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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은 <창세기>로 시작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성경의 첫 문장이다. 신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창 1:2)는데,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 1:3),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불렀다. 이것이 신이 천지창조 첫째날에 한 일이다.
매우 영리하게도 김리윤은 「재세계reworlding」라는 시를 이 시집의 맨 앞에 배치했는데, 그 의도는 매우 명백해 보인다. 이것은 새로 쓰는 창세기이자 새로운 천지창조이다. 그리고 이 시집이 '빛'에 관한 거대한 이야기일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을 감안하고(그러니깐 시인이 친절하게 준 힌트를 염두에 두고) 이 시집을 읽으면,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랄까, 이미지들이 선명하고 명확하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시집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속으로 '이거 정말 좋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시집을 많이 읽는 편일까? 일년에 4-5권씩의 시집을 구입하고, 구입한 시집들을 읽는다. 그 정도가 내가 경험하고 아는 시의 전부라고 할 수 있으므로, 시에 대해서, 한국 시인들에 대해서 뭐라고 왈가왈부하고 평가할 수준은 아닌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읽었던 시집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다정한 언어로 초대하는 아름다운 세계라고나 할까. 시인은 철저히 다정하고 아름다운 언어들을 선별하여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채택하여 본인의 시 세계를 구축하는데, 그가 그렇게 만들어낸 세계(reworlding)는 어떤 선동적인 언어로 구사하고 현혹하는 것보다도 더욱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왜 그럴까. 어디서 그런 매력이 나오는걸까. 독자로서 나는 왜 이 시인의 시에 이렇게도 강하게 끌리는 걸까. 시집을 읽는 동안 내내 그게 궁금했다. 나의 이 감정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나는 동양철학은 잘 모르지만, 그 기본이 양과 음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기존에 이것을 이분법적으로 이해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서양철학들 역시 이 이분법에서 기인한다. 기독교의 사상이 그러하고 대부분의 것들이 선과 악, 이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하늘과 땅을 구분하고 나눈다. 그리고 대체로 '내 편'은 좋고, 그렇지 않은 것은 나쁘고 악인 것으로 인식한다. 이 이분법은 얼마나 단순하고 나이브한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면, 음과 양, 남과 여, 명과 암 등 기존에 이분법으로 갈라치던 것들을 상호보완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것만 해도 상당한 전진이자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김리윤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명과 암 사이에 얼마나 다채로운 빛들이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어둠과 빛만 있는 것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분법적으로 나눠지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 우리의 인식에서 그동안 소외시켜왔던 그 많은 것들, 그 다양한 것들을 들여다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더 나아가 그것의 아름다움과 다채로움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느끼게 해주는 게 김리윤이 이 시집에서 하는 일이다. 그 일을 선동적인 언어가 아닌 다정한 언어로 성취했다는 점이 매우 경이로운데, 이것이 그녀의 첫 시집이라는 걸 떠올리면, 그 감격은 더욱 커진다.
이 시집엔 수많은 주석들이 달려 있고 단어를 재정의하는 사전적 개념들이 덧붙여져 있는데, 나는 이 점이 김리윤의 의도를 명백하면서도 확고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의 의도치 않은(혹은 의도한) 순기능은 메타독서가 가능하다는 점(이 시집에서 인용하는 책들을 모두 읽어 보고 싶게 만든다는 것도 이 시집이 가진 큰 미덕이다)이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김리윤이 만든 재세계(reworlding)는 유일한 존재(구약성경으로 한다면 유일신)가 하나의 언어로 만든 세계가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의 다양한 언어로 구축한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데 있다. 김리윤의 다채로움, 그의 시가 보여주는 다양함, 그가 만든 재세계(reworlding)의 아름다움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수많은 이미지들 사이에서 다양한 빛들이 각자의 밝기와 크기로 반짝이는데, 이렇듯 언어로 재창조한 세계는 대자연을 볼 때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김리윤의 시들을 읽다보면 가슴이 벅차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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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잘 안 읽는 편인데 무겁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 다만 시라고 생각하기에는 장문이라 호흡이 조금 길게 느껴진다는 게 아쉽지만 한 번에 책 한 권을 술술 읽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작가분께서 다른 문화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 어느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거나 한다는 점이 특히 재미있었다 그러지는 형상과 떠오르는 예술들이 시에 매력을 덧붙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