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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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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그간 유럽 역사를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나라가 바로 오스만 제국이었다, 동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나라, 그리고 그밖에 여러 군데에 등장하는데 막상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제대로 된 책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안타까웠는데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먼저 나라 이름이다.   1장 두번째 글에 <작은 공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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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그간 유럽 역사를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나라가 바로 오스만 제국이었다,

동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나라, 그리고 그밖에 여러 군데에 등장하는데 막상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제대로 된 책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안타까웠는데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먼저 나라 이름이다.

 

1장 두번째 글작은 공국에서 제국으로 라는 타이틀 하에 오스만 제국의 성립 과정이 나온다.

조금 내용이 길고 복잡하기에, 다른 자료로 보충해본다.

 

오스만 제국이라는 이름은 제국의 황가인 오스만 가문에서 따 온 것이며, 오스만 가문은 제국의 초대 군주인 오스만 가지(Osman Gazi)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중세 라틴어식 표현인 오토마누스(Ottomanus)에서 유래한 오토만(Ottoman)이라고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오스만 제국, 오스만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 제국 등으로 부르며, 과거에는 오스만 터키라고 하기도 했다. (나무위키)

 

오스만의 역사를 왕을 중심으로 기록해 본다.

1299년 건국, 1922년 멸망

 

왕의 이름을 순서대로 살펴본다.

 

에르투룰 (오스만의 아버지)

1대 오스만 (1299-1326)

2대 오르한 (1326-1362)

3대 무라드 1(1362- 1389)

4대 바예지드 1(1389-1402)

메흐메트 1(1413 ? 1421)

무라드 2(1421- 1451)

메흐메트 2(1451-1481)

베아지드 2

셀림 1(1512-1520)

슐레이만 대제 (1520  1566)

14대 아흐메드 1(1609- )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지는데, 그 뒤의 왕들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지 그저 무능한 왕이 계속 등장한다고 나온다.

그리고

1922년 멸망

 

이번에는 연대별로 왕과 관련되는 사건을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에르투룰

1대 오스만 (1299-1326)

2대 오르한 (1326-1362)

3대 무라드 1(1362- 1389)

4대 바예지드 1(1389-1402)

메흐메트 1(1413 ? 1421)

무라드 2(1421- 1451)

메흐메트 2(1451-1481)는 즉위한 지 불과 2년 만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다. (1453) 

베아지드 2

셀림 1(1512-1520) 잔혹한 술탄

셀림 1세가 칼리파 직위를 물려받은 시점부터 이슬람이 제국의 국교로서 확고하게 굳혀졌지만, 밀레트 제도에 의해 다른 종교 및 그들의 종교법 또한 존중했다.

 

슐레이만 대제 (1520  1566)

- 슐레이만 모스크 건설.

이때, 유럽과 중동에서 가장 뛰어난 군주들이 활약하던 시기다.

영국의 헨리 8, 프랑스의 프랑수아 1,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 5, 이란의 사파비 왕 조를 세운 이스마일 1, 러시아의 이반 1세 등의 각축이 벌어졌다.

이들 가운데 슐레이만 대제는 가장 뛰어난 제왕으로서 유럽 세력의 균형자 역할을 하고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을 정복하며 위상을 드높였다. (45)

 

14대 아흐메드 1(1609-

압뒬하미트 2세 시절에 미트하트 파샤가 주도한 '1876년 헌법'(1876 kanun-ı esasi)에서 이슬람을 제국의 국교로 삼았음을 늦게나마 규정했다.

 

19세기 들어 오스만 제국은 계속 쇠퇴하였는데...

1차 대전때에는 독일 오스트리아 동맹국이 일원으로 참전한다.

결국 1922년에 멸망한다.

 

무스타파 케말의 등장

 

이 책에서 그는 무스타파 케말이라는 이름으로 55쪽에 등장한다.

그 뒤로 케말 파샤라는 이름으로 78쪽에 등장한다.

그리고 79쪽에도 케말 파샤로 등장한다.

그 다음에는 아타튀르크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79)

 

그 두 이름이 동일인인지 아닌지 몰랐다. 그래서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그리고 다음에는 84쪽에 역시 아타튀르크라는 이름으로,

89쪽에는 아타튀르크 대통령, 국부 아타튀르크....

91쪽에는 아타튀르크.....

 

그 다음에서야 그의 이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등장한다.

 

1938년에 아타튀르크가 서거한지 8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92)

 

그리고 이런 설명이 잇따른다.

