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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도사 무풍한송길 산보... 더 추워지기 전에 통도사에 다녀왔다. 산문을 들어서기 전에 일단 산채 비빔밥으로 시장기를 때우고, (통도사 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는) 무풍한송(舞風寒松) 길을 오랜 벗과 함께 걸었다. 이 친구가 없었더라면 나의 삶 한 부분이 얼마나 삭막했을까. 하늘은 맑고 바람은 적당히 상쾌했다. 겨울 소나무의 정취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삶의 의미를 관조(觀照)할만한 풍광... 그저 고마움이다.
![]() #2. 나무오리(木鳧), 터를 잡다 서운암에 앉아 영축산 능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하늘빛을 담았다. 허허롭지도 않고, 다만 가벼울 뿐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자장율사(慈藏, 590∼658)께서 통도사 터를 잡기 위해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공중에 날려 보냈다고 한다. 어디론가 날아갔던 나무오리(木鳧)는 얼마 안 되어 겨울인데도 칡꽃 한 송이를 물고 돌아왔고, 율사께서 찾아보니 그 곳이 현재의 통도사 금강계단이 있는 자리라고 한다.
#3. 구룡신지(九龍神池)의 전설 금강계단이 있는 자리는 원래 연못이었다고 한다. 연못 주변에 칡꽃이 피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연못에는 용 아홉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어찌 쉽게 자리를 내어 주겠는가. 자장율사는 법력으로 용을 물리치면서 눈 먼 용 한 마리에게는 작은 못을 만들어 그대로 살게 하였다. 그 못이 대웅전 옆에 있는 구룡지(九龍池)다. 아마도 용 숭배 토속사상과 불교와의 융합 전설이 아닐까 싶다.
#4. 호혈석이 응진전과 영산전 앞에만 있는 이유 호혈석(虎血石)이란 호랑이 피를 묻힌 네모진 돌을 말한다. 50cm x 30cm 크기의 돌이 용지(龍池)가 있는 응진전과 영산전 앞에만 설치되어 있는 이유는 뭘까? 조 선생은 호랑이와 용, 물과 바위라는 대구(對句)로 보네. 호랑이의 피해를 막기 위한 비보용(裨補用) 장치인 줄 알았는데, 운종룡 풍종호(雲從龍風從虎 구름은 용을 따라가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라간다)라더니 참으로 절묘한 장치이다. #5. 소(牛)가된 용 추석 전날, 영화 '풍수'를 봤다. 극 중 대원군은 자신의 아버지 남연군의 묏자리로 쓰기 위해 사찰을 불태운다. 이는 당시 유교사회가 불교를 바라보는 한 단면이라고 하겠다. 불교를 탄압했던 유교국가 조선은 용을 품은 통도사가 싫었던 모양이다. 조선후기 양산군수 김만은 풍수·지관들을 불러 통도사의 용을 없애려고 한다. 비룡혈을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혈로 '상징 조작'에 나선다. 물론 그 끝은 좋지 않고... #6. 반야용선도 극락전 외벽에 그려진 반야용선도! 요단강을 건너 듯 중생이 극락정토에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그 배가 반야용선이다. 뱃머리에는 용의 머리가 있고 후미에는 용의 꼬리가 그려져 있다.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앞뒤에서 보호하며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는 그림이다. 그런데 왜 '반야'인가? 불교적 함의가 느껴진다(147쪽).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숙연해지는 뭔가가 있다. (영화 '신과 함께'의 배는 너무 밋밋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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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못찾겠다 꾀꼬리 경봉스님과 가수 조용필이 얽힌 일화. 70년대 중반 대마초 흡연으로 가수 활동 제재를 받았을 때 방황하던 가왕께선 통도사 극락암에 들렀다고 한다. 경봉선사께서 한 말씀 던졌다. "너는 뭐하는 놈이냐?" "저는 노래 부르는 가수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꾀꼬리로구나? 꾀꼬리를 찾아야겠구나. 꾀꼬리를 잡아와봐라." 선문답이었다. 이 꾀꼬리 화두를 가슴에 품고 다니다가 만든 노래가 ‘못 찾겠다 꾀꼬리’라고 한다. #8. 정리해 보면... 조용헌 선생의 『통도유사』에는 해박함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풍수, 동서양 사상이 담백하게 어우러지고 비슷한 사례를 폭넓게 들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게다가 분위기에 맞는 수묵화와 사진 등의 삽화 볼거리 또한 풍부하다. 하지만 기대한 만큼은 아니다. 통도사 암자의 유래에 대해서도 언급을 기대했는데... 양념이 너무 풍부하여 그 본 맛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아주 조금 그 부분이 아쉽다. 그래도 참 흥미롭고 맛깔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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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설 추가 : 백운암 유감 영축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백운암에 들린 적이 있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고개를 돌려보니 안쪽에 앉을 자리가 보였다. 앉아 몇 마디 한담을 나누는데 누군가 "아~ 그 출입금지라고 적혀 있잖아요."라며 짜증스레 뭐라 한다. 황급히 일어서며 쳐다보니 스님이다. 