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역사라고 했을 때, 과연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궁금했다. ‘역사’라고까지 했으니,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그런데 그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일’은 우리가 재화를 얻기 위해서 노동하는 것을 의미할 텐데, 그럼 그 ‘역사’를 어디서부터 얘기할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자 가장 궁금해해야 할 것은 ‘일’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할 지에 관한 것이란 걸 알게 된다. 가령 이런 것이다. 내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아이들이 어릴 때 작은 녀석(아들)을 내 사무실에 데려갔다 왔더니 나중에 아빠는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출근해서 계속 컴퓨터로 ‘놀더라’는 것이었다. 아들 녀석의 눈에는 그리 보였겠다 싶었다. 그 녀석의 나이에 컴퓨터로 하는 것은 놀이이지 ‘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일’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나 스스로도 잘 분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서핑하는 것은 일일까? 아닐까? 어딜 여행갈까 궁리하거나, 연예계 가십이나, 어제 프로야구 결과를 찾아보는 것은 명백히 일이 아니겠지만, 과학계의 이러저런 일들, 혹은 논문들을 이것저것 뒤져보는 것은 내겐 일이다. 그렇게 보면 앞에서 내가 일이 아니라고 한 것도 명백히 일인 사람도 있다. ‘일’은 일 아닌 것과 구분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사실 제임스 수즈먼이 『일의 역사』를 통해서 내내 하는 얘기도 바로 그 ‘일’과 ‘일이 아닌 일’ 사이의 구분에 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인류가 등장하기 전의 것은 건너뛰고라도 인류가 등장하고서는 모든 행위가 생존과 관련된 것이라 일이 아닌 것이 없었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그러다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행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일과 일이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이 불명확해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봐서 일이 아닌 것은 그들에게도 일이 아니었을까? 지금 현대인이 일을 보는 관점과 수십 만 년 전, 수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일을 보는 관점을 비록 굉장히 다를지 모르지만, 또 본질적인 무엇이 있다는 얘기다.
수즈먼은 인간의 일, 즉 노동의 역사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데, 그 역사를 분명하게 구분짓는 몇 지점이 있다. 첫 번째는 인간이 불을 다루게 된 시점이다. 이 시점은 굉장히 중요한데 바로 인간이 생존을 위한 일 외의 다른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다음은 농경이 탄생하는 시점과 연관된다. 다른 책이라면 ‘농경!’이라고 못을 박아버리지만, 저자는 이 시점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왜냐하면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시점에서 인류의 변화가 농경에 의한 것인지, 농경이 결과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시점(약 1만 2000년 전쯤)에 인류는 식량을 저장하고, 재배하는 방식을 시험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타인과 환경과의 관계를 재정립했으며, 즉각적인 요구 조건이 아니라 지연된 요구 조건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미래의 결핍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도시의 형성이다. 도시의 형성은 당연히 분업으로 이어진다. 분업은 생존과는 관련이 없는 직업을 탄생시켰다. 약 8000년 전쯤 생성된 도시에는 에너지를 획득하는 사람보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을 우리는 예술가, 사제 등으로 부른다. 드디어 불평등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며,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또 달라진 것이다. 마지막은 공장의 출현이다. 이 시기에 들어서는 에너지의 소스가 인류가 탄생하기도 훨씬 전에 지구적인 규모로 생성된 화석 연료로 바뀌었다. 화석 연료는 이전보다 훨씬 효율적인 연료로, 우리는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앞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규모와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도시의 수와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고, 농업의 양상도 달라졌다.
