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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학 선언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읽기 전에 한번 승용차에 타보는 것은 어떨까 차 운전석에 앉아, 차 안에 설치된 거울을 살펴보도록 하자 거울이 모두 몇 개인가
우선 운전석 앞 상단에 설치된 백미러가 있고, 또 밖에는 사이드 미러가 있다. 왜 거울이 여러 개가 필요할까
저자는 왜 이런 말로 다중거울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일까 저자는 ‘다중거울’이란 용어를 사용해서 역사를 보는 관점을 이야기한다.
이런 저자의 충언, 감사한 일이다.
저자는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저자의 시대구분
이를 정리한 도표, 한눈으로 파악할 수 있어 옮겨놓는다.
19세기 후반 : 아편전쟁에서 청일전쟁 직전까지,
아편전쟁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인식 차이
그럼 조선은 어땠을까
당시 상황에 대한 조선의 인식
20세기 전반 : 청일전쟁에서 아시아·태평양전쟁 종결까지,
서양의 제국주의와 일본의 제국주의가 다른 점은 (229, 280쪽)
서양의 제국주의는 유럽의 기독교 문명권 국가들이 다른 비기독교 문명권 국가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면서 진행되었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동일한 문명적 기반을 갖는 국가들에 이른바 ‘근린 제국주의’, 즉 가까운 이웃 제국주의를 펼쳐나갔다. 그래서 이런 행태를 보였다. 현실적으로 식민지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식민지와 제국 일본의 차이를 강조하는 문명과 야만의 논리를 적용했으며, 식민지로부터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할 때에는 ‘동양 평화론’, ‘동문동종론’을 비롯하여 아시아 지역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등 제국 일본의 내지와 외지의 ‘일체성’을 강조하였다.
20세기 후반 : 일본의 패전에서 냉전의 종언까지,
냉전이 종식되었으나 동아시아에는 국가간 분쟁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사항도 그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는 왜 집단안보기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373쪽)
전후 유럽에서는 NATO를 중심으로 한 서방의 다자간 안보체제가 형성되었는데, 동아시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 태국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과 각각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 중심의 양자 동맹체제가 형성되어 있을뿐, 다자안보체제는 형성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해서 동아시아 각국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새로이 국가의 비전을 설정하는 것과 관련하여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문제가 되면 갈등의 소재로 남아있게 된다.
21세기 초반 : 탈냉전에서 현재까지.
911 사태로 시작한 21세기는 어디로 가게 되며, 동아시아는 어떤 현실과 직면하게 될까
※ 이 책에서 아주 유용한 부분 소개한다. 바로 <NOTE> 라는 항목이다.
저자가 본문에 기술한 내용 외에, 중요하고 또한 흥미있는 주제들에 대하여 상세하게 적어둔 것들인데, 본문을 이해하는 데는 물론 우리나라와 중국과 일본에 관한 귀한 자료라 생각되는 부분이니, 책을 읽고 별도로 다시 한번 정리하며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시, 이 책은
동아시아를 무대로 하여 벌어지는 역사를 통시성과 공시성을 겸하여 함께 살펴보는, 고급 역사서라 할 수 있다. 또한 동아시아도 단순히 그 지역만 살피는 게 아니라, 전 세계를 전제로 하고 동아시아를 살펴보고 있기에 동아시아가 세계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조감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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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동아시아 역사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나, 그 노력을 해야 할 이유는 <동아시아 역사학 선언>의 의미
한반도는 역사적인 전환기의 상황마다 그 한복판에서 경험을 해왔다. <동아시아 역사학>이라는 분야는 아직은 생소한데 어떤 사건, 사태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혹은 무시하고 싶은 세계일 수도 있다. 이런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때도 필요하다. 이 책의 의미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풍부한 상상력, 실험과 도전정신은 전환시대의 너머 미래를 열어가는 해법이 될 수 있다. 마치 가재 같은 갑각류의 탈피처럼 일신우일신, 기존의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유연하고도 담대한 도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문, 사회과학에는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근대 동아시아 나타난 역사적 전환들을 우리는 어떻게 보고, 이해해야 하나?, 이 역시 이 책이 던지는 화두다.
