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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간직한 삶을 아름답다. 누구나 비밀이 존재한다. 그러니 누구나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다만 그 비밀의 무게에 짓눌리면 헤어 나올 수 없다. 아름다운 비밀은 산뜻하고 가볍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운 마음』 속 ‘뤼시’의 삶은 그 자체가 비밀이다. 뤼시의 비밀은 신비롭고 아름답지만 어른의 시선에서는 그저 속임수나 거짓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뤼시에게는 뤼시만의 삶이 있고 그 삶을 사는 건 뤼시뿐이니까.
산문으로 이미 그 아름다움을 증명한 크리스티앙 보뱅은 소설에서 한층 더 빛을 발하는 문장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부모와 함께 서커스 단에서 태어나 이곳저곳을 떠돌며 자란 소녀 뤼시의 첫사랑은 늑대다. “내 첫사랑은 누런 이빨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문장의 주인공이 늑대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나는 감히 짐작하지 못했다. 서커스 단원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늑대는 위험한 존재였지만 소녀에게는 가장 안전하고 포근한 존재였다. 어느 누구도 늑대와 소녀만의 거리, 그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과 비밀을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늑대가 죽고 여덟 살 소녀는 가출을 감행했다. 서커스 단의 트레일러에서 벗어나 돌봐야 할 쌍둥이 동생에게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간다. 길을 잃은 척, 부모를 잃어버린 척, 소녀는 뤼시가 아닌 다른 아이가 된다. 그런 연기는 너무 쉽다. 어른에게 아이들은 순수한 존재,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니까. 가출 때마다 스스로 이름을 부여한 소녀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경찰을 통해 부모에게 돌아오면 새로운 이름을 찾아 집을 나선다. 내가 아닌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것은 비밀이자 자유였다.
부모님이 서커스 단에서 나와 무덤을 파는 묘지 일을 하고 중학생이 된 소녀는 기숙사 생활을 한다. 자유를 갈망하는 소녀는 기숙사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거리가 멀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주말에 소녀는 하숙을 하면서 그 과정에서 ‘로망’을 만나 결혼을 한다. 뤼시에게 결혼은 안전보다는 비밀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안겨주고 그녀가 괴물이라 부르는 ‘알망’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서로 달랐다. 서로에게 비밀스럽고 은밀한 대상이 아니었다.
진정한 삶은 비밀스럽고, 은밀하고, 훔치는 거야. 이슬비를 맞으며 걷고, 포장도로 위에 울리는 구두 굽 소리에 기뻐하고, 책에서 문장 하나를 뽑아내 잠시 마음에 담고, 창밖을 바라보며 과일을 먹는 것, 그것 역시 속이는 거야. (133쪽)
어쩌면 괴물과 헤어지는 게 뤼시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속한 관계가 아니라 그녀는 자신에게만 속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 후 우연한 계기로 배우가 되었고 성공을 했지만 뤼시에게 배우란 직업은 거짓과 비밀을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뤼시가 발견한 가장 아름다운 비밀과 자유를 느끼는 일은 글쓰기였다.
그러니까 『가벼운 마음』 은 호텔에 머물며 뤼시가 쓴 글이라 할 수 있다. 늑대를 사랑했던 소녀가 자라온 이야기, 어떤 이름으로 불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비밀과 관계들. 그녀가 붙인 이름으로 불렸을 때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는 사물들과 사람들이 된다. 맨 처음 관계를 맺은 늑대가 그러하듯이.
내게는 더 이상 아버지든 어머니든 남편이든 필요하지 않다. 그런 건 너무나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건 단지 목덜미로, 피부와 블라우스 사이로 스미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것이며, 내 눈을 전나무의 짙디짙은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것뿐이다. (141쪽)
소설 속 뤼시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누구도 될 수 없는 존재다. 가벼이 날아서 사뿐 내려앉아 다시 날아갈 준비를 하는 나비 같은 삶. 잡을 수 없고 잡히지 않는 삶. 그래서 더 매혹적이고 흠뻑 빠져든다. 그저 잔망스러운 소녀가 부르는 이름의 존재, 그 안에 담긴 사랑을 흠모할 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장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품은 사랑, 우리를 충분히 안다고 믿는 사랑에서 벗어나야만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하지 않을 것들을 할 때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설사 그들에게 말한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고, 붙잡을 수 없고, 그들이 던져준 사랑의 망토로 덮을 수 없으며, 우리 속에 머물러 우리의 일부를 이루기 때문이다. (177쪽)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성장하는 삶을 택했다. 누군가 그것을 자유, 방탕, 방랑, 미성숙, 무책임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삶의 이름은 정해진 게 없다. 오직 그녀만이 자신의 삶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나는 아름답고 내밀한 가벼움이라 부르고 싶다.
