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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0월 9일. 버마(현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위치한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폭탄이 터져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4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웅산 국립묘지는 우리나라의 현충원과 같은 곳으로 동남아 순방길에 오른 전두환 전 대통령 일행의 첫 방문지였다. 당일,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 산(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웅 산 수치의 아버지)의 묘소에서 참배 행사가 예정돼 있었고 수행 공무원들과 경호원들이 예행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대통령 도착 2분 전, 폭탄이 폭발했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한국인 사망자 대부분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 미얀마 대사 등 국가 요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개그맨 심현섭의 아버지 심상우 씨(당시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도 포함돼 있었다. 테러를 일으킨 자들은 북한 특수 전투부대에 소속된 세 명의 북한군. 이들이 어떻게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 방문 일정을 상세하게 알고 있었는지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으나, ‘남한 동포를 군사 정권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정의로운 사명감’에 가득 차 테러를 자행했다. 1명은 버마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사망했고 나머지 두 명은 심각한 부상을 입고 생포, 재판 결과 모두 사형이 선고됐지만, 강민철은 조사 과정에서 사건의 배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자백했다는 점을 참작해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그리고 2008년 5월 간암으로 사망하기까지 낯선 이국땅, 아무도 찾지 않는 감옥에서 25년을 복역했다. 북한의 남한 대통령 암살 시도는 이 때가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1968년 1월 21일, 북한군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해 대통령을 살해하려다 28명이 사살되고 1명이 생포된 1·21사태(북으로 도주한 2명 중 한 명인 박재경은 2007년 방한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송이버섯을 선물하기도 했다)가 있었고, 광주항쟁을 기점으로 전두환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시도도 여러 번이었다. 남한 정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 그 실체가 자세히 드러나지 않다가 소설과 영화로 알려진 실미도 부대(공군 소속 684부대)를 창설해 1·12사태의 복수를 실행할 계획을 세웠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이 저지른 행동 못지않게 남한도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과정에서 남한과 북한의 수많은 젊은이가 국가권력의 틈바구니에서 무고한 희생을 치르게 된다. 이렇게 서로가 살육도 불사할 정도로 남과 북의 관계는 갈등의 골이 깊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협력과 평화를 외치는 관계로 급전환 하는 경우도 많았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던 1·12 사태 후, 언제 서로를 죽이려 했냐는 듯 남한과 북한은 대화와 협력을 외치며 평화통일을 선언했고, 아웅산 테러가 일어난 2년 후에도 전두환 정부와 김일성 사이에 화해와 밀월의 시기가 이어지면서 강민철은 모두에게 잊힌 인물이 됐다. 전두환도, 김일성도 ‘중대한 정치적 과업’ 앞에서 한 젊은이의 삶과 죽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해 버린 것이다. 강민철이 복역한 미얀마 감옥의 교도관들도 “만약 너를 받아줄 나라만 있다면 언제든지 내보내줄 수가 있다. 그런데 너는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북한은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며 강민철이라는 인물을 거부했고 남한은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던 테러리스트이기에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물론, 강민철은 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게 만든 범죄자다. 그가 저지른 범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차단되고 국가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사람에게 개인적으로만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1·12사태의 생포자 김신조(귀의한 후 목사가 됨)도 ‘죄가 있다면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위험한 것은 차이가 아니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과 북은 서로 닮았다는 유사성 때문에 경쟁하고 서로를 공격해 왔다. 이 과정에서 ‘사상교육’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올바로 분별하지 못 한 채 ‘정치 도구’로 이용된 수많은 강민철들이 일회용 제품처럼 사용되고 버려졌다. 권력자들은 ‘강민철들’을 소모품으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그들 또한 그리워한 가족이 있었고 사람답게 살고자 희망했던 하나의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줘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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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평화통일을 고민하는 이라면 꼭 읽기를 바란다. 무엇이 역사여야 하는지 성찰하는 이도 꼭 읽기를 권한다. 좋은 책은 다른 책을 떠올리게 하면서 생각의 갈피를 헤아릴 수 없게 만들곤 하는데 이 책 역시 그러하다.
정돈된 글로 정리하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건 내 지성의 한계 때문이다.
