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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풍요로운 시대다. 눈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다 보니 다른 감각들은 무뎌지고 있다. 일단은 화려해야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영상은 나날이 자극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내면의 감수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을 설명해도 감각에 기초해야만 받아들이는 측의 이해가 빠르다. 그렇지 않았다간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는 쓴소리를 듣기 일쑤다. 그런데 이를 역이용해 시를 쓰는 이가 있다. 시인 권혁웅의 시집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는 제목에서부터 눈앞에 무언가가 훤히 그려지는 듯한 인상이 들었다. 1967년 태어난 그를 늙었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젊다고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어중간한 나이, 그는 제 언어에 젊은이의 감각을 입혀 나이 든 이들만이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을 읊는 데 성공했다. 그의 시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어렵잖게 만나볼 수 있는 광경들을 주로 다루었다. 노인정에 나앉아 하릴 없이 고스톱을 치는 어르신들이 그렇게 그의 초대를 받았다. “치매 예방에 그렇게 좋다”는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하여 그들의 고스톱이 특정한 생산성을 동반하지는 못한다. 허나 시계 바늘을 비롯해 모든 것이 오른쪽으로 도는 시대에 고스톱만큼은 유독 왼쪽으로 도는 반동(?)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니, 시인은 이를 어르신들이 연대하여 시간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사랑을 잃고 눈물짓는 이의 눈앞에 놓인 것은 술잔 그리고 소주의 쓰디씀을 조금은 무디게 만들어줄 순대였던 모양이다. 그냥 먹고 일어서면 그만일 것이요, 조금 더 궁상맞게 이별을 받아들인다면 꺼이꺼이 목 놓아 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터이다. 이 장면을 저자는 시각적인 힘을 통해 너무도 생생하게 우리에게 재현한 것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시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였다. ‘도봉근린공원’ ‘동대문구 주부노래교실’ ‘천변체조교실’ 등 익숙한 명칭이 연이어 등장하기에 흠짓 놀라기를 몇 차례. 왜 유사한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시인과 같은 감성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냐며 애꿎은 책장만을 접었다 펴길 몇 차례 반복했다. 한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으나 이제는 시시해져버린 노래방도,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이자 때론 홀로 고독을 씹기에도 좋은 CGV, 몸에 좋지 않음을 빤히 알면서도 이따금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먹게 되는 의중부부대찌개와 낭만 서린 춘천닭갈비까지, 시대가 바뀌면 시도 바뀌어야 한다는 양 저자는 투박한 소재들을 기꺼이 제 시의 재료로 삼았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김밥천국과 양평해장국집이 그렇게 떳떳하게 시가 되어 다시 태어났다. 이열치열 땀흘려 먹어야 족할 삼계탕도 그리 하여 찬미의 대상이 되었다. 마냥 먹는 것 투성이다 보니 이내 배가 고파온다. 하지만 시를 읽다 배가 고프기는 또 처음이라며 멋쩍게 웃기 바쁘다면 당신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시에는 나이 든 우리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었다. 이제는 낡은 몸이 마음 같지 않아 한숨짓는 그들마저도 시인은 이미지를 통해 다룬다. 누군가에겐 구수함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린 무언가로 기억되는 청국장 냄새조차도 저자는 치열한 누군가의 삶을 빗대는 데 활용한다. ‘저승, 그 미지의 땅을 정복하러 가는 전사의 비상식량’이니 이를 할머니 냄새라 칭하지 말라는데, 그 순간 세속적인 것만 같아 보였던 시는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고 혁명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이 깃든 시의 이면을 보아야 제대로 이를 읽어냈다 평할 수 있거늘, 우리로선 이미지 너머의 진실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아마 좀 더 나이가 들어야만 이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이가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바삐 걷기만 했던 이들이 어이 이미지에 깃든 세상의 진면모를 알아차릴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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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권혁웅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내가 산 시집은 2015년 7월 출간된 초판 4쇄본. 시를 읽기 전에 목차를 주욱 훑어보면 왠지 시의 제목들이 친근하다. 왠지 주변에서 많이 있을 것 같고 자주 본 것들이다. 언어유희같기도 하지만 읽다보면 푹 빠져서 볼 수 있다.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시의 이미지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옆집 아줌마, 아저씨. 혹은 우리 엄마, 아빠. 술집, 공원, 포장마차, 야쿠르트 아줌마 등 주변에서 보던 풍경들. 재밌다. 그리고 웃음이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이런걸 요즘엔 웃프다고 하던가.. 책 뒷표지에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글 중에 그는 요새 자꾸 마음이 아파서 세상에 간섭한다. 우리는 밤거리의 취객과 연포탕의 낙지를 연민 없이 지나친다. 거기서 이야기를 상상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사람/사물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서 우리 앞에 쓱 밀어놓는다. 그는 긴 소설이 아니라 짧은 시에, 웃음과 울음을 다 담아, 그 일을 해낸다. 이런 구절이 있다. 나도 똑같이 매일 지나치는 풍경일텐데 상상력과 글재주가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시집을 읽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