이 책의 지은이는 일본에서 국제관계론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 연구하고 있다. 주로 19세기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변환과 제국 일본, 그리고 이 변환과 다중거울, 조선정치발전사, 근현대 한일관계와 국제사회 등, 연구주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19세기 서양문물과의 접촉, 근대국가로의 전환 과정에서 일본과 한국, 고정관념 속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접근 등을 시도, 이 책의 제목처럼 동아시아 역사학의 선언을 하는 것인데, 우선은 우리 사회의 담론 속에 자리한 일본에 관한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 제기, 도대체 기준이란 게 무엇인지, 좌·우라는 개념이 현재도 유효한 것인지…. 생각해 볼거리를 많이 던져주고 있다. 아마도 이런 의미에서 역사학의 선언이라 이해해보련다.
책 구성은 6장 체제이며, 1장에서는 동아시아 역사학을 위한 예비작업으로 동아시아의 국면 전환과 한반도의 국제정치적 민감성을 비롯해, ‘다중거울’과 해석의 힘, 인문사회과학의 핵심가치는 무엇인가를, 그리고 동아시아 역사학에 초대를 실었다. 2장에서는 동아시아 ‘지금, 여기’에서 다시 묻는다는 제목 아래 배타적인 애국주의와 망각의 유령을, 이 책에서 주목하는 동아시아 근대 시기의 주요한 국면 전환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3장에서는 19세기 후반 서세동점, 동아시아 문명 기준의 역전을…. 4장 20세기 전반, 양차 세계대전과 제국 일본 동아시아 50년 전쟁을, 이어서 5장에서는 이후 20세기 후반의 전 지구적인 냉전과 동아시아의 전후체제를 살핀다. 마지막 6장에서는 21세기 초, 근대 문명의 복합 위기와 지금, 여기 동아시아의 선택을….
19세기에서 21세기에 걸친 200년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변화의 흐름과 각 시기의 패러다임과 그 변환을 살펴본다. 그 중심에 한반도, 일본 그리고 중국, 삼국 사이의 관계들을 ‘다중거울’과 ‘추(追)체험’ 곧 다중거울을 통해 상하좌우를 입체적으로 살피는 한편, 시공을 넘나드는 상상력과 함께 다른 사람의 체험을 자기 체험으로 느끼는 추체험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있다. 꽤 재밌는 발상이다.
이 책 특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NOTE다. 62개가 실려있는데, 하나하나 꽤 재미있는 주제들이다. 이 노트만 봐도 19세기에서 21세기에 걸친 한·중·일 삼각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NOTE는 본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대의 배경과 사건을 적어두었다. 예를 들어 NOTE 29 “주권국가와 국제질서, 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의 관련성”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 하나는 Q&A라 할까?, 각 장을 앞에 이 장을 읽을 때, 질문할 만한 내용을 앞에 적어두고 장 말미에 그 질문에 대한 지은이의 답을 적어두고 있다. 독특한 독법이라 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관점: 역사를 보는 눈과 ‘다중거울’
다중거울은 역사의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최적의 거울을 타이밍에 맞춰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 혹은 개념이다. 이 책을 읽어가는 데 중요한 개념이다. 또 보자, 세상일이나 역사의 흐름의 경우에는 그 깊이와 무게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심오하여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양한 인간관계를 파악하기 어렵고 모호한 경우가 많아, 전체로서가 아니라 각각의 경험이나 가치관에 의존하여 몇 개 되지 않는 거울 통해 단순하게 이해하고 마는 오류가 발생하기에 다중거울이 필요하다.
역사의 흐름이나 전개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진보 사관(발전 사관), 순환 사관, 섭리 사관, 운명 사관 등이 특히 중요하다. 우리는 보통 진보 사관이 가장 사실에 맞으며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발전이라는 하나의 법칙으로 인류문명 역사와 시대의 흐름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나, 이런 시각은 때로는 결정론적이며 도식적으로 미래를 볼 위험성이 있고, 인간 위주의 오만한 세계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동양인에게 익숙한 순환 사관, 흥망성쇠, 연속과 반복으로 느껴진다. 순환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역사의 질적 변화를 입체적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지은이는 ‘계기’라는 측면을 주목해서 본다.….
한, 중, 일 삼국을 교차하면서 풀어내는 역사적 전환
청일전쟁의 진짜 원인은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일본의 도발이다. 사대관계를 맺어온 제후국 조선에 대한 청국의 지배권 강화와 조선을 자국의 세력권을 끌어들이려는 일본 간의 먹이 쟁탈전이다. 전쟁 구실은 일본군이 왕궁 옆을 지나다가 조선군의 공격을 받았기에 일어났다고…. 그래서 이를 청일전쟁이 아닌 한일 전쟁으로 불러야 한다는 지은이, 아무튼 좋다. 역사란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기 마련인데, 이를 헝클어뜨리는 것이 전쟁이다. 본래 대로 실타래를 풀려면 여간 수고스럽지 않기에, 그냥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듯…. 이것이 동학농민군의 진압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잘 아는 상식 수준의 한국 근대사를 한국 중심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일본 쪽의 의도와 본심, 청국의 대응은 물론 영국과 러시아의 속셈을 그야말로 다중거울에 비춰, 하나의 사건을 입체적으로 펼쳐 보여, 익히 아는 사실이라고 여겼던 것들과 조금, 때에 따라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우선 NOTE를 먼저 읽어보고 난 후, 장 머리에 있는 질문내용과 말미의 답을 먼저 읽어보는 게 좋겠다. 그래야만 본문을 읽을 때, 전후좌우의 맥락 이해가 쉽다.