책을 보시다가 도란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나 보다. 얼른 사과를 하고 나오면서 보니 출입 삼가라는 팻말이 보였다. (잘못한 건 맞다) 그래도 그렇지. 그 뭣이라꼬... 설마 그 팻말을 보고도 일부러 들어갔을까. 마음을 찾는 수도승이라면 좀 다르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젊어보이는 스님... 아미타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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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 시기쯤 되면 수시모집에 지원하는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를 봐주는 게 큰 과제다. 여고라 간호학과와 사범계열 지원자가 참 많고 그 외에는 고만고만한데, 최근들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게 문화, 컨텐츠 계열이다. 생활기록부를 같이 읽어보면 읽은 책도, 한 활동들도 엇비슷하다. 교사가 좀 더 고민하고 수업에서 창의적인 활동들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일차적으로 고민할 일이지만, 수업 시간에 다루는 컨텐츠들이 서구 지향적(우리 현대문학도 결국은 서구 문예사조의 영향들이 절대적이므로)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신화에 기반한 하여 현대에 재림한 고대의 컨텐츠들이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갖고 재생산되는지 우리는 너무도 쉽게 본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제 진부할 정도고, 중세의 마법학교를 재현한 해리 포터 시리즈, 북유럽 신화에서 뛰어나온 토르,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사이에서 사랑의 줄타기를 하는 인간(이제는 뱀파이어가 됐다지만)의 이야기... 그에 반해 우리의 컨텐츠는 얼마나 활용되고 있을까. 우리의 '신화'라고 한다면 왠지 절이나 무당집 뒷벽에 그려진 알록달록해서 귀기스러운 탱화를 떠올리며 그저 미신으로 치부해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나마 '신과 함께'같은 컨텐츠가 큰 인기를 끌면서 시선이 좀 달라졌지만 우리 신화의 세계관은 그 저승길보다 억겁으로 넓다. 우리 문화의 세계화를 외치면서 BTS의 뒤를 이을 그럴 듯한 뮤지션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그만큼 세계인들에게 먹힐 신선한 컨텐츠가 부족한 데에 그 원인 중 하나가 있지 않을까. 굳이 세계로의 확장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우리의 뿌리와 현주소를 확인하고 새로운 즐길 거리를 찾아내기에 우리 신화처럼 풍부한 재료가 없다. 경남 양산에 자리한 천년 고찰 통도사. 그 통도사에 얽힌 수많은 전설을 <삼국유사>의 스타일로 풀어낸 책, <통도유사>가 그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구전된 것이다. 그 중 운이 좋은 것들이 글을 하는 이들에게 채록되어 <삼국유사>를 비롯한 야담집에 실렸다. 그런 면에서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지탱하는 줄기 쯤에 해당하는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는 그래서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다소 비합리적인 이야기들까지 역사로 다루고 있다. 단군으로부터 이어지는 신령스러운 이야기, 영웅담, 귀신 이야기, 민중들의 삶의 기층에 자리한 믿음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다채롭다. 말하자면 실체적인 세계와 형이상학적인 세계,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운 초월적인 힘들을 모두 망라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어차피 역사는 백 퍼센트 객관적일 수 없는 저작물이다. <통도유사> 역시 통도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신화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것일뿐,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책이라고 폄훼할 필요는 없다. 저자 역시도 '영험'과 '황당'은 분명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통도사는 창건자 자장율사가 나무오리를 날려 오리가 내려앉은 자리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기념품으로나 남아 있지만 동네 어귀마다 서 있던 솟대 위에 올라앉은 새가 오리다. 조류가 신령한 존재라는 인식은 특히 북방 유목민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오리는 육, 해, 공 모두에서 생활이 가능하니 그것부터 신통해 보인다. 또 북반구 북부에서는 봄에 오리가 찾아온다. 즉 오리가 오면 죽음같은 추위가 지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시기가 되므로 이것들은 조상들의 영혼이라도 되는 것 마냥 반가운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동이족의 강역을 배경으로 편찬되었다는 <산해경>에도 신조들의 모습이 여럿 등장하는 것으로 그 사상을 짐작할 수 있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했던 인면조가 바로 산해경에 나오는 녀석이다.) 통도사의 뒷산은 '영축산' 또는 '영취산'이라고 부른다. 독수리가 사는 산이라는 뜻이다. 오리에서 독수리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독수리는 지금 흔히 우리가 생각하듯 하늘의 제왕이라기보다는, 삶과 죽음을 중계하는 새로 여겨졌다. 