1 녹색평론사에서 2014년에 출간한『간디의 '위험한' 평화헌법』에 이런 글이 있다.
독자 당신이 혼의 힘이나 진실의 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성공한 역사적 증거가 있습니까? 어딘가에서 민족이 혼의 힘으로 일어선 예는 없는 것 같은데요.
간디 역사적 증거가 보고 싶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역사라는 것은 무엇인가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역사'는 왕이나 황제가 행한 것이라는 의미라면, 그와 같은 역사에서는 혼의 힘이나 소극적 저항의 증거는 없습니다. … 우리가 배운 역사는 세계의 전쟁에 대한 기록입니다. … 왕이 어떻게 놀고, 어떻게 서로 적이 되고, 어떻게 서로 죽였는가 하는 이야기들이 역사에 진지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세계에 그러한 일들밖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세계는 벌써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입니다. 세계의 이야기가 전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인간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 따라서 세계의 많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가 아직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 힘의 최대의 증거, 논박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좋은 글, 바른 글을 가까이 하며 깨어 있기 위해 애를 쓸수록, 내가 익숙해진 틀이나 세계관을 직면한다. 이 부분을 여러 번 읽으며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새삼 떠올랐다. 왕조사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탈피, 백성들의 의식주를 담은 생활사, 의술과 처방 등을 짐작할 수 있는 의학사 등 소위 미시사를 기록했다는 여러 책도 스쳤다. 간디는 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역사를 꿰뚫으며, "혼의 힘" "진실의 힘"을 이야기한다.
2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을 읽는 내내 비슷한 맥락에서 다른 질문을 떠올렸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무엇을 기록하도록 무의식적으로 학습되고 있는가' '역사로서 기록할/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고를 때 나의 내면에서는 어떤 기제가 작동하는가' '요즘의 우리는 무엇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느낀 건 다음과 같다. 나는 내가 속한 집단에 "정치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과 인물에 주목하기 십상이며, 내가 인지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나는 소속집단에서 보고 들은 것에 동질화되어 있다. 무언가를 대할 때 복합적인 측면을 자주 간과하고 선악의 접근방식이 아주 익숙하다. 사람이든 사건이든 사회구조적인 측면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선호하지만, 책임이나 해결은 개인적인 차원으로 접근할 때가 많다.
생각의 편린들을 대강 기록하면... 같은 테러리스트이지만 김현희는 회자되고 강민철은 잊혔다. 김현희는 한국에 정착하여 각종 증언을 하고, 강민철은 버마의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단지 사건 발생의 시차 때문일까 이용 가치 때문일까. 사람의 죽음을 두고 무게를 가늠하는, '대의'를 향한 강박증. 이 땅의 사람들이 참사를 겪는 경우 정부의 발표를 한 번쯤 의심하게 되는 건 내가 의심이 많아서일까 분단현실이 뿌린 씨앗일까. 북한이 저지른 일임이 밝혀졌는데도 아웅산 테러나 KAL기 폭파를 남한 정부의 자작극설이 제기되었다는 이야기.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싼 의문들. 사회비판발언을 종북과 연결하는 이상한 시선들.. 김대중 정권이니 박근혜 정권이니 하는 대통령 호칭을 붙이는 방식은 시대를 명명하기 편해서일까. 윗선만 바뀌면 무엇이든지 달라지리라는 심리의 소산일까. 대통령이 바뀌어 사회가 달라질 수 있다면 그 사회는 괜찮은 사회일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입이 닳도록 불렀던 시절이 있었건만, 통일의 구체적인 상은 고민한 적이 없었던 교육과정. 우리가 바라는 통일의 상은 무엇일까. 이 땅에서 통일을 진정 바라는 이는 초등학생과 이산가족 이외에 누가 있을까. 햇볕정책으로 내 대에 통일이 이뤄질까 싶어 설렜던 때, 내가 원했던 건 남한의 자유와 풍요를 기꺼이 나누는 방식의 통일이었다.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 방식이 있으리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다. (북한은 통일보다는 분단을 고수하리라는 편견이 있다.) 국가나 사회가 유지되는 과정에서 숱한 생명이 무수하게 죽는다. 우리는 그러한 죽음에 함께 기여하는 줄도 모르는 채 죽어간다('살아간다'고 말하고 싶으나 우리네 삶이 과연 그러한가). 남북분단인 지금의 현실에서는 소리없는 죽음이 더 많을 것이다.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존속하는 체제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나는 눈이 밝지 못해 겨우 이 정도만 건졌지만, 생각의 크기에 따라 깨닫는 바가 다를 것이다.