<동아시아의 역사학>, 대저 동아시아는 어디서부터 어디를 말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도 좋을 듯하나, 아시아의 동쪽, 좁게는 주로 한, 중, 일의 트라이앵글 안에서 이뤄지는 역사를 말한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오리엔탈리즘, 이는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의 변용이다. 즉, 서세동점 속에서 일본 안에 자리한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이다. 이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살아 움직인다. 대북시각이 그러하고, 장애인의 차별이 그러하다. 일본 화폐 1만엔 권에 사진이 실려있는 19세기의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중국이나 조선을 ‘완고하고 고루하며 편협하고, 의심이 많고,구태의연하고, 겁많고 게으리며, 잔혹하고 염치가 없으며 거만하고 비굴하다고 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 아닌가. 바로 이것이 강자가 약자를 규정하는 방식이다.
한반도는 여전히 트라이앵글 안에 있다. 시진핑이 한국에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참가해달라고 손을 내밀고, 미국은 가지 마! 안 되라며 참가 보이콧을 요구한다. 100여 년 전의 열강 비위 맞추기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한미일 삼각 안보, 북핵, 6자 회담, 3기 집권에 들어간 시진핑 그는 근현대 중국의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마오쩌둥, 덩샤오핑의 뒤를 잇는 시진핑,
현대의 청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이 책을 톺아봐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시간이 흘렀을 뿐, 역사는 표면의 모습만 달리할 뿐, 수면 아래 큰 빙하는 여전히 단단히 자리 잡고 있기에 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동아사아역사학선언#강상규#근대역사학#한중일삼국의근대역사#오리엔탈리즘#다중거울#추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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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역사를 가졌지만 100년전 세상이 바뀌는 것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우리는 식민지의 굴욕을 겪었다. 일차적으로는 외세의 침략에 대응할 왕조의 능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크게 봐서는 당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위 나라들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을 능력이 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일제는 침략이었지만 일본은 어떤 의미로 우리를 대했는지 또 중국은 당시 상황이 어떠해서 일본과 충돌하게 되었는지 당시에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광복 이후에도 우리 역사만 파고 들었지 주변을 살피지 못했다. 이제 우리도 역사에 대한 자신감도 가지고 일제에 패망할 그 때의 국력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를 포함한 주위 나라들의 상황도 살피면서 전체적인 맥락에서 역사를 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수평적으로 여러 나라의 상황을 알려주면서 그 속에서 우리 역사를 살펴보는 책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연장선 속에서 아예 동아시아 역사학을 선언하면서 동아시아 전체의 모습에서 근대 동아시아에 나타난 역사적 전환들을 살펴보고 있다.