죽은 이의 조장을 담당해 시신을 자연으로 돌려주기 때문이다. 또한 영취산은 부처가 말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둘을 조합해보면, 통도사 뒷편에 부처가 계시고, 그 산에 있는 독수리를 통해 이승과 저승이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부처가 실제로 살았던 인도만이 중심이 아니라 이곳에 부처가 계심으로써 또다른 중심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신조라는 토착 사상과 불교라는 외래 종교가 결합되어 자리잡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용(龍)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빼놓을 수 없다. 자장율사는 통도사 터의 원래 주인이었던 아홉 마리 용을 쫓아냈다. 물론, 강제 퇴거 명령장에 용도 순순히 물러나진 않았다. 참다못한 자장율사가 불 화(火)자를 써서 연못에 던졌더니 끓어오르는 물에 여덟 마리는 죽었고 나머지 눈먼 한마리만 항복해서 통도사 귀퉁이 연못에 드나들며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용은 물을 다루는 신수로서 농업 국가라면 어디나 있는 토착 신앙이다. 이를 외래 종교인 불교가 다스리는 과정은 결국 기존 신앙에 대해 불교가 우위를 점하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우의일 수 있다. 이후 용은 화엄 불교의 성격에 영향을 받아 국가를 수호하는 용(문무왕)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재미난 것은, 용이 과연 허구의 동물이기만 할까 하는 물음이다. 동물로 띠를 삼은 12간지 중에 허구의 동물로 여기는 것은 용 하나뿐이다. 상서로운 동물이라면 용 말고도 기린, 봉황 등등 동네마다 다양한데 왜 오직 용이었을까. 물론 앞서 말했듯 농업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용이었기도 했지만, 저자는 여기서 더 도발적인 생각을 던진다. 당시에는 용이 실존했던 것 아닐까?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서양에서 발견되었다는 15세기 경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 유해라든가, 운석 충돌로 인한 멸종에서 수룡들이 상대적으로 살아남기 쉬웠을테니 그들의 후손이 용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중앙아시아 사막에서 공룡 뼈를 발견하기 전, 슐리만이 트로이의 유허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것들 역시 모두 허구의 영역에 있었으니 무조건 부정만 해 놓고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허구라면 이걸 컨텐츠로 가공하면 우리 버전의 <드래곤 길들이기> 같은 영화 한 편 정도는 쉽게 찍어낼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자장율사는 용들을 쫓아낸 자리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그 위에 금강계단(stair 아님. 설법하는 단)을 만들었다. 진신사리는 그것을 보는 이들마다 모습과 색, 느낌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삶과 죽음을 이어 깨달음을 주는 그 영험의 공간을 이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구한말에 태어나 온갖 오해와 억측을 받아내면서 일제강점기를 버텨내며 통도사를 건사해 온 구하스님, 선문답으로 중생들에게 지혜와 깨달음을 주고자 했던 경봉선사, 소탈한 모습으로 대중들의 곁에 머물고자 했던 월하스님의 이야기들이 다양한 일화를 통해 펼쳐진다. 그리하여 이 책은 <통도유사>는 차안과 피안을 가르는 강물을 문수보살과 함께 용을 타고 넘어 갈 수 있도록 중생들을 구제하는 천년고찰 통도사의 하늘, 땅, 사람을 두루 살핀 삼국유사 스타일의 이야기. 신선한 문화 콘텐츠의 보고(寶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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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寺刹) 내지 절이라는 말을 들으면 내면 속에 자리잡은 청정하고 평안한 감각으로 가득차게 된다.태어나서 종교기관 중에서 가장 먼저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던 할머니,어머니의 정성스러운 공양과 부처님의 자애로운 모습,그리고 산자락 깊은 곳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절은 자연과 함께 살아 있기에 그러한 마음의 평안과 청정,정숙,경건함을 느끼게 한다.개인적으론 근자에는 절을 자주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중턱에 절이 있기에 마음을 다잡고 찾아 가는 습관을 들이면 좋을텐데 게으름과 무관심이 절을 멀리하게 되었다고 자조하고 되뇌인다.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사찰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려시대에는 국교가 불교일 만큼 사찰의 건립이 성행했고 팔관회 등의 연례행사도 있었기에 국리민복의 역할도 했으리라 생각한다.물론 절의 역사가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지만 사찰의 숫자나 사찰에 대한 기록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 고려시대의 사찰은 산자수명(山紫水明)의 요새에 자리를 틀고 불교의 가르침과 수행,탁발 등이 상징적으로 다가온다.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국난을 극복하고 대중들에겐 자비를 베풀기도 하는 사찰은 인도에서 시작된 소승불교가 중국,한국,일본으로 넘어오면서 대승불교로 자리를 잡고 있다.