이 정도가 저자가 이 책에서 설명하는 일, 노동의 역사의 뼈대다. 여기에 저자가 많은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인류 진화의 역사를 따라가지만 단순한 인류 진화의 역사가 아니라, 그 역사에서 한 측면, 그것도 가장 중요한 측면을 중심으로 바라보면서도 아주 포괄적인 진화사이다. 수렵채집인들의 여유로운 삶에 대해서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으며, 현대에 들면서 오히려 일에 허덕거리는 상황에 대해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문명 비판도 아니다. 어쩌면 일과 에너지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이 경로는, 물론 결정론적인 얘기는 아니지만,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러한 전체 맥락의 커다란 얘기도 매우 중요하고, 교훈적이며, 흥미롭지만, 그 안에 담긴 얘기들, 수렵채집부족의 얘기, 고고학자, 인류학자에 관한 이야기, 혹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과로사로 인정받은 일본 NHK 기자 사도 미와의 이야기 등은 이 책을 더욱 다채롭고 집중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린’ 고고학자 비어 고든 차일드다. 그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끝내는 것은 사실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들을 구별하는 특징”이라고 했다. 그는 농업혁명이 인류에게 그리 축복은 아니었다는 것을 밝힌 거의 최초의 학자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런 주장이 새로운 증거에 의해 반박될까 항상 걱정을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증거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물론 그 반대인 것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일과 휴식의 구분이 매우 애매해진 시대에 살고 있고, 나 스스로도 점점 그렇다. 사람들은 쉴 권리를 주장하지만, 너무 일하는 시간을 적게 주면, 더 많이 일하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대부분이 보기에 절대 ‘일’이 될 수 없겠지만, 나는 나름 ‘일’을 한다고(최소한 ‘일’ 비슷한 걸 한다고, 어쩌면 ‘일’이라고 불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일에 관해서 참 생각할 게 많아졌다. |
일의 역사
일과 인간의 관계를 파고드는 꽤 엉뚱한 발상이다. 인류의 본성을 거스르던 것들에 대한 반박, 부정의 근거를 들이대고 있다. 인류 탄생 이래 일이란 도대체 뭘까, 원제목에서 그 힌트를 찾는다. 일,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한 역사. 이 책<일의 역사>의 지은이 제임스 수즈먼은 거대한 인류사를 통틀어 우리가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많이 할애하는 ‘일’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과학기술이 진보하면 인간은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일 중독에 빠진다. 심하면 과로사라는 웃지 못할 참으로 서글픈 일이 일어난다. 도대체 일과 인간의 관계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AI의 출현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다 아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는 논쟁은 세상을 뒤바꾸는 변화의 시기 이른바 혁명의 시기마다 반복됐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그리고 러시아혁명….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 그러하다.
일과 인간관계의 역사를 생각해 보자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이진우 역, 한길사, 2019)에서 인간의 조건을 위한 근본적인 세 가지 활동 형식에 관한 현상학적 분석에 있는데, 동물로서 인간의 생물학적 삶에 부합하는 노동, 인간이 지상에 건립하는 대상들의 인공세계에 부합하는 작업, 그리고 별개의 개인으로서 우리의 다원성에 부합하는 행위 즉 활동이다. 아렌트는 이 구별들과 철학과 종교적 우선권 내에서 형성된 지적 전통 안에서 무시됐다고 말한다. 노동과 작업 그리고 활동, 이를 구분하고 여기에 사유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말이다. 이런 문제의식과 맥락적인 면에서는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을 듯 보이는 <일의 역사>라는 이 책은 흥미롭다. 이 책은 4부 체제이고, 1부에서는 인류의 출현과 함께 힘든 노동이라는 개념의 등장 시기, 2부 공생하는 환경 속에서 풍요한 사회의 근원은, 3부 끝없는 노역, 시간은 돈이라는 개념의 등장, 최초의 기계…. 4부 도시의 유물, 끝없는 욕망과 월급쟁이의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일….
일은 중독성이 있는 것인가?
일에 치여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휴식의 욕구가 강렬해질 때, 근무시간을 줄이고 휴가를 더 받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또, 임금이 어느 정도 오르면 여가를 즐기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임금도 올라도 여전히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왜 그럴까, 일 중독 때문일까, 이 책 첫머리에서 인용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구절을 보자. 무거운 것이 무엇인가? 중력을 견디어 내는 정신은 이렇게 묻고는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충분히 많은 짐이 실리기를 원한다…. 정신은 무거운 짐을 지고 서둘러 사막으로 들어가는 낙타처럼 자신의 사막으로 서둘러 가는 것이다. 낙타의 행복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으로 가는 것이기에 그렇다….
우리는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불안감을 느낀다. 근면과 성실이 우리 스스로 부여하는 낙타의 짐이다. 인류도 신석기 혁명-수렵에서 정착하게 되면서 스스로 가축화되어 가는-과정에서 묵묵한 인내의 가치를 체화해왔다는 것이다.