 

아타튀르크는 '투르크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튀르키에 의회에서 부여한 이름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무스타파 케말로, 1881년에 지금의 그리스 2대 도시인 데살로니가에서 태어났다. (92)

 

그리고 연이어서 그의 생애에 관한 설명이 죽 이어진다.

그러니까, 케말과 아타튀르크는 동일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나서 또 다시 이름에 관한 설명이 등장한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그의 본명은 무스타파이고 중학교 시절 수학을 잘해 완벽하다는 의미의 케말이 별칭으로 붙어 무스타파 케말이라고 불렸다. 튀르키에 공화국 출범 이후 1934년 가족법에 따라 모든 사람이 성()을 갖도록 되었는데 그에게는 의회가 부여한 튀르키에인의 이버지라는 의미의 아타튀르크가 붙었다. 그래서 1934년 이전에는 무스타파 케말이라고 불리다가 이후에는 아타튀르크라고 불린다. (102)

 

여기서 한자 성()이 잘 못 되었다. 이름과 성을 말할 때의 성명은 姓名이다. 따라서 성은 성()이 아니라 성()이다.

 

또한 케말 파샤에 대한 설명은 보이지 않아, 다른 자료를 찾아보았다.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후 모든 사람에게 성을 쓰게 하면서 '아타튀르크'라는 성을 쓰게 되었다. 튀르키예에서 고위 관료에게 쓰는 경칭인 파샤를 붙여서 케말 파샤(Kemal pa?a; 케말 경)라고도 부른다. 1990년대 이전의 한국 세계사 교과서나 언론 매체에서 이 이름으로 표기되곤 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케말 파샤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나무위키)

 

에르도안의 등장

 

그 다음 등장하는 중요인물은 현 대통령인 에르도안이다.

이 책은 두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2 튀르키에 공화국의 자화상에서 주인공은 바로 현 대통령인 에르도안이다.

 

그의 출생부터 시작하여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 그리고 현재까지의 정치 역정을 살펴보고 있다, 이 책 출판 시점에 마침 2023년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이 책에서 그 결과는 어떻게 나올지 관심사다라고만 기술되어 있다. (132)

 

그 결과는 

총 득표율 52.7%를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

 

튀르키에에 관한 여러 정보들

 

2부에서는 에르도안 정부의 여러 정보를 담아놓고 있다.

 

07 에르도안의 집권과 권력의 강화

08 21세기 술탄으로 가는 험난한 길

09 튀르키예의 역동적인 경제와 명암

10 새로운 외교 전략: 전략적 깊이(Strategic Depth)

11 시리아 내전: 국제분쟁의 냉엄한 현장

12 쿠르드 문제: 풀기 어려운 고르디우스 매듭

13 에르도안의 튀르키예: 어디로 갈 것인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슬람교와 정치의 문제,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등이 있다.

여기에서 국가를 운영하는데 고려해야 할 것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타국의 현황을 살펴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튀르기에에 대해 막연하게 알고 있던 차, 이런 생생한 자료들을 통해, 현재 튀르기에 정부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더하여 오스만 제국이라 불리던 유럽의 한 부분 역사까지도 공부하기 좋은 책이다.

 
s***h 2023.06.22.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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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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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가 본 튀르키예의 과거와 현재   튀크키예에 관한 책이 자주 눈에 띈다. 그리고 대사를 지냈던 은퇴 외교관들의 책도 늘었다. 트렌드인가, 주재국의 생생한 현장,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은 연구자들과는 또 다른 특정국의 사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정보다. 물론 그 가운데는 결이 전혀 다른 책도 있지만 말이다.   이 책 제목은 조금 길다. <오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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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가 본 튀르키예의 과거와 현재

 

튀크키예에 관한 책이 자주 눈에 띈다. 그리고 대사를 지냈던 은퇴 외교관들의 책도 늘었다. 트렌드인가, 주재국의 생생한 현장,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은 연구자들과는 또 다른 특정국의 사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정보다. 물론 그 가운데는 결이 전혀 다른 책도 있지만 말이다.

 

이 책 제목은 조금 길다.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이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전편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은 튀르키예가 현재 다민족국가를 형성하게 된 배경과 아울러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과의 문화, 경제적인 관계도 함께 봐야 한다. 그리고 후편의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은 1923년 독립전쟁의 영웅 아타튀르크(투르크의 아버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본래 이름에 의회에서 붙여준 아타튀르크가 합쳐진 것)의 정교분리 세속정치체제 구축, 이후 2003년에 등장한 대통령 에르도안 아타튀르크가 구축한 세속시스템(케말리즘)을 점진적으로 해체하면서 이슬람의 사회적 영향력을 높이고 정교 통합 방향으로 몰아가는 듯한 모습이다. 한편, 튀르키예의 외교정책의 기본노선 축을 친서방에서 친이슬람으로 옮기고 있어, 분쟁의 화약고 중동, 동서양을 잇는 튀르키예의 경제방향 등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살펴본다.

