 나가는 구멍과 들어오는 구멍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 구멍으로 나가서 저 구멍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뒷마당으로 통하는 구멍으로 나가서 한 바퀴 돈 뒤 앞마당으로 돌아와서 대청으로 올라 들어올 수도 있다.7)” 이러니 한옥이 놀이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한옥은 ‘감각적인 집’이다. 한옥은 여러 가지 감각 가운데 특히 촉각을 자극하는 구조가 발달된 건축물이다. 다시 말하면 건강에 좋은 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힐링을 위해 보드라운 흙이나 백사장을 맨발로 걷는 것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이런 한옥의 특징으로는 온돌과 앉아서 생활[좌식(坐式)]하는 문화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한옥의 건축양식과 결부되어 우리의 감각을 은은하게 자극한다. 이를 저자는 “좌식 문화는 체성감각(somatic sensation)8)를 살린다9)”고 표현한다. 넷째, 한옥은 ‘포근한 집’이다. “안에서 보는 창호지는 아주 감각적이다 못해 사람의 속살을 보는 것 같다. 뽀얀 속살을 드러내 온기를 실어내고 방 안을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게 만들어준다.10)” 이러한 “창호지의 포근함을 완성시켜주는 것이 한옥의 휴먼 스케일 (즉,) 포근하고 아늑한 공간이다.11)” 한옥 하면 조선시대 양반들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떠오르는 우리에게는 포근하고 아늑한 공간이라는 말은 한옥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집은 큰데 공간이 포근하고 아늑하다는 것은 집을 작은 단위로 잘게 나누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작은 단위로 나눌 때 그 기준을 사람의 신체 부위에 맞추면 휴먼 스케일이 된다12)”는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큰 채 하나에 다 집어넣는 ‘개량 한옥’이 왜 문제가 되는지도 알 듯 하다. 다섯째, 한옥은 ‘화목한 집’이다. 창은 벽을 구획하며 대개 여러 개가 함께 어울린다. 이것은 벽면을 구획하는 구성 분할에 그치지 않고 창의 형태와 크기를 달리하며 조화와 공존의 어울림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언뜻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한옥의 구성과도 관련된다. 행랑채, 사랑채, 안채, 별채 등의 건물을 통해 계급구조를 먼저 반영하되, 어울림의 미학을 발휘하여 재조합하는 것이다. 수애(水涯) 류진걸(柳震杰)이 1939년에 건립한 수애당(水涯堂)의 경우 하인들의 영역인 행랑채가 전경의 주인 역할을 하는 등 자신의 영역 내에서는 어울림을 통해 화목함을 일구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애당(水涯堂)의 전경
출처 : 임석재,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 p. 390 다섯 가지로 나눠 한옥을 살펴보면서, 서현 교수의 건축은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과 생활 그리고 그 사회의 부대낌, 사회가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을 담는 그릇13)”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한옥보다 아파트를 선호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중심적 과학에 따라 지어진 한옥 대신 자본중심적 과학에 따라 대량 생산되는 아파트에 살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우리도 그 논리에 길들여질 테니... 그런 의미에서 한옥에 대해 제대로 알고 그 속에 내재된 원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1) 임석재,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 (인물과 사상사, 2013), p. 10 2) 임석재, 앞의 책, p. 33 3) 임석재, 앞의 책, pp. 64~65 4) 임석재, 앞의 책, pp. 97~98 5) 임석재, 앞의 책, p. 103 6) 임석재, 앞의 책, pp. 104~105 7) 임석재, 앞의 책, pp. 120~121 8) 체성감각(somatic sensation)은 전신의 피부, 근육, 골격, 관절, 결체조직, 장기에 가해지는 자극을 받아서 인식, 경험하는 감각으로 온몸에 퍼져 있는 신경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주변 상황에 대해 판단하고 인식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이 때문에 시각이나 청각보다 사람의 정서와 감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9) 임석재, 앞의 책, p. 169 10) 임석재, 앞의 책, p. 259 11) 임석재, 앞의 책, p. 300 12) 임석재, 앞의 책, p. 301 13) 서현,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개정판), (효형출판, 2004), p. 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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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소빙기였던 조선 후기의 기후는 현재보다 평균 기온이 2~3도 낮았다. 