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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툰> 세 번째 책은 '빨강머리 앤'이다. 너무나 유명해서 안 읽어본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MZ세대'들에겐 낯선 작품인 모양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빨강머리 앤'을 아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몇몇 아는 아이들조차 '엄마가 좋아하는 책'이라고만 할뿐, 자신들의 취향은 아니라고 말할 정도다. 그럼에도 팬층은 대단히 두터운 편이다. 아마도 그 팬층이 호주머니가 든든한 4~50대이기 때문일 것이고, 이들이 어릴 적에 보았던 '애니메이션'이 추억을 돋우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한다. 하긴 그 당시 남자아이들은 '미래소년 코난'에 열광했고, 여자아이들은 '앤'과 '캔디'에게 푹 빠졌더랬다. 그러고 보니 '들장미소녀 캔디'도 비슷한 설정이었다. 고아소녀였던 것이 말이다. 하지만 캔디는 외로워도 쓸퍼도 울지 않는 씩씩함이 매력이었던 반면에 앤은 '다른 면모'로 사랑을 받았다.
'빨강머리 앤'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같이 있는 사람'에게 무한한 생동감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상상력을 뿜어낸다. 남들에겐 평범해 보이는 것들에 '매력적인 이름'을 붙여주어 상상력을 공유하는 독특한 능력을 앤은 갖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Ann'으로 밋밋하게 부르지 말고, 꼭 'e'자를 붙여 'Anne'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더 좋은 이름은 '코딜리아'라는 낭만적인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 어째서 낭만적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앤이 '그렇다'고 하니, 그 순간부터 낭만적일 따름이다. 이토록 쉼없이 쫑알거리는 소녀가 우리 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분명할 것이다.
물론, 앤에게도 결점이 많다. 빨강머리에 대한 편견이 지나쳐서 '자격지심'으로까지 심화되었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에, 덜렁거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 소녀라고는 하지만 '허영심'이 너무 많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결점조차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장점이 너무 커질 때 앤에게 부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결점은 커가면서 점점 작아지고 철이 들면서 자중할 줄 아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결점이 줄어드는 대신에 '상상력'은 수많은 사람들을 공감시키는 능력으로 극대화 되어서 '시 낭송'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아주 탁월한 능력으로 발휘되곤 한다.
이런 앤 같은 친구가 우리 주위에 한 명쯤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매슈와 마릴라의 삶의 변화가 바로 그 증거일 것이다. 무뚝뚝하고 고집이 센 두 남매의 집에 앤이 함께 살게 되면서 '사람 사는 집'처럼 바뀌었기 때문이다. 친구인 다이애나는 어땠는가. 평생을 함께 할 소중한 또래 친구를 얻음과 동시에 삶의 활력을 얻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절은 가장 아름답게 보낼 수 있었다. 이는 앤과 함께 다니던 학교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요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앤과 같은 친구가 꼭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점점 꿈을 꾸는 친구들이 줄어들고 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나 어릴 적만해도 '문학소녀'들이 잔디밭에 모여앉아 예쁜 꿈들을 쫑알거리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다. 우리 세대가 기억하는 '여고시절'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물론 그 내용이 시집 잘 가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현모양처의 꿈'이었을지언정, 그 시절에는 그런 꿈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힘겨운 시절이었기에 더욱 소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현모양처'를 꿈꾸던 소녀가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딸들이 또다시 꿈꾸는 시절이 도래했건만, 그 꿈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저 명문고, 명문대, 그리고 대기업 사모님을 꿈꾸는 것으로 바뀔 뿐이란 말인가? 이젠 여성들도 얼마든지 '사회적인 역할'을 맡아 더 큰 꿈을 꿀 수도 있는 시절이 왔는데 말이다.