 

이 책을 쓴 동기는 현대 튀르키예를 설명하려면 600년 역사의 오스만 제국과 현대 튀르키예 공화국의 현실을 설명하는 대학강의용 서적이 마땅치 않아, 지은이 조윤수가 직접 자료를 모아 만든 것이다.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로 그리고 600년

 

이 책은 술탄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퇴를 설명한다. 오스만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1453년 동로마를 점령 이후, 종교적 관용책을 펼치며 이스탄불로 다양한 민족을 받아들였다. 오스만 제국의 전통, 술탄이 등극하면 그의 형제들, 이른바 술탄 계승순위에 들어있는 이들은 모두 죽였다. 이때, 오스만은 상승기류를 탔다. 왕권경쟁자가 사라진 때 번성했다는 것인데, 술탄 계승순위 안에 들어있는 이들을 살려두기 시작한 때부터 하강기류를, 결국, 왕권계승자들을 끊임없이 견제해야 했기에 그랬던 것인가, 또 특징적인 제도라 할까, 노예군대, 용병 “예니체리”의 존재다. 토사구팽이 왜 나왔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한데, 술탄승계를 둘러싼 싸움에서 예니체리라는 조직은 힘을 쓰게 된다. 궁정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는 등, 술탄체제를 지탱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뒤엎는 반역에 가담하기도, 결국 제국의 쇠퇴를 가져오는 하나의 요인이 됐다.

 

오스만 제국의 쇠퇴

 

오스만이 다른 지역을 장악하면 장악할수록 점차 무역 경쟁력을 상실하고 무역 상대국인 유럽 국가들이 성장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스만은 무역을 세력 균형의 하부개념 정도로 인식했던 탓에 유럽 각국에 나눠줬다. 미래의 적들에게 먹이를 내어주고 힘을 기르도록 했다. 또, 보자. 토지소유권의 문제다. 모든 경작지를 국유화, 농부나 장인들에게 융통성이 주어지지 않아, 소득 창출에 제약이, 거대한 공룡 오스만은 긴장감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층부의 부패 역시. 어느 시대건 어느 국가건 흥망성쇠의 사이클 가운데서 보이는 쇠퇴 현상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를 올리는 엑셀은 부패와 반란이다. 오스만 역시, 이 경로를 거친다.

 

튀르키예 공화국, 그리고 오늘

 

수백 년간 유럽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오스만 제국은 1922년 해체된 후, 1923년 건국된 튀르키예 공화국은 1938년 아타튀르크 사후, 국제정치에서 거의 존재감을 잃었다. 한편 제국의 일부였던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이란과 이라크 등은 끊임없는 분쟁과 긴장의 연속이다.

 

튀르키예가 다시 국제무대에서 조금씩 그 위상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 중동의 민주국가 및 경제성장의 모델로 인식되면서 관심 국가로 떠올랐다. 2010년 시작된 아랍의 봄의 물결이 중동, 아프리카 전역에 퍼지고, 2011년 이후 시리아 내전이 계속되면서, 시리아 난민, 쿠르드족 활동, IS 등의 문제에 접근하려면 튀르키예를 빼놓을수 없게 됐다.

 

에르도안의 출현과 이슬람화 경향

 

20년 전에 집권한 에르도안은 튀르키예 사회를 이슬람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21세기의 술탄을 꿈꾸는 것인가, 케말리즘과 이슬람문화를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국민 요구에 부응해오다, 어느 정도 권력 장악에 자신감이 생긴 후로는 여성의 스카프 착용허가, 주류금지, 이슬람 공휴일에 공공차량 무료 등의 케말리즘에 배치되는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으로, 서구 국가와의 기존협력 구도에서 벗어나, 러시아, 이란과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가운데 독자적인 대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튀르키예에 대유럽 수출기지를 두고 있는 적지 않은 수의 우리나라 기업들에 에르도안의 대외 정책 방향 변화는 어떤 영향을 얼마나 줄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별로 큰 영향을 없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아무튼 케말리즘에서 이슬람으로, 또 권위주의적 체제로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태그#오스만제국의영광쇠락튀르키예공화국자화상#조윤수#대부등#주튀르키예대사가바라본튀르키예과거와현재#700년의역사튀르키예바로알기#아타튀르크케말리즘#에르도안대통령의이슬람화#책콩카페#책콩서평단

