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슐 옷장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읽은 책. 책을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유투브에서 내게 어울리는 옷을 입는 법, 꼭 사야 하는 물건 등의 표제로 추천해주는 영상에 대해 죄다 <추천해 주지 마시오>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소유물이, 지난 몇십년 동안 수집했던 잡동사니가 내게 스트레스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인정해야 했다. 내 물건들이 나를 짓눌렀고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
온갖 감정에 시달릴 때 당신의 몸은 '우리 쇼핑이나 하러 가자'고 말하지 않는다. '나를 좀 돌봐줘'라고 말한다. 마음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인다면 쇼핑몰이나 인터넷 쇼핑사이트는 결코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숲속을 산책하고, 낮잠을 자거나, 물을 한잔 마시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어준다. 그 효과는 정말 놀라울 정도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을 해결하고 자신을 돌보는 데는 그리 대단한 무언가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선택권이 없을 때 삶은 견딜 수 없다. 소비문화 속에서 다양한 선택지가 늘어날수록 이 다양성이 불러오는 자율성, 통제력, 해방의 힘은 강렬하고 긍정적이다. 하지만 선택지가 계속 늘어나면 부정적인 측면이 대두되고 우리는 짓눌리기 시작한다. 이제 선택은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좀먹고 있다. 배리 슈워츠 <점심메뉴 고르기도 어려운 사람들>에서 인용
의사결정 피로를 경험한 적 있는가? 지독한 피로를 느끼면 다 포기하고 더 이상의 선택을 피하기 위해 멍하니 볼 수 있는 TV를 켠다. 또는 머리속의 전원을 끌 수 있는 다른 대상을 찾는다. 이 역시 단 몇분, 몇시간만이라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결정을 내리지 않기 위한 또 하나의 선택이다. 내가 날마다 유투브를 멍하게 보고 있는 이유에 대한 답인지도.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제대로 된 아이디어가 찾아왔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제 '이건 정신 나간 짓이야'라는 생각이 들 때면 관련 정보가 더 필요하고, 내가 성장하고 변화하는데 도움이 될 새로운 분야를 발견했다는 뜻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체형에 '어울리게' 옷을 입어야 한다는 개념은 개인이 좋아하는 옷,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옷, 패션으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옷을 입는 것보다 현대사회의 이상에 따라 마르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는 믿음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깊이 뿌리내렸음을 보여준다. 아누슈카 리스 <아름다움을 넘어서> 에서 인용. 작가는 '프로젝트 333이 가혹하다'고 평가하는 패션업계 사람들에 대하여 '이런 것이야 말로 가혹한 것'이라고 일갈한다.
모든 여백을 '있어야 할 것 같은 물건들'로 채우지 않아야 한다. (...) 바쁜 스케줄, 쇼핑, 음식, 술,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기기로 여백을 가득 채울 필요가 없다. 이것들은 아픔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연시킬 뿐이다. (...) 텅 빈 옷걸이는 쇼핑을 하라는 알림이 아니다. 당신에게 '충분함'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 집중력을 빼앗는 전자기기와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만 움직이는 스크롤링으로 여백을 채우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여백을 있는 그대로 두어라. 약속이 취소되었거나 해야할 일이 사라졌다면 그 여백을 받아들이면 된다. 해야 할 일을 찾아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활동을 줄이고 스스로에게 더 충실한다. <여백이 있는 삶>은 나도 오래전부터 고민했던 주제라서 같은 표현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것을 보니 반가웠다.
프로젝트 335, 340을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당신에게 충분하다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깨닫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성공적인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 삶이 당신에게 요구하는 일들이나 당신에게 떠맡겨진 일들에 반응만 하는 자동조정장치 모드로 산다면 무엇이 당신에게 최선인지 잊게 된다. (...) 결국 문제의 본질은 내가 충분히 갖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약간의 불확실성과 거대한 혼돈에 너그러워져야 한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말이다. (...) 단순함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삶을 좀더 개선하는 도구이지, 삶을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다. 삶을 (또는 이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고 기대를 해서도 안된다.
소박한 삶의 이면에 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만 말해두고 싶다. 나는 미니멀리즘과 소박한 삶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지만, 어떤 날은 엉망진창이 될 때가 있다. (...) 그럼에도 적게 소유하고, 모닝루틴을 행하고, 나 자신을 잘 돌봄으로써 더욱 나답게 살 수 있다. 주말에 몰아서 해치우려고 애쓰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 행동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치열함보다 일관성이 중요하다. 그것은 날마다 조금씩 행하는 모험이다.
삶은 엉망진창이다. 단순함은 도움이 되기는 해도 만능 치료약은 아니다. 엉망진창인 삶을 인정하는 태도가, 나는 좋았다. 그 안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일관성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도.