서기 640년에 건립되었다는 통도사는 유구한 역사 만큼 신비스러운 신화와 수난,영욕이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통도사는 삼국유사에 실린 실제에 가까운 기록물보다는 전해져 오는 신화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통도사는 신조(神鳥)숭배사상이 강해서인지 독수리를 신조숭배 신화로 여기고 있다.영축산(榮鷲山)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며 독수리는 인간이 피안의 세계로 넘어 가게 되면 육신은 독수리의 밥이 되고 혼령은 하늘로 날아 다시 윤회를 한다는 사상이다.그리고 자장율사가 있는 곳엔 독수리 지명이 따라붙는데 전국에만해도 5군데나 된다.독수리를 신령스러운 신조로 삼았다니 놀랄만도 하다.나라마다 독수리에 얽힌 전설과 신화가 제각각이지만 그 옛날에는 백성들이 죽으면 장작으로 화장을 해야 하는데 형편이 되지 않으니 사체를 길바닥에 놓으면 독수리가 날아와 육신을 쪼아 먹고 혼령은 하늘로 날아간다는 것이다.
국교였던 불교는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략에 의해 소실을 입는 수난을 당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불교는 찬밥신세가 되면서 갖은 탄압과 모욕을 당해야만 했다.그래서 스님이라는 직업도 조선시대에선 팔천(八賤)에 속할 만큼 천한 직업에 속했던 것이다.다행히 통도사 만큼은 불교에 대한 민중들의 신심과,천년이 넘는 역사에서 오는 무게감,그리고 용이 누워 있는 '영험의 터'라는 풍수신화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훼손의 위기에서 벗어났다.그 가운데 김만이라는 인물은 통도사의 기세를 와우혈(臥牛穴)로 정착시켜 놓았다고 한다.특히 지령(地靈)에 대한 민간인들의 두터운 풍수사상도 한몫 했으리라 생각한다.
대표적인 불교스님은 자장율사와 진표율사가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율사라는 점,신이력(神異力)의 소유자,계(戒)를 주는 방식을 통해 중생들을 교화했다는 점이고,통도사와 금산사에 각각 계단(戒壇(이 남아 있다는 점을 꼽을 수가 있다.지향점에 관해서는 자장은 문수화엄이었고 진표는 지장미륵이었던 점인데 문수는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고,화엄은 대승불교 사상의 종합 결집판이라는 점이다.화엄의 핵심은 일체유심조 즉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와 '일즉다 다즉일'인데 '부분이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부분이다'라는 사상체계이다.인상적인 부분은 도를 닦아 경지에 오른 고승은 여섯 가지 특별한 능력을 지니게 된다는 것인데 천안통,천이통,신족통,숙명통,타심통,누진통이 그것이다.천안통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도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고 하는데 요즘말로 하면 천리안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그외 팔천계급이었던 조선시대의 스님인 혜경스님과 영의정 권돈인과의 우정으로 통도사는 기사회생되었다는 점이다.구하라는 구한말 스님은 부패한 조선사회를 개혁해야겠다는 의지를 불사르면서 통도사를 개혁했다고 한다.잉어가 용이 되는 시기로서 후천개벽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두고 어변성룡(魚變成龍)이라고 한다.구하스님은 일제강점기시 한용운선생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기도 했다.나아가 한국 간화선의 대표적인 선(禪)지식 가운데 한 분인 경봉선사 등은 통도사에 씨를 뿌리고 꽃을 피웠다면 월하스님에 의해 열매를 맺었다고 한다.일제강점기 말 통도사의 소나무들을 모두 베어가려고 하던 참에 해방이 되면서 통도사입구의 소나무 숲 경내는 온전히 살아 남았다고도 한다.
조용헌저자에 의해 통도사의 역사,지세 및 한국불교의 역사 및 신화,시대와 스님들이 불교사상과 이념을 한결같이 지켜 내려온 점을 어느 종교를 떠나 한국의 보물이다.불교에 관련한 신화는 아시아국가를 비롯하여 근자 불교를 연구하는 서양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보편화되고 대중적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오랜 역사와 신화,에피소드가 가득찬 통도사를 통해 한국 불교사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삶의 지혜마저 얻을 수가 있어 소중하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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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신화로는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신화가 가장 많이 알려진 신화일 것이다. 그밖에 신화들이 있겠지만 이 책은 저자가 천년고찰 통도사에 얽힌 동서양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책의 내용이 유익하며 지혜를 담고 있는 책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한,중,일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럼으로서 유교의선생, 도교의고수, 불교의스님들과 교감을 바탕으로하여 사찰을 통해서 얻은 그의 이야기는 신화의 새로운 판도를 변화할 만큼 재밌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신화적인 상상력을 결합한 일연의 서술방식을 택했는데 그것이 바로 유사체이다. 유사체를 굳이 선택한 이유는 우리에게 신념과 용기를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한 내용은 인생을 이해하고 그 섭리를 수용함에 있어서 우리의 정신세계를 집중시키는데 도움이 될만한 것이기도 하다.