YES마니아 : 플래티넘 m****h 2023.06.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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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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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부분과 중동,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는 동과 서로 갈라졌습니다. 서로마는 분리된 이후 오래지 않아 멸망한 반면 비잔틴 제국으로 이름이 바뀐 동로마는 1,000년 이상 존속하면서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쳤네요. 이스탄불은 당시 콘스탄티노플로 불렸는데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비잔틴 제국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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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부분과 중동,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는 동과 서로 갈라졌습니다. 서로마는 분리된 이후 오래지 않아 멸망한 반면 비잔틴 제국으로 이름이 바뀐 동로마는 1,000년 이상 존속하면서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쳤네요. 이스탄불은 당시 콘스탄티노플로 불렸는데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비잔틴 제국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하였지만 콘스탄티노플은 살아남아 이스탄불로 이름만 바뀐채 계속 수도가 되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곳이고 기독교과 이슬람교를 가르는 경계에 위치한 이스탄불에는 뛰어난 문화 유산들이 남아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최근 튀르키예에서는 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중동 지역의 난민들이 몰려들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독재를 하면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네요.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은 튀르키예 대사를 역임한 저자가 쓴 책으로 튀르키예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네요.

 

로마 제국의 동쪽이었던 비잔틴 제국은 한때 로마 제국이 지배하던 영토의 상당 부분을 수복하는 등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교가 등장하고 무슬림이 늘어나면서 서서히 세력이 약해졌네요. 술탄 메메드 2세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비잔틴 제국의 숨통을 끊어 놓으면서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왕이 바뀔 때마다 형제들이 죽는 극심한 혼란이 있었지만 화려한 문화가 꽃피고 학문 수준도 높았네요. 오스트리아 빈에서 좌절되었으나 수백년 동안 발칸 반도를 지배하였습니다. 만약 빈 공방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승리하였다면 유럽의 역사는 지금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20세기 들어 전 유럽이 휘말린 전쟁 끝에 결국 오스만 제국은 멸망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의 식민지가 될 뻔 했으나 군인이었던 아타튀르크가 독립 전쟁을 이끌면서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웠네요.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에 비하면 소아시아 지역으로 영토가 크게 줄어들기는 했지만 외세의 침략에서 맞서 나라를 지키면서 오늘날 튀르키예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고 합니다. 아타튀르크라는 이름도 튀르크의 아버지라는 뜻이고 나라 곳곳에는 동상이 있을 만큼 튀르키예 사람들의 아타튀르크 사랑이 대단하네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알파벳을 도입하는 각종 개혁을 추진하였는데 튀르키예 사람들에게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합친 정도일까요.

 

하지만 현재 튀르키예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에르도안은 이 책이 나온 2022년에 이미 20여년 가까이 정권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얼마전 끝난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승리하면서 장기 집권을 예고하네요. 튀르키예 공화국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었지만 에르도안 이후 이슬람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으며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21세기 초 튀르키예는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기도 했으나 지금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네요. 미국과 유럽연합, 러시아와 복잡하게 얽힌 관계도 튀르키예가 해결해야 나갈 과제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테러가 발생하는 등 혼란스러운 시기에 튀르키예에 있었는데 그만큼 막중한 역할을 하였네요.

 

튀르키예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 데다가 인구도 8,000여만명이 넘습니다. 관광 대국일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방위 산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네요. 한국전쟁 당시 멀리서 와서 참전하면서 우리나라를 도왔는데 튀르키예는 중동의 교두보로서 우리에게도 중요한 파트너가 되지 않을까요. 튀르키예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직접 겪은 이야기들을 읽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역사 #오스만제국의영광과쇠락튀르키예공화국의자화상

p***s 2023.06.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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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도서협찬]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내용보기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조윤수, 대부등 오스만 제국의 후예이면서 한국전쟁의 참전국이었던 튀르키예(과거 터키)에 대한 책들이 여러권 출간되고 있다. 그만큼 튀르키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야기꺼리가 많아졌다고 느껴진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에르도안 현 튀르키예 대통령이다. 5~6년전만해도 튀르키예와 관련된 책들은 여행기
"[도서협찬]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내용보기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조윤수, 대부등


오스만 제국의 후예이면서 한국전쟁의 참전국이었던 튀르키예(과거 터키)에 대한 책들이 여러권 출간되고 있다. 그만큼 튀르키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야기꺼리가 많아졌다고 느껴진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에르도안 현 튀르키예 대통령이다.