에필로그의 뒷부분 259쪽부터 263쪽까지는 여러 번 읽게 된다. 이러한 책을 왜 냈는지 라종일 선생님의 고민이 담겨 있다. 분단 체제에서 정권의 기획에 따라 일그러지고 버려지고 말았던 청춘. 그를 위한 기록. 라종일 선생님이 강민철을 꺼낸 건 그가 휴머니스트이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지향해야 할 통일의 상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소소한 아쉬움. 이 책의 제목은 내용을 포괄하지 못한다. 인물의 이름을 딴 책은 한 인물의 생을 주로 조명한 평전을 떠올리게 하므로. '테러리스트'라는 수식어는 분단체제가 한 인간에게 강요한 역할이지 다면적 인간 강민철을 보여줄 수는 없기에(정보수집의 한계로 강민철의 전모를 드러내기는 어려웠지만), 라종일 선생님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바와 느낌이 살짝 다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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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를 보내버릴 수 있었는데.... 실패하고 아깝고 유능한 외교관, 기자들이 잔뜩 희생된 아웅산 테러 사건이 있었죠. 라종일 교수님은 안기부에서 일하셨고 외교통이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고, 이게 남한의 자작극일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우리나라 국정원이 그 정도로 유능하다면 참 좋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시더군요. 테러리스트, 나쁜 놈! 뭐 이게 맞는 소리긴 합니다만.. 북에서 파견된 3명의 테러리스트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강민철은 미얀마의 감옥에서 몇십 년을 보내고 결국 남과 북, 제 3국,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병으로 타국의 길거리 앰뷸런스 안에서, 병원을 지척에 두고 숨졌습니다. 북한에서는 그를 파견하면서 탈출하면 어디어디에 모선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통해 귀환할 수 있다, 라고 지시했지만 온갖 고생을 해 가며 도달한 곳에... 모선은 없었습니다. 북한에서 지급한 수류탄은, 아마도 고의인 것 같지만, 안전핀을 뽑자마자 폭발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던지는 사람부터 살상하게 되어 있었던 거죠. 옥살이를 하던 그는 20년만에 한국 외교관을 만나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쓰지 못했던 한국어를 들어 봤다고 합니다.
라종일 교수님은 이 책을 쓰시고 주변 분들에게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거냐! 하는 비판을 많이 들으셨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 책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네덜란드 등의 외신에서는 관심이 많았다는 것도 독특하죠. 영화 판권도 팔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라 교수님은 테러리스트 옹호가 아니라 이레이즈드 피플, 지워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한창 남북관계가 좋았던 햇볕정책 시절에 대한 라 교수님의 회고입니다. 미얀마에서는 이미 옥살이 기간도 끝났고 어디서든 데려간다면 보내 줄 용의가 충분했다고 합니다만, 그를 받아 줄 곳이 없었습니다. 남북한 모두가 모른 척 했기 때문이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악수를 하고, 잔치 분위기일 때도 20대의 강민철은 50대로 늙어갔습니다. 모두에게 잊혀진 채로. "환담과, 음식과, 술도 넘쳐났지만 이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대략 이런 구절로 기억합니다. 강민철은 묘도 갖지 못하고 화장되어 어딘가에 뿌려졌습니다. 라 교수님은 그의 송환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고, 사후 그의 묘소가 어디 있는지 미얀마에 문의했습니다. 미얀마의 대답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한 것은 당신이 처음이다, 였다고 합니다. 면회 온 이에게 강민철은 수줍게 자신은 아직 숫총각이다, 연애와 결혼을 해 보고 싶다, 라고 했다더군요. 28세의 총각은 그렇고 50대의 총각이 되어 타국의 노상에서 숨을 거둡니다.