만약, 앤처럼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가 오늘의 대한민국에 살았다면 달랐을 것이다.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능력을 맘껏 뽐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공감력을 발휘하여 '멋진 꿈'을 함께 꾸게 만드는 위대한 인물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뛰어난 위인이 아니어도 좋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언제 어디서라도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 그런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생동감 넘치는 삶의 영감을 받게 되어 살맛 나는 시절을 함께 할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고아소녀'로 살아간다면 운명은 좀 달라질 것이다. 왜냐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고아수출국'으로 손꼽히는 나라인 탓이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긴 한데, '핏줄'이 아니면 사랑받을 자격도 행복할 권리도 모두 빼앗긴 것마냥 '고아'에게 냉담한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빨강머리 앤'처럼 상상력이 뛰어나고 무엇이든 생기를 불어넣는 초월적인 힘의 소유자라고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그 힘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다른 나라'로 입양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위대한 인물로 성장해 고국을 그리워하는 엉뚱한 헤프닝이나 벌일 것이고 말이다. 그도 아니면 만 18세가 되어 고아원에서 내쫓기고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안타까운 생을 마감할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현실'에 대입하는 실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지 않으면 절대로 달라질 수 없다. 우리 나라보다 경제적 후진국인 동남아 국가들조차 '고아'에 대한 처우가 이렇게까지 박하지는 않다. 자국의 고아를 '다른 나라'에 보내는 비율도 적고,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훌륭한 인재로 키워 나라에 보탬이 되는 멋진 일원으로 품에 안아주는 정책을 실행한다. 그러면서 놀라워 한다. 대한민국처럼 멋진 선진국에서 '고아에 대한 정책'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말해주면 믿지 않을 정도로 놀라곤 한단다. 이젠 우리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선거철만 되면 양로원에는 문턱이 닳도록 정치인들이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찾아가지만, '고아원'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한다고 한다. 연말에나 겨우 찾아가 '사진찍기'만 하고서 하릴없는 훈계나 늘어놓고 돈 몇 푼 쥐어주는 게 고작이다. 이제는 정신 좀 차릴 때가 되지 않았으려나.
그동안 살펴본 <제인 에어>, <주홍 글자>, 그리고 <빨강머리 앤>까지 모두 여성이 주인공인 문학이었다. 비록 만화형식이지만 '원작의 내용'을 크게 훼손하지 않게 각색을 한 덕분에 '원작의 맛'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기에 모두 훌륭한 책이었다. 그리고 '문학툰'이라는 새로운 장르였기에 여성이 극복해야 할 '시대적 한계'를 더욱 뚜렷하게 엿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 탓이다.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어린 친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시대적 배경'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홍 글자>는 17세기 미국 메사추세츠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제인 에어>는 19세기 영국을, 그리고 <빨강머리 앤>은 19세기 캐나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의 여성들은 '종교적 박해'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에게 종속된 삶을 살도록 억압받는 것이 당연시되던 암울한 시대였다. 당연히 여성에겐 '선거권'도 없었고, 사회적 활동을 일절 금하던 시절이었단 말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의 여성들은 하나 같이 '진취적인 사상'을 품고 있다. 여성이 '할 수 없는 일'을 거뜬히 해내면서 말이다.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우리 사회는 완전한 '양성평등 사회'로 탈바꿈한 것일까? 그러기엔 아직도 미흡한 점이 너무도 많다. 심지어 꼴통대통령이 등장해 '실력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여성인권을 박탈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장모와 마누라 말씀을 잘 듣는 강아지처럼 굴면서 말이다. 여성은 굴레에 종속되어야 마땅하고 굴종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헛소리는 집어치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기에 당당한 인간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아가려 애쓴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을 두루 섭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대적 배경 이해가 힘들다면 <문학툰>을 먼저 읽으며 이해를 돋우고 상상력을 키워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문학툰>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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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비즈의 <문학툰> 네 번째 책은 너무나도 감동스런 <레 미제라블>이다. 19세기 낭만주의 문학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이 책을 '한 권의 만화책'에 다 담는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책에는 다 담겨 있다. 비록 그 감동까지 다 담을 순 없을지라도 마지막 장을 넘길 때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것은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4주간 아이들과 함께 한 논술 수업의 <문학툰> 마지막 책으로 이 책을 골랐으며 '대작'을 축약해 어린이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들 가운데 이 책만이 줄 수 있는 감동 포인트도 함께 수업해보았다.