5~6년전만해도 튀르키예와 관련된 책들은 여행기 중심이었는데 최근 튀르키예 책들은 역사와 정치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튀르키예를 다루고 있다. 여러 책에서 반복해서 하고 있는 이야기는 튀르키예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이고 에르도안으로 지칭되는 튀르키예의 정치 상황이 과거의 향수를 담아 이슬람 보수주의(원리주의라는 표현이 가지는 한계와 편견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적는다)로 회귀하고 있는 모습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모습으로 인해 주변 이슬람국가들과 외교적인 지형이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봐야한다는 것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외교관으로 튀르키예 대사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저자가 바라보는 튀르키예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로 기존의 책에서 다루던 이야기들과 조금 다른 관점들이 담겨있어 나에겐 새롭게 다가왔다.

기본적으로 튀르키예의 역사는 오스만 제국에서 시작한다. 오스만 제국은 원래 15세기 콘스탄틴노플을 점령해 비잔틴을 함락시키기 전까진 중동의 작은 공국이었다. 그런 오스만 제국이 제국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는 것은 이민족에 대한 포용정책과 예니체리라는 충성스런 군대 그리고 형제살해라는 과정을 통해 정권을 안정시킨 영향이 컸으리라고 분석하고 있다.

사실 비잔틴 함락을 기후영향과 전염병과 같은 또다른 요인들에서 원인을 찾는 경우도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군사적인 최후는 결국 군대를 운용하는 주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환경적인 영향은 사이드 이펙트로 볼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여간 오스만 제국은 중동과 이슬람의 중심이 되고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지만 러시아의 남진과 유럽 열강에게 휘둘리면서 제국의 지배에 있던 그리스, 이집트 등이 독립해 분리해 나가게 되고 무스타파 케말(아타튀르크)가 주도한 독립전쟁으로 현재의 국토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아타튀르크 중심의 세속주의 국가 체제가 구축되어 2000년대까지 유지되었지만 아타튀르크 사후 무슬림이 국민의 98%인 나라에서 이슬람 중심의 세력이 세속주의에 반대하여 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 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지금 튀르키예를 지휘하고 있는 에르도안은 이슬람 정교일치를 원하고 있는 본인 스스로가 술탄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가지게 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튀르키예는 기존의 우방이었던 서방과 미국을 버리고 러시아와 이란과의 친화력을 높여가고 있는 상황으로 이는 현재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지중해 연안과 중동 전체의 정치적 지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적인 흐름을 따라 그런 역학관계가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YES마니아 : 로얄 j****o 2023.06.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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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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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이 나라는 공식적인 국명을 "튀르키예"로 변경했다고 알려온 그 나라 튀르키예의 역사와 관련한 책을 읽었다. "아울러 그동안 터키 공화이라는 국명이 사용되었으나 2022년 6월부터 튀르크에 공화국으로 변경되었기에 국가명을 튀르크예 또는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명기하였음을 미리 밝히고자 한다."(p13) 조금더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나라는 스스로 튀르키예를 자처해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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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이 나라는 공식적인 국명을 "튀르키예"로 변경했다고 알려온 그 나라 튀르키예의 역사와 관련한 책을 읽었다. "아울러 그동안 터키 공화이라는 국명이 사용되었으나 2022년 6월부터 튀르크에 공화국으로 변경되었기에 국가명을 튀르크예 또는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명기하였음을 미리 밝히고자 한다."(p13) 조금더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나라는 스스로 튀르키예를 자처해왔고, 공식적인 영문을 변경한 것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내게는 터키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나라. 그리고 형제의 나라로 오랫동안 이야기해 온 나라. 최근에는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나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아프게 했던 그 나라. 튀르키예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궁금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쓴 조윤수는 "외교관으로서 미국, 러시아, 독일, 싱가포르, 쿠웨이트, 튀르키예에 근무하였으며 주 튀르키예 대사를 마지막으로 35년의 외교관 생활을 마쳤다."(책 앞날개)고 한다. 이 책은 튀르키예에서 근무한 경험이 풍부한 외교관이 쓴 책이라서 튀르키예의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까지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서술한 책이다.