어떤 형식으로든 그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게 어려운 소설이다. 그러니까 직접 읽어야만 알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뤼시가 간직했던 비밀들, 그 아름다운 비밀의 알갱이를 직접 줍는 게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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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보뱅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다. 아니, 행운 그 이상이다. 왜 이제야 만났을까 싶을 정도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소설과 에세이, 모두 좋다. 나만 알고 싶을 정도로 빠져든다. 나는 이런 문장을 쓰는 그가 너무 부럽다. 부럽고도 부럽다. 얼마나 긴 연습, 혹은 얼마나 많은 사유의 시간을 지나야 가능할까. 그는 내가 모르는 어떤 살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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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장. 크리스티앙 보뱅 만의 아름다운 문장이 있다. 수필과 소설과 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표현, 감성적이지만 동시에 설득력 있는 문체, 간결하지만 디테일한 묘사 등. ‘가벼운 마음’ 속 지면들은 크리스티앙 보뱅 만의 아름다운 문장들,매력적인 문장들로 가득하다.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읽히는 책이다. 책 전반을 아우르는 문장 분위기가 무겁지 않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마냥 가볍지 않다. 묵직하게 남기는 여운이 있다. 지면 속 각각의 문장들은 가볍게 머릿속에 마음속에 내려앉지만, 한 번 내려앉은 그 문장들은 무겁게 가라앉는 인상이다.
아름다운 문장과 묵직하게 내려앉는 여운까지. 다채로운 매력으로 가득한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 ‘가벼운 마음’을 리뷰 작성 기회를 통해 소개 및 추천 드려본다. |
| 아름답고 유려하다. 걸리는 데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문장들이 모여 총체적으로 완전히 아름다운 글을 완성했다.. 보뱅의 글은 처음인데 다른 글을 더 읽고 싶어질 정도로 좋았다. 자유의지를 소설화하면 이 소설일 것이라고 한 리뷰가 좋아서 사 보았는데 그 말에 동의한다. 이 책은 자유에 관한 일대기이고, 논설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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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난 후 여운이 가시지 않는 소설이었어요 평범한 스토리같은데 이걸 풀어내는 방식이 신선했어요 시처럼 은유적인 표현들은 감탄의 연속이었고 삶, 인간의 내면을 주인공을 통해 깊이있고 섬세하게 전달해주는 것도 저에게 스며든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사는 방식이 교과서적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뤼시의 행보들은 죄다 통통 튀어버리는 것도 같고 너무 자유로운 영혼은 아닐까하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가벼움’이란 단어를 뤼시에 이입을 해보면 심각해질 필요가 없어지는 것처럼 느껴져요. 뤼시효과일까요? 가끔 복잡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곤경에 빠진 듯한 상황이 찾아오기도 할텐데 이럴때 이런 가벼운 마음을 끌어오면 좋겠단 생각을 내내 했어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끌어안고 고민하다가도 그때가서 생각하자. 마음만으로도 가뿐해지는 기분이에요. 보뱅괴 뤼시를 만나 홀가분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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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 의 아름다운 크림색과 노란색을 섞은 표지를 넘기면,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내 첫사랑은 누런 이빨을 가지고 있다." 소녀의 첫 사랑은 늑대이다. 진짜 늑대.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정말이다. 그러다 늑대가 죽었다. 소녀는 틈이나면 가출을 한다. 서커스 단을 벗어난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뤼시는 로망, 알방도 만나 사랑도 한다. 우연히 요양원의 할머니를 만나 함께 새로운 경험을 꾸려나가기도 한다. 뤼시의 삶은 그 자체가 소설이다.