평균기온이 2~3도 이므로 한 겨울 날씨는 지금보다 훨씬 혹한이었을 것이다. 난방이 잘 되는 아파트에서 살고 정말 하루에 조금씩 야외활동을 하는 우리도 이렇게 추운데 과거에는얼마나 추웠을까 조상님들을 걱정해 본다. 하지만 이런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저자는 오히려 조상님께서 우리의 집을 보신다면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사냐?"하실 거라고 한다. 이 책은 제목이 나타내 주는 것처럼 한옥에 대한 찬미의 책이다. 한옥의 장점을 과학적으로 우수한 집, 놀이가 있는 집, 우리의 감각의 충족시켜주는 집, 행복을 주는 집 등 다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분명 아파트에 비해 한옥은 "불편"하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겪는 많은 건강의 문제,소통의 문제, 과소비의 문제는 결국 "불편"함을 없애려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자연을 거부해서 건강을 해치는 아파트, 운동량을 최대로 줄이는 아파트, 소통을 없애는 아파트. 이 모든 것이 한옥에서는 당연하게 여겼던 "혜택"들이다. 한옥에서는 자연스러운 생활 운동을 하러 따로 시간내서 밖으로 운동하러 가고, 한옥에서는 자연스러웠던 "등지지고, 수다떨러" 찜질방에 간다. 마당에서, 뒷산에서 자연과 호흡하던 생활을 버리고 일부러 "캠핑"하러 멀리 떠난다. "불편"을 버리고 불편을 찾는 현대인다. 더 중요한 것은 불편한 점을 이렇게 현대 기계문명의 도움으로만 해소하는 것이 능사인지에 대한 판단 능력이다. ~~~따라서 한옥의 장점을 누리기 위해서는 불편한 점을 어느정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더 근본적으로 이야기하면 지금 우리가 한옥의 불편한 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정말로 불편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곰곰이 따져 보아야한다. 수직의 아파트를 분리시켜 평면의 한옥으로 간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길이다. 대형 아파트를 건설하는 소수의 대기업 건설사가 아니라 동네 집을 짓는 수천의 동네 회사가 생겨날 것이다. 동네 상권이 생겨나고 서울 중심의 경제가 아닌 지역 경제가 발전할 것이다. 동네 상권, 지역 경제가 각자 발달하면 구태여 서울로 서울로 갈 필요도 없다. 교통문제가 해결되고 환경,교육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평면으로 공간을 확장하면 지역 공동체가 살아 날것이다. 불편함이 생존의 길이다. 일만 년동안 한반도 일대에 살면서 기후와 지리에 적응해서 우리의 주거 문화를 발전 시켜 완성한 한옥이다. 우리 미래의 생존이 달린 지혜와 아름다움이 한옥에 담겨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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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체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 추위다. 난방을 최대로 가동해 보지만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뜨끈뜨끈한 온돌방을 따라잡기란 역부족이다. 그래도 도시 촌놈은 전통 한옥보다는 아파트를 선호한다. 제 아무리 고급일지라도 누구나 입기 편하게 만든 기성복에 좀 더 마음이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려서부터 서양식 빌라와 아파트에서만 살아버릇한 내게 전통 한옥은 어쩌다 방문해 둘러보면 그만인 특별한 장소로서만 여겨질 따름이다. 한복이 그러하듯 한옥도 사람들은 불편한 무언가로 인식한다. 한때 우리의 일상 그 자체였던 것들이 그렇게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우리는 막연히 진보라 칭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것이 마냥 불편한가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것이 서양의 무엇보다도 과학적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한옥을 지혜로운 공간이라 저자는 칭했다. 오르내리는 턱이 많이 존재하고, 창호지를 바른 문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앞서는 공간을 지혜롭다고 하다니, 처음에는 동의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내 나는 풀이 죽고야 말았다. 한 번도 공간 공간을 세심하게 들여다 본 적이 없었고, 살아본 적은 물론 없었다. 나의 선호는 내 것이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 별다른 의문 제기 없이 이를 따랐을 뿐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이 삶의 터전으로 삼은 아파트는 다분히 서양적인 시선이 깃든 공간이다. 일단 안과 밖의 구분이 확실하다. 최근에는 더더욱 계단식으로 지어진지라 안도 밖도 아닌 공간의 존재를 찾기 힘들어졌다. 이는 실내 공간에서도 여실하다. 방문을 잠그면 다른 이의 출입이 금지된다. 이따금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나 다른 식구들의 대화, 웃음소리 등이 들려오기야 하겠지만 그뿐이다. 한옥은 아파트와는 달리 개방적이다. 하나의 공간에 들어가는 방법이 무한가지다. 