 

책은 크게 2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번째 부분은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이라는 제목으로 오스만 제국의 역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두번째 부분은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으로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의 수립 이후 현재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내 목적이 튀르키예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 해결이었기 때문에 첫번째 부분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부분을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게으름 탓인지 오스만 제국의 역사에 대한 책을 그간 제대로 읽어보질 못했는데 이 책에서 오스만의 술탄들에 대해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있어서 하나하나 메모하면서 읽게 되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봐서 그 이름 정도만 알고 있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의 이야기가 내겐 무척 흥미로웠다.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메흐메트 2세가 형제 살해 관습을 법령화 했다는 것, 술탄 칼리프제를 확립한 것으로 알려진 셀림 1세가 아버지를 독살한 "잔혹한 술탄"이라고 불리워졌다는 것 등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

두 번째 편의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은 이 책을 쓴 이가 외교관으로서 직접 경험한 튀르키예와 주변국의 관계, 그리고 튀르키예 공화국이 지향하고 있는 바 등을 설명하고 있다. 책의 맨 앞쪽 부분에 오스만 제국과 튀르키예 공화국의 지도가 실려있는데 이 부분의 화질이 좀 흐릿한 점이 아쉬웠다. 지도가 좀더 충실했다면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튀르키예에 대해서 공부할 좋은 기회를 준 책.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h****i 2023.06.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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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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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를 언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형제의 나라입니다. 형제의 나라라는 단어는 한국전쟁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신생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2년채 되지 않아 내전이 확장되어 전면전으로 발화되었을 때 정치적인 관계와는 관계없이 25000여명의 지원군을 파병하였고 전사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에서부터 형제의 나라라는 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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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를 언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형제의 나라입니다. 형제의 나라라는 단어는 한국전쟁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신생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2년채 되지 않아 내전이 확장되어 전면전으로 발화되었을 때 정치적인 관계와는 관계없이 25000여명의 지원군을 파병하였고 전사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에서부터 형제의 나라라는 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형제의 나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튀르키예라는 국가에 대해서 몰지각했고 튀르키예의 수도와 대통령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런 상황을 방증이라도 하듯이 튀르키예 국회의장이 방한 하였을 때 형제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한국은 국자로 국을 떠먹고 튀르키예는 티스푼으로 국을 떠먹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튀르키예 공화국을 접한 것은 갈리폴리 전투를 통해서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알려진 바 있는 갈리폴리 전투 영화는 지금도 튀르키예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전투며 무스타파 케말 이타튀르크 장군이 부상하게 된 계기가 된 전투였습니다. 장비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전략적인 우위를 점했으며 케말 장군의 용병술이 빛을 발휘해 영국의 해군을 격퇴했고 이를 계기로 해군성 장관 처칠은 사임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오스만 투르크의 후손을 만들어낸 것은 과거 불락의 성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던 마호메트2세에 있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공방전도 영화로 접했었는데 제20차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콘스탄티누스 11세 황제는 주변 기독교 국가에게 원병을 요구했지만 실제로 원군을 파병한 국가는 제노바 공화국 외에는 없었습니다. 우르반 거포를 앞세웠음에도 열세를 보였던 오스만 제국군은 함대를 육로를 통해 보내는 방법을 택했고 결국은 지금의 이스탄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뛰어난 역사를 자랑하는 튀르키예 공화국이지만 현재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유럽연합에 가입하고자 하였지만 주요국가의 반대로 사실상 가입이 거부되었고 서방국가에라도 편입되고 싶었지만 S-400 방공시스템 도입건으로 러시아의 영역으로 편입되어가고 있습니다. 시리아 내전에서도 튀르키예 공군이 러시아 공군의 영공침범에 대항하여 격추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사과하는 형식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점점 친러시아의 분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러시아에 대한 반감심이 뚜렷한 가운데 미국에게도 70%가 넘는 반감심을 드러내고 있어 앞으로 튀르키예의 진로는 올해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단락될 것 같습니다. 30여년간 외교관을 지냈고 튀르키예의 대사로 근무하면서 그 누구보다 튀르키예에 대해 통했던 조윤수 대사의 옥고여서 그런지 한눈에 튀르키예를 알 수 있다고 자랑할 만큼의 지식을 얻을 수 있던 기회가 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되었습니다.