아시다시피, <레 미제라블>은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또는 '비참한 사람들'이란 뜻도 있다. 시대배경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의 혼란을 겪으며 '공포정치' 시절을 지나 '제정'이 들어섰다가, 다시 '왕정복고'가 들어섰다가 또다시 '7월혁명'이 일어날 즈음의 1820년대를 관통하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삼았다. 시민들은 성직자와 귀족들의 수탈과 억압을 더는 참지 못하고 '제3신분(부르주아)'를 주축으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는 것으로 혁명을 시작하였다. 그로 인해 '루이16세'를 단두대에 올려 시민들이 직접 왕정을 폐지하기에 이르렀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주축이 사라진 프랑스는 '내부 혼란'과 '외부 공격'이라는 두 가지 위기를 한꺼번에 맞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영웅이 바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은 내부의 혼란과 외부의 침략을 '결속'으로 극복하는 한편, 시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며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수호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스스로 '황제'에 올라 '구체제의 모순(앙시앵 레짐)'을 다시 재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하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몰락'이다. 이는 프랑스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으며, 노동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빵 한 조각'을 사기 힘들 지경에 놓이게 되면서 노동자들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던 것이다. 이런 경제적 불안은 사회불만을 키웠고 조금이라도 힘이 약한 사람은 자기 것을 빼앗기고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사회불안이 이어지자 프랑스 정부는 '법치주의'를 내세우며 법과 질서를 앞세우지만 당장 먹을거리가 부족한 시민들은 법과 질서보다 먹을 것을 달라며 아우성을 목놓아 외쳤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가혹한 형벌'과 '무시무시한 채찍질'이었다. 이렇게 프랑스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비참한 처지에 내몰렸다. 그러나 더욱 끔찍한 것은 그렇게 불쌍한 처지로 내몰린 사람들끼리도 서로 돕기는커녕 '범죄자'로 낙인 찍힌 이들을 차별하며 나락으로 내몰 정도로 사회분위기가 뒤숭숭해진 것이다. 누구라도 아무런 죄 없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사회에서 그 구성원들 하나하나가 '범죄자'로 낙인 찍히면 두 번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없도록 내몰았던 것이다. 이렇게 비참하다 못해 '비열한 사회'가 되어 버린 프랑스는 혼돈 그 자체였고,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또 다른 혁명'을 꿈꾸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불쌍한 두 사람 '팡틴'과 '장 발장'이 서로 만난다.
팡틴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여쁜 10대 소녀였던 팡틴은 아름다운 금발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멋진 남자와 달콤한 사랑을 나누며 결혼을 꿈꾸는 평범한 소녀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멋진 남자는 팡틴은 '하룻밤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헌신짝처럼 버렸고, 팡틴은 그만 버림 받았다. 비단 팡틴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원작'을 보면 팡틴을 비롯한 다른 소녀들도 똑같이 사내들의 무정함에 버림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팡틴은 달랐다. 이미 그 남자의 아이를 뱃속에 가졌기 때문이다. 졸지에 미혼모가 된 팡틴은 어린 코제트를 데리고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꾸려가려 했으나 어디에서도 받아주질 않았다. 결국, 팡틴은 테나르디에가 운영하는 여인숙에 소중한 딸을 맡기고 고향으로 돌아가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한편, 장 발장은 굶주리는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쳐 달아났다가 도둑으로 잡혀 재판을 받았는데, 형량이 5년이었다. 빵 한 조각을 훔쳤다고 5년 동안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판결'이었다. 더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벌인 것도 아니고 어린 조카들이 굶어죽을 판이기에 어쩔 수 없이 벌인 죄값이었다. 그래서 장 발장은 탈옥을 결심한다. 허나 탈옥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고 다시 붙잡히길 반복하니 결국 19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말았다. 그렇게 '가석방'을 받아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잠시, 범죄자의 신분으로는 일자리는 고사하고, 먹을 것도, 지친 몸을 잠시 뉘일 곳도 얻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기 일쑤였다.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혔으니 지나가던 아이들도 돌을 던져대는 신세가 되자 장 발장은 어느새 분노와 복수라는 마음만 가슴 가득히 품게 되었다.