사랑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일까. 뤼시는 서커스단안에서 늑대를 사랑한다. 그렇게 첫사랑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그녀는 삶을 살아가는데, 그 과정에서 사랑을 만난다. 조금 특이한 사랑은 여전히 특이하게 사랑을 하고 있다. 가벼운 마음은 어디에나 있는데, 그것이 드문 이유는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해서 라고 한다. (p.69) 어려운 삶이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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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티앙 보뱅의 전작들을 하나같이 정말로 좋아하지만 결코 쉬이 읽힌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금번 작품은 소설이라 전작보다 부담이 덜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에 내포된 의미나 지향하는 바는 여전히 훌륭했습니다. 세상, 가족, 사랑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잔상에 많이 남네요. 무엇보다도 술술 읽히는 스토리가 재미있고요. 개인적으로 정말로 강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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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뤼시가 멋있어 보였던 건 나와는 다른 삶에 대한 동경. 딱 그 정도였다. 내 눈에 뤼시는 자유와 즐거움을 갈망하지만 반대로 책임과 유지는 쉽게 포기하는 듯 보였고, 그건 나이에 <<걸맞지 않는>> 모습 같았다. 그리고 너무 민폐캐에 금쪽이 아니심?ㅠ 그런데 155p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겨울이지만 여름 원피스를 골라 입었다. (…) 늘 <<때에 맞게>> 옷을 차려입는 것보다 슬픈 일은 없다. <<걸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은 결코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다. (…) 세상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모든 면에서 잘 적응하며 사는 것, 미친 사람들 혹은 예의 바르며 관례를 잘 따르는 사람들, 이 중에 무엇이 최악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바로 뤼시가 말하는 결코 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았다. 때에 맞는다고 필히 내게 맞는 것을 의미함은 아니며, 걸맞지 않을 용기가 없어서 세상에 맞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글이 진행되는 내내 이어지던 나의 작은 사고와 삶에 금을 내준 부분이라 참 좋았다. 사랑을 바라기보단, 사랑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사랑은 늘 내 곁에 있으니까. 창 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하다는데 우리 삶에 없을 리 없자너?!! 무엇보다 사랑은 받을 수록 더 받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뱅의 ‘일단 행동하고 생각하라.’는 말에 나는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아낌없이 사랑할 테다. 내가 주는 사랑이 제일 작은 그런 커다람 속에 살았으면 좋겠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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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중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같은 수레에 묶여 서로 자기 쪽으로 미친 듯이 끌어당기는 두 마리 말과 같은, 기쁨과 고통, 웃음과 그늘이라는 두 줄기 피가 우리 마음에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러니 적절한 보폭을 찾고 올바로 판단하려 애쓰는 눈밭의 기수들처럼 앞으로 나아가자. 그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이 때론 얼굴을 때리는 낮은 나뭇가지처럼 우리를 쓰리게 하고, 목덜미로 달려드는 황홀한 늑대처럼 우리를 물어뜯는다 해도.”
책의 시작에 앞서 실린 문장에서 이미 어떤 기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적당히 넘어가지는 않겠어, 삶은 그렇게 부드러운 것이 아니야, 만만치 않은 곡절이 펼쳐질 것이니 각오해, 한 번 시작되면 돌이킬 수 없으니 물러설 생각은 하지마, 위로나 연민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을 거야, 뒤돌아서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거야, 그것이 무엇이든 똑바로 바라보고, 각인된 그대로 인정해야 해,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질...
“...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어. 우울증이 뭔지 아니? 월식 본 적 있어? 우울증은 월식 같은 거야. 달이 마음 앞에 슬며시 끼어드는 거야. 그러면 마음은 자신의 빛을 더는 내지 못해. 낮이 밤이 되는 거란다. 우울증은 부드러우면서 캄캄해...” (p.20)
처음에는 아껴서 조금씩 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그만 침대 옆 탁자에서 다른 책에 자리를 내주고, 쌓여가는 책 산의 아래로 밀려 들어갔다가, 한 번씩 붉어진 눈으로 다시 꺼내 읽고는 했다. 요즘의 나의 마음은 꽤 거대한 짓눌림으로 납작한데, 《가벼운 마음》의 여인은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은 순간부터 날것 그대로여서 놀랍고, 그 기질 그대로 살아가서 더욱 놀랍다.
