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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한 悲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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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기가 확실히 서늘해졌다. 이제 태양 중심의 황도시계가 정점을 찍었고 기울기의 추가 방향을 틀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입추 지난 주말에 새로 나온 소설책 한 권을 읽기 시작했다. 밤을 꼬박 새워 조용호 작가의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민음사) 장편소설을 읽었다.오랜만에, 잠든 내 영혼의 실핏줄을 튕겨줄 ‘활대’ 같은 소설을 만난 주말 밤이었다. ‘낡은 소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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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기가 확실히 서늘해졌다. 이제 태양 중심의 황도시계가 정점을 찍었고 기울기의 추가 방향을 틀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입추 지난 주말에 새로 나온 소설책 한 권을 읽기 시작했다. 밤을 꼬박 새워 조용호 작가의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민음사) 장편소설을 읽었다.

오랜만에, 잠든 내 영혼의 실핏줄을 튕겨줄 ‘활대’ 같은 소설을 만난 주말 밤이었다. ‘낡은 소재’라고, 문학판에선 진즉에 닫아버린 1980년대의 시국 관련 탄압사건(야학연합회)을 다룬 소설이었다. 누군가에겐 폐해의 당사자로서 40여 년 동안 여전히 피 말리는 현재 진행형이었음을, 우린 몰랐다. 도서관에서 투신한 학형의 죽음, 야학 활동을 함께했던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강하원’의 실종사건을 겪은, 그 남자가 살아낸 세월의 고통을,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체포의 손길을 피해 도망쳐온 서해안 바닷가 외딴 빈집에서 열흘 남짓 함께 보낸 장소를, 남자는 ‘순금 같은 기억의 성소’라고 불렀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실종상태 연인을 찾아 돋보기를 들이대고 세상을 훑어가는 주인공 남자의 시선을, 나도 함께 따라나섰다. 한 발짝 한 발짝 추적해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간 서늘한 문체. 유가족들의 청원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보낸 보고서와 답변자료들을 과정별로 병치시키면서 씨실 날실로 짠 촘촘한 그물 벼리를 쥐고 풀었다 죄기를 반복했다.
참 고맙다! 야만과 인권 유린의 시대에 헛발 딛지 않고 추적의 끈을 늦추지도 않고, 사랑했던 연인의 실체를 찾아 헤매는 순정한 남자에게, 진심의 말을 건네고 싶다. 끈질기게 추척해가는 추동력을 보여준 작가께도, 참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하원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찾아내야만 죽음의 실체를 믿겠노라고” 뇌던 남자의 말.

천년 전 중세시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 편지’가 프랑스에서 고전문학으로 꽃피었듯이 ‘강하원과 그 남자’의 사랑 역시도 ‘순정한 悲歌’로 고전의 반열에 오르길???.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무덤 때문에 사랑의 성소가 되었듯이 서해 외딴 빈집에서 그들이 열흘 남짓 사랑을 나눴던 장소가 순정한 사랑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기림의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먼 훗날 강하원과 그 남자가 나란히 묻힌 무덤 위로 따듯한 봄볕이 내리쬐길???.

작가는 자기 소설에 대한 말미를 이렇게 되뇌었다, “쓸쓸한 오지의 넋두리 같은 글이지만 그래도 내가 이 척박한 세상을 견디는 힘이었으니 비웃지는 말거라”라고. 이 말 역시도 시대의 제물이 되었던 영혼들에게 바치는 순정한 悲歌로 읽혔다.

소설 한 권을 읽고 이렇게 가슴 통증을 느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처음엔 얼음조각에 살짝 베인 것처럼 오목가슴께가 싸하고 아린 느낌이더니만, 차츰 위쪽으로 올라가 안구건조증을 앓고 있는 왼쪽 눈에까지 물기를 넘치게 하고야 말았다.
y******7 2022.08.15. 신고 공감 8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