일과 여가 경계의 모호성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서부터 여가인가? 케인스는 21세기에 들어서면 자본의 성장, 생산성 개선, 기술 발전으로 모든 사람의 기본적 욕구나 필요가 쉽게 충족될 것이기에 아마도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지 않는 경제적 약속의 땅 기슭에 있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는데,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아니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대다수 사람이 아닌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케인스의 유토피아적 발상은 소유와 부의 추구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부정적 평가와 조롱을 받는 사회를 전제로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도덕적, 윤리적…. 그것이 프로테스탄트적이든 유교적이든 간에….
욕구와 희소성의 충족이 인류를 영원히 구속하는 조건이라는 생각을 포기하면, 일의 정의는 생계유지 수단 이상으로 확대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활동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될 것이기에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다. 경제학의 경계를 넘어 진화생물학, 동물학, 물리학의 세계로….
일과 인간의 관계
일과 인간의 관계는 에너지와 관계와 진화와 문화가 가려는 방향을 따라간다는 점이 교차하게 된다는 것인데, 인간이 불을 다루게 됨으로써 이 에너지로 식량을 찾으러 다니지 않고도 구하게 되어, 생명 유지 시간을 늘리고, 식량이 풍부해짐으로써 에너지 소모가 많은 두뇌에 연료를 공급하게 됐다고…. 또, 농경사회에서 환경, 타인, 결핍 상황 등과의 관계가 일과의 관계를 변화시켰고, 오늘날 우리 삶을 관리하는 공식적인 경제구조 안에 얼마나 많은 부분이 농경사회에서 유래했는지…. 우리의 관념이 일에 관한 우리의 태도에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된 것인지, 그리고 도시화로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겪는데, 새로운 기술과 직업, 전문성과 업종들이 발생할 씨앗을 뿌렸다. 도시의 형성과 등장은 경제문제와 희소성의 역학관계를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된다. 마지막, 공장출현…. 이어서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불리게 될 AI와 일의 관계….
이런 커다란 흐름을 이야기 속에 함께 등장하는 진화생물학,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는 것들이 실은 아무런 근거 없음을…. 숫공작의 꼬리는 암컷에게 멋있고 보이고 생존율 높은 튼튼한 후세를 낳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고…. 뻬짜기 새가 둥지를 짓고, 부수는 행동은 혹독한 시련을 견디기 위한 훈련….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정원에 갖다 두는 모이를 먹는 다양한 참새목의 새들이 날씬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마치 인간이 스포츠를 하고 달리기를 하면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과 비슷하다. 유기체 즉 살아있는 것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의미다.
자동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케인스의 유토피아적 미래
한나 아렌트는 자동화의 함의를 이렇게 보고 있다. 최근 몇 세기 동안 인간세계에 대한 가장 주요한 위협은 모든 안정성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움직이게 만든 경제적 현대화라고, 그리고, 생산과 소비의 과정은 자연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는데 이는 세계의 한복판에서 진행되는 생물학적 과정이자 세계를 둘러싼 순환적 자연 과정이라는 이중적 의미의 자연으로부터, 사람의 손으로 만든 구조물인 세계를 보호하고 분리하는 경계선을 우리가 억지로 무너뜨려서 항상 위협받는 세계의 안정성을 자연에 내맡기고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경제적 관심사들이 공공의 관심과 공동 정책의 핵심이 된 이후, 세계의 대대적인 파괴 그리고 스스로를 소비 욕망의 관점에서 생각하려는 경향의 증가가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라는 것이다. 결론은 생각 좀 하고 삽시다라는 말이다. 이 말과 제임스 수즈먼의 자동화 세계의 확장은, 표현은 다르지만, 맥락적으로는 꽤 유사하다. 비숙련 노동자와 반숙련 노동자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을 기회가 줄어들게 돼, 국가 내부의 불평등은 심화할 것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일과 인간의 관계는, 자동화이든 AI이든 , 대처해 나갈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경제 제도와 노동문화의 진부함을 폭로하며, 어떤 직업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우리가 핵심적인 혹은 전통적으로 인식하는 직업보다 무의미하거나 기생적인 직업들(금융자산의 출현으로 남의 돈으로 자신의 부를 늘리는 이상한 현상들)에 시장이 보상해주는 기이한 현상, 이대로 두어도 되나 싶을 정도다. 인간은 변화가 강요될 때 놀랄 정도로 다재다능해질 수 있다. 인간은 사물에 대해 매우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새로운 방식에 재빨리 적응할 수도 있기에…. 불평등과 부의 쏠림(1%대 99% 혹은 99%대 1%)에 대해서도 대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이 책을 읽을 때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도 함께 읽어도 좋을 듯싶다. 노동, 작업, 활동, 일과 인간의 관계 등…. 물론 전자는 정치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인간이라면 “생각 좀 하고 살자”라는 메시지와 후자의 인간 변화 적응력과 사고력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비전을 함께 읽어보면 어떤 모습의 사회가 보일까 궁금하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일의역사#제임스수즈먼#김병화#박한선감수#알에이치코리아#자동화의함의와부정#일과인간의관계#일에관한인류의본성을거스리던행위의부정#책콩카페#책콩서평단 |
언제 지하철을 타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표정이나 옷차림이 다릅니다. 아침 출근 시간, 특히 월요일 아침에는 다들 지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서 자고 있거나 서 있는 사람들은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면서 힘들게 몸을 지탱하고 있네요. 퇴근 시간에는 피곤해 보이지만 표정은 밝습니다. 일을 하면서 육체적인 고통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스트레스 역시 상당한데 힘들다고 해서 일을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나네요.