가끔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강민철에 대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의 손을 폭파시켜 버린 수류탄, 없었던 모선, 모른다는 성명을 발표한 북한, 왜 한창 관계 좋은데 그 이야기를 꺼내냐며 라 교수님에게 핀잔을 주었던 사람들, 거국적으로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는데 오죽했을까 싶은 감옥의 식사, 연애를 해 보고 싶었던 스물여덟의 청년, 남북한 모두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냥 한국 사람이라도 있는 어디라도 가고 싶었던 형기가 끝나고 갈 곳 없던 죄수, 그 어떤 소원도 이루지 못하고 숨을 거둔 구급차와 어디에 뿌려진지도 알 수 없는 육신. 청년 한 사람을 지워지게 만들어 버린 이념과 대립과 북한의 희한한 세습 정치... 테러리스트가 되고 싶었을 리 없다고 생각이 되는 것은 폭탄이 터질 때 잇츠 익스플로디드! 터진다고 주변에 외쳤다고 하더군요. 미화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순간 마음이 약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를 악인으로 만든 것은 체제라고 생각되는 건 제 나이브함인지도.
29만원이 이렇게 뒈졌어야 되는데. 아까운 사람들만 엄청 죽어나갔습니다. 거칠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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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는 끔찍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이 자행됐는지, 정작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폭도로 매도당했고, 정부는 폭도를 진압할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처럼 굴었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그들은 정부에 맞선 빨갱이라는 평을 들었다. 끔찍했던 사건을 이용하려 든 이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북한 정권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그들은 시대에 동떨어진 인식을 가졌는데, 광주민주화 운동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광주 시민들의 움직임은 정부 전복을 위한 자생적인 혁명으로 비춰졌다. 남한 사회의 위기를 더 증폭시킨다면 자신들이 꿈꾸던 바를 이룰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그들은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었고, 그 장소로 버마를 골랐다. 처음부터 버마가 대통령의 순방 지역은 아니었다. 계획에 없던 장소가 갑자기 추가된 동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7년 단임제를 단호히 약속했지만, 퇴임 이후에도 자신의 영향력을 잃고 싶지는 않았던 대통령이 버마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실 여부는 알 길 없으나, 버마는 북한과 조금 더 가까운 곳이었으며 치안이 불안하다는 점에서 방문하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역시나 아웅산 국립묘지에서는 폭탄이 터졌고,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하여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자부 장관, 이계철 주 버마 대사,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그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애초에 제거 대상이었던 대통령은 예상 찮은 일정상의 문제로 인해 살아남았다. 남한 측의 자작극이라는 소리가 있었고, 버마측 역시 처음에는 남한 쪽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북측의 소행으로 결론이 났다. 테러범들은 동건 애국호를 타고 옹진항을 출발한 지 6일만에 랑군항을 통해 너무도 쉽게 버마에 진입했으며, 북한 정부 참사관 정창휘의 주택에 은신하며 때를 도모했다. 총 3명의 테러범들은 배에 탑승하기 전까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그들은 계획대로라면 임무를 완수한 후 다시 배를 타고 버마를 빠져나가게 돼 있었다. 하지만 폭탄은 계획보다 이른 시점에서 폭발했고, 그들은 쫓기는 신세가 됐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스스로를 지키는 일에 탁월한 능력을 보유했던 그들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배를 찾아 황급히 이동을 감행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배가 입항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세 명의 테러범 중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은 인물인 강민철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속한 사회의 체제의 옳음에 대해 주입 받은 이 인물은 자신의 손에서 폭발한 수류탄으로 인해 극심한 상처를 입었다. 몇몇 이들은 그가 자살을 감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수한 임무를 지니고 타국에 침투한 많은 공작원들이 실제로 자살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감옥에 갇혀 있는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을 배반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강렬한 삶의 의지를 보이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토록 만들었다. 