기본적으로 동아시아라는 지역은 한국과 중국 일본을 일컫는다. 때로 대만과 오키나와까지 넣기도 하지만 대만은 역사상 중국에 속했고 오키나와는 현재 일본에 속한다. 그래서 한중일을 가리키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한중일은 옛부터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중화 사상과 문물이 한국을 거쳐서 일본으로 전해지고 그것이 공통적인 가치와 문화적 기반으로 작용해왔다. 그러던 것이 일본의 서구화를 통해서 새로운 기준이 생겼고 그 기준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우선 근대 조선의 상황을 보면 이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서 왕조의 기력은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그 후 전란이 없는 시대에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하다가 영정조를 지나서 세도 정치기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1800년대는 서양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큰 발전이 일어날 시기였다. 그리고 팽창은 필연적으로 외부에 대한 침략이 동반되었는데 그 여파가 중국과 일본에 영향을 끼친 반면에 조선은 스쳐지나가면서 시대가 바뀌게 될 기회가 늦어지게 되었다. 쇠락하는 왕조에 엄청난 힘으로 침략해올 새로운 세력. 어찌보면 풍전등화의 상황이었지만 세계 정세를 읽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은 전국 시대를 통합한 막부 시대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지만 서양과의 끈이 꾸준히 이어져 왔는데 유명무실하던 왕실(천황가)이 복구되면서 메이지 유신을 통한 부국강병이 우여곡절끝에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곧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고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안은 이웃 조선을 침략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서구 열강으로부터 아시아를 보호한다는 뜻이었지만 그것을 침략 그 이상 그 이하로 아니었다. 여러가지 음모와 계략끝에 조선을 집어삼키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만주로 진출하게 된다. 이때 명목상 작동하던 일본 민주주의는 몰락하게 되고 군부가 정부를 장악, 전쟁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중국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만큼 아무리 서양 세력이 커졌다고 해도 그들의 침략을 단호히 격퇴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지배가 청왕조의 힘도 떨어지고 있는 시대였고 무엇보다 기존의 중국 중심의 조공 질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서양의 존재도 알았고 그들의 실력이 급성장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서 결국 아편전쟁 이후로 서구 열강의 침략을 당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조선에 대해서는 종주권을 행사하려다가 일본과의 청일 전쟁에서 패하면서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고 끝내 민국이 들어선 이후 중일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책은 이렇게 각 나라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 속에서 결국 세 나라가 2차 세계 대전의 대격변속에서 다시 운명이 바뀌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우리는 일본 대신에 남북이 분단되고 일본은 패망하게 된다. 중국은 일본을 몰아냈지만 국공내전이 격화되어 결국 공산국가가 된다. 전후 일본은 그야말로 죽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거기에서 엄청난 수혜를 입고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식민지가 된 나라는 분단이 되고 남북 전쟁이 일어나서 피폐해졌는데 가해자인 일본은 세계 경제 강국으로 올라서게 된다는 것이 참 어이가 없는 일이긴 하다.
책은 광복 이후 냉전 시대와 그 냉전이 끝났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갈등 양상을 띄고 있는 동아시아의 현재의 모습까지 근데 동아시아의 전체적인 흐름을 각 개별 국가에서 설명하면서 다른 나라의 상황과 엮어서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해 준다. 내용은 어렵지 않게 잘 쓰여졌다. 술술 잘 넘어가게 동아시아 각국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여러가지 자료나 표가 있어서 책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하게 하고 여러 개의 노트를 통해서 좀 더 깊이 있는 설명을 볼 수 있었다.
동아시아는 유럽처럼 바로 옆에 붙어있는 나라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서로 주고받은 것이 많이 있는 밀접한 국가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불안한 상황은 큰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가는 것을 잘 알려주는 책이다. 책 끝의 참고 도서 소개가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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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에 어떤 하나의 시각만이 옳다고 말하는 건 지극히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 보수의 눈으로 바라보는 역사에도 의미가 있고 진보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역사에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이자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장으로 활동하는 강상규 교수의 <동아시아 역사학 선언>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길잡이 같은 책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다중거울과 추체험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설명한 후 동아시아 근대사를 19세기 후반(서양의 팽창과 동아시아 문명기준의 역전), 20세기 전반(양차 세계대전과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50년 전쟁), 20세기 후반(전 지구적 냉전과 동아시아 전후체제), 21세기 초반(근대 문명의 복합위기와 지금, 여기 동아시아의 선택)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여러 책들을 읽곤 하는데 이 책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부터 남다르게 접근해서 그런지 훨씬 쉽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저자가 처음부터 설명한 다중거울(운전할 때 주변을 전체적으로 살피기 위해 다양한 위치의 거울을 사용하는 것)의 개념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사로잡고 있어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침입과 일본의 부상, 일본의 패전과 한국 전쟁 등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낸 사건들은 지금도 이어진다. 역사를 돌아보는 건 결국 저자의 마지막 설명처럼 ‘지금, 여기’를 살피기 위해서이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그 길은 과연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주는 방향인가? 모두가 깊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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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동아시아에 나타난 역사적 전환들
에피스테메에서 출판한 강상규 교수님의 <동아시아 역사학 선언>은 19세기 후반(아편전쟁에서 청일전쟁 직전까지), 20세기 전반(청일전쟁에서 아시아·태평양전쟁 종결까지), 20세기 후반(일본의 패전에서 냉전의 종언까지), 21세기 초반(탈냉전에서 현재까지)의 네 개 시기로 나누고, ‘다중거울’과 ‘추체험’을 통해 동아시아의 역사를 해석한다.
