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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과 임진왜란』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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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다. 임진왜란기 조선과 여진족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저자는 임진왜란기 조선은, 일본은 물론이고 북방의 여진족도 상대해야 했다고 말한다. 앞뒤로 적을 마주하고 있는 위기 속에서 남방의 조선군 정예를 북방으로 차출하는 상황도 전개되었다. 북방에 오륙천 명의 항왜(降倭)를 배치했다는 대목에서는,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얼마나 긴박했는가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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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다. 임진왜란기 조선과 여진족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저자는 임진왜란기 조선은, 일본은 물론이고 북방의 여진족도 상대해야 했다고 말한다. 앞뒤로 적을 마주하고 있는 위기 속에서 남방의 조선군 정예를 북방으로 차출하는 상황도 전개되었다. 북방에 오륙천 명의 항왜(降倭)를 배치했다는 대목에서는,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얼마나 긴박했는가를 느낄 수 있다.

n*******6 2024.03.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여진족과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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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선조 시기를 조선의 국방력이 가장 바닥인 시기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명종 시기를 최약체 시기로 보고 있으며 오히려 선조 시기에 재건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는 삼포왜란과 북방 니탕개의 난을 거치면서 군사력을 다시 증강시킬 필요가 대두되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자체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파싸움만하고 군사력도 키우지 않다가 당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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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선조 시기를 조선의 국방력이 가장 바닥인 시기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명종 시기를 최약체 시기로 보고 있으며
오히려 선조 시기에 재건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는 삼포왜란과 북방 니탕개의 난을 거치면서 군사력을 다시 증강시킬 필요가 대두되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자체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파싸움만하고 군사력도 키우지 않다가 당한 것이 아니라
실상은 나름 전쟁을 예상하고 준비를 했는데 고작 1~2만의 침공을 예상하다가
일본이 20만의 전력으로 침공해올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은 임진왜란 당시 여진족 문제를 다룬 책입니다.
그런데 제목의 그런 분위기와 달리 꼭 당시 여진 문제를 뿐만아니라 임진왜란을 다룬 여러 논문을 묶은 책이네요.
분위기가 학술적이지만 주목되는 내용이 좀 있습니다.

 

종래의 평화에 젖은 조선이란 통설에 강렬히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미 선조 연간에는 북방 문제가 시작되어서 이에 대한 국방 강화가 시급한 문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은 대일본 국방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로
당시 니탕개의 난과 같은 여진 문제로 이에 대한 대책으로 봐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군량미를 납부하면 면천시키는 납속책이나 병역을 수행시 서얼허통을 해주는 정책은
임란이 아닌 대여진 군사력 강화책에서 나온 정책이었습니다.
니탕개 난에 대한 조선의 위기감은 심각한 것이었고 이에 대한 대책은 상당히 강화된 조치였습니다.

 

또한 선무공신 중 무인들 대다수가 니탕개 난에 참전한 장수들이거나
이에 대한 대책으로 진행한 무과에서 뽑은 장수들이었습니다.
만약 니탕개의 난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에서 싸울 장수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배경으로 선조와 조선 조정은 한창 일본과 싸우면서도 여진에 대한 경계를 거두지 않았으며
정예병인 북병을 동원하여 남쪽에서 싸우다가도 이들을 최대한 복귀시키는 등의 대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여진문제에 대해서 좀더 집중한 내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9***d 2022.09.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