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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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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헐리웃키드의 생애’의 주인공 병석처럼 인생의 절반 이상을 어두운 영화관에서 보내지 않았지만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젊음은 영화관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스라이 사라진 중앙, 명보, 단성사, 피카디리 극장을 그리워하는 이유도 자신이 보낸 젊음의 기억들을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많은 영화를 봤기에 그 당시의 감독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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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헐리웃키드의 생애’의 주인공 병석처럼 인생의 절반 이상을 어두운 영화관에서 보내지 않았지만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젊음은 영화관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스라이 사라진 중앙, 명보, 단성사, 피카디리 극장을 그리워하는 이유도 자신이 보낸 젊음의 기억들을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많은 영화를 봤기에 그 당시의 감독이나 영화배우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영화들이 범람하고 또 빈약해진 기억력 탓에 누가 누구인지 헛갈림이 심하다. 이렇게 리뷰라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면 “어! 배우, 그 영화의 감독이었구나!” 라며 새삼 놀라곤 하는데 ‘스티븐 달드리’도 그런 감독 중 한명이다. 그의 데뷔작이 <빌리 엘리어트>이었고 이 영화로 그는 제58회 골든 글로브 최우수작품상 후보가 되었고 2001년 제73회 아카데미에서는 감독상을 포함해 3개 부문의 후보로 지명되어 반짝이는 혜성처럼 등장했다. 두 번째 연출작인 ‘디 아워스’는 전미비평가협회가 선정한 2002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었고 제60회 골든 글로브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2008년에 개봉된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는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더 리더, ’디 아워스‘를 먼저 보고 최근에 DVD로 ’빌리 엘리어트‘를 보게 되었는데 이때만 해도 이 영화의 감독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만큼 영화를 대충 봤다는 이야기다.

 

 

‘빌리 엘리어트’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아, 그 감독이구나!” 란 짧은 탄식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인데 특히 ‘더 리더’ 의 비극적 여주인공 한나를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과 ‘디 아워스’의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과 같은 쟁쟁한 여배우들의 이름 때문에 감독은 안중에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빌리 엘리어트’를 통해서 비로소 이름을 기억하게 되는데 이유는 예쁜 여배우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ㅎㅎ. 물론 그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인 빌리 엘리어트는 성장영화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을 이기며 멋진 발레리노로 성장한 빌리를 통해 감동을 얻는 것도 중요한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지만 난 아들의 꿈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의 아픔과 사랑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1984년 북동 잉글랜드 더럼 주의 탄광 마을 이란 자막과 함께 영화는 시작된다. 막장인생이란 말처럼 탄광촌은 인생의 마지막 정착지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삶을 상징한다. 턴테이블에 T. Rex의 ‘Cosmic Dancer’ 가 오르자 빌리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아무 것도 꿈꿀 수 없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12살의 아이는 춤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데 땀에 젖은 그의 얼굴은 상기되었고 표정은 행복하다. 더군다나 광부들은 임금문제로 인해 장기파업을 하게 되고 정부는 이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 긴장관계 속에 있다. 일을 못하기에 수입원이 끊어진 아버지 재키(게리 루이스)는 석탄이 떨어진 것을 근심할 정도로 궁핍하다. 엄마는 어렸을 때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있고 아버지와 형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파업에 참여하는 등 빌리의 삶은 희망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암울하다. 그러나 아이의 얼굴은 아직도 해맑고 삶에 대한 고집도 있다. 홀로 남겨진 아이는 동네 유소년 클럽에서 권투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체육관 한쪽에서 발레를 배우는 소녀들을 본 후 빌리는 발레에 매료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발레를 향한 그의 꿈은 오토바이 엔진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예술도 돈이 있어야 하는 현실이기에 갈등이 있다.

 


평생 광부로 일한 아버지에게 탄광은 가족의 생활을 이끌어가는 삶의 터전이고 인생의 전부다. 그러나 탄광은 파업으로 인해 광부들은 파업 찬성파와 반대파로 분명히 나뉘고 찬성파의 중심인물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기꺼이 갱도로 들어가는 일을 선택한다. 버스를 타고 회사로 들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돌과 달걀을 던지며 분노를 들어내는 동료들. 이들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거친 숨을 몰아내는 아버지. 그는 분명 하루아침에 소신을 바꾼 배신자였지만 아버지에게 빌리의 성공만큼 중요하고 소중한 일은 없다. 가슴이 짠해지는 장면이다. 그래, 부모의 입장이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번에 한 기업인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도 검찰의 칼날이 가족을 겨냥했기 때문이란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들을 위해 어둡고 위험한 갱도로 기꺼이 내려가는 아버지, 발레학교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백조의 꿈을 이루어 가는 빌리. 영화는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현실을 반대로 표현하는데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중 ‘정경’에 맞춰 주인공 빌리가 등장할 준비를 한다
. 이때 스탭 중 한명이 빌리에게 가족이 왔다는 말을 넌지시 전하고 그도 긴장한다. 음악은 절정을 향해 가고 빌리의 호흡은 거칠어지는데 아버지의 눈가는 벌써 눈물이 고인다. 이 장면 때문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찾아오는 감동이리라. 소년은 꿈을 꾸고 아버지는 그 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특히 이 한마디
“우리는 이미 끝났지만 빌리는 아니야, 빌리를 이렇게 끝나게 할 순 없어”

 


자식을 향한 모든 아버지의 소망이다.