지리 시간에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이고,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접점을 이루는 곳으로 배웠다. 역사적으로 두 세력의 주도권이 충돌할 때 한반도는 전쟁에 휘말렸다. 일본의 전국시대 이후 임진왜란과 정묘재란이 있었고, 중국의 대륙 세력이 명에서 청으로 교체하던 시기에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있었다.
근대에 들어 19세기 후반 서세동점의 시기, 구미 열강과 일본, 중국의 대립으로 한반도에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일어났고, 세계대전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를 고스란히 보았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이라는 민주주의 공산주의 세력의 대립은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인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대만과 더불어 한반도의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저자인 강상규 교수님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이자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장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총합문화연구과에서 국제관계론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일본의 정치외교, 동아시아 정치사상사이다. 한국과 일본의 건강하고 의미 있는 소통과 상생의 길, 동아시아 역사의 새로운 해석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 동아시아 역사학 선언 책날개 중 ]
약력에서 알 수 있듯이 <동아시아 역사학 선언>은 일본의 관점을 가장 밀도 있게 서술하고 있다. 일본을 전공하는 한국인 학자의 서술이다 보니, 한국과 일본의 비교하는 바가 탁월하다.
조선 시대 문벌 양반이 득세하는 사회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문학 고전은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과 같은 절개, 효성, 우애 등과 같은 윤리적 주제를 바탕으로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줄거리를 다룬다. 오늘은 일본인의 정서가 잘 드러나 있는 "47인의 사무라이"이다. 도쿄 여행 때 센카쿠지에 대한 소개를 들었고, 사무라이가 행진을 한 곳이라 해서 자세한 배경 이야기를 알지 못했지만, 이번 책을 읽고 일본인이 사무라이 정신에 강한 애착을 두고 있다는 점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47인의 사무라이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전 중 하나다.
일본의 “주신구라”는 주군을 위한 집단적 복수와 충성심, 의리, 할복과 같은 매우 극단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주신구라”는 1701년 발생했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실제 사건은 현재의 효고현에 해당하는 아코번의 번주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자, 그를 모시던 47인의 사무라이들이 절치부심하면서 주도면밀하게 기회를 노리다 결국 주군의 복수를 감행하여 주군의 원수를 갚았다는 것이다.
전국시대가 마무리되고 100년이 지났지만, 떠돌이 사무라이가 되어 주군과의 의리를 생각해 복수를 감행하고 모두 할복자살로 명예롭게 죽는다는 점이 너무 극적이었다.
이번 책을 읽는 동안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태평양전쟁 말기 연합군에 대한 일본의 항복 지연이었다.
한국과 일본 및 동아시아의 운명을 가르는 순간은 태평양전쟁이 끝나가는 1945년에 일어났다. 이 해에는 예기치 못한 사태가 연이어 벌어졌다. 히틀러가 베를린에서 마지막 저항을 하던 1945년 4월 12일 루스벨트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반공 성향이 강한 부통령 트루먼이 미국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극비리에 추진하던 핵무기 개발 계획이 성공을 거두었다.
소련의 참전을 종용하던 미국의 입장이 사실상 완전히 달라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선언을 통해 연합국이 일본에 최종적으로 항복을 요구했다.
일본이 포츠담 선언의 무조건 항복 제안을 완전히 거부하고 ‘묵살’한 뒤 8월 6일 히로시마에 미국의 원폭이 떨어지고 난 후, 8월 8일 소련은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고, 8월 9일 동이 트기 전 대일전 참전을 대규모로 개시했다. 같은 날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이 떨어지고 소련이 대일 참전국의 자격으로 포츠담 선언에 동참하게 됨에 따라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수용하게 되었고, 8월 15일 천황의 종전선언문이 라디오를 통해 방송된다.
일본이 10일 전에 항복을 받아들여 지연이 없었다면 소련의 참전도 없었고 러일전쟁으로 러시아가 빼앗긴 영토를 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 국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 러시아가 참전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의 분할을 일어나지 않았고, 한국전쟁으로 약 300만 명이 목숨을 잃고 국토가 황폐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만주를 차지한 소련이 일본이 남기고 간 각종 무기 자원을 공산당에 지원해 국민당에 밀리고 있던 공산당이 기사회생하게 되었다.
7월 26일에서 8월 15일 일본 정부와 군부의 결정은 현재까지 주변국에 커다란 고통을 주고 있다. 그 이전 1930년 만주 침략을 반대한 수상을 암살하고 일본 군부가 일으킨 만주 침략부터 잘못된 결정이었을 거다.