마치 아이들을 위한 숨바꼭질 공간마냥 곳곳이 숨을 장소로 넘쳐난다. 한옥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호모 루덴스로의 거듭남이 가능해진다. 그런가 하면 한옥에는 아파트에는 존재하기 힘든 ‘창문’이라 하는 게 존재한다. 자그마한 창문을 지닌 아파트는 햇볕을 받아들이는 데 문제점이 많다. 그래서 사계절 문을 꽁꽁 닫은 채 에어컨이나 난방을 가동시키며 에너지를 소진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한옥은 적절하게 설계된 처마의 각도와 대청마루의 높이 덕에 겨울철이면 은은한 햇볕을 받고 여름이면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누릴 수 있는 것은 빛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치 묵이 뿜어내는 깊이 있는 농담과도 같은 빛이 한옥에서는 가능하다. 바로 창호지 때문이다. 불을 다 끈 후에 램프를 켜 밝기를 조절하는 서양식 건물과 같은 제어가 한옥에서는 필요 없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아련한 실루엣이 머릿속에 그려지려 한다. 나도 알지 못했던 내 안에 깃든 관음 성향이 살포시 고개를 든다. 어쩌면 우리의 조상들은 창호지의 오묘한 원리를 이용해 스스로의 욕망을 다스렸던 지도 모른다. 통일성과는 담을 쌓은 듯도 하지만 그 안에서 알게 모르게 엿볼 수 있는 질서. 제각각인 창문의 크기로부터도 느낄 수 있는 조화미에 비로소 무너졌던 마음 한 쪽이 제자리를 되찾는 느낌을 느낀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한옥의 과학성을 설명해 보려는 시도는 물론 나쁠 리 없다. 하지만 한옥이 여느 형태의 건물보다도 높이 평가 받을 수 있는 사실은 여전히 현실에서 쓰임 받고 있다는 점에 있지 싶다. 한옥은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닌 현재이다. 아파트에 사는 이들에게조차도 익숙한 것이 바로 온돌이다. 틀은 서양의 것을 채용했지만 외벽만을 달구다 끝나는 라디에이터(radiator)에 우리는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전통한옥의 경우에도, 차츰 그 수가 줄어들어 정부차원의 보존 노력이 필요하다가고 할지라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를 터전 삼아 살아가고 있다. 끊이지 않은 생명력이야말로 바로 한옥의 가장 큰 가치다. 불편하다는 불평도 한옥의 숨통을 끊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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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1쇄 2013년 10월13일 펴냄
한옥은 어떤 집일까 - 1. 조선시대 양반가옥 2. 가장 한국다운 집 기계적으로 불편한 점을 없앤 한옥은 장점도 따라서 없앤 것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사람중심 대청 천장은 높고 방 천장은 낮다. 마당과 집 사이의 면적 비율이 통상적으로 1 :2에서 1:3 사이를 오감.
1장. 과학적인 집 - 햇빛과 바람의 과학 햇빛 한옥은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이다. 여름에 바람이 잘 통하면 겨울에 해도 잘 들게 되어 있다. 햇빛의 각도를 조절하고 바람길을 낸다.
지구는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북반구에서 해는 여름에 높이 뜨고 겨울에 낮게 뜬다. 해가 다니는 길은 여름과 겨울이 다르다. 여름에는 햇빛이 수직에 가깝게 내리꽂히고 겨울에는 낮은 각도로 완만하게 비친다. 한여름 도심의 빌딩숲 속에서 그늘을 찾기가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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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풍=바람길 & 사선축 바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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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한옥의 마당이 흙바닥인 것을 보고 삭막하다고 싫어한다. 아마도 잔디를 입히고 꽃나무를 심은 전원주택을 상상해서 그럴것이다. 마당을 비워둔 것은 복사와 대류의 원리를 활용해서 통풍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마당에 잔디를 깔고 나무를 심으면 복사 작용과 바람의 흐름을 방해해서 대기의 순환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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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열 1. 흙벽은 단열 효과가 뛰어난 재료에 속한다. 2. 창호지(한지를 창문에 바른 것) 문(30~50개) 문이 두 꼅인 경우가 보통인데 미닫이문과 여닫이문을 섞기 때문에 둘을 꽁꽁 닫으면 창틀 사이에 꺾임과 막힘이 일어나서 외풍이 드나들지 못한다. 최근의 실험에 의하면 창호지는 유리보다 단열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지: 닥나무를 비롯해서 쑥대, 밀, 대꺼질, 버드나무 등의 여러 수목을 재료로 사용했다. '채취-찌기'껍질 벗기기-물에 담그기-잿물에 백 닥 삶기-씻기와 일광표백-두드리기- 섬유풀기-뜨기-탈수-말리기-다듬기'의 긴 수고를 거친다. 창호지 '갈이' = 1년에 한 번 10월.
