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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의 깊이와 진정한 가치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신앙 생활을 해 오면서 바울 서신 중에서 가장 가치있는 서신이 로마서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로마서를 통해 참으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해서라기보다는 그렇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였습니다. 루터나 웨슬리의 일화나, 로이드존스 목사님이나 옥한흠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에 대한 세간의 평과 같은 것들이 로마서의 위상을 높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관한 주석이나 설교집을 상당히 많이 읽어 보았습니다만, 그들이 말하고 있는 정도의 감동을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로마서보다 갈라디아서가 복음에 대해, 그리고 이신칭의에 대해 더 잘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저자의 탁월한 설명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저로서는 이 책을 통해 갈라디아서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복음이 왜 그렇게 잘못된 것이며, 우리가 어떻게 다른 복음에 물들어 있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갈라디아서를 설교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에스라 성경 대학원 대학교에서 공부한 어떤 분으로부터 거기에서 공부하면 새롭게 발견한 성경의 진리에 대한 감격 때문에 설교하고 싶어 미칠 정도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충동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이 깊은 진리를 우리 성도들에게도 빨리 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물론 복음에 대해, 그리고 이신칭의의 진리에 대해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거나 설교하지 않았다 거나 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나름대로 개혁주의 교단 소속의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고, 교리서도 여러 권 읽었고, 또 개혁주의 신학에 바탕을 둔 설교를 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교리에 대한 내용을 통해 이만한 '감동'을 받아본 적은 없었습니다. 교리에 대한 설명을 보거나 들으면서 진리가 진리가 되어 가슴에 부딪치는 경험이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그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웨슬리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누군가가 읽는 것을 듣는 가운데 복음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는데, 저로서는 이 책을 통해 그런 경험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바울이 복음에 관한 두 가지 진리를 확고하게 붙잡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첫 번째 진리는 "우리는 지독한 죄인이어서 우리의 구원에 어떤 보탬도 할 수 없다."라는 것이고, 두 번째 진리는 "우리는 예수의 공로, 즉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써만 구원받는다.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의 거짓 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더하여 복잡한 규례들(주로 문화에 대한 규정이라 볼 수 있는)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들의 주장이 크게 잘못된 주장이라는 사실을 여러 가지 논증으로 드러내 주었습니다. 우선 바울 사도는 자신이 붙들고 있는 진리가 바로 모든 사도들이 붙잡고 있는 진리라는 사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도들보다 결코 부족함이 없으며,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리와 다른 사도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예루살렘 방문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자신이 베드로 사도의 외식을 책망했던 사건도 소개하면서 인종우월주의적인 태도가 복음의 정신을 얼마나 훼손하는 일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는 것이 바로 복음 진리의 핵심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신칭의야말로 기독교 신앙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율법준수가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구주가 필요함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구주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율법을 통해 구원얻으려는 시도에 대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게 됩니다. 스스로 자신을 구원해 보려는 것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해 보려는 시도를 내려 놓을 때라야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오직 복음으로 구원받을 뿐 아니라 복음으로 성장합니다. 복음은 하나님께 구원받았다는 것이며, 하나님께 용납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강력한 순종으로 이끌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해 우리의 죄와 저주가 그분에게 전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의와 복과 성령은 우리에게 전가 되었습니다. 그분과 우리 사이에는 이중전가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죄인이 되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의롭게 됩니다. 