우리는 운전할 때 여러 개의 거울을 보고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운전한다. 지금 21세기 동아시아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다중거울을 염두에 두고 여러모로 현상을 파악해야 한다. <동아시아 역사학 선언>은 한국, 일본, 중국의 근대에 벌어진 현상을 여러 각도로 분석한다.
잘 알려진 사카모토 료마, 요시다 쇼인, 후쿠자와 유키치…등 62가지의 주목할 만한 사례를 분석하고, 20가지 질문과 대답을 통해 동아시아 역사를 재조명한다.
한가지 질문을 살펴보면, 제국주의 전쟁에서 수많은 일본인이 전사했다. 일본인은 전쟁의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태평양전쟁 때 사망한 일본 군인과 민간인은 310만 명으로 추산된다. 1945년 4월의 오키나와 전투에서 사망한 15만 명의 오키나와 민간인은 ‘집단자결’인지 ‘강제 학살’인지 지금도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보통의 일본인들은 전쟁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피해자라고 한 것은 일본인이 미군에 의해 피해를 본 피해자라기보다 일본 내부의 억압과 천황제 이데올로기, 국제 이데올로기의 구체적인 피해당사자라는 것이다.
한편 가해자라고 하는 것은 그토록 착한 사람들이 무서운 ‘광기’를 발하며, 악마적인 정치에 적극적으로 동의했거나 혹은 적어도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무책임한 국가의 행태를 견제하지 못해 사실상 인류에 대한 범죄에 동참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아시아 역사학 선언>은 균형 잡힌 안목을 가지고 동아시아를 ‘실체’가 아닌 ‘방법’으로 사고하고 글로벌 보편주의에 입각한 연대를 강조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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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학 선언』
강상규 (지음) | 에피스테메(펴냄)
'동아시아 역사'라 내겐 정말 의미 있는 소재다. 과거 서양사 중심의 사관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역사. 책의 저자도 말하듯이 과연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보편성'을 말하는데 그 보편성은 누가 정하는가에 대한 문제. 잘못된 믿음은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먼저 책에서 다루는 동아시아의 범위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사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문명권이므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어온 제국인 중국, 비기독교권 국가 중 유일하게 대제국을 건설한 국가인 중국, 도 해양세력인 일본이 있다. 이 책은 주로 중국, 일본, 한국, 대만을 중심으로 다룬다.
유구한 동아시아의 역사는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의 침략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서양 중심의 오리엔탈리즘은 근대 서양에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아편전쟁 이후 아시아에서도 이런 인식이 퍼져나갔다. 일본은 자기들 중심의 오리엔탈리즘을 구축했다. 아마도 일본은 우월하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는 미개하다는 의식? 최근 일본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극우세력, 군국주의는 아직도 남은 일본 중심주의의 잔재 아닐까? 가끔 그들의 욱일기만 보면 뭔가 피가 거꾸로 솟는 감정이 있다.
책은 중국사라는 큰 덩어리와 일본 침략사라는 맥락 사이로 조선을 조금씩 비춘다. 대원군이 추진한 정치 개혁의 핵심은 '왕권 강화'였으니 이 시기 조선은 주체적 자강 정책을 펼치지 못한 점. 외세를 배척한 점, 천주교를 박해한 점 등은 역사를 한 발 뒤로 퇴행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개인적으로 정조대왕 사후 김 씨들의 세도 정치시대가 시작되면서 조선은 끝났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늘 했었다. 혹시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었을까 싶었으나 대원군 시대에 와서 마저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으니.... 역사에 대한 평가는 충분히 객관적이고 냉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동아시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양차 세계대전, 미소 중심의 냉전, 공산주의 국가가 된 중국, 한반도의 전쟁이 끝난 후 전후 처리 문제 등 이후 고도성장의 시기를 거치는 일본. 그들의 문화산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소설, 영화, 만화에서 고통받는 착한 일본인의 모습만 그려진 점은 매우 유감이다.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할 사람들이 진정한 반성이 없다. 책 후반부에 일본 사상가 고야스 노부쿠니와의 대담을 다루고 있다. 2014년 서면 대담이라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책을 19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추반까지를 순서대로 보는 것도 좋겠지만 거시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9세기 후반, 서양 팽창과 동아시아 문명지군의 역전을 중심으로 비교해 보거나, 동아시아에 영향을 미친 세계사적 차원의 사건 중심으로 펼쳐봐도 무방하다. 인문 과학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 개의 정답이 존재할 수 있으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역사는 과거지만 과거를 다루는 우리는 늘 미래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출판사 지원도서를 읽고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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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학 선언 (강상규 著, 에피스테메)”을 읽었습니다.