그러다 겨우 눈을 부친 곳이 성당 문앞이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미리엘 주교'가 선뜻 맛있는 빵과 따뜻한 잠자리를 권해주어 실로 오랜만에 장 발장은 '안식'을 맞게 된다. 하지만 이미 가슴 가득히 분노와 복수 등 나쁜 마음을 품은 장 발장은 주교의 호의를 '도둑질'로 갚게 된다. 성당에가 가장 값비싼 '은식기'를 훔쳐 달아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장 발장은 마을을 벗어나기도 전에 헌병에게 붙들려 성당으로 되돌아 오고 만다. 또다시 '죄인' 신분으로 말이다. 하지만 미리엘 주교는 장 발장은 범죄자가 아니라며 두둔했고, 남아 있는 '은촛대'마저 챙겨가라며 손수 가방에 넣어준다. 그리고 "잊지 마시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은식기를 쓰겠다고 약속한 것을"라고 말을 건낸다. 장 발장은 한 적이 없는 약속이라 얼떨떨했지만, 주교는 은은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이제 장 발장은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장 발장은 고뇌에 빠진다. 자신이 정말 다시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미 절망을 맛본 상태에서 아무도 구원해주지 않는 비정한 사회를 향해서 다시 착한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고뇌의 찬 와중에 자신의 발밑으로 굴러온 동전을 본능적(!)으로 감추고 동전을 잃어버린 소년을 향해 꺼지라고 윽박을 지르고 만다. 장 발장은 다시는 나쁜 짓을 짓지 않겠다는 맹세가 얼마나 허망하게 사라질 수 있는지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감옥에 갈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억울하게 살았다 생각하면서 '동전 한 닢'을 훔치는 자신의 본성이 얼마나 추해졌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장 발장은 자신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뒤늦게 소년을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다시 도망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장 발장은 두 번 다시 '나쁜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굳은 다짐을 한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 장 발장은 '새로운 기술(구슬제조법)'로 제법 돈을 모았고 공장을 열어 수많은 직공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얻어 '마들렌 시장님'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팡틴은 마들렌의 공장에 취직해 알뜰히 돈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팡틴은 좀처럼 돈을 모을 수 없었다. 하루 빨리 돈을 모아 자신의 딸 코제트를 찾으로 가야 하건만, 여인숙의 주인은 '사기꾼'에 '도둑놈'이었기 때문에 팡틴에게서 돈을 뜯어내 제 몫으로 취하고 코제트는 하녀 취급을 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팡틴은 테나르디에 내외가 달라는 돈을 넙죽넙죽 갖다바치기 바빴고, 액수는 점점 부풀려져서 끝내 감당하기 힘들어졌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곱상한 팡틴을 두고 질투심에 불타던 동료직원들이 '팡틴의 비밀'을 공개하면서 결국 일자리도 잃게 되었고, 그 뒤로 팡틴은 여자로서 감당할 수 없는 치욕을 참고 견디며 코제트에게 필요하다는 돈을 송금하며 서서히 병들어 갔다.
뒤늦게서야 마들렌(장 발장)은 이 사실을 알고 팡틴을 도우려 했지만, 이미 병든 팡틴의 목숨을 살릴 수는 없었고, 죽어가는 여자의 마지막 부탁인 '코제트'를 구하기 위해 떠나려 하지만 '자베르 경감'에게 정체가 들통나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더 미뤄지게 되었다. 자신을 대신에 억울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당당히 밝히고 감옥에 수감되었기 때문이다. 암튼, 위기에 빠진 선원을 구하고 탈옥 아닌 탈옥을 한 장 발장은 '시장 시절'에 모아둔 돈을 챙겨 코제트를 구하려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코제트를 구한 장 발장은 '코제트의 아빠'가 되어 세상의 큰 기쁨을 느끼게 되었지만, 자베르 경감의 집요한 추적 때문에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포슐르방의 도움으로 수녀원에 숨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마리우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마리우스 퐁메르시는 부유한 외할아버지의 귀여운 손자였지만 '왕당파'인 외할아버지와 '공화파'인 아버지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가난하게 사는 청년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들임을 포기하면 자신의 재산을 상속받아 부유하게 살 수 있다며 말했지만, 마리우스는 조국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의 핏줄임을 자긍심으로 삼았기 때문에 외할아버지의 재산을 받지 않을지언정 아버지를 부정하지 않는 꼿꼿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마리우스였기에 자연스레 '사회 부조리'에 눈을 떴고, '혁명'을 꿈꾸는 청년들의 모임에 들락거리거렸지만, 한 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소녀 때문에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기도 했다. 그 소녀의 이름이 바로 '코제트'였던 것이다.