먹고 살기 위해서는 프리랜서를 하든 자영업을 하든 회사에 고용이 되든 일을 해야 합니다. 사회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일의 종류는 달라졌지만 일 자체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일의 역사' 에서는 먼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하고 있지만 별로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등장하였을 때에는 먹을 것을 따라 이동하였습니다. 무리를 지어 사냥을 했고 야생 과일을 따먹었네요. 먹을 것을 저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날 먹을 것은 그날 찾아야 했고 운 좋게 빨리 준비한다면 더 일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쿵족 등 많은 부족들이 과거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기준에서는 게을러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부족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생활 방식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만큼 하루에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는 우리가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연한 계기로 농사 짓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면서 인류는 이동하는 삶 대신 한 곳에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리가 작은 마을이 되고 점점 큰 도시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일도 다양하게 분화되었고, 잉여 생산물을 저장할 수 있게 된만큼 이를 위해 일하는 시간도 늘어났네요.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일은 더 극적으로 변합니다. 기계가 등장하자 수공업을 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을 우려해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지만 공장이 늘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였네요. 하루에 12시간씩 6일을 일하기도 했고, 10살 미만의 어린 아이들은 노동 시간을 줄일 것인지 논의될 정도였으니 얼마나 열악한 상황이었는지 알 수 있네요. 현대에도 과로사가 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여전히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산업혁명을 통해 빠르게 바뀐 일자리는 IT 기술의 발달에 따라 다시 한번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네요. 예전에는 사람이 하던 일도 이제는 컴퓨터가 대체하면서 단순한 업무부터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새롭게 등장하는 일자리도 있지만 특정한 기술이 요구되는 등 문턱이 높습니다. 최근 기본 소득의 개념이 등장한 것도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 부모님 세대에서는 일을 가정보다 중요시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워라밸' 이 강조되면서 일과 자신의 삶에서 균형을 찾고 있습니다. 주 4.5일, 주 4일 근무를 하는 곳도 등장하고 있는데 앞으로 일은 어떻게 우리 삶에 자리잡을지 궁금해지네요. 최초에 인류가 등장한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에 대해 분석적으로 읽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지구별의 문명 수레를 굴리는 두 바퀴가 있다. 바로 노동과 여가다. 주당 40시간의 노동과 잠깐의 휴식이 현대인이 일주일을 쓰는 주요 방식이다. 노동의 의미를 보다 깊이 알려면 여가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영국의 사회인류학자 제임스 수즈먼은 사회인류학적 관점에서 노동과 여가의 역사를 고찰한다. 가령 석기 시대 수렵채집인의 원초적인 노동과 여가, 농업혁명을 달성한 고대 농부의 노동과 여가, 그리고 네 차례의 산업혁명을 거친 현대인의 노동과 여가가 비교된다.
그동안 일과 밥벌이에 대해 가장 많이 토를 단 것은 경제학자들이었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일을 "인간의 필요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소모하는 시간과 노력"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런 정의는 두 가지 문제를 놓치고 있다. 하나는 일과 여가를 구분하는 유일한 차이가 '맥락'에 달려 있거나 보수를 주느냐 받느냐에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필요'의 범위와 모호성 문제인데, 식량, 물, 공기, 온기, 친교, 안전 같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소모하는 에너지를 제하면 보편적인 필요로 간주될 만한 다른 어떤 것이 거의 없다는 것과, 필요는 흔히 '욕구'와 서로 구별하기 힘들게 뒤섞인 애매어라는 점이다.