저자인 강상구 교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분으로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인 분이라고 합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기준과 패러다임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과 패러다임은 불변의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을 두고 바뀌곤 합니다. 실제로 역사를 바라보는 기준과 패러다임은 여러 차례 바뀌었고, 저자는 이렇게 역사를 바라보는 기준과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를 전환기 혹은 변동기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중 동아시아 근대사에 나타나는 전환기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서구의 폭력적 제국주의는 문제가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중심의 낡은 세계 질서가 지배하고 있었던 몽매한 상태에 놓인 동아시아는 이러한 서구의 충격 때문에 깨어날 수 있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동아시아는 근대로 진입하는 문명화 과정을 겪게 되었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19세기 동아시아는 이렇듯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문명화 단계로 역사적 진보를 이룬 시기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볼 때 서구적인 시각, 즉 서구의 기준과 패러다임으로 해석하고 규명하려고 애써왔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즉, 기존의 동아시아 전통을 비문명, 전근대, 낡은 것, 정체(停滯), 개혁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규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서양 중심에서 비롯한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에서 비롯한 것이긴 하지만 아편 전쟁 이후 서세동점의 상황을 겪으면서 점차 동아시아 내부에도 스며들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뿐 아니라 내면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승열패 (優勝劣敗)의 세계관과 자기 전통에 대한 부정과 멸시로 나타나게 되었다고도 저자는 진단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황영조와 우사인 볼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둘 다 올림픽을 제패한 훌륭한 선수이지만 분야가 서로 다릅니다. 아마도 단거리를 달리는 경기를 한다면 우사인 볼트에게 황영조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단거리’라는 기준에서 보면 황영조는 우사인 볼트와 비교하여 매우 열등한 선수가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라톤이라는 기준을 가져도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반대의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역사를 바라볼 때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역사 속에서 인류가 봉착한 대부분의 문제는 ‘기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맹목적으로 이 기준을 신봉할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하다고도 합니다. 아편전쟁은 과학 혁명 이후 동서양의 격차를 보여줬던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동아시아는 서양에 비해 열등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도 했고 동도서기와 같은 개념도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역사 인식에 대한 사싱적 흐름은 동아시아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형성에도 필연적인 영향을 줬을 것이라 쉽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세계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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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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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동아시아의 역사는, 특히 현재를 만들어낸 근대의 동아시아는 어떻게 형성되어 왔을까? 우리는 중국과, 일본과 접해 있으면서 애증이 교차한다. 일본과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지만 중국의 경제성장은 중국에 대한 인식, 그리고 자주 접하는 중국인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수반한다. 차라리 먼 유럽인들에 대한 반감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중국인들에 대한 우리네 혐오는 이제 일본을 넘어서고 있다. 일본은 싫어하지만 일본인들에대한 혐오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중국도 싫고 중국인도 싫어하는 국민적 감정은 더욱 커져만 간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 특히 외국인과의 교류는 거의 중국과 일본이 대부분이다. 우리의 삶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는데 이책은 매우 유의미하다. 글은 쉽게 서술되어 있지만 내용까지 그렇진 않다. 그럼에도 강상규교수는 쉽게 읽히도록 최대한 배려한 흔적이 뚜렷하다. 어떻게 봐야할 것 인지부터, 어떻게 흘어왔는지까지 잘 그려져 있다. 꼭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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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극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걸어 나아가려 하는 길' 그리고 그 배경 속에서 피어난 갈등과 그 갈등의 중심에 선 역사에 대한 인식과 정의에 대하여... 어쩌면 사람들은 그 역사 자체를 미래의 전진에 방해가 되는 일종의 족쇄로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예를 들어 각 국가의 사회 속에 만연한 '비판'과 '혐오' 사이에서 그들은 저마다의 현상 속에서 (나름의) 정의를 품고 있다. 어째서 일본은 과거의 전쟁범죄에 반성하지 않는가? 어째서 중국은 새로운 질서를 꿈꾸며 '패권주의'에 매달리는가? 또 이를 이유로 지적하고 수정하려는 한국(국내)에서의 움직임은 과연 어떠한 인식과 정의를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 이처럼 (적어도) 대한민국의 수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또 불안해하는 어느 현상에 대하여, 적어도 이 책은 역사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보다 폭 넓은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감상을 준다.