하지만 '혁명'은 곧 시작될 것이고, '코제트와의 사랑'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왜냐면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는 '마리우스'와 '장 발장'에게 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 경찰 가운데 자베르도 있었던 것이다. 경찰들은 시위대에 잠임해서 정보를 캐내는 한편, 자베르는 장 발장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추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급박한 상황속에서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장 발장이 자베르의 추격을 피해 영국으로 도망갈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에포닌은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을 곁에서 지켜보며 사랑의 달콤함 대신 쓰디쓴 고통을 느끼게 된다. 테나르디에의 큰 딸이었던 에포닌은 자신의 아빠가 '코제트의 아빠'의 재산도 노리고 '마리우스의 주머니'도 모두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이 둘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것뿐 아니라 끝내 경찰과 시위대의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마리우스를 구해내고 대신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제트와 이미 사랑에 빠져버린 마리우스는 에포닌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닥 슬퍼하지 않는다. 아니 슬프고 고맙긴 했지만, 코제트와 헤어질 아픔 때문에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절망에 빠졌었기 때문이다.
끝내, 마리우스는 경찰과 총격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상처를 입고 쓰려져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장 발장이 때마침 구해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장 발장은 코제트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홀연히 떠났다. 뒤늦게서야 모든 비밀이 밝혀지고 마리우스는 자신의 목숨을 구한 의인이 바로 장 발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을 범죄자 취급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용서를 구하지만 이미 장 발장의 목숨은 꺼져가는 촛불과 같았다.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어린 독자를 위한 '축약본'이 이미 많이 출간된 상태라서 대강의 줄거리는 이미 잘 알려진 상태다. 여기에 '만화형식'의 한계까지 더하게 되니 줄거리는 더욱 간결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책만의 장점을 꼽자면, '시대배경'을 (그림으로 직접 보면서)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읽을 수 있기에 어린 독자들의 이해가 더욱 편리했다는 점이다. 또한 등장인물의 '표정'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대화'를 읽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원작의 감동'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물론, 원작이 주는 감동에 비할 바는 못 된다. 허나 이는 '장편소설'이 주는 위용과 거대한 물줄기를 타는 듯한 큰 감동과 여운에서 비롯된 것일테니, 만화에서 큰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은 단점이 아니라 꼬투리를 붙잡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원작의 내용을 알고 있기에 <문학툰>이 주는 감동은 또 새롭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새로운 이야기'로 펼쳐져 현대적인 느낌으로 되살리는 촉매가 될 것이고 말이다.
실제로 아이들과 논술수업을 하면서 '프랑스 혁명'과 '6월 항쟁'을 비교하면서 읽어 나갔다. 프랑스 시민들이 꿈꿨던 새로운 세상과 대한민국 시민들이 꿈꿨던 새로운 세상을 분석하면서 말이다. 시대적 아픔이 시민들의 의식을 성장시키기 마련이다. 비록 혁명은 피를 부르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치룬 다음에야 얻어지는 새 세상이지만, 이미 불쌍하고 비참한 상황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이 꿈꿀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을 '그 순간'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희망과 목숨을 맞바꾸면서까지 말이다.
그리고 권력의 속성은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기 위함이니 <동물농장> 속의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감시하고 정책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교양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민주주의는 선거가 끝난 뒤에 넋놓고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던진 '소중한 표'에 무한한 책임을 질 때 바로 설 수 있다고도 했다. 또한 정치인은 100% 사기꾼이고 예비 독재자이니 뽑고 난 뒤에 잘 관리하는 성숙한 시민이 되어야 민주주의가 바로 잡힐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레 미제라블'이 되지 않을 수 있다면서 말이다. 결코 '그들만의 천국'을 좌시해선 안 된다고 또다시 강조하면서 말이다.