조용헌 작가의 이야기와 김세현씨의 그림을 통해서 분출되는 시너지효과들이 기대가 되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신화들도 그리스로마신화처럼 읽혀지는 그 날까지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필요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고 옛것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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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제목을 보고 어려울 듯하여 몇 번이고 머뭇거리다가 읽기로 한 책이다. 저자가 조용헌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해서 읽었다. <조용헌의 담화>, <조용헌의 백가기행>등 나에게 조용헌의 글은 읽기 부담없이 술술 읽어나갈 수 있으면서도 깔끔해서 좋았다. 그러면서도 현학적이거나 잘난 체 하는 느낌 없이 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휴일에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면서 조금씩 아껴읽는 기분, 읽는 시간보다 더 많이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여유. 동양학에 대한 이야기를 현대에 맞춰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이 책 <통도유사>도 읽게 되었다. 천년고찰 통도사에 얽힌 동서양 신화 이야기, 이 책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보냈다.
먼저 이 책의 앞부분, 들어가는 말에 의하면 유사체와 사기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가치관에 따라 서술방식이 달라지지만, 이 세상에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객관'이라는 것은 없다. 주관을 늘어놓고 객관이라고 강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말에 동의하게 된다. <삼국사기>가 눈에 보이는 역사적 사실에 중점을 두었다면, <삼국유사>는 눈에 안 보이는 정신세계의 영험한 이야기까지 서술했다. 사기가 사실Fact 위주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라면 유사는 종교적인 신이神異의 세계까지를 역사 서술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유사체로 기록된 것이다.
어릴 때에는 동화 속 이야기가 유치하다고 생각되어 잘 빠져들지 못했는데, 이 책 속의 이야기는 얼핏 황당한 것 같으면서도 이해하고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이 놀라웠다. 내가 변한 것인가, 저자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인가.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표현에 동의하게 된다. 저자의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자꾸 손이 가는 그런 책이었다. 이번에도 조용헌의 책을 선택하길 잘했다. 어려울 듯한 이야기였는데 맛깔스럽게 잘 풀어나가서 흥미진진하게 독서하는 시간이 되었다. 제목에서 주는 부담감만 없다면 접근성이 훨씬 좋을 책이라 생각된다. 일반인에게도 쉽게 읽히기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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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유사> 이 책<통도유사>을 읽는 동안 한편의 신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습니다. 우화도 있고, 고려시대의 불교와 조선시대의 불교가 이렇게 차이점이 많이 있었나 싶고, 수많은 사찰들이 연못과 인연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물은 용과 땔려야 땔 수 없는 연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지만 개구리가 사찰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사실 또한 놀랄만한 이야기입니다. 조용헌 작가님의 해박한 이야기에 밤이 새는줄 모르고 이틀에 걸쳐서 읽고나서야 머리가 맑아지고 마치 스님들이 깨달음을 알았듯이 나 또한 여러해를 살아오는 동안 미처 알지 못하고 발견해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알 수 있어서 무척이나 행복해짐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 국토가운데 70퍼센트가 산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외국을 여행하다보면 이처럼 사과 강이 어우러진 나라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또한 산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찰이 터를 잡고 있기에 어찌보면 우리나라는 불교와 매우 인연이 깊고 우리의 삶과 연관이 있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불교와 연관되고 사찰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불교 문화는 별로 없습니다. 겨우 부처님이 세우고 육식을 하지 않는 자비로 모토로 한 종교라는 정도밖에 알 수 없는게 조금은 아타까운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도사는 한번쯤은 다녀와본적이 있는 우리나라 대 사찰중에 하나입니다. 깊은 산중이 아니라 1400년 된 고찰로 영취산의 위엄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품으며 그 기운을 모아주는 명당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한 개구리를 용과 같은 영물로 동일시 하는 사찰로도 유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도사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연못위에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 마리만이 유일하게 통도사에 남아 절과 함께 그 역사를 하고 있다는 전설이 자장율사의 구룡 사이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의 어금니 뼈가 모셔져 있는 진신사리는 통도사의 보물주에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데 여의주봉 앞의 용피바위는 바위에 검붉은 자국으로 수 많은 고승대덕들이 용의 지맥으로 생각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학창시절부터 알고있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책을 저술했고, 일연스님의 <삼국유사>는 주로 신화를 바탕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통도유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무척이나 단어가 생소하고 과연 책 한권에 다할 정도의 신화가 한 절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지만 수만은 고승들과 용을 바탕으로 통도사라는 사찰이 생겨났다는 신화들이 우리들의 미개한 지식에 대해 고개가 떨구어집니다. 조선시대에 천민의 굴레로 떨어져야 했던 스님들과 수많은 사찰들이 아직까지 오랜세월동안 쓰러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굳건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마도 통도사와 같은 절을 용들이 지켜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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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녹음이 흐르는 시간을 잊은 채 병풍처럼 둘러 싼 곳 영취산의 기운이 폭포처럼 힘차게 흘러내려 모인 곳 그 가운데 웅숭 깊게 신화를 품고 천사백 년 세월을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지키고 앉아 부처님 미소로 웃고 있는 통도사가 있다.