그분이 하나님에 의해 죄인으로 간주되셨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의해 의롭고 흠없는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우상숭배나 율법주의는 모두 자기 스스로 구원자이자 주님이 되려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실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율법이 무가치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즐겁게 해 드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에 의존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율법이 아닙니다. 율법은 그저 지켜야 할 것일 뿐입니다. 구원얻은 자로서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리해야 합니다. 전적으로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율법을 준수할 의무를 더 무겁게 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이유를 에전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자의 설명은 이신칭의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 주고 있으며, 율법주의가 우상숭배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사실 또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율법을 지켜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설명 하나 하나가 갈라디아서의 본문을 잘 녹여내고 있어 머리에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잘 흘러내려가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새관점'이 제기한 신학적 문제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그 요지는 '새관점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옛관점에서 말해 오고 있는 내용에 포함되는 내용일 뿐이기에 굳이 옛관점을 폐기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록으로 함께 딸려온 '갈라디아서 깊이 읽기'는 옥한흠 목사님이 만드셨던 다락방 성경공부 교재와 같은 성격(설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의 성경공부 교재입니다. 전반부는 학생용 교재, 후반부는 리더용 교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직까지 공부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 내용이 정말 좋다고 한다면 별도의 교재로 만들어 판매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는 비매품 선물로 함께 제공되고 있는데, 이것으로 성도들을 교육하고자 하는 분들은 복사를 하거나 타이핑을 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호응이 좋다고 한다면 단행본 교재로 만들어 판매해 보는 것도 기대해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책이 '새롭게 열리는 말씀' 시리즈의 첫 책이고 계속해서 다른 책들이 발간됨에 따라 교재 역시 계속해서 발간될 것이라고 한다면, 성경 전 권을 공부할 수 있는 교재 시리즈가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또한 기대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베가북스에서 나온 티머시 켈러의 책을 다 읽어보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번역이나 편집, 그리고 디자인이 점점 더 나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첫 번째 책은 번역이 아쉬웠고, 두 번째 책은 디자인이 아쉬웠는데, 세 번째 책부터 괜찮다 싶더니 네 번째 책은 정말 잘 만들었다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번역이며 편집이며 디자인이며, 모두 다 만족스러웠습니다. 다음 책 역시 기대가 됩니다. 베가북스에서 출간될 티머시 켈러의 책들을 앞으로도 계속 만나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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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는 다이너마이트다"(16).
'Timothy Keller'를 '티머시 켈러'라고 번역하는 출판사가 있고, '팀 켈러'라고 번역하는 출판사가 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저서가 한국에 처음 소개될 때도 비슷한 혼란이 있었는데, 티모시 켈러 목사님의 이름도 한 번 정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분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한 두권 번역으로 끝날 저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핫'하게 번역되는 미국의 신앙서적을 보면, 티모시 켈러 목사님의 저서를 인용하는 문구를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얘기겠지요. 마가복음 강해서인 <왕의 십자가>를 읽고 켈러 목사님의 책을 꼭 챙겨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이 책을 만나 얼마나 반갑고 기쁜지 모릅니다.
<갈라디아서; 복음을 만나다>는 복음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켈러 목사님은 갈라디아서를 한마디로 "다이너마이트"에 비유합니다. 갈라디아서라는 다이너마이트가 우리 안에서 터질 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불러 누리게 하신 복된 삶, 즉 깊은 존재감과 안전과 만족의 전제 조건이 되는 기쁨과 자유가 폭발"한다고 선언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우리를 "복음"과 직면시키기 때문입니다(16).
신앙생활을 오래한 성도들은 복음을 불신자나 새가족에게 필요한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복음이 우리가 들어야 할 가장 기초 단계이고, 교회생활을 하며 더 '고급한' 교리나 '수준 높은' 성경지식을 배워야 한다는 도식이 성도들의 머릿속에 들어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복음'이고, 그 '복음'이면 충분하다고 역설합니다. 어쩌면 이 복음이라는 다이너마이트가 우리 안에서 제대로 폭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한국교회가 이와 같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심각한 수준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수준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 때문에 구원받는다"(34).