끝으로 <문학툰>을 감상한 뒤에 '원작'을 다시 한 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문학툰>으로 '원작의 맛'을 보았고, '대작의 감동'을 느낄 준비를 마쳤으니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이 책 <문학툰> 시리즈가 굉장히 훌륭한 점은 뛰어난 '각색'으로 원작의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수의 '축약본'이 각색을 하고 줄거리를 압축하면서 '원작'과는 사뭇 다른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는데, 이번 <문학툰>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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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툰'이 출간되었다. 그동안 '교양툰'으로 인문학적 교양을 쌓아올렸다면, '문학툰'으로 우리의 감성과 인성을 충만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문학툰'은 모두 4권으로, <제인 에어>, <레 미제라블>, <빨강머리 앤>, 그리고 <주홍글자>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책으로 <제인 에어>를 소개하고자 한다. 비록 '만화형식'의 책이지만, '원작'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훌륭한 '각색'인 덕분에, '원작의 맛'을 잃어버리지 않고 '만화의 재미'까지 담아놓은 수작이다. 만약, 원작에 담긴 내용이 난해해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 있었다면 '문학툰'을 적극 권한다. 주제를 알고 읽으면 더욱 감동적인 '문학툰의 세계'로 기꺼이 인도할 것이고, 기존의 해석과는 살짝 다른 '나만의 리뷰'를 읽어주신다면 더 없는 영광일 것이다. 자, 그럼 시작이다.
19세기 빅토리아시대에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강대국이자, 세계를 압도하는 선진국이었지만, 여성의 참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활동조차 '남자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만들고서, '그들만의 천국'을 위해 '그녀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여성 인권'의 암울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런 깜깜한 세상에 등불이 되어주는 인물이 꼭 있기 마련이고,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작가, 샬럿 브론테'였다. 그가 쓴 <제인 에어>에서는 '당당한 여성'을 등장시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였던 것이다. 여성도 자신의 꿈을 위해 당당히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그 당연한(!) 권리를 위해 주위의 따가운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여성의 모습을 부각시킨 소설을 등장시킨 것이다. 이 책이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주목받아 마땅한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열 살 소녀, 제인 에어는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냈지만, 자기 자식보다 더 애정을 쏟아준 외삼촌도 돌아가시고 나니 제인 에어를 곱게 보지 않던 외숙모와 외사촌들은 틈만 나면 제인 에어를 괴롭히며 못살게 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외치며 자신을 향한 부당함에 함부로 고개 숙이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집안에서 외톨이가 되어 '하인'보다 못한 처우를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었다. 그렇게 벼랑 끝으로 내몰린 제인 에어에게 한줄기 희망이 찾아오니, '로우드'라는 자선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꿈에도 그리던 기숙사 생활이었지만, 이곳에서의 생활도 그닥 나은 상황은 아니었다. 열악한 환경에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해 병들어 죽어가는 학우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제인은 열심히 학업을 이어나갔고 뜻밖에 '남을 가르치는 재능'을 발견해서, 8년 동안의 로우드 학교를 마치고 난 다음에 '가정교사'라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에게 청탁하지 않고 스스로 광고를 낸 다음에 손필드로 교사일을 하기 위해 로우드를 떠난다.
그곳에서 제인은 '로체스터'라는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그리고 그를 향한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간 제인은 로체스터의 진실어린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을 승낙했지만, 결혼식장에서 벌어진 헤프닝으로 결혼은 무산이 되고 만다. 로체스터에게 '진짜 부인'이 있었던 것이다. 로체스터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었다. 사랑의 결실로 맺어진 결혼이 아니라 단지 '재산 증식'을 위한 정략결혼이었으며, 그것도 로체스터가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라 수많은 재산을 탐낸 아버지 계략에 빠져 원치 않은 결혼을 강요 당했으며, 심지어 결혼한 신부는 '정신병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일순간에 원치 않는 삶을 살게 된 로체스터는 자신의 인생이 파멸되는 것을 알았지만, 뜻밖에도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되었다. 원치 않던 결혼과 생각지도 않았던 부를 한꺼번에 받게 된 로체스터는 큰 마음의 상처를 부여잡고 방탕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인 에어를 만나고 난 뒤에 로체스터는 '진실한 사랑'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삶'에 언제나 당당한 제인 에어를 보며 지난날에 대한 잘못을 깨닫고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제인 에어에게 청혼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의 '진실한 마음'을 확인하고 난 뒤에도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록 미치광이가 되어 버렸지만 로체스터의 '정식 부인'이 아직 살아있는 한, 자신은 로체스터의 정부(첩)에 불과하다는 현실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둘의 사랑이 아무리 진실하고 순결하다 해도 세간에서는 '가난한 18살 어린 신부'가 '늙고 돈 많은 40살 귀족'을 꼬드겨 결혼을 한 그렇고 그런 여성과 다를 바가 없다는 수근거림을 받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자신의 순수한 사랑'에 흠결이 없다는 자신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자신의 진심이라는 것도 고작 '안락하고 쾌적한 환경'에 안주하며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 앞에서 도망갈 수밖에 없는 '양심적 고백'이었을 것이다.