그간 어떤 이야기를 듣고 어떤 신념을 갖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옷은 당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나는 정말 무언가가 필요해서 쇼핑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행복해지려고, 스타일리시하고 싶어서, 날씬해보이고 싶어서, 능력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다른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지루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옷을 샀다 (...)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규모를 줄이면 한결 다루기가 쉽다는 거죠. 가령 제 스타일을 찾고 옷장도 정리하고 싶었지만 캡슐 옷장을 만들기 전에는 도저히 엄두가 안났어요. 그런데 한계가 주어지니 나도 모르게 창의력을 발휘하게 되더라고요. 이제 제 삶의 모든 곳에 이 원칙을 적용해요. 무언가 너무 부담스럽다면 어떻게 규모를 줄일 수 있을지부터 생각해요.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방법이 떠오르더군요.
소박한 삶은 나다워지는데 필요한 여유와 시간, 사랑을 가져다준다. 당신의 본모습을 되찾고 싶다면 충분한 여유와 시간, 사랑을 쏟길 바란다.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작가가 제시하는 제언> 1. 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쓴다 - 아티스트 웨이의 모닝페이지 2. 당신의 기분을 밝게 만들어주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3. 자신을 소모하는 일을 멈춘다. - 재충전할 시간을 갖지 않고 스스로를 더 바쁘게 몰아붙이는 일들. 4. 여분의 것을 덜어낸다. 5. 두 손을 심장 위에 올린다. 6. 당신에게 가장 좋은 일을 한다.
여분의 것을 덜어낸다. 이는 한동안 '예스'라는 말보다는 '노'라는 말을 더 많이 해야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고,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내 옷장은 뉴트럴 컬러의 아이템으로 채워져 있고, 내 캘린더는 스케줄보다 여백이 더 많다. 그럼에도 내 삶은 다양한 색과 모험, 창의성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창의성>에 관한 챕터에서, 옷장이나 삶을 단순화 시켜야 진정으로 원하는 분야에서 창의적 에너지가 발산된다는 점을 피력한다. 내가 바라는 삶 역시 이런 모습이다.
나는 언제나 더 많이 갖고자 노력했다. '이만하면 된 삶'이 아니라, '뭐든 많은 것이 좋은 삶'을 살았다. 결과적으로 많이 소유한 탓에 나는 너무 무거워졌다. 프로젝트 333을 시작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내게 충분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함이었다. 그게 뭔지 몰랐으니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큰 기쁨도 느꼈다. (...) 나는 '하나면 충분하다'는 사고방식을 다른 대상에도 적용했다. 물론 모든 대상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펜이나 티스푼은 하나 이상이 필요하다. 나는 작가의 이런 너그러움과 관용이 좋았다. <모든 것이 하나면 충분하다>고 피력한다면 그것은 독선이나 극단적인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하나로 충분히 만족할 자유도, 혹은 그 이상을 소유할 자유도 있다. 핵심은 <무엇이든 다다익선>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는 일, 그래서 하나로 만족할지 더 많은 것을 취할지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선택지를 없애는 편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두고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 보다 훨씬 쉬웠다. 금주를 한 사람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잔만 더 마실까, 오늘 마실까, 뭘 마실까, 얼마나 마실까' 이런 의사결정을 없애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본인이 즐겼던 대상을 포기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바쁘게 사는 것은 그러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조너선 필즈 <좋은 인생을 사는 법>에서 인용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상의했고, '부동산 시장이 반등'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을 팔라는 조언은 무시했다. 돈은 의사결정에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와 같은 더 중요한 문제들이 많았다. 결국 작가는 56평에서 21평으로 집을 줄여서 이사를 갔다. 맞다. 돈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이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의사결정의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에, 돈이 아닌 자신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드물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돈이라면, 우리가 그것의 노예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일을 줄일 때 더 많은 생산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나는 일을 줄인 후 더 많은 것을 성취했고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 가짓수를 줄여서 제대로 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해야 한다.
평화, 안락함, 무엇보다 사랑과 같은 이유가 소박한 삶을 유지하는 중요한 동기다. 옷장에서 시작하든 주방 서랍에서 시작하든, 커리어나 캘린더에서 시작하든, 우리가 결국 원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일에 몰입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 더 많은 사랑이 자리할 공간을, 즉 물건과 바쁜 생활, 빚과 스트레스를 덜어내 여유를 만드는 것이다
그 무언가가 당신의 삶을 사랑으로 채우거나,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과 당신이 사랑하는 일 또는 당신이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언가에 힘을 실어주는가? 당신이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거나 사랑을 베풀며 살도록 만드는가? 어떠한 일이나 이벤트, 약속을 하는 이유가 당신의 삶에 가치를 더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싫증, 좌절, 불확실함이라는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인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 고통을 더 좋은 방법으로 줄일 수 있을까? 자꾸 물어야 한다. 이것이 사랑인가?
마음에 와 닿는 책을 읽으면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한다. 진실을 말하는 이들을 보면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한다. 산 정상, 일출, 흙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보면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한다. 사랑을 자꾸 발견하고 말할 때마다 당신의 삶에도 사랑이 자리하기 시작한다. 소박함은 사랑으로 회귀하는 여정이다. 덜어놓고 내려놓을 때 당신이 사랑하는 대상에 더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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