“... 사랑은 바람에 부푼 붉은 천 아래 빛나고, 맨발에 부드럽게 밟히는 톱밥이 깔린 둥근 서커스 천막 같은 동그라미를 그린다. 원은 단순하다. 당신이 사랑받을수록 사람들은 당신을 더 사랑한다. 사랑받기 위한 비법은 관계가 시작될 때에 있다. 무엇보다 사랑받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도, 갈구하지도, 원하지도 말아야 한다. 미친다는 건, 미치는 걸로, 울면서 웃는 걸로, 웃으면서 우는 걸로 자족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결국 광기의 빈터로 이끌리고, 환심을 사는 데 관심조차 없는 사람에게 매료된다. 그 후, 당신은 사랑의 원 안에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남편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당신의 팔을 붙잡고 조용히 사방으로 눈을 굴린다.” (p.27)
나는 이즈음 더욱 자주 웃는데 그 웃음은 가볍지 못한 것을 안다. 나는 웃는데, 웃는 동안 자꾸 삶의 아니 죽음의 진액 같은 것이 들러 붙는다. 웃어서 크게 부풀어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웃는 동안 저기 저 아래로 끌려 내려가는 것만 같다. 웃다가 결국 고개를 외로 꺾는데, 이것은 마치 울다가 고개를 돌리는 제스처를 닮았다. 나는 웃고 웃고 또 웃으며 서서히 함몰되어 간다.
“나는 글을 쓸 때 잉크로 쓰지 않는다. 가벼움으로 쓴다. 설명을 잘했는지 모르겠다. 잉크는 구매할 수 있으나 가벼움을 파는 상점은 없다. 가벼움이 오거나 안 오는 건 때에 따라 다르다. 설령 오지 않을 때라도, 가벼움은 그곳에 있다. 이해가 가는가?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여름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맡에 팽개쳐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일할 때 들려오는 수도원 종소리에, 활기찬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음에, 풀잎을 씹듯 수천 번 중얼거린 이름에, 쥐라산맥의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모퉁이를 돌아가는 빛의 요정 안에, 슈베르트의 소나타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가난 속에, 저녁마다 덧창을 느릿느릿 닫는 의식에, 청색, 연청색, 청자색을 입히는 섬세한 붓질에, 갓난아기의 눈꺼풀 위에, 기다리던 편지를 읽기 전에 잠시 뜸을 들이다 열어 보는 몽글몽글한 마음에, 땅바닥에서 ‘팡’하고 터지는 밤껍질 소리에, 꽁꽁 언 호수에서 미끄러지는 개의 서투른 걸음에. 이 정도로 해두겠다. 당신도 볼 수 있듯,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움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pp.68~69)
나는 멍한 응시로 시간을 보내며 휴식한다. 나는 무언가를 보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내 눈에 비친 것은 삶의 이전이나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발견될 것이다. 나는 바깥이 아니라 안을 향하여 자꾸 소리친다. 나는 읽지 못하는 것이 두렵고 쓰지 않아 생기는 무력감에 속수무책이다. 나는 내가 속한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중이다. 나는 지금 너무...
“... 감정의 깊이는 사랑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때가 많고, 모두 이기심과 연관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우리가 우는 것은 자기 자신 때문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이 생각 자체는 그리 어리석지 않지만, 그런 생각 뒤에 슬픔이 따라온다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진실이라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슬픔에 관해서는 알고 있다. 슬픔은 다른 무엇도 아닌 허구라는 걸...” (p.116)
슬픔으로부터 거리를 두려한 적이 없는데, 슬픔으로부터 훌쩍 멀어져 버렸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거듭되면 슬픔이라는 감정이 원래 갖고 있는 많은 요소들이 점차 빠져나가게 된다. 그러고 났더니 슬픔이라고 명명되기는 하지만 슬픔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무언가가 외롭게 남겨졌다. 나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바로 그 민망한 무언가와 동행한 채로, 회복 불가능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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