 

이제 자신도 이 말의 의미를 안다. 이달 초에 부모님 성묘를 다녀왔을 때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몇 년 전부터 동생과 함께 성묘를 다녔던 오빠가 말한다. 
“오늘은 내가 부모님을 위해 꽃을 살게”
“아냐, 오빠”
“아니야, 나도 이제야 부모님 마음을 아는 것 같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아들이 꽃 한 송이 바치면 좋아하실 것 같아
.”

 

내 아버지도 빌리 아버지처럼 나를 키웠으리라. 아니, 자신도 아버지처럼 내 아이들을 키우지 않았을까? 비록 아이들이 아직 내 마음을 모른다 할지라도 서운하지 않은 것은 자신도 그랬다는 것을 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언젠간 아이들도 아버지를 기억하리라.
빌리의 성장을 담은 영화지만 한편으로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들을 본 영화이기도 하다. 빌리가 이루어가는 꿈보다 아버지의 희생이 더 마음을 울리는 것을 보면 나도 아버지로서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 아프지 않다.......ㅎㅎ. 중년이 봐도 좋은 영화인 것은 내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로얄 j*****r 2015.04.23. 신고 공감 5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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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빌리 엘리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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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2000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으면 웃는다. 살아가는 즐거움이 없으면 웃지 못한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같다. 하루하루 즐거우면 아이들은 맑게 웃는다. 날마다 즐거우면 어른들은 밝게 웃는다. 즐겁지 못하다면 아이들은 얼굴에 웃음이 아닌 그늘이 드리운다. 아이들이 왜 애늙은이처럼 되고 말까? 아이들이 왜 웃으면서 이야기를 안 하는가? 저녁에 잠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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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2000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으면 웃는다. 살아가는 즐거움이 없으면 웃지 못한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같다. 하루하루 즐거우면 아이들은 맑게 웃는다. 날마다 즐거우면 어른들은 밝게 웃는다. 즐겁지 못하다면 아이들은 얼굴에 웃음이 아닌 그늘이 드리운다. 아이들이 왜 애늙은이처럼 되고 말까? 아이들이 왜 웃으면서 이야기를 안 하는가? 저녁에 잠들고 아침에 일어날 적에 새로운 꿈이 피어나지 않으면, 아이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우스꽝스러운 짓을 해야 웃지 않는다. 아니, 오늘날 이 사회는 즐거운 삶이 아닌 터라, 우스꽝스러운 짓을 일부러 벌이면서 억지스레 웃음을 자아내려고 하는 ‘직업인’까지 생겨야 한다. 게다가, 오늘날 이 사회는 즐거운 삶이 아닌 탓에, 함께 어우러져 뛰놀 마당은 모조리 사라진 채, 텔레비전에 코를 박거나 경기장으로 찾아가서 ‘전문 직업 운동선수가 벌이는 쇼’를 구경해야 한다. 스스로 웃을 일이 없는 오늘날 사회이다. 스스로 뛰놀지 못하도록 가로막힌 오늘날 문명이고 정치이고 교육이며 문화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탄광 노동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야말로 빛을 잃고 꿈을 잃으며 숨결조차 잃은 슬픈 사람들이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침에 탄광회사 앞에서 목청을 높이면서 싸우다가, 저녁에 술집에 모여 해롱거리는 짓뿐이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삶이 홀가분하지 못한데다가 즐겁지 않은 터라, 탄광 노동자 어버이는 이녁 아이들한테 꿈이나 사랑을 들려주지 못한다. 탄광 노동자 어버이는 이녁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못한다. 함께 밥상맡에 둘러앉아도 달리 들려줄 이야기도, 들을 이야기도 없다. 꿈도 사랑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이 새까만 탄광마을인데, 길바닥만 본다면 새까만 무덤 같으나, 고개를 살짝 들어 하늘을 보면, 하늘빛이 파랗다. 고개를 들어 마을 앞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면, 바닷빛이 파랗다. 파란하늘과 파란바다가 베푸는 하늘바람과 바닷바람을 마실 수 있다. 다만, 고개를 들어야 하늘과 바다를 품에 안을 수 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빌리’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고, 바다를 보았다. 아이는 스스로 제 마음속을 읽었으며, 아이는 스스로 제 길을 깨달았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이녁 아버지와 형한테 들려준다. 이녁 아버지와 형은 땅바닥만 쳐다보느라 꿈과 사랑을 모두 잃거나 놓쳤는데, 빌리는 꿈도 사랑도 잃거나 놓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또렷하게 밝힌다. 이리하여, 빌리는 이녁 아버지가 처음으로 탄광마을 바깥으로 나가도록 해 준다. 발레학교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었지만. 그리고, 빌리는 이녁 형도 탄광마을 바깥으로 나가서 새로운 바람을 쐬도록 해 준다. 드디어 빌리는 춤꾼(발레)이 되어 스스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꿈을 모두한테 따사롭게 보여준다. 4347.9.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이달의 사락 h*******e 2014.09.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