전통적 경제학의 '일=밥벌이'라는 협소한 정의 대신에, 저자는 사회인류학적 관점에서 일의 보편적 정의를 "어떤 목표와 결말을 달성하기 위한 과제에 에너지와 노력을 의도적으로 소모하는" 것으로 넓힌다. 사회인류학자는 일과 인간의 관계사에서 꽈배기처럼 서로 교차하는 두 가지 길을 고려한다. 하나는 "인간이 에너지와 갖는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의 진화와 문화가 가려는 방향"이다. 두 길의 교차점은 불의 활용, 농경의 보급, 도시의 탄생, 굴뚝 공장의 출현이다. 이 네 가지에 새로운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인공지능(AI)'이 될 것이다.
정말 세상이 확 달라졌다. 평균 수명은 길어졌지만, 인공지능과 자동화 같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고용 안정성은 대폭 떨어졌다. '평생직장'이란 말은 쏙 들어가고, 대신에 직업이 서너 가지가 넘는 'N잡러'와 본캐와는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내세우는 '부캐'라는 말이 성행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20년 '일자리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향후 25년간 8.5천만 개의 일자리가 자동화로 대체되고, 9.7천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했다. 이 소식이 장미빛이 아닌 게 문제다. 직업 수는 늘지만 대우는 박해지고 경쟁은 한없이 치열해져, 번아웃증후군, 공황장애, 성인 주의력결핍증 등 현대인들의 정신적 스트레스 목록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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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적은 인류의 역사에서 노동의 시간과 행복, 사회공동체에 대한 내용을 다양한 과학을 통해 설명한 서적으로 적당한 노동시간이 만족감과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하며 일에 대한 가치관 및 노동시간의 균형을 잡아 사회공동체가 효과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서적이라 하겠다.
서적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생명체와 에너지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되는데 수학, 물리학, 생물학 관련 이론을 총망라하여 지구상의 모든 생물인 유기체가 에너지를 흡수 활용하여 일을 한다는 기원을 설명한다. 그리고 쿵족의 수렵생활을 예로 들어 호모 사피엔스가 초기 수렵생활을 할 때 하루 15시간정도만 생산 활동에 종사하면 부양가족을 먹여 살리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불의 사용으로 노동 능력이 없던 사람들(이야기꾼, 샤먼 등)과 공유 관계로 공동체를 형성하며 일 외의 취미, 예술, 문화 활동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2부에서는 1부 말미의 내용과 연결되는 공동체가 공생하는 환경에 대한 내용으로 수렵채집을 하던 인류의 조상은 어떤 인류보다 많은 ‘자유 시간’을 누렸으며 인간의 본성인 욕구를 줄여 문제를 해결해 풍요롭게 생활했다. 그리고 인류가 시작한 농업은 ‘지연된 보상 경제’ 이며 수렵채집은 ‘즉각적 보상 경제“로 대비시킨 이론을 제시하며 수렵채집인 들이 대부분 평등했으며 ’요구 공유‘라 불리는 시대를 살았다는 이론을 설명한다. 3부에서는 노동시간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인류의 농업, 축산업에 대해 다룬다. 농업과 산업의 발전으로 인구가 한 장소에 쏠리며 도시를 만들고 지배계층과 노예까지 나타나 노동시간이 지배계층을 제외한 모든 계층에게서 크게 증가한다는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 4부에서는 산업혁명이후 현재까지의 경제 발전, 공동체, 노동의 강도와 시간에 대해 다룬다. 특히 여러 매체에서 강하게 비판했던 정규직 근로자의 실질소득이 1980년부터 현재까지 별 차이가 없었으며 상위 1%, 상위 0.1%가 실제 소득의 대부분을 취하는 부조리를 그래프를 통해 강조한 내용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우리나라에 대한 내용도 다루는데 지난 20년 동안 노동시간의 감소폭이 가장 큰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하는데 이런 아시아국가의 노동시간이 큰 폭으로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독일이나 유럽의 노동시간과 비교해 아직도 연간 수백 시간을 더 일한다는 내용이 우리나라의 실상을 파악할 내용이었다.
