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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만 그림이 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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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만 그림이 되는 그림 지연희 외 40인 코드미디어/2022.8.22. sanbaram   16년 전 ‘좋은 시’ 쓰기를 목적으로 시작한 <계간 문파 대표 시선>은 한해 한해를 거듭나며 2022년을 맞게 되었다. 창간 즈음의 나약함에서 이제 ‘오늘보다 내일의 성장’을 행한 약속이 현실이 되어 감사한 일이라고 문파문학을 이끄는 지연희님은 발간사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각기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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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만 그림이 되는 그림

지연희 외 40

코드미디어/2022.8.22.

sanbaram

 

16년 전 좋은 시쓰기를 목적으로 시작한 계간 문파 대표 시선은 한해 한해를 거듭나며 2022년을 맞게 되었다. 창간 즈음의 나약함에서 이제 오늘보다 내일의 성장을 행한 약속이 현실이 되어 감사한 일이라고 문파문학을 이끄는 지연희님은 발간사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각기 다른 음성으로 각기 다른 그림으로 그려낸 시문학의 세상이 감미로운 울림으로 펼쳐지리라 생각합니다. 함께라서 아름답고 함께여서 행복한 그래서 무한한 설렘으로 내일이 기다려집니다.(p.5)”라고 윤복선회장은 말한다. 계간지 내 안아서만 그림이 되는 그림에는 지연희님을 비롯해 41명 시인의 시가 실려 있다.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등단한 시인들의 시를 개인별로 4-6편씩 엄선하여 엮어내고 있다.

 

내 안아서만 그림이 되는 그림의 발간사에서 문파문학회장이 말하듯 시는 마음에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늘 언어와 씨름을 한다. ‘문파문학 시인 선집속에 실려 있는 모든 시는 시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그려낸 마음속의 그림들이다. 그들 모두 시의 세계로 빠져든 시간이 다르듯, 살아온 경험이 다르기에 시의 세계 또한 다양하다. 그래서 시인들은 모두 각자가 보는 눈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렇기에 시선집은 더욱 재밌다. 속이 투명한 시부터,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 그 속내를 짐작하기조차 힘든 유현한 시까지 다양하다. 그렇게 시인의 수만큼 다양한 색깔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문파문학계간지다. 새내기의 용감함과 노시인의 연륜이 묻어나는 시등등. 오늘도 시인들은 마음의 한 자락을 붙잡기 위해 고뇌한다. 앞으로도 그들은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꼭 필요한 것만 으로 그리는 동양화 화폭처럼 여백을 만드는 일을 계속 할 터이다. 이 제 몇 편의 시를 감상해봅시다.

 

 

    눈물 값을 청구 해야겠다

김태실

 

오늘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곳

나의 지금은 미국 플로리다 열네 시간 전

한 달에 두세 번 울리는 전화선을 통해

여인의 눈물을 본다

한국 전쟁이 한창일 때 열 살 아이

전쟁의 참혹함을 작은 몸으로 맞부딪쳐야 했던 공포

그 참상이 되살아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불쌍하다며 우는 언니

태평양 건너 미국 생활 40

그녀의 가슴 아픈 눈물

여든이 넘은 과거가 현재로 달려와 파열음을 내는,

 

게임처럼 밀당하며

유럽의 빵 바구니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게 눈물 값을 청구 해야겠다

21세기 전범의 딱지를 붙이고

실록에 올라 천년을 갈 그에게

남은 생을 계산하는 방법을 알려 줘야겠다. p.76

 

시인의 언니는 6.25 때 열 살 이었지만 아직도 전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태평양 건너 이역 땅에서 40년을 살아내고도 그날의 악몽을 잊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불쌍해 눈물을 흘린다. 국민의 지배자들은 마치 게임을 하듯 전쟁을 말하지만, 온 몸으로 받아내는 국민들의 상처는 무엇으로도 메꾸기 힘든 상처다. 푸틴에게 눈물 값을 청구하겠다는 글 속에 시인과 언니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선씀바귀 꽃

전옥수

조율되지 않은 선 하나 튕겨 나가 음 이탈이다

 

번듯한 앞자리 마다하고

뒷문 보도블록 갈라진 틈으로

힘겹게 피워 낸 노란 선씀바귀꽃

쓴맛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그래야 똑바로 설 수 있거든요

제 몸에 아직 봉오리가 여럿 여물고 있어요

조금만 더 인내하기로 해요

환한 꽃향기가 증명할 거예요

 

종이짝처럼 구겨진 하루가 줄지어 방글거린다 p.86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걷게 되는 보도블록 틈으로, 그것도 앞자리가 아닌 남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뒷문 보도블록 갈라진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리고 노란 꽃을 피워낸 선씀바귀. 살아남기 위해 온 몸에 쓴 물을 품고 꼿꼿하게 서서 여리디 여린 꽃봉오리를 품고 의연하게 서 있는 선씀바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향기를 내 뿜으며 시인과 눈맞춤하고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하는 꽃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무서운 빈자리

엄영란

호텔 조식

삶은 계란 하나 집어 좌탁면을 부리 삼아 쫀다

실금 사이 드러내는 속살

성급한 손가락 굽혀 막을 벗기고 베어 문다

순간 짓이겨진 입술, 기어나오는 목 막힘

마주 앉은 남자 순식간에 여기 주스”, 잔이 날아온다

저 깊은 목마름 소리 일찍 듣는 남자

 

어쩌다 모를 빈자리

미리 가져와

……

아무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p.120

 

여행길 아침, 호텔 조식시간에 삶은 계란을 까다가 문득 먼저 하늘나라로 간 당신을 생각한다. 살아 있을 때는 시인에게 잠시도 눈을 떼지 않으며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 써주던 사람의 빈자리를 느끼는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시다. 누구나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제는 그 평범한 일상조차 혼자여야 한다. 즐거운 여행 에서도 당신의 빈자리가 슬픈 마음으로 와 닿는다.

 

 

    아침

박진호

옹달샘

물 쪼는 참새의

날갯짓 위 내려앉는

햇살의 영롱함

아침은 행복을

그렇게 그려내지요 p.144

 

햇살이 영롱하게 비치는 아침의 행복을 짧은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주변의 일상적인 상황에서 또는 작은 움직임이나 현상 속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만이 진정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여러분도 늘 있는 일상 속에서 감사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작은 것들을 찾아본다면 필히 오늘 하루도 행복해 질 것이다.

 

 

    외로울 때 를 쓴다

이주현

흐르는 달빛 깨물고 씹어 가며

외로움 통째로 머리 속에 집어넣고

청솔나무 말을 받아 를 쓴다

 

서러워하는 옹이 사연도 쓰고

뼛속에 흐르는 하얀 눈물

내 눈물로 씻어 주며 를 쓴다

 

독자들 손에 들려준 시집

둘도 없는 친구가 될 때까지

그 향기에 취하여 꿈속으로 갈 때까지

 

손가락에 쥐가 나도

물집이 생겨도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p.177

 

시인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시를 쓰는지 잘 나타낸 시다. 자연에서 느끼는 감흥과 마음속에 느끼는 갈등까지 시로 표현하기 위해 시인은 손가락에 쥐가 나고 물집이 생겨도 쓰기를 멈추지 못한다. 그러기에 아직도 멀기만 한 길이지만, 시인이 가야 할 길 이라서 행복한 나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k******4 2022.10.31. 신고 공감 9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