 

 

**이 글은 솔직하고 깊이있는 리뷰공간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r****2 2023.06.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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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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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우리를 괴롭힌 코로나의 구름이 걷히면서 해외여행 수요가 늘고 있다. 나도 당장은 아이들 때문에 멀리 가지는 못하겠지만 가끔 책이나 인터넷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몇년전을 떠올리곤 한다. 업무때문에도 곧잘 나갔지만, 여행을 꽤 좋아했던지라 많은 곳을 다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지중해 부근의 유럽은 매우 아름다워 언제든 다시 가는 꿈을 꾸곤 한다. 그 중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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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우리를 괴롭힌 코로나의 구름이 걷히면서 해외여행 수요가 늘고 있다. 나도 당장은 아이들 때문에 멀리 가지는 못하겠지만 가끔 책이나 인터넷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몇년전을 떠올리곤 한다.
업무때문에도 곧잘 나갔지만, 여행을 꽤 좋아했던지라 많은 곳을 다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지중해 부근의 유럽은 매우 아름다워 언제든 다시 가는 꿈을 꾸곤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 하면 마지막으로 다녀온 크로아티아도 있지만 아직 못가본 터키에 가보고 싶다. 생각해보면 지중해에 면한 5개국가를 다녀왔는데, 아직 그리스-터키쪽은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양문화엔 관심이 많았지만, 중동이나 이슬람 문화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세계역사를 공부하면서 점차 이슬람 문화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근데 자료를 보다 보면 요즘 미국과 대척점을 지고 있는 사우디나 이란 같은 경우는 수니-시아파의 맹주들이다 보니 은근 자료가 있지만 오히려 터키(튀르키예)에 대한 자료는 여행책 외에 많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접하게 된 '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은 튀르키예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많이 해소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튀르키예는 우리가 역사에서 배웠던 셀주크 투르크-오스만 투르크의 적통후예이다. 베네치아나 중세 그리스 이야기를 보면 항상 서구의 대항마로 굉장히 막강하게 그려졌던 오스만 투르크임에도 사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게 첫번째 의문점이었는데, 책속에도 청나라 건륭제의 일화를 들며 오스만 투르크 또한 당시 최강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역사가 잘 전해져 오지 않는다며 그 이후의 역사에 대해 잘 설명해 준다. 오스만 투르크는 슐레이만 대제까지는 굉장히 융성했으나, 16c 이후 러시아의 부상과 합스부르크 등의 압박 및 내부 예니체리의 부상등으로 급격히 유럽의 병자로 되었다가 결국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편을 들어 패전국이 된다.
2번째는 왜 다른 중동국가들과 결이 다른 것일까?였다. 중동국가들은 대부분 제정일치에 가까운 이슬람 국가들인데 튀르키예는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이다. 이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몽골 및 비잔티움의 영향을 받고 많은 이주민이 살았던 튀르키예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궁금했던 점은 이후 현대 튀르키예의 상황이었다. 요즘은 인플레이션이나 에르도안의 독재로 뉴스에 곧잘 등장하곤 하는데 현실 경제는 어떤지? IS와의 싸움에서 쿠르드족 민병대가 활약했는데 왜 터키에선 그들을 핍박하는지 였는데 이런 부분에서도 후반부에 굉장히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아무래도 저자께서 튀르키예에서 오랜 외교관 생활을 했기 때문에 보다 더 생생하게 잘 전달해 준 것 같다.
가깝고도 먼나라, 형제의 나라이지만 알 수 있는 정보가 별로 없는 튀르키예. 이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서는 반드시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부한다.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기증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역사 #오스만제국의영광과쇠락튀르키예공화국의자화상
 

r****n 2023.06.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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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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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통령 선거의 승리로 러시아의 푸틴과 중국의 시진 핑, 그리고 사우디의 빈 살만과 더불어 철권통치를 하는 또 하나의 지도자로 떠오른 에르도안이 이끄는 튀르키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이 책을 읽었다. 경제정책과 이슬람 문화 등 상식과 거꾸로 가는 정책과 지진에 대한 대응 실패 등 문제점 많은 지도자이지만 선거에서 튀르키예 국민들은 다시 한번 에르도안을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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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통령 선거의 승리로 러시아의 푸틴과 중국의 시진 핑, 그리고 사우디의 빈 살만과 더불어 철권통치를 하는 또 하나의 지도자로 떠오른 에르도안이 이끄는 튀르키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이 책을 읽었다.