제인은 그렇게 손필드의 저택에서 도망치듯 나와서 무작정 떠나고 말았다. 수중에 있는 돈만큼 마차를 타고 로체스터에게서 멀어졌는데, 그와중에 마차에 하나밖에 없는 가방마저 놓고 내렸기에 돈 한 푼 없이 굶게 되었고 머물 장소를 찾는 것도 마뜩찮게 되었다. 그렇게 죽기 일보직전에 용기를 내어 화목해보이는 집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 집의 하녀가 거렁뱅이와 다를 바 없는 제인을 문전박대하니, 제인은 그대로 쓰러져 죽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죽을 운명은 아니었는지, 세인트 존 리버스라는 젊은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렇게 리버스댁에서 머물며 기력을 회복한 제인은 우연한 계기로 리버스가 자신의 친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제인이 막대한 유산의 상속녀라는 소식도 알게 되어, 한 순간에 가족이 생기고,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제인에게 다가온 행운 앞에서도 제인은 행복할 수 없었다. 제인의 마음속에 아직 '로체스터를 향한 사랑'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리버스가 인도로 선교활동을 떠나는데, 제인에게 함께 떠나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제인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소중한 오빠의 부탁이니 당연히 들어줄 수 있다며 흔쾌히 허락하지만, 리버스는 동생이 아닌 아내로서 부탁하는 거라면서 갑작스런 청혼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둘의 결혼은 '신이 부여한 소명'이며, 그런 소명을 받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신부는 너밖에 없다며 막무가내로 결혼 승락을 요구한다. 제인은 친절한 리버스가 이토록 모질게 몰아부치고 조금의 배려도 없이 자신의 고집대로만 밀어부치는 것인지 의아해하면서도, 이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며 결혼을 정중히 거절하게 된다. 하지만 거듭되는 요구와 '신의 섭리'라면서 물고 늘어지는 청혼에 제인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결혼을 승낙하게 된다. 물론, "신의 뜻이 그러하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지만 말이다.
그때, 그 순간, 제인을 부르는 로체스터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제인의 귀에만 들리는 환청이었을테지만, 그 길로 제인은 자신의 진솔한 마음이 아직도 로체스터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손필드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불에 타다만 흉물스런 저택만을 발견할 수 있었고, 로체스터는 모든 것을 잃고, 장님에 한쪽 손까지 잃어버리는 불구자가 되어 의미없는 연명만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제인 에어는 그런 로체스터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사랑을 속삭인다. 그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로체스터에게 제인이 돌아왔노라고 말하고,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다. 자신의 진정한 사랑과 결혼을 하겠다는 맹세인 것이다.
<제인 에어>가 주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여성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의 도움이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명백한 선언이란 말이다. 남자의 도움으로 '아름답게 가꿔진 꽃'에 불과하니 '남자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남자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쯤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는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통쾌한 메시지였다. 더구나 남자라는 족속이 얼마나 뻔뻔하고 고집스럽고 어리석은 짓만 골라 하는지 똑똑히 보라면서 '로체스터'와 '리버스'를 전면에 등장해보였다. 로체스터는 제인을 돈으로 꼬시려 했고, 리버스는 '신의 섭리'라면서 가스라이팅을 가했다. 물론, 제인이 로체스터를 선택하든, 리버스를 선택하든 어느 정도는 행복한 삶을 꾸려나갔을 것이 틀림없다. 제인 에어만큼 당차고 멋진 여성이 살림살이를 맡았으니 오히려 로체스터와 리버스가 '행운아'가 되어 행복에 겨운 삶을 살았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행복한 삶에는 '제인 에어의 희생'이 절대적으로 동반되어야만 할 것이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자신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남편의 삶'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일방적이고 보편적인 강요로써 말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여성에게 굴레를 뒤집어 씌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여성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당당히 의견을 밝히고,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말이다. 무릇, 인간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권리이고, 당연히 해내야 하는 책무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당연함'이 여성에게만은 전혀 당연하지 않고, 남성에게 매달리고 의존해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덕목이라고 '세뇌'를 하느냔 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서는 더욱 안 되는 일이고 말이다.