애초에 북한은 비인간적이었다. 제 목숨을 걸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의 존재를 북한은 부정했다. 이후의 삶은 개개인이 알아서 책임지라는 것이 북한의 공식적인 태도였다. 남한 정부의 입장에서 그는 대통령을 암살하려 든 테러리스트였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그를 품으려 들 이유는 없었다. 제3 국에서 그는 외로웠다. 외로움과 싸우면서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에게 힘이 되어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간암이었다고도 하고, 독살이라는 소리도 있다. 사망한 이후에도 그를 돌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긴 하지만 그 역시 이데올로기에 갇힌 희생자였고, 인생의 절반가량을 타국의 감옥에서 보낸 불쌍한 인물이었다. 오늘날까지도 그 존재를 부정 당하고는 하는 북파 간첩들의 사연이 떠오른다. 아무도 그들에 대해 책임지려 들지 않았다. 존재마저도 부정당한 채 철저히 잊혀져야만 했던 인물들을 우리의 역사는 너무도 많이 양산했다. 분단이 현존하는 한 이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철조망 안에 갇힌 우리는 세상을 바로 볼 기회를 아직 갖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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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의 김정일은 대한민국을 전복시킬려고, 김옥화(김현희) 부녀의 항공기 테러와 강민철(강영철)일당의 아웅산 묘소 폭발사건을 일으켰다. 북조선의 공작원들은 임무가 끝나면 소모품 처럼 버려졌다. 또한 자살에 실패하고 대한민국으로 귀순하면 남아있는 가족이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북한의 공작원들이 가명을 많이 쓰는데, 마치 일본의 창씨개명보다 더 하다. 본인의 이름과 근본을 숨겨야 했으니 더욱 많은 사람들이 스파이 활동을 할려고 본명을 밝히지 않는다. 이념이 다른 국가가 공동으로 조사하면 중립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버마 당국에서 조사했다. 버마국에서 외국인 테러리스트들에게 종신형을 선고했음에도 남한으로 갈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사 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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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명령에 의해 아웅산 테러를 자행한 공작원 중 한 명이 버마에서 25년간 형살이를 하다가 남북한 어느 곳으로도 가지 못한채 객지에서 죽었다. 이 책은 정치학자이자 국정원에서도 일한 적있는 노학자인 라종일 교수가 그 젊은이를 위해 쓴 진혼곡이다. 아웅산 테러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83년 10월 9일이다.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전두환 대통령과 관료 등 사절단 등이 버마를 방문하였을 때 아웅산 장군 묘지에서 폭탄이 터져서 30여명의 장관, 수행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북한이 있었다. 바로 북한은 특수공작원 3명이 전두환 대통령의 암살을 위해 벌인 일이었던 것이다. 테러범 3명 중 2명은 죽었고, 1명은 25년간 남한도 북한도 아닌 버마의 한 교도소에서 형기를 채우던 중 사망했다. 그가 강민철이다. 이 극악무도한 가해자에게 대체 인권이라는 것이 용납될 수 있을까?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서 남북한이 긴장기에서 평화로운 상황이 되었을때도 이 청년은 구제받지 못한다. 긴장기에나 평화기에나 '쓸모' 없이, 남북한 간 긴장만 유발한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물론, 저자는 피해자와 유가족이 엄연이 있기에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개인의 잘못인지 국가의 잘못인지 저자는 묻고 있다. 저자는 이 사건이 극한의 대결구도로 치닫던 남북 냉전 구도속에서 발행한 일이라 여긴다. 박정희 암살 후 권력의 공백 속에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많은 재야인사, 시민과 대학생의 저항을 받는다. 모두 어느 정도 제압을 했지만, 80년 5월 광주의 민주항쟁을 참혹하게 짓밟는다. 북한에서는 이를 지켜보며 다른 생각을 꿈꾼다. 이렇게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민족의 원수를 테러로 제거한다면, 남한의 국민들이 다 돌아서서 친북체제를 더 옹호할 수 도 있다는 신기루가 그것이다. 저자는 그렇기에 이 사건이 남북한 모두가 책임있는 사건이라고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3년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북한의 무리한 작전이 더 큰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최소한 테러를 성공하면 남한의 혼란은 북한에겐 손해보지 않는 장사가 아니었을테니 말이다. 주모자 3명 중 2명은 죽는다. 한 명은 무기징역으로 제3국에 머무르며 25년을 살다 석연찮은 죽음을 당하게 된다. 저자는 우리 역사의 비극적 이면과 국가권력의 폭력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강민철을 실제로 만나지도 못했으면서 한 동포 젊은이가 의미없이 국가권력에 희생당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를 발굴하여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