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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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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원하지 않았겠지만 오늘날 ‘프리모 레비’를 언급할 때마다 우리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아우슈비츠다. 인간 이하의 삶을 인간에게 강요했던 장소에서 그는 죽지 않았지만 이후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부단히 더 노력해야만 했다. 작가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그가 갑작스레 자살로 행을 마무리 지었던 것은 자신의 생을 향해 과다한 에너지를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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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원하지 않았겠지만 오늘날 ‘프리모 레비’를 언급할 때마다 우리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아우슈비츠다. 인간 이하의 삶을 인간에게 강요했던 장소에서 그는 죽지 않았지만 이후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부단히 더 노력해야만 했다. 작가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그가 갑작스레 자살로 행을 마무리 지었던 것은 자신의 생을 향해 과다한 에너지를 투여한 결과였던 지도 모른다. ‘멍키스패너’는 1978년 출판되었다. 이 작품에는 페인트 공장에서 일했던 그의 모습이 투여돼 있다. 물론 그는 관리자로서 일을 했기에 직접 땀 흘려 육체노동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과거 강요된 노동에 구속당하면서도 역설적이게도 그 노동 덕분에 살아났던 그로서는 노동을 긍정도 부정도 아닌 태도로 받아들이고야 만다. 육체를 움직일 때마다 정신보다도 어쩌면 육체가 먼저 고단했던 지난날을 기억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육체를 움직여 일하는 것만큼 신성한 것도 없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점 사이에서 그는 어떠한 관점도 취하지 못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조립공인 파우소네가 있다. 광범위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구조물을 조립해온 파우소네에게 있어 멍키스패너는 도구 이상의 것이다. 볼트와 너트를 조이는 멍키스패너는 그의 정체성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나아가 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받아들어야만 했던 운명에 그 역시도 순응했음을 보여주는, 즉 아버지와 그를 연결 짓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파우소네의 아버지는 멍키스패너를 손에 쥔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조립공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조립공다운 죽음을 맞이한 것인데, 아마 파우소네도 그와 유사한 죽음을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것이다. 결코 나아질 것이라곤 없는 삶은 끔찍하다. 그렇지만 멍키스패너를 손에서 놓는 순간 조립공은 조립공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야 만다. 더구나 파우소네에게는 아버지와의 연결지점을 잃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파우소네는 자신의 조립공으로서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종의 의무를 지녔다.

작가는 파우소네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다. 중간중간 끼어드는 행위가 파우소네의 이야기 방향을 틀고 그를 침묵케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작가는 훌륭한 청자가 되길 자청한다. 작가의 무심한 듯한 태도는 파우소네의 자긍심을 드높인다.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한 파우소네는 제 뼛속까지 스며 있는 조립공으로서의 당당함을 드러낸다. 이 직업은 위험해 언제라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경험 많은 조립공으로서 파우소네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문제에 있어 해결사의 역할을 담당한다. 자신은 결코 그 문제에 대해 책임질 위치가 아니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치 않았다며 한 걸음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지만,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의견을 원한다. 노동이 파우소네의 정체성 그 자체임을 주변 인물들은 익히 알고 있는 듯 행동한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가 그에게 붙여준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름 ‘리베르티노’마저도 비웃음거리가 되지 못한다. 원래는 자유, 즉 ‘리베로’라는 이름을 그에게 붙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파시즘 치하에서 그러한 이름은 반역과도 같았다. 본래의 이름이 갖고 있는 자유를 파우소네는 노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나치 하에서 경험한 강제된 노동과는 반대편에 위치한 적극적이고도 진취적인 노동을 통해 인간은 몸뚱아리 이상의 존재로 격상된다. 나치가 기만적으로 외쳤던 구호 ‘Arbeit macht frei’(노동이 자유롭게 해준다)를 이보다 더 통쾌히 깨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파우소네는 저자에게 당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이야기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마음껏 사용해도 좋다는 일종의 허락을 한다. 작가는 이 구절을 삽입시킴으로써 사실과 사실 아님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한다. 독자로서는 어느 부분이 작가에 의해 적극적으로 채용됐으며 혹은 창조됐는지를 고민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 덕에 작가 역시 조립공 파우소네가 그러하였듯 글쓰는 행위를 통해 자유를 추구할 수 있었다. 모든 부분이 행여나 달라졌다 할지라도 한 가지 노동을 긍정하는 태도만큼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사실만 기억한다면 보다 자유로운 독서가 가능할 것이다. 파우소네와 작가 모두가 원하는 독자상은 철저히 자유를 따르며 이 책을 이해하는 독자일 테니 말이다.

 

이달의 사락 q*****2 2014.03.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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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구조물 조립공 파우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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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 꽤 유명한 사람이구나.  나의 세계와 맥을 같이 하는, 그래서 절절히 공감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어 제목을 보는 순간 바로 카트로 옮겨 담았다.  하지만 읽어 내기에는 쉬운 책이 아니었다. 노동, 아니 직업의 세계라는 게 그리 만만하고 녹녹한 것이 아니니...  전문적 노동을 통해 얻어내는 그 희열은 아마도 비슷하겠지만 그 과정은 겪어보지 않거나 그 세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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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모 레비, 꽤 유명한 사람이구나.

 나의 세계와 맥을 같이 하는, 그래서 절절히 공감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어 제목을 보는 순간 바로 카트로 옮겨 담았다.

 하지만 읽어 내기에는 쉬운 책이 아니었다. 노동, 아니 직업의 세계라는 게 그리 만만하고 녹녹한 것이 아니니...

 전문적 노동을 통해 얻어내는 그 희열은 아마도 비슷하겠지만 그 과정은 겪어보지 않거나 그 세계에 깊이 들어 가 보지 않는다면 쉽사리 알 수가 없다. 하나의 물건이 혹은 기계가 혹은 구조가 완결되어 나오는 과정에 각자가 참여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몹시 힘든다. 이 책 역시 공감을 찾아내거나 책의 내용 속으로 몰입해 들어가기가 쉽지가 않다.

 거대한, 거시적인 각종 철구조물을 조립하는 조립공인 파우소네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인 구조물을 분해하거나 조립하는 나, 곧 화학자가 주요 출연자로 나온다.

 파우소네의 ㅇ아버지의 일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구리세공인이었다. 스텐레스가 나오기 전, 구리용기가 주류였다. 현재의 우리 생활에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 들어 있다.

 '순수한 구리냄비에다 요리를 하면 당신과 가족이 병든다. 아버지가 쉰 일곱에 돌아가신 것은 핏 속에 구리가 돌고 있었기 때문인 듯, ...' 요즘 용어로 하면 중금속에 중독된 것이다. 삼겹살집이나 무슨 구이 집에 가면 동(銅)석쇠나 동불판을 사용하는 곳이 있는데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하긴 얼마전까지도 스레트판에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스레트에는 다량의 석면이 들어 있다.

각설하고 노동에 대해서, 노동을 하면서 노동을 생각한다. '호모 파베르', 노동하는 인간, 그것이 무었일까? 노동으로 내가 남기는 것, 내가 얻는 것,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오늘도 노동을 한다.

 내일도 한다.

 모레도...

 

'...많은 직업이 사랑ㅂㄷ지 못한다는 것은 슬프게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입관과 증오를 갖고 현장으로 내려가는 것은 해롭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평생동안 직업을 증오할 뿐만 아니라 자기자신과 세상을 증오하게 된다. 직업의 결실이 일하는 사람의 손에 남아 있도록, 직업자체가 형벌이 아닌 것이 되도록 싸울 수 있고 또 싸워야 한다.'

c******1 2014.12.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