이 서적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이론을 제시하며 일과 행복에 대해 논한다. 저자는 독자들이 제시한 과학이나 경제 이론을 통해 일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주려 한다는 느낌을 준다. 단, 세계 10%의 부자가 전 세계 자산의 85% 소유하고 1%의 부자가 자산의 45%를 보유한 문제점이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더욱 그들의 자산은 증가하고 대부분의 인간들은 많은 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며 생계만 유지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암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산업의 발전으로 초래된 기후 위기도 지적하며 자산의 축적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상위 0.1% 기업을 위한 감세정책을 추진하며 복지예산을 줄인다는 뉴스를 보며 우리나라의 미래가 더욱 걱정되었다. 사회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가치관을 확립하고 미래의 노동 관련 해법을 찾을 서적으로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서적을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
우리는 학교에 다닐 때 사람인(人)이라는 한자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두 사람이 기대고 있는 모습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거짓말이다.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등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사람인(人)은 일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며, 그 뜻은 사람은 일하는 존재다. 사람은 일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사람과 일은 땔, 수 없는 관계였다. 수렵, 채집하던 인류는 농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문명을 발달시키기 시작했다. 과거 도구를 쓰던 한 동물에 불과했던 인류는 이제 우주로까지 그 무대를 넓혔다. 제임스 수즈먼(김병화 역)의 『일의 역사』는 우리 인류가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는 그 일이 역사를 통해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우리 인류는 무엇을 하면서 삶을 영위했을까? 바로 일이다. 인간의 문명이 시작된 이후 인간은 일하는 존재로 정의되었지만, 수렵 채집할 때는 하루에 3시간 만의 일로도 충분한 생활이 가능했다고 한다. 일 즉 노동이 고통으로 변하는 것은 바로 문명이 시작된 신석기 혁명 이후이며, 이는 우리 인류의 역사를 토해서 본다면 매우 짧은 시간이다. 에덴에서는 평등하던 인간의 사회에 계급이 생기고 노예제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후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인간(노동자들)은 일하면 할수록 더 가난해져 갔다. 그에 반해서 소수의 부자는 더욱 큰 부를 얻었다. 급격한 도시화 이후에는 인간이 각종 질병에 더욱 취약해졌으며,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 책은 제라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 균, 쇠의 지리와 우연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인지에 일과 시간의 역사를 더한 책이다. 총, 균, 쇠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인류의 발전에서 지리적인 요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그리고 인간의 사고하는 능력은 오늘날의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다. 인류는 이 지리적인 요인에 사고하는 능력으로 어떻게 시간을 사용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을까? 그 시간을 사용하는 일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그리고 일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희소성과 경제성이 아닌 일을 통해서 우리 인류의 모습과 미래를 살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
“한 권으로 보는 인류의 진화와 노동의 미래”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출판한 제임스 수즈먼의 <일의 역사>는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돌아보게 하는 도서이다. 읽은 후 느낌은 여러모로 주제를 가지고 인류사를 돌아보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총,균,쇠>처럼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기를 바란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제임스 수즈먼 교수는 197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났다. 1993년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에서 사회인류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96년 에든버러 대학에서 사회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남아프리카 !쿵족을 연구한 최초의 연구자로, 나미비아에서 아프리카 지역 연구를 시작했으며 1998년에는 태평양협의체와 EU가 결의한 <남아프리카 지위 연구>를 위한 수장으로 발탁되었다. [ 일의 역사 책날개 중 ] Photo by Thomas Bormans on Unsplash 저자는 인류사를 인류학, 고고학, 진화생물학, 동물학, 물리학, 경제학의 관점에서 돌아본다. 과연 현대인이 미친 듯이(?) 일에 매진하는 모습이 진화 과정에 순응하는지 아니면 저항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수렵채집인 사회에서 생활하며 연구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는 인간 본성에 어긋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수즈먼은 칼라하리 사막과 태즈매니아의 !쿵족, 움부티족, 하드자족과 같은 수렵채집인 사회를 연구하면서 선조들이 일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길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심지어 이들이 수렵을 위해 부족원들이 모여서 의논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인지 ‘여가’인지 구분하기 모호하다.
