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속 달의 모습이 일반적인 달의 모습이 아닌 달의 일부만 가려지는 부분월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기록을 찾아보았더니 이 그림 속 달이 잘못 그린 것이 아니라 당시 부분월식이 일어났고 그 달의 모양을 그린 것이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아이가 예전에 천문대 수업을 들었을 때 저도 덩달아 알게 된 사실인데, 이 그림을 알고는 있었지만 달 모양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런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나니 해당 그림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더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옛날 사람들이 남긴 자료들을 과학을 바탕으로 새롭게 검증하는 일은 흥미롭습니다. 고전 속 신비로운 전설이나 옛 문헌에 남겨진 알쏭달쏭 한 이야기를 과학을 통해 해석해 보는 곽재식 작가의 《곽재식의 고전유람》또한 그래서 더 궁금했습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고전 속 괴이한 생명체에 대해, 2부는 기묘한 현상, 3부는 이상한 믿음, 4부는 우주론과 관련해 다루고 있는데요. 저는 그중 서거정의 『사가 집』에 있는 '세심음'이라는 시의 내용을 당시의 풍속과 연관 지어 보면서 그 안의 과학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세심음'은 洗心吟 마음을 씻어내는 시라는 의미로 술로 답답하고 애타는 마음을 씻어내고자 하는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그중 "하늘에는 주성이 있어 직성이 되었으며 / 땅에는 취한 고을이 있으니 술 깰 때가 없구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주성은 술주(酒)와 별성(星)으로 술에 관한 일을 맡고 있다는 별을 말하는데, 직성은 곧을 직( 直)에 별성(星)으로 글자 그대로 뜻풀이를 해보면 곧은 별이 됩니다. 시의 내용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 "주성이 있어 직성이 되었"다고 하니 술을 상징하는 별이 곧은 별이 되었다로 해석이 됩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직성'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는데요. 직성. 어디서 들어본 적 있지 않아요? "나는 이렇게 해야 직성이 풀려" "너는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니?" 등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말이었어요. 저는 직성을 어떤 성질이나 성미로 이해했는데, 원래 이 말은 하늘의 별과 관련한 말이었다고 합니다.
현대 사람들은 별이 우주 공간에 있는 물질 덩어리라고 생각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별이 지닌 신비함 힘을 상상하고 이들이 개인의 운명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북두칠성을 보며 칠성신으로 섬긴 것처럼 밤하늘의 별을 주술적 대상으로 본 것입니다.
세심음에 나온 '직성'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태양계 행성들이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여 한 해 운수를 정해주는 행성을 직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성별과 나이에 따라 직성이 정해져 있었고 아홉 개의 별이 있습니다.
즉 옛날 사람들에게 직성은 자신의 운명을 나타내는 행성을 일컫는 것이었고 '나는 이렇게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표현은 별이 가져온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직성은 태양계의 태양, 수성, 금성, 달, 화성, 목성, 토성과 월식, 일식과 관련한 계후직성과 나후직성 아홉 개였습니다. 아홉 개의 직성 중 조선 시대 사람들이 가장 불길하게 여긴 직성은 일식과 관련된 나후직성이었습니다.
나후직성을 만나게 되면 남자들은 액운을 막기 위해 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든 후 그 안에 자신의 나이만큼 동전을 넣은 다음 그것을 길에 버려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것을 집어가면 나쁜 운을 남에게 떠넘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또 여자들은 종이에 자기 얼굴을 그리고 거기에 돈을 싸서 길이나 개울가에 버렸다고 합니다. (245)
작가는 이 부분을 운수를 따질 만큼 넉넉한 사람들이 운수 따위 생각할 여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던져주는 풍속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기록에 따르면 '타추희'라는 세시 풍속이 있었는데요. 액풀이를 위해 나후 직성을 상징하는 짚 인형을 만들어 머리에 돈을 넣어 길에 버리면 아이들이 머리를 부수고 동전을 꺼낸 후 몸통은 땅바닥에 두드리며 놀았다고 해요. 누군가의 액운을 쫓아내기 위한 일이 누군가에는 놀이이자 돈을 얻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세심음의 "하늘에는 주성이 있어 직성이 되었으며 / 땅에는 취한 고을이 있으니 술 깰 때가 없구나" 시구절을 떠올려봅니다. 주성이 직성이 되었다는 것은 술을 관장하는 별의 기운이 나의 운명이 되었으니 계속 술에 취해있을 수밖에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이런 직성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서거정의 마음까지 헤아려보고 싶어 합니다. 45년 동안 조정에 머무르며 여섯 왕을 섬기며 지식인으로서 영화로운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은 서거정이 왜 이런 시를 썼을지 상상해 봅니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그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밖에도 거대한 뼈에 대한 기록과 기후 변화로 본 백제의 멸망의 징조, 중금속 중독으로 신선이 되고자 했던 사람의 이야기 등 해괴하면서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고전 속 접혀 있던 페이지를 열어보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시작이 고등학생들을 위한 잡지에 기고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추가로 몇 편의 글을 더해 나온 것이라 학생을 비롯한 고전과 과학에 관심 있는 성인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지금까지 고전과 과학의 기묘한 만남을 이야기하는 북트리거에서 펴낸 곽재식 작가가 쓴 《곽재식의 고전유람》이었습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