3. 온돌 = 좌식문화 한국에서는 고구려가 좌식 문화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통일신라와 고려때에는 입식이 주된 생활방식이었다. 완전 좌식은 조선시대 때의 산물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미국 건축의 아버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온돌의 과학성에 신기해하며 이것을 '중력난방'이라고 이름 붙였다.
문지방이 높은 것은 겨울에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마당에서 방 안이 들여다보이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놀이기능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국민성이 놀이를 유독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자잘한 놀이를 즐겼다. 서양은 사회 전체 차원에서 대형 스케일의 축제를 즐겼으며 그만큼 놀이도 형식화되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가 우리와 비슷하며 독일과 영국은 반대이고 프랑스는 중간쯤된다. 한옥의 놀이 기능은 동선의 다양성에서 기인한다. 한옥은 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놀이터다. 창문을 다 열면 뼈대만 남아 이 세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집이 되지만 적당히 열고 닫으면 숨고 감추는 데 가장 뛰어난 구조이기도 하다.
![]() 눈곱때기 창 = 밖을 '빠끔' 열어보는 창이다. 벼락치기 문 = 들어열개 문 = 바닥에서 천장에 이르는 가장 큰 창이다. (공중에 직각으로 들어올릴 수 있게 되어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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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 계급 한옥은 여러 개의 채로 구성된다. 기본단위 - 행랑채, 사랑채, 안채, 별채 행랑채 : 방, 광, 우사, 창고 사랑채 - 대청, 방 안채와 별채 - 대청, 방, 부엌, 광, 안 행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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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제목이지만 표지가 너무나 멋있다. 제목을 품은 좌측 흰 여백과 우측 문을 통해 방안으로 시선을 끌어들이고 다시 마당의 나무에 프레임이 맞춰진 그야말로 창과 문과 마당과 햇빛을 한 눈에 보여주면서 마치 숨박꼭질 하듯이 공간들을 보여준다. 뒷면은 어떠한가 하면 가운데 문을 열어 두 방이 하나 됨을 보여주면서 정면부 창을 동시에 열어 툇마루 난간과 함께 밖의 풍경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묻는다. 한옥은 어떤 집일까? 라고. 책의 1장이 과학적인 접근이었다면 공간의 미학을 중심으로 설명한 2장과 촉각과 시각의 미학을 중심으로 설명한 3장은 4장의 창호지와 휴먼 스케일과 함께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 하다. 2,3,4장은 약간씩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한옥의 따스함과 어머니품으로 인하여 하나로 느껴진다. 4장의 문들은 다양한 햇빛의 농도를 알 수 있는 사진으로 정말 멋진 사진이어서 꼭 유리문이 아니어도 번거롭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한지를 바른 문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적어도 지금의 시스템 창호가 아닌 옛스타일의 이중문의 멋을 너무나 잘 표현해서 찍은 사진이 매력있다. 5장 어울림의 미학에서는 모든 한옥이 한결같지 않았으며 모든 담이 다 낮았던 것도 아님을 보여준다. 이번장에서는 담에 대한 것이 나왔는데 적어서 아쉬웠다. 조금 더 다양한 디자인의 담과 조금 더 다양한 높이의 담을 보고 싶어졌다.
너무 낮은 담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불안함의 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방을 꽁꽁 막아놓고 행여 들어올지 모를 도둑을 위해 보안장치를 하는 지금 세대들은 높은 담이 안전함이고 낮은 담은 불안함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하다고 느껴지는데 한옥에 너무 높은 담은 어쩐지 어색하다고 생각되는 이 이중 잣대를 어찌 포기할 것인가하는 난감함에 이 책은 어느정도의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모든 한옥이 똑같은 원리원칙하에 지어지는 것이 아니며 모든 담이 낮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보여준다.
지붕만 보이는 사람 키만큼의 담은 분명 사람허리 만큼의 담이나 오픈된 마당보다도 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그 담도 다양한 형태로 하나의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픈된 생활을 한 사람들은 불편함이 전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전원주택이나 신규택지를 보면 법으로 담을 못하게 막고 투명하게 해야하는 등 제한이 많은데 문을 보이게 하고 담을 연다고 사람들의 마음이 열릴까 싶다. 어디까지나 마당도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되어야 집의 일부로 다양하게 쓰이지 그것이 오픈된다면 길거리 한 복판에서 유리속에서 생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기도 하고...
