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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시와 소설, 큰 그림을 만났을 때처럼 할 말을 잃고 입을 닫아야 했다. 이 풍요로운 감정과 느낌이 가라앉고 어느 정도 여과된 다음 에세이집에 대해 말하는 게 맞을 터다. 하지만 지금의 마음이 휘발되기 전에 그러잡아두고 싶다. 이 시간의 풍경을 말이다. 못처럼 산문집을 읽고 아쉬움이 들지 않았다. 시어처럼 세심하게 들어찬 표현에 반하고 소설 같은 에피소드와 결말의 여운에 젖어 시간을 잊었다. 무엇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끌림으로 책장을 넘겼다. 책 표지의 기운이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포착했다. 아련하면서 서늘한, 뭉클하면서 알싸한 온도 조절이 최상을 이룬다. 한 사람이 지나온 길이 어긋나고 이어지다 마침내 찾아낸 문을 본 듯하다. 어떻게 하면 상세하게 일상을 옮기면서 진부하거나 소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탈하지 않으면서도 깐깐하지도 않다. 일상의 덧창을 슬쩍 열어 보이는 글조차 인생의 골목길을 내보인다. 뭐라 힘을 실어 규정하거나 매듭짓지 않는데 삶의 신비로운 정수를 얻어 마신 듯 마음이 맑아진다. 주어진 삶의 반경을 접고 멀리 이탈한 사람의 인생여정이 그리 녹록치 않았을 터인데 베인 상처나 흉터가 투박하지 않다. 시간차를 두고 넘기는 가족앨범처럼 글이 정갈하고 애틋하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어느 하나 쏠림 없이 지금 이 순간에 스며든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위적이지도 않은 공들인 예술공예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된다. 키츠의 부정적 수용성처럼 이리 저리 둘러볼수록 아름답다. 입체적인 미인이다. 멀리 떠나온 자의 향수와 추억이, 어느 정도 길들여진 결혼생활이, 막 다시 세상을 보게 하는 아이를 키우는 어미의 시선이, 한 여자로서 그리는 노년의 그림이 치우침 없이 들어있다. 피카소가 그린 스페인 내전, 즉 게르니카 혁명의 풍경처럼 여러 장소와 풍경과 인물이 에세이집안에 숨쉬고 있다. 흩어진 시간의 점들을 한데 모아 삶이라고 호칭할 수 있어 울림이 있다. 한 개인의 이야기도 굉장한 서사를 품고 서정 또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에 읽은 <해질무렵>처럼 사랑을 말하면서 역사성을 띠는 장엄함이 있다. 아마도 이 같은 감흥과 감동은 저자의 내공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오래 바라보고 다듬고 또 다듬은 사유에서 사막에 남겨진 생물체의 흔적과 흘러내린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현재의 생생한 그림 가운데 우러나오는 화석 같은 깊은 그늘이 행간에 드리워져 있다. 벼르고 벼른, 묵이고 묵힌 고혹적인 맛. 에스프레소와 달착지근한 술, 어떤 사람이 빠져나가고 난 다음에 남는 개별적인 향기가 어우러져 코언저리를 감싼다. 오감과 초감각을 아우르며 자극한다. 성숙한 사람에게서나 자연스레 풍기는 농익은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슬픈 이야기도 그 또한 삶이며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인간도 그 사람 나름의 인생이 있다고 내버려둔다. 똘레랑스. 그러고 보니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니라 내 마음에 머물고 남은 스케치를 은은하게 색채화한다. 여기 박힌 글도 시간 속에 형체가 흐릿해지고 마침내 지워질 그 끝과 마치 조용히 미리 작별을 고하는성싶다. 출판 당시 이 에세이집을 추천했던 평론가와 그때 읽고 너무 좋다는 말을 흘렸던 지인이 사랑스러운 저녁이다. 밤은 그렇게 또다른 날을 준비하는 태동기일 것이다. 겉으로는 암흑일지라도 그 안에 바삐 움직이는 심장박동과 빛나는 두 눈, 그리고 적당히 식은 손과 뺨이 닿아 서로의 안녕을 물을 것이다. 어둠과 새벽, 한낮 오후... 그 자연적인 숨결에 기꺼이 물들며 어떤 끝을 향해서든 묵묵히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은은한 사과향을 촛불 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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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 the boat, get off the train, and change your life.
