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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일상에서 흔히 정치하면 떠오르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우선은 답답함과 분노,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아예 상종도 하기 싫어 대답 자체를 보류할 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정치하면 떠오르는 느낌이 유유상종, 그 나물에 그 밥, 자기들만의 리그 등등.. 좋은 느낌이라고는 아예 들지를 않는다. 그런데 정치에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처음 책 제목을 보고서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의 저자 이정희 교수는 정치학자로써 지난 20여년간 자신이 신문 등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그 역시 정치하면 갈등과 대립, 지배와 피지배, 그리고 통치와 복종이 떠 오른다고 한다. 그런 정치에서 가장 안 어울리는 단어가 사랑이지만, 그는 갈등과 대립을 넘어선 일치, 지배와 피지배를 극복한 상생, 그리고 통치와 복종을 이겨낸 공존을 추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랑이기에 정치라는 단어 앞에 사랑을 붙였다고 머리글에서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썼던 글들을, 발표했던 지면 별로 모아 별도의 제목과 함께 7개장으로 나누어 이 책에 실었다. 먼저, 한국일보 칼럼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새로운 지평이라는 제목 속에 포함시킨 글들을 읽어보면서, 나눔과 상생이 기반이 될 때 비로소 새로운 지평을 열수 있다는 그의 말에 공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가 2011년도에 기고했던 글들은 지금 읽어보아도, 2012년 총선과 대선의 결과가 아이러니 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어쩌면 그만큼 개혁과 쇄신이 말로만 그쳤다는 것, 그리고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기대와 달리 정치인들이 진보, 보수를 떠나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또 다시 같은 결과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함은 불문가지이다. 그런데도 지금의 현실을 보면 그들의 뇌 구조는 우리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만을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그가 노태우 정부, 김영삼의 문민정부,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의 참여정부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주요사건이 터질 때마다 기고했던 글들을 읽어보면서 그때 그런 일이 있었음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지나간 과거의 일들 이지만, 그의 정치평론을 읽다 보면, 그 당시의 분노 혹은 기쁨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기도 했다. 정치평론인지라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인 문제가 주가 되고, 또 정치인들에게 하는 말이 주이지만, 그러나 10여년 전, 아니 20여년 전에도 통탄했던 일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들을 보면, 분노는 고사하고 자괴감만이 든다. 국민들은 변화를 갈망하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정치인들 그들은 진화를 멈춰버린 고생대의 화석류와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정희 교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달랑 책 한 권을 읽고서 그에 대해 알았다고 하는 것은 뭐 하지만, 저자와 같은 지식인이 우리 사회에 있다는 것에 조금은 안도를 느낀다. 그의 평론에, 그의 의견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나눔과 상생에 기초를 둔 사랑의 정치이기에,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다. 소득의 양극화를 비롯하여, 계층문제, 일자리 문제, 교육문제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국민 모두는 그것들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지만, 어쩌면 정치인들 만이 그 고통에서 비켜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저자가 말하는 상생과 나눔, 그리고 기득권의 내려놓음 같은 가치들이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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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정희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봉직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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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교수님은 한국 학계의 존경 받는 원로 중 한 분입니다. 그는 청년 시절부터 교단에 서서,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은 스승의 마음으로 제자들을 훈육했고, 다른 면에서는 신문, 잡지, 기타 종교 매체를 통해 기고, 파급하는 글을 통해, 정치인을 향해 그 다심하면서도 준엄한 충언을 보내었고, 시민들을 향해서는 순간의 격정과 분노, 혹은 좌절과 체념을 삭이고 지양하여 진정한 통합과 화해의 공동체 형성에 창발적 동참의 손길과 노고를 보탤 것을 주장해 온 지식인입니다.