어린 시절 신화는 글자 그대로 신들의 이야기, 무지개 너머 존재하는 손 닿을 수 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자라면서 접하게 된 신화는 역사속에서 인간들이 국가를 세우고 부족을 번성 시킬 때 자신들의 뿌리를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 낸 과장 된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금 신화는 생로병사의 고통속에서 인생을 살아내야만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 가닥 빛이며 정신적인 안식처이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사실만이 세계의 전부라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삭막할 것인가. 우리가 직접 보거나 체험 할 순 없지만 영험한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생각 할 때 정신의 지평은 여유로워지고 관조의 모습을 띠며 확장 될 수 있을 것이다.
천문, 지리, 인사의 3대 과목을 연구하는 강호동양학 학자인 저자는 신화가 필요한 이 시대에 통도사라는 사찰을 다리 삼아 동서고금의 정신세계를 탐색하고 신과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신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신화이기에 사실적인 역사서술인 삼국사기를 따르기보다는 초월적인 세계를 서술한 삼국유사의 서술체를 따르기에 제목을 통도유사로 정했다. 어려운 책이 아닐까란 걱정도 잠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종횡무진 머릿속을 누비고 다니고 다양한 사진자료들과 김세현 화백의 힘 있고 깊이감 넘치는 그림들이 더 많은 이야기들을 가슴 속에 풀어내 준다.
1부는 통도사가 터를 잡게 된 유래를 나무오리 신화로 풀어내고 동서양의 새 숭배 신앙을 살펴본다. 2부는 동서양 신화의 단골로 등장하는 용의 신화를 다양하게 소개했다. 통도사 구룡신지 뿐만 아니라 신라시대 경주의 감포바다, 백제의 백마강, 네팔의 마차푸차레산과 페와호수 , 바이칼호의 알혼섬등 용의 신화가 있는 여러 지역들을 통해 용이 상상속에서만 존해하는 동물로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영안 즉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들에게 보이는 영험한 동물이라는 새로운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3부는 통도사의 극락전, 지장암의 금와보살,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삶과 죽음, 선과 악, 유와 무의 경계를 가리키고 고통스런 현실에서 중생들이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마음을 바꾸는 것이며, 여기야 말로 신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4부는 불교의 암흑기에 통도사를 지켜 낸 여러 고승들에 얽힌 감동적이고 재미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뒷표지에 적힌 신화와 역사를 넘나들고 문학, 철학, 미학을 가로지르는 '길 위의 인문학'이란 소개 글의 의미를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신화는 결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윤활유 같은 것. 신화가 품고 있는 풍성하고 아름답고 흥미로운 의미의 과육들을 한 입 가득 베어 물어보자.
자신을 둘러 싼 세상이 색색깔의 옷을 입고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 할 것이다.
신화는 곧 우리 인간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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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는 일반적인 절이라기 보다, 선덕여왕 15년(646년) 창건되어 신라에서 대한민국까지, 오 랜 세월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한 유서 깊은 절이다. 그러나 한국의 '삼보사찰' 이라는 명성 과는 무관하게, 나는 이 책을 읽기 이전에는 통도사라는 절이 있는 줄도 몰랐고, 또 알려고도 하 지 않았다. 과연 그것은 어째서일까? 그것은 아마도 나에게 델포이 신전에 대해서는 신비감 과 같은 호감적인 이미지를 품으면서도, 한국의 사당나무에는 단순히 '미신'이라며 하급 취급하 는 편양된 서양 제일주의의 관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의 전통보다는 서양의 전통을 배우고, 읽고, 습득한 덕분에, 처음 이 책의 제 목을 읽었을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다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읽어야만 하는' 상황이 왔고, 그것은 결국, '편식을 하는 아이가 새로운 맛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된다.
과거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위로는 하늘을 동경하고, 아래는 땅을 모시는 농경사회를 이룩했다. 때문에 조상들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동식물을 '신물'이라 하여 극진하게 생각했다. 그 러나 이제 과학기술의 능력과, 보이는 것만 믿는 '스마트?'한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에, 더이상 그 러한 사상이 세상을 지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때의 생각의 조각들은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살아남아 알게 모르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때문에 저자는 비록 '불교에 대한 책'을 써 내려가고 있지만, 과거 한반도를 이끌어 가던 무수한 설화나, 전통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고 있다. 어째서 우리들은 하늘을 동 경하였는가? 어째서 신라의 문무왕은 죽어서까지 나라를 위해서 다른 것도 아닌 '용'이 되려고 하였을까? 책에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저자 나름대로의 해석과 답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그 해석중 일부는 '앞으로의 역사적 시점에서 공감대와 연구가 필요한' 것이 대부분이며, 그것은 일반적으로 아직 '정설'로 인정 받지 못한, 한 사람의 주장에 불과 한 위치에 있는 것 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글을 읽다보면 "과연 그럴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면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단 이것을 '역사'라 맹신하는 것은 금물이라 생각한 다.)