경제정책과 이슬람 문화 등 상식과 거꾸로 가는 정책과 지진에 대한 대응 실패 등 문제점 많은 지도자이지만 선거에서 튀르키예 국민들은 다시 한번 에르도안을 선택하여 그 이유를 알고 싶었고,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선거 결과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아 튀르키예를 통해 우리나라도 진단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튀르키예의 국부로 불리는 아타튀르크의 세속화 정책을 지지하지만, 그가 이러한 정책을 강하게 끌고 나가기 위해 민주적인 절차보다는 독재적인 성향이 많은 정치 체계를 운영하여 그 사후로는 군사쿠데타가 반복되어 나라의 발전이 더디었던 것 같다. 에르도안은 이슬람 분화를 강화하는 정책을 쓰고 있는데, 군사 권력을 막고 국민의 공감대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느껴진다. 또한 그의 외교정책도 미국이나 러시아 중 한쪽을 지지하기 보다는 국익을 위해 선택을 한 결과라고 느껴진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에르도안의 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는 긍정적인 느낌도 들었다. 물론 권력을 사유화하고 경제나 지진 등 국민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도 국민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따르는 것이나 시대에 역행하는 이슬람 문화로 역행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매우 아름답고 역사적인 유물도 많은 국가라서 언젠가는 꼭 한 번 방문하고 싶은 나라이기에 정치경제적으로 어서 안정화되길 바라는 마음이고, 튀르키예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길 희망한다

 
j********h 2023.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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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쇠락, 튀르키예 공화국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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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우리에겐 오스만 제국으로 더 알려진 그곳, 사실 잘 모른다. 다양한 문화가 모였던 곳이고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곳이며 우리에겐 터키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고 여자배구 강국으로 김연경이 뛰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이슬람과 쿠르크, 오스만 제국이라는 큰 틀로 이해되는 그곳에 대해 현지 대사 출신 저자의 눈으로 바라 본 현장의 생생한 기록들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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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우리에겐 오스만 제국으로 더 알려진 그곳, 사실 잘 모른다.

다양한 문화가 모였던 곳이고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곳이며 우리에겐

터키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고 여자배구 강국으로 김연경이 뛰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이슬람과 쿠르크, 오스만 제국이라는 큰 틀로 이해되는

그곳에 대해 현지 대사 출신 저자의 눈으로 바라 본 현장의 생생한 기록들이

들어 있는 이 책 흥미롭다.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은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남동유럽 세 대륙에 걸쳐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며 유럽을 위협하던

국가로 1299년 오스만 가지(????? ????, Osm?n G?zi)라는 베이(Bey, 부족장)가

다스리던 작은 나라에서 시작하여 주변 소국에 대한 정복전쟁을 벌여 영토를

확장하였고 1453년 2200년을 이어온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패권국가로 자리한다.

저자는 승승장구하던 오스만 제국의 1683년 빈 정복 실패가 쇠퇴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이를 계기로 유럽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18-19세기의 개혁조치는

세력간의 다툼으로 실패하였고 러시아와의 전쟁에 패배하면서 패권국가의 위신을

잃어 버리게 된다. 결국 1차세계대전에서 독일 편으로 참전하였던 오스만 제국은

1922년 멸망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토지소유권 문제나 유럽국가들에게 무역권을

넘겨주는 문제, 상층부의 부패, 반란등의 이유가 포함된다. 이후 튀르키예 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우리와는 돌궐족이었던 그들이 고구려와

전쟁과 공조를 이어왔고 6.25때 유엔군을 파병하기도 해서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기도

했다.

 

저자의 관점에서 튀르키예의 재 부상과 관련해 정치인 에르도안(레젭 타입 에르도안,

Recep Tayyip Erdogan)에 주목한다. 올해 초 연임에 성공하면서 총리시절을

포함하여 30년간의 장기집권의 틀을 마련한 인물로 아타튀르크가 추진했던

세속주의와 친 이슬람 정책을 통해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그의 정부는 ‘전략적 깊이(Strategic Depth)’ 또는 ‘모든 주변국과의 우호적인

관계(Zero Problems with Neighbors)’라고 불리는 새로운 외교정책 실시를

통해 강대국의 긴장 관계 속에서 전방위적으로 대외 관계를 넓혀 가고 있다.

다만 내외부적으론 권위주의 색채 강화로 쿠르드족과 성소수자 등의 인권

탄압과 충돌이 예상되고 있다. 그의 재집권이 전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불투명하다.

 

전쟁과 테러의 틈바구니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었던 저자는 인류문명의

보고이자 세계사의 한 축이었던 튀르키예에 대한 사실적이고 현실성 있는 글로

상황을 설명한다. 첨부된 사진들은 마치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안타깝게도

잦은 테러와 강진으로 많은 인명 피해를 입은 그들은 지금도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지점인 튀르키예 그들의 미래가

사뭇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a*****y 2023.06.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