책의 원제인 (Work : A History of How We Spend Our Time) ‘일,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한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인간이 진화 과정을 거치며 일하며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이유에 주목한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언스’를 통해 농업혁명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과 수렵채집인이 적은 노동시간에도 영양을 충분히 섭취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경제학자들은 ’희소성‘의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한다. 호모 사피언스가 일에 빠져드는 순간은 농경에서 발원했다고 저자는 예측한다. 30만 년에 달하는 역사 가운데 95%가 넘는 기간 동안 선조들은 수렵채집인으로 살아와서 희소성의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
희소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문명을 창출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노역의 역사는 과중하게 인간의 어깨를 짓눌렸다. Photo by Marten Bjork on Unsplash 일을 꾸준히 잘하는 것은 개인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는 요소라는 인식이 확산했다. 이는 진화를 이어갈 상대에게도 매력으로 다가가는 요소가 되었으며 의식과 행동은 인간은 더욱 일에 빠져들도록 촉구했다.
90년 전 케인스는 생산설비의 자동화와 기계의 발달로 인해 큰 전쟁이나 인구증가가 없다면 세계 경제가 4배에서 8배 성장하며 노동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일주일에 15시간 일할 것으로 예측했었다.
바야흐로 자동화된 미래가 눈앞에 펼쳐져 인간의 노동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절실하다. 우리가 매일 일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과연 인간 본연의 DNA에 순응하는 것인지 저항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이 요즘 중요한 사회 문제도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인간의 생존과 노동시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 반가웠다. 주제를 가지고 통사에 접근하는 책은 자칫 방대한 흐름에 논지를 이탈하기 쉬운데, ‘일’과 ‘노동’이라는 본연의 활동을 인류사를 돌아보는 책이라 뜻깊었다.
인간의 행동을 지배해온 ‘일’이 인류의 발달과정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고 미래 사회에서는 어떻게 진행할지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의 역사>가 많은 분의 주목을 받기를 희망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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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왔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침밥 같지도 않은 아침을 먹고 매일 같은 코스의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직장으로 출근. 오늘 하루할 일을 체크하고 일정을 협의, 자료를 작성하고 필요하면 회의도 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먹고 당장 내일까지 필요한 자료가 아닌 경우 지금까지 작업한 자료를 정리하고 퇴근한다. 일을 하는 이유는 먹고살기 위해서이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위해 우린 일을 한다. 인류의 진화해 왔다. 수렵과 채집에서 벗어나 농사를 지었으며 옷을 만들어 입고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다. 과거에 비해 발달된 문명을 이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 과거의 일과 모습만 다를 뿐 일을 하고 있다. 조금 더 깊이 보면 더 많이 일을 하고 있다. 과거 인류는 먹고살기 위해 일을 했다. 먹이를 사냥하고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배고픔과 추위, 더위가 해결되면 그걸로 끝이었다. 일의 강도는 높지만 규칙적이지도 않았으며 습관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에서 계급이 등장하고 농장주, 공장주, 토지주가 등장함으로써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다른 일을 만드는데 공헌을 하였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만들어내고 운동을 하는 운동선수도 만들었으며 연극과 영화를 만드는 배우도 만들었다. 이들은 인류가 지금까지 겪은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또 다른 일을 만들어 낸 것이다. 버트런트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란 책을 통해 노동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여가가 있기 때문에 노동이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덧붙여 제임스 주스먼은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한번 고민하게 도와준다. 인류는 진화하고 문명을 발달해가면서 4차 산업이란 큰 파도를 넘고 있다. 단순노동은 기계들이 대체하고 과거엔 기계가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은 AI가 등장하여 일을 하고 있다. 일은 분명히 줄어들었는데 우린 아직도 주 40시간을 일하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야근을 하며 투잡, 쓰리잡을 만들어 일을 하고 있다.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하면서 일을 하지만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이 목적이 되어 일을 위해 일을 하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제임스 수즈먼은 <일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일의 의미가 인류사에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설명하고 있다. 일이라는 거시적이고 방대한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가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초판이라 그런지 오타가 너무 많고 번역이 자연스럽지 않아 읽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책이 많이 팔리고 인기가 많으면 판본이 바뀌어 출판할 터인데 그때쯤엔 오역이나 오타도 자리 잡지 않을까. 흥미로운 주제인 만큼 책이 많이 팔리면 좋겠다. |
현대 사회에서 ‘일’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자아 실현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리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면 현대 문명은 무너져 내릴 테니까요. 일은 현대 문명을 떠받들고 있는 중요한 가치를 가진 개념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일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그대로 두고, 과연 일은 언제부터 우리의 삶을 이렇게 옭아매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의문을 찾는 과정에서 “일의 역사 (제임스 수즈먼 著, 박한선, 김병화 共譯, RHK, 원제 : Work: A History of How we spend our Time )”는 흥미로운 실마리를 던져주는 책입니다.