이제 사람들은 전통혼례에 어째서 나무오리를 올려 놓는지, 어째서 고승의 몸에서 사리가 나오 는지, 과거 불교가 한반도의 정신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하는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 는다. 저자는 불교의 정신세계를 설명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의 인식차를 설명하며, 과 거의 사람들에게는 '신심'(信心)이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깨끗한 세상속에서 귀신을 보았 고, 영적 에너지를 느끼고, 또 그것을 공경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앞서 이 세상에는 분명 과학기술과 의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영적인 존재와 그와 관련된 영혼의 질병이 존재한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현대의 사람의 시점에서보면, 미신이요, 야바위꾼의 사기행각이요, 시대에 뒤 떨어진 옛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 다는 감상을 남길 여지가 있다.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는 이 내용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해답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이 책에서 단순히 통도사 의 역사와 문화만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저자가 말하는 동양의 신심에 대한 이야기까지 모두 취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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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조용헌은 조선일보에 조용헌 칼럼을 인기리에 연재중인 유명한 칼럼니스트입니다. 신문을 볼때마다 매일 만나던 낯익고 익숙한 저자의 책이라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서구적 가치관을 대변하는 인문학이 대세인 요즘에 천문(天文),지리(地理),인사(人事)에 정통하고 불교학,사주명리학과 풍수의 전문가이며 한국적 미와 전통 더 나아가 동양학을 아우르는 동양적 가치관과 정신세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에 남다른 능력을 가진 저자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이야기꾼입니다. 천년고찰 통도사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책은 신비롭고 신기한 신화와 설화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불교는 토착신앙과 샤머니즘, 민속신앙, 풍습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우선 통도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제목을 <통도유사>라고 한것은 역사서술방식에 대한 저자의 견해때문입니다. 사실만을 기록하는 김부식의 사기체가 아닌 정신세계의 영험함과 초월세계도 다루는 일연의 유사체를 따르겠다는 저자의 주관입니다. 그것은 유사체가 우리에게 신념과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삶의 번뇌와 근심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신이(神異)'와 '영험(靈驗)'의 세계가 있다고 믿을때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진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현상세계가 아닌 초월세계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종교의 존재 이유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을 바꿔야 하는데 죽기 보다 어려운 마음을 바꾸려면 신이한 영험담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 "어느 정도의 사실을 바탕에 깔면서 그 위에 종교적 신앙의 영험담이 덧붙여질 때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이야기는 당연히 재미가 있어야 읽힌다. 재미없으면 안 된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대체적으로 삶의 교훈도 동반하기 마련이다. 재미있다는 것 자체가 뭔가 그 속에 교훈이 들어 있음을 뜻한다. 생각해보자. 인생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깨달음이다." ]
통도사의 터를 잡기 위해 번뇌와 고통을 털어낼 수 있는 신령한 에너지가 가득한 지령(地靈)을 찾는데 나무오리가 등장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처음 통도사 터를 고를 때 사용한 방법이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공중에 날려 보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나무오리가 겨울인데도 칡꽃 한 송이를 물고 돌아오면 겨울인데도 칡꽃이 피어 있는 곳을 발견하고 통도사터로 삼았다는 전설입니다. 이것이 통도사 창건 신화입니다. 다른 사찰을 지을때도 나무오리를 날려서 터를 잡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럼 왜 하필 오리일까요? 고대로부터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던 솟대는 바로 오리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오리솟대를 세워놓고 오리를 숭배하는 민속신앙은 한국뿐이 아니라 북방유목민들의 공통된 풍습이었습니다. 그럼 오리의 어떤 특징때문에 고대인들은 신성시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리는 물에서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다닐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한 오리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속으로 잠수도 하고 공중으로 비상할 수도 있습니다. 육해공에서 자유로운 능력있는 새인 것이죠. 물이 중요한 농경사회에서 물에서 자유로운 오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새로 인식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철새로서의 특징인데 고대인들은 북반구의 추운지역에서 날아오는 청둥오리를 보고 봄이 오는 신호로 알았습니다. 즉, 오리는 봄의 전령사인 것이고 당연히 반가울 수 밖에 없습니다. 