참으로 오랜만에 끌리는 작가, 매력적인 글을 만나게 되어 기쁘고 좋다. 개인적으로 신경숙 '깊은 슬픔'이나 전경린 '나는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와 같이 음울하고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글에 매력을 느낀다. 한동안 그런 책을 만나지 못했는데 이화열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작가가 파리에 살고 있고, 파리를 배경으로 쓴 에세이라 더욱 그렇게 느꼈을 수 있지만 그녀의 글은 무채색빛 파리의 메트로와 많이 닮았다.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지는 저녁 무렵, 인생에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처럼 공연히 마음이 들떴다. 기대의 빛깔과 냄새로 꿈꾸었던 것들. 땅따먹기 놀이에서처럼 과거는 조금씩 조금씩 미래를 자기의 땅으로 만든다. 이제 그 달착지근했던 떨림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블루디스크 테라스에서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며 친구와 보내는 자투리 시간. 이런 일상의 여백에 호사스러움을 얹어주는 것은 조용한 골목길에서 비쳐오는 아침 햇살이다.
늙음을 조롱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젊음을 조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장기 없이 잠에서 깬 여인의 얼굴처럼 아침 일찍 거리가 깨어나는 모습을 볼 때 그 거기를, 도시를 진짜 아는 느낌이 들곤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쓸쓸함이나 외로움이 일상과 같이 차곡차곡 잘 잡혀 있다.
자신의 이야기는 물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러 국적의 다양한 이웃들, 앙리지누 가 동네 상인들, 학창시절 친구들, 프랑스인 남편 지인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 역시 하나같이 상처를 안고 있고 외로움과 쓸쓸함과 인생의 허탈함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고, 물론 만나본 적도 없지만 그녀는 유난히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고통을 달래주기 위한 위로가 덧없다는 것을 느낀다면 그냥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는 걸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으니까.
당장 그녀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아이들과 약간의 책, 그리고 몇몇 친구가 인생에서 얻은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서인도제도 섬에서 럼주를 마시며 노년을 보내게 되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그녀의 소개글 조차 지나치게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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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다 가 안쪽에 자리한 조그만 레스토랑 문을 미는 순간, 올리브유에 달궈진 마늘 냄새가 향긋하게 코에 감긴다. 내부의 노란 조명은 친구 인생에 빠진 어떤 온기를 채워주는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가 처한 상황을 불행이라고 이름 붙여야 하는지조차 정확하지 않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그가 탄 배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침몰은 새로운 국면을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희망적일 수 있다.
-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이화열
이화열은 디자이너다. 단행본을 세 권 펴낸 작가이고 파리지앵과 결혼해 19년째 파리에 살고 있는 '마담 르그랑'이며 두 아이의 엄마다.
그리고, 이화열이다.
그의 언어는 간결하여 군더더기가 없다. 비겁함을 에두르는 애매모호함이나 우유부단도 찾을 수 없고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언어는 단 한 마디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때로 인생은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듯 또렷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나지막한 속삭임에 가깝다. 그 명쾌함은 폭력적으로 쭉 뻗은 직선도로의 산물이 아니라 많은 것을 끌어안고 채우고 버린끝에 가장 소중한 것들만으로 꼭꼭 채워넣은 한 성실한 사람의 구불구불한 둘레길 샛길의 소산이 아닐까 싶다.