그야말로 저마다 걸어 온 역사의 패러다임 속에서, 분명 각각의 국가들 또한 (저마가) 추구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 속에서 적어도 한반도의 민족은 힘에 유린되었고, 또 정복되기도 한 과정을 거쳤다. 이때 이를 극복하는 와중에 형성된 '정의'가 현재 대한민국의 역사관의 중심에 서 있다면? 결국 힘에 기댄 정의는 적어도 대한민국의 정의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가치로 다가올 것이다. 허나 현대 국제적인 현상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그 경계의 과정은 갈등을 이끌어내었다. 특히 역사의 과거를 옳고 그름으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들어낸 폐해는 그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특히 더 두려운 것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이르기까지 앞서 언급한 흑백논리가 통용되면서 더욱 더 커다란 갈등을 만들어내는데 있을 것이다. 때문에 과거 역사의 인식을 대신할 새로운 인식을 주문하면서, 저자는 과연 어떠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결국 저자가 제안하는 바는 이해라는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어느 사건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과 정의가 충돌할때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류와 안목으로 다져진 '지성'에 기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어쩌면 이 책이 드러내려는 가장 큰 주제가 아닐까? 물론 오늘날의 수 많은 사람들 또한 저마다 정의와 지성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이 만들어낸 인식을 통하여, 국가가 이익을 탐하고, 공동체를 선동하며, 끝끝내 과거의 상처를 가리려는 비봉책으로 소모하려 한다면... 결국 역사라는 학문이 가지는 가치 뿐만이 아니라, 그 학문이 나아가려는 목표에 이르기까지 그 수 많은 방향 또한 일그러게 된다는 것을 한번 경계해 보는 것도 의미가 크다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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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에서 단일한 해석을 찾을 필요는 없다. 왜냐면 역사적 사건은 입체적인 그림과 같아서 얼마든지 다중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치 왼쪽에 시선이 가면 오리로 보이고, 오른쪽으로 시선이 가면 토끼로 보이는 그림이나, 멀리서 보면 마릴린 몬로인데 가까이서 보면 아인슈타인인 사진이나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역사적인 사례를 볼 때 입체적인 렌즈가 필요한 법이다. 일본 정치외교와 동아시아 정치사상사를 전공한 강상규는 이런 열린 역사해석의 시각을 '다중거울'에 비유한다. 역사해석의 기본 자세로 다중거울과 추체험을 강조하는데, 추체험이 역사해석에 어찌 활용되는지를 그리 자세히 설명하고 있진 않다.
아무튼, 저자는 역사 해석에는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서, 한중일 동아시아 근대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맥락적 요소를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이를테면, 저자는 19세기 메이지 일본과 20세기 제국 일본의 행보가 과연 연속이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불연속 내지 단절이라고 봐야 할지 질문한다.
"이 문제는 바꾸어 말하면 '193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 체제가 메이지 이후 일본이 걸어온 행보로부터의 일탈이냐, 아니면 메이지 입헌체제의 필연적인 귀결이냐?'를 묻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근대사를 관통하는 가장 논쟁적이며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269쪽)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은 다음과 같다. 메이지 유신 정권이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민족국가의 면모와 '대동아 경영'의 꿈으로 미화한 근린 제국주의의 면모다.
"메이지 일본은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가 중앙집권국가를 수립하면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는 국내개혁의 측면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에 입각하여 이후 주변국을 침략하고 제국주의로 치달리는 대외적 측면이다. 거대한 전환기 상황에서 탄생한 메이지 정부는 변화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명실상부한 행위주체인 독립국가가 되는 것을 확고한 국가목표로 인식한다. 하지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라는 두 차례의 전쟁을 겪고 승승장구하면서 일본은 전쟁의 매력에 심취하고 있었다."(199쪽)
저자는 일단 동아시아 근대 시기를 제1기 19세기 후반(아편전쟁에서 청일전쟁 직전까지), 제2기 20세기 전반(청일전쟁에서 아시아·태평양전쟁 종결까지), 제3기 20세기 후반(일본의 패전에서 냉전의 종언까지), 제4기 21세기 초반(탈냉전에서 현재까지)으로 구분한다. 또한 각 시기별로 '동아시아에 영향을 미친 세계사적 차원의 사건'과 '동아시아 내부 관점'을 언급하고 있다. 가령, '서양의 팽창'과 '문명 기준의 역전', '양차 세계대전'과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50년 전쟁', '전 지구적 냉전'과 '동아시아 전후체계', '근대문명의 복합 위기'와 '임계점에 도달한 동아시아 전후체제'가 그러하다. 전자가 세계사적 맥락이라면, 후자는 동아시아 근대 질서의 전환기를 촉발한 주요 사건과 연계된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주요 사건은 아편전쟁, 메이지 유신, 청일전쟁, 3·1운동과 한국전쟁 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