경제학자들이 바라보는 문제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바로 희소성의 문제이지요. 자원의 희소성으로 인해 인간은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이를 위해 노동, 즉 일을 한다고 가정합니다. 물론 엄청난 단순화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말이죠. 인류학자인 저자는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경제학자들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인간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기적으로 진화했으며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영원히 만족시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노동에 시달리는 저주를 받았다는 주장으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현대에도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는 종족을 연구하면서 이러한 경제학자들의 관점에 대한 반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무한한 욕구와 유한한 수단 사이의 연옥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며 농경에서 시작되었다고 바라보면서 그에 대한 논증을 이어갑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조현욱 譯, 이태수 監, 김영사, 원제 :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라는 책을 통해 인간을 노동에 시달리게 만든 농업 혁명을 가리켜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 칭한 바 있습니다. 최근 많은 학자들은 농업 혁명 이전, 즉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인류가 굶주림에 시달렸다는 증거는 없다고도 합니다. 즉, 농업 혁명으로 인해 인류라는 종은 엄청나게 번성했지만 인간 개개인은 과거보다 삶의 질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 책, “일의 역사”는 사회인류학 전문가인 저자가 인류학적 관점에서 인류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통사적으로 살펴보면서 농경, 농업혁명으로 인해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이 시대를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이제 어쩌면 AI와 로봇으로 인해 머지 않은 미래에 인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에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현대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는 믿음을 빼앗겨 버리는 미래가 유토피아가 될 지, 아니면 디스토피아가 될 지 이 책은 그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노동의 변화에 대한 역사적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그 답을 구하는 과정에 레퍼런스가 될 수 있는 책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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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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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역사 제임스 수즈먼 (지음) | 김병화 (옮김) | RHK (펴냄) 올해 여름 휴가엔 아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서울을 다녀왔다. 코로나19로 일상이 자유롭지 않은 후로 몇 년만의 장거리 외출이었다. 아이가 소원하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광고로만 보던 서빙하는 로봇을 보고 아이도 나도 신기했다. 서빙 로봇 뿐만 아니라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은 조그만 상점에서도 키오스크가 보편화되어, 편리함과 노동현장에서 인간의 입지가 좁아지는 불안감을 동시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인간은 편리와 효율성을 위해 끊임없이 도구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역사를 가져왔다. 그 시작은 깨진 돌조각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누군가의 직업이 위협받는 현실에 이르렀다. 수렵과 채집,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고대인들이 농업으로 인한 정착으로 빈부가 생기고 계급이 생겼다. 풍요를 가져다 줄 것 같았던 농업의 시작은 고된 노동의 시작이기도 했다. 열심히 일하면 부를 가져다 주리란 희망은 시대가 변하고 발전할수록 빈부의 격차가 더 벌어질뿐 경제력이 주는 계급의 위치는 요지부동이다. 많은 이들이 땀흘리는 노동보다 도박, 한탕주의, 로또당첨의 꿈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만이 굶주림의 변수이던 옛날과 달리 경제대공황, 불경기, 전쟁등으로 불황이 길어지는 요즘은 "일"이 주는 의미가 깊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노년의 문제와 노동 현장의 성차별과 학력의 차별 등 산업화를 지나오며 겪은 문제들은 모습을 달리하며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잘하는 팔방미인이 인정받던 시대에서 분업화에 따른 전문화로 전문가가 대접받던 시대가 통합과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모든 것을 잘해야 인재가 되는 시대가 왔다. 시대마다 그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도 변화하는 것이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노동이라는 형태로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돈을 번다. 필요한 노동력을 자식을 많이 낳는 것으로 대체하던 농업의 시대는 생산보다 소비가 더 컸던 함정에 빠져 가난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되었다. 돈이 돈을 버는 계급과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계급, 일의 역사는 계급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누군가에게는 노동이 되고, 그 노동이 누군가에게는 여가, 휴식, 놀이, 취미가 된다. 일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역사와 시간의 의미도 짚어보는 계기가 되는 시간이었다.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의 지원도서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