사람과 거리, 풍경과 예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자유롭고 감성적인 예술가의 그것이면서도 묘하게 학구적인 느낌이 난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여겼기 때문에 성실하게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말이 어쩌면 그 시선과 삶의 태도를 설명할 하나의 단서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글을 만나면서 생의 본질은 군더더기 없이 명쾌한 것이라는 확신이 강해졌고 동시에, '에둘러 갈 수 있는 길, 왜 가로지르려는 걸까?'라는 방법론적인 힌트를 얻은 것도 같다.
서울의 한 모퉁이에서 '저기 서 있는 버스가 너를 닮았다'는 친구의 말에 깔깔대던 여중생은 훗날, '카미옹(트럭)처럼 잘생긴', 자신을 꼭 닮은 아들과 함께 등교시간을 맞추기 위해 파리의 아침을 달린다. '버스'가 자라서 '트럭'을 낳다니. 게다가 둘은 함께 달리기까지 한다!! 이런게 바로 예기치 못한 생의 선물이 아닐까. '더 이상 거름을 줘선 안될 화초'처럼 커버린 딸아이가 덜렁대는 엄마를 귀엽게 내려다봐도 슬리퍼를 끌어간 사실을 잊고 또 다른 슬리퍼를 끌어가 남편으로부터 엉덩이를 걷어차여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상을 다지는 그는 또한 누구보다 예술가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이화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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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 [프랑스의 판타지와 삶] [2015. 7. 3 ~ 2015. 7. 5 완독] 에세이. 특히 여행을 좋아해 타지에 살면서 써내려간 그곳이 마음속에 그려지도록 탄탄하게 써내려간 에세이는 읽지 않는다. 그런 책을 읽고 나면 당장 내일 배낭을 꾸려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으니까. 어찌되었든 이런 이유로 여행기나 에세이는 손이 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라는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 뽑아 들었다. 이러한 제목이야 말로 배낭 하나를 매고 세상을 주유하는 여행자(내가 생각하는)의 모습이 아닐까. 당장 1분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여행에서 '으레 있는 일인양' 배를 놓치고, 잘타고 가던 기차에서 무언가를 보거나 느끼고는 내려버리는 모습이 그려져 설렌다. 부푼 마음으로 읽어나간 책은 프랑스의 소소한 삶을 정갈한 문체로 소개를 해준다.
어느 이발사. 어떤 거리의 홈리스. 어느 카페테라스의 웅성거림. 기차역. 프랑스의 판타지와 삶.
책을 읽는 속도는 가속하지만, 책이 그려내는 풍경 속 시간은 멈추었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 그리고 '삶에 대한 에세이'인줄 알았더니 여행자의 마음을 동하게 해서 미치기 직전이다. 하아... 책은 작가의 삶과 작가 주변의 삶을 통해 어떤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좋게 읽었는데 떠나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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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생활일까? 사람이 사는 곳은 다 같다는 말처럼 외국에서 사는 것도 한국의 여느 도시에서의 삶처럼 치열하고 바쁘고 일상에 젖어 살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닌, 전혀 낯선 곳으로, 정반대의 곳으로 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마 일상에 지쳐 있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일상의 이야기와 일상의 사진이 만나 만들어진 책이 이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이다. 제목에선 여행에세이 같았지만 읽고보니 일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세이였다.
파리에 살고 있는 사람을 '파리지엥(Parisien)'이라고 부른다. 파리지엥인 저자와 그런 파리지엥들을 찍는 사진 작가와의 만남은 글과 사진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감성을 최대한 보여주는 것 같다. 아이를 학교로 데려다주며 만나는 다른 학부모들과의 이야기, 두번 째 이혼을 하는 이웃과 나누는 이야기, 갑자기 생각난 옛친구의 이야기, 불면증으로 고생하다 수면제를 먹고 사고를 일으킨 친구 이야기, 아이와 함께 고양이를 숲에 놓아주던 이야기 등등 많은 이야기들이 일상의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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