칼럼마다 당시의 시대 배경을 분명히 엿볼수 있어요. 이 킬럼은 2002월드컵과 지방선거를 화제로 삼고 있네요. 잠시, 책에 실린 칼럼의 시간적 범위를 살펴 보죠. 노태우 정부 중엽부터, 김영삼, 김대중 두 분의 정부를 거쳐, (시쳇말로, 한국에 노씨가 몇 명이나 된다고 벌써 두번째의 노씨 대통령이 나오냐는 말까지 들었던) 참여 정부 노무현의 시대, 그리고 후반에 어지간한 레임덕에 시달렸던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장장 5인의 대통령들을 다 지켜 보고 쓴소리와 충언을 아끼지 않은 기록입니다. 지식인의 고뇌와 사색, 충심어린 걱정이 녹아 있는 대 다큐멘터리입니다. 그 커버하는 세월의 범위가 무려 25년입니다. 25년이면 갓난아기가 장성하여 자기 핏줄을 생산하고 어엿한 경제 활동 인구로 탈바꿈하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그 세월 동안 이 학발동안(사실 머리도 여전히 검으신 편이지만요)의 노스승은 준엄히, 그러나 따뜻한 시선으로, 권력과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의 그 걸어가는 여정을 지켜 봐 왔습니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랑의 정치>입니다. 정치 칼럼이므로 제목에 "정치"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사랑의" 정치라고요? (갑자기 어느 화제의 대형 교회 이름이 떠오르기도 합니다만) 수식어와 피수식어가 왠지 안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우리 나라처럼, 정치가 그 최소한의 생산 기능을 하기는커녕 정쟁과 이권 다툼만을 일삼고, 나아가 국민들을 사분오열시키는 정치의 예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죠. 그런데도 이 교수님은 그 온화한 표정과 인상에 걸맞게, 천연스레 "사랑의 정치"를 논하십니다. 이 교수님이 주장하시는 "사랑의 정치" 컨셉이란 알고 보면 단순한 구조입니다. 상대르 인정하는 시선에서 모든 것을 시작합니다. 나의 생각이 소중하고 가치 있듯, 한 발만 물러서서 남의 입장을 바라보자는 겁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되는 가치는 대화와 타협입니다. 그런데, 기계적이고 마지못해 보이는 소통이 아니라, 진정을 담아서 행하는 한 발짝씩의 양보야말로, 이런 살벌한 시국(저 25년 동안 우리는 단 하루도 전쟁하듯 대치하는 여야의 대결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습니다)에서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는 의미에요. 간단하지 않습니까? 사랑이 그처럼이나 간단하고, 또 현실에서 그만큼 구체적인 성과도 도출할 수 있다니, 들어서 마음만 편한 게 아니라, 우리가 부대끼며 그 안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사회 전체를 살갑고 따뜻하게 만들어주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사랑을 자연스레 정치와 변증법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 교수님 개인이 지닌 신앙의 배경이 작용하는 바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는 평화신문 등 가톨릭 계열의 매체에 기고하신 글들의 분량이 제법 됩니다. 이 교수님은 그 다정하고 온화한 인상에서도 엿볼 수 있듯, 상생과 공존의 이념을 정신과 영혼 속에 가득 담은 삶을 사신 분입니다. 그런 실천의 경력에서, 이처럼 현실적이면서도 정의롭고 온건한 말들이 나올 수 있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칼럼집을 역사책처럼 읽었습니다. 이 책에는 칼럼의 배경이 되는 갖가지 역사적 이벤트들이 빼곡히도 나열되고 있습니다. 제 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잡음, 노태우의 민자당 탈당, 김현철 사태, 한보 비리, 대통령 자식들의 스캔들, 고건 대행의 등장, 김석수 총리 지명 등등 칼럼을 읽으면 이 시대에 이런 일들이 다 있었나 하는 생각에 현대사 책 한 권 읽은 듯 노곤함이 밀려 옵니다. 그 갖가지 파란과 이벤트가 긍정적 성격보다는, 현대사의 치부와 모순을 노출하는 성격이라서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 노지식인이 내놓으시는 처방은 한결 같습니다. "사랑의 정치!" 이 다섯 글자입니다. 간단한데도 간단하지만은 않은, 이 시대의 화두가 아닐까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