이 책 전에 읽은 책에서 한옥 마당에 잔디를 심으면 습해진다고 해서 잔디가 않좋다는 건 알았는데 정녕 그 마당을 그냥 흙바닥으로 아무것도 없이 둬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이렇게 통의 원리에 접목해 바람이 찬기운을 갖고 집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비움이었다는 것은 신선했다. 또한 한옥 한 채에 30~50개의 창문이 난다고 하니 창문을 빼면 정말 책에서 말한 것처럼 뼈대밖에 없을 것 같다. 창도 일정한게 아니라 눈곱때기 창처럼 다양한 창들이 있다는데 이 책이 아니였다면 그냥 지나치고 모를뻔했다. 사진을 얼마나 이쁘게 찍으셨는지 저 창호문을 보기 위해서라도 그 곳에 한번쯤 가봐야 할 듯할 정도다. 감성적인 책으로 마치 수채화를 본듯한 편안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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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매거진에서인가 저자의 한옥 관련 글을 보고 책을 샀다. 너무 기대가 컸나? 실망이다. 중언부언... 말이 간결하지 못하고 늘어진다... 한 마디로 끝날 내용이 열 마디로 늘어지고 있으니 글 읽는 맛이 떨어진다. 저자는 하고 싶은 말이 많겠으나 함축적으로 글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다. 견강부회. 침소봉대... 한옥이 친환경적이고 소통의 공간이란 것은 수긍하겠으나 많은 의미를 강제로 부여하는 느낌이다. 한옥도 문제가 많은 구조인 것이다. 지나친 개방감, 이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및 보안문제, 창호지의 바깥 풍경 차단, 여름밤 벌레로 인해 대청 이용 불가, 표준화된 시공매뉴얼 미비로 인해 시공자의 능력에 따라 엄청 달라지는 품질... 한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거나 장단점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겐 맞지 않는 책이다. 한옥에 대해 잘 모르거나 실용성을 배제한채 한옥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한옥에 대해 깊이 파는 학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임석재 교수는 귀한 자원이다. 필자가 기분 나빠할 쓴 소리를 하는 이유다. 한옥은 개선 여지가 많은 구조이다. 이 세상에 더 이상 발전시킬 필요가 없는 완벽한 구조의 집 구조는 없다. 그런 태도는 한옥을 박물관의 유물로 가두는 태도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왜 사람들이 한옥을 단독주택으로 잘 짓지 않는 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이 책은 너무 한옥 찬양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 '우리 것이 최고여!'는 심리적으론 위안이 될 지 모르나 객관화에 의한 발전은 불가능하다. 한옥의 장점을 사람들이 잘 모르기에 알려 주려는 의도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국수주의적 성향이 심하다. 나 자신 한옥에 애정이 많고 언젠가는 한옥에 살고 싶어 한옥공부를 많이 하고 있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창호, 지붕 등 한옥에서 개선해야할 여지가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 한옥이다. 수 백년 전 조선시대에 이미 그 완성의 끝을 보아서 이젠 상찬의 과정만 남은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연과 자연스레 어울리고 여름에 시원하고 특히나 여름철 비올 때 추녀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볼 때의 그 정화된 느낌 등 좋은 점이 한 둘이 아닌 한옥이지만 창호가 많고 목구조라 틈이 벌어져 겨울에 외풍이 어쩔 수 없이 들어오고 이층으로 올리기엔 미관상, 구조상 어울리지 않는 점 등 한옥이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기 위해선 넘어야 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서울 은평구에 개량한옥이라고 많이 들어 서 있고 아주 세밀한 시공 매뉴얼도 있던데 일단 지붕이 단열에서 뛰어난 장점을 보이는 전통 습식 지붕이 아닌 건식이라 한옥의 큰 장점 하나를 버린 거 같아 한옥이 아닌 거 같고... 저자가 이런 모든 장단점을 아울러서 정말 우리 곁에 매일의 삶속에서 살아 숨쉴 수 있는 한옥의 모습을 제시해주기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그런 점이 상당히 부족하여 아쉬움을 금할 길 없다. 저자가 그런 일은 목수나 시공업자들이 고민 할 일이지 내가 할 일은 아니고 난 이미 지어진 고고학적 존재인 한옥에서 옛 선인들의 제작의도만 철학적으로 읽어 내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럼 할 수 없고...^^ 철학적 바탕을 가진 저자가 그런 책을 쓰면 훨씬 좋은 책이 나오리라는 기대에서 하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