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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에나 지식에 대한 욕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료를 모아 책으로 엮어내곤 한다. ‘백과전서’라는 표현은 다양한 부문(百科)에 관심이 관심이 많아, 온갖 책(全書)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는 뜻이라고 하겠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정보를 모아서 엮어낸 이들을 가리켜 '백과전서파'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한다. 이들은 단지 정보를 모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일목 요언하게 정리하여 책으로 엮어서 세상에 유통을 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엮은 책을 사전처럼 활용한다면 바로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책이 귀했던 시기에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책을 모으는 것 역시 지식인들이 바라는 가장 고상한 취미 가운데 하나였다.
19세기에 활동했던 홍한주(1798~1868)의 <지수염필(智水拈筆)>은 다양한 정보를 모아 엮은 일종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지수(智水)’란 저자의 유배지였던 전라도의 지도(智島)라는 섬을 지칭하고, ‘염필(拈筆)’은 붓을 뽑아서 자유롭게 지칭한다는 의미이다. 제목에서부터 책의 성격을 저자가 듣고 보았던 내용을 자유롭게 기록한다는 의미를 담아낸 것으로 여겨지는데, 특별한 체제를 염두에 두지 않고 중국과 조선의 다양한 정보들을 광범하게 모아 엮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모두 8권 4책으로 구성된 원저를 각각 4권씩 상권과 하권으로 나누어 번역하였고, 이 책은 그 가운데 상권에 해당한다.
1권의 앞부분에 ‘장서가’와 ‘저서’등의 항목이 수록되어 있는데, 책과 정보를 모으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파악된다. 대개는 중국의 서적과 인물들에 관련된 내용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기에 조선의 자료들과 관련 인물들을 덧붙여 비교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통감>과 <사략> 그리고 <천자문>과 <십삼경주소> 등 중국의 서적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담아내고 있으며, 여기에 ‘우리나라의 경세서’ 항목을 따로 두어 이이의 <성학집요>와 허준의 <동의보감> 등에 관한 상세한 정보도 소개하고 있다. 대체로 저자의 관점은 유가의 입장에서 정보를 수록하고 있으며, 주자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2권의 ‘술을 금지함’이라는 항목에서 영조 때의 금주령 등에 관해 언급한 후, ‘엄하게 막을수록 범하는 자도 많아져서’ 술을 금하는 정책이 제대로 시행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내용도 발견된다. 주로 문장을 논하는 내용의 3권에서는 ‘영수각 서씨’를 비롯한 여성들의 문예 활동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으며, 이름을 짓는 방법과 자나 호 등에 관한 관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아울러 4권에서는 1821년(신사년) 전국을 휩쓸었던 괴질(콜레라)로 인해 힘겨웠던 상황을 회상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저자의 관심에 포착된 정보들은 다양한 기록들을 보완해 각각의 항목으로 구성하여 수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번역자들은 이 책의 이러한 특징을 ‘견문지식의 축적과 지식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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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지수'라는 호를 가진 분이 노년에 쓴, 평소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한 감상을 쓴 일종의 수필이다. 유사한 책으로 읽은 것을 든다면 익재 이제현의 낙옹비설(또는 역옹패설)이다. 19세기는 맞지만 그 내용이 견문지식의 축적과 지식의 탄생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19세기 한국의 지식인이 접하고 배우게 된 서양 문물에 대한 지식을 기술한 것처럼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막상 서양 문물과 관련된 것은 담배 등 극히 몇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책이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 당시 지식인들의 사고방식과 교양 상식에 대한 내용을 엿볼 수 있어 '지수염필'이라는 책 자체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몇가지 이 책을 통해 알게된 (또는 그 당시 사람들이 믿고 있는) 사실들은 개인적으로 중요하고 흥미 있다. 예를 들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막상 우리 말보다는 중국어를 중시하여 조정에서는 중국어로만 대화를 하도록 강요하였다는 내용, 이름을 항렬, 오행을 따라 돌림자를 쓰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었으며 저자는 이를 촌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 한글을 오로지 한문의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목적도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있음), 마치 현재의 입시 공부와 유사하게 당시 과거 시험을 위해 '시나공(시험에 나오는 것만 공부)'하여 실제 경전의 내용에 대해서는 오히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판 등이 있다. 그 당시의 지식인들의 사회상을 보기에는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