<갈라디아서; 복음을 만나다>는 복음을 위협하는 가장 큰 대적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복음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죄'가 아니라, '율법'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자기 의'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빠지기 쉬운 오류는 바로 '자기 의'(유럽)라는 강력한 유혹입니다. '자기 의'는 복음(예수 그리스도) 외에 무엇을 덧붙이려는 시도입니다. 다시 말해, 복음(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여기에 어떤 것, 우리의 노력(행위)이 필요하다는 노력입니다. 바울의 선교 당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할례'가 필요하다고 하는 주장처럼, 복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선하게 살아야 한다, 복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떠어떠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들이 모두 이런 논리에 속합니다. 바울의 '할례 없는 복음"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혁명적인 선포였는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절감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바로 이 "다른 복음", 복음을 오염시키는 "자기 의"와 격렬하게 다툰 사도 바울의 신학의 진수이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 복음을 만나다>는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 영혼에게 참된 자유를 선포하는 복음을 깨닫게 하며, "복음을 잃거나 잊어버릴 때, 혹은 이 복음대로 살지 못할 때 그리스도인의 삶에 닥치는 문제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모든 열심과 희생이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바울이 복음의 진수를 이처럼 깊이 깨달을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구보다도 그가 "율법에 열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94). 지금 교회 안에서도 그리스도가 주시는 참된 자유를 알지 못한 채, "자기 의"에 매달려 신음하고 있는 영혼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복음을 잃는 것은 그리스도를 잃는 것이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가 주시는 구원과 축복, 자유를 잃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를 읽고 배운다는 것은 모든 신앙의 뿌리를 점검하는 것이며, 내 안에 있는 영생을 확인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스빈다. 그런 점에서 모든 교회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갈라디아서'의 진리에 푹 잠겨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켈러 목사님의 <갈라디이서; 복음을 만나다>가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확신합니다.
"복음으로 살라"(267)
켈러 목사님은 복음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복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침이기 전에 역사적인 사건들에 관한 선언이다. 우리에게 내려진 지시이기에 앞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이 행해졌다는 선포다("104). 복음의 본질은 조언이나 지시가 아니라, 뉴스(기쁜 소식)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대로 깨달아도 아마 우리 영혼은 엄청난 자유를 느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일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일이라는 것이라는 설명에서 나의 예배가, 예배에 임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갈라디아서; 복음을 만나다>는 매 장마다 갈라디아서의 진리를 깨닫고 묵상할 수 있는 질문을 세 가지 정도 던져줍니다. 성경말씀을 배운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의 상태를 점검하며 말씀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진지하게 읽고 답한다면 신앙성장에 큰 유익이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이 진리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한평생이 필요할 것이고, 즐거워하는 데 영원이 소요될 것이다"(150).
켈러 목사님의 이 한마디가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진리를 깨다는데는 한 평생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이후로 교회를 떠난 적이 없고 늘 말씀을 배우고 가까이 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매일 새로운 깨달음들이 우리 영혼을 다시 깨어나게 하니까요. 뿐만 아니라, 그 진리를 즐거워하는 데는 영원히 소요될 것이라는 선언이 큰 영적인 기쁨을 선물해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구원(은혜)가 얼마나 위대하며 완전하며 충만한 것인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베가북스의 <갈라디아서; 복음을 만나다>는 구성이 독특합니다. 본 서와 함께 갈라디이서를 더 깊이 읽을 수 있도록 '스터리 가이드'(study guide)가 별도로 제공됩니다. 리더를 위한 지침서도 포함되어 있는 소그릅 모임 교재로 안성맞춤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말씀은 그 은혜를 서로 나눌 때, 배가 되는 것을 느낍니다. 모임에서 갈라디아서를 읽으며 복음의 진수를 알아가는 기쁨을 함께 누리기 원합니다. 이 책을 통해 갈라디아서 읽기 열풍이 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켈러 목사님의 말씀처럼,) 모든 죽어가는 영혼들 안에 갈라디아서라는 이 복음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 책은 "팀 켈러의 새롭게 열리는 말씀" 시리즈 첫 권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연이어 발간될 다른 시리즈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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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폄훼하면서 갈라디아서는 복음 자유를 선언한다고 극찬해 마지 않는다 팀 켈러 역시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복음만이 하나님의 기막힌 은혜이며 복음은 참 자유를 성도에게 선사함을 말하고 있다 팀 켈러 목사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마치 다이너마이트처럼 그 능력이 한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녔다고 표현한다 율법에 매여 자력으로 구원을 도모하는 인생에게, 물론 절대 이룰 수 없는 소망을 두고 행하는 것으로 이와 같은 인생에게 오직 복음만이 참된 구원을 선사하며 참 자유로 인생을 살게 한다고 전한다 복음의 참 자유와 능력으로 변화받은 인생은 구원받기 위해 즉 자력 구원을 위한 소망으로 율법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으로 감사함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행한다고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전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구원받은 인생은 복음의 자유를 누리며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