고대인들의 눈에는 때가 되면 사라졌다가 다시 때가 되면 나타나는 새가 신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새는 죽은 조상의 혼령을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작년에 어디론가 사라졌던 철새가 봄이 되니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죽은 조상의 영혼이 다시 새로 환생해 온다고 받아들여졌습니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를 신령한 동물로 숭배하는 우리의 조류 숭배 신화에는 공간이동이 절실한 유목민에게는 새는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으로 여겨졌을 것이고 가장 부러운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목 민족들은 새를 신격화하고 숭배했으며 더 나아가 새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고대벽화를 보면 인간이 새가 되거나 또는 얼굴은 사람이고 몸체는 날개를 단 새인 조인동체(鳥人同體)의 모습이 많이 등장합니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난생설화, 그리고 신라김씨왕의 시조인 김알지가 발견된 숲의 이름이 닭 계(鷄)자가들어간 계림이라는 것도 모두 새를 신성시하는 '신조(神鳥)숭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용의 신화, 독수리 신화등에 대해서도 담고 있는데 상상속의 동물인 용이 실재했었다는 설의 근거로 <주역>과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찾은 점은 흥미로웠습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내린 결론은 용은 신화속의 동물이 아니라 공룡시대에 살던 공룡 가운데 일부가 용이라는 것입니다. 그 추론이 사실일지 추측일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참 흥미진진하고 다분히 미국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는 국내는 물론 중국,일본,미국,네팔을 두루 돌아다니며 채집한 이야기들과 생생한 현장 체험, 그리고 각종 문헌을 통해 천년고찰 통도사에 얽힌 동서양 신화 이야기를 재탄생시켰습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신화는 어떤 의미이며 저자가 생각하는 신화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자는 현대인의 고통과 근심, 걱정, 욕망으로 가득찬 마음을 바꾸려면 신이하고 영험한 신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인생을 이해하고 그 섭리를 견디는 일은 보이는 세계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의 힘을 강조했습니다. 그 힘은 보이지 않는 초월세계, 즉 신화속의 용기와 신념인 것입니다. 실체가 없는 욕망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용기와 신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신화는 방황하는 우리에게 길을 밝혀 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고유의 민속신앙과 불교신앙의 범위에서 확장된 동서양 신화를 관조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을 한층 더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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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영축산에 있는 통도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가운데 하나인 불보 사찰이다.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이 절이 위치한 영축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통도사(通度寺)사 했고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통도사내에 있는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불법을 세우고 돌아와 대국통이 되어 왕명에 따라 통도사를 창건하게 되는데 이 창건에 대한 설화가 만만치 않다. 통도사가 위치한 영축산은 독수리의 형상을 한 산으로 독수리는 삶과 죽음, 영계와 인간의 경계를 연결하는 동물로 알려져있다. 더구나 통도사가 지어진 터에는 아홉마리의 용이 살았던 연못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자장율사가 용을 설득하여 쫓아보내려고 했으나 말을 듣지 않자 흰 종이에 불 화(火)자를 써서 물을 끓여 쫓아내고 못을 메운 후 금강계단을 쌓고 선덕여왕 15년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유명사찰이 거의 그러하지만 특히 통도사는 영취산의 위엄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품은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경내에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논만해도 600마지기가량 된다니 드물게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통도사는 일반백성들을 교육시키는 사찰로 금강계단에서 계를 주어 불교적인 도덕과 윤리의식을 함양하도록 교육시키는 사찰로 역시 구룡이 살았던 연못에 지어진 절터라함은 물과 불이 같이 있어야 종교적인 영험이 있는 환경이라고 한다.
자장이 통도사를 창건했을 당시의 불교는 국교로 숭상을 받았던 시기이지만 이후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승려가 지금의 사법고시시험에 준하는 승과에 합격해야 승려가 될 수 있을만큼 사회 지배층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이후 유교에 밀린 불교는 쇠퇴의 길을 걷는다. 국란에 승병으로 나라를 위해 승복을 벗고 분연히 일어서기도 했지만 오히려 절을 떠난 승려가 많아지는 바람에 사회의 맨 하층계급으로 떨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지나는 동안 빛나는 인물들이 통도사를 지키고 구하게 되는데 조선후기 과도한 종이 부역에 시달리던 통도사를 당시 덕암당 혜경스님이 나중에 영의정까지 지내게 되는 권돈인의 친분이 도움이 되어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다고 한다. 구한말의 구하스님은 거지출신으로 친일파의 모습으로 위장하여 독립군을 돕거나 만해 한용운을 도와 '불교대전'을 집필하고 '불교유신론'을 펴내는데 일조한다.
자비와 지혜의 도인으로 선을 꽃피운 경봉선사는 걱정거리가 많은 중생들의 손바닥을 '딱-'치고는 "이 소리를 잡아와봐라."했다는 일화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모든 걱정거리도 순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진리를 설파한 선사의 지혜가 얼마나 큰 위안이던가. 박수소리처럼 지나가도 잡을 수 없고 실체가 없는 모든 걱정거리는 몽환포영과 같은 것. 그 실체도 없는 물거품을 손으로 잡으려고 하지도 말고 흔들리지도 말라는 따뜻한 어루만짐이 미련한 중생들에게 어떤 존경을 받았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렇듯 통도사의 탄생부터 풍수지리적인 의미, 그리고 명찰을 지킨 의인과 고승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고요한 선사에 앉아 명상을 즐긴 것같이 차분한 기분이 든다. 불교민속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해박한 불교의 역사와 더불어 발로 뛰어 수집한 뒷얘기들이 감칠나다. 늘 그렇지만 그의 책을 마주하면 오랜 갈증이 해갈되는 맑은 샘에 당도한 것처럼 설레게 된다. 역시 또 한가지의 갈증이 시원하게 해소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