여성, 스스로도 당연히 내야 할 목소리다. 요즘에도 '백의의 천사'니, '사무실의 꽃'이니 하면서 여성의 '사회생활'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몰상식이 벌어지곤 한다. 그럼, 여성에게 '본질적인 직업'은 무엇이냔 말이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자식들의 어머니로서만 '여성의 본질'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젠 여성들도 '경제적인 독립'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또한, '자녀육아와 교육'도 엄마만의 몫이 아니라 아빠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대다. 바야흐로 '양성평등시대'이며, '인권존중의 시대'인 것이다.
심지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도 보장하는 마당에 여성인권이 바닥을 치는 대한민국을 상상할 수 없다. 어째서 여성을 위한 정책이 '남성을 향한 역차별'이 될 수 있느냔 말이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실력순으로 뽑는다는 대원칙이 통용되기 위해서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한 '불평등과 불공정'이 개선되지도 않았는데, '실력순'이라는 대원칙을 앞세워 사회적 갈등만 조장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도무지 서로를 위한 '배려심'을 찾아볼 수 없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남성이 여성을 배려하고, 또한, 여성이 남성을 배려하는 훈훈함은 찾아볼 수 없단 말인가?
제인 에어가 '여성의 목소리'를 낸 지 200여 년이 지나도록 '양성평등'에 이르는 길은 아직도 요원한 모양이다. 아직도 '그들만의 천국'이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리운 모양이다. 모든 면에서 멋있고 우월한 '그들'이 천국을 그리워하는 것도 볼썽사나울 마당에 '찌질한 놈들'이 천국을 운운하는 것은 같은 남성이 봐도 못봐주겠다. 제발 좀 사람답게 살면 안 되겠는가. 우리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꿈꾸는 '소중한 시기'이자 '절호의 기회'인데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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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 원저/SunNeKo Lee 그림/Crystal S. Chan 각색, 레미제라블 리뷰입니다. 시리즈 도장깨기중입니다. 그림이 정말 사랑스러워요. 이런식으로 고전이 계속 나오면 그 많은 고전을 며칠 내로 다 독파할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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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브론테 원저/SunNeKo Lee 그림/Crystal S. Chan 각색, 만화 제인에어 리뷰입니다. 그림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네요. 이야기에 잘 몰입할 수 있게끔 그림이 그려져서 소설책의 글자가 잘 안읽혀지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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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새니얼 호손 원저/SunNeKo Lee 그림/Crystal S. Chan 각색, 주홍글자 리뷰입니다. 그림으로 보니 정말 술술 넘어가네요. 고전 명작이라는데 쉽게 읽혀지지 않아서 그랬는데 그림으로 읽으니 좋았어요. 기억도 더 오래 남아서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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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새니얼 호손 원저/SunNeKo Lee 그림/Crystal S. Chan 각색, 주홍글자 리뷰입니다. 작은 글씨가 빽빽한 도서만 보다가 그림으로 접하니 개안한 느낌입니다. 이렇게 예쁜 그림이라면 초등학생들에게도 고전 명작을 많이 접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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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브론테 원저/SunNeKo Lee 그림/Crystal S. Chan 각색, 제인에어 리뷰입니다. 글미이 대박이네요. 전부 다 컬러였으면 더 좋았을거 같다는 아쉬움이 들어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림이 찰떡이라 더 재밌게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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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저/Kuma Chan 그림/Crystal S. Chan 각색, 빨강머리 앤 리뷰입니다. 그림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이 시리즈에 푹 빠졌어요. 특히 글로만 읽으면 잘 느껴지지 않는 것들을 만화로 볼 수 있어서 특히 초등생들에게 아주 유용할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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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브론테 원저/SunNeKo Lee 그림/Crystal S. Chan 각색, 제인에어 리뷰입니다. 그림이 너무 예뻐서 빠져들 수밖에 없네요. 어쩌면 조금은 어려울지 모르는 이 책을 아이들에